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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 바라보는 남친이 별걸 다 하고싶다네요
자기도 스타벅스에 앉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실은 냉커피라고 했음)쪽쪽 빨며 놋북으로 막 바쁜척 해보고 싶다고 그래서 지금 아침 댓바람부터 주말 늦잠도 못 자고 끌려와 있습니다. ㅜㅜ 며칠전부터 하도 조르길래 주말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기 싫어서 스타벅스에 밀레 등산복 입고 오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을꺼라고 되도 않는 까지 했는데 기가 죽어 포기할 줄 알았더니 어제 저녁에 백화점 문 닫기전에 얼른 가서 옷 골라달라고 ㅜㅜㅜㅜ 아니.....이 아저씨야..... 뭔 스타벅스가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도 아니고 아니고 옷장만까지 해서 가는 사람이 어딨냐고 어이없어 했더니 자기도 말 안되는거 아는데 저한테 밀레 등산복 얘기를 듣고 나니 정말 평소 자기 스타일이 딱 아저씨 스탈였다는걸 절실히 깨달았다며 옷 고르는거 꼭 좀 도와달라고 어찌나 간절히 부탁하는지 할 수 없이 따라나섰습니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는데 저희 바로 앞에 서있는 아가씨 몸매가 진짜 후덜덜했어요 평소엔 그런 아가씨들 보일때마다 남친에게 시선처리 똑바로 하라고 바로 경고 날렸는데 이건 뭐 여자인 제가 봐도 너무 어마어마한 몸매인데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차라리 쿨한 척이라도 하자 싶어 남친에게 "어차피 당신은 이번 생에서는 저런 여자 못 델꼬 다니니 다음 생을 기약해요" 라고 했더니 "아니. 난 다음 생에 꼭 저런 여자로 태어나서 세상 남자 다 꼬셔버릴꺼야" 라길래 공공장소에서 그만 남친 등짝을 쳤네요  남성복 코너 가려하니 여기 아니라며 캐주얼층으로 끌고가 딕키스의 레글란 소매 티셔츠를 몸에 대보며 산뜻하지? 세련됐지? 이러는데 지금 나의 사랑을 시험해보는거냐고 진지하게 물어보려다 겨우 참았어요. 어차피 딕키스엔 맞는 사이즈가 없다는걸 알았거든요 겨우 막달 임산부만한 배를 가려줄 티셔츠 한 장 사고서 어찌나 좋아하는지 안쓰러운 마음도 들데요. 오늘 아침 7시반부터 새 옷 입고 제 집 앞에 찾아와 빨리 내려오라고 어찌나 전화를 해대는지 저 지금 몹시 졸립고 피곤해요 ㅜㅜ 이게 뭐라고 그리 해보고 싶었냐고 물으니 얼마전 스타벅스에서 일 약속이 생겨 낮에 갔다가 충격 받았답니다. 놋북이며 태블릿 피씨들 들고와 이어폰 끼고 뭔가 자기 세상에 빠져 있는듯한 젊은 애들을 보니 고1때부터 10년 동안 매일 신문 돌리고 방학마다 막노동을 해도 너무 힘들었던 자기의 대학생활이 갑자기 떠올라 서글퍼졌는데 아직도 매일 새벽에 출근해 전쟁 같은 업무를 치루는 시간에 밖에는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싶어 서럽더랍니다. 대학때 친구들이 테이블마다 전화기 있다는 압구정 카페 다니는 것도 그렇게 궁금하고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걸 한번도 못해봤다고 ㅠㅠ 놋북 펴놓고 뭔가 몹시 열중해서 하길래 슬쩍 들여다보니 주간업무일지 밀린거 작성하고 있네요 ㅋㅋ 쩜전에 여기 커피 더 달라면 더 줘요? 라고 두리번 거리며 묻길래 그냥 조용히가서 한 잔 더 사다줬어요. 제꺼 보더니 자기도 회원 가입해서 핸펀에 스벅 어플 넣어달라네요 ㅋㅋ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고단한 나이에 만난 인연이어서 그런가..... 피곤과 술에 쩔어있는 아저씨의 모습만 보다가 오늘은 왠지 애잔하고 안쓰럽네요. 평소에 햄버거를 어떻게 만들어야 수제냐고 궁금해하던데  나온김에 점심에 수제햄버거라도 사주면 놀래자빠지겠져 ㅋ 두분 다 사십대라고 하시는데 너모 기여우시네여ㅠㅠ
<일기시대> 문보영
<일기시대> / 문보영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일기시대>를 읽으면서 확실히 깨달았는데 나는 글 같지 않은 글(?)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일기시대> 속에는 문보영 시인의 일기로 이뤄진 글들이 들어있는데 일반적인 일기라고 보기에는 조금 특이하다. 성인의 일기라고 하면 보통 다른 요소가 딱히 없는 줄글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일기시대> 속 일기에는 뜬금없이 그림이 등장하기도 하고 사진이 나타나기도 하며 시나 짧은 소설 비슷한 것부터 굳이 각주가 없어도 될 것 같은 내용에 굳이 상세하게 달리는 각주까지 온갖 요소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일기시대> 속 글들은 소설이기도, 시이기도, 에세이이기도, 논픽션이기도, 기행문이기도, 시나리오나 희곡이기도 하다.(심지어 한 글 안에서도 장르가 계속 바뀐다.) 나는 한 꼭지를 읽고 다음 글로 넘어갈 때마다 이번에는 도대체 뭐가 나올까 하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며 책을 읽었다. 문보영 시인은 이렇게 썼다. '그렇게 아무거나 쓰다 보면 어느 날 그 글은 소설이 되기도, 시가 되기도 한다. 일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p.34) 자신의 말처럼 문보영 시인은 정직한 일기를, 즉 아무거나 썼고 나는 <일기시대>를 다 읽고 나서야 내가 글 같지 않은 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글, 아무거나 쓴 글에 끌린다는 걸 깨달았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처럼 넘쳐나는 각주와 참고문헌들로 인해 소설보다는 논문에 가까운 소설이라던가, 정영문의 장편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로 이루어져 도무지 서사를 따라갈 수 없음에도(사실 서사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마치 산문시처럼 이어지는 문장의 흐름과 리듬이 좋아 계속 읽게 되는 그런 글들 말이다. 