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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태어났어야 했다는 `유전` 감독 아리 애스터
한국영화로 부터 가장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함. 한국 영화는 일관성을 잃지 않고 여러 장르를 마구 섞는데 곡성은 마치 열 개의 영화를 하나에 넣은 것 같다며 지난 몇 년간 본 호러영화 중 제일 좋아하는 영화고 (다른 인터뷰에서도 지난 10년간 최고의 호러영화로 곡성 뽑음) 심지어 ‘지난 십년 동안 많이 생각했는데 난 잘못된 나라에서 태어났어. 난 한국인이었어야 해’라는 뜬금 충격 발언 ㅋㅋ (I’ve had the thought many times over last decade that I was born in the wrong country. I should have been South Korean.) 이창동 밀양은 모두가 봐야하는 영화라고 추천 그 어떤 곳 보다도 한국에서 나온ㄴ 영화가 가장 자기를 흥분시킨다고 말하면서 나쁜 호러 영화의 규칙을 모두 무시한 예가 있는데 그게 곡성이라며 넷플릭스에 있으니까 모두 보라고 추천 트위터에 이창동이 밀양을 뛰어넘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버닝이 그걸 뛰어넘는다며 꼭 보러가라고 추천 연말에 인디와이어 감독 인터뷰에선 2018년 최애 영화 버닝 1위로 뽑음 그리고 이번 신작 미드소마는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고 꼽음. 아리 에스터 감독은 “이번 영화의 예상치 못한 특별한 엔딩은 정말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지구를 지켜라!>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라고 밝힘. 또 “지난 20년간 너무 대단한 한구경화들이 많았다”라며 “이창동, 봉준호를 비롯한 한국 감독들이 보여준 이질적인 것의 조화를 좋아한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유전이 한국 씨네필들에게 평가가 좋아 무척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출처ㅣ락싸
한 영화에 관해 오래 기억하는 일
어떤 영화를 보고 그것에 관해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을 이천 번쯤 한다면 그 삶은 이천 겹만큼의 이야기를 가진다고 믿는 편이다. 지나간 영화에 대해 떠올리는 것도 마찬가지일 텐데 영화 보기를 멈추지 않는 한 계속해서 새로운 영화들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 기억의 방이 있다면 끊임없이 확장되고 늘어나는 형태일지 어느 순간 그것이 예고 없이 멈춰버릴지는 모르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생각하다 보면 그런 두려움 비슷한 것이 생겨날 때도 있다. 그날 그때 거기, 그 영화. 지금 분명 소중하고 각별하게 떠올리는 그 잔영이 어느 순간 새로운 영화들에 가려지고 덧대어 희미해져 버리지는 않을까. 생각과 감정이 다른 것들로 대체되거나 재편집되는 날들이 계속되어 무엇이 소중했는지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음. 영화에도 끝이 있고 음악에도 끝이 있으니 언제라도 그런 순간이 도래하고야 말겠지만 그럴수록 장면, 표정, 눈빛, 말과 말 사이, 눈과 귀로 들어오는 것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들이 앞선다. 그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지금 기억하고 있는 이 영화가 그저 많고 많은 것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게 되는 순간이. 너무 빨리 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잊게 되는 순간이. (2021.01.16.)
