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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랜드FC, 신생팀 우선지명선수 11명 공시

[스포츠서울] 다음 시즌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에 입성하는 신생팀 서울 이랜드FC가 우선지명 선수 11명의 공시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21일 이랜드가 선택한 신생팀 우선지명선수를 공시했다. 신규..... ** 이하 내용은 첨부된 링크를 통해 봐 주시기 바랍니다. ** 서울 이랜드 FC 는 우선지명선수 11명을 발표 하였습니다. 이번 선발은 드래프트에 앞서 신생팀에게 주어지는 우선지명 이기 때문에 좀 더 좋은 선수를 확보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J2 에서 훈련받은 선수들이 얼마나 활약해줄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프로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K리그에서 얼마나 활약해줄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훨씬 선진화 된 곳에서 훈련을 받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활약 보여줄것이라 봅니다. 어제 있었던 2014 U리그 결승전 광운대:단국대 의 경기에서 조향기, 전현재 선수는 각각 왼쪽과 중앙수비수로 선발 출전 했고, 탄탄한 수비를 보여주었으며, 광운대가 1:0 으로 승리하여 우승하는데 일조 하였습니다. 서울 이랜드 FC 에서도 좋은 활약, 뚫리지 않는 방패처럼 물샐틈 없는 수비 실력 보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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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근 개박살 루틴, 야 너두 빨래판 될 수 있어!
이제 내일부터 황금연휴네? 제주도나 강원도쪽으로 여행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코로나 또 확산되는게 아닐까 걱정이다 ㅠ 우리 빙글러들은 연휴에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홈트로 건강해지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맞다 5월부터 나랑 같이 홈트 한달 챌린지 할 사람!!!!!!!!! 항시 모집중이니까 편하게 댓글 달아줘~ -------------------------------------------------- 복근이야말로 노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죠. 근육이 생긴다고 해도 체지방을 제거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제대로 볼 수 없는 근육이기도 하구요. 함께 해보시죠. 어렵진 않으나 동작이 조금 많으니 잘 보고 따라해주세요. 1. 마운틴 클라이머 산을 오르듯이 한 발씩 가슴쪽으로 당기는 동작입니다. 무릎이 가슴쪽으로 당겨져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코어를 단단히 유지합니다. 힘이 빠지게 되면 무릎이 앞으로 오지않고 당나귀 뒷발 차듯이 발을 구르게 되는데 그러면 운동 효과가 없습니다. 2. 더블 크런치 머리는 손에 고정하고 팔꿈치가 허벅지에 닿을 때까지 상체를 일으켜 줍니다. 상복근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운동. 3. 더블 탭 트위스트 크런치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상체를 들어 왼쪽 팔꿈치가 먼저 오른쪽 다리에 닿게하고 차례로 왼쪽을 대주면 됩니다. 반대발도 마찬가지로 하면 됩니다. 측면 복부, 복사근을 자극하는 운동입니다. 4. 시티드 니 턱스 손으로 뒤를 짚고 앉은 상태에서 무릎을 가슴 쪽으로 당겼다가 다리를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쭉 펴줍니다. 5. 플러터 킥 고개를 들고 다리를 쭉 뻗어 물장구를 치듯 반복해 내렸다 올렸다 합니다. 하복부를 자극하는 운동이며 코어에도 좋습니다. 6. 크런치 홀드 상체를 들어 버티는 동작. 다리를 사진처럼 고정해도 되고 땅에 닿을 듯 말 듯 띄워서 하셔도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복부를 자극하는 운동
박.지.성 국가대표 TOP5 골!!!