어쩌면 이것들도 일기의 일종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일기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그 지점에서 개인적으로 반성하게 된 부분이 있는데 지금까지 100권이 넘는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매번 비슷한 형식으로 글을 썼다. 조금 더 아무거나 써야겠다. 책에 대한 일기라고 생각하면 아무거나 쓸 수 있지 않을까?) <일기시대>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은 <내 방에 물건 두고 가지 마>이다. 그중에서도 뒷부분에 나오는 눈물 모양 텐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한 예술가가 나무에 매달린 눈물 모양 텐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눈물 모양 텐트는 단순한 장식품이나 예술품이 아니어서 실제로 사람들이 묵을 수 있다. 그 안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여가를 즐길 수 있으며 들어간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텐트의 모양은 수시로 바뀐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어떤 거대한 슬픔을 겪은 이들의 생활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을 거대한 슬픔은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눈물 모양 텐트 속에서 생활한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흐른 뒤, 텐트 바깥의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이 멀쩡해진 것 같고 모두 훌훌 털어버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직 그들은 눈물 모양 텐트 속에 갇혀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때면 텐트의 모양을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슬픔을 받아주던 착한 사람들이 지쳐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한다고. 아직 눈물 모양 텐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들은 텐트 바깥의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슬픔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 텐트의 모양을 바꾼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이 아직 눈물 모양 텐트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고 만다. 그들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밤이 되어 혼자 남으면 너무나 지쳐 모든 움직임을 멈출 것이고 텐트는 다시 눈물 모양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 커다란 슬픔을 겪은 이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면 그가 텐트의 모양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책 리뷰(라고 쓰고 책일기라고 읽는다.)에 조금 더 아무거나 쓰기로 했으니 아무거나 이어서 써 보자면 <일기시대>속에서 몇몇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맞춤법이 틀린 것 같다거나 문장이 어색한 부분들이었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첫째, 내 맞춤법 실력이 미천하여 옳은 맞춤법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둘째, 작가나 편집자가 특별한 의도로 남긴 것이다. 셋째, 제대로 수정되지 못한 맞춤법이나 오탈자이다. 어떤 경우든 간에 이점이 있는데 첫 번째 경우라면 옳은 맞춤법을 알게 되었으므로 내 맞춤법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고 두 번째 경우라면 작가와 편집자의 특별한 의도를 읽어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세 번째 경우에 꽤나 큰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산 책이 1판 1쇄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어색하게 느낀 부분들이 제대로 수정되지 않은 맞춤법이나 오탈자라면 당연히 2쇄부터는 수정되어 나올 것이고 이 잘못된 맞춤법과 오탈자는 오로지 내가 산 1판 1쇄에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 만약 문보영 시인이 시간이 지나며 좋은 작품을 쏟아내어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된다면? 그때는 <일기시대> 1판 1쇄의 가치가 미친 듯이 뛰어올라 한 권에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1판 1쇄에만 남아 있는 잘못된 맞춤법과 오탈자가 진품을 판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아, 이건 진품이 아니군요. 보십시오, 여기 '그래서'라는 단어에 오탈자가 없지 않습니까? 진품은 서 자가 빠져 있습니다. 아쉽지만 가품이네요.) 그 날을 기다리며 <일기시대>는 지퍼백에 넣어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겠다.(존버는 승리한다!) 