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o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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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완성도를 지닌 중형세단, 현대자동차 LF쏘나타

기대 이상이었다. LF쏘나타는 전작과 비교해서 한층 세련된 내외관 디자인과 뛰어난 직진 안정성, 코너링 돌파력 등 다부진 성능을 발휘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변화된 디자인 철학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은 쏘나타의 모습을 여느 독일차 못지 않게 만들었다. 다만, 신경질스럽게 울어대는 엔진음 대비 떨어지는 가속 성능은 아쉬웠다. 엑셀러레이터를 깊숙히 밟아도 가속력은 쉽사리 터지지 않았다. 어수선하고 정신사납던 YF쏘나타의 디자인은 찾아볼 수 없다. 껄렁껄렁한 옷을 입고 다니던 대학생이 취업 후 말끔한 정장을 입은 것과 같이 그 모습은 단정해졌다. 현대자동차 디자인이 드디어 올바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다. LF쏘나타의 큼지막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전면을 향해 돌출되어 있다. 좌우 헤드램프는 측면부에서 봤을 때 그릴보다 뒤에 위치한다. 그런 형상이 차의 전면부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http://manotorblog.com/ http://www.manot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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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들이 꼭 알아야 할 방어운전 팁
1. 안전거리를 확보한다. 아주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사실 정신없이 운전을 하다보면 정말 어려운 부분중에 하나인데요. 특히 앞차는 물론 뒷차와의 간격이 사실 매우 중요합니다. 최근 일어나는 사고의 원인을 보면 끼어들기 및 급정거에 대한 부분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대비하기 위해서도 초보운전의 유의사항으로 많이 배우신 안전거리 확보에 반드시 조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2. 넓은 시야를 확보하기 사실 운전 경력이 오래 된 분들의 차를 타면 늘 안정적인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특히 그분들이 늘 좌/우를 계속적으로 사이드 미러로 확인하며 운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이렇게 주변차에 대한 넓은 시야를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항상 신호체계를 잘 확인하며 비보호 좌회전 및 신호에 있어 늘 차량 앞 5대 정도의 상황을 늘 유심히 살펴 보시면서 급작스런 우발상황에 반드시 대비해야합니다. 3. 진로를 변경하면서 반드시 방향지시등 사용 자칭 운전에 고수분들이 늘 잊어먹는 기본 예절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차선을 변경하거나 또는 좌회전/우회전 시 최근에는 더욱 이렇게 방향지시등을 안하고 운전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상대방에게 내가 어디로 이동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일종의 신호이기 때문에 항상 간단한 이동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켜주시길 바라며, 일종의 차선 변경이나 또는 뒷차에 감사(?)한 상황이 있다면 예의상 비상깜빡이를 키는 것은 차후 보복운전이나 기타 상황에서 매우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후방차량에 대해 방어운전방법 사실 방어운전의필요성은 나에 대한 안전도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경고도 그 의미가 됩니다. 가장 사고가 많이 나는 이유가 바로 근접했을 시 매우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부분인데요. 이럴때는 후방의 차량이 자신의 차를 추월할 수 있도록 양보하는 것과 조금씩 브레이크를 사용해서 상대방 운전자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5. 운전에 집중하기 가장 위험한 부분입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 시 징역에 처하는 법을 국회에서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운전 중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인데요. 졸음운전을 예방하기 위해 단순한 대화 나 음악듣기는 사실 괜찮지만 시선이나 집중도를 흐리는 스마트폰 조작 및 네비게이션 조작의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운전중 운전에만 집중해야합니다. ------------------------------------------------- 카카오채널소식받기 https://goo.gl/j8DGVG 카카오톡 소식받기 https://goo.gl/igLUav -------------------------------------------------
