hyund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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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파일럿 출신 미합중국 대통령

허버트 워커 부시???
댓츠 논노! 그렇지 않다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중령시절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보좌관으로 필리핀에서 근무하면서
필리핀 육군항공대 창설에 관여했었는데,
하는김에 조종사 훈련도 필리핀인 교육생들과 같이 받음.

미 육군 항공대 장교 William L. Lee와 Hugh A. Parker가
필리핀 육항대 비행교관으로 1936년부터 비행생 교육을 했는데,
그 교육생 중에 한명이 아이크였음.

당시 아이젠하워 나이 46세
비행훈련은 Stearman PT-1을 탑승하여 이루어졌는데,
교관들의 당시 대체적인 평은 조종사로는 형편없지만 좋은 학생

아이젠하워 자신도 나는 46세에 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자신의 반사 신경이 젊은이들보다는 느렸다라고 일기에 쓰기도 함.

William L. Lee는 비행훈련 중에 그를 테스트 하기위해 일부러 잠든척 했다는데,

아이젠하워 왈 - 그때 공황상태가 척추를 타고 오르내리며 무릎을 흔들었고, 혀가 마비됐었다.

1937년 5월 19일 필리핀에서 첫 단독비행에 성공했고,
1939년 미국 개인조종사 라이센스까지 취득해서
미국, 필리핀 조종사 자격증 두가지 모두를 취득하게됨.
1939년 7월 19일 승인된 아이젠하워의 개인 조종사 면허증.

20일 일기장에 그는 "한 가지 야망을 드디어 실현했다."라고 작성했음.

단독비행 성공 이후에는 필리핀과 미국에서 Stinson Reliant를 조종했다는데,
해당 비행기 조종시간 포함하여 1936년 7월 부터 1939년 11월까지
총 350시간의 비행시간을 보유
1945년 필리핀 공군이 아이젠하워 조종사 자격증을 검토하고,
정식 공군 파일럿 자격과 공군배지를 보내주었다고 함.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나서는 첫 에어포스원이었던
Lockheed Constellation Columbine IIIII을 탑승 하여 장거리 비행을 할때면
지루함을 달래고자 종종 부조종사석에 앉아 조종을 했다는 일화가 있음.
워싱턴 DC에서 펜실.베니아주 케티즈버그 농장으로 U-4B를 탑승해서 비행할 때면
아예 조종사에게 통제권을 받아서 스스로 조종 했었다고 함.
성취는 목적지가 아닌 여정이 될 것입니다. - 아이젠하워


군사갤러리 투하체프님 펌
hyund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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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군바리출신 대통령은 더이상 없으리 ᆢ 검사출신 대통령도 더이상 없으리라 바라건만 ᆢ 바지놈이 계속 검사들로 구성되는 정권을 만들고 있네 매국노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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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만든 민항기, 다쏘 머큐리를 알아보자
1970년의 항공 산업은 보잉, 록히드마틴, 맥도널 더글라스 등등 여러 미국 기업들이 피터지게 싸우던 시절이였음. 보잉은 747-100의 엔진 문제 등을 개선한 747-200을 출시하고 중단거리 시장을 노린 737 오리지널 시리즈를 런칭했음. 록히드마틴은 늘어나는 항공 수요에 맞춰 첫 광동체 여객기인 L-1011을 출시했고, 맥도널 더글라스는 록히드마틴이 첫 광동체 여객기를 런칭했다는 소식에 허둥지둥 DC-10의 개발을 진행시켜 출시하게 됨. 우리가 알아볼 프랑스의 여객기, 다쏘 머큐리는 보잉의 중단거리 시장을 노린 737 오리지널을 경쟁 상대로 삼고 개발을 시작함. 프랑스의 기업 다쏘는 보잉에 견주는 유구한 항공 산업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설립된 다쏘는, 세계대전 후 첫 제트전투기인 우라강을 선보이고, 그 뒤 미라주 시리즈를 런칭하며 그 당시엔 베스트셀러 급으로 팔려나가게 됨. 특히 미국, 소련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제3세계 국가들이 미라주를 사들였고 이는 다쏘가 더욱 크게 성장하게 되는 발판을 깔아줌. 이러한 성장세에 한껏 고무된 다쏘는 프랑스 정부를 설득하여 첫 협동체 민항기, 머큐리를 런칭할 계획을 세우게 됨. 당시 다쏘가 얼마나 의욕적이였는지, 공장도 먼저 세우고 초도비행도 계획 수립 후 4년만에 이루어 낼 정도로 빠른 개발 과정을 보여주었음. 또한 다쏘 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 중 하나인, 다쏘시스템의 그 당시엔 최신 기술이였던 컴퓨터 설계로 머큐리는 경쟁 기종으로 지목했던 737 오리지널보다 속도도 빠르고 비행 효율도 좋은 항공기를 완성하게 됨 바로 이 항공기가 다쏘의 첫 협동체 민항기, 머큐리임. 앞서 설명했던 장점만 보면 출시하자마저 무지막지하게 팔려나갔을거 같지만, 머큐리엔 장점을 쌈싸먹어버리는 매우 큰 단점이 있었음. 바로 항속 거리, 즉 비행기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냐가 심각하게 조루였던 것! 이 항속 거리가 얼마나 짧았냐, 수치상으로는 1700km~2100km 이였음 수치상으로는 실감이 안나니 우리에게 친숙한 노선으로 따지면, 인천-나리타를 겨우 오갈 수 있는 수준이였던 것. 유럽 대륙으로 따져도 주요 도시를 겨우 연결할 수 있는 수준이였음. 머큐리의 경쟁 상대였던 보잉 737 오리지널 중 하나인 737-200이 4,300km을 날아갈 수 있었던 걸 보면 말 다했지. 이런 하나의 거대한 단점을 안고 시장에 나온 머큐리는 말 그대로 대폭망. 사진에 나와 있는 항공사인 에어인터가 이 항공기의 유일한 고객이였음. 설상가상으로 프랑스 정부의 자금도 투입된 탓에 에어인터는 울며 겨자먹기로 이 항공기를 구매할 수 밖에 없었음. 게다가 이 항공기가 출시된 시기인 1970년대엔 오일 쇼크로 인해 불경기가 찾아왔고, 당시 달러화가 평가 절하되어 각국의 항공사들은 신뢰성 있는 737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음. 최종적으로 다쏘 머큐리는 유일한 고객 에어인터의 주문량 10대 + 시제기 2대를 합해 총 12대만 생산된 체 생산을 중단하게 됨. 사실상의 사망 선고가 내려진 셈. 에어인터가 주문한 머큐리들은 1995년까지 하늘을 날다가 퇴역하게 됨. 이렇게 커다란 실패를 안겨준 머큐리는 다쏘의 영원한 흑역사로 남을 줄 알았으나, 오히려 커다란 결실을 맞이하게 됨. 머큐리의 실패 이후 프랑스도 유럽연합의 항공기 제작사인 에어버스와 함께하게 되면서 다쏘 머큐리를 기반으로 새로운 협동체 여객기를 설계하게 되는데... 이는 737 시리즈의 유일한 라이벌로 불리게 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 A320 시리즈임. 어찌보면 다쏘의 노력이 완전히 헛되게 된 것은 아니게 된 셈이다. 지구촌갤러리 코마츠타미나루님 펌