지난 2016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이란, 우즈베키스탄과 접전을 펼치며 조 2위로 월드컵 예선을 마쳤습니다. 이제 남은 5경기에서 지금의 순위를 지켜야 2018 러시아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유독 박지성 선수가 생각나는 한 해였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주장으로 활약하던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이란을 상대로 2골이나 넣으며 이란을 탈락 시켰죠~그래서 준비해봤습니다! 레전드 박지성의 대표팀 TOP5 골!!! 먼저 박지성을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 시켰던 그 골!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프랑스와의 평가전입니다!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최종 엔트리 탈락 1순위였던 박지성은 잉글랜드전 헤딩골로 언론들을 잠재우더니 이어진 98 프랑스월드컵 우승팀 프랑스와의 월드컵 전 마지막 평가전에서 환상적인 동점골을 기록합니다! 이 골로 박지성이라는 이름 석자를 온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죠. 2002.5.26 두 번째 골은 너무나도 유명한 골이죠. 바로 2002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골입니다. 이 골로 당시 FIFA랭킹 5위인 포르투갈이 조별예선에서 탈락했습니다. 당시 포르투갈은 89년, 91년 청소년 월드컵 우승을 달성한 멤버들이 모여 월드컵 우승을 바라봤던 멤버들이죠. 결국 박지성의 결승골로 대한민국은 사상 첫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이를 발판으로 4강 신화를 이룹니다! 2002.6.14 세 번째 골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이었습니다. 당시 맨유 소속이었던 박지성은 영국에서 곧바로 이란으로 가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죠. 네쿠남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패색이 짙어지던 후반 35분 기성용의 프리킥이 골키퍼 손에 맞고 나오자 다이빙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역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2무 5패로 단 한번의 승리도 없는 대한민국이 이란 원정에서 따내온 귀중한 승점이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린 경기에서도 동점골을 기록한 박지성 덕분에 북한이 월드컵에 나가고 이란이 탈락했죠~ 2009.2.11 네 번째 골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직전 열린 일본과의 평가전입니다~일본도 월드컵 직전 국내에서 가지는 마지막 평가전이었는데 박지성의 전반 5분 선제골로 결국 0-2 패배를 당했네요. 당시 경기 전 박지성을 바라보던 일본 선수들의 존경스러운 표정이 기억나에요.(맨유의 위엄) 이날 경기서 박지성은 나카토모를 끝까지 쫓아가 태클을 시도해 투지의 아이콘임을 보여줬죠~또한, 골을 넣고 일본 관중을 바라보며 산책 세레머니를 보여줘 화제가 됐었습니다~ 2010.5.24 마지막 골은 박지성의 A매치 마지막 골입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1차전에서 나온 추가골이었죠~유럽예선을 잘 치르고 온 그리스를 상대로 2-0으로 달아나는 추가골을 넣었는데 박지성에게 볼 수 없었던 개인 플레이 골이었습니다. 집중력 좋게 상대 수비의 공을 가로채 두 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네요~1차전에서 첫 승을 올린 대표팀은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했죠~(16강에서 수아레스가 박지성에게 유니폼을 교환하러 뛰어오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2010.6.12 박지성 선수가 국가대표로 넣은 13골 모두 소중하지만, 재미로 5골을 선정해본 만큼 넓은 아량 부탁드립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좋아요 한 번 부탁드립니다~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나의 첫 K리그 서포트팀, 서울 이랜드 FC!
개인적으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비야레알C.F.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을 좋아하긴 하지만 국내야구를 좋아하는 만큼의 관심을 K리그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지역팀 부산 아이파크가 잘하면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경기장을 찾아보지도 않았던 저에게! 작년부터 관심이 가는 프로팀이 생겼습니다. 'Seoul E-Land FC' 아직 2부리그 격인 K리그 챌린지에서 1승 4무 1패 승점 7점 ​의 중위권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이영표선수가 벤쿠버 화이트캡스에서 뛰던 시절 감독직을 맡았던 마틴 레니 감독의 용병술과 국가대표를 거친 김영광, 김재성, 조원희선수와 같은 국내선수 트리나디드토바고 국가대표 출신의 수비수 칼라일 미첼 몰타리그 득점왕 타라바이! 