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jryu
4 years ago50,000+ Views
이 책은 부제처럼 '정신(영성) 진화의 새롭고 근본적인 길'을 제시하려는 시도입니다. 특히 변혁을 위한 거의 모든 수단을 섭렵해본 저자가 62세때 삶의 바닥을 체험하고 소위 마음을 완전히 비운 상태에서 깨달은 체험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특히 인상깊게 느낀 것을 위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30년간의 양자물리학에 대한 관심을 근거로 플라톤의 동굴 비유가 뜻하는 게 홀로그램 우주임을 입증코자 노력하고 있습니다(1부). 저자는 이 비유를 360도의 화면을 가진 3D 영화관으로 바꾸어서 우리 삶 자체가 '연기'와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실상 이런 생각은 장자의 호접몽과 불가의 마야론의 취지와 같습니다. 2. 2부에서는 삶의 모델로서 의식모델과 게임모델이 제시됩니다. 의식모델이란 고요한 가운데 지켜보는 의식으로서의 'I Am' 파트를 무한자(Infinite I)로 보고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것의 주관을 무한자가 한다는 가설입니다. 통상의 우리는 'I Think' 파트로서 무한자가 창조한 현실에 반응하고 느끼는 역할만 합니다. 그런데 이 가설은 힌두교나 기독교 전통에서 세상사를 걱정말고 모두 신께 맡기라는 명령과 상통합니다. 3. 게임모델을 연장해서 연기자모델과 인생의 전후반을 얘기하는데 잘 살펴보면 후자 둘은 게임모델의 변형확장으로 봐도 됩니다. 특히 전후반의 중간에 고치속 번데기 과정이 있는데 저자는 이 기간이 기독교 신비주의의 '영혼의 어두운 밤'에 해당한다고 해서 2~3년 걸리는 걸로 봅니다. 이 기간은 바로 3D 영화관을 탈출함(breakout)으로써 시작된다고 보는데 마이스터 에카르트의 돌파(breakthrough)를 연상시킵니다. 4. 특히나 이 탈출이 없는 기존의 거의 모든 변혁 노력은 극장 내에서의 무한 루프처럼 헛돌고, 지복을 누리지 못하는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기 때문에 효과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어쨌든 저자는 극장탈출 이후 고치단계에서 두가지 중요한 작업을 제시하는데 그 한가지가 이미 소개한 스트레스에서의 감정분석(로버트 프로세스)입니다. 또 한가지는 영적 자기분해인데 우리의 정체성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진리에 맞는지 철저히 묻고 맞지 않는 걸 끝까지 찾아 없애는 노력입니다. 5. 종합컨대 저자의 처방은 불가의 방하착 및 데이비드 호킨스의 '내려놓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즉 선악 판단을 하지 않는 불이문(아드바이타, non-duality)의 길을 통해 선악과 먹기전의 아담과 이브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지복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이것은 당신께조차 선하다는 말을 하지 말고 모든 심판을 금지한 예수의 명령에도 통합니다. 영적 자기분해를 통해 도달하는 경지는 무아(no self)라 해서 이 작업을 양파까기에 비유합니다. 이 처방은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를 철저히 묻는 자아탐구에 조응합니다. 6.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을 거쳐 도달하는 경지를 나비로 비유한 것은, 지천명과 이순을 거쳐 마음대로 해도 걸리는 게 없는 유가의 이상인 종심소욕불유구를 떠올리게 해서 이 책이 동서양 영성을 종합했을 뿐 아니라 체험과 실험을 거친, 손에 잡히는 수양법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부연하면 무한자의 주권에 완전히 순명하는 것은 지천명에, 에고를 없애 무아가 되는 것은 이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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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살아가기(자존감 VS 자기객관화)
현실에서 살아가기(자존감 VS 자기객관화) 많은 심리학자들이 자존감에 대해서 말한다. 나 또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중 단 하나를 뽑자면 무엇일까? 예전에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해주는것...' 너무나도 멋지고 맞는 말이지만 이제는 이 표현도 식상하고 부담스럽다. 나는 '자기 객관화능력'을 뽑고 싶다. 사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의 주요한 특징중 하나는 현실직시능력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고 억압하고 회피할때 우리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눈 앞의 현실이 너무 괴롭기 때문에 위축이 된다. 마치 어린사슴이 정글에서 맹수들과 함께 치열한 생존게임을 하듯... 이 사슴이 사는 길은 무엇일까? 자존감은 왠지 포근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울 것 같지만 까발려 보면 생존과 연결되어있다. 우리가 아무리 고상하게 말을 해도 결국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면 결국 빵을 훔쳐 먹게 될수밖에 없다. 현실은 냉정하고 정확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현실속에 반응해야 한다. 전쟁터처럼 치열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현실을 벗어나는 유일한 시간은 잠잘때이다. 아니면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내려놓았을때이다. 