미국 드라마 역사상 최악의 왕따사건 (섹스앤더시티)
1998년, 존나 신개념의 미국 드라마가 등장함. 여자 친구들이 각자의 성생활에 대해 웃고 떠드는 내용의 발칙한 드라마였고 때문에 윗선의 압박이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 방송됨. 네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이 중에서도 '캐리 브래드쇼' 라는 칼럼리스트가 극의 중심에 있었고 캐리 역을 맡은건 사라 제시카 파커 하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거침없는 성생활을 지향하는 자유로운 '사만다 존스' 캐릭터의 인기가 높아졌고 이 역을 맡은건 킴 캐트럴 극의 중심이던 사라 제시카 파커(이하 사제팍)의 심기가 불편해지게 됨. 점점 사제팍과 킴 캐트럴(이하 킴)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는데 킴이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갔기 때문 이와중에 '미란다 홉스' 역을 맡은 신시아 닉슨(이하 신시아)과 사제팍은 12살 때부터 함께 연극을 하던 친구사이였고 이 둘은 자연히 동맹관계가 됨. 여기에 '샬롯 요크' 역의 크리스틴 데이비스(이하 클쓰)가 합류하면서 세 명은 친목을 형성하고  사제팍과 긴장관계에 있었던 킴이 자연히 배제되면서 존나 길고 지독한 따돌림이 시작됨. 시즌 1~2 까지는 그나마 연출자였던 대런 스타가 킴의 능력을 지지했기 때문에 크게 문제화 되지 않고 신경전 정도로 지나갈 수 있었지만 시즌3 부터 연출자가 바뀜 사제팍과 친구인 마이클 패트릭 킹이 새로운 연출자로 오게 되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고 아예 사제팍이 제작자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드라마의 주도권은 완전히 사제팍에게 넘어감. 사제팍은 신시아와 클쓰를 매번 자신의 트레일러(대기실)로 초대했고 이 와중에 킴의 캐릭터인 사만다는 갈수록 노출씬과 섹스씬이 많아져 킴은 따돌림+많은 노출씬의 이중고를 안고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었음. (사제팍이 작품에 손을 대면서 분량 및 노출 수위 등 캐릭터 간 불합리가 심해졌다는 말이 많지만 이건 명확한 증거가 없으니 넘어감, 드라마를 보면 각자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임...) 드라마 보면 사제팍은 노출 한번도 없고 신시아 클쓰 가슴노츨 한번씩, 킴은 진짜 심했음 헤어 노출까지 함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서 막바지 시즌들에서는 스태프들 조차도 킴을 따돌리는 분위기가 생겼고 심지어 분장실에서도 킴에게 사적으로 말을 거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함. 단적인 일화로는 뉴저지의 애틀랜틱 시티에서 촬영을 하게 되자 사제팍은 바로 아파트를 렌트하고 여기에 신시아와 클쓰가 함께 머무르게 했지만 그들은 단 한번도 킴을 부르지 않았음. 나중에 문제가 되자 HBO(방송사)는 킴은 결혼을 했기 때문에 따로 머물렀다며 변명으로 얼버무렸으나 사실상 말이 안되는 내용이고 그냥 존나 따돌린거. 내부 잡음과 별개로 드라마는 시즌을 거듭하면서도 승승장구 했고 거대한 팬덤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킴은 끝까지 계약을 이행하며 홍보 인터뷰 등에서도 절대 불화를 인정하지 않고 서로 좋은 말만을 나눔. 시즌6을 끝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리게 되고(1998~2004) 제작진과 배우들은 모두 아쉬워하며 재계약을 원했으나 지난 6년간 지독히 시달렸던 킴은 당연히 거부했고 시즌7은 무산됨 여기서라도 멈췄어야 했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은 의기투합해서 영화 제작을 희망했음. SATC에 출연한 배우들 모두가 이 시리즈 외에 이렇다 할 커리어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들 모두는 영화로 그 명성과 수익을 이어가고자 했고 한마음 한뜻으로 뭉칠 수 있었음. 물론, 걸림돌은 킴이었음. 투명인간 취급 받는 촬영장에서 꿋꿋히 연기하고 심지어 노출신, 베드신에 시달리느라 킴은 매우 힘들어하고 자주 울었다고 함. 거의 살신성인으로 연기한 것에 비해 계약했던 페이도 낮았고 킴으로서는 영화에 참여해서 또 다시 수모를 당할 이유가 없었음. 