MiG-29를 타본 최초의 서방 파일럿
1980년대 후반, 소련은 글라스노스트로 대표되는 개혁개방 정책을 실행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베일에 쌓여있던 자신들의 무기를 세계에 홍보하여 판매할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제2 세계에 비해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서구권의 무기 박람회에 자신들의 제품을 출품하고자 했다. 소련은 특히나 자신들의 항공기를 수출하는 것에 큰 열정을 보였다. 1988년 영국 판버러(Farnborough) 에어쇼에서 데뷔한 MiG-29는 베일에 쌓인 스펙으로 인해 서구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소련은 이듬해인 1989년, 미국에 더 가까운 캐나다 애보츠포드(Abbotsford)에서 열리는 국제 에어쇼에서 MiG-29를 홍보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소련 전투기들은 대서양이나 베링해협 둘중 한곳을 건너야 했다. 소련 관리들은 미국과 협상하여 2대의 MiG-29가 알래스카 상공을 통과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들은 알래스카 엘멘도르프 미공군 기지에서 재급유를 한 뒤 캐나다까지 오기로 했다. 소련은 캐나다로 갈 MiG-29로 1인승 Fulcrum-A 1대와 복좌기인 Fulcrum-B(MiG-29UB) 1대를 선택했다. 소련의 최신예 전투기가 영공에 들어온다는 소식에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매우 긴장했다. 그들은 바로 F-15 2대를 출격시켜 러시아인들을 맞이했다. 이들은 엘멘도르프 공군기지에 착륙하여 재급유를 마친 MiG-29들을 캐나다 영공까지 안내했다. NORAD는 F-15 파일럿들에게 두가지 주의사항을 주었다. 1. 1,000피트 이상 접근하지 말 것. 2. 러시아 파일럿들과 통신을 시도하지 말 것. MiG-29들의 관제는 민간항공 측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NORAD 측은 이미 E-3 AWACS를 띄워서 러시아 전투기들을 속속들이 감시하고 있었다. 한편,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위치한 코목스(Comox) 공군기지의 제441 방공 비행대대(441 Air Defence Squadron)의 지휘관 밥 웨이드(Bob Wade) 소령은 러시아인들이 올 거라는 브리핑을 받고선 출격대기에 들어갔다. F-104 스타파이터를 시작으로 23년 동안 왕립 캐나다 공군(RCAF)에서 복무한 그는 CF-18 호넷 파일럿이었다. 웨이드의 편대는 총 4대가 있었으며 평상시에는 2대가 출격대기, 2대가 정비창에 입고되어 있었다. 하지만 웨이드는 그날만큼은 4대를 모두 출격대기 시켜놨다. 아무래도 러시아인들이 온다니까 긴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4대의 호넷이 모두 이륙하여 37,000피트 상공에서 마하 0.9의 속도로 MiG-29들과 마주쳤다. 그들을 인도하던 F-15 2대는 날개를 흔들어 보이더니 이윽고 서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MiG-29를 목도한 웨이드와 그의 크루들은 그것을 자세히 관찰했다. 호넷보다는 조금 작지만 매우 흡사하게 생긴 실루엣, 그리고 붉은 별이 눈에 들어왔다. 웨이드는 크루들에게 카메라를 장비할 것을 명령했고 이 역사적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하지만 NORAD의 조치 때문에 러시아인들과는 전혀 대화할 수 없었다. 캐나다인들과 러시아인들은 그저 묵묵히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20분 쯤 그렇게 가고 있었는데, 웨이드는 러시아인들의 진행경로가 약 40도 정도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목적지는 커녕 연료부족으로 벤쿠버 앞바다에 꼬라박을 판이었다. 그는 자신들을 관제하고 있던 E-3에 무전을 넣었다. "저 친구들 지금 관제 받고 있는 건가?" "아니, 우리들은 권한이 없어. 민항쪽에서 담당한다고만 들었지." E-3 쪽에서는 바로 벤쿠버 항공관제센터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우린 그런 일정 들은 적이 없다'는 기가 막힌 대답이 돌아왔다. 러시아인들은 수시간 째 무선침묵 상태로 날고 있었던 것이다. 웨이드는 장기로 보이는 Fulcrum-B에게 다가가서 수신호를 했다. 그 러시아 파일럿은 웨이드를 보자마자 역시 '격렬하게' 수신호를 해댔다. 하지만 그건 웨이드가 모르는 수신호였다. 결국 양측은 바디랭귀지 끝에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방향을 모르겠다, 연료는 30분' 웨이드는 즉각 경로를 수정해줬고 MiG-29 두대는 아슬아슬한 상태로 애보츠포드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웨이드는 MiG-29들이 손님으로 참석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양 사이드에 호넷들을 배치하여 마치 개선식을 하듯 내려왔다. 코목스 기지로 돌아온 웨이드는 곧장 사령관실로 불려갔다. 누군가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수화기를 받은 웨이드는 아주 강한 러시아 억양의 영어를 들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아닌 주 캐나다 소련대사였다. 웨이드는 도대체 내 신상을 어떻게 안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소련대사는 자국 파일럿들을 도와준 웨이드의 행동에 감사를 표하며 그에게 에어쇼의 게스트로 참석하여 MiG-29를 평가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통화를 끝내자 마자 웨이드는 부하들과 함께 수송기를 타고 애보츠포드로 날아갔다. 하지만 다음날 애보츠포드에 도착한 웨이드는 불쾌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프레스데이에 MiG-29가 전시된 구역으로 들어가려 했던 웨이드는 소련 측 경비병력에게 제지 당했다. 