6개의 별무리를 상징하는 스바루
... <사진= 스바루라는 이름을 붙인 건 후지중공업 사장 키타 겐지(작은 사진)다.> ... 후지중공업 자동차 부문이 스바루 전신 일본 자동차 이름 중에서 가장 특색 있는 이름은 아마도 스바루(SUBARU)일 것이다. 스바루는 별자리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스바루자동차는 군수산업에서 출발했다. 모태는 1917년 나카지마 치쿠헤이(中島知久平)가 설립한 ‘나카지마 항공기 회사’다. 이 회사는 2차 대전 후 후지산업으로 개편됐고, 다시 후지중공업으로 변모했다. 후지중공업의 ‘자동차 부문’이 스바루의 전신이다. 나카지마 항공기 회사 창립 100주년(1917)에 맞춰 2017년 사명을 ‘스바루’로 변경했다. 후지중공업의 차에 스바루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것은 초대 사장 키타 겐지다. 그는 전후(戰後)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1953년 후지중공업은 첫 자동차 P1 제작에 나섰다. 문제는 여기에 붙일 이름이었다. 글로벌 테크매체 테크사이언스뉴스(techsciencenews), 미국 자동차 잡지 허밍턴 모토 뉴스(Hemmings Motor News),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뉴스휠(News Wheel)에 따르면, 키타 겐지는 전반적으로 디자인에 만족하면서(while pleased with the overall design) “일본 자동차는 일본 이름을 가져야한다”(Japanese car should have a Japanese name)고 주장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단어 '스바루' 이름 붙여 하지만 키타 켄지는 P1에 맞는 의견 수렴을 회사에서 했지만 어느 것도 충분하지가 않았다. (Mr. Kita canvassed the Company for suggestions about naming the P1, but none of the proposals were appealing enough.) 결국엔 그가 어릴 때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스바루라는 일본어 이름을 붙였다. (In the end, he gave the car a Japanese name that had been his personal favorite from childhood.) 스바루는 ‘플레이아데스’라는 6개의 별무리에서 따왔다.(That is the Japanese name for the six-star constellation which translates to the Pleiades cluster.) 6개의 별은 후지중공업의 자회사 상징 키타 겐지에게 스바루라는 이름은 6개의 회사들이 결합된 후지중공업을 완벽하게 상징하는 것이었다.(To Kita, it perfectly symbolized Fuji Heavy Industries' creation by the merger of six smaller firms.) 첫 스바루 모델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바루를 뜻하는 플레이아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Atlas)와 플레이오네(Pleione) 사이에는 일곱 딸이 있었는데, 플레이아데스(Pleiades)는 여기에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플레이아데스는 ‘일곱 자매 별’(The Seven Sisters)이라고 불린다. ‘일곱 자매 별’인데 왜 스바루의 엠블럼에 있는 별은 여섯 개 일까. 전설에 의하면, 플레이아데스의 일곱 별 중 한 개가 유성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두 개의 별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하나로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스바루 엠블럼에 있는 6개의 별들은 후지중공업의 자회사들을 상징한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이루는 우주의 색이 파란색이기 때문에 엠블럼의 배경도 파란색을 채용했다고 한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6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캠핑카 TOP 10