그러나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팬들과 언론이 영화를 원하는데다 관계자라는 이들의 입을 빌려 "킴이 많은 돈을 요구해서 영화를 못만들고 있다"는 식의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당연히 팬들은 킴을 비난함. 결국 감당하지 못할 비난에 직면한 킴이 영화에 합류하게 되었고  킴의 측근은 "킴이 마지못해 계약서에 싸인했지만 그녀는 정말이지 원하지 않는다. 킴은 6년간 사라 제시카 파커로부터 끔찍한 대우를 당했다고 느끼고 있다." 라고 말함. 말도 섞지 않는 두 배우가 다시 뭉쳤지만 영화는 성공했고 세계적으로 4억 1500만 달러를 벌어들임. 신난 제작진과 배우들은 다시 두번째 영화를 준비함. 얼탱이가 없는 킴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통보했으나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됨. 킴이 높은 돈을 부르며 디바 놀이를 한다는 기사가 돌았고 팬들은 "또 킴이냐!" 면서 비난. 사실 드라마가 끝나고 첫 영화 조율 당시 킴이 연봉 인상을 요청한건 너무나 당연했고 드라마를 모두 봤다면 모두가 이유를 알 것이라 생각함. 그 정도의 노출씬은 존나 멘탈을 찢어(...) 결국 킴은 내키지 않았지만 두번째 영화에도 참여할 수 밖에 없었음. 영화의 퀄리티는 바닥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충성도 높은 팬덤을 보유한 그들의 영화는 3억 달러의 수익을 내며 또 성공해버렸고(ㅅㅂ) 죽지도 않고 또 오는 각설이마냥 섹앤시 배우와 제작진들은 즉시 세번째 영화를 준비함. 2010년, 당시 킴의 나이는 이미 54세였고 사실 킴은 나머지 세 배우보다 약 10살 가량이 더 많았음.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던지 킴은 끝내 영화를 거부했고 2017년, 긴 줄다리기 끝에 최종 무산됨. "실망했다. 우린 아름답고, 가슴아프고, 더 즐거운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사제팍이 이런 먹먹문 늬낌의 소감 발표를 하던 바로 그 날, 익명의 출처를 요구한 기사가 또 떴는데 또 다시 킴이 돈을 요구하고 왕 대접을 원한다는 찌라시ㅋㅋㅋㅋㅋ 거의 20년을 꾹 참고 있던 킴이 존나 흑화하기 시작하고 기사 보고 빡쳤는지 바로 트위터에 반박함. 내가 뭔가를 ^요구^ 했다면 영화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 그것 뿐이었죠? 심지어 지난 2016년도에 이미 안하겠다고 말하고 끝난 일이죠? 올. 존나 쎄진 킴. 그러나 팬들과 언론이 끊임없이 섹앤시3을 언급하며 킴을 비난했고 흑화한 킴이 피어스 모건쇼에 나와서 지난 모든 일을 나긋하게 폭로함ㅋㅋㅋㅋㅋㅋ - 우린 한번도 친구였던 적이 없었다. 그저 동료였고, 어쩌면 더 건강한 관계였다. 공과 사를 구분할 수 있었으니까. - 사라 제시카 파커... 분명 그녀는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녀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 나의 나이는 이미 61세다.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하는 시기라고 판단했다. 등등... 존나 담담하게 맞는 말 대잔치 해서 모두들 충격받음 당하고 있을 수 없는 사제팍은 방송에 나와 해명하기 시작하고 - 슬프고 화가 난다. 나는 우리의 경험을 그렇게 기억하지 않는다. - 같이 촬영한 세월이 몇 년인데 개인적인 대화가 없었겠나. 등등... 약간 음오아예... 소리 나오는 해명을 하고 다님. 누가봐도 폭로전의 승자는 킴이었고 이걸로 킴의 지난 20년 설움이 다 씻기는 듯 했으나 2018년, 킴의 남동생인 크리스 캐트럴이 실종되었다가 사망한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함. 킴은 애타게 동생을 찾았지만 끝내 사망한 것을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고 깊은 슬픔에 잠김. 이에 대해 신시아와 사제팍이 킴의 SNS에 글을 남기는 것으로 애도를 표했는데 킴은 신시아에게는 걱정해줘서 고맙다며 적당히 댓글을 달았지만 사제팍의 댓글은 무시하... ...는 줄 알았지만 더 이상 참지 않기로 했는지 다음날 킴은 작정하고 SNS에 이런 글을 올리는데 이 비극적인 상황에 너의 사랑이나 응원따윈 필요없어 @사라 제시카 파커 오늘 어머니가 나에게 그러더라. "그 위선적인 사람은 대체 언제쯤 널 놓아준대니?" 