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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천하 정난정의 기세에 따른 옷차림 변화 (드라마 내용 有)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주인공이었던 정난정의 옷차림을
어린아이 시절부터 외명부 최고의 자리, 그리고 죽을 때 모습까지 정리해보았어

정난정이 문정왕후와 함께 신분의 굴레를 깨고 기세등등해지면서
옷이나 가체(加髢)가 얼마나 화려해지는지 보자!

먼저 어린 시절 모습이야
옷도 비단 옷이 아닌 일반 서민들의 옷이야
정난정은 서녀이자 천출이었으므로 처음에는 이런 복색을 하고 나와


성장한 후에도 결혼 전에는 이렇게 소박한 서민들의 복장으로 나와

정난정이 잠깐 기생이 되겠다고
기방에서 일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때는 기생답게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있어
기방에 있긴 했지만 정식 기녀가 되기 전이라서 머리는 댕기머리야 ㅎㅎ

이때부터는 드디어 정난정이 문정왕후와 결탁하게 돼
문정왕후에게 당당히 당의를 하사 받고 궐을 드나들게 되지
무늬가 있거나 하지는 않지만
비단옷에다가 색깔도 화려하고 댕기도 넘 이뻐 ㅎㅎ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입궐 시에만 저런 비단 당의를 입고
일상 생활에서는 다시 소박하게 입고 생활해

이 때는 정난정과 윤원형의 혼례날이야
첩실이지만 문정왕후의 허락으로 혼례식까지 치름!!
첫날밤에 머리 내리기 전의 모습인데 가체 크기 좀 봐 ㅋㅋㅋㅋㄷㄷㄷ


이건 신방 차리고 신혼 생활 때의 모습이야
새색시답게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었어
이때부터는 비록 후실이지만 명색이 중전 오라비의 아내이므로
평상복도 비단옷으로 차려입어 ㅎㅎ
문정왕후 오빠인 윤원형한테 엄청난 사랑을 받고
문정왕후에게도 신임을 얻으면서 기세가 점점 올라가는 시점이야
저 빨간 치마 풍성하게 동그란거 너무 이쁨 ㅠㅠ

결혼하고 3일 뒤에 처음으로 두 사람이 문정왕후를 찾아간 날인데
확실히 결혼 전에 처녀 적 입었던 당의보다 훨씬 화려해졌어
가체에는 작지만 소소한 장신구를 꽂았어
난 개인적으로 역대 우리나라 조선 사극 중 여인천하 가체가 젤 이쁨!!

이건 당의가 아닌 평상시에 입는 한복인데 이 복색도 엄청 화려해졌어!!
첫번째 사진에 보면 윤원형 정실부인(이혜숙 배우, 사진 왼쪽 편)도 같이 있는데
정실보다 훨씬 화려한 옷을 입었지?
이게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후실이 정실보다 화려한 치장이 가능했는진 모르겠지만
드라마 상에서는 아마도 정난정의 높아지는 기세와 화려한 외모를
한복 차림이나 장신구 등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
(드라마 상에서 정난정은 지나가던 임금도 띠용할 정도로 절대 미색으로 나옴)


이 당의도 너무 예뻐......

이 당의는 자수가 없어서 자칫 소소해보일 수 있긴 한데
가체 장신구 보면 크기가 조금 커졌어 ㅋㅋㅋ
비단 때깔도 아주 윤기가 좌르르르르

평상복도 역시 정난정과 문정왕후의 힘이 커질수록 점점 화려해지지
소매와 옷깃을 보면 무늬도 엄청 화려하고
노리개도 보면 짱 큼!!
캡쳐가 잘 안 돼서 노리게가 잘 안보임 ㅠㅠ


요거는 아마 드라마 150부 동안 입고 나온 평상복 중에 가장 화려한 저고리일 듯!!
짱 화려한데 근데 또 강수연 배우와 엄청 잘 어울려ㅠㅠ
참고로 저 장면에서 저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대감들 주루룩 앉아있는 방에 탁 들어가서 겁나 큰소리로 호통 빵빵 치고 나옴!!

겨울이니까 밖에 돌아다닐 때는 저렇게 손도 넣고 다니구

요건 그냥 슥 보면 읭 그냥 소박하네;; 하겠지만
자세히 보면 누벼져 있음ㅋㅋㅋㅋㅋㅋㅋㅋ
부내 난다 부내 나

분홍색 저고리 비단 때깔 좀 봐.....


이때는 정난정의 기세가 오르다 못해 하늘을 찌를 때야!!
문정왕후와 손을 잡고 조정을 호령하던 대감들 하나씩 다 찍어내고 난리남
가체 장식 보면 예전보다 더 화려해지고 두개로 늘어남
거의 이 정도면 드라마에서 내명부 정1품 빈들과 비슷한 수준의 장신구임


정난정이 외명부 정1품 정경부인 자리에 오르기 직전의 모습이야
문정왕후의 허락 하에 첩실 자리에서 정실 자리까지 꿰차고
거기에 모자라 정경부인 자리에까지 오르는 순간인데
가체 장식만 봐도 정난정의 파워를 알 수 있어

정경부인 직첩 받는 순간의 모습!!

정경부인 자리에 오른 후의 모습이야
평상복이지만 옷깃이 화려하고 가체 장식도 역대급으로 화려해
정난정의 신분과 힘을 보여주는 복장인 것 같아

반면,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자기를 태어나게 도와준 스님에게
저 드디어 정실부인 자리에 올랐어요~ 하고 자랑하자마자
니가 찍어내면서 죽인 조정 대신들 중에 네 친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오열을 해...
옷과 장신구가 화려하고 신분이 높아졌지만 현실과 대비돼서 더 슬펐음..
문정왕후가 늙어 세상을 뜰 때쯤 정난정의 모습이야
정난정도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하얗게 세었어
이때부터는 왜인지 가체를 안 쓰고 나왔는데
실제로 저 시대 (명종 대) 때 가체를 안 쓴 채로 궐 출입이 가능했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드라마에서는 세월 따라 늙고 기세도 점점 기우는 상황을 표현하려 한 것 아닐까 싶어
옷 색깔도 예전의 화려한 색보다는 은은한 색을 입었어


