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교섭'을 보면 후반부에 드디어 탈레반 수장과 교섭전문가인 정재호 실장의 대면 협상이 전개된다.
단 한번의 자리를 통해 협상을 성공시켜야 하는 긴장감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하며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하는가?

하버드협상연구소 설립자이자 세계적인 분쟁조정 전문가 윌리엄 유리의 <윌리엄 유리 하버드 협상법>에 유사한 사례가 나온다.
그는 한때 유엔과 카터재단의 초청으로 베네수엘라를 괴롭히는 급박한 정치 위기상황에 대해 제3자의 입장에서 관여했었다.
수도인 카라카스에는 몇 백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통령 휴고 차베스의 하야를 외치고 있었다. 또 다른 몇 백만 명의 시민은 차베스를 지지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했고 곧 공습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세계 각국들은 내전 발발의 가능성을 우려했다.
미국의 대통령은 윌리엄 유리에게 연락해 차베스 대통령을 만나 어떻게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하길 요청했다.
회담이 마련되었고, 윌리엄 유리는 이번 만남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다. 해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조언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반문했다.
“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나 같은 양키 교수에게서 조언을 들으려 할까?”
습관처럼 명쾌한 답을 찾기 위해 공원으로 산보를 나갔다.
대통령과는 불과 단 몇 분의 시간만이 주어질 것이고 그러므로 그는 간략한 몇 가지의 추천사항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책 중에 그에게 떠오른 생각은, 계획하려던 바와 정반대로 하는 것, 즉 ‘요청이 없으면 조언을 하지 말자’였다.
그냥 듣고만 있고 현재 시점에 집중하며 기회를 탐색하는 것이다.
물론 회담이 너무 빨리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차베스 대통령에게 영향을 끼치려는 그의 조언으로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보기로 했다.
회담 당일엔 긴장이 증폭되고 대통령궁 밖의 시위는 격렬해지고 있었다.
드디어 차베스 대통령과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좋아요, 유리 교수님. 이곳 베네수엘라의 대립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친애하는 대통령님, 저는 제3자의 자격으로 많은 내전을 연구해왔습니다.일단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시작되면 멈추기 힘들죠. 제 생각엔 전쟁이 일어나기 전 지금이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적기입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반대 진영과 대화를 시도해보십시오.”
“그들과 협상하라고?”
차베스는 화를 내며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일 년도 안 되어 반역을 일으켜서 바로 이 방에서 날 죽이려 했던 반역자들이야!”
윌리엄 유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을 했다.
차베스 대통령과 논쟁하는 것보다 그의 생각의 흐름을 쫓아가기로 했다.
“그러네요. 당신이 그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데 그들과 대화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바로 그거요.” 차베스가 답했다.
윌리엄 유리가 현재시점에 온 힘을 쏟으며 기회를 찾으니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당신이 겪은 일로 봤을 때 충분히 그들을 믿지 못하는 건 이해가 갑니다만, 한 가지 묻겠습니다. 만약에 내일 아침 그들이 변화하겠다는 신뢰할 만한 징후를 보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징후? 징후라…….” 차베스는 갑작스런 질문에 심사숙고하듯 잠시 뜸 들였다.
윌리엄 유리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글쎄요. 그들이 날 텔레비전 방송에서 원숭이라고 부르길 멈춘다면야.” 차베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군복을 입은 장군을 내세워 정부 타도를 외치는 걸 그만둬야 해요. 그건 반역이에요!”
잠시 후 차베스 대통령은 내무장관에게 윌리엄 유리와 협업해 반대 정당과 신뢰를 형성하고 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는 가능한 방안들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중대한 정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발전적인 진행의 발단이 예상치 못한 기회를 맞은 것이다.
윌리엄 유리는 프란시스코가 차베스 대통령에게 작별을 고할 때 시계를 힐끗 보았다.
두 시간의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만일 그가 첫 번째 생각에 따라 회담에서 여러 제안들을 쭉 열거했다면 대통령은 몇 분 안에 회담을 종결했을 거라 확신했다.
대통령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은 그 말고도 많았다.
윌리엄 유리가 의도적으로 조언을 하기로 한 마음을 거두고 대신에 그냥 현재에 머무르며 가능성이 있는 기회에 주의를 기울이자 회담은 무척 생산적으로 진행되었다.
민감한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예스를 구하려 한다면 관건은 현재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에게 했던 것처럼 대화를 예스로 향하게끔 인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더 주의 깊게 현재를 본다면 기회는 있다.
그러나 간과하기도 무척 쉽다.
많은 협상의 순간에 한 쪽편에서 개방하려는 신호를 보내거나 심지어 양보 의사를 보여도 다른 쪽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부부 싸움이나 회사에서 예산의 의견 차이라도 우리는 무척이나 심란해져서 지난 일을 회상하거나 미래를 걱정한다.
그러나 현재의 순간에서만이 대화의 방향을 합의로 바꿀 수 있다.
과거와 미래가 흥미롭고 정보를 주지만 싸움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현재에 놓여 있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이런 말을 했다.
“비관주의자는 모든 기회에서 난관을 보지만 낙관주의자는 모든 난관에서 기회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