그리고 아시아쿼터로 영입한 일본국적의 로버트 카렌 자메이카 국가대표 출신 라이언 존슨 이 네 외국인 선수의 조화가 이루어져서 최근 열렸던 FA컵 2라운드에서는 K리그 클래식의 강호 울산 현대와의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6:5로 아쉽개 패하기도 했습니다.(창단이후 FA컵 무패행진?) 그리고 드디어! 어제 열렸던 챌린지 6라운드에서 수원FC를 5대1로 격파하고 시즌 첫 승을 거두었습니다(5eou1 이랜드!!) 신생팀임에도 이름값 있는 선수를 영입하고 기존의 K리그 팀과는 다른 마케팅분야의 파격행보, 팬들을 위한 많은 이벤트와 상품들이 충분히 매력적인 팀입니다 ㅎㅎ 창단기념 유니폼 '와일드 레울' 레울은, 서울 이랜드 FC의 마스코트인 표범(Leopard)과 서울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 한벌 쯤 구매하고 싶지만 입고 다닐 일이 없어 고민 중 ㅠㅠ 또 이렇게 예쁜 트랙탑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클래식팀들도 이렇게 굿즈를 많이 출시하지는 않는 편인데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더 자세한 상품목록은 서울이랜드fc 스토이(http://store.seoulelandfc.com)로! 서울 이랜드 FC는 (제가 좋아하는 두산베어스의 홈구장인 잠실야구장 옆..!) 잠실올림픽주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희 이랜드 팬들은 애칭으로 '레울파크'라고 부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서울 이랜드 FC에서 관심가는 선수는 GLORY, 김영광선수인 것 같습니다! 시즌 첫 경기때 등번호에 GLORY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 당황스럽기도 했고 웃기기도 했지만 지난 FA컵에서의 눈부신 선방과, 승부차기 첫 키커로 나서서 멋지게 성공하는 모습! 국가대표 경기에서 본 지는 정말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제가 좋아하던 팀에서 뛰게 되니 기쁩니다. 또한 정말 잘생긴 이 선수! 아일랜드계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에서 태어났고, 일본 청소년팀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로버트 카렌 선수입니다. 아직 2부리그여서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만, 내년에 서울 이랜드 FC가 1부리그로 올라가면 여성팬들의 많은 주목을 받을 것 같은 선수! 실력도 뛰어난 것 같아 큰 기대가 됩니다~ 아직 이 팀의 경기를 찾아보지도 못했고, 2부리그인 탓에 경기결과와 하이라이트만 종종 챙겨보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팀의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와서 기분이 좋네요! 축구에 관심이 많은데 아직 K리그는 잘 모르시거나 축구에 처음 입문하시는 여러분들! 서울 이랜드 FC 같이 응원해요 ㅎㅎㅎ
KOT가 선정한 역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TOP 6
FC 코리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들의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관심은 상당합니다. 국대 축구를 00년부터 보기 시작한 본 에디터가 약 17년간 본 국대 스쿼드 중 가장 강했던 TOP 6를 선정해보았습니다. 'KOT가 선정한 역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TOP 6' P.S: 사실상 성인팀에 가까운 올림픽 대표팀도 포함했습니다. 6위. 2007 아시안컵 대표팀 감독: 핌 베어벡 성적: 아시안컵 3위 의의: 한국축구에 4백 장착 아시안컵 3위에 그친 팀이 지난 17년간의 대표팀 중 6위에 선정된다는 점에 대해 의아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 쿠엘류,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감독 등 유수의 외국인 수장들이 거쳐갔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4백 수비가 제대로 정착되어있지 못했는데요. 이 대회를 통해 4백 수비가 정착된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물론, 경기력이 발암이었다는 점은 논외로 하구요. MVP: 이운재 (토너먼트 무실점 및 승부차기 2승 1패) 5위. 2004 아테네 올림픽 대표팀 감독: 김호곤 성적: 올림픽 8강 의의: 세계무대에서의 가능성을 엿보다 평가전 내내 강했던 파라과이를 만나 허무하게 8강에서 떨어진데다, 본선 4경기에서 8실점으로 수비라인이 무너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올림픽 대표팀은 지역예선에서 8전 8승 12득점 무실점으로 쾌조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비록 기존 와일드카드인 송종국, 김남일의 부상하차 및 박지성 차출 실패 등이 겹쳤지만, 지난 2012 런던 올림픽 이전에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팀이었습니다. MVP: 조재진 (4경기 2득점) 이천수 (4경기 2득점) 4위. 2015 아시안컵 대표팀 감독: 울리 슈틸리케 성적: 아시안컵 준우승 의의: 27년만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 55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에도 실패했고, '늪축구'라고 포장하긴 했지만 경기력도 별로였죠. 