문정왕후가 죽자마자 윤원형은 탄핵을 받았어
그래서 정난정은 윤원형이랑 같이 도망을 가는데
도망 가서의 모습이야
옷도 다시 초라해지고 가체 같은 건 당연히 없어 ㅠㅠ
정난정의 초라한 말로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지막으로 정난정이 죽기 직전의 모습이야
하얀 소복을 입고 바닷가에서 헤매다가 죽는데
한 때 문정왕후의 힘을 얻어 나라를 쥐고 흔들었던
젊은 시절 정난정의 화려한 모습과 크게 대비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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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방송에서 보나했는데.. 진짜 너무 안타까운 배우 ㅠ
강수연 님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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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매병'의 반전쩌는 사용 용도.jpg
일단 아래 사진을 보자 이건 "梅甁"이야 '매병'이라고 읽어 매병은 정의상 "아가리(도자기는 입구를 이렇게 표현함 ; 혹은 '구연부(口緣部)')가 좁고 어깨(구연부에서 몸통으로 내려가는 부분)가 넓고 풍만하며, 동체(몸통)가 저부(바닥부분)로 갈 수록 홀쭉해지는 형태" 를 말해 (아휴 길기도 해라) 우리가 아주 잘 아는 학 무늬의 청자야 이건 알다시피 국보🤩야 (정확히는 국보 제86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개인적으로 '매병'은 영화로 치자면 떡밥회수가 매우 잘 된 스릴러라고 생각하는데 입에서 어깨로 떨어지는 선은 완만한데에 비해 어깨에서 바닥으로 흘러가는 선은 매우 과감해서 활자로만 보면 균형감이 없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실제 도자기는 그 균형이 정말 잘 잡혀있잖아? 👍 완전 굳이지 굳 (마쟈 내 취향이야 그니까 굳임😋) ㅋㅋㅋ 문제는 "이게 실제로는 어떻게 쓰였을까🤔?" 야 우리가 문화재를 잘 이해하는 혹은 잘 감상하는? 그런 방향 중에 하나는 '이 유물이 그때는 어떻게 쓰였을까?'를 상상해보는거야 우리가 지금 '문화재'로 감상하는 대부분의 유물이 최초로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실용품'이었다는 것을 알면 꽤 재밌어 그래서 '매병'도 "실제로는 어떤 쓰임이었을까🧐?" 라고 상상해보는거야 우리가 이런 도자기를 '매병'이라고 부르지만 이 "매병"이라는 이름은 사실 18세기 중국 문헌에서나 확인할 수 있어 그런데 우리가 아는 '고려'청자의 고려는 918년. 그러니까 10세기에 건국되었는데!? 18세기면 1700년대 조선이잖아😮?! (임진-병자전쟁도 끝난 뒤임) 😊 그래서 우리가 "고려청자 운학문매병"이라고 부르는 도자기가 사실은 "매병"이라고 불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사실 이런 도자기는 중국 '당唐' 때부터 등장하는 형태야 (이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더 덧붙일 수 있겠는데 일단 스킵하쟝) 어쨌든 매병의 '梅'는 '매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화병花甁(꽃병) 아니었을까? 괜히 그런 이름을 후대에 덧붙였겠어?" 라는 의견이 있었고 "술병일 수도 있지! 대부분의 그릇들이 술그릇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잖아?" 라는 의견도 있었고 "뭔 소리야. 야, 딱 봐라. 저걸 누가 썼겠냐? 딱 봐도 사치품인데, 귀족들의 관상용일 수도 있지!" 라는 의견도 있었어 사실 각 의견마다 충분히 납득될 만한 증거들이 있었어 매병 형태의 도자기가 등장하는 그림이나 비슷한 형태의 쓰임새, 그에 대한 기록 등등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우세를 점하지 못한 채 (사실 술병일 것이라는 의견이 좀더 컸음) 일대의 사건이 우리를 찾아오게 되는데... 태안 앞바다에서'옛날 배'가 발견된 거임😮 이 배는고려시대의 무역선혹은조운선(세금운송선)으로 생각되는데 우리가 주의깊게 봐야할 보물선은  2010년에 수중발굴된 "태안 마도 2호선"임 이 보물선에서 다름아닌 '매병'이 발견되는데 그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부속품'이 함께 발견됨 그게 바로 "목간木簡"임 이 '목간'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일종의 "상품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음 이 상품이 무엇이다~ 라고 설명해주는 거임 (발견 당시에는 '목간'이라고 기사가 많이 났으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죽찰竹札'로 표기하고 있으므로 이하 '죽찰') 그러니 이 말이 무슨 말? 이 도자기가 무슨 도자기인지 알 수 있다는 말!!!!!!!!! 태안마도 2호선에서 이런 죽찰이 발견된 매병은 두 개인데 놀랍게도 이 두 개에는 매병의 정체가 적혀있음 딱 봐도 위의 도자기와 함께 있는 죽찰과 밑의 죽찰에 써있는 글자가 다르다는 것을 알텐데 앞 뒤로 다른 글자가 써있어서 그럼 하나는 重房都將校吳文富 宅上眞盛樽封 앞면 : 중방도장교오문부 뒷면 : 택상진성준봉 요렇게 쓰여있고 다른 하나는 重房都將校吳文富 宅上精蜜盛樽封 앞면 : 중방도장교오문부 뒷면 : 택상정밀성준봉 이렇게 쓰여있음 두 죽찰에서 "重房都將校吳文富(중방도장교오문부)"라는 글자가 겹치는데 '어라?'하는 부분이 있을 거임 "중방重房" ㅇㅇ 맞음 그 '중방'의 중방임 고려시대 무신들의 합좌기구이자 무신정변 이후에는 고려 최고의결기구가 된 그 중방을 말하는 거임 그 뒤의 "도장교都將校"는 당시 정8품의 무관직을 말하는 거임 그 다음의 "오문부吳文富"는 그냥... 그냥 사람 이름임😊! (오늘날로 치면 옥뮤다 같은 곳으로 택배가 빠져서 영영~ 못 받게 되신 분임) 그러니까 두 죽찰의 앞면에 써진 글자는 '회사-직책-이름' 순으로 일종의 수취인을 쓴 거임 "중방에서 근무하시는 오문부 도장교 귀하께" 정도 되는거임 그럼 뒤에 써진 "宅上眞盛樽封" "宅上精蜜盛樽封" 은 무엇일까 "택상宅上" = 받들어 올리다 "진眞" / "정밀精蜜" = 참기름 / 꿀 "성준봉盛樽封" = 준(樽)에 담아(성盛) 봉(封)하여 참...기름??? 꿀이요????????? 녜... 참기름 & 꿀단지였던 거임ㅇㅇ 세상에서_가장_비싼_포장용기.jpg 앙대ㅠㅠㅠ 이렇게 이쁜 내 고려청자가 고작 포장용기일리가 없어!!! 실제로 죽찰의 발견 당시 그 어느 누구도 상상해보지 못한 쓰임새라서 학계에 일대의 파란...까지는 아니고 놀라움?을 선사해주었고 지금도 대학교 한국미술사 or 한국도자사 수업을 들으러 가면 교수님과 강사님들이 아주 재미있게 말해주는 일화 중에 하나😉 ^^ 어케 끝내 이거... 처음 썼을 때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망설였엉 +덧 죽찰의 발견으로 우리가 '매병'이라고 부르는 것이 고려 당시에는 "준(樽)"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덧2 "도장교都將校"는 정8품의 '하급'무관직임 하급무관이 저런 도자기를 선물(혹은 뇌물?) 받았을만큼 당시 무신들의 위세(혹은 오문부吳文富 아저씨의 위세?)가 컸음을 알 수 있음 +덧3 설마 포장용기로만 썼겠..썼을까? 다 쓰고 꽃병으로든 술병으로든 썼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쨌든 '참기름&꿀단지'로 쓰인 실사용례를 아주 정확하게 알게 된 사례😊... 자, 마지막으로 죽찰과 발견된 매병을 보자! 둘다 보물로 지정되었음 참기름단지 국보 제1783호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꿀단지 국보 제1784호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ㅎㅎㅎ 안녕!
[맥주 이야기]: 세계 1티어 자연 발효 맥주 드리 폰타이넌(3 Fonteinen) ABC 모음집 - 2편
1편을 못 보신 분들은 아래 카드를 읽어주세요~ https://www.vingle.net/posts/5936117 G 골든 블렌드(실제로 맥주 외관도 황금색이죠!)는 본질적으로 괴즈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일반적인 1, 2, 3년산 람빅 외에 4년산 람빅을 블렌딩하고 병에서 두 번째 발효를 거칩니다. 첫 번째 블렌드는 2011년에 드리 폰타이넌에서 만들어 2012년에 출시되었고, 두 번째 에디션은 2015년에 나왔습니다. 현재까지 드리 폰타이넌은 최소 9가지 버전의 골든 블렌드를 출시했으며, 375mlhe750ml가 있습니다. 새로운 라벨 골드 블렌드 중 하나는 2017년에 처음 등장했으며 현재까지 최소 5가지 버전이 출시되었습니다. 주류의 평균 숙성 시간은 블렌딩 비율에 따라 다르므로 구체적인 정보는 마시는 병 뒷면의 라벨을 확인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골든 블렌드가 병에서 2 차 발효가 필요하므로 술이 거품으로 끝나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하지만 드리 폰타이넌은 2012~2013년 사이에도 이 람빅을 2차 발효하지 않은 버전인 골든 도젤을 생산하려고 시도했는데, 병입 당시 최소 4년 이상 숙성되었으며 2차 발효 없이도 여전히 음용 잠재력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물론 일반 원형 라벨이나 원형 라벨 옆에 꿀벌 심볼이 있는 라벨 등 다양한 버전의 골든 블렌드를 보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세부 사항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뒷면 라벨의 세부 사항을 살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H H는 라즈베리와 체리가 들어간 오랜 전통의 과일 람빅인 오마주를 의미하며, 두 과일의 비율은 배치마다 다르지만 보통 750ml의 큰 병에 담겼지만 2019년부터는 375ml의 작은 병으로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오마주'는 존경, 종교적 공헌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단어 앞의 H는 발음되지 않으며 '오마르 데이'와 비슷합니다. 2005년 당시 드리 폰타이넌은 대표였던 가스통 드벨더가 사망했을 때, 그의 아들 아르망 드벨더가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이 술을 만들었고, 2007년에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병에 담아 출시되었습니다. 2007년 이후 드리 폰타이넌은 2013년과 2015년에 각각 두 번째와 세 번째 배치를 출시했으며, 2016년 12월부터 새로운 레이블로 출시했습니다. 현재까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20가지 이상의 오마주 버전이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원형 라벨(아래 사진 왼쪽 1) 외에도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라벨이 있습니다. 