그는 자신들이 이 비행기를 데리고 온 파일럿들이라고 설명했지만 소련군들은 무뚝뚝하게 '저리 가시오'라고만 반복했다. 결국 웨이드 일행은 MiG-29를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의외로 다른 쪽에서 구원이 찾아왔다. 캐나다 국방부가 직접 소련 측에 요청하여 웨이드가 MiG-29를 시승 해볼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 것이다. 에어쇼 마지막 날 바로 전 날, 웨이드는 당시 캐나다 국방부 차관이었던 메리 콜린스(Mary Collins)에게 호출되었다. 그녀는 웨이드에게 반드시 미그기에 탑승하여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하고 오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이 시승을 위해 자신의 경력을 걸었다고도 덧붙였다. "명심하세요, 소령. 이 일을 망쳤다간 우리 둘 다 모가집니다." 소련 측이 입장을 바꾼 이유중 하나는 웨이드가 F-18 호넷 파일럿이었고 MiG-29와 가장 오랫동안 편대비행을 한 유일한 서방측 파일럿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좋은 평가를 내려준다면 MiG-29의 세계시장 판촉에도 매우 큰 홍보효과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 다음날, 웨이드는 복좌기인 Fulcrum-B 후방 조종석에 올랐다. 그는 본래 호넷을 탈때 입던 G슈트와 헬멧을 가져가려 했지만 MiG-29는 너무나도 비좁아서 그것들을 착용한 상태로 탈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다른 러시아인 파일럿의 G슈트와 소련제 헬멧을 빌려야 했다. 그를 태울 파일럿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비행 전 브리핑은 단 10분간 이뤄졌다. 그것도 전부 원론적인 이야기 뿐이었다. 소련 측은 웨이드에게 최소한 24시간 정도 엠바고를 지켜줄 것을 요구했다. 솔직히 외관과 내관은 소모전 개념에 충실한 소련제 비행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리벳과 대갈못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었고 타이어 고무는 상태가 조악했다. 그래도 GSh-30-1 30mm 기관포는 호넷의 20mm 발칸보다 훨씬 강력해보였다. 조종석에 앉은 웨이드는 수많은 키릴문자의 향연에 당황했다. 야드 파운드법에 익숙한 그에게 미터법은 저세상 단위였다. 러시아인들도 보안을 위해 웨이드에게 최소한의 것만을 보여주라는 명령을 받은 듯 했다. 그를 태운 파일럿은 클리모프 RD-33 터보팬을 시동거는 과정을 아주 빠르게 단 한번만 보여주었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켜지도 않았고 심지어 연료 적재량과 이륙속도 같은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웨이드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웨이드는 베테랑 파일럿으로서의 감에 의존하여 MiG-29를 느껴보았다. 이륙 시 추진력은 호넷보다 좋은 것 같았다. 솔직히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초당 720도 회전이 가능한 호넷처럼 MiG-29도 비슷한 수준의 롤링이 가능했다. 웨이드는 러시아 파일럿이 일부러 기체성능을 전부 보여주지 않을거라는 전제를 깔아놨지만 그 정도 기동으로도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웨이드는 고도계나 G미터를 찾아보려 했지만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다만 자신에게 대충 7G 정도가 가해진다고 추정했다. 애프터버너의 힘도 기체를 조향하는데 충분한 파워였다. 러시아 파일럿은 웨이드를 놀라게 하려는 목적으로 테일 슬라이드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곧 안정적으로 기수를 회복했다. 그 기동을 통해 웨이드는 MiG-29가 선공 회피 후 저속 도그파이팅 상황에서는 호넷과 대등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플랩과 꼬리날개의 반응도 꽤 날렵했고 이 정도면 자신도 충분히 신뢰하고 조종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그렇게 15분의 비행이 끝나고, 웨이드는 상당히 감명받은 상태로 지상에 내려왔다. 그가 느낀 MiG-29는 조잡하지만 순수한 힘으로 단점을 극복해내는 전투기였다. 소련 대사관 측은 비행 직후 열린 파티에 웨이드를 초대했다. 그들은 보드카를 엄청나게 마셔댔다. 웨이드에게도 강권해서 어쩔 수 없이 마셨다. 아마도 바로 서방 기자들과 인터뷰하지 못하도록 하려던 것 같았다. 웨이드는 파티에서 필름이 끊겨서 업혀 나왔으나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며칠 후, 캐나다 국방부는 웨이드를 급히 오타와(국방부 본청 소재지)로 불러들였다. 그날 웨이드는 국방부장관, 참모총장, 그리고 정체불명의 검은 양복의 미국인 2명이 참관하는 가운데 자신이 경험한 MiG-29의 모든 것을 20분 동안 브리핑했다. 이후 약 1년간 웨이드는 나토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이 브리핑을 반복해서 강의했다. 하지만 MiG-29에 대한 서구권의 우려는 단 3개월만에 종식돼어버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난 것이었다. 수많은 국가들에게서 국방비 지출이 크게 감소했고 웨이드가 복무하던 캐나다 공군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타던 호넷은 절반가량이 퇴역하였고 웨이드 역시 이듬해 전역하여 민항기 조종사로 취업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 대한한공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 훗날 웨이드는 1990년대 중반 쯤에 '랭글리'로부터 연락을 받아 러시아 공군 측이 판버러 에어쇼에 그를 초빙하여 Su-30를 시승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소식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캔슬되었고 그는 자신 인생에서 최고로 후회스러운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군사갤러리 ㅇㅇ님 펌
