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들로 대표되는 장기간의 혼란기가 저물어 가던 기원전 4세기,
당시 유라시아 세계를 뒤흔들어 놓는 대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불세출의 정복군주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3세 대왕의 등장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그리스의 군사 강국들을 시작으로 이집트, 페르시아 등
당대의 대국들을 모조리 깨부수며 남아시아까지 진출, 대제국을 건설하고
오늘날 헬레니즘 문화라고 불리는 그리스풍 문화를 전파해
훗날 극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대이동으로 그리스 문화 뿐만 아니라 역방향의 전파도 이루어지게 되는데,
제국의 관리를 위해 그리스계 이주민들이 제국 각지에 흩어지게 되면서
그리스인들 역시 전세계의 문화를 접하고 받아들이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때 세계의 넓음을 깨닫고 새로운 문화에 감명을 받은 그리스 여행자들이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계의 여러 절경과 랜드마크가 알려지게 된다.

이를 최초로 모아 정리한 기원전 2세기 시인 안티파트로스는
세계의 명물 중에서도 7개의 건축물을 최고로 소개했다.
"나는 전차들이 그 옆을 따라 경주를 할 법한 난공불락의 바빌론 성벽과, 알페우스 강변의 제우스를 목도하였다. 공중정원과, 태양의 거상과, 장대한 인공산이라 할 만한 높다란 피라미드와, 거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보았다. 그러나 내가 구름에 닿을 만큼 우뚝 서있는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전당을 보았을 때, 이 모두가 그 그늘에 가려졌으니, 태양마저 올림푸스 밖에서 그와 견줄만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기원전 4000년경 부터 이어져 온 세계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바빌론은 기원전
그야말로 세계의 수도라고 불릴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게 멸망당한 후에도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대도시 중 하나로 손 꼽히던 바빌론은
이후 헬레니즘 제국의 수도로 대접받았다.

당시 압도적인 존재감의 바빌론은 바빌로니아에게 핍박받던 유대인들에게 제대로 찍혀
구약 성경에서 멸망해야 할 죄악의 도시로 온갖 저주와 디스를 당하기도 할 정도였으며
도시의 중심인 에테멘앙키 신전이 후일 야훼의 분노를 사는 바벨탑으로 각색된 바도 있다.
그 위용에 걸맞게 바빌론에는 7대 불가사의가 2개나 존재한다.


그 위에서 전차가 달릴 수 있다고 언급된 바빌론의 성벽은
놀랍도록 거대한 규모로 도시를 감싸고 있었으며
특히 가장 거대한 '이슈타르의 문'과 그 앞 개선로인 '행진의 거리'는
아름다운 외양으로도 유명했다.
청금석으로 화려한 푸른 장식을 두르고 용과 사자, 황소 장식이 늘어서 있었다.


또 하나의 불가사의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으로 앞서 본 바벨탑과 성벽을 모두 건설한
장본인인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기원전 7세기 아내를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고층 식물원이다.
왕비 아미티스는 초목이 우거진 고원지대였던 메디아에서 정략 결혼을 온 이후
황량한 바빌론에 적응하지 못해 향수병을 앓았는데 이를 치료하기 위한 선물이었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의 나선 수차와 유사한 방법으로 고층까지 물을 공급했다고 추정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 건물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도 한다고.

현재 터키에 위치한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는
정교하고 거대하기로 유명한 무덤으로 오늘날에도 마우솔레움이라는 단어가
영묘를 의미하는 고유명사로 남아있을 정도이다.
한 변의 길이가 125m에 달하는 정사각형 기단의 무덤이었다.
기원전 4세기 이 지방의 통치자였던 마우솔로스와 부인이 안치되었고
11~14세기 지진으로 파괴되어 이슬람 세력이나 십자군에게 석재를 털렸다고 한다.

무덤의 주인장은 대충 이렇게 생겼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은 기원전 5세기 제우스 신전에 바쳐진 신상으로
상아로 마감한 뒤 금과 흑단으로 치장한 12m 높이의 거상이다.
보는 사람들을 모두 압도하는 위용이 있었다고 하며
신전 천장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거대했으나 4세기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후
수십년 뒤 화재로 소실되었고 신전 역시 로마가 기독교를 채택하며 파괴되었다.


로도스의 청동 거상은 콜로서스라는 단어를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으로
태양신 헬리오스에게 승전 기념물로 봉해진 30미터가 넘는 동상이다.
기원전 3세기 로도스 섬 항구의 랜드마크였으나 56년만에 지진으로 쓰러지고
800년 후 이슬람 우마이야 제국이 뜯어내 유대 상인들에게 고철로 팔아버렸다.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안티파트로스가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최고로 뽑은 건물으로 무려 올림푸스에 견줄 정도로 찬양을 한걸 보니
상당한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자그마치 3번이나 다시 지어졌는데 그 중 두번째 건물은 웬 고대 관종이
병신짓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불을 질러 태워먹었다.
청동기 시절부터 존재했고 3세기 경 고트족에게 털리는 등 수난을 겪다가
역시 기독교화 된 로마에 의해 5세기에 폐쇄된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는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불가사의로
아이러니하게도 불가사의 중 가장 먼저 만들어져 최후까지 살아남았다.
높이 138.5미터에 외부 석회암과 금 도장이 남아있던 시절에는 146m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로서는 정말 경이적인 높이로 157m의 쾰른 대성당이 600년 만에 완공되기 전까지
3800년 동안 인류 문명의 가장 높은 건축물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26세기에 지어져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던 당시에도
2000년이 넘은 고대 유적으로서 외화 벌이의 주력 관광 상품이었다.

안티파트로스에 의해 선정된 초대 불가사의 이후 가끔 멤버의 변동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리아 파로스의 등대가 유명하다. 안티파트로스 입장에서는
워낙 자주 보던 건물이라 익숙해서 선정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던데
아무튼 130m의 높이에 300개의 방을 가지고 있었고
43km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밝아 후대에 불가사의 중 하나로 자주 뽑히고는 한다.
벼락이나 지진으로 자주 고생하다가 마침내 14세기 대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콜로세움은 서기 1세기에 완공된 건물으로 짬이 딸리는 편이라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일부 후대 기록에 선정되는 경우가 있다.
5만명 이상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경기장으로 공사를 기념하며
선배 불가사의들을 모조리 디스하는 행사시가 유명하다.
이건 좀 길어서 걍 나무위키 가서 보도록 하자


그 외에도 동 시대에 존재한 거대 건축물로는 마야 엘 미라도르의 라 단타 피라미드나
중국 진나라의 진시황릉 등이 있었지만 아무리 그리스 여행자들이라고 해도
거기까지 가보지는 못했기에 불가사의는 지중해와 중동에서만 선정되었다.
싱글벙글지구촌갤러리 ㅇㅇ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