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봄은 오겠지요 / 문현미
그래도 봄은 오겠지요 / 문현미 한 남자가 숙제를 하듯 낙엽을 쓸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얼기설기 흩어 놓으면 늙은 추억을 모으듯 착한 손길이 빗금을 긋습니다 하루치 노동이 수굿하게 익어가는 가로수길 그와 나무들 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습니다 한 톨의 의심도 한 톨의 비난도 한 톨의 성냄도 긴 파랑(波浪)의 시간을 담은 이파리들이 뒹구는 대로 묵묵히 빈손의 빗질이 따라만 가고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발자국들이 지나간 자리를 쓸고 또 쓸고 있습니다 구릿빛 손등 위로 습기 없는 갈색 어둠이 내리는 때 가랑잎 하나 늑골 사잇길로 슬쩍 기웃거립니다 쓸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언제, 어디서부터 쓸기 시작해야 할지 우두커니로 저물어 가는 어둑한 한 철 그래도 봄이 오기는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