캠핑족들이 늘어나면서 단순한 캠핑장비의 가격들도 천차만별 어마어마 한데요. 아예 캠핑카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시는 분들부터 구매하시는 분들 대여하시는 분들 다양하게 많이 존재합니다. 이런 캠핑카의 퀄리티를 상상초월하게 제작해서 만든 럭셔리여행버스 다양한 시스템,설정,디자인으로 돈 있는 부자들의 캠핑을 위해 만든 캠핑카를 소개합니다 10. Entegra Coach Cornerstone 45DLQ - 5억 5,000만원 화려하고, 다양한 요소를 가진 가장 넓은 버스중 하나 입니다. 사운드, 디자인 등의 고급 시스템으로 여행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캠핑카 입니다. 9. Country Coach Magna 630 -5억 8,580만원 ALO 600마력의 엔진으로 산악지형에 적합할 정도로 좋습니다. 퀸침대와 엔틱한 인테리어의 캠핑카 8. UNICAT Amerigo International - 5억 9,200만원 탐사 차량으로 우리가 아는 캠핑카의 모습과 가장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특수한 상황에 처한 경우, 물의 오염을 제거하는 워터메이커를 가지고 있어 더러운 물도 깨끗하게 사용 할 수 있습니다. 7. Monaco Dynasty 45P - 6억 9,323만원 RV업계 선두주자인 모나코에서 만든 제품. 소유자의 취향에 따라 커스트 마이징을 할 수 있습니다. 바닥은 도자기타일, 킹사이즈침대 캐비닛 등이 있습니다. 6. Newmar King Aire - 11억 337만원 클래스 A 모터코치와 600마력의 커민스 ISX 터보 디젤 엔틴을 사용. 전력제어와 구동조향시스템, 그레이트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사용하고 대형욕실이 있습니다. 5. Country Coach Prevost - 11억 8,350만원 스테인리스 스틸커버가 있는 캠핑카 울퉁불퉁한 지형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도시와 마을 사이를 여행하기에 적합한 캠핑카 4. Foretravel IH-45 Luxury Motor Coac - 15억 4,000만원 2만kw 발생기, 4개의 지붕 A/C 유닛 포함 기능, 품질, 모두의 면에서 최고인 차량. 외부,내부 소음제거를 위한 설계등으로 만족할만한 캠핑카 입니다 3. Prevost H3-45 VIP - 18억 9,360만원 12피트 5인치의 가장 높은 오두막 높이를 가지고, 운전자와 승객 모두에게 멋진 전망을 제공 합니다 정밀 성형 섬유로 가볍지만 강력한 소재를 사용하였고, 내부 인테리어도 현대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2. Featherlite Vantare Platinum Plus - 29억 5,875만원 이탈리아 레자가죽, 대리석계단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엔틱한 청동 등 값비싼 디자인물건들로 이루어진 인테리어 AVIC N-2 GPS시스템으로 실시간 교통상황 날씨 경고 알림들을 알 수 있고, 스포츠카 정도는 차량 내부에 파킹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엄청난 캠핑카 입니다. 1. Marchi Mobile EleMMent Palazzo - 35억5,050만원 지금까지의 캠핑카도 어마어마 했는데, 이 차는 꿈같은 차량이네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캠핑 차량 입니다. 오토바이, 항공, 요트의 기능을 결합한 최고의 차량입니다. 나무바닥과 대리석카운터를 갖추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어, 석유부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차량 입니다.
타이어 회사 굿이어(Goodyear) 탄생 뒷이야기
... ... <만약 타이어가 없었다면?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자동차는 볼품없는 마차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자동차 탄생에 필수적이었던 타이어 발명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아래는 일본 네이밍 이야기 4회 자동차편의 관련 기사입니다.> 로버트 톰슨-존 던롭 공기압 타이어 발명 스코틀랜드 발명가 로버트 톰슨(Robert William Thomson)이 공기압 타이어를 발명한 건 1845년이다.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halloffame) 자료에 따르면, 가죽으로 둘러싸인 톰슨의 고무튜브는 조악했고 이내 잊혀졌다(but his invention was rather crude–a rubber tube wrapped in leather–and was soon forgotten) 그로부터 공기압 타이어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다시 나오기 까지는 43년이 걸렸다. 우연한 순간에 발명이 이루어졌다. 자동차 명예의 전당은 “1887년 스코틀랜드의 수의사 존 던롭 (John Dunlop)은 아홉 살 짜리 아들 조니가 단단한 고무 바퀴가 달린 세발 자전거를 타며 애를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In 1887, John Dunlop, a practicing veterinary surgeon, watched as his nine year old son Johnny struggled with his tricycle mounted with solid rubber wheels)고 했다. 40년 후 ‘굿이어 타이어 앤 러버 컴퍼니’ 설립 공기압 타이어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무렵 미국에서는 유명한 타이어 회사가 하나 설립됐다. 굿이어 타이어 앤 러버 컴퍼니(Goodyear Tire and Rubber Company)다. 회사 이름에 굿이어(Goodyear)라는 이름이 붙여진 과정은 흥미롭다.