이번에 책을 사면서 굿즈인 노트도 함께 받았는데 그 노트에는 <일기시대> 속 문장들이 하나씩 적혀있고 그 밑을 독자가 직접 채울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참에 그 노트를 가지고 일기를 좀 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하루 만에 방학 동안의 밀린 일기를 전부 썼던 때 외에는 제대로 일기를 써 본 적이 없다.(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방학 숙제를 빌미로 전국의 초등학생들에게 일기 쓰기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현재 일기를 쓰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일기시대>도 읽었고 초등학교 때처럼 억지로 써야 되는 것도 아니니 굿즈 노트 속에 일기를 쓴다면 굉장히 아무거나 쓸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면 내가 쓰는 책 리뷰도 조금 더 아무거나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면 일기도 쓸만하지 않을까?(일기를 쓰기로 결심하면서 하나 다짐한 게 있다. '참 재미있었다'로 끝내지 않기.) <일기시대> 속에서 인상 깊었던 글 세 꼭지를 소개하며 마치겠다. 가장 웃겼던 글은 <선 넘기는 기본 메뉴, 박기는 사이드 메뉴>. 가장 슬펐던 글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1, 2화. 가장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 글은 <내 방에 물건 두고 가지 마>. 책 속 한 문장 그렇게 '눈치'라는 것은 저절로 생겨난다. 어른이 된 황구는 생각하곤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눈치가 없는 사람들은 눈치가 없어도 공동체에서 내쳐질 위험이 없었기 때문에 눈치를 배울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할아버지의 검은 봉지
저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오래전 저희 가족은 한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고 이사 기념으로 만든 떡을 이웃 주민과 나눴습니다. 이웃 중 할아버지 한 분이 유독 고마워하시며 현관문 손잡이에 작은 호박 두 덩이와 호박잎이 담긴 검은 봉지로 답례를 하셨습니다. ​ 이후에도 손수 만든 음식을 가지고 찾아가면 얼마 후 저희 집 현관에는 검은 봉지가 걸려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봉지에는 김부각, 깻잎과 콩잎 등 소박한 답례와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렇게 저희 가족은 노부부와 소소한 인연으로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위층에서 ‘쿵’ 소리가 들렸고 평소 거동이 불편하던 할머니가 생각나서 급한 마음에 올라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인기척이 없었고 불안해진 저는 곧장 119에 신고했습니다. ​ 구급대원과 함께 문을 뜯고 들어간 집에는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빠른 발견으로 위급한 상황은 넘겼고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온 할아버지는 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계속하셨습니다. ​ 그리곤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마다 저희 집 차를 몰래 세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 차를 숨기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찾아내 깨끗하게 세차를 해 놓으셨습니다. ​ 저희 남편까지 나서 할아버지를 겨우 설득해 세차를 멈추게 했지만, 대신 문고리엔 검은 봉지가 더 자주 걸렸습니다. ​ 그리고 얼마 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할아버지는 자식과 함께 지내기 위해 이사를 하게 되셨는데 이사하는 날, 할아버지는 저희 집에 찾아와서는 옥가락지 하나와 은가락지 하나를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아들만 둘인데 막내딸 생긴 기분이어서 좋았어. 그리고 이삿짐 정리를 하다 보니 이거를 발견했는데 아마도 먼저 간 그 사람이 막내딸에게 주라고 남겨둔 것 같아서 들고 내려왔어.” ​ 저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주신 가락지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제법 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문득문득 할아버지와 검은 봉지가 떠오릅니다. 오늘 사연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매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 주변에는 존중과 배려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 쑥스러워서, 바빠서 등 다양한 이유로 덮어두었던 마음을 작게나마 표현해 보세요. 세상은 따뜻함으로 물들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겨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을 네가 먼저 그에게 베풀어라. – 공자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정 #이웃 #관심 #이웃사촌 #인생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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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2일 차. 여행이 잡혀 있어서 그제는 정말 혹독하게 운동했다. 