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독일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만평이다. 시종이 메르켈 파라오(!)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이고, 옆에는 휠체어에 타고 있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부장관의 모습이 보인다(그가 원래 하반신 마비인 거 알고들 계셨나?).
“파라오 폐하, 대신 각하(Wesir라 적혀 있는데 이거 원래 아랍어다. 고증은 잠시 잊자). 검정색 제로가 무척 인상적이기는 한데, 검정 제로를 위해 우리 예산 전체를 희생하는 편이 과연 현명할까요?”
검정 제로가 뭔고 하니, 바로 Schwarze Null, 재정 흑자 혹은 균형 재정이다. 볼프강 쇼이블레는 올해 초(1월 30일) 분데스탁(하원을 의미한다. 쇼이블레도 하원의원이다)에서 새로운 부채 차입이 없을 것이라면서(참조 1), 2015년 재정을 균형, 혹은 흑자로 돌리겠다고 선언했다.
잘들 모르실 텐데, 독일도 그동안 재정흑자국은 아니었다. 워낙 경제가 견실하기 때문에 유지가 되어온 것 뿐이며, 마지막 재정흑자를 올렸을 때가 60년대였었다. 독일의 유로파이터가 왜 못 나는지 납득이 가실 것이다. 거의 모든 부분의 지출이 축소가 되며, 신규 지출도 대폭 줄어든다는 의미다.
가능할까? 재정적자여도 큰 탈이 없는 나라가 독일인데, 무리하게 재정흑자를 이룩하는 것이 과연 현명할까?가 만평의 의미이며, 이 만평이 실린 잡지는 저번에도 말한 듯 하지만 독일 기민당을 지지하는 우파 잡지이다. 우파마저도 그 계획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참조 2). 다름 아닌 유럽 경제를 혼자 떠맡은 독일이기 때문이라서다.
가령 최근 독일을 방문해서 쇼이블레와 함께 웃는 사진이 찍힌 77년생,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부장관은 이번 주 월요일 아주 영악한 말을 했었다.
“프랑스가 500억 유로 아낄 테니, 독일이 500억 유로 투자하면 좋은 쎔쎔.(« 50 milliards d’euros d’économies chez nous, 50 milliards d’investissements chez eux, ce serait un bon équilibre »)”(참조 3)
저거 맞는 말이냐, 틀린 말이냐? 물론 자세한 걸 아는 사람들에게는 틀린 말일 수 밖에 없다. 독일이 500억 유로 지출을 새로 늘린다고 하여, 그게 고스란히 프랑스의 경제성장으로 전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독일이 새로 다리와 철도를 짓는다고 하면 프랑스가 아니라 폴란드의 노동시장을 뒤흔들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저 발언은 지극히 옳다. 전직 로스차일드 투자은행 직원이었던 마크롱이 그 사실을 모르고 했을 리가 없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을 꼬실 수 있었던 정치력(…)을 십분 발휘한 것이다. 누구든 간에 저 말을 들으면 곧바로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프랑스는 긴축을 하되, 독일은 확장을 해야 하는구나.
물론 내가 좋아하는 칼럼니스트 뮌샤우는 안 좋은 쪽으로 그 발언을 해석했다(참조 4). 원래 유로 국가들끼리 협력해서 경제정책을 세워야 하거늘, 독일이 이른바 “검정 제로” 정책을 계속 추진하되, 그는 프랑스의 재정 적자를 독일이 묵인하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즉, 서로의 기괴한(?) 행태를 인정하는 쪽으로 이상한 협력이 되리라는 얘기다.
그의 말이 맞다고 본다. 유로는 돈만 합쳐 놓았지, 경제/재정 당국을 합치지는 않았다.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이 메르켈을 뽑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두 나라가 서로를 믿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서로 적당히, 좋게 좋게 봐주면서 협동(?)하는 이상한 체제가 되어간다는 얘기다.
다만 양식이 있는 여론이, 독일의 “검정 제로”가 옳지 않다는 쪽으로 나오고 있기도 하고, 프랑스 예산에 대해서는 장-클로드 융커가 날을 세우고 있으니(참조 5)… 희망(?)이 없지는 않지만, 융커의 EC는 개별 회원국의 재정에 “권고적 의견(UN AVIS CONSULTATIF)”만을 줄 수 있다.
즉, 쇼이블레와 마크롱 사이의 (정확히는 미셸 사팽으로 바꿔야 하겠지만 마크롱이 훨씬 젊고 잘생겼다) 야합(!)이 더 확률 높다는 얘기. 유럽이 계속 글 소재를 제공해 줌에 감사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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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링크
1. Schäuble will Stopp der Neuverschuldung(분데스탁 의사록): http://www.bundestag.de/dokumente/textarchiv/2014/48930620\_kw05\_de\_finanzen\_haushalt/215142
2. Schwarze Null und rotes Nullkommanix: http://www.cicero.de/berliner-republik/haushalt-schwarze-null-und-rotes-nullkommanix/58375
3. Une relance allemande ne doperait pas la France: http://abonnes.lemonde.fr/economie/article/2014/10/23/une-relance-allemande-ne-doperait-pas-la-france\_4511310\_3234.html?xtmc=schauble&xtcr=1
4. S.P.O.N. - Die Spur des Geldes: Warum die Franzosen recht haben: http://www.spiegel.de/wirtschaft/soziales/wirtschaftspolitik-koordination-funktioniert-in-europa-schlecht-a-998128.html
5. Bruxelles prête à aller au clash sur le budget français: http://abonnes.lemonde.fr/economie/article/2014/10/23/bruxelles-prete-a-aller-au-clash-sur-le-budget-francais\_4511600\_32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