바이오 프람보젠(Bio Frambozen)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제품은 성분에 사용된 라즈베리가 EU 기준에 따라 유기농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라즈베리는 기본적으로 쓰리스프링스가 협력하는 페르메 프람부스(Ferme Framboos) 과일 공급업체의 제품입니다. 둥근 배럴 기호가 있는 것은 과일을 숙성시키는 오크 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옆에 벌이 그려져 있는 것은 이 와인에 현지에서 공급받은 꿀이 주입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드리 폰타이넌 람빅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려할 때, 앞으로 이 H에는 어떤 새로운 내용이 추가될까요? 앞으로도 더 다양한 오마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I 문자 I 아래에는 드리 폰타이넌은 또 다른 초기 실험 람빅 중 하나인 인텐스 루드가 있으며, 영어로는 인텐스 레드라고 번역됩니다. 해당 람빅은 2012년 11월에 처음 출시되었으며, 같은 해 Toer deGueze가 출시 되었습니다. (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HORAL 기념 플랜드 괴즈입니다.) 초창기에는 라벨의 상징적인 숫자 "3" 대신 다음과 같은 모양으로 매우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특이하지 않나요? 물론 라벨이 변경되었을 때는 문자 "I"로 대체되었습니다. 인텐스 루드는 본질적으로 오래된 크릭이지만 일반 크릭보다 과일 비율이 더 높으며 체리 비율은 보통 리터당 475그램 이상입니다. 체리는 수작업으로 선별하여 6개월 이상 숙성시키고, 과일 퓌레를 제거하고 병에 담아 6개월 이상 더 숙성시킨 후 판매합니다. 이 람빅을 마셔보고 싶다면 일반 크릭과 시음을 비교하여 체리 추가가 람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K 기본 과일 람빅으로 인식되는 크릭 Kriek은 "체리"를 뜻하는 플랑드르 어로, 이 경우 체리 람빅에 대명사로 그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편의상 이 스타일을 "크리크 혹은 크릭" 이라고 부릅니다. 크릭 앞에 오드/우드가 붙는 이유는 당시 HORAL(전통 람빅 양조 협회)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통 람빅 양조장에서 전통 양조 방법으로 생산된 람빅은 정의된 대로 이름에 "오드/우드"라는 단어를 추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비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람빅과 구별하기 위한 이유도 큽니다. 찾을 수 있는 가장 초기의 라벨에 따르면, 드리 폰타이넌은 적어도 1990년부터 크릭 병에 담아 판매해 왔습니다. 80,000 병 이상의 병이 온도 제어 사고로 인해 소멸된 람빅을 제외하고 장시간 열을 받았으며 알려지지 않은 수의 오래된 크릭이 남아있었습니다. 남은 병 중 일부는 나중에 다시 병에 담겨 "핫 체리"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람빅 이야기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체리를 람빅 베이스에 담근 다음 일정 시간이 지나면 퓌레를 제거하고 침전시키고 병에 담아 판매하여 병에서 두 번째 발효의 가능성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크릭의 버전이 너무 많아서 뒷면의 설명과 비교하여 차이점을 확인해야합니다. 토스트 라벨은 갓 구운 오크통을 사용했음을 나타내며 허니 마크는 현지 꿀을 첨가했음을 나타냅니다. 반면에 파란색 노란색 고리가 있는 라벨은 EU 전통 특산품 인증을 나타냅니다. 병에 2차 발효가 없다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바로 크리켄람빅(Kriekenlambik)입니다. 크리켄람빅이라는 이름은 순전히 크릭과 구별하기 위한 것인데요. 병입하기 전에 과일과 람빅 베이스 원주를 이미 6개월 동안의 숙성을 거쳐 발효 가능한 당분이 대부분 고갈되었고, 병입 시 2차 발효를 유발하는 설탕을 첨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병에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람빅은 매우 소량만 병에 담았으며 양조장에서 배럴에서 바로 제공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Kl 마크가 새겨진 병이 보이면 주저하지 말고 한 번 마셔보세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입니다. M 새로운 병 라벨이 도입된 이래로 M이 들어간 람빅은 없었지만 저 개인적으로 밀레니엄 괴즈(Millennium Geuze)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괴즈이기도 하고, 그립기도…합니다 ^^ 1998년에 사람들은 밀레니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샴페인 하우스들이 밀레니엄 샴페인을 생산하고 있었고 많은 양조장들이 같은 작업을 하고 있었죠. 당시 아르망의 친구 빌렘 반 헤레베겐(Willem van Herreweghen)은 드 켐(De Cam) 양조장에서 양조사로 일하고 있었고, 빌렘은 드리 폰타이넌 양조장의 소유주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두 절친한 친구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샴페인 하우스에 감탄하면서 람빅 최고의 양조장 중 하나인 드리 폰타이넌 양조장도 시대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습니다. 그렇게 밀레니엄 괴즈가 탄생했습니다. 이 람빅에 대한 추가 정보는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와인 라벨은 실크 스크린을 사용하여 병에 직접 인쇄되었습니다. 다음에 벨기에 갈 기회가 생기면 오래된 펍에 가져서 어떤 종류의 귀중한 물건이 들어 있는지 물어보세요. 8,000병으로 한정된 이 람빅은 꼭 맛보셔야 할 람빅이라고 생각합니다. P 문자 P 아래에는 퍼직/페르직(Perzik)피치와 플래티넘 플래티넘 블렌드 두 가지 람빅이 있습니다. 페르직은 복숭아를 뜻하는 네덜란드어이며, 물론 문자 P는 복숭아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피치(Peach)와 일치합니다. 실험작 람빅 Speling van het lot (별명 - 신의 선택)에서 복숭아를 사용한 여러 람빅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드리 폰타이넌 양조장은 대량 생산을 위한 람빅을 골라 2019 년 여름과 가을에 판매했으며, 이것이 바로 Perzik입니다. 이것은 약 5개월 반 동안 복숭아에 담근 2년 된 람빅으로 만든 과일 람빅입니다. 드리 폰타이넌 양조장은 25번 배치에는 황도, 24/26/27번 배치에는 백도 등 다양한 복숭아 품종과 혼합 품종을 사용했습니다. 이 배치의 대부분은 판매 개시 이후 전 세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자칭했습니다. 아직 초기 제품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더 많은 품종의 복숭아가 사용되고 더 중립적인 방식으로 취급될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할 람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이 익숙해 보이는데, 이전 골든 블렌드라는 람빅이 있었죠? 그것은 1,2,3,4 년 된 람빅이지만,플래티넘 블렌드는 골드 블렌드와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람빅입니다. https://www.vingle.net/posts/4104418?q=%EB%A7%A5%EC%A3%BC%20platinum 플래티넘 블렌드 역시 1, 2, 3, 4년산 람빅을 블렌딩한 것이지만, 4가지 빈티지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드리 폰타이넌에서 생산된다는 점과 드리 폰타이넌 역시 람빅 양조장의 일반적인 관행처럼 다른 증류소에서 원액을 공급받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반면 골드 블렌드에 사용된 람빅은 다른 증류소의 맥아즙을 부분적으로 공급받았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플래티넘 블렌드는 2019년 6월 375ml사이즈로 첫 출시되었습니다. 이 배치에서 가장 오래 숙성된 람빅은 4년 4개월에 달했지만, 전체 병의 가중 평균 숙성 기간은 약 32개월입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배치를 출시했으면 하는 람빅이기도 합니다. - 3편에서 계속
태종과 세종에게 총애를 받았던 노비출신 건축가
박자청 조선의 개국공신인 황희석의 노비 출신 고려 조 낭장이었던 박자청은 조선 개국과 함께 중랑장으로 승진하여 궐문을 지키고 있었음 그러던 중 의안군 '이화'가 어명 없이 궁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문을 지키던 박자청은 어명 없이 들어 갈 수 없다고 제지함 이 의안대군은 이방원에게 정몽주의 척살을 종용한 인물이었는데, 박자청이 자신을 막자 화가나 박자청을 두들겨 패버림 그리고 나서 태조 이성계에게 가서 박자청을 처벌할 것을 청했지만 이성계는 오히려 박자청을 두둔하며 내상직에 임명해 유막을 지키게 함 그런데 이 박자청이 되게 일을 성실하게 하자 이성계는 박자청을 자신의 고향인 동북면으로 보내 동북면을 지키게 함 이후 태조의 시대가 끝나고 박자청은 태종 이방원의 눈에 띄게 되어 '공조 전서'에 임명됨 (지금의 국토 교통부 장관) 그리고 박자청은 과거 자신이 토목 관련 기술을 배웠던 것을 토대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함 박자청의 대표 업적 제릉 (태조의 첫 번째 왕비인 신의 고황후 한씨의 묘) 건원릉 (태조 이성계의 묘) 한양 도성 수축 청계천 조성 (사진은 조선말 청계천) 창덕궁 건설 성균관 문묘 건설 (4개월만에 함) 경복궁 경회루 건설 (8개월만에 함) 헌릉 (태종 이방원의 묘) 살곶이 다리 등의 업적을 세우게 됨 그러나 너무 원리원칙만을 중시한 탓에 문제도 일으켰음 세종 1년 태종 이방원이 상왕이 된 후 박자청에게 창덕궁 인정문 밖 마당을 직사각형으로 만들라고 함 그러나 박자청은 공간을 더 넓게 쓰기 위해 고집을 부려 사다리꼴로 만들었고, 태종은 열받아서 박자청을 하옥시킴 그러던 한 달 후 태종은 박자청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풀어주었고 결국 창덕궁 인정문 밖 마당은 사다리꼴 모습으로 지어지게 됨 노비 출신으로 박자청을 시기하는 양반들이 많아 항상 모함을 당했었으나 태종과 세종은 오히려 박자청을 감싸주고 믿어주며 큰 일을 맡겼었음 심지어 이방원은 박자청을 명나라 사신으로 보내기까지 함 이후 박자청은 세종 5년인 1423년 11월 9일 66세로 사망하게 됨 박자청의 사망 소식을 들은 세종은 사흘 간 조회를 중지시켰으며, 종이 100권과 손수 지은 제문을 내려 나라에서 직접 장사를 지내게 해주었고, '익위'라는 시호까지 내렸었음 출처 : 도탁스 세종과 태종도 멋있네요.. 노비출신인 사람을 이렇게 기용해서 능력 발휘하면서 살 수 있게 해 준 게.. 꼭 다시 태어나셔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셨길