사실 2011 아시안컵 대표팀의 경기력이 더 나았다고 보여지나, 프로는 결과로 말합니다. 대회 전부터 이동국, 김신욱이 부상으로 낙마했고 대회를 치르면서 이명주의 폼 저하 및 이청용, 구자철의 부상 이탈로 애를 먹었지만 꾸역꾸역 승리하며 결승전까지 갔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우즈벡과의 8강전에서 연장전 2골로 승리한 점은 백미였다죠? MVP: 김진현 (5경기 무실점) 3위. 2012 런던 올림픽 대표팀 감독: 홍명보 성적: 동메달 의의: 사상 첫 올림픽 메달 획득 병역면제라는 동기부여가 주어질 경우, 얼마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드러난 대회였습니다. 뭐,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폄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당시 선수들의 폼은 절정에 이르렀죠. 홍명보 감독 특유의 (전술 유동성이 없는) 4-2-3-1의 명암 중 암보다는 명이 드러났던 시기였습니다. 나름의 의리축구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대회였다고 평합니다. MVP: 구자철 (주장 + 6경기 출전) 2위. 2010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 감독: 허정무 성적: 16강 의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 대회 직전에 센터백인 곽태휘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지역예선에서 팀을 캐리했던 이근호가 폼 저하로 탈락. 설상가상으로 베테랑 골키퍼 이운재도 노쇠화가 뚜렷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잘 추스려 사상 첫 원정 16강 신화를 만들어낸 허정무 감독의 역량은 평가절하하기 힘듭니다. 사실 저 스쿼드로 16강에서 그친 점은 아쉽긴하지만, 순수 전력만 보면 어쩌면 2002 한일 월드컵 이상이라고 보여집니다. MVP: 박지성 (4경기 1골) 기성용 (4경기 2도움) 이정수 (4경기 2골) 1위.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 성적: 4강 의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승리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 아시아 국가 역사상 첫 4강 진출 아시아 선수 역사상 첫 개인 타이틀 수상 (홍명보의 브론즈볼 수상) 이 대표팀을 글자 몇 줄로 평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실례일 것 같습니다. 제 유년시절을 수놓았고, 축구로 벌어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해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팀이었죠. 이런 대표팀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요? MVP: 히딩크 감독에게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KFA 관계자 전원 + 히딩크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전원 + 23인 엔트리 선수 전원 좋아요와 댓글은 본 에디터에게 큰 힘이 된다능..ㅎㅎ 데헷 :)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상식축구]이승우 사건, 도대체 뭐가 예의입니까
(사진=네이버 KBSN SPORTS 캡처) 후반 35분 우리나라 선수가 쓰러졌다. 심판은 다급히 휘슬을 연달아 불었다. 동료, 상대 선수 할 것 없이 달려왔다. 팀닥터들이 뛰어 들어갔다. 몇 초, 몇 분이 흘렀을까. 그제야 구급차가 경기장으로 들어갔고 쓰러진 정태욱은 그대로 구급차에 실려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다행히 정태욱은 검사 결과 이상이 없음이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이승우의 태도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대한민국 U-20 대표팀은 지난 3월 27일 아디다스 U-20 4개국 친선 축구대회서 잠비아를 만나 4-1 대승을 거두었다. 한국의 초특급 유망주로 손꼽히는 이승우가 이 날 경기서 2골을 몰아넣으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역시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유망주다. 이승우는 전반 40분, 바르셀로나 동료 백승호의 패스를 받아 골로 성공시키며 2-1로 한국의 리드를 가져왔다. 이어 후반 24분 상대 골키퍼가 나온 것을 보고 환상적인 칩샷을 터트렸다. 이승우의 클래스를 볼 수 있던 순간이었다. (사진=연합뉴스) 이승우 인성, 논란거리인가? 세계는 이승우의 성장세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승우의 인성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이승우는 후반 35분, 헤딩 경합을 하다 쓰러진 정태욱에게 달려왔다. 다급히 구급차를 불렀다. "빨리 오라고! 빨리 오라고! XX." 문제는 이 발언이었다. 경기장 안으로 빨리 들어오지 않은 구급대원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핵심은 '욕까지 해야 했었나?'라는 것이다. 빨리 들어오라고만 하면 될 것을 그렇게까지 분노하면서 소리쳐야만 했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이승우의 감정은 모두가 이해할만 하다. 팀 동료가 심각한 부상일지도 모르는 머리 부상을 당해 쓰러졌다. 