미국의 상징 미식축구의 팀별 실제 유니폼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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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대령(Colonel)은 군사 계급이지만 동시에 몇몇 주에서 명망 있는 인사들에게 주는 명예로운 칭호이기도 하다 기원이 무려 1651년 미국 버지니아 회사 시절까지 올라가더라 이 명예 대령 호칭을 받은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라면 물론 KFC를 창업한 할랜드 샌더스가 있다 유명한 하얀 복장과 염소수염은 전형적인 남부의 넉살 좋은 신사 대령님 이미지를 구현한 거였고 요식업계에서 가장 강렬한 하나의 상징이 되었으며 켄터키 주에선 명예 대령 칭호를 수여했다 16세 때 입대했지만 4개월만에 전역했던 사람이 크게 성공했지 워낙 커널 샌더스라는 호칭이 유명해서 본명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샌더스 못지 않게 유명한 명예 대령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매니저 톰 파커(Tom Parker) 이 사람 이력도 아주 특이한데  본명은 안드레아스 코르넬리스 판카위크라는  네덜란드 브레다 태생의 네덜란드인이었지만 미국에선 웨스트 버지니아 출생이라 속이며 살았고 미국 시민권을 얻은 적도 없었다 엘비스의 매니저가 된 이후엔 뛰어난 수완을 보여 주며 그를 엄청난 스타로 만들었지만 말년엔 도박 때문에 재산을 거의 잃고 쓸쓸하게 살다 갔다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되는 지미 데이비스의 선거운동에 참여해 열심히 활동했고 그 보답으로 루이지애나 주 명예 대령 호칭을 받기도 했다 재미있는 건 이 쪽도 군대에 입대한 적이 있다 제 64해안포병연대(64th Coast Artillery)소속으로 복무했지만 군 생활이 지겨웠는지 탈영했다가 체포되었고 정신병을 이유로 불명예 전역당했다 그런 사람도 대령이라 불리는 게 기묘하다 미국 대중매체에서 스스로를 대령이라 칭하는 매니저가 나오면 다 저 톰 파커의 패러디라고 보면 된다 군대 없는 레고 세계관에 준장이 왜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ㄷㄷ 군사갤러리 javelin님 펌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지진 대처 체계가 잡힌 나라
놀랍게도 대지진이랑은 별 상관 없어보이는 포르투갈임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도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이 맞물리는 곳이라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임 각설하고 1755년 11월 1일 9시 40분경 포르투갈의 수도였던 리스본에 세계 역사를 뒤바꾼 지진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1755 리스본 대지진 지진의 진도만 8.5~9 정도로 추측되며  포르투갈은 물론 인접한 에스파냐, 지중해 건너 모로코까지 엄청난 피해를 줬고 멀리는 러시아와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까지도 지진이 감지되고 해일이 일었다고 함 지진이 발생한 11월 1일은 만성절로 모든 성인의 대축날이었기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성당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지진이 발생하면서 성당 건물이 무너져 내려 수많은 사람이 매몰되었고, 매몰된 상태에서 생존한 사람들도 곧 성당 내부를 밝힐때 쓰던 촛불로 인한 화재로 사망했음.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붕괴와 화재로부터 안전해보이는 탁 트인 해안가로 도망쳤지만 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바다로 쓸려가며 최소 3만명에서 많게는 10만명의 인구가 이 지진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함 당시 리스본의 인구가 20만명이었던걸 감안하면 못해도 4분의 1, 많게는 절반의 인구가 하루아침에 사망하게 되버린 것 때문에 목조 건물이 많았던 리스본은 그대로 불타고 쓸려나가서 도시의 85%가 완전히 없어져버렸고  석조건물의 일부만이 남았는데 사진의 카르모 수도원이 그 예 지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없어지고 가장 튼튼한 뼈대 일부만 남아 지진의 참혹함을 알려주고 있음 하지만 거대한 본진이 발생한 이후에도 거대한 여진이 몇번이고 쓰나미를 이끌고 들이닥쳤고 5일 밤낮으로 화재가 발생해  도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리스본은 폐허도 아닌 잿가루만 남은 잿더미가 되버림 근데 이 지진이 왜 포르투갈 뿐만 아닌 세계의 역사를 바꿨냐 말했듯이 만성절에 발생한 사고기 때문... 저땐 아직 기독교적 사상이 유럽 전체에 널리 퍼져있어서 하느님께서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을 굽어살핀다... 신앙심이 깊을 수록 행복한 삶을 산다가 가톨릭 국가의 기본적인 사상이었는데 유럽에서도 가장 신앙심이 깊다고 알려진 포르투갈에서도 가장 신앙심이 깊은 도시인 리스본에서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미사를 드리러 온 가톨릭 교도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점 때문에 가톨릭 국가 뿐만 아니라 전 기독교 국가가 크게 충격을 받고 염세주의로 돌아서는 계기가 됨 재밌게도 언덕에 위치한 알파마 지구는 피해가 적었는데, 바위 언덕 위에 위치해있어 지진으로부터 안전했고 고지대였기 때문에 쓰나미로도 안전했을뿐더러 당시 알파마 지구는 집창촌과 빈민가였기에 높은 건물이 없어 매몰과 화재로부터도 안전했기 때문. 