낭만과 성능의 대결! 전함파 vs 항공모함파
사실 일본이 '함대결전사상'을 버리지 못하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바로... 기름이 없었기 때문이죠 부족한 자원과 밀리는 생산량 탓에 어떻게든 한번의 한타로 결정적인 승기를 잡는 것이 중요했던 일본 해군은 함대를 운용할 때 굉장히 소극적이고 조심스럽게 움직였죠 그럼에도 불구, 전쟁 말기에는 굉장한 자원부족으로 고통받게 됩니다 반면 미군은 원하는 곳에, 원하는 양의 함대를 신속하게 전개할 수 있었기에 굳이 함대결전에 목을 맬 필요가 없었습니다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영화의 장면에서 당시 분위기를 살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같은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도 전함파 vs 항공모함파의 대립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야마토를 만들 돈이면 제로센을 천기는 만들 수 있다'는 항공모함파와 '함대결전사상이 일본 해군의 근본이다'는 전함파의 의견이 대사로 나옵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또한 과연 진정한 의미로 일본 해군에서 '진보파'였는지도 의견이 갈립니다 이소로쿠가 일본 군부 내에선 그나마 항공모함에 집중한 것도 맞지만 항모 운영에도 미숙한 실수가 계속 발견될 뿐더러 파벌 때문인지 전쟁 끝까지 전함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모습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미국 제독들과 비교해서) 다만 미군에서도 인정했듯이, 당시 일본 해군 내에서 이소로쿠를 대체할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출처)
[맥주 이야기]: 세계 1티어 자연 발효 맥주 드리 폰타이넌(3 Fonteinen) ABC 모음집 -1편
'람빅'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먼저 어느 양조장이 생각나시나요? 가장 많이 언급되는 곳은 칸티용,드리 폰타이넌, 분 등등 정말 많은 양조장/블랜더리가 언급될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에게는 드리 폰타이넌 양조장 맥주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데요. 아무래도 저의 첫 람빅이 바로 드리 폰타이넌의 람빅이었고 여러모로 가장 큰 인상을 주었기 때문인데요. 벨기에 Lot 마을 외교에 위치한 드리 폰타이넌 양조장은 이미 다양한 라인업은 보유하고 있는데요. 오늘 그 라인업을 한번 간단히(?) 정리해봤습니다. 참고로 드리 폰타이넌 라벨은 2017년에 이미지 디자인을 업데이트하여 종이 라벨에서 작은 원형 라벨과 뒷면 라벨이 있는 실크스크린 '3'으로 변경했습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병의 흰색 '3' 숫자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람빅 양조장 중에서도 독특하고 선구적인 디자인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예전에 유럽에서 맥주를 마실 때, 제가 혼자서 유유히 칸티용, 드리 폰타이넌 2병을 오픈했을 때, 옆에 현지분들이 저 ‘3’은 뭐냐고 수없이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다만, 2020 겨울 세트 출시와 함께 새로운 이미지가 소개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뒷면 로고가 원래 원형 로고와 숫자와 결합되었습니다. "3"은 동일한 종이 라벨에 결합되어 내용을 작성할 공간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뿐만 아니라 영어 설명이 들어감)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재미가 시작됩니다. 새로운 제품이 계속 출시되고 라벨에 정말 다양한 영어 알파벳 같이 글자의 종류가 다양해지는데요. 처음에 저는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제품을 보며 다른분들도 첫 번째 궁금증으로 기본적으로 '이 모든 다른 글자들은 무엇을 의미할까'일지도 모르죠. 그러면 오늘 이 알파벳을 따라가면서 알아봅시다. A 네덜란드어로 "딸기"를 뜻하는 아드베이 - Aardbei. 이 술은 2020년 7월에 출시된 특정 딸기 세트에서 나온 술로, 알파벳 A라는 글자로 작품에 표시한 것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둥근 라벨의 바이오 아드베이(Bio Aardbeien)는 EU 인증 유기농 딸기를 사용했음을 의미하며, 배럴 모서리 라벨은 오크통에서 과일 숙성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사진 제공 Matthijs B.] 아드베이(Aardbei)는 이 술인에 드리 폰타이넌 자체 베이스 원주를 100% 사용하며, 최종 과일 비율은 1리터당 658그램입니다.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이것은 매우 높은 비율인데요. 병입 전에 어린 람빅을 다시 혼합하지 않았지만 과일의 잔류 당이 병에서 약한 2차 발효를 이끌어냈습니다. 아드베이/크릭(Aardbei/Kriek)는 딸기와 체리를 첨가한 과일 람빅입니다. 딸기를 먼저 람빅에 첨가하여 침식 및 발효시킨 다음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체리를 첨가하여 최종적으로 병에 담습니다. 이 와인은 스펠링 반 헤트 로트(Speling van het Lot) 제품군에서 출발한 람빅으로 약간의 실험작 느낌이 듭니다. 이는 드리 폰타이넌이 이 실험적인 작품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동그란 라벨 아래의 바이오 아드베이엔(Bio Aardbeien)은 이 람빅에 사용된 딸기가 EU 기준에 따라 유기농임을 나타내며, 그 옆에 있는 작은 통 모양의 라벨은 오크통에서 과일 숙성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드리 폰타이넌의 과일 람빅의 경우 과일의 모든 숙성이 배럴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람빅의 상당 부분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먼저 처리한 다음 오크통으로 옮깁니다. 이 방식은 오크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B 알파벳 B에는 블루베리, 블랙베리, 블랙베리 람빅의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블라우베 보스베스(Blauwe Bosbes) 블루베리 람빅은 스웨덴산 야생 블루베리를 몇 달 동안 어린 람빅에 담근 후 약간의 맥아즙과 혼합한 제품입니다. 병 라벨에는 스웨덴 수입업체 브릴(Brill)이 추가되어 스웨덴 국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Braambes 브람스 블랙베리 람빅(블랙베리의 왕)은 엄선된 블랙베리를 람빅으로 침식 및 발효시킨 제품으로, 공급업체 페르메 프람부스(Ferme Framboos)의 블랙베리를 사용했습니다. 2019년은 드리 폰타이넌에서 블랙베리를 사용한 람빅이 처음 출시된 해이며 그 이전에는 스펠링 반 헤트 로트(Speling van het Lot)의 실험 버전으로 출시되었습니다. 병 라벨 하단의 Oogst 2018은 과일 수확 연도가 2018년임을 의미합니다. 오른쪽 하단의 작은 원형 라벨은 오크통에서 과일 숙성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브람베스(Braambes) 블랙베리와 달리 브람스 블랙베리 람빅(Bramenlambik)은 한 곳에서 나온 끓인 맥어즙을 사용하여 만들고 나중에 어린 람빅을 추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병에서 2차 발효가 일어나지 않아 기포가 미미합니다. 이 람빅은 플랑드르의 아름다운 마을 훌덴버그(Huldenberg)에 위치한 페르메 프람부스(Ferme Framboose) 과일 과수원에서 생산된 블랙베리로 만들어집니다. 드리 폰타이넌에서 직접 만든 단일 탱크 맥즙을 식혀 작은 오크통에 넣은 후 과일을 넣어 약 4개월 동안 침식 및 발효시킨 후 병에 담았습니다. 이 람빅의 과일 농도는 와인 1리터당 645그램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라벨로, "3"을 포함한 모든 단어가 종이에 인쇄되었으며 더 이상 실크 스크린으로 된 "3"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거 같네요. C 알망 앤 가스통 스페셜(이하 알망)은 드리 폰타이넌에서 생산된 1년, 2년, 3년산 람빅을 블렌딩한 술입니다. 본질적으로 알망은 괴즈입니다. 시중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빈티지와 배치의 알망이 판매되고 있지만, 사실 알망드의 첫 번째 병은 불과 7년 전에 생산되었습니다. 2016년 6월, 드리 폰타이넌은 750ml와 375ml 용량의 첫 번째 알망을 출시했습니다. 그 후 1.5L 매그넘 병에 채워진 매그넘 버전은 2018년이 되어서야 출시되었으며, 나중에 알망드 & 가스통 스페셜 리저브(빈티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르망은 드리 폰타이넌을 대표하는 아르망 드벨더(Armand Debelder)의 이름이며, 가스통은 아르망의 아버지인 가스통 드벨더(Gaston Debelder)의 이름으로 그의 아버지를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드리 폰타이넌은 여러 곳에서 베이스 원주를 구매하지만, 아르망 & 가스통 스페셜에 포함된 모든 베이스 와인은 드리 폰타이넌 자체에서 생산됩니다. 현재까지 50가지가 넘는 버전의 알망이 출시되었으며 앞으로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드리 폰타이넌의 마스터가 되고 싶으신가요? 알망의 모든 배치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D D는 네덜란드어로 '포도'를 뜻하는 단수형과 복수형인 드루이프/드루이븐(Druif/Druiven)의 줄임말입니다. 