그렇다면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며 다급한 마음에 구원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행위다. 과장된 표현일수 있지만, 세월호 사건을 이 사건에 대입해본다면, 마치 '가만히 있어라' 같은 내용이 될 수도 있다. 큰 부상을 당했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연히 방방 뛰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맞다. 주변에 팀닥터가 있어서 괜찮다? 그렇다면 주변에 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좋다는 말인가? 글쎄. 충분히, 100% 이승우의 행동에 동의한다. 비유가 적절치 못할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내 입장은 이승우 편이다. 또한 이승우는 현재 스페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유럽의 시스템이 다 잘 갖추어져있고 우리나라는 그에 비해 형편없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체적으로 스페인의 의료 시스템은 최고 수준일 것이다. 특히, 선수가 부상당했을 때의 대처 요령 등과 같은 것 말이다. 이승우는 그런 상황에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의료진에게 불만이었을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승우의 태도, 사진=네이버 KBSN SPORTS 캡처) 근본적인 원인을 고찰하자 이승우가 화낸 것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왜' 이승우가 그랬는지를 근본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대체 왜 이승우가 화를 냈을까. 그 이유는 의료진의 초동 대처가 미흡한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위급한 상황이 많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철저한 상황 대처 요령을 숙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체감할 때 분명 우리나라 스포츠 의료 체계는 문제가 있다. 과거 2000년 4월 18일 롯데 자이언츠와 LG 트윈스의 경기에서 2회 초 2루로 진루하던 故임수혁(롯데 자이언츠, 향년 42세)선수를 떠올려보자. 2000년대라면 분명히 의료 기술이 발전한 시기였다. 지금은 그보다 더 발전했겠지만 그 당시도 충분히 구급차, 의료 체계가 갖춰졌을 기술력이다. 하지만 당시 구급차도 준비되어있지 않았고 사고 대책이 미흡해 결국 故임수혁 선수는 식물인간 상태로 10년을 지냈고 끝내 2010년 눈을 감았다. 당시에 누군가 소리쳤다면, 구급차를 애원하며 울부짖었다면, 초동 대처가 확실했다면 故임수혁 선수는 야구 팬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故임수혁 선수 사건 이후 스포츠계는 의료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특별히 큰 사건을 겪지 못했다. 내가 알기론 큰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다.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란다. 무엇이 예의인 것일까. 예의를 생명보다 먼저 갖춰야 하는 것일까. 정태욱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혹여나 초동 대처의 미흡으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기라도 한다면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인가. 그 때는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잘잘못을 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갖춰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주목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닐까.
서울 이랜드 FC 레니의 아이들
레니의 아이들 – Rennie’s Fledglings’ 이란?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 어릴 때부터 선발하여 키워낸 베컴, 긱스, 스콜스 같은 선수들이 맨유의 황금세대를 이끌면서 ‘퍼기(퍼거슨 감독의 애칭)의 아이들’ 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에 빗대어 레니 감독이 선발한 14명의 선수들이 서울 이랜드 FC의 황금세대를 이끌어 가기를 바라며 지은 별칭입니다. 레니의 아이들, 14명의 서울 이랜드 FC 선수들을 지금 소개합니다. [서울 이랜드 FC 미드필더 김창욱 선수] “수비와 공격 가릴 것 없이 넓은 공간을 커버하면서 수비에 기여하는 것이 좋았다. 공격 시에 빠른 템포로 도전적인 패스를 연결하는 것도 맘에 들었다. 첫 시즌 주전급으로 바로 경기에 투입할 수 있는 수준이다.” 마틴 레니 감독은 김창욱의 플레이를 박지성같다며 위와 같이 평가했습니다. 김창욱은 이에 덧대 싸비나 이니에스타와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U리그 전 경기 풀타임 출전이라는 엄청난 체력을 보여준 김창욱 선수의 내년이 기대되네요. [서울 이랜드 FC 미드필더 오창현 선수] 마다가스카 애니메이션의 알렉스를 기억하시나요? 오창현 선수를 처음 봤을때 저는 묘한 싱크로율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요. 