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Interesting Engineering.com)이라는 글로벌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가황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 The Father of Vulcanization)라는 코너가 있다. 영어 불카니제이션(Vulcanization)은 고무에 황을 넣어 강도와 탄성을 증가시키는 가황(加黃)을 말한다. 이 단어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 불칸(Vulcan)에서 따왔다. 그럼, 가황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는 누굴까. 미국인 발명가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1800~1860)의 본업은 철물점 운영이었다. 그는 30대 이후에 여러 제품에 고무를 사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의 놀라운 고무 실험이 시작된 건 1834년이다.(His groundbreaking work on rubber would begin with his experimentation in 1834) 우연한 실험에서 더 단단하고 강도 높은 고무 발견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은 “그 5년 후 1839년 우연히 가황의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5 years later he would accidentally discover the process known as vulcanization)고 했다. 어느 날 찰스 굿이어는 인도 고무와 황을 섞는 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혼합물을 뜨거운 스토브 위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혼합물이 녹기는커녕 더 강도 높고 단단한 물질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견고한 타이어 탄생 순간이었다.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은 “대단한 발견에도 불구하고 찰스 굿이어는 1844년까지 가황고무 특허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Despite the significance of his discovery, Goodyear would struggle to patent vulcanized rubber until 1844)고 설명했다. 특허 공방전뿐만 아니라 찰스 굿이어는 엄청난 부채와 감옥 수감, 자녀들의 잇단 죽음이 겹치면서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런 그는 1860년 7월 19일 무일푼으로 죽었다. 실제로 많은 빚을 남겼다. 찰스 굿이어 기리는 뜻에서 회사 이름 지어 하지만 가황법을 발견, 고무 산업 개척의 길을 연 찰스 굿이어의 업적은 헛되지 않았다. 그의 사망 40년 후인 1898년, 미국 발명가이자 기업인인 프랭크 세이벌링(Frank Seiberling: 1859~1955)은 굿이어 타이어 앤 러버 컴퍼니(Goodyear Tire and Rubber Company)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은 “창업자 프랭크 세이벌링은 찰스 굿이어를 기리는 뜻에서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이 매체는 “이름이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찰스 굿이어 자신도 그 가족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Apart from his namesake neither Charles himself or his family have any connection with this multi-billion dollar company)고 덧붙였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약칭
... <사진= 얼굴 사진은 닛산 창업주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 닛산 자동차는 도요타, 혼다차와 다르게 창업자의 이름을 따지 않았다. 지금의 브랜드명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라는 회사의 약칭이다.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는 누구? 닛산(日産)자동차는 1933년 12월 도바타주물(戶畑鑄物)을 이끌던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1880~1967)라는 이가 설립했다. 이때의 이름은 ‘자동차제조주식회사’이다. 1934년 6월, 통칭 닛산으로 불리는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전액 출자를 받아 회사 이름을 닛산자동차주식회사로 바꿨다. 아유카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쿄 제국대학 공과 대학을 나온 그는 신분을 속이고 직공으로 일했다. 야마구치 현 야마구치시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평범하지 않다. 그의 외할머니가 유력 정치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1836-1915, 조선 주재 공사 역임)의 누나다. 