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doqu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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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3개 3등 2개 70억에 세금 떼고 실수령액 47억 +_+
모두 기받아가세여!!!
1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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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진짜 좋겠다 !!!!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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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광주의 그 분인가 보군요
1등 한개도 힘든데 3개요? 전생에 나라를 구햏나요?
와~진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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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먼저 지진 대처 체계가 잡힌 나라
놀랍게도 대지진이랑은 별 상관 없어보이는 포르투갈임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기도 유라시아판과 아프리카판이 맞물리는 곳이라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임 각설하고 1755년 11월 1일 9시 40분경 포르투갈의 수도였던 리스본에 세계 역사를 뒤바꾼 지진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1755 리스본 대지진 지진의 진도만 8.5~9 정도로 추측되며  포르투갈은 물론 인접한 에스파냐, 지중해 건너 모로코까지 엄청난 피해를 줬고 멀리는 러시아와 카리브해의 바베이도스까지도 지진이 감지되고 해일이 일었다고 함 지진이 발생한 11월 1일은 만성절로 모든 성인의 대축날이었기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성당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지진이 발생하면서 성당 건물이 무너져 내려 수많은 사람이 매몰되었고, 매몰된 상태에서 생존한 사람들도 곧 성당 내부를 밝힐때 쓰던 촛불로 인한 화재로 사망했음.  그리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붕괴와 화재로부터 안전해보이는 탁 트인 해안가로 도망쳤지만 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쓰나미로 인해 바다로 쓸려가며 최소 3만명에서 많게는 10만명의 인구가 이 지진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함 당시 리스본의 인구가 20만명이었던걸 감안하면 못해도 4분의 1, 많게는 절반의 인구가 하루아침에 사망하게 되버린 것 때문에 목조 건물이 많았던 리스본은 그대로 불타고 쓸려나가서 도시의 85%가 완전히 없어져버렸고  석조건물의 일부만이 남았는데 사진의 카르모 수도원이 그 예 지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없어지고 가장 튼튼한 뼈대 일부만 남아 지진의 참혹함을 알려주고 있음 하지만 거대한 본진이 발생한 이후에도 거대한 여진이 몇번이고 쓰나미를 이끌고 들이닥쳤고 5일 밤낮으로 화재가 발생해  도시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리스본은 폐허도 아닌 잿가루만 남은 잿더미가 되버림 근데 이 지진이 왜 포르투갈 뿐만 아닌 세계의 역사를 바꿨냐 말했듯이 만성절에 발생한 사고기 때문... 저땐 아직 기독교적 사상이 유럽 전체에 널리 퍼져있어서 하느님께서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을 굽어살핀다... 신앙심이 깊을 수록 행복한 삶을 산다가 가톨릭 국가의 기본적인 사상이었는데 유럽에서도 가장 신앙심이 깊다고 알려진 포르투갈에서도 가장 신앙심이 깊은 도시인 리스본에서 모든 성인의 대축일에 미사를 드리러 온 가톨릭 교도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점 때문에 가톨릭 국가 뿐만 아니라 전 기독교 국가가 크게 충격을 받고 염세주의로 돌아서는 계기가 됨 재밌게도 언덕에 위치한 알파마 지구는 피해가 적었는데, 바위 언덕 위에 위치해있어 지진으로부터 안전했고 고지대였기 때문에 쓰나미로도 안전했을뿐더러 당시 알파마 지구는 집창촌과 빈민가였기에 높은 건물이 없어 매몰과 화재로부터도 안전했기 때문. 