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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차 브랜드들은 나치독일 시절 어떠했을지 알아보자
너무도 익숙한 엠블럼들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나치독일 시절 어떠했을지 대략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BMW FW190 전투기의 엔진 제작 바이에른 엔진 제작소로 시작한 기업이고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군납이 확 꼬라박자 오토바이와 자동차 사업까지 늘렸음 벤츠 군용트럭과 군용승용차 그리고 전차까지 만들어 납품 군용트럭은 벤츠LG3000 군용승용차는 벤츠170vk 전차는 3호전차임 또한 마이바흐는 독일전차엔진 거의 전부를 만듦 포르쉐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를 필두로 독일군이 운용한 거의 대부분의 군용차 설계를 했고 전차 또한 납품했는데 짤에 있는 전차는 박사의 이름을 딴 페르디난트 구축전차임 오펠 군용차 납품 짤은 오펠 블리츠 폭스바겐 군용차 납품 짤은 퀴벨바겐 아우디 군용차량 납품 짤은 반더러w11 마지막으로 폭스바겐을 한번 더 언급하겠다 당시 나치 독일은 아우토반을 건설했고 마이카 시대를 열어 전국민에 차를 타고 독일전국을 돌길 희망했다 그러므로 저렴한 차량의 보급이 절실했으며 당시 히틀러는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승용차 디자인초안을 만든다 그게 바로 이것이다 디자인 초안대로 만들어진 소형목업을 관찰하는 히틀러 좌측에 소형목업의 트렁크 부분을 만지며 설명하는분이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다 바로 이 차량이 폭스바겐 비틀이다 폭스바겐 자동차공장 기공식을 열어 연설하는 히틀러 비틀 컨버터블에 시승해보는 히틀러 역시 그 옆에는 페르디난트 포르쉐박사가 있다 나치 그 자체 ㅎㄷㄷㄷ 그...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ㄷㄷㄷ 자동차갤러리 니짜님 펌
투표 잘 합시다
- 세월호로 304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세금 많이 들어간다며 조사를 중지 했던 인간들 - 대통령 7시간을 30년 동안 봉인시킨 인간 - 남북갈등으로 총선에 유리함을 가지려 북한에 돈 줄테니 총쏴달라 거래하던 인간들 - 카메라가 자신의 말과 행동을 다 찍고 있던걸 알고 있어도 아니라고 부정 하던 인간들 -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법을 어겨도 되는 인간들 - 불법청탁, 뒷거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인간들 - 자신들의 성향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블랙리스트로 구분하여 불이익을 주던 인간들 - 자기 이익과 반대되는 집단이 칭찬 듣는걸 막기 위해 무조건 비난, 비협조인 인간들 - 자기들이 주는 긴급제난지원금은 합리요. 다른 집단이 주는 긴급제난지원금은 포퓰리즘인 인간들 - 4대강/해외자원외교로 수백조를 날려먹고도 옹호하는 인간들 - 자식에게 문제가 있으면 공직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하던 인간의 자식은 성매매와 음주운전+운전자바꿔치기, 소녀상에 침뱉기 등 쓰레기 삶을 사는 놈 - 공약 지키면 나라 망한다고 하는 인간들 등등등 아직도 많이 있음...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던 인간들이 과연 국민이란 단어가 마음속에 있을까요? 국민의 삶, 경제, 월급, 결혼에 관심이나 있을까요? 열린 민주당이나 바른시민당이나 투표 꼭~ 아니 제발 합시다. -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석 차이로 민주당이 1당 되었던걸 잊지 마세요. 1명 !!!
무시할수 없는 캐나다의 국방력
캐나다는 지리적으로 북미의 최북단에 위치하여 전쟁과는 동떨어져 보이나 실제로는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영국이 참전한 수많은 전쟁에 자동으로 참전했음 미영전쟁을 시작으로 보어전쟁, 제1, 2차 세계대전, 6·25전쟁, 아프간전 등 다양한 국제전쟁에 참전하여 수많은 실전 경험을 쌓았음 특히 미영전쟁 당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를 점령해 백악관을 불태운것도 식민지 캐나다군의 활약 캐나다는 2차세계대전 전후로 캐나다의 경제,사회구조가 전반적으로 산업화되기 전까지 냉혹하기 짝이 없는 혹한의 캐나다 대자연과 싸우며 먹고 살아온 농부, 수렵꾼, 벌목꾼 같은 강인하고 인내심을 요구하는 1차산업 종사자가 많았기 때문에 병사들의 기량이 다른 나라 군대보다 높았음 1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해 독일군한테 악명이 높았고 전쟁 당시 적을 가장 많이 사살한 저격수도 캐나다군이 배출함 (378명 사살한 원주민계 캐나다군 프랜시스 페가마가보) 역시 2차세계 대전에서도 활약했는데 캐나다군은 110만명이 참전하였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캐나다군은 상륙 15분만에 독일군 진지를 돌파해 주노 해변을 점령하고 영국군이 고전하고 있던 골드 해변의 후방을 차단해 독일군들을 포위섬멸해서 1시간 먼저 상륙한 미군보다 더 빨리 해변을 장악함 캐나다군이 상륙한 주노 해변은 미군이 상륙한 오하마 해변 다음으로 사망자 수가 나온 곳으로 캐나다군의 15분의 기적은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캐나다군의 피지컬로 해냈다는것. 