아유카와는 1910년 이노우에의 지원을 받아 도바타주물(현 히타치 금속)을 설립했다. 아유카와는 1928년 ‘구하라 광업’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닛폰산교’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아유카와는 닛폰산교를 중심으로 일본광업, 히타치제작소, 일본수산, 닛산자동차를 거느렸다. 신흥 재벌 닛산콘체른(Konzern)이었다. 닛산콘체른의 중심인 닛폰산교는 1937년 만주국으로 이주해서 만주중공업개발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과 만주에 걸쳐 콘체른을 형성하려 했다. 당시 아유카와를 만주를 불러들인 이는 현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56-57대 총리)였다. 일본 상공성의 유능한 관료였던 기시는 만주국의 산업차장으로 발탁돼 1936년 부임했다. 패전으로 닛산콘체른 해체...닛산자동차 독립 당시 만주에서 일했던 기시 노부스케, 아유카와 요시스케, 남만주철도(만철) 사장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세 사람을 ‘만주의 3스케’로 부른다. 아유카와의 닛산콘체른 야망은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좌절됐다. 전후 연합국에 의해 콘체른이 해체되면서 닛산자동차가 독립했다. 이후 닛산은 1966년 스포츠카를 만들던 프린스자동차와 합병하면서 기술력을 한층 더 높였다. ‘판매의 도요타, 기술의 닛산’이라는 말은 이런 이유 때문에 나왔다. 1966년 닛산은 써니...도요타는 코롤라 출시 닛산은 1966년 2월 기존 ‘블루버드’를 대체할 신형 대중차 써니(Sunny)를 출시했다. 그해 10월 도요타의 코롤라(Corolla)도 세상에 나왔다. 코롤라는 라틴어로 ‘화관’(花冠)을 뜻한다. 당시 도요타는 라이벌 닛산의 써니를 의식, 코롤라의 배기량을 갑자기 바꾸면서 신형 엔진 코드에 Z자를 새겨 넣었다. Z는 러일전쟁에서 연합 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가 발틱 함대를 격파했을 때 걸었던 깃발을 상징한다. 도요타의 ‘타도 닛산’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자동차공업회(JAMA:Japan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는 도요타와 닛산이 경쟁을 벌이던 1966년 그해를 일본 ‘마이 카’ 시대의 원년(The first year of My Car)이라고 표현한다. 아유카와는 태평양 전쟁 이후 어떻게 됐을까. 그는 닛산그룹 각사의 출자를 받아 ‘중소기업 조성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중소기업 진흥에 힘썼다. 말년까지 정치인(참의원)으로 살다 1967년 사망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5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혼다차에 오너 이름 붙인 걸 후회한다”
... <사진= 얼굴 사진은 혼다차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 ... 각 기업의 브랜드에는 저마다의 특별함이 숨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 트레이너 겸 컨설턴트인 스캇 데밍(Scott Deming)은 이렇게 말한다. “가치와 필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브랜드의 역할이다. ‘특별함’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단어다. 특별함은 브랜드를 고객에게 각인시켜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긍정적 알파 컨슈머를 만드는 유니크 브랜딩’ 인용) 일본 제조업의 최선봉에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 기업들의 브랜드는 어떤 ‘특별함’을 담고 있을까.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4회 자동차다. (1회 카레, 2회 커피, 3회 스포츠용품) 자동차 기업으로 가장 먼저 혼다를 택했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에서 회사 이름 따와 혼다자동차는 글자 그대로 창업자의 이름에서 브랜드명을 땄다. 혼다차를 설립한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1906~1991)는 대장장이의 아들이다. 초등학교만 나온 그는 자동차 수리 전문점에 이어 동해정기(東海精機)라는 회사를 만들어 피스톤링 제조를 시작했다. 도요타에 물품을 납품하고 자본도 제공 받았다. 소이치로는 전쟁 후 회사를 도요타에 매각하고 45만 엔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 밑천으로 1948년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혼다기연공업(本田技研工業)을 설립했다.(‘혼다, 꿈의 이력서 좋아하는 일에 미쳐라’ 인용/ 혼다 소이치로 지음, 이수진 옮김, 부표 출판) 자동차 제조로 보면, 소이치로는 도요타 보다 한참 뒤늦게 출발한 셈이다. 회사 이름에 혼다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의 생각은 과연 어땠을까. 