니가 지속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니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계속 떠올리게 만들어.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면, 확실히 말할게. 너는 내 가족이 아니야. 너는 내 친구도 아니야. 그러니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너의 위선적인 '착한 소녀 이미지' 만드는 것에 나의 비극을 더 이상 이용하지마. 누가봐도 분노를 꾹꾹 눌러담아 쓴 것이 분명한 킴의 인스타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음. 1998년에 드라마 촬영하면서 시작된 따돌림이 2018년 킴 캐트럴이 대폭발 할 때까지 지속된거 아는 사람 별로 없더라. 이러한 폭로들을 끝으로 대부분 킴은 대체 그 긴세월 어떻게 견뎠냐 하면서 킴을 위로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지금은 서로 먹금하기로 하면서 대충 마무리 된듯. ++ 섹앤시 3편 제발 찍어달라는 팬한테 정중히 답변하는 킴 팬 : 킴, 섹앤시 3편 출연 해주세요 제발요ㅠㅠ 킴 : 저는 못해요. 제 마음이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네요. 전 계속해서 일해왔어요. 61살은 53세나 41세가 아니에요. 사만다를 연기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녀는 나의 영웅이죠. 하지만 저는 이제 쉼을 원해요. 지난 몇년간처럼 힘들게 일하고 싶지 않아요. 보다 덜 바쁜 삶을 원합니다. 제가 내린 결정은 현재의 제 삶을 반영하고 있고 불행하지 않다면 그 결정을 바꿀 수 없어요. 부디 절 이해해주시길 바라요 킴은 정말 섹스 앤 더 시티 3 제작을 원한다면 새로운 사만다 배우를 캐스팅하라고 인터뷰도 했음 Good for you, Kim. 디미토리 펌 ㅊㅊ 더쿠 모야 사제팍 ㅡㅡ 이거 나름 해연에 관심 있는 사람들한테는 유명한 얘기인데 오늘 사만다 없이 섹앤시 새 영화 제작한다는 기사 뜬 거 보고 끌올함 ^^ 진짜 징글징글하네 ㅇㅇ
한국적인 매력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는 드라마 킹덤의 칼갈은 연출
이날 김성훈 감독은 "'킹덤'은 일단 해외 팬들에게도 통할 것이라는 그 믿음 속에서 찍었다. 나름 김은희 작가님이 7년 전부터 구상을 해온 작품이다. 수많은 고민이 있었다"라며 "하지만 김은희 작가님이 잘했던 방식, 저는 제가 잘하는 방식으로 임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넷플릭스 팀과 화상 회의를 계속했다.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있더라. '어떻게 고쳐라'가 아닌, 이해할 수 있을까? 등 질문을 많이 던져주셔서 그때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불안감을 해소시켰다"라고 전했다. 처음으로 사극 연출에 도전한 것에 대해선 "사극의 맛이라고 해야 하나, 한국의 미를 보여드린다는 점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자긍심이 들더라"라고 얘기했다. 김성훈 감독은 "넷플릭스 측에서 처음에 포스터 콘셉트 아트를 짜왔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소품을 다 일본, 혹은 중국 것을 가져왔더라. 우린 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나. 그런데 그분들 입장에선 우리의 기와, 칼 문양을 아예 몰랐다는 거다. 그때 우리의 이미지가 이렇게 받아들여지는 구나 싶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책임감과 사명감이 생겼다. 한국적인 매력을 서사에 잘 엮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외국 팬들에게 한국의 500년이 저랬구나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려 했다"라고 말했다. 출처ㅣ소울드레서 + 이때다 싶어서 영상미 끝장나는 장면들 모아서 추가했어요 *_* 언제봐도 킹덤의 영상미는 . . T_T 최고 아닌가요 ? 이런 아름다운 나라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 !
