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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인문학 #2. 보고서의 기술

당신이 오너가 아니라면, 보고는 직장 생활의 꽃이다. 당신이 공들여 한 모든 일들은 그 일의 결과로 평가 받지 않는다. 보고를 통해 상사에게 전달되고 평가 받는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결과가 참혹했더라도, 보고만 상사의 마음에 들었다면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회사가 커질 수록, 일이 전문적일 수록 보고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특히 타인의 비즈니스를 대신 진단하는 컨설팅이나 리서치는 결국 보고서가 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갖 예시들과 비교 분석 자료들, 전략과 플로우 차트와 논리 등 모든 것은 한 줄의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좋은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보고서 역시 한 편의 글이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대부분의 보고서는 아무리 단순한 결과 보고서라 할지라도 논증의 성격을 띈다. 광고 결과 보고서를 상상해 보자. 아마 그 광고를 제작하게 된 경위와 creative 제작 과정을 앞부분에서 빠르게 요약할 것이다. 그리고 제작된 광고를 보여주고 어떤 채널로 얼마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는지, 연관된 마케팅/프로모션 행사들은 무엇이 있었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판매량 혹은 인지도 등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며 끝마칠 것이다. 회의실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의심 많은데다 평소 그 광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보스는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할 것이다. 판매 수치가 저렇게 올라간 게 이 광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다른 요인은 없는가? 반응 조사는 몇 명을 대상으로 하고 표본은 신뢰할 만한 것인가? 노출빈도가 많다는데 TV를 늘 끼고 사는 내 친구 놈은 왜 우리 광고를 한 번도 보지 못했는가? 판매량이 우리만 올랐는가 경쟁사들도 올랐는가? 이게 작년 시즌과 비교해 봤을 때도 판매 증가치가 의미가 있는 건가? 기타 등등 마케터는 광고 캠페인을 제작하고 진행한 입장에서 최대한 포커스를 좁혀서 인과관계를 구성하여 우리의 광고를 통해 이런 성과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반면 보스는 전체 비즈니스로 관점을 확대해서 이 성과와 이 캠페인 사이의 약한 연결 고리를 찾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 마케터의 입장에서 광고를 했고 판매량이 올랐으면 당연히 그 광고의 영향이겠으나, 비즈니스 전체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그러하다는 논리의 연결이 엉성해 보일 수 있다. 때문에 마케터는 보고의 관점을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킬 수 있는 쪽으로 좁혀 나간다. 가장 HOT한 모델을 써서 판매량은 물론 브랜드 인지도나 선호도도 급격하게 상승했다거나, 늘 약점으로 부각되던 브랜드에 개성을 부여해 2030 젊은 세대에게 어필했다거나, 판매량은 크게 늘지는 않았으나 경쟁사와의 격차를 줄였다거나, 하다못해 주변 지인들로부터 너희 회사 광고 나오더라는 칭찬을 자주 받았다는 체면치례까지 이 광고가 우리 브랜드에 도움이 되었다는 포커스를 맞출 수 있는 관점은 다양하다. 보고서는 논증이며, 우리는 논리적으로 증명해야 할 명제를 논리적 근거에 따라 서술해야 한다. 그리고 방금 전에 살펴 보았듯 서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관점’이다. 우리가 아무리 철저하고 세심하게 준비한다 할 지다라도 우리는 제품 판매량에 미친 모든 요인과 사실관계를 분석할 수 없다. 아프리카 커피 콩의 수입 원가가 오른 것이 항공권 가격에 영향을 미쳐 판매량을 뒤흔들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일은 우리가 하지만 우리가 전혀 관여할 수 없는 외부적 요인으로 비즈니스가 영향을 받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전 세계에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우리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을 완벽하게 설명해 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서는 관점이 중요해 진다. 이번 광고는 지난 번과 달리 어떤 점에서 주목할 만 합니다. 앞으로 자동차 R&D의 방향은 지속가능성이라는 흐름과 소비 패턴의 변화로 인해 친환경으로 가야 합니다. 새로운 소재를 도입하면 재료비가 몇 퍼센트 절감되고, 전체 중량이 몇 퍼센트 절감되어 포장과 운송비용까지 최대 몇 퍼센트 절감이 예상됩니다. 금년도 채용은 창의적 인재 발굴을 위해 퀴즈형 보다는 논술형과 토론식 면접이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보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보고서의 핵심 결론 한 줄에는 담당자가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다는 관점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는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보고서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입힌다. 