근데 역설적으로 가장 타락했다고 여겨지는 매춘부와 잡배들의 피해가 가장 적었기 때문에 교황도 이 사건에 대해서 뭐라 말하지 못했고, 리스본 대지진은 계몽주의가 폭발적으로 퍼지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됨 어쨌거나 재해는 발생헀고 이제 그 뒷수습을 해야하는데  다행히 왕이었던 주제 1세와 왕가, 귀족들은 공주 한명의 부탁으로 해돋이를 보러 리스본을 떠나있어 안전했는데, 지진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온 주제 1세의 앞에 펼쳐진건 불타는 잿더미가 된 리스본과 각종 범죄가 판치는 생지옥 그 자체였음 이 상황에서 주제 1세는 신의 한 수를 두었는데 가장 신뢰하는 신하이자 수상이었던 폼발 후작에게 리스본 사태에 대한 모든 전권을 넘긴 것 폼발 후작은 전권을 이양받음과 동시에 범죄를 즉결 처분하고 지방의 군인들을 불러들여 치안을 유지시켰고 대주교의 허가를 받아내 시신들을 수습하고 리스본 바깥으로 처리해 전염병의 창궐을 막아냄 그리고 이 상황에서 귀족들은 리스본의 시민들에게 식사와 깨끗한 물, 잠자리를 제공해주어 동요를 진정시키고 살아남은 시민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리스본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게 도왔음 그리고 지진이 발생한지 한달이 지났을때 왕가는 리스본을 재건할때 여러가지 방안 중 도시의 폐허를 싹 치우고 완전히 새로 짓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이것도 신의 한 수로 새로 짓는 리스본은 도로를 넓게 깔아서 화재가 크게 번지는 것을 막았고  4층 이상 건물 짓는것을 금지함과 동시에 가이올라라는 지진에 안전한 새로운 공법을 도입해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는것을 지연시켜 시민들이 빨리 대피할 수 있게끔 했음. 그리고 다음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지진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도 실시했는데 이게 지진에 대한 세계 최초의 객관적 설문 조사였다고함 1700년대에 일어난 일이지만 굉장히 현대적으로 대책을 세워서 일을 처리했던 것 근데 안타까운건 당시 국왕이었던 주제 1세는 이 지진에 대한 공포심과 국민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폐쇄공포증에 걸려 아주다 언덕에 천막과 정자를 세우고 그 곳에서 평생을 살았다고함 지금 리스본에 있는 궁전이 재건된건 주제 1세의 딸이자 다음 국왕이었던 마리아 1세때의 일 주제 1세가 평생을 지냈던 천막이 있던 자리 위에 궁궐을 지어서 이름도 아주다 궁전임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던 한국인들의 현실
2월 14일 기사. 울산의 한 이삿짐센터 직원이 짐을 옮기다가  싱크대 밑에서 현금 뭉치를 발견했다. 짐을 정리하던 이삿짐센터 직원은  싱크대 서랍장 밑에서 현금을 발견하고 세입자에게 "싱크대 서랍장에 현금이 많은데 왜 안 챙기셨어요. 돈이 꽤 많아 보입니다" 며 돈뭉치를 건넸다. 하지만 집주인은  "그렇게 큰 돈은 내 돈이 아닙니다 "라며 "우연히도 세입자 연락처도 가지고 있는 게 없다"고 당황하며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했던 경찰은 상황을 파악하고 이 집을 중개한 공인중개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그동안 거주했던 세입자들의 연락처를 물었다. 확인결과 10년간 4가구가 거처 간 것으로 파악하고 모든 세입자들의 연락처를 수소문했다. 두 번째 세입자였던 60대 여성은 "일의 특성상 현금으로 월급이나 보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며 "은행 갈 시간이 없어서 5만원권 100장씩을 금액이 적힌 은행 띠지로 묶어서 싱크대 밑이나 장롱 안에 보관해 뒀다"고 설명했고, 세 번째 세입자였던 50대 남성은 "그 집에 아버지가 살았다. 아버지에게 현금 250만원을 생활비로 드렸는데, 아버지께서 현금만 따로 모아두셨던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경찰이 "두 번째 세입자분은 현금이 보관된 상태와 위치, 금액의 수준을 비슷하게 말했다"고 밝히자.   세 번째 세입자는 "그렇다면 저희 아버지께서 모아둔 돈이 아닌것 같다" 라고 '이의 없음' 의사를 밝혔다. 이에 경찰은 60대 여성이 이 돈뭉치의 주인이라고 확신했다. 여성의 주장처럼 현금은 5만원권 100장씩 두 묶음과 90장 한 묶음이 은행 띠지로 묶여 다발로 보관돼 있었고 위치 또한 정확하여 주인에게 현금 2400만원을 10년만에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후 이 현금의 주인은 유실물법에 따라  습득자 이삿짐센터 직원에게 5~20%를 보상금으로 지급했고  일부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경찰에게 전달했다. 이에 울산 경찰은 "양심에 따라 신고해주신 모든 시민분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실화라니 ㄷㄷㄷ 아직 세상은 살 만한가 봅니다 이종격투기카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