근데 역설적으로 가장 타락했다고 여겨지는 매춘부와 잡배들의 피해가 가장 적었기 때문에 교황도 이 사건에 대해서 뭐라 말하지 못했고, 리스본 대지진은 계몽주의가 폭발적으로 퍼지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됨 어쨌거나 재해는 발생헀고 이제 그 뒷수습을 해야하는데  다행히 왕이었던 주제 1세와 왕가, 귀족들은 공주 한명의 부탁으로 해돋이를 보러 리스본을 떠나있어 안전했는데, 지진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온 주제 1세의 앞에 펼쳐진건 불타는 잿더미가 된 리스본과 각종 범죄가 판치는 생지옥 그 자체였음 이 상황에서 주제 1세는 신의 한 수를 두었는데 가장 신뢰하는 신하이자 수상이었던 폼발 후작에게 리스본 사태에 대한 모든 전권을 넘긴 것 폼발 후작은 전권을 이양받음과 동시에 범죄를 즉결 처분하고 지방의 군인들을 불러들여 치안을 유지시켰고 대주교의 허가를 받아내 시신들을 수습하고 리스본 바깥으로 처리해 전염병의 창궐을 막아냄 그리고 이 상황에서 귀족들은 리스본의 시민들에게 식사와 깨끗한 물, 잠자리를 제공해주어 동요를 진정시키고 살아남은 시민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리스본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왔음 그리고 지진이 발생한지 한달이 지났을때 왕가는 리스본을 재건할때 여러가지 방안 중 도시의 폐허를 싹 치우고 완전히 새로 짓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이것도 신의 한 수로 새로 짓는 리스본은 도로를 넓게 깔아서 화재가 크게 번지는 것을 막았고  4층 이상 건물 짓는것을 금지함과 동시에 가이올라라는 지진에 안전한 새로운 공법을 도입해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는것을 지연시켜 시민들이 빨리 대피할 수 있게끔 했음. 그리고 다음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지진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도 실시했는데 이게 지진에 대한 세계 최초의 객관적 설문 조사였다고함 1700년대에 일어난 일이지만 굉장히 현대적으로 대책을 세워서 일을 처리했던 것 근데 안타까운건 당시 국왕이었던 주제 1세는 이 지진에 대한 공포심과 국민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폐쇄공포증에 걸려 아주다 언덕에 천막과 정자를 세우고 그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고함 지금 리스본에 있는 궁전이 재건된건 주제 1세의 딸이자 다음 국왕이었던 마리아 1세때의 일 주제 1세가 평생을 지냈던 천막이 있던 자리 위에 궁궐을 지어서 이름도 아주다 궁전임
[맥주]: 10년 가까이 유럽 최정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맥주 - Zombination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뭔지 모를 이유로 1주일 가까이 빙글 접속이 안되었다가 인제야 다시 접속하게 되어서 후다닥 카드를 쓰고 있네요 ㅎㅎㅎ (일해라 빙글!!) 오늘은 아주 특별한 맥주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번에는 평소처럼 하나의 맥주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시리즈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2014년에 출시하여 맥주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맥주이자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럽 최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벨기에 맥주 Zombination 맥주입니다. Zombination 맥주는 무려 유럽 9개 양조장이 협업하여 만들어진 특별한 맥주인데요. 벨기에 양조장 De Struise Brouwers 중심으로 벨기에- Brouwerij Alvinne, 영국의 Magic Rock, Beavertown, Brodies 양조장, 네덜란드의 Kees Bubberman, De Molen. 노르웨이의 Haandbryggeriet 그리고 스폐인의 Naparbier가 합심해 만든 맥주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맥주를 소개 시켜드렸지만 이렇게 많은 양조장이 협업하여 만든 술 자체를 찾는 것도 참 쉽지 않을 거 같네요. 해당 맥주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스폐인 바틀샵 사장 가브리엘 Gabriel Bocanegra 의해서 만들어졌는데요. 원래 그는 스폐인에서 맥주 글을 쓰는 블로거였지만, 유럽에서 바틀샵을 운영하면서 유럽 전역 맥주 양조사와 넓은 인맥을 쌓았고 그의 바틀샵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벤트 성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양조사들을 초대해서 만든 맥주가 바로 Zombination입니다. 해당 맥주 시리즈는 스트루이스의 Black Damnation 맥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만든 특별한 맥주이기도 합니다. 보통 사용하기 드문 피트 위스키 배럴을 사용하였고 이 외에도 버번 위스키, 와인 배럴을 사용하여 총 6종을 출시합니다. 모든 맥주들은 무려 17도 알코올 도수를 가지고 있지만 그 도수와는 별개로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게 다채로우면서도 강렬한 캐릭터도 가지고 있어 현재까지도 수많은 맥주 애호가로부터 극찬을 받는 맥주 시리즈 입니다. 아래 제가 리뷰한 글도 있는데 조만간 다른 시리즈 리뷰도 올려야 겠네요. ㅎㅎ https://www.vingle.net/posts/4745914?q=zombination https://www.vingle.net/posts/4653635?q=zombination https://www.vingle.net/posts/4706818?q=zombination 모든 술에도 그렇듯이 항상 정상급 자리를 지키는 술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긴 시간 동안 유지하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랜드는 매 순간 빠르게 변하하고 새로운 맥주는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러한 시간 속에서도 Zombination 맥주는 여전히 정상급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많으로도 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고 운이 좋게도 이 맥주는 여전히 저에게 최고의 임페리얼 스타우트 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참 시간이 지나면서 술의 모습도 변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맥주가 저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과 감동은 여전히 변함 없길 바라는 욕심도 생기는 맥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에 더 재밌는 맥주 이야기와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마음 속 1등 술이 있나요?