대전 기간에 윈스턴 처칠은 "나에게 캐나다 병사와 미국의 기술력, 영국의 장교들이 주어졌다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만큼 캐나다 병사들의 전투력이 뛰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6.25전쟁에서도 캐나다군은 미국,영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군인들을 파병했는데 당시 캐나다군의 절반을 한국으로 보냈다. 6.25전쟁때 캐나다군이 가장 활약한 가평 전투는 캐나다군 보다 13배나 많은 중공군 6000명을 뉴질랜드군 포병대대의 지원 하나로 버틴 전투로 자신들의 참호에 포격요청을 했을정도로 긴박했는데 결국 캐나다군은 중공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이때 캐나다군은 1개 대대 수준인 450명으로 6000명이 넘는 중공군을 상대로 47명의 사망자와 99명의 부상자를 내고 중공군은 최소 1000명에서 최대 4000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평 전투로 인해 중공군은 이후 더 이상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지 못 하고 38선까지 후퇴해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어 한국전쟁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된 전투라고 할 수 있다. 캐나다는 병사들의 기량만 높은게 아니라 방위산업도 상당이 높은편에 속한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캐나다가 생산한 군수품들은 소총 170만정 80만대의 군사차량 5만 대의 탱크 4만 대의 대공포 16000대의 군용기 1만톤급 선박 348대를 생산해서 연합국들한테 공급했다 이렇게 캐나다는 전쟁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하고 산업화를 이루며 경제를 크게 키울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났을 때 캐나다는 세계 3위의 교역국이 되어 있었다. 또한 세계 4위 규모의 공군력을 갖게 됐고, 전쟁전 불과 수 척의 군함밖에 없었던 해군은 400대 이상의 군함을 보유한 해군으로 성장해 있었다. 뿐만아니라 6·25전쟁 중 한반도 상공을 수호하던 항공기 중 상당수가 캐나다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캐나다의 방위산업은 2차대전 중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육·해·공 전 분야에서 독자적인 기술과 전문기술인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군사갤러리 ㅇㅇ님 펌
유부녀는 처음이라#1
신랑과의 첫번째 남자 대 여자 만남은 추위가 아직은 가시지 않은 밤, 막 꽃을 피울 무렵의 우리동네 카페였다. 난 먼저 도착해 메뉴를 고르고있었고 (그래봐야 아메리카노였지만) 신랑은 막 문을 열고 들어왔다. 180이 훌쩍 넘어보이는 큰 키에 아이보리 터틀넥이 꽤 잘 어울리던 갈색 머리의 남자는 늦어서 미안하다며 난색을 표했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앉아 소개를 빙자한 수다를 시작했었던걸로 기억한다. 20대 후반들이 겪은 과거의 예체능 경험부터 음식, 취미, 같이 살고있던 반려견의 이야기는 다음날 데이트를 가능케했고 그 날 차 안에서 떨리던 목소리로 고백하던 남자와의 첫 키스는 어버이날의 핑계로 부모님을 찾아뵌 후 데이트를 빙자한 웨딩박람회에서 무작정 폰 캘린더를 보며 웨딩홀을 예약하는, 22세기에서도 찾아보지 못할법한 유교사상 가득한 대한민국에서의 결혼식 차례를 깡그리 무시(..)해버린 짓을 가능케 했다. 매번 입 아프게 말로 설명하다가 글로 직접 쓰니 진짜 경악스러운 행동이었네요 신랑님ㅋㅋㅋ 노는 것 좋아하고 여자치고는 상당한 개인주의적인 성격인 난 내가 봐도 결혼 못할것 같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었는데 그럴때마다 사람들은 그런 애들이 더 빨리가~ 라며 웃었지. 20대 초반을 지나 중반이 되어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이라는 생활로 뛰어들면서 슬슬 앞자리가 바뀌는 때가 와버렸던 난 그간 들어왔던 사람들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진짜 자의적 반 타의적 반 독신주의자가 되어가는 듯 했다. 근데 진짜였어. 나이가 빠른게 아니라 만난지 한달 반만에 식장을 잡을줄이야. 4월에 꽃 보며 만나 반팔을 꺼내 입기 시작한 5월 지나갈쯤 식장 예약을 했으니... (올 해 결혼을 노래부르던 그때의 남자친구에게 식장이 식당이냐 어디 한번 잡아봐라 했던 미혼의 내 행동을 훗날인 지금 반성한댜 흫흐...) ...아, 늦은건 있다. 바로 상견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처음부터 대단할 것 없는 집들이니 예단 등 거추장스러운 모든건 생략하기로 하고 진행한 결혼이라 시아버님께서 말 많은 절차는 뒤로 미루자 하셔서 8월 말에 겨우 함^^;;;;;; 더 대박인건 어머님은 캐나다에 계신 상황이라서 보이스톡으로 인사드리고;;;;;;;;; 직접 줄자로 잰 치수를 톡으로 보내주셔서 그걸 한복맞춤집에 전달해 귀국 끝에야 입어보시는 등 정말이지 기가 찬 뒤죽박죽 결혼이었지만. 고맙게도 웨딩홀측에서 진상으로 불리는거 아니냐 장난쳤을만큼 신랑의 끝 없는 준비와 여러 아이디어로, 산으로 갈 뻔 했던 내 일생에 한번 뿐인 (한번 뿐이어야 할) 결혼식은 신랑 취미이자 투잡인 섹소폰 연주가 곁들여진 입장을 시작으로 격식 차리지 않은 재밌는 결혼식이 되어 많은 이들의 머리 속에 남아주었다. 난 마이크 잡고 노래 부르며 입장하다 오열 ㅡㅡ 하필 높은 구간에서 오열을 해 치밀해도 너무 치밀하게 계획한거 아니냐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 변명 따윈 하지 않을게... 대신 DVD 영상 역시 보지 않겠어.... . 갈라서지 않는 한 이야기는 계속 될테니 재밌으면 퐐로우 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