또 하나가 있다면 술에 잔뜩 취할때이다. 아니면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자기착각에 빠진상태일지도 모른다.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실적인 사람의 눈에는 불쌍하게 보일 뿐...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은 기분이 좋아서 헤헤헤 거린다. 그렇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안타깝게 보인다. 마약에 취한 사람은 자기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미친사람처럼 보인다. 백수 김모씨는 매일 로또를 사며 대박을 꿈꾼다. 주변 사람은 그럴 시간에 일을 하라고 한다. 나는 한때 '상상하면 이루어진다'다는 시크릿과 같은 심리적인 갈망을 좋아했다. 그것이 자기최면의 핵심인양 착각한적도 있었다. 이 개념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닥.. 그렇다. 이들에게 자기객관한 능력이 있었다면 그러한 이상한 생각이나 행동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지금 피와 땀을 흘려서 성취하라고 약간 재수없게 말하고 싶다. 명상하는 것도 참 좋고, 매일 기도하는 것도 참 좋고, 매일 거울을 보고 화이팅을 외치는 것도 참 좋고 긍정적인 자기최면도 참 좋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정신적 활동이 현실을 배제한채 자기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못한채 진행된다면 이는 망상에 가깝다고 볼수 있다. 그냥 뜸구름잡는 자기위로가 될수도 있다. 술에 취하면 다음날에 깨어나기라도 하는데, 정신이 홀리거나 취해버리면 답이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 내가 호되게 취해봐서 잘 안다. 내가 사람들에게 했던 표현은 이렇다. " 들어갈때는 너무나도 황홀하게 기분이 좋았어요." " 나올때는 심장(목숨)걸고 나왔어요." 눈 앞에 보인 현실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정신적인 공부를 하다보니 현실이 작아 보였다. 다양한 신비, 영적(?)체험을 했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될것 같은 희열을 경험했다. 처음에는 뭔가 되는듯 보였지만 시간이지나면서 내가 서서히 이상해져감을 느꼈다. 자존감이 더욱더 낮아지는 것이다. 세상 사람과의 교류를 점차 줄이는 것이다. 스스로 의지를 내기보다는 무언가에 자꾸 의존을 했다.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전혀 듣지 못했다. 뭔가 모를 마음의 불안감 우울감이 커졌다. 나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고 멘탈이 약해졌다. ----------------------------------------------------------------- * 정신적인 수행의 문제있음이 아닌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잘못 배운 점을 말한것임^^* ----------------------------------------------------------------- 내가 우산을 들고 있는 느낌이 아니였다. 누군가가 우산을 대신 들어주고 있다는 느낌... 내가 원할때 우산을 펴고 접을수 없는 듯한... 언젠가는 비를 맞아서 흠뻑 젖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 나는 어릴때부터 눈 앞에 보이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현실을 긍정적으로 포장하고 싶었다. 아니 숨겨버리고 싶었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미래의 성공을 꿈꾸었다. 사실 드라마의 주인공은 힘든 현실을 묵묵히 견디고 살아왔다.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았고 이상한 생각에 갇히지도 않았다. 힘들수록 더 당당하게 현실을 마주했다. 술에 취하고 약에 취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왕자나 공주를 기다리듯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건전하고 건강하고 분명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에 반한 것이다. 아니 현실적으로 잘못하는 그 행동이 이상적인것이다. 외모만 꾸민채 백설공주를 기다리지 않았다. 외모만 꾸민채 백마탄 왕자님을 기다리지 않았다. 자기객관화와 동시에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그럴때 자존감을 지키고 유지할수 있다. 그럴때 멘탈을 부여잡고 현실을 살아갈수 있다. 자기객관화는 자기의 현 주소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나의 주소를 모르면 지금 이 자리가 어딘지를 모른다. 어디로 가야할지 또한 설정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오지 못한다. 어딘가로 갈 곳도 없고 갈수도 없다. 그럴때 자기 생각속에 빠져서 갇혀 버리는 것이다. 예전에는 현실적인 사람이 조금 재수 없어 보이고 너무 냉정한 사람이 아닌가 싶었는데 지나치게 감성적이며 감정적인 나에게 필요한 건강한 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말한 현실은 돈밖에 모르는... 생존을 위해서 투쟁하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따뜻한 마음이 없이 계산만 하는.. 그런 느낌이 결코 아니다. 현실을 분명히 인지해야 함을 말하고자한다. 그 현실을 마술처럼 피할 능력은 아무도 없다. 굳이 있다면 전지전능한 신일것이다. 그런데 그 신이 지금의 현실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해주겠는가? 