시각장애인 안내견 학교에 입학하고 싶은 댕댕.gif
지나가다 시각장애인 안내견 양성 학교를 보게된 흰댕댕 뒤에 친구들 격하게 등교중~ 하지만 입학하려면 적정 키가 되야함 ㅠㅠ(에버랜드도 아니궁..) 귀 쫑긋! 해서 어케 통과통과 열심히 수업도 듣고 실기도 보는데 영 쉽지가 않음 ㅠㅠ 친구들은 배식도 잘 누르는데 흰댕댕이는 밥그릇이 와르르맨션 밥그릇은 와르르맨션ing... 수업 들으면서 네! 하고 손들기도 힘들고 실습도 잘 되지 않는다..ㅠㅠ 선배 안내견들 명예의 전당... 자기와 같은 흰댕댕선배님을 보고 용기를 얻는 댕댕 이제 밥그릇 와르르멘션 아님 존나 밥도 잘 담고 네! 수업도 잘 듣고 실습도 잘해서 칭찬 받음 ㅠㅠ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최종 자격 시험날! 울 흰 댕댕쓰가 첫번째로 시험을 보는데...ㅠㅠㅠ 시험을 잘 못봤슴다.... 너 불합격! 가! 집에 가!! 나머지 친구들은 다 합격해서 구슬프게 눈물을 흘리는 흰 댕댕이.... 근데 뒤에서 먼 소리가 남 시각장애인분이 걸어가시는데 앞에 공사장 존나 난장판!!! 흰댕댕이 존나 달려가는데!!!!!!!!!!!!!!!!!!!!!!! 흰댕댕이는 시각장애인분 핸드백을 하네스처럼 몸에 끼우고 안내를 해드립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그걸 본 학교 선생님과 칭구들 댕댕~ 저기 샘들이랑 부르네 가봐~ 학교 동상에 있는 거 떼서 넌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자격을 갖췄어! 인정을 해줌 우리의 개들은 시력을 잃은 사람들과 장애를 가진 퇴역 군인들을 위해 매일 그 날을 구한다. 영상이 더 감동적이니까 영상도 보길 추천 ㅠㅠ
쓸데없이 스케일 큰 고전소설.jpg
《삼한습유》 조선 순조 때 쓰여졌고, 무려 중국에도 수출됐던 소설임 고전소설 치고는 의외로 내용이 존나 흥미진진함 때는 삼국시대, 주인공은 신라 여자 '향랑' 얘는 남주 '효렴'. 여주랑 연인사이임 근데 부모가 반대하는 바람에 향랑은 마음에도 없는 남자랑 결혼하게됨ㅠ 남편은 존나 못돼쳐먹었음ㅡㅡ 일단 첫날밤에는 이 새끼가 술쳐마시느라 둘이 자지도못했고, 그 다음날에는 이 새끼가 여종이랑 바람핌 그러던 어느날 남편 : 야 오늘 너 좀 예뻐보인다?ㅋ 향랑 : 또 술을 드셨군요. 낮부터 이러시는건 예의에 맞지않습니다. 남편 : 존나 깐깐하게구네ㅋㅋㅋㅋ 솔직히 너 나랑 결혼하기전에 남자있었지? 야 너 우리집에서 나가ㅡㅡ 그렇게 남편집에서 쫓겨나게된 향랑.. 친정집으로 갔으나 부모님도 얼마안가 돌아가신다 외숙모 : 앞으로 너 혼자 살 순 없으니 다른 남자랑 재혼이라도 하는게 어떻겠니? 향랑 : (효렴이 아니면 싫은데...ㅠ 다른 남자랑 또 결혼할 바에는 걍 죽을래...) 진짜로 자살함 그리고 얼마 후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남편 : (이번 생은 망했군...) 그때 하늘이 번쩍거리더니 향랑이 등장한다 향랑(귀신) : 저는 저 사람의 죽은 부인입니다. 제발 저 사람을 죽이지 말아주세요. 존나 개답답;; 착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아무튼 향랑의 도움으로 남편새끼는 목숨을 건진다 남편 : 부인, 내가 미안했소 당신의 사당을 지어 평생 당신에게 사죄하며 살겠소. 향랑 : 살아서 부부의 연이 끊어졌으니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독자들은 답답터지지만 이걸로 마음이 후련해진 향랑은 이제 효렴이랑 결혼할 생각을 하게됨. 근데 다들 알다시피 향랑은 이미 죽어버렸음 과연 향랑은 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후토부인(여신) : 여긴 무슨 일로? 향랑 : 님 여신이시죠? 저 다시 환생해서 효렴씨랑 잘 살아보고싶어요 여신님의 힘으로 좀 어떻게 안될까요?? 후토부인 : 음 아쉽지만 그건 나 혼자 결정할 수있는 일이 아니라서ㅎ 향랑 : 제발요ㅠ 저도 한번정도는 행복하게 잘 살아보고싶어요 후토부인 : 뭐 니가 그렇게 부탁하니까 위에 일단 건의해보긴 하겠음ㅎ ~그렇게 시작된 천상회의~ 옥황상제 : 니들은 어떻게 생각해? 환생 시켜줘야한다고 생각함? 공자 : ㅇㅇ애가 안쓰럽잖어 옥황상제 : ㅇㅋㅇㅋ 환생시켜주겠음 그렇게 인간으로 환생하게 된 향랑.... 효렴 : (....갓난애기인거 실화야?) 효렴의 걱정과는 달리, 이 아기의 성장속도는 엄청나서 7일만에 성인이 되었다. 그렇게 향랑과 효렴은 혼인을 하게되는데 이 혼사의 주선자는 김유신 장군(...)이었다. 아니 이분은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시는지 한편 그 시각 마계에서는... 마귀 : 마왕님;; 천상계에서 웬 여자애 하나를 지들 마음대로 환생시켰다는데여;;; 마왕 : 미친거아냐? 그걸 왜 지들끼리만 결정해? 전쟁이다!!!! 그렇게 시작된 천상계vs마계 전쟁ㄷㄷ 여기서 갑자기 소설의 장르가 바뀜ㅋㅋㅋㅋㅋㅋㅋ 여주 한명 때문에 이게 뭔 일이래ㅋㅋㅋㅋㅋ 향랑 : 헐...일이 너무 커졌네요.. 그냥 저 환생 안하고 저승으로 가야할 것같은데... 후토부인 : ㄴㄴ그냥 있어ㅋㅋㅋ액땜 치른다 생각해 이 때 천상계 전사들 김유신 항우.... 여포..... 제갈량...... 마왕 : 시발 치트키 그만써 개새기들아ㅠㅠㅠ 마모(마왕 부인) : 여보!!! 내가 도와줄게!!!! 필살기!!!!!! 치마 공격!!!!! 갑자기 그녀의 치마가 거대해지더니 천만명의 천상계 군인들을 덮었다 천상계 군인들은 치마폭 속에서 여색에 빠져 정신 못차리게되고.. 석가여래 : 떼잉쯧.... 내 저것들을 저렇게 가르치진않았건만.. 세상이 말세로구나 그때 등장한 석가여래 석가여래 : 무욕의 삶이 진리이니라. 