오늘날 람빅 포도는 드물지 않으며, 칸티용 양조장의 람빅 중 람빅 다우니스(Lambic D'Aunis), 돈키호테(Don Quijote), 성찬 기념 람빅인 빈 산토(Vin Santo) 등 많은 람빅도 피노 누아, 피노 그리스 같은 포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판매된 람빅 중 가장 비싼 람빅 중 하나인 돈키호테] 드리 폰타이넌은 포도 람빅에 대한 시도를 비교적 안하는 양조장인데요. lambic.info에 따르면 1996-98년 샤르도네 람빅을 제외하고 드리 폰타이넌은 2000년경 말바시아 로소(Malvasia Rosso), 피노 누아 람빅(Pinot Noir Lambic), 그리고 아직 어떤 포도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드루이븐 괴즈(Druiven Geuze) 등을 생산했습니다. 드리 폰타이넌은 2020년 겨울 세트에 덴펠트 품종인 도른펠더(Dornfelder )와 블루 머스캣 품종인 머스캣 블뢰(Muscat Bleu) 두 가지 포도 람빅을 준비했습니다. 머스캣 블뢰(Muscat Bleu) 포도 람빅에 사용된 토종 포도는 플랑드르의 빈도마인 호엔스호프 (Wijndomein Hoenshof)에서 공급받았습니다. 드리 폰타이넌의 람빅 베이스 원주를 사용하여 병입됩니다. 머스트를 채취하여 약 5개월 동안 다른 배럴에서 베이스 람빅과 함께 발효시킨 다음 서로 혼합한 후 젊은 람빅과 블렌드를 진행합니다. 해당 람빅의 과일 농도는 38.1%에 이릅니다. 머스캣 블뢰(Muscat Bleu) 와인 포도와 테이블 식용 포도를 교배하여 얻은 스위스산 적포도입니다. 이 포도는 향이 비교적 가볍고 아름다운 푸른 껍질을 가지고 있으며 와인과 신선한 음식 모두에 적합합니다. 이 람빅은 빈도마인 호엔스호프(Wijndomein Hoenshof)에서 생산된 도르펠더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포도를 압착하여 주스를 만든 다음 잠시 침식시킨 후 베이스 원주와 함께 오크통에서 발효시키는 드리 폰타이넌 람빅을 기반으로 합니다. 병입 전에 소량의 어린 람빅을 첨가하여 병에서 2차 발효를 촉진하고 와인에 거품을 더했습니다. 이 와인의 과일 농도는 51.7%입니다. 도르펠더 “Dorfelder”는 짙은 색, 짙은 베리 향과 풍부한 꽃 캐릭터를 가진 독일 적포도 품종입니다. 이 포도는 크고 일관된 수확량을 생산하며 현재 독일의 주요 와인 포도 품종 중 하나입니다. F 프람부스(Framboos) 라즈베리(라즈베리의 왕)는 다양한 원산지의 라즈베리를 람빅 베이스에 첨가한 과일 람빅으로, 프람부스는 프랑스어로 프람부아즈, 영어로 라즈베리에 해당하는 네덜란드어로 2018년까지 모든 라즈베리 과일 람빅은 6% abv로 라벨이 지정되었지만 2018년부터는 각 배치마다 정확한 알코올 함량이 표시됩니다. 라즈베리 람빅은 원래 레스토랑에서 사용하기 위해 적어도 1990년부터 생산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특별히 디자인된 라벨이 없었고 라즈베리 람빅임을 나타내는 분홍색 불필 마크만 있었습니다. 종이 라벨이 등장한 후 라즈베리 람빅은 몇 차례 출시되었지만 소량만 출시되었습니다. 파조텐란드(Pajottenland )의 일반 라즈베리 외에도 2018년부터 드리 폰타이넌은 훌덴베르그에 있는 Ferme Framboos 공급업체의 "유기농" 라즈베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즈베리 람빅은 이제 일반 제품 라인의 일부가 되었죠. 라즈베리 람빅은 다양한 버전으로 제공됩니다. 둥근 라벨 Oogst 20xx (20xx 년에 수확 한 라즈베리) 외에도 다른 통에서 숙성되거나 신선한 맥아 즙이나 꿀이 첨가 될 수 있습니다. 정확한 버전을 확인하려면 뒷면의 라벨을 읽어야 하는데, 이는 끝없이 흥미로운 정보를 말해줍니다. 드리 폰타이넌의 -lambik 접미사가 붙은 이 과일 람빅은 병에 2 차 발효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병에서 2차 발효를 하면 이산화탄소가 더 많이 발생하여 술에 더 많은 기포가 생기며, 이 카테고리에서와 마찬가지로 -lambik을 마실 때 거품 느낌을 거의 맛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라즈베리 람빅 방법도 매우 고전적입니다. 페르메 프람부스 과일 과수원의 라즈베리를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몇 달 동안 숙성시킨 다음 어린 람빅을 첨가하지 않고 병에 담아 병에서 두 번째 발효가 드물고 거품이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 람빅은 2018년 오픈 비어 데이에 처음 등장했으며, 2020년 12월 드리 폰타이넌이 출시한 겨울 패키지에 새로운 라벨과 과일 수확 연도가 표시되어 다시 등장했습니다. G G라는 글자 아래에는 일반 괴즈와 골든 블렌드라는 두 가지 괴즈가 있습니다.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드리 폰타이넌에서 일반 괴즈보다 더 친숙한 술은 없죠! 드리 폰타이넌의 괴즈는 양조장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인 1950년대부터 만들어져 왔습니다. 괴즈의 제조법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지만 1년, 2년, 3년 된 람빅을 블렌딩하고 병에서 두 번째 발효를 거쳐 괴즈가 탄생하는 기본적인 핵심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자체 생산을 위해 여러 양조장에서 공급하는 맥즙을 구입하는 관행은 람빅 양조장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입니다. 대형 양조업체인 분, 린데만스, 지라딘(Girardin)은 모두 드리 폰타이넌에 원액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드리 폰타이넌 역사상 한 번의 사고가 있었는데, 2009년 숙성을 위해 병을 보관하던 저장실의 온도가 섭씨 60도에 이르렀을 때 온도 조절기가 고장나 히터를 끌 수 없었고,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람빅에게 치명적인 온도였습니다. 이 온도 조절기 사고로 인해 8만 병 이상의 숙성 람빅이 열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일부는 그 자리에서 폭발하기도 하는 등 그 결과는 심각했습니다. 람빅 제조 장비의 임대 계약이 곧 만료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와이너리는 겨울을 재정적으로 버티기 위해 전략을 조정해야 했죠. 그 후 오랫동안 드리 폰타이넌은 자체 람빅을 만들 수 없었고 대신 블렌딩을 위해 외부에서 원액을 구입하는 데 의존했습니다. 2013년 이후 드리 폰타이넌은 자체 람빅 제조를 재개했고 점차 자체 양조 괴즈도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2016년 중반부터 후반까지 드리 폰타이넌 괴즈에는 새로운 라벨이 도입되었으며, 지금까지 60여 가지의 다양한 버전이 등장했습니다. 드리 폰타이넌을 알고 싶다면 다양한 버전의 괴즈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꼭 드셔보세요! -2편에서 계속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장례식 감
큰일 보고 있는 우현 전화가 옴 '여보세요' '실례지만 김우현씨 맞나요?' '그런데요?' '혹시 이남철씨라고 아시나요?' '누구요?' '이남철씨요 저희 아버진데요 오늘 돌아가셔서..' 모르는 사람의 수첩에 자신의 연락처와 이름이 있는걸 알고 답답해 함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없는 우현 도저히 안되겠어서 상갓집에 옴 돌아가신 분 수첩에 있는 우현의 연락처 심지어 그 수첩엔 연락처도 몇 없다 모르겠지만 일단 밥은 먹고가려는데 장례식장 직원이 염하러 내려오라 함 친지가 없어보이는 상주가 안쓰러워 같이 염도 해주고 같이 울어주고 옴 그리고는 일도 도와줌 아직도 생각 안나냐고 동생이 묻지만 여전히 전혀 생각나지않는 우현 집에 가려는데 문상객들이 고스톱 못친다며 금방 갈거라고 말하는걸 들음 그걸 듣고 또 상주를 보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우현과 동생 결국 남아서 문상객들과 고스톱 쳐주고 돈도 잃음 정말 집에 가려는데 발인해야하는데 관은 누가 들거냐고 묻는 말에 또다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우현과 동생 결국 남아서 관도 들어줌 그리고.. 돌아가신 아저씨와의 인연 우현이 버스에 탔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어서 당황 함 그 때 앞에 앉았던 아저씨가 대신 내주심 고마운 우현은 계좌번호를 묻고 아저씨는 됐다며 그럴때가 있다고 하심 우현은 필요할때 꼭 연락달라고 하면서 직접 자신의 연락처를 써 줌 화면 바뀌며 나레이션 아저씨-'안그러셔도 되는데' 우현-'아니에요 꼭 갚아야죠 꼭 갚을게요' 이렇게 끝 작은 인연이 그리고 작은 베품이 이렇게 돌아오는게 감동적이라고 생각해서 씀 영상출처 : jtbc 청담동 살아요 48회 출처 : 더쿠
글 하나로 초한지 속성 마스터하기 (feat. 패왕별희).jpg
때는 기원전 2세기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라고 해서 한반도의 삼국시대처럼 여러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음. 이 중국을 통일하고 최초로 황제가 된 사람이 등장하니 그 유명한 진시황 되겠음. 불로초 찾고 병마용갱 지은 그 할배 맞음ㅇㅇ그러나 진시황의 폭정으로 인해 진나라는 통일과 동시에 망테크를 타고 있었음. 이때 등장하는 초한지의 주인공 1이 항우임. 사실 항우는 중국의 전통적인 영웅관에 완전히 어긋나는 인물임. 중국은 한반도보다 땅이 훨씬 넓고 다민족 국가잖아? 그래서 중국의 이상적인 군주라 하면 (본인의 지력이나 무력이 좀 딸리더라도) 능력 있는 신하를 알아보고 적절하게 등용할 줄 알며 포용력과 너그러움을 갖춘 군주임. 한국인에게 조금 더 익숙한 삼국지를 예로 들자면, 유비는 지 능력 조또 없음. 싸움은 관우랑 장비가 다 하고 지혜는 제갈량이 냄. 하지만 유비는 그들을 이끄는 인덕이 있는 사람임ㅇㅇ 항우를 냉정하게 평가하면 지휘관으로서는 정말 말하는 게 입 아픈 명장이지만 그거 빼면 무력과 카리스마에 스탯 몰빵한 망캐임. 대가리 멍청하고, 군주로서의 자질은 바닥이고, 성격 더럽고, 백성을 사랑하는 너그러움 따위 눈을 씻고 봐도 없음. 하지만 항우는 중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영웅 중 하나임.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겠음. 항우는 초나라 명장 집안의 후손이었음. 초록색이 초나라인데, 중국이 여러 제후국으로 갈라져있던 춘추전국시대 때 진나라와 더불어 가장 강력하던 국가임. 항우는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루무렵 태어났지만 삼촌 항량이 지역의 유지였기 때문에 모자람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냄. 간단히 말해서 귀족 도련님이었음ㅇㅇ 항량은 조카에게 글과 무예를 가르치지만 항우 존나 건성건성함. 빡친 항량이 항우를 꾸짖자 항우의 대답이 "글이라는 것은 본래 자기 성과 이름을 쓸 줄 알면 족할 뿐입니다. 검술 역시 한 사람과 싸워 지지 않을 정도면 충분합니다. 둘 다 배우기는 충분치 못하니, 만인을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학문을 배우겠습니다." 였음. 만인을 상대해서 이길 수 있는 학문은 병법을 뜻함. 