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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노세키의 복어 이야기

북규슈와 혼슈를 잇는 지리 상의 거점이자
메이지 유신 때 사쓰마 번(가고시마)와 연합해
260년의 에도 막부를 끝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조슈 번(長州藩)의
도시기도 했던 '시모노세키'
간몬 해협을 사이에 두고
가마쿠라 막부를 연
단노우라 전쟁(1185)이 일어나기도 했고

왜란 후의 조선통신사들이 일본 본토에
처음 기항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 곳 시모노세키 바다에는 예로부터
복어가 많이 잡혀 이 지역의 향토음식이었다
관짝 짜놓고 먹는다고 '관 요리'라고 불렀다고
1592년 히데요시가
각 지방의 다이묘들을 들들 볶아 마련한
노인과 아이를 제외한 15만 8천 7백명의 조선 침략군이
이 곳, 시모노세키 항구에 집결했다
일본 각 지역에서 모인 다양한 장정들이었으니
바다를 처음 보는 산골 출신들도 많았는데
복어에 맹독이 있다는 걸 모르는 병사들이
독이 든 알과 내장까지 먹으며 하나둘 죽어나가자
히데요시는 ㅈㄴ 빡쳐서
그렇게 죽고싶으면 조선에 가서 싸우다 죽으라며
복어금식령읕 내리기에 이른다
그 후, 복어를 먹고 죽는 이는 없어졌지만
전쟁이 끝나도 복어 금식령은 300년 동안 남아있었다

근대화 중이던 1882년에도 지방 영주에 의해
복어를 먹으면 구류 or 벌금형에 처한다는 법령이 있었다




이 복어금식령이 해금된 것은 1892년,
당시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서다
총리가 되고 시모노세키를 방문한 이토는
춘범루(春帆樓)라는 여관에 머물게 된다


춘범루는 원래 안과의사 후지노 겐요가 1877년에
'츠키야마 의원'을 개원한 곳인데 그가 죽자
그의 아내 미치가 여관으로 운영하던 곳이다


여튼 이토가 여관에 있을 때
태풍이 불어 조업이 어렵게 되자
대접할 게 없어서 주방장은 금지된 생선인 복어를
이토에게 주었고 이토가 그 맛에 감탄해
이 집 한정으로 복어 판매를 허용했는데
이를 계기로 금식령이 풀리게 된다
그 이듬해인 1895년, 이토 히로부미와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는 조선에서 벌어진 청일전쟁을 이기고
춘범루에서 청나라 북양함대 대신 이홍장과
정전협정을 맺게 된다
왼쪽 세번째 수염 풍성한 놈이 무쓰 무네미쓰
그 옆이 이토

무쓰는 청일전쟁과 동학농민운동(갑오농민봉기)에 대한
외교 문제를 일본 입장에서 저술한 '건건록'을 남겼다
춘범루 앞에는 회담이 이뤄진 곳을
전시해놓은 '일청교류기념관'이 생겼다
이 조약으로 청은 조선에서 완전 발 빼고
막대한 전쟁 보상금, 요동 반도와 대만을 할양받고
서구 열강과 같은 최혜국 대우를 받게 된다