돈이 없는 나에게 일확천금을 주겠는가? 수능에 떨어진 나에게 명문대합격 통지서를 주겠는가? 알바하고 있는 나의 학자금 대출을 갚아주겠는가?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당하는것을 미리서 막아주겠는가? 알콜중독자 남편이 하루아침에 술을 끊고 멋진 아빠가 되기를 기대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을까? 눈 앞의 현실은 내가 거부하더라도 나타난다. 오늘 눈 감아 버리면 다음날 눈 앞에 나타난다. 내일 눈 감아버리면 미래가 캄캄해진다. 때로는 너무 힘들때 잠시 쉬는 지혜도 필요하다. . 잠시 눈을 감고 안식처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견딜수 없는 현실에서 피할때도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위로도 필요하다.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오늘을 쉬게 할줄도 알아야 한다. 무조건 맞서서 싸우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왜곡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의 눈은 항상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팩트폭력 앞에서 도망가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뼈 아프지만 그대로 맞아줄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를 더 현실속에서 성장시킬수 있다. 현실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것이 나를 속이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의 망령, 생각의 망령에 빠져서 이 현실속의 꼰대가 될수도 있다. 전쟁과 같은 현실에서 다들 총을 들고 사는데 나혼자 활을 들고 사는 것과 같다. 나만 힘든 것 같지만 다 각자의 삶속에서 힘들게 산다. 누구라도 현실을 놓아버리고 도망가고 싶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아야하는 생존의 문제가 있고 누군가를 지켜야 하는 책임감이 있고 현실에서 나를 실현시켜야 하는 삶의 목적이 있다. 나역시 이따금 도망가려고 발버둥치는 나를 보곤 한다. 그럼 측면에서 자기 자신을 객관화 하는 삶의 태도는 참 중요하다. 그래야만 현실에서 굳건하게 당당하게 설수 있다. 자신을 비하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대단한 사람처럼 포장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수 있는 건강한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다양한 정신적인 노력을 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할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마주할수가 있다. 나를 왜곡하는 순간 내가 보는 세상이 왜곡이 된다. 그때부터 정신적인 혼란을 비롯한 방황이 시작된다. 부족하면 노력해서 채울 것이고, 넘치면 비워서 가라앚은 배를 뜨게 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일이면 손해를 보더라도 멋지게 가야하며 나쁜 길이면 빨리 반성하고 돌아오면 된다. 잘못했으면 솔직하게 사과해야 한다. 당장은 현실속의 나를 받아들이기 싫을수도 있고, 나라는 존재를 존중하기가 어려울수도 있다. 항상 내가 부족해보이고 남과의 비교속에서 별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수도 있다. 나에 대한 객관화는 내가 부족한 존재라는 비난이 아닌, 목적지를 찾아가기 위해서 현재의 내 위치를 구체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이다. 지금의 나를 만나게 되면 다시 일어술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 멈춘 마라톤이라는 인생의 레이스를 다시 시작할수 있다. 그러한 현실이 희망이 되고 꿈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의 힘으로 만들어가고 뛰어가는 가슴뛰는 삶에 취해서 살아가야 한다. 한국 최면치유 연구소장 김영국
아껴 읽고 싶은 책 속 너와 나의 이야기: 5
100개가 넘는 게시글 중 조금씩 걸러내며 게시를 하고 있습니다. 주관적으로 좋다고 생각되는 글을 옮겨 적는데 타인은 어떻게 받아들일 지 모르겠네요. 오늘도 글을 적겠습니다. 새로운 시대란 오래된 달력을 넘길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보는 혹은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서로의 눈동자에서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텅 빈 눈동자에 가득 차있는 어둠의 명암은 각기 다르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나누는 온도의 밝음이 옅은 어둠부터 흐리게 만들고 그러다 보면 나의 그리고 너의 어둠은 점차 옅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시대가 오지 않을까_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 준#난다 창밖을 바라볼 때 창문이란 프레임 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사람들은 나의 인생 속 한 장면이자 그림이 된다. 프레임속의 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가_ 외면의 내가 내면의 나에게 묻는다. 