군대를 이끌고 배치하고 전투하는 전술 ㅇㅇ 당시 진시황은 툭하면 전국을 순례했는데, 그 웅장한 행차를 지켜보던 항우는 "내가 저 자리를 차지해야지!!" 라고 포부를 드러냄. 항우는 키가 180이 넘었음. 지금도 큰 키인데 기원전인 저 때는 그냥 존나 거인임. 거기에 힘도 쎄서, 삼촌 항량은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서도 내심 조카의 미래를 기대하게 됨. 이렇게 항우가 성장하던 중 진시황이 불로초 찾기에 실패하고 뒤짐ㅋㅋ.. 진시황이 죽고 아들 호해가 즉위하는데, 호해의 곁에는 조고라는 환관이 있었음. 조고는 간신배의 조상 같은 사람임.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긴 했지만 아직 국가로서 완벽하게 자리 잡지는 못했음. 이전까지 각자 다른 나라였잖아?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서로 다른 나라였고, 반란이 끊이질 않음. 예를 들어 삼국시대가 끝나고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했을 때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들이 부흥 운동을 한 것처럼ㅇㅇ 진시황부터 만리장성 건설, 불로초 찾기 등 온갖 대건축과 사치를 부리느라 가혹한 세금을 매기고 엄벌주의를 앞세운 정치를 해서 불만이 많은 상태였음. 근데 호해가 즉위하고 지 애비보다 더한 사치와 방탕 행보를 보이니 사람들이 가만 있겠음? 전국시대 6국을 재건하려는 반란이 각지에서 일어남. 항량은 조국 초나라 왕의 후손인 웅심 이라는 양치기를 찾아 왕으로 옹립하고 전쟁에 뛰어듬. 항우는 당연히 삼촌의 진영에서 종군함. 이 때 초한지의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니..... 유방임. 유방은 항우보다 15살 많은데, 원래 패현이라는 마을의 동네 건달 백수였음. 소하, 번쾌 등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싸움박질하고 똥 폼 잡는 삼류 양아치 같은 인간이었지만 주인공의 자질인 패기 하나는 제대로 있어서, 시황제의 행차를 보고 "오호! 대장부라면 모름지기 저래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했다고 함. 항우가 비슷한 멘트를 쳤을 때 삼촌 항량이 기겁한 걸 생각하면 저런 무모한 패기가 초한지 주인공의 필수조건인가 싶음. 여튼 이렇게 백수짓하며 사고 치고 말단 벼슬이나 하던 유방은 어느 날 여공이라는 사람의 집들이에 가게 됨. 여공은 다른 지방 사람인데 패현으로 이사온 거였음. 여공이 패현의 현령과 아는 사람이다 보니 다들 잘 보이려고 하례금을 바치고 있었음. 거기 등장한 유방은 대뜸 하례금 일만전 < 이라고 적은 어음을 내밈. 물론 땡전 한 푼 없는 채로(....) 패현의 서기 겸 유방의 친구였던 소하는 여기가 무슨 외상 술집인 줄 아냐고 기 막혀 하지만 관상 보길 좋아하던 여공은 유방의 관상과 기세에서 비범한 기운을 느끼곤 귀히 대접함. 여공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유방을 따로 불러 자기 둘째 딸 여치를 소개시키며 결혼을 주선함. 여공의 부인은 "동네 건달 따위를 사위 삼다니 님 미침???" 했지만 여공이 강력하게 혼사를 밀어붙여서 유방과 여치는 결국 결혼하게 됨. 진짜 관상에 뭐가 있었나 봄. 한편 이 시기 진나라는 진시황릉을 만드느라 온갖 사람을 동원해 일을 시키고 있었음. 말단 벼슬을 하던 유방은 패현의 죄수들을 공사 현장으로 데리고 가는 업무를 맡게 되는데, 공사 현장이 원체 시궁창이다 보니 죄수들이 하나둘 도망침. 그걸 지켜보던 유방은 대뜸 행렬을 멈추더니 "가고 싶은대로 가라. 나도 튈 거임ㅋㅋ" 이러고 속 편하게 술을 진탕 마심(....) 죄수들은 대부분 도망쳤지만 그 중 몇은 유방을 따르고 싶어했고, 유방은 그들과 함께 도피생활을 하다 진시황이 죽고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날 무렵 친구 번쾌의 연락을 받고 패현으로 돌아와 마찬가지로 거병함. 하지만 패현의 젊은이들이라고 해봤자 고작 몇 천임. 유방은 몇 번의 전투를 겪고 항우가 모시는 초 회왕의 아래로 들어가게 됨. 물론 진나라가 괜히 통일 국가가 아니라 저항이 만만치 않았음. 진나라 최후의 명장인 장한은 부활한 위나라를 멸망 시킨 후 초나라 군대를 역습하고, 항량은 전사함. 항우와 유방이 이끄는 초나라 군대는 어쩔 수 없이 후퇴함. 한편 초 회왕은 먼저 관중에 입성하는 자를 관중의 왕으로 삼겠다고 공표한 상태였음. 지도에 표시된 땅이 진나라의 중심인 관중인데, 생산력이 좋아 당나라 시대까지 대부분 국가의 수도였던 중요한 땅임. 관중의 제후가 되는 건 당연히 누구나 혹할 제안이었음. 아버지 같은 삼촌을 진나라 군대에 잃은 항우는 당연히 서쪽의 진나라 땅으로 가고 싶었음. 하지만 항우는 얼마 전 양성이란 곳을 공격할 때 결사항전하는 주민들 때문에 자기 예상보다 힘든 싸움을 하자 분노해 함락한 양성 주민 5천명을 전부 죽여버린 전적이 있었음. 다시 말하지만 이건 기원전 시대임. 지금처럼 인구가 많지 않기에 백성 하나하나가 곧 국력일 때임. 항우가 얼마나 잔인하며 군주로서 자질이 없는지 보여주는 예시임. 더군다나 관중 땅은 가장 중요한 요충지임. 회왕의 측근들은 항우를 보내면 저 잔혹한 성격 때문에 민심이 돌아설 거라며 항우보다 군사적 역량은 좀 떨어지더라도 유방을 보내는 게 낫다고 조언함. 한편 항량을 죽인 장한은 북으로 진군해 부활한 조나라를 공격하고 있었음. 이대로 진나라 군대가 제후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리면 초나라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움. 회왕은 결국 유방을 서쪽, 관중으로 보내고 송의를 상장군으로 삼아 조나라를 도와주게 하면서 항우를 송의의 차장으로 임명함. 서쪽에 못 가는 것도 짜증 나는데 별 공적도 없는 송의 휘하에서 진군하라니 항우는 빡쳐 돌아가실 지경이었음. 항우는 간신히 화를 참고 송의와 함께 조나라로 가지만 송의는 장한을 공격할 생각은 않고 마냥 시간만 보냄. 폭발한 항우는 송의를 죽여버린 후 회왕에게 "송의가 초나라를 배신하려고 해서 처단했음ㅇㅇ" 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함. 초나라를 재건 시킨 주축이 항우의 삼촌인 항량인데다 앞서 말했듯 무관으로서의 자질은 정말 킹왕짱인 항우였기에 회왕은 하는 수 없이 항우의 쿠데타를 승인하고 항우에게 상장군 직을 넘겨줌. 항우는 곧장 출정해 진나라 군대를 박살 내고, 장한에게서 항복을 받은 후 말을 돌려 진나라 수도로 감. 근데 여기서 역대급 병크를 또 터뜨려버림(....) 신안대학살임. 항우가 장한의 항복을 받고 서쪽으로 진격하던 시기, 자영이라는 진나라 황족이 조고를 처단하고 진나라의 왕이 됨. 하지만 진나라의 국운은 이미 다 한 상태였음. 자영은 스스로 성문을 열고 유방에게 항복의 의사를 표함. 몇몇 장수들은 자영을 죽이자고 했지만 유방은 "회왕이 나를 관중으로 보낸 건 내가 관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미 항복을 한 사람을 죽이는 건 옳지 않다." 며 자영을 살려주고 법삼장을 약속함. 살인을 한 자는 죽이고, 남을 다치게 한 자는 중죄로 처벌하고, 물건을 훔친 자는 감옥에 가둔다. 이 세가지 법 외에 나머지 법은 전부 없앤다는 뜻이었음. 진나라의 가혹한 엄벌주의 정치와 세금에 고통 받던 백성들은 유방을 환영하며 유방이 황제가 되기만을 바라게 됨. 문제는 유방이 진나라의 멸망 소식을 항우에게 안 전했다는 거였음(.....) 일부러 그런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 인해 항우 진영 분위기는 개판이었음. 그도 그럴 게 초나라 군사들은 진시황릉 공사에 끌려가 개고생을 했거나, 가족이 만리장성 건설 현장에서 죽었다는 식으로 진나라에 원한을 가져 초나라 부흥군에 합류한 경우가 많았음. 아무리 장한이 항복했다지만 초나라 군사들 눈에 진나라 군사들이 곱게 보일 리 없음. 반대로 진나라 군사들도 불안했음. 초나라 군사는 자기들을 노예 취급하며 괴롭혀대니 "이러다 우리 죽는 거 아님....?" 걱정이 저절로 나옴. 양쪽이 다 이러니 자연히 진영 분위기는 개판이 됨. 하루라도 빨리 관중으로 가야했던 항우는 포로들의 존재가 점점 거슬렸음. 군대 분위기는 엉망이지, 행군 속도는 느려지지, 군량도 부족하지. 군량 문제가 제일 컸음. 송의가 조나라 땅에서 지체한 탓에 안 그래도 군량이 부족한데 항우를 견제하기 위해 송의&유방을 기용한 회왕이 항우의 군대를 제대로 지원해 줄 리 넚었음. 참다 지친 항우는 야심한 밤 포로들을 전부 죽여버림. 무려 20만명을 ㅇㅇ...이게 신안성에서 일었나기 때문에 신안대학살이라고 부름. 항우의 선택은 인간된 도리를 떠나 군주로서 정말 멍청한 짓이었음. 유방은 관중 땅에서 백성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잖아? 애초에 진나라 군사들도 진시황의 건축 사랑 때문에 많이 고생한 사람들임. 좋게 말로 설득해서 자기 사람으로 회유하거나, 정 감당이 안 되면 그냥 풀어주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되는 거였음. 이렇듯 항우는 업보를 적립하며 관중으로 진격하는데..... 엥....이미 유방이 진나라의 항복을 받아낸 상태였음. 이러다간 중원의 알짜배기 땅인 관중이 유방의 소유가 되게 생김. 게다가 유방은 관중 땅이 욕심 나서 관중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함곡관을 독단적으로 막아버리는 실책을 저지른 후였음. 또 빡친(....) 항우는 함곡관을 단숨에 박살 내버리곤 유방을 죽일 결심으로 홍문이라는 곳에 진영을 침. 항우의 또다른 삼촌인 항백은 유방의 책사인 장량과 절친한 사이였는데, 항우의 성격에 다 죽일 게 뻔해 보이자 몰래 장량을 찾아가 항우의 계획을 전해주며 너라도 도망치라고 충고함. 유방이 관중 백성들의 신임을 얻었다곤 하지만 항우랑 비빌 처지는 아니었음. 더군다나 전쟁으로는 더더욱. 어이가 털린 장량은 유방에게 항우가 빡쳤다는 소식을 전해주며 "너 제정신임??? 함곡관을 왜 쳐막고 지랄임 미친새끼야!!!!" 라고 지랄하고,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유방은 장량에게 빌디시피 조언을 청함. 장량은 일단 항백을 소개 시켜주고, 유방은 자존심 다 버리고 항백에게 술과 식사를 대접하며 싹싹 빔. 요지인 즉 "저는 항우 장군 오시기만 기다릴 뿐 사사로운 욕심은 조금도 없습니다ㅠㅠㅠ 함곡관을 막은 건 도적들을 막기 위해서일 뿐입니다ㅠㅠㅠㅠ하...저는 항상 항우 장군을 위해 충성했는데 이렇게 죽는 군요.....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항우 장군과 이렇게 틀어지는 건 너무 안타깝고 슬픕니다....하이고......." 라며 개쩌는 감성팔이를(.....) 시전함. 사실 함곡관은 입구가 좁아 적은 병력만 배치해도 도적떼를 막을 수 있음. 유방의 변명은 당연히 개소리임. 저딴 개소리로 항우&항백을 속여먹을 생각을 한 유방이 대단한 건지 저딴 개소리에 속은 항우&항백이 대단한 건지(........) 물론 항우에게도 책사는 있었음. 범증이라는 사람인데 얘가 그나마 항우 진영의 머리 역할을 함. 범증은 당연히 안 속았고, 유방을 살려두면 나중에 큰 걸림돌이 될 테니 죽이자고 설득함. 어쨌든 유방은 꼬리를 내렸고, 다음날 장량과 번쾌 등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홍문의 항우 진영으로 감. 홍문에서 열린 연회라고 해서 홍문연이라고 부르는데 초한지의 명장면으로 손 꼽히는 장명임. 