코치 님은 나를 막 굴렸고, 나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전반적인 가슴 운동을 마치고, 암워킹 푸시업을 20개부터 5개까지 역순으로 진행했다. 20+19+18+17+16+15+14+13+12+11+10+9+8+7+6+5=? 그렇다. 200개다. 정말이지 나는 죽을 뻔했고, 체력이 거의 고갈된 상태로 러닝머신 위에 오르니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았고, 지루해 죽을 것 같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태안의 마검포해수욕장 근처의 캠핑장을 오는 길에 갑자기 허기가 졌고, 우리는 인근 식당을 찾았지만 식당이 거의 없었고, 겨우 허름한 곳을 들어가 주문했을 때, 나는 내가 정확히 만 이틀 만에 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수요일 점심에 밥을 먹고, 그날 저녁에는 닭가슴살, 다음날은 샐러드 데이라 점심 샐러드, 다시 저녁 닭가슴살. 괜히 허기가 진 게 아니었어. 배가 고파 죽을 뻔했지만, 역시 죽지는 않았다. 캠핑을 좀 다녀본 친구는 크게 화려하진 않아도 장비를 그럭저럭 갖추고 있었다. 수평선 위에 펼쳐지는 노을을 보며 우리는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지난 추억들을 꺼내 노을에 적셔 먹었다. 친구는 추울 테니 점퍼를 챙기라고 진즉부터 충고했었다. 물론 얇은 점퍼를 챙겨오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바다 앞이라지만 그래도 사월인데. 사월. 잔혹한 사월. 우리는 장작을 태우며 오래오래 불을 바라보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입대 후 훈련소 이후 이런 추위는 처음이었다. 추위 덕에 심한 피로감이 쌓였던 것이지 긴긴 불멍 후 나는 침낭 속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동사할 것 같았지만 아직까지는 죽지 않고 있다. 이쯤 되니 생존게임에 참가한 느낌이다. 새벽에 텐트 밖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나기도 했는데, 고양이들이었던 것 같다. 피폐해진 우리는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고 물이 빠진 바다에서 고동과 작은 조개 두 개를 간신히 잡았다. 이제 조개탕을 끓이려 한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해산물은 바다에서 잡는 게 아니다. 수산물 시장에서 잡는 거다. 어쨌든 고동과 맥주. 고맥! 근데 이렇게 그냥 먹어도 되나. 고동이 곧 삶아질 것이다. 그나마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춥다. 벌써부터 밤이 두려워진다. 내일 아침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스릴 넘치는 캠핑이다.
[토박이말 살리기]1-39 늘차다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늘차다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달인 #능수능란하다 #숙달하다 [토박이말 살리기]1-39 늘차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늘차다'입니다. 이 말을 두고 말집(사전) 가운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능란하고 재빠르다'라고 풀이를 하고 '늘찬 일솜씨'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서는 ' (솜씨가) 아주 익숙하고 재빠르다'고 풀이를 해 놓고 "김 씨는 일솜씨가 늘차서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의 일을 금세 해 버리더라고."를 보기월로 들었습니다.   저는 '능란하다'가 '익숙하고 솜씨가 있다'는 뜻이고 '익숙하다'는 것은 '일 따위가 손에 익다'는 뜻이니 '늘차다'를 '일 따위가 손에 익어서 솜씨가 있고 재빠르다'라고 풀이를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숙달된 조교'라는 말이 생각났는데 '숙달된 조교'를 '늘찬 조교' 라고 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 '숙달하다'를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익숙하게 통달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고 '통달하다'는 ' 사물의 이치나 지식, 기술 따위를 훤히 알거나 아주 능란하게 하다.'라고 풀이하고 있으니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일 따위가 손에 익어서 솜씨가 있게 하다'라고 할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달인'이라는 말도 떠올랐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달인'을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이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통달하다'를 가지고 말하자면 '통달한 사람'이 되니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늘차다'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달인'을 '늘찬 사람' 또는 '늘찬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말집(사전)에서 '능수능란하다', '달인'이라는 말을 풀이할 때 '늘차다'라는 토박이말을 가지고 풀이를 하고 '능란하다', '숙달하다', '통달하다'와 비슷한 말에도 '늘차다'를 넣어 주면 모르는 사람들도 찾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무지개달 열아흐레 한날(2021년 4월 19일 월요일) 바람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