사실 이 외에 다른 기술들, 문장을 간결하게 하고, 구조를 논리적으로 세우고,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등등은 모두 표현의 방편일 뿐이다. 정작 중요한 보고서의 근간은 담당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보았으며, 이 관점에서 봤을 때 무엇이 우리의 강점이고 무엇이 약점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해야한다가 명확하게 드러나면 된다. 신제품을 출시했는데 판매량이 기대치의 절반밖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하는가? 기술력이 뒤지기 때문이가, 마케팅이 부족했는가, 타겟 선정이 잘못되었는가, 시대 흐름에 뒤쳐졌는가, 유통 채널의 문제인가, 어떤 관점에서 보았느냐에 따라 잘잘못이 달라지고 대응책도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고서를 잘 쓰기 위해서 자기 자신 만의 관점을 키워야 한다. 관점을 통해 논제를 설정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다른 모든 것은 여기에 살을 붙이는 부수적인 일일 뿐이다. 대략적인 시장의 흐름 아래서 제대로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데 디테일에 아무리 강해봐야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정교한 숫자와 논리와 화려한 이미지로 수놓은 보고서라 할지라도 제대로된 관점에서 문제를 분석하지 못하면 빛 좋은 개살구일 따름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관점을 설정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가? 그러기 위해선 해당 비즈니스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어디쯤에 위치하였는가를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 통찰력이라는 지점에서 마침내 비즈니스는 인문학과 만난다. 인문학은 인간의 행동과 관계 등에서 유발된 현상을 통해 인간성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종교 등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지만 어느 누구도 신이 아닌 이상 이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따라서 뛰어난 학자들은 자기 만의 관점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통찰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들이 어떻게 자기 자신과 이 세상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지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내가 몸 담고 일하고 있는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과 통찰력을 나도 모르게 습득하게 된다. 이는 결코 사지선다식 물음을 통해 배울 수 없다.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언제쯤 나만의 관점과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인문학적 지식과 과정 못지 않게 자기 업무에 대한 전문 지식과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프로세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문학적 교양과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이해가 만났을 때 피터 드러커와 같은 경영의 대가가 나온다. 드러커는 비즈니스의 목적을 한마디로 규정했는데 그것은 즉, ‘고객을 창출하는 것’이다. 매출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관점은 오늘날 IT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더욱 큰 통찰력을 보여준다. 전세계 최고의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Google은 자신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요금을 매기지 않는다. 전세계 13억 인구가 사용하는 facebook 역시 첫 로그인 화면부터 자신들은 무료 서비스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전세계 IT 비즈니스의 흐름을 주도하며 IT 뿐 만 아니라 최고의 기업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을 창출하는 데만 집중함으로써 가입자 스스로가 비즈니스의 기반이 될 수 있도록 시장을 재편했다. 비즈니스를 재정의 한다는 것은 곧 관점을 달리 한다는 것이고, 다른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곧 비판력과 통찰력, 그리고 창의력을 동시에 갖춘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보고서, 특히 PPT로 이루어진 보고서들이 어디서 부터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온통 데이터를 비롯한 사실만 나열되어 있어 무슨 말인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으며, 결코 결론을 찾아 낼 수 없는 이유는 모두 여기에 있다. 그것을 쓴 사람조차 그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보고서가 제대로 써지지 않아서 고민이라면 지금 당장 자신의 관점부터 재점검해보라. 그리고 그 관점으로 자신의 보스를 설득할 자신이 있는지를 자문해보라. 그럴 수 있는 관점을 세웠다면 이제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논거들, 즉 데이터들을 구조적으로 연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보고서는 저절로 굴러가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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