고향으로 돌아온 알렉스가 고향 아프리카를 구한 영웅이 되었듯 국내로 돌아온 오창현 선수가 서울 이랜드 FC를 이끄는 영웅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오창현 선수는 “레니 감독과의 통화에서 축구 감독이기 전에 좋은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레니 감독이 나에게 장점을 이야기하면서 또 보완해야 할 점까지 이야기해주었는데 그런 점이 신뢰가 가고 나를 진심으로 존중한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레니 감독은 나에게 선수로서 보완할 점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내년에 잘 보완해서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어달라고 하면서 자기 팀의 일원이 되어줘서 고맙다고까지 말해 주었다. 좋은 감독을 만났으니 이제 내가 잘 하는 일만 남았다. 창단 팀은 처음 멤버들이 잘해야 한다. 다른 선수들과 힘을 합쳐 꼭 좋은 팀을 만들어 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레니의 아이들로서 당찬 포부를 밝혔다네요. [서울 이랜드 FC 라이트백 전현재 선수] 전현재의 몸에는 두 개의 문신이 있습니다. 하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겠습니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한 번 아들은 영원한 아들’입니다. “경기장에서 뛰는 1분 1초가 너무 소중하다. 난 항상 내 모든 것을 걸고 경기장에 선다.”며 성공이 너무 간절하다는 전현재 선수는 어려운 환경에서 나를 위해 지금까지 가난과 고달픔을 견디신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축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전현재 선수는 “프로선수로 가장 큰 목표는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처럼 오래 한 팀에 남아 선수생활을 마치고 싶다. 이랜드에서 10년 넘게 뛰며 주장을 하고 은퇴하고 싶다”고 합니다. 레알마드리드의 수비수 마르셀로는 브라질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난을 극복하고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했고, 무리뉴 감독을 만나면서 잠재력이 폭팔하면서 세계 최고의 윙백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마르셀로가 본인의 롤모델이라는 전현재 선수가 레니 감독을 만나 세계 최고의 윙백이 되기를 간절히 응원해봅니다. [서울 이랜드 FC 레프트백 김민제 선수] 김민제의 꿈은 독특합니다. 선수보다는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죠. 그는 “이랜드에서 전설로 남고 싶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혹여 많이 뛰지 못하더라도 헌신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뛰어난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봤다. 전문 지도자가 되고 싶다”며 “그 시기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나도 전문 육성 시스템이 아쉬웠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유소년 지도법을 전문적으로 배워 좋은 선수를 길러내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하네요. 청소년기 어려운 가정환경에 구타를 당하는 환경에서도 묵묵히 참아내며 강인한 성품을 지닌 김민제는 유소년 육성에 관심이 특히 많습니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레전드가 구단의 미래를 키워내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게 됩니다. (사진출처 : 서울 이랜드 FC 공식 페이스북)
만병통치약이라는 요가자세 / 태양경배자세
안녕 나는 헬짱이야. 오늘부터 다양한 운동자세, 스트레칭, 건강 정보를 올리려고 해 빙글의 분위기가 어떤지 모르겠는데 반말이 편하니 반말을 주로 사용할게 불만 있으면 말해줘 구워먹을 고기가 많거든. 뭐. 암튼 나 팔로하고 스크랩해놓으면 당신도 몸짱이 될 수 있을거야 꾸준히 보자~~~~~~~~~~~~~ 태양경배자세 (수리야 나마스카라) 생리통 요통 두통 오십견 하지불안증 수족냉증 혈액순환에 좋고 살도 빠지고 근육도 바르게 자리잡히며 자세가 좋아지고 지병이 낫고 집안 사정이 좋아지며 월급이 오르고 삶의 질도 오르고 암튼 다 좋다고 함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거임 ㅇㅇ 수족냉증이 있거나 아침에 일어나서 몸에 순환이 안된다 느껴질 때, 겨울에 넘 추울 때, 운동하기 전에 웜업으로 하기 좋은 자세임 두 번 정도 쌔리면 바로 쟈라르르르~~~ 느껴지는 열기 인도에서는 모든 생명체의 근원인 태양이 떠오를 때 경의를 표하는 마음을 담아 이 동작을 반복해왔다고 함 그래서 이름이 태양경배자세 ㅇㅇ 요가 조빱인 내가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자세임 순서는 이렇게 진행되는데, 그냥 보면 참 쉬워보이지 않음? 아주 간단하게 내 몸을 깨울 수 있다 이 말이지 요즘 코로나때문에 집에만 있어 온 몸이 찌뿌둥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함 속는셈 치고 따라해보시오. 외워두면 뭔가 있어보이기도 하고 이곳 저곳에 효과도 좋으니 개꿀 아닌지~? 아 그리고 한가지 주의해야 할 점 꼭 자신의 신체에 맞는 자세로 천천히 할 것. 아니면 시간 낭비거나 근육을 다치게 됨ㅇㅇ 잘 모를 땐 살살해도 되는 게 태양경배자세의 좋은 점임 2번 허리를 뒤로 젖히는 대신 위로만 곧게 펴기, 3번 전굴할 때 무릎을 많이 굽히기, 6번은 어깨만 살짝 들기 등 얼마든지 본인 몸에 맞춰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으므로 무리하지 않아도 됨. 다들 오늘 자기전에 한번씩 해보는게 어떨까? https://www.youtube.com/watch?v=gHcpJv9E0x4
