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터키
중동(...) 지방을 빼면, 국지전 혹은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서 우리는 늘상 대만 해협이나 필리핀을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리스-터키 접경 지역도 높은 순위에 들어간다. 아니 터키와 그리스라면 트라키아 지방을 두고 이스탄불만 접해있지 않냐, 하실 수 있을 텐데 이 지도(참조 1)를 보시라. 터키 앞에 있는 자잘한 섬들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 영토이다. 삼면이 바다라고는 하지만 터키 입장에서 보면 이스탄불-갈리폴리 반도(그러니까 동 트라키아)에 있는 Dardanelles-Bosphorus 해협(참조 2) 빼고는 모조리 다 막힌 것이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울릉도는 물론 강화도나 제주도, 진도, 거제도 등등이 모두 다 일본의 섬이라 생각해 보시라. 물론 이렇게 국경선이 되어버린 이유는 존재한다. 오토만 제국이 터키 공화국으로 바뀌면서 케말 파샤가 성공리에 오토만을 무너뜨려 독립을 쟁취하기는 했지만, 완벽한 승리가 아니었고, 신생 터키 공화국이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를 한꺼번에 상대할 수도 없었기에 저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참고로 저 국경은 세브르 조약(Traité de Sèvres, 1920)과 로잔 조약(Traité de Lausanne, 1923)으로 결정됐다. 아울러 터키가 어째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가입하지 않았는지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아예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터키 외에 시리아, 교황청(?!), 이스라엘 등이 있다) 중에서는 터키가 제일 큰 나라일 듯하다(참조 3). 그리스는? 가입해있다. 그래서 영해와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나름 주장하고는 있지만 터키가 당사국이 아니니 앞으로도 계속 저 수역은 경계가 정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지도만 놓고 보면 터키에게 측은지심이... 그러나 터키 대통령이 에르도안이네? 지도 보시면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 화살표의 의미는 2020년에 터키가 그리스로 방출(!)한 이민자의 규모를 의미한다. 터키 정부가 눈감아주니까 그리스의 각 섬에 몰래몰래? 도착하는 난민(비단 시리아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중동을 모두 포함한다)을 그리스가 죄다 막기 힘들다. 그런데 에르도안이 자기를 자꾸 쉴레이만 대제(Süleyman I, 1494-1566)로 생각하네? 케말 파셔도 자신을 쉴레이만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실제로 터키가 2020년 이래 그리스 섬들에게 드론을 위협적으로 날리고 있는 모양이다(참조 1). 다만 그 터키 드론이라는 것이 좀 웃긴 광경이기는 하다. 터키 군가를 하늘에서 틀거나 터키 국기를 뿌렸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안그래도 오토만 제국 말기,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지방에서의 조직적인 그리스인/아르메니아인 박해, 학살과 종교별 인구 교환의 "역사 기억"이 생생한 그리스가 더더욱 국가주의로 치달을 수밖에 없겠다. 터키 남서부의 İzmir-Smyrne 지역도 그리스가 "고토"로 주장할 수 있잖을까(참조 4)? 당시 "인구 교환"으로 터키 지방의 그리스 정교회 신자들 상당수가, 바로 지도에 보이는 각 섬들로 이주해오기도 했었다. 그래서 특히 이스탄불 서쪽, 그러니까 서부 트라키아(그리스 영토)에 계속 거주하고 있으며 터키 독립 당시 인구 교환에 해당하지 않았던 그리스계 무슬림들 경우는 그리스 내부에서 토착 토구(... 참조 5) 취급을 받는 건 안 자랑. 당연하겠지만 이스탄불 쪽에 거주하는 그리스계 인구도 터키로부터 토착희구(참조 5) 취급받는 건 매한가지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지도를 보세요. 터키가 유럽으로 향하는 불법적인 이민 루트 역할을 하는 한, EU가 강경하게만 나아갈 수 없다. 물론 터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말이다. ---------- 참조 1. 출처, Sur la frontière gréco-turque, à l’épicentre des tensions(2021년 1월), https://www.monde-diplomatique.fr/2021/01/PERRIGUEUR/62666 2. 푸틴과 에르도안이 나온 사진(2020년 3월 6일): https://www.vingle.net/posts/2799868 3. 미국은 제11부 내용(심해저 관련 이행)때문에 서명만 했다. 비준을 안 해서 문제인데, 조약 비준은 상원 재적 2/3 이상이 필요하므로, 앞으로도 비준을 안 할 것 같다. 현재 상원의 관심사도 아닐 테고. 4. 세브르 조약이 유지됐다면(즉, 케말파샤가 실패했다면), 지금도 소아시아 반도 남서부에 그리스 땅이 있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지금도 이즈미르 지역은 반-에르도안 여론 비중이 높은 곳 중 하나다. 5. 터키의 한자 이름이 土耳其다. 그리스는 希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