유방은 당연히 항우 앞에서도 온갖 아부를 했음. 범증이 유방을 죽이자고 신호를 보냈지만 항우는 껄껄 웃으며 술을 마실 뿐 무시했고, 보다 못한 범증은 항우의 친척 동생을 불러내 유방을 죽여야 한다고 재촉함. 친척 동생이 "술자리에 즐길 만한 게 별로 없으니 제가 검무를 춰서 흥을 돋워보겠음ㅇㅇ" 하고 칼을 빼들지만 눈치를 챈 항백이 함께 추자며 칼을 막은 덕에 유방은 죽지 않음. 이쯤 되면 항백이 존나 스파이임ㅋㅋㅋㅋㅋ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단 걸 눈치 챈 장량은 슬쩍 빠져나가 번쾌를 부름. 번쾌는 패현에서부터 유방과 알고 지낸 동생 겸 부하 장수인데, 여공의 막내딸과 결혼해 유방과 인척 관계기도 했음. 모시는 유방의 목숨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은 번쾌는 연회장에 난입해 "남의 장수들은 밥을 안 주니 배고프고 추워 들어왔슴다!!!" 라며(....) 이상한 패기를 시전함. 근데 그게 항우의 마음에 들었음(......) 역시 이 새끼는 그냥 전장에서 평생 굴렀어야 함. 항우는 번쾌의 호탕한 모습이 재밌었는지 술과 고기를 내렸고, 장량은 이 틈을 타 유방을 피신 시킨 후 유방이 만취해 먼저 돌아갔다고 인사하고 준비한 선물을 바침. 단순무식한 항우는 유방이 자기한테 쫄았단 거에 흡족해하지만 범증은 극대노함. 범증은 "이래서 어린애와 대사를 도모하면 안 된다니까 ㅅㅂ 우리 이제 나중에 유방한데 다 뒤질거임 십새끼야" 라고 갈궜다구 함.... 이렇게 관중 땅에 입성한 항우는 항복했던 자영을 죽이고 진나라 황궁을 약탈하고 불태우는 또다른 병크를 저지름. 앞서 말했든 관중 땅은 매우 풍족한 요충지였고, 항우의 책사는 항우에게 관중을 거점으로 삼으라고 조언하지만 이미 관중은 불탄 폐허였고 항우는 고향에 돌아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음. 초 회왕을 황제로 높여 의제로 칭한 항우는 고향인 팽성 땅을 차지한 후 자기를 '서초패왕'이라고 부르고, 유방을 포함한 나머지 장군들을 각지의 제후로 삼음. 아직 의제가 살아있긴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자는 항우라고 할 수 있겠음ㅇㅇ 물론 항우도 아주 바보는 아니라 유방을 경계했고, 가장 외진 땅인 파촉 땅을 줌. 파촉 땅은 산골짜기 벽지라 대대로 유배지로나 쓰이는 땅이었음. 한반도로 치면 저어기 연평도나 남해안의 섬 정도? 관중에 가장 먼저 입성한 유방은 당연히 분노함. 유방은 "ㅅㅂ 싸우다 뒤지더라도 항우랑 함 싸워봐?" 했지만 유방의 오랜 친구이자 책사인 소하가 뜯어말림. 소하는 은거하며 힘을 기르다 보면 언젠가 전세가 바뀔 거라고 유방을 설득했고, 유방은 결국 파촉으로 향함. 이게 기원전 206년의 일임. 이제 초한지의 하이라이트인 팽성대전임. 앞서 말했듯 항우는 초 회왕을 의제로 삼고 여러 제후에게 땅을 나눠줬는데, 부활한 제나라의 전씨 일족은 만족하지 못했음. 우리가 제나라를 부활할 때 너네한테 딱히 도움 받은 게 없는데 왜 우리가 초의 제후국이 돼서 내정간섭을 받아야함?ㅡㅡ 이 정도. (항씨랑 전씨는 이전부터 사이가 안 좋았는데 그건 너무 길고 재미 없으니까 생략) 제나라의 전영은 반란을 일으키는 동시에 다른 제후들도 이간질하고, 항우는 제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됨. 그 과정에서 의제가 전영이나 유방에게 붙을 게 걱정 됐는지 의제도 죽여버림. 물론 무력과 카리스마 스탯 하나는 풀인 항우라 한방에 전영의 군대를 박살내고 전영을 죽이지만, 문제는 위치였음. 항우는 제나라와 전쟁하느라 자기 본거지인 팽성을 떠나 제나라 깊숙한 곳에 있었고, 이 틈을 탄 유방이 파촉을 떠나 팽성을 향해 진군함. 여기서 항우는 자기의 잔인한 행보에 발목을 잡힘. 잔인하기로 유명한 징기즈칸도 "저항하는 새끼는 죽이지만 깔끔하게 항복한 놈은 살려준다ㅋ 항복해라ㅋ"는 스탠스를 취한데 반면, 항우는 전영의 군대를 완전히 박살내기 위해 제나라 땅을 누비며 모든 성과 가옥을 불태우고 항복하든 말든 전영의 군사는 다 죽여버림. 여자와 노인만 살려 포로로 삼을 뿐 남자는 싹 생매장해버림. 항우가 왜 이랬는지 정확히는 모름. 항우는 이렇게 잔인한 성격과 별개로 자기 사람과 자기 가족에게는 정말 신의 있고 관대했는데, 항우에게 아버지나 다름 없던 삼촌 항량은 장한이 이끄는 진나라 군대가 제나라를 압박할 때 교전하다 역습 당해 전사함. 항량의 죽음을 제나라 탓이라고 생각해 보복한 걸 수도 있고 두 번 다시는 자기한테 반기를 들지 못하게 본보기를 세우려던 걸 수도 있음. 이유야 어쨌든 항우의 이런 선택은 자충수였음. 싸우다 져도 뒤지고 항복해도 뒤지는데 누가 항복함ㅠ 전영의 동생인 전횡이 남은 제나라 군사들을 모아 성양 땅에서 죽기 살기로 항전하기 시작하면서 항우는 성양에 발목이 묶임. 이 틈을 탄 유방은 의제를 시해한 항우를 처단하자는 명분으로 근처의 제후들을 연합하고, 제후 연합군은 쉽게 팽성을 점령함. 항우를 포함한 병력이 거의 제나라에 가 있으니 당연히 쉬움ㅇㅇ 소식을 들은 항우는 나머지 군사들은 성양에 그대로 두고 최정예 군사 3만을 데리고 팽성으로 내려감. 당시 팽성에 있던 유방 연합군은 57만 명이었음. 항우가 이기면 기적인 수준이었음. 근데 항우가 이김. 일단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음. - 유방은 항우의 군대가 습격할 길은 북쪽 뿐이라고 생각해 북쪽을 위주로 막고 대비했음. 하지만 팽성은 항우의 본거지였고, 누구보다 팽성의 지형을 잘 알고 있던 항우는 팽성을 빙 둘러 서쪽으로 우회한 후 동쪽으로 밀고 들어가는 전략을 취함. 항우 군대 >>>>>> 유방 진영 이런식으로 - 3만 VS 57만. 아무리 초나라 군대가 장한이 이끄는 진나라 군대도 격파한 정예병이라고 해도 전면전으로는 가망이 없는 숫자임. 항우는 야심한 밤에 기습하는 전략을 선택했고, 아무런 대비 없이 습격 당한 유방의 군대는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감. 항우의 3만 군대는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유방의 군대는 57만 중 절반 이상이 몰살 당함. 얼마나 피해 규모가 컸는지 시신이 너무 쌓여 강물이 흐르지 않았다고 함. 이 과정에서 유방의 아버지와 아내는 항우의 포로가 됨. 여담으로 유방은 도망치는 길에 고향 패현에 들러 자식들을 챙겼는데, 마찬가지로 유방의 가족을 사로 잡으려던 항우의 군대가 쫓아오자 수레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지 새끼들을 버림(.....) 부하 장수 하후영이 도로 아이들을 챙기며 "한낱 짐승도 자기 새끼 귀한 것은 아는데 니는 뭐하는 새끼임 대체 ㅅㅂ" 라고 갈구자 그제야 부끄러움을 느껴 아닥했다고. 또 한편 유방의 아내인 여치는 측천무후&서태후와 함께 중국 3대 악녀로 손 꼽히는 사람인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포로로 잡힌 후에도 겁 먹기는 커녕 항우 면전에 대고 "그래봤자 너는 내 남편 상대가 안 되니 어디 죽여볼 테면 죽여봐라"고 당당하게 소리 쳐서 그 항우조차 말을 잃었음. 이때부터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한신임. 소하&장량과 더불어 한삼걸로 불리는 명장임. 간신히 도망친 유방이 전력을 재정비하는 사이 한신은 3만의 별동대를 이끌고 차근차근 북쪽 땅을 정벌함. 또한 유방도 형양 땅을 본거지 삼아 죽을 기세로 버텼음. 항우가 제나라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관중 땅을 점령한 덕에 사전적 재기할 여력이 충분했음. 게다가 지속적으로 말해왔던 항우의 능력 부족이 서서히 본인의 발목을 잡기 시작함. 항우의 중요한 책사였던 범증도 죽었고ㅇㅇ 항우와 유방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음. 항우는 장군 내지는 전략가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대신 큰 그림을 보고 정치하며 사람을 다스리는 능력이 없고 지나치게 잔인함. 반대로 유방은 사람은 좀 찌질하고(...) 멋 없을지언정 주변의 충고를 듣고 인망을 쌓는 건 항우보다 훨씬 나았음. 유방의 지휘관 스탯이 항우에 비해 좀 딸릴 뿐 없는 것도 아니었고. 지지부진하던 초한전쟁은 항우의 부하인 용저가 유수 전투에서 한신에게 패배하며 기울기 시작하고........ 해하 전투가 벌어짐. 유수 전투에서 진 후 항우는 포로였던 유방의 아버지와 아내를 돌려보내며 자기가 이끄는 초나라가 동쪽 땅을, 유방이 이끄는 한나라가 서쪽 땅을 다스리는 협약을 맺음. 협약이 성사된 후 항우는 팽성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이번 기회에 항우를 끝장내야한다는 참모들의 설득을 들은 유방은 항우의 군대를 공격함. 이게 초한전쟁 최후의 전투인 해하 전투임. 항우와 맞붙은 한신은 밀리는 척 후퇴하며 항우를 깊숙이 유인하고, 한나라의 나머지 병력이 좌우에서 초나라 군대를 공격함. 초나라 군사 10만명 중 8만이 전사하고, 항우를 포함한 나머지 2만도 포위당함. 이때 한나라 군사들이 초나라 군대의 사기를 완전히 꺾기 위해 초나라 고향 노래를 부른데서 나온 사자성어가 사면초가. 여담으로 자기가 선봉으로 나선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 해하 전투에서 딱 한 번 패배함. 항우는 결혼하지 않았고, 대신 사랑하는 여자 한 명이 있어 어딜 가든 항상 함께함. 원체 옛날이다 보니 출신에 대한 기록은 없고 성이 우씨라는 것만 남아 우희 혹은 우미인이라고 불림. 역사 속에선 패자인 항우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우미인임. 한 때 패왕으로 군림하며 엄청난 권력을 누렸던 항우인데 평생 한 여자만 만났다니 로맨스 소설이 안 나올 수가 없음ㅇㅇ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항우는 늦은 밤, 자신의 군막으로 연인 우희를 불러 술을 마시며 해하가라는 노래를 부르고 눈물을 흘림. 力拔山兮氣蓋世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도다. 時不利兮骓不逝 시운이 불리하니 추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는 항우가 아끼는 명마. 삼국지의 적토마 같은ㅇㅇ) 骓不逝兮可奈何추 추마저 나아가지 않으니 난 어찌해야 하는가. 虞兮虞兮奈若何 우희(虞姬)여, 우희여! 그대를 어찌하면 좋은가. 여기에 우희가 부른 답가가 화화왕가 漢兵已略地 한군이 이미 천하를 다 빼았으매 四面楚歌聲 성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은 초나라의 노랫소리 大王義氣盡 대왕의 의기가 다하셨다면 賤妾何聊生 천첩이 살아서 무엇하리요. 한 때 전국을 호령했던 영웅이 자기 최후를 예감하고 사랑하던 연인을 걱정하며 눈물 흘린다는 게 참 드라마틱한 소재잖음? 저기서 파생된 작품이 장국영의 패왕별희 ㅇㅇ 패왕별희 뜻 자체가 패왕 항우와 우미인의 이별임. 장국영이 맡은 청뎨이는 동명 경극에서 우미인 역, 샬로는 패왕 역. 이후 우희가 어떻게 됐는지는 사서에 안 나옴. 항우에게 짐이 되기 싫어 자결했다는 말도 있고, 난전 중에 죽었다는 말도 있고, 항우가 죽음 앞에 목숨을 걸고 우희를 피신 시켜 조용한 곳에 숨어 여생을 보냈다는 썰도 있고. 보통의 작품에서는 자결을 택하는데 난 후자였으면 좋겠넴. 고향 노래를 들은 초나라 군사들은 하나둘 탈영하기 시작함. 항우는 남은 군사를 이끌고 도망치지만 유방이 보낸 5천 명의 기병대가 항우를 추격하고, 100명의 군사로 5천명을 뚫는(....) 