이홍장은 숨이 턱턱 막히는 요구에 하얗게 질려
"가혹! 가혹!"을 외쳤다고...
쨌든 그 후 복어 요리는 발전했고
점점 다양화해졌다
도쿄의 츠키지 어시장처럼
시모노세키엔 가라토 어시장이 유명한데
이 곳에서 여러 복어요리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여행-관동이외갤러리 비기뇽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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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짤줍 but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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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팔순 기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장모님 포함 가족이 13명인데 일정 조율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결국 대학생 조카는 실습 기간이라 동참을 하지 못하고 12명이 경기도 다낭시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여행 가자는 이야기는 작년부터 나왔지만 해외냐 국내냐 국내로 가면 제주도냐 울릉도냐 해외로 가면 태국이냐 베트남이냐로 의견이 분분하다가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해외여행을 가는걸로 결정이 났고 목적지는 경기도 다낭시로 유명한 베트남 다낭으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여권 기한이 지난 사람들은 여권도 새로 만들고 단체 티셔츠도 만들었답니다 ㅎ 12명이 자유여행을 하기가 힘들것 같아서 저희 12명만 따로 움직이는 패키지로 가기로 했습니다. 갠적으로 패키지는 첨이라 힘들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되더라구요 ㅋ. 암튼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그래도 다같이 장모님 팔순기념 여행을 가게 됐네요. 3년만에 타보는 국제선 반갑네요. 마지막 해외여행도 장모님 모시고 3년전에 방콕여행 다녀온건데 다시 장모님 모시고 다낭으로 가게 됐네요. 아, 이번엔 국제선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다자녀(2자녀) 할인으로 3박 5일에 27,500원이 나오더라구요. 장모님 캐리어 포함 5개나 되는 캐리어 때문에 택시 타기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 말이죠. 편하던데요. 금욜 저녁 뱅기로 가는 3박 5일 여행입니다. 떠나는 날 봄비가 내리더라구요. 5시간 동안의 비행 끝에 다낭공항 도착. 갈때는 꼬리쪽에 타는 바람에 비행기의 떨림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ㅋ. 공항 입구에서 베트남 현지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고 공항 밖으로 나가 한국인 가이드를 만나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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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희네집에 베이비샤워가기전에 전현무집에서 파김치만드는 이영자 홍현희줄려고 양념게장도 가지고 왔는데 임신부는 날것 먹으면 안되서 못가져가는 상황 양념게장의 게살을 쭉쭉 발라냄 ㅠㅠㅠㅠㅠㅠ 응??? 근데 국수 소면을 집어든다???? 맛만본다면서 소면 4바퀴 돌림 ㅋㅋㅋㅋㅋ 홍현희집에 가서 밥먹을 예정임 ~ 면삶기는 동안 고추넣고 시장에서 짠 참기름 한바퀴두름 ~ 삶아진 소면 냉수마찰 챱챱 한입먹을거만 들고 잡아서 물기 쭉쭉 뽑아내는데 👍 국수면위에 양념게살 한수저 올려줌 ㅠㅠㅠㅠ 매니저 한입먹더니 뿅!!!!!!! 기막히는 맛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전현무 기대기대 전현무 먹더니 눈알 튀어나옴 ㅋㅋㅋ 올해 먹은것 중에 제일 맛있대 ㅠㅠ 도대체 어떤 맛이냐고요 ㅠㅠㅠㅠ 본격적으로 양념게살 모두 투하하고 다들 리액션 ㅋㅋㅋㅋㅋㅋㅋㅌㅌ 통깨로 뿌리도 김가루까지 ㅠㅠㅠㅠㅠㅠㅠ 게딱지에 있던 내장까지 ㅠㅠㅠㅠㅠ 뜨아 ㅠㅠㅠ 진짜 맛잘알아니냐고 ..... 진짜 격하게 먹고싶다다다아아아아아아아아 진짜 먹교수님답다 ㅠㅠㅠㅠㅠㅠㅠ 그 다음에는 파김치담궈서 대패에 싸먹는데 진짜 전현무 파김치에 빠짐 ㅋㅋㅋㅋ 진짜 웃겼음 ㅋㅋ 영자언니 진짜 뿌듯해함 ~ㅋㅋㅋ
[맥주]: 10년 가까이 유럽 최정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맥주 - Zombination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뭔지 모를 이유로 1주일 가까이 빙글 접속이 안되었다가 인제야 다시 접속하게 되어서 후다닥 카드를 쓰고 있네요 ㅎㅎㅎ (일해라 빙글!!) 오늘은 아주 특별한 맥주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번에는 평소처럼 하나의 맥주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시리즈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2014년에 출시하여 맥주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맥주이자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럽 최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벨기에 맥주 Zombination 맥주입니다. Zombination 맥주는 무려 유럽 9개 양조장이 협업하여 만들어진 특별한 맥주인데요. 벨기에 양조장 De Struise Brouwers 중심으로 벨기에- Brouwerij Alvinne, 영국의 Magic Rock, Beavertown, Brodies 양조장, 네덜란드의 Kees Bubberman, De Molen. 노르웨이의 Haandbryggeriet 그리고 스폐인의 Naparbier가 합심해 만든 맥주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맥주를 소개 시켜드렸지만 이렇게 많은 양조장이 협업하여 만든 술 자체를 찾는 것도 참 쉽지 않을 거 같네요. 해당 맥주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스폐인 바틀샵 사장 가브리엘 Gabriel Bocanegra 의해서 만들어졌는데요. 원래 그는 스폐인에서 맥주 글을 쓰는 블로거였지만, 유럽에서 바틀샵을 운영하면서 유럽 전역 맥주 양조사와 넓은 인맥을 쌓았고 그의 바틀샵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벤트 성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양조사들을 초대해서 만든 맥주가 바로 Zombination입니다. 해당 맥주 시리즈는 스트루이스의 Black Damnation 맥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만든 특별한 맥주이기도 합니다. 보통 사용하기 드문 피트 위스키 배럴을 사용하였고 이 외에도 버번 위스키, 와인 배럴을 사용하여 총 6종을 출시합니다. 모든 맥주들은 무려 17도 알코올 도수를 가지고 있지만 그 도수와는 별개로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게 다채로우면서도 강렬한 캐릭터도 가지고 있어 현재까지도 수많은 맥주 애호가로부터 극찬을 받는 맥주 시리즈 입니다. 아래 제가 리뷰한 글도 있는데 조만간 다른 시리즈 리뷰도 올려야 겠네요. ㅎㅎ https://www.vingle.net/posts/4745914?q=zombination https://www.vingle.net/posts/4653635?q=zombination https://www.vingle.net/posts/4706818?q=zombination 모든 술에도 그렇듯이 항상 정상급 자리를 지키는 술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긴 시간 동안 유지하는 것은 정말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랜드는 매 순간 빠르게 변하하고 새로운 맥주는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러한 시간 속에서도 Zombination 맥주는 여전히 정상급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많으로도 저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고 운이 좋게도 이 맥주는 여전히 저에게 최고의 임페리얼 스타우트 자리로 남아 있습니다. 참 시간이 지나면서 술의 모습도 변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맥주가 저에게 줄 수 있는 즐거움과 감동은 여전히 변함 없길 바라는 욕심도 생기는 맥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다음에 더 재밌는 맥주 이야기와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마음 속 1등 술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