현재 미국에서 난리난 영화
MINARI 2020 낯선 땅, 미국 알칸소로 이민오게 된 한국가족 이야기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뿌리 내리는 미나리같은 가족의 여정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정이삭 감독은 재미교포이며, "자기의 어린시절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 맞지만 재미교포 가족의 이야기만은 아니며, 모든, 보통 가족의 이야기일 것이다." 라고 말함 새로운 시작과 성공을 보여주고픈 아빠 "제이콥" 아이들만을 생각하는 엄마 "모니카" 가족을 이해하는 의젓한 큰 딸 "앤" 어린 아이들을 위해 함께 이민 온 할머니 "순자" 그리고 "할머니한테서 한국냄새나!!!!!!!" 그런 할머니와 모든 상황이 영-못마땅한 막내아들 "데이빗" 짜디짜다고 유명한 로튼토마토 100%기록 최고권위 독립영화 시상식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의 영광인 대상, 관객상 수상 덴버영화제 2관왕 등 전 세계 31관왕 74개에 노미네이트 된 쾌거를 보여 줌 (너무 많아서 나열을 못하겠어) 윤여정 배우는 미국에서 제일 권위있는 연기시상식인 샌디에이고,뮤직시티,디스커싱필름 등등 오스카 여우조연상으로 유력하게 점쳐지는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제치고 11관왕에 오름 (너무 많아서 역시 나열을 못하겠음) 기생충과 비슷한 노선을 밟고있고 아니, 기생충 보다 성적은 더 좋음 그러니 당연히 골든글러브 작품상, 오스카 작품상을 기대해볼만함 그 러 나 기생충과 가장 큰 차이점은 저 영화은 한국영화가 아니라 미국영화임 감독도 미국, 제작사도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 한국인들이 출연한거야 하지만 골든글러브 작품상 후보에도 못 올라가고 외국 작품상 후보로 들어감;; (홍인들이 또 홍인같은 짓 했음) 근데 골든 글러브측도 당황한 기색임 구냥 아시아영화인 줄 알고 개무시했다가 영화 호평 자자하고 상 다 휩쓸고 이미 미국내에 minarifam도 생겨서 욕 존나 처먹는 중.. ((글쓴생각 ::::: 기생충 오스카 수상이 확실히 홍인들 인식면에서 충격을 주긴 한 듯;)) 순자 : "아이구~예뻐라~" 데이빗 : "전 예쁜게 아니라 잘생긴 거에요!!!!!!!!!" 부국제에서 봤는데 너무 좋았어-! 한국에선 3월 개봉 한국영화팬들이 팍팍 기살려줬음 좋겠어 한예리 윤여정 배우님 🙏더 많은 수상을 기원합니다🙏 ㅊㅊ 쭉빵카페
[라이트하우스] ‘현타’보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 욕망의 여정으로 보는 원초적 공포 ※ 영화 <라이트하우스>의 결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 공포영화에서 공포는 주로 ‘어떻게’ 오는가. 우선 어제와 다른 오늘, 익숙한 시공간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괴물 또는 괴이한 무언가가 스며들겠지. 가족과 친구들, 주인공의 미래가 그것들에 갉아 먹혀갈 때 공포영화는 그 상황과 괴물을 공포의 근원으로 삼을 터. 이때 공포감의 운동성은 ‘칼’의 움직임과 닮았다. 평온의 막을 베고 침투해서는 난도질, 그러다 훅, 관객의 영역까지 찌르는 모양새. 물론 이 물리적 흐름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화들은 있다.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라이트하우스>(2019)도 그중 하나. 이 영화에는 침입, 침투, 그 무엇이든 쳐들어와 헤집는 운동성이 없다. 일상과 비일상 간 대조도, 공포의 제작 및 전달자도 부재하다. 그럼에도 국내외 영화 소개 페이지들은 이 작품을 ‘호러’로 분류 중. 실제로 제법 무시무시하다. 공포 전달용 일반 회로가 장착되지는 않았지만 무섭다는 말, 이 공포감의 정체는 뭘까? # 욕망과 욕망의 오디세이아 흑백으로 촬영된 <라이트하우스>는 20세기 초반의 두 등대지기, ‘고참’ 토마스 웨이크(윌렘 대포)와 ‘신참’ 에프라임 윈슬로(로버트 패틴슨)에 관한 이야기다. 에프라임은 등대 불빛을 교대로 관리하길 바라지만 토마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한 채 불빛을 독차지한다. 두 남자, 억누름과 밀어올림.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영화 중간의 짧은 숏 하나, 거꾸로 보이는 등대가 화면이 뒤집히면서 바로 선다. 이를테면 발기하는 페니스. 실제로 로버트 에거스는 여기다 진짜 페니스를 찍어 붙이려 했으나 무산됐다고 한다. 다시 ‘두’, ‘남자’임을 떠올리자. 그러니까 <라이트하우스>는 발기된 두 개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외부 ‘침입’보다는 서로 간 ‘경합’이 어울릴 듯하다. 욕망은 둘인데 탐할 수 있는 실체적 대상, 즉 등대 불빛은 하나인 상황. 