마왕군 : 으윽...너무 성스러워서 공격할수가 없군 석가여래 덕분에 다시 전세가 천상계쪽으로 돌아간다 마왕 : ㅅㅂ 이러다 지겠는데... 지원군이 더 필요해.... 그렇게 마왕은 다른 마왕에게 찾아간다 나는 저 새끼가 제일 쎄서 마왕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마왕이 여러 명이었음.... 이 때 좀 실망함 여러 마왕들 중에서 제일 쎈 애는 찰마공주였음 마왕 : 찰마공주여, 당신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오.... 찰마공주 : 존나 쓸데없는걸로 전쟁하네 그깟 여자애 하나가 행복해지는게 그리 꼴보기싫디? 찰마공주는 그딴 쓸데없는 전쟁에 참가안한다며 거절해버린다 존나 쎈데 쿨하기까지한 찰마공주; 세계관 최종보스인 찰마공주가 안도와주면서 결국 전쟁은 천상계의 승리로 끝나게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모든건 여주 하나 때문에 생긴 일이다. 신들의 전쟁은 끝났지만 인간들의 전쟁은 계속됐는데, 신라군은 백제군을 처치하지 못해서 곤란이었다. 왜냐하면 백제는 적룡이 지키고있었기 때문임 신라군 : 헐 어쩌죠?ㅠ 향랑 : 제가 방법 가르쳐드림^^ 백마를 미끼로 잡아서 죽이시면 됩니다^^ 이미 한번 죽은 짬밥도 있는 향랑은 세상 모든 이치를 통달해버렸다. 신라군 : 헐 이게되네?? 향랑의 말대로했더니 진짜 적룡이 잡혔음 적룡도 잡고 전쟁에서도 이겨서 기분좋았던 군인들은 적룡을 구워 먹어버림 근데 알고보니 적룡은 독이 있는 용이었음 딱봐도 빨간색인데 독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했나 신라군 : 용고기 먹은 애들 다 맛갔는데 어떡함?ㅠ 향랑 : 어이쿠 그걸 왜 드셨대;; 지렁이즙 드시면 다시 괜찮아집니다. 그렇게 군인들은 다시 살아났고 그 힘으로 삼국통일을 이뤄냈다고한다 ~해피엔딩~ 참고로 향랑 효렴 부부는 잘 살다가 죽어서 하늘로 승천함
기록덕후들의 나라 조선의 기록 디테일 수준.jpg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현릉원에 행차한 8일간의 기록을 다룬 의궤 한권은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일간의 주요 행사 모습 각종 물품의 설계도에 이르기까지 행차를 위해 혜경궁의 가마를 새로 제작했는데 가마를 장식한 문양까지 다 기록 총 112장의 그림으로 구성 나머지 7권은 행사의 준비과정, 내용, 사후처리까지 다 기록 심지어 행사에 참여한 기생의 이름도 있고 행사에 입었던 복식이 그대로 기록 (의상, 장신구, 속옷까지) 행사에 사용된 그릇의 종류와 쓰임새도 기록 참석자들의 역할과 직책에 따라 출장비를 받았는데 그 내역까지 다 있음 역시 기록덕들의 나라ㄷㄷㄷㄷㄷ 행사 준비 과정이 날짜별로 기록 참여 부서와 담당자 기록 각종 예산은 물론 물품 제작에 참여한 장인의 이름, 일한 날짜까지 기록 정조가 혜경궁 홍씨를 위해 만든 가마는 내부부터 외향까지 모든게 다 기록되어 있어서 언제든 복원 가능함 실제 그림에 있는 인원의 수ㄷㄷㄷ 혜경궁이 수원으로 가면서 먹었던 음식의 종류, 재료 어디서 먹었는지도 기록 교수님들도 감탄에 감탄 음식 재료의 시세까지 싸그리 기록ㄷㄷㄷㄷㄷ 남은 비용을 어디에 썼는지 사후 기록도 다 있구요 언제 인쇄했는지 기록까지 다 있음 정말 기록의 나라 기록물 다운 클라스ㅋㅋㅋㅋㅋ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가 널리 많이 보라고 목판본으로 만들어서 흑백이지만 보통 다른 의궤들은 궁궐에 보관하면서 보는 것이라 올 컬러에 비단 커버b 참고로 이 다큐는 의궤, 8일간의 축제 3부작임을 알려드립니다
No 짤줍 but 비상
저 영어 킹 잘하쥬 안니 퇴근하구 신나서 짤 올리려구 빙글 창을 여는데 읭 로그인이 풀려있는 거예영 아무리해도 로그인이 되지 않구 다행히 앱은 돼서 이르케 쓰고 있는디 암튼 빙글에 웨않되여 하고 메일을 보냈더니 이런 답장이 왔서엽 저의 긴박한 메일과 공식 메일임에도 눈물을 보이는 빙글의 긴박함 서버 문제가 생겼구 생각보다 큰 문제라 주말에도 열심히 봐야 한다는 대답… 그리고 절!대! 앱 로그아웃 하지 말라는데여 그러면 다시는 접속할 수 없으니까 모두 조심하떼여 혹시 몰라서 알립니다영 짤은 못 올려여 짤이 다 콤푸타에 이쑤니까요ㅜㅜㅜㅠ 오랜만에 쓰려니까 앱으로 긴 글 쓰기 넘모 힘드넹 모두 로그인 절대 지키시구 빙글 돌아올때까지 화이팅구 라구 썼지만 카드 게시도 안돼서 못올렸었는데 이제 되네여 ㅋㅋㅋㅋㅋㅋ 빙글 열심히 야근하셨나봐영ㅜ 이제 로그아웃 로그인도 잘 되네영 안될까봐 쫄았네 휴 그치만 전 이미 밖이라 짤을 올릴 수가 없으니까 내일 오랜만에 짤줍 갑니동 예고예고!!ㅋㅋ 빙글 죽지말고 오래오래 살아줘!!! 아 그래도 짤 없는 건 너무 서운하니까 ㅋㅋㅋ 제보받은 짤 하나 올리고 갈게영 이거 넘모 내마음이잖앙 물론 전 우유도 액티비아도 프로바이오틱스도 없지만 움직일 생각도 없으니까 어차피 또이또이 ㅋㅋㅋㅋ