그렇게소중했던가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 안에 털어 넣는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은 왜 못 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는 삶은 꿈이다 꿈에서 깨어나 '오늘'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까지 조용히 읽어내려갔다. 이성복 시인의 '그렇게 소중했던가'를 TV에서 들은 뒤로 두 번째 만남이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라는 문장이 어딘가 막힌 채 생각의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게까지 소중하지 않았던 것들에 마음 쓰던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마음아 넌 누구니#한국경제신문#박상미 세상은 좋은 눈빛들마저 거두어갔다. 생생한 눈빛들을 끌어다 어딘가에 슬쩍 묻어버린 것은 우리들의 피로감이며 속도며 물질이 시킨 일이다. 세상은 불가능한 것들을 눈빛으로 맞서봐야 헛일이라고 눈조차 뜨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눈빛이 도태 대상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영원히 그럴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병률#달 상대적인 것은 주관을 배재한 채 사고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우겨넣어 상대적인 것을 절대적인 것처럼 말하곤 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불안과 초조를 '너 정도면 아직 젊은거지. 뭐가 걱정이야?' 라든지 '그 나이 땐 다 그래.' 라며 나의 고충을 일반화 시켜버린다. 난 지금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나이를 맞고 있는데 말이다. #나 안 괜찮아#실키#현암사 매일을 당신이라는 별을 위해 살고 매일을 당신이라는 별을 위해 미소 짓고 또 매일을 당신이라는 별을 위해 기도하며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별이 될게 당신의 별, 그대의 별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김경원#푸른길 저를 얼마쯤은 놓칠 줄 안다는 것 묽디묽우 풍경 속에서 멈칫, 흐릿해질 줄 안다는 것 색을 흐린다는 것은 그러니 나를 아주 지우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나를 아주 지우지는 못하고 물끄러미, 다만 물끄러미 놓쳐 본다는 것이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의 빛의 온기를 손 안에 잡아본다. 아직은 나를 아주 지우고 싶지 않다. #시시하다#진은영#예담 비와 달빛 속의 눈사람 우린 모두 제로(0)와 무한(∞) 사이에서 녹고 있는 눈사람(8), 자신의 부재를 자신의 몸 전체로 목격하고 기억하기 위해 눈동자부터 녹아내리는 진행형 물질. 너에게로 흘러들어가고싶은 슬픈 한 방울 방울이 모여 웅덩이 채로 고여버렸다. #고독한 대화#함기석#난다 밤하늘에 별들이 빛납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반짝거리는 수많은 별들을 봅니다만, 사실 저 별빛은 이미 오래전에 출발해서 지금에야 우리에게 도착한 '과거의 빛' 들입니다. 서로 다른 과거들이 한 하늘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과거는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 여기'에서 과거는 출렁거립니다. 나의 시선, 나의 몸짓에 따라 과거는 다르게 빛납니다. 현재와 과거가 다르길 바란다면 과거를 공부하라. #철학을 담은 그림#채운#청림출판사
서울살이, 찌질한 독백
서울로 취직한 지 5년 차. 처음 서울에 올라오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내가 원하는 직장이 서울에 있었고 젊은이는 역시 서울에 살아야지! 라는 조금 가벼운 생각 때문이었어. 그런데 서울살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더라고 서울에서는 숨 쉬는 것 빼고 전부 돈이야. 거의 잠만 자는 내 작은 방, 이곳에 누워만 있어도 내 월급은 반 토막이 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밥 한 끼, 술 한 잔 마시는 것도 어느 순간 부담스럽게 느껴지더라. 친구들이 입는 예쁜 옷, 물론 부럽지만 이번 달 통장 잔액을 보면 어림도 없어.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 있는데 서울에서 태어난 것 자체가 큰 스펙인 것 같아. 난 서울에 사는 친구들보다 반밖에 못 쓰고 반밖에 못 모아. 예전에는 일찍 독립한 나 자신이 꽤 멋지다고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건 아니더라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생각했던 삶이 주는 안전함과 포근함이 문득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어. 어린 시절부터 서울의 문화나 경제력, 인프라 등을 체험하고 자라온 친구들을 동경했었어 어른이 되고 이제 서울에 올라왔으니 나도 모든 걸 누릴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들떴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찌질하고 어렵네 미래보다 당장 내일을 견뎌내야 하는 현실이 무서워 온갖 걱정들은 새벽 내 함께 치덕이다 잠들곤 해 걱정 없이 잠드는 게 가장 큰 바람일 정도로 눈 감는 매일 밤이 눈 뜨는 매일 아침이 고되다. 이방인으로 느껴지는 나 자신을 꾹 참고 견뎌내면 서울 사람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필사적으로 달려야 할까? 내가 남들처럼 천천히 걷게 되는 날이 오긴 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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