영화는 주로 욕구불만인 에프라임의 의식 흐름을 좇는다. 훔쳐보기는 수순일까. 그는 등대 불빛 칸에서 토마스가 인어인지 거대 촉수인지 모를 무언가와 ‘교미’ 비슷한 것을 하는 걸 보고, 자신을 대입시키고, 분출하고, 분노한다. 이런 식이다. 단, 경험 없는 상상은 결핍을 키우기 마련. 욕망은 끝내 해소돼야 한다. 어떻게? 나를 가로막는 토마스를 없애서라도. 애초에 이럴 운명이기는 했다. 이 등대섬은 그러라고 장만된 무대 같다. 폭풍우는 멈출 기미가 없으며 교대팀의 배는 오지 않는다. 고립은, 공간 감각은 물론 시간 경과에 대한 인식마저 도려낸다. 며칠 혹은 몇 주가 흘렀는지 시간적 배경을 그들도 관객도 모를 지경. 게다가 각자 과거의 고백과 의심이 뒤섞여 두 사람의 정체성마저 뭉개졌다. 에프라임의 ‘욕구 불만족’과 토마스의 ‘수호 의지’만이, 이 우주를 통틀어 남은 유이한 키워드인 것 같다. ‘이때 토마스는 누구인가?’ 토마스는 해독 불가한 모종의 구전 신화를 읊는 등 무언가에 홀린 듯하면서도, 일이 느리고 게으르다며 에프라임을 구박하고 말대꾸 시 급여를 안 주겠노라 협박까지 한다. 원시성과 현실성을 두루 갖춘 억압. 말은 안 통하는데 위협은 실재적이다. 익숙하지 않은가. 이를테면 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폭압적 부모, 스승, 선배, 상사, 또는 그 비슷한 무엇들. 안타깝게도 이 토마스‘들’은 특정한 마법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 우리, 그리고 우리의 욕망이 그렇듯. 두 욕망의 역학관계상 나중 것에 의한 전복은 필연이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에프라임은 마침내 등대 불빛을 오롯이 향유한다. 결과는? 그는 불빛을 보며 쾌락인지 고통인지 모를 표정으로 산화하듯 절규하다가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아마도 죽겠지. 불빛의 정체와 그 순간의 감정은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 ‘현타(현실 자각 타임)’와 ‘죽음’, 언제나 참 결자해지의 의지일까. 로버트 에거스 감독은 여기다 최종 숏을 붙임으로써 이 등대 치정극의 ‘장르’는 규정 지어준다. 바로 눈 하나를 잃은 알몸의 에프라임이 바닷가에 널브러져 죽어 가면, 갈매기가 그의 내장을 뜯어먹는 숏. 이때의 에프라임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한테 전해줬다가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게 된 프로메테우스와 노골적으로 닮았다. 이를테면 ‘신화’로 박제된 ‘소멸’의 엔딩. 왜? 에프라임이 욕망했기 때문에. 오르가즘은 태생적으로 증발하는 것 아니던가. 거 ‘현타’ 한번 오지다. 한걸음 더. 욕망의 카테고리 중 가장 큰 것은 ‘숨’의 지속, 즉 생(生)에의 의지다. 이렇게 보면 증발하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요 기다리는 건 죽음이 된다. 선점자인 토마스도, 후발주자인 에프라임도 모두 죽었다. 쾌락이든 목숨이든 일단 점유한 자들은 길게 머무를 수 없다. <라이트하우스>에서 공포란, 곧 소멸할 쾌락을 좇도록 디자인된 우리의 방향성, 궁극적으로는 모든 것의 너머에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 셈이다. 이 정도로 근원적인 공포감이 기존 호러영화들의 운동성을 짜잔, 두르기란 어렵다. 보다 날-공포인 만큼 그 성질에 대한 힌트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찾아야 한다. 날것, 태초… 그렇게 인류의 출현부터 먼 미래까지를 ‘꿰어’버린 영화로 가보자.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이 걸작 SF를 꺼내든 건 이 영화에 인류사를 유인원 시절부터 촉발시켜온 검은 돌기둥 ‘모노리스’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색이 입혀지기 전부터 우리 생을 운용했을, 절대적 배후 같은 물질. ‘증발’과 ‘소멸’, ‘죽음’ 따위의 <라이트하우스>적 공포는 바로 이 영험한 유물에 새겨진 지침처럼 존재한다. 애초에 운동성을 띨 필요가 없었던 것. 가라사대, 침투하지 않아도 그저 기다리면 인간들이 도착하리니. ← 공포계에 짜라투스트라가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위)<라이트하우스>의 최종 숏 / (아래)<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모노리스’ # 이보다 선명한 미래는 없다 로버트 에거스는 장편 데뷔작 <더 위치>(2016)에서 마녀를 공포감의 근원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선택되는 모종의 출구로 다뤘다. 무서운 건 모든 걸 왜곡하는 렌즈, 즉 인식 불능에 빠진 ‘맹신’의 시대였다. 그리고 <라이트하우스>에서는 비율 1.19:1의 흑백 프레임에다 ‘소멸론’을 인류의 기원신화인 양 보존해놨다. 말로 옮기자면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정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욕망하고 살아가는 우리 앞에, ‘현타’와 ‘죽음’보다 선명한 미래가 또 있을까? ⓒ erazerh ※ 이 글은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LUCKY CHAN-SIL, 2019) 쓰잘데기로 환원될 수 없을 삶