뜻밖에도 그는 혼다라는 브랜드명을 후회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혁신의 천재 혼다 vs 경영의 신 마쓰시타, 경영의 맞수’ (닛케이벤처 엮음, 권혁기 옮김, 비즈니스북스)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소이치로는 회사명인 ‘혼다기연공업’이 이류 이름이라고 죽을 때까지 후회했다. 공적인 존재라는 기업에 오너 개인의 이름을 달았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혼다의 주력 공장과 서킷(경주용 도로)이 있는 미에현 스즈카시(鈴鹿市)를 혼다시(本田市)로 명칭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의 이름을 딴 도요타시(豊田市)처럼 말이다. 소이치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농담하지 말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회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세습에도 엄격했다.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는커녕 입사도 시키지 않았다. 그의 장남 히로토시(博俊)는 경주용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어 운영했다. 그는 훗날 “유명한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은 우연한 일이고,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아버지는 자식에게 ‘제왕학’(帝王學)을 배우게 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혁신의 천재 혼다 vs 경영의 신 마쓰시타, 경영의 맞수’ 인용) 소이치로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65세(1973년)에 용퇴했다. 회장이나 명예회장이라는 직함도 마다했다. 심지어 창업 이래 14년간 자신을 도와주던 동생(벤지로‧당시 상무)을 용퇴 11년 전인 1962년, 일찌감치 해임해 버렸다. ‘가족회사 탈피’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다. "혼다차에 오너 이름 붙인 걸 후회한다" 그럼, 그의 후계자는 누가 됐을까. 7명의 후보 중에서 45세의 카와시마 키요시(河島清好)라는 인물을 발탁했다. 이후 사장 계보는 구메 타다시(久米是志) → 카와모토 노부히코(川本信彦) → 요시노 히로유키(吉野浩行) →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 → 이토 다카노부(伊東孝紳)에 이어 현 사장인 하치고 다카히로(八郷隆弘)로 이어진다. 이중에 창업자의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전문 경영인들이다. 혼다가 위기에 처할 때는 전임 사장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어드바이스를 한다. 창업가(家) 사라졌지만, 혼다가 굳건하게 살아있는 이유다. 소이치로가 세상을 떠난 지(1991년) 오래 됐지만, 지금도 회자되는 얘기가 하나 있다. 그의 장례식이다. 창업주가 사망하면 성대한 장례를 치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소이치로는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게 했다. 생전 소이치로는 유언 대신에 “사장(社葬)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회사장을 하면 교통체증이 일어나 사회에 폐가 된다. 그런 일을 자동차 회사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원들은 소이치로가 생전에 아끼던 레이싱머신을 장식하여 고인과의 이별을 대신했다. 그후로도 법요에는 회사가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도요타시 1번지’ 인용/ 아사히신문 특별취재반 저, 최현숙 옮김, 네모북스) “교통 체증 생기니 회사장으로 하지 마라” 소이치로와 친분이 깊었던 소니 공동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는 그의 장례식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장례식도 빈소도 마다하셨다. 혼다씨는 이 세상에 많은 것을 남기셨지만, 장례식은 혼다씨에게 가장 최후로 감동을 받게 된 대사건이다>(‘혁신의 천재 혼다 vs 경영의 신 마쓰시타, 경영의 맞수’ 인용) 도요타나 닛산 보다 훨씬 늦은 전후(戰後)에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일본인으로 가장 먼저 입성(1989년)한 건 혼다 소이치로 그였다. 그런 그는 2000년 니혼게이자이가 실시한 ‘20세기 일본의 경제인’ 인기 랭킹 조사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혼다차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을 후회한다는 혼다 소이치로. 그런 점에서 혼다 브랜드는 더 ‘특별함’을 담고 있는 건 아닐까. 그가 일본인들에게 ‘더 특별히’ 존경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