기적을 일으켜 동성에 도착하지만 항우의 곁에 남은 건 28명 뿐이었음. 이제 여기부터는 거의 뭐 드라마임. 참고로 연의처럼 소설적 허구가 섞인 기록 아니고 사마천이 지은 사기임.... "내가 군사를 일으킨 이래 지금으로써 8년이 되었다. 그 동안 몸소 70여 차례의 전투를 치렀고, 내 앞을 가로막은 자들은 모두 목을 베어 죽였다. 나의 공격을 받은 성들은 모두 항복을 하였고,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싸움에서 진 적 없이 천하를 제패했다. 그러나 오늘 내가 졸지에 이곳에서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해서 지은 죄가 아니다. 오늘 내가 한사코 죽음을 무릅쓰고 통쾌하게 싸워 반드시 세 번 싸워 모두 이김으로써, 너희들을 위해 한군의 포위망을 풀고, 적장들의 목을 베면서 적군의 깃발을 부러뜨려, 지금 내가 이런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된 이유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지 내가 싸움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부터, 증명해 보이겠다." 라고 외친 항우는 남은 28명의 군사를 사방으로 뛰게 만든 후 앞으로 말을 달려 한나라 장수를 죽이고 100명이 넘는 병사들을 죽임. 이 과정에서 죽은 초나라 병사는 딱 두 명. 미친놈임. 남은 26명을 데리고 계속 도망친 항우는 오강 이라는 강에 도착함. 오강을 관리하던 말단 관리는 항우를 맞이하며 "강동(江東)의 땅은 비록 협소하다고 하나 사방 천리에 달하고, 백성들의 숫자는 수십만에 이르고 있어 가히 그곳을 다스릴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속히 배에 오르시어 강을 건너시기 바랍니다. 이 강 안에는 오직 이 배밖에 없어, 비록 한군이 쫓아오더라도 강을 건너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말함. 이에 항우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고 하는데, 강을 건너서 무엇하겠는가? 또한 옛날 내가 저곳 강동의 자제 8천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나왔다가 모두 전사하고 오늘 단 한 사람도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으로 삼아 준다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비록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 항우 혼자만 부끄러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답하고 그대가 충신임을 알겠다며 이 관리에게 자기의 명마, 오추마를 넘김. 이때 항우를 따른 26명의 군사들은 탈영하지 않고 항우를 따라 죽을 각오를 한 장병들이었음. 이들이 항우와 함께 끝까지 싸우다 죽었다는 썰도 있고, 항우가 "지금 주군의 명령을 어길 셈이냐? 어서 배에 타라." 라고 윽박 질러 그들은 피신 시켰다고 하는 책도 있음. 이후 항우는 혈혈단신으로 한나라 기병대 5천에 맞서 수백명을 죽이고(....?......) "내가 들으니 한왕이 내 목을 천금과 만호(萬戶)의 봉지로 사려 한다고 했다. 내 그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겠노라." 라는 유언과 함께 스스로 목을 베어 자결했다고 함. 이 때 항우의 나이 31세. 항우의 시신은 유방이 건 상금에 눈이 나간 한나라 군사들이 달려들며 수십조각이 났고, 유방은 그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뤄주고 노공으로 봉함. 썰에 따르면 본인도 그 장례식에 와서 울다 갔다나 뭐라나. 이렇게 해서 초한지는 유방의 승리로 끝남. 유방은 한나라의 황제가 되는데, 한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통일 제국임. 이 한나라가 망해갈 즈음 벌어지는 이야기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장면으로 유명한 삼국지ㅇㅇ 이제 밑으로는 여담 타임 + 여치 이야기 여담 1 장기 판에 적힌 게 초나라 한나라임. 빨간 색이 한나라 / 파랑이나 초록이 초나라 여담2 유방의 승리에 가장 크게 기여한 한신은 이후 반란 혐의로 유방에게 제거 되는데, (소하나 장량은 천수 누리다 감) 여기서 유명해진 사자성어가 토사구팽.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 먹는다.' 이전부터 있었던 말인데 한신의 일화로 유명해져 널리 쓰이게 됨. 여담 3 유방이 황제가 되면서 아내인 여치는 황후가 되어 여후라고 불리게 됨. 여후는 유방이 사고 치고 다니던 건달 시절 유방 대신 옥살이를 하기도 하고(.....) 유방이 거병한 후 묵묵히 내조를 해준, 말 그대로 조강지처였음. 더군다나 팽성 대전의 패배 이후 항우 진영에서 포로 생활도 함. 황제가 된 유방은 여러 후궁을 두고 총애했음. 뭐 여기까지는 괜찮을 수 있었음. 정치에 간섭하는 여후가 거슬렸던 건지 뭔지, 갑자기 여후 소생의 태자 유영을 '성정이 유약하다'는 이유로 폐위하고 가장 총애하는 척 부인 소생의 아들 유여의를 태자 삼으려고 함. 진나라의 처참한 말로를 아는 대신들이 적통인 유영을 폐위하면 안 된다고 기를 쓰고 말려 수포로 돌아갔지만... 여후는 이 원한을 간직하다 유방이 죽자 본색을 드러냄. 원래 다정한 성격이었는데 결혼 후 고생하면서 성격이 점점 변해 독해졌다고 하니 만악의 근원은 유방이지만, 여후가 중국 3대 악녀로 손 꼽히는 이유가 있긴 함....이하 잔인함 주의. 유방이 죽고 여후와 유방의 아들 혜제가 황제가 된 직후, 여후는 척 부인을 연금 시키고 아들인 유여의를 황궁으로 부른. 어머니와 달리 심약하고 정이 많은 혜제는 어머니가 유여의를 죽이지 못하게 동생과 함께 먹고 자며 보살핌. 하지만 어느 날 혜제가 아침 일찍 사냥을 가자 어린 유여의는 혼자 남겨지고, 여후는 곧장 12살의 유여의를 죽인 다음 척 부인에게 데려가 아들의 시신을 보여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척 부인의 눈을 뽑은 후 귀, 혀, 손, 발을 자르고 돼지 우리에 넣어 인간 돼지라고 부르며 아들 혜제를 불러 그걸 보게 함. 유여의와 척 부인을 잔인하게 죽인 거야 그렇다 치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혜제한테 보여준 건진 모르겠음. 이복 동생을 지키려고 그렇게 노력한 사람한테 굳이....? 심지어 이때 혜제도 고작 16살이었음. 얼마나 심하게 훼손 됐던지 처음에는 누군지도 못 알아보다가 뒤늦게 척 부인이란 걸 알고 충격 받은 혜제는 "이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태후마마의 아들인 저 또한 다시는 천하를 다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라고 비난한 후 앓아눕고, 이후 실의에 빠져 술만 마시다 23살의 나이로 요절함. 여후는 혜제가 죽었을 때 눈물 한 방울 안 흘렸고, 혜제 사후 멋대로 황제를 세우고 섭정하며 나라를 주무르다 노환으로 사망함. 이 횡포가 나중에 독이 되어 여후의 여동생을 포함한 여씨 일족 사람들은 맞아죽었다고,,,, 이때가 남존여비 시대라고 하지만 최소한의 권리는 있어서, 첩이 정실 부인을 무시하고 방자하게 군다면 어느 정도의 처벌은 용인 됨. 중국 사극에서 황후가 건방진 후궁 꿇어 앉히거나 화내는 장면이 종종 나오는 것도 이래서ㅇㅇ. 다만 여후는 혜제 사후 나라를 망칠 뻔 하기도 했고, 척 부인에게 한 보복이 정말 듣도 보도 못할 수준으로 잔인해서 악녀 소리 듣는 것. 힘들었다. -끗- 출처
광기의 철학자 디오게네스.jpg
1. 어느 날 플라톤이 토론을 하며 인간을 두 발로 걷는 털 없는 짐승이라 정의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시장에서 닭을 하나 데려와 털을 마구잡이로 뽑은 뒤 들고 와서 “이게 플라톤의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2. 플라톤은 항상 욕망을 버리고 살아라 이야기했지만, 본인은 정작 커다란 집에서 살았다. 이 사실이 못마땅했던 디오게네스는, 어느 날 진흙투성이 발로 플라톤의 집에 들어가서는 침대를 짓밟아놓고 나왔다. 3. 하루는 디오게네스가 벌건 대낮에 손에 램프를 들고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어떤 사람이 뭐 하나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인간을 찾고 있다네.” 4. 시노페의 시민들이 자신에게 추방형(形)을 내렸다는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나는 그들에게 체류형을 내리노라.” 5. 그는 벌거숭이로 길거리 생활 했으며 집은 항아리였다. 딸치고 싶으면 딸치고 자고 싶으면 잤다. 6.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스승으로 삼고자 했으나 그에게 다가가 질문을 하면 “나 개새끼다. 꺼져!”하고 답하곤 했다. 7. 어느 날 알렉산더 대왕이 그에게 흥미가 생겨 다가가 원하는 게 무엇이냐 묻자 “햇빛가리지 말고 꺼져.” 그는 90세 때 그냥 일부러 숨을 안 쉬어서 생을 마감했다. 그냥 1호선 광인수준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ㅋㅋㅋㅋ결말까지 광기 ㅋㅋㅋㅋㅁㅊ 하고싶은 말 다하고 살아서 그런가 그래도 장수하심 ㅇㅇ
너무 아름다운 고구려, 고려, 신라, 조선 복식들.jpg
고구려, 고려, 신라 조선 시대 복식 실물복원한 사진들이에요 문양이며 색감이며 넘 아름다우니 꼭 봐보세요 !! (특히 중간에 체커보드랑 땡땡이 무늬 .. !! 대충격) 관경변상도’에 나온 고려 여인의 날렵한 자태는 붉은 색의 ‘라’를 이용해 재현했다. 또 ‘수월관음도’에 그려진 고려 여인은 옅은 도토리색 ‘금’ 저고리 차림으로 21세기에 나타났다. 수산리 고분벽화를 근거로 5세기 고구려 여성의 A라인 주름치마를 되살려냈다. 저고리는 베이지색 가죽으로 제작했는데, 저고리의 깃과 섶, 소맷부리 등은 까실까실한 쇠털 느낌을 주는 고동색 송치 가죽으로 처리했다. “당시 고구려인들의 가죽 다루는 솜씨가 좋았다는 문헌에서 힌트를 얻었다” 통일신라 복식. 짧은 저고리 위에 긴 치마를 입고 어깨에 표를 두른 모습은 당시 당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유행하던 옷차림이다. 아름지기 사옥에 전시된 조선시대 복식들. 왼쪽부터 16세기 복식, 19세기 복식, 18세기 복식(신윤복의 ‘미인도’ 재현), 18세기 복식(신윤복의 ‘야금모행’속 여인 복식 재현). 조선시대 고구려 이거 체커보드잔아요 ㄷㄷ 땡땡이 대박.. 겁나 힙해요 경주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바지 고려 옆트임 바지 조선 이전 남자 의복은 더 찾아내기가 어려워서 조선시대 의복을 가져옴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예쁘니까ㅋㅋ 출처 https://mnews.joins.com/amparticle/20728620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arumjigi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