제목 : 찬실이는 복도 많지(LUCKY CHAN-SIL, 2019) 감독 : 김초희 출연 : 강말금, 윤여정, 김영민, 윤승아, 배유람 외 국가 : 한국 러닝타임 : 96분 시작 전에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짧은 찬사부터 보내겠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정말 오랜만에 본 예쁜 영화였습니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영화는 막상 별 이야기가 아닌 것 같으면서도 잔잔한 울림도 있고 아무튼 저는 참 좋았습니다. 상업영화의 세련됨은 없지만 촌스럽더라도 우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독립영화 특유의 그런 느낌도 좋았고요. 솔직히 살짝 지루한 감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정말 X 3 좋았습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 결코 '쓰잘데기'로 환원될 수 없을 삶 그 사람 무슨 일하는데? 그래서 연봉이 얼만데? 사람의 가치를 경제력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경제적 '쓰잘데기' 로 규정하는 것은 속물 같지만 동시에 잔인하도록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걔네 집 아파트 베란다에 장미꽃이 있니 빨간 벽돌집이니의 감성적인 이야기보다는 '얼마짜리' 집이냐, 자가냐 전세냐 월세냐의 경제적 지표가 어른들에겐 더 많은 걸 알려줍니다. "사람은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명제는 참이지만 동시에 "빵 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라는 명제는 더 잔인한 참이거든요. 세상 천지에 돈 아닌 게 없죠. 그러니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을 어린이 여러분들은(아무도 없겠지만) 어른들이 너무 돈 돈 거린다고 미워하지 말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 품었던 막연한 환상과 달리 세상은 그리 천진난만하지 않습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리는 일 따위는 아무런 쓸모도 없고 먹고살려면 좋든 싫든 비행기가 추락해 사막에 표류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파일럿이 돼야만 하죠. 정말 많은 어른들이 먹고살려고, 남들에게 '쓸 데 있는' 일을 하는 '쓸 데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 아등바등 기를 쓰며 살아갑니다. 좋은 집, 좋은 차 기타 등등의 것들을 위해 말이죠.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 '찬실이(강말금)'는 어린 왕자의 주인공보다는 어린 왕자 같은 인물입니다. 오랜 세월 열정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녀에게 남은 건 별게 없습니다. 사람 넷이면 충분한 단출한 이삿짐, 그 속에는 영화인의 꿈을 꾸게 해준 철 지난 비디오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열심히 일했건만 집도 차도 없는 그녀는 정말 본인의 말처럼 땡전 한 푼 없이 망해버렸습니다. 맘을 다잡고 그래도 모처럼 열심히 살아보려는데 연애도 뜻대로 잘 안돼, 재취업도 잘 안돼 뭐 되는 게 없어요. 영화사 대표는 굳이 당신이 아니라 누가 PD를 해도 상관없이 영화는 만들어진다며 웃는 얼굴로 사람을 맥입니다. 말하자면 "메시가 혼자 축구 다 한 거지 뭐 다른 애들이 별게 있겠니?"의 느낌이랄까요. 연애에서 자존감을, 대표님과의 만남에서 자존심을 두드려 맞고 그로기 상태에 빠진 찬실이의 멘탈. 그녀는 이사 간 집에서 만난 장국영 귀신의 조언대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해 깊이, 아주 깊이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장고 끝에 찬실이는 결심합니다. 영화를 버리기로 말이죠. 