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eeckim
5 years ago1,000+ Views
세상은 정복하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세상을 소유하려고만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실수다. ---------------------------------------------------------- 최후라는 말은 늘 마음 한구석을 철렁하게 만듭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갈 곳도 없는 자의 마지막 발악(發惡). 이런 선입견 때문인지 “최후”라는 수식어가 붙는 단어들은 모두 슬픔을 넘어선 숙연한 비장함마저 느껴집니다. 지난 반세기동안 북미 인디언들은 끊임 없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습니다. 경제 개발, 자원 확충이라는 현대사회의 이기를 충족시키기 위해 인디언들의 전부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자연은 철저하게 파헤쳐지고 짓이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훼손의 댓가는 “아직도 자본주의의 쓴 맛을 모른다”는 이유로 늘 숲에서 머물고, 강과 함께 흐르는 삶을 살던 인디언들에게로 고스란히 되돌아가게되죠. 한 때 잘나가는 로펌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던 위베르 망시옹과 크리족 어머니와 퀘벡족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비행기 승무원을 하고 있던 스테파니 벨랑제. 이 범상치 않은 두 사람의 조합으로 탄생한 책,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는 북미 최후의 인디언 크리족이 천년이란 시간동안 고이 보듬어온 마지막 지혜를 전합니다. ---------------------------------------------------------- 소유란 본래 어딘가에 앉는 것이다. 앉는 것이란 머무는 것이다. 움직임은 소유가 아니다. ---------------------------------------------------------- 무소유.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삶. 인생에 있어서 꼭 놓쳐야하는 것들과 그것들을 미련 없이 놓아버리는 법. 해가 지나면 지나갈수록 소유하고 지켜내야할 것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당장 문 밖을 나서면 풀 한포기 볼 수 없는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크리족 인디언의 지혜는 소박하지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아이러니함에 휩싸였습니다. 모든 부와 풍요,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공허함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중 한 명으로써, "부족함"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그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도 느꼈습니다. 무엇이든지 빨리, 많이, 높이, 멀리만을 외치는 우리들의 눈으로 비춰보았을 때 가진 것 하나 없고, 기댈 곳 하나 없는 최후의 인디언들이 어째서 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 같을까요? 더 이상 내몰릴 곳이 없는 크리족. 그들의 최후의 보루에서 저는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최후와 마주하게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크리족 인디언들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보다는 그들의 행동방식이나 사고방식에 대한 작가들의 해석이 너무 일반적이고 구조적으로 짜여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열심히 문제를 풀고나서 채점하려고 해설지를 폈는데 정작 한눈에 들어와야하는 해답은 애매모호하게 써 있고, 그 아래 각주로 달린 장황한 해설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물론 작가가 크리족의 지혜를 두고 "이것이 정답이다! 이대로 살아라"하고 덥썩 던져주길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저자가 명확한 명제를 토대로 서술해나갔다면, 독자들이 수용과 비판 사이에서 좀 더 자유롭게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책을 덮은 후에도 마지막이라는 말이 계속 여운에 남네요. 마지막 나무를 베어버린 후에야 우리는 알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베어버린 것은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우리의 뒷 세대에 전해줄 희망이라는 사실을. 부디 그 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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