여인천하 정난정의 기세에 따른 옷차림 변화 (드라마 내용 有)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주인공이었던 정난정의 옷차림을 어린아이 시절부터 외명부 최고의 자리, 그리고 죽을 때 모습까지 정리해보았어 정난정이 문정왕후와 함께 신분의 굴레를 깨고 기세등등해지면서 옷이나 가체(加髢)가 얼마나 화려해지는지 보자! 먼저 어린 시절 모습이야 옷도 비단 옷이 아닌 일반 서민들의 옷이야 정난정은 서녀이자 천출이었으므로 처음에는 이런 복색을 하고 나와 성장한 후에도 결혼 전에는 이렇게 소박한 서민들의 복장으로 나와 정난정이 잠깐 기생이 되겠다고 기방에서 일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때는 기생답게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어 기방에 있긴 했지만 정식 기녀가 되기 전이라서 머리는 댕기머리야 ㅎㅎ 이때부터는 드디어 정난정이 문정왕후와 결탁하게 돼 문정왕후에게 당당히 당의를 하사 받고 궐을 드나들게 되지 무늬가 있거나 하지는 않지만 비단옷에다가 색깔도 화려하고 댕기도 넘 이뻐 ㅎㅎ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입궐 시에만 저런 비단 당의를 입고 일상 생활에서는 다시 소박하게 입고 생활해 이 때는 정난정과 윤원형의 혼례날이야 첩실이지만 문정왕후의 허락으로 혼례식까지 치름!! 첫날밤에 머리 내리기 전의 모습인데 가체 크기 좀 봐 ㅋㅋㅋㅋㄷㄷㄷ 이건 신방 차리고 신혼 생활 때의 모습이야 새색시답게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었어 이때부터는 비록 후실이지만 명색이 중전 오라비의 아내이므로 평상복도 비단옷으로 차려입어 ㅎㅎ 문정왕후 오빠인 윤원형한테 엄청난 사랑을 받고 문정왕후에게도 신임을 얻으면서 기세가 점점 올라가는 시점이야 저 빨간 치마 풍성하게 동그란거 너무 이쁨 ㅠㅠ 결혼하고 3일 뒤에 처음으로 두 사람이 문정왕후를 찾아간 날인데 확실히 결혼 전에 처녀 적 입었던 당의보다 훨씬 화려해졌어 가체에는 작지만 소소한 장신구를 꽂았어 난 개인적으로 역대 우리나라 조선 사극 중 여인천하 가체가 젤 이쁨!! 이건 당의가 아닌 평상시에 입는 한복인데 이 복색도 엄청 화려해졌어!! 첫번째 사진에 보면 윤원형 정실부인(이혜숙 배우, 사진 왼쪽 편)도 같이 있는데 정실보다 훨씬 화려한 옷을 입었지? 이게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후실이 정실보다 화려한 치장이 가능했는진 모르겠지만 드라마 상에서는 아마도 정난정의 높아지는 기세와 화려한 외모를 한복 차림이나 장신구 등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 (드라마 상에서 정난정은 지나가던 임금도 띠용할 정도로 절대 미색으로 나옴) 이 당의도 너무 예뻐...... 이 당의는 자수가 없어서 자칫 소소해보일 수 있긴 한데 가체 장신구 보면 크기가 조금 커졌어 ㅋㅋㅋ 비단 때깔도 아주 윤기가 좌르르르르 평상복도 역시 정난정과 문정왕후의 힘이 커질수록 점점 화려해지지 소매와 옷깃을 보면 무늬도 엄청 화려하고 노리개도 보면 짱 큼!! 캡쳐가 잘 안 돼서 노리게가 잘 안보임 ㅠㅠ 요거는 아마 드라마 150부 동안 입고 나온 평상복 중에 가장 화려한 저고리일 듯!! 짱 화려한데 근데 또 강수연 배우와 엄청 잘 어울려ㅠㅠ 참고로 저 장면에서 저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대감들 주루룩 앉아있는 방에 탁 들어가서 겁나 큰소리로 호통 빵빵 치고 나옴!! 겨울이니까 밖에 돌아다닐 때는 저렇게 손도 넣고 다니구 요건 그냥 슥 보면 읭 그냥 소박하네;; 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누벼져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 부내 난다 부내 나 분홍색 저고리 비단 때깔 좀 봐..... 이때는 정난정의 기세가 오르다 못해 하늘을 찌를 때야!! 문정왕후와 손을 잡고 조정을 호령하던 대감들 하나씩 다 찍어내고 난리남 가체 장식 보면 예전보다 더 화려해지고 두개로 늘어남 거의 이 정도면 드라마에서 내명부 정1품 빈들과 비슷한 수준의 장신구임 정난정이 외명부 정1품 정경부인 자리에 오르기 직전의 모습이야 문정왕후의 허락 하에 첩실 자리에서 정실 자리까지 꿰차고 거기에 모자라 정경부인 자리에까지 오르는 순간인데 가체 장식만 봐도 정난정의 파워를 알 수 있어 정경부인 직첩 받는 순간의 모습!! 정경부인 자리에 오른 후의 모습이야 평상복이지만 옷깃이 화려하고 가체 장식도 역대급으로 화려해 정난정의 신분과 힘을 보여주는 복장인 것 같아 반면,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자기를 태어나게 도와준 스님에게 저 드디어 정실부인 자리에 올랐어요~ 하고 자랑하자마자 니가 찍어내면서 죽인 조정 대신들 중에 네 친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오열을 해... 옷과 장신구가 화려하고 신분이 높아졌지만 현실과 대비돼서 더 슬펐음.. 문정왕후가 늙어 세상을 뜰 때쯤 정난정의 모습이야 정난정도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하얗게 세었어 이때부터는 왜인지 가체를 안 쓰고 나왔는데 실제로 저 시대 (명종 대) 때 가체를 안 쓴 채로 궐 출입이 가능했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드라마에서는 세월 따라 늙고 기세도 점점 기우는 상황을 표현하려 한 것 아닐까 싶어 옷 색깔도 예전의 화려한 색보다는 은은한 색을 입었어 문정왕후가 죽자마자 윤원형은 탄핵을 받았어 그래서 정난정은 윤원형이랑 같이 도망을 가는데 도망 가서의 모습이야 옷도 다시 초라해지고 가체 같은 건 당연히 없어 ㅠㅠ 정난정의 초라한 말로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지막으로 정난정이 죽기 직전의 모습이야 하얀 소복을 입고 바닷가에서 헤매다가 죽는데 한 때 문정왕후의 힘을 얻어 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젊은 시절 정난정의 화려한 모습과 크게 대비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