아름다운 이름과는 다르게 찬실이의 젊음을 다 바쳤건만 아무런 '영화' 도 가져다주질 않았던 영화를 버리고 늦었지만 비로소 부귀영화, 입신양명의 다리가 되어줄 '쓰잘데기'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했습니다만 그녀의 어린왕자병이 도집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는 영화일. 대표님 같은 속 모르는 남들 눈에는 하등 쓸데 없는 일로 비친다 해도 본인은 죽어도 영화가 아니면 안 되겠답니다. 결국 찬실이는 지구인의 바람직한 행동양식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고향 소행성의 법대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하기로 합니다. 영화는 이야기합니다. 쉬이 이룰 수 없는 꿈에 매달려 허송한 세월은 다시 돌아올 수 없어도, 주인집 할머니의 말처럼 "사람은 꽃처럼 다시 돌아올 수 없다" 해도 포기 않는 삶은 아름답지 않겠냐고. 본인을 진정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삶일 수 있지 않냐고 말이죠. 사랑도 돈도 명예도 모두 쉬이 가질 수 없다고 해도, 끝내 가지지 못한다고 해도 본인을 응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다면 세상의 눈에는 쓸데 없는 삶으로 비치는 생(生)도 그럭저럭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더하여 우리의 가치를 '쓰잘데기'로 규정하고 삶을 단지 쓰잘데기만으로 환원하기엔 아깝게 버려지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못생긴 모과를 올려다보며 잡생각에 빠지는 일은 하등 쓸데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였다고 일축해버릴 영화를 보고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일 역시 하등 쓸데 없는 일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쓰잘데기가 없다고 해서 본인이 사랑하는 행위들을 죽여버리고 지극히 계산적으로 쓰잘데기만 챙기는 건 또 옳은 일입니까. 역시 지지리 철 못 드는 저란 인간은 이런 차가운 계산기 같은 분들에게 술 취한 어린 왕자처럼 한 마디 쏴주고 싶습니다. 당신드뤼 노을의 낭만을 아러?! 쉬1불, 의자 위치 바꿔가면서 하루종일 보는 그 맛을 아냐고. 마, 느그 집엔 바오밤나무 없제?! 책을 열심히 읽지 않으신 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사실 어린왕자 개정판에는 생땍쮜뻬뤼 행님이 주정뱅이 행성에서 주정뱅이와 어린왕자가 양장피 안주로 빼갈에 맥주를 말아마시는 장면을 넣어놓으셨거든요. 물론 넝담ㅋ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세상의 모든 루저들을 위한 영화였습니다. 스스로를 위너보다는 루저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저 역시 영화를 보며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를 쓰겠다는 바보 같은 꿈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 사이, 본인이 비대한 꿈과 비루한 날개를 가진 불쌍한 닭같이 느껴질 때가 많았고 아예 접어야 하나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 차에 생각도 못한 영화에서 위로를 받네요. 영화를 다 보고 생각해 보니 닭은 날지 못해도 어느 새보다 기똥차게 울어제낄 수 있는 새라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시계가 없었을 그 시절에 닭 울음소리는 누군가에게는 소음이었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침을 깨우는 고마운 소리였을 겁니다. 감히 제 글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는 그런 작은 바람 하나로 또 쓸데없는 글을 몇 자(몇 자라고 하기엔 조금 양심 없는 분량인가요?) 적어봤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소음에 불과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면 울음을 멈추진 말아야겠죠.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서 문득 예전에 본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그 때도 비슷한 위로를 받았었는데 말이죠.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뷰도 조만간 업로드 하겠습니다. 혹시나 까먹을지도 모르니 우선 원문 주소를 첨부해 놓겠습니다. https://blog.naver.com/fox11142/221972259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