군대실화) 본격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누군가가 제게 그러셨죠. "이 분이라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재밌게 쓰실 수 있을걸요?"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껄껄... 그 말. 정말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제가 한 번 써보겠습니다.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 나는 육군 출신이다. 육군이란 무엇인가. 밥 먹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운동뿐이고, 운동 중에서 '축구'와 '족구'에 환장하는 종족. 첫 번째로 동명동 메시, 서초구 히바우두, 달서구 호날두 등등... 전국에서 숨어있던 동네 고수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며. 두 번째. 축구라고는 맥주 한 잔 하면서 프리미어리그를 보며 입으로만 축구하는 남자들이 모이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태어나서 축구를 해본 적도 없는 부드러운 사내들이 모여 눈치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저 세 부류들 중 1~2번에 속했다.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다. 중학교 때 축구보다 먼저 '슬램덩크'에 빠진 나는 열심히 농구만 했고, 고등학교 때는 농구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반강제로 골키퍼를 맡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됐다. 국어국문학과.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 학과였고, 사지 멀쩡한 남자들은 체육대회 때 반강제로 축구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특히 내가 신입생이 됐을 때, 축구를 열심히 하며 체대생을 꿈꿨지만 부상으로 인해 축구 유망주를 접고 국문과에 입학한 예비역 선배 한 명과, 축구에 미쳐 학과 수업보다 축구를 더 사랑했던 선배 두 명이 날이면 날마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인원들을 모아 반강제로 축구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골키퍼를 열심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순히 과대라서 선배들에게 잘보이고 싶었던 나는 팔자에도 없는 다이빙을 열심히 하며 골키퍼를 했고, '너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며 축구 유망주를 꿈꿨던 그 선배는 시간날 때마다 나를 호출해 골키퍼 연습을 시켰다. 어찌 보면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부에서 배웠던 사람에게 배웠으니, 나도 축구부 시스템으로 훈련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방구석 입축구 전문가에서 국문과 골키퍼가 되었고, 선배들의 무수한 압박 속에 승부차기에서 두 골을 막아내며 국어국문학과가 공대를 꺾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입대한 군대. 그 중에서도 내가 나왔던 부대는 정말 공놀이에 미친 사람들 투성이었다. 군화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차에서 내린 행보관님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족구장에서 서브를 꽂아넣고 하품을 하며 출근하기도 했고, 육중한 몸놀림으로 '훈련이나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중대장이 안정환처럼 수비수를 농락한 뒤 세레머니를 하기도 했다. 축구를 너무 하고 싶어서 부대원들과 간부들이 사이좋게 삽 한자루로 언덕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정성스럽게 철근을 용접해 부대 내에 풋살 경기장을 만들었던 미친놈들의 소굴이었다. 그리고. 우리 중대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유망주로 불리다 불행한 사건에 휘말려 일반 육군으로 입대한 프로 선수. 소속팀과 이름은 밝힐 수 없다는 점. 심지어 그 사람과 동반입대한 친구는 대한민국 프로 씨름선수 출신이었다. 아무도 그 둘에게 개길 수 없었다. 그 선임들이 일병 때였다. 나와 2개월 차이가 났기 때문에 나도 일병이었고, 자주 붙어다녔다. 그 당시 중대에서 운동을 좋아하고 격투기 좀 배웠다 싶은 선임들, 간부들이 모두 그 씨름선수에게 "야. 나랑 씨름 한 판 해보자. 나도 운동 좀 했다." 라고 말하며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 선임은 넉살 좋게 웃으며 "에이. 진짜 다치십니다. 그럼 저는 프로 출신이니, 다리 하나를 들고 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샅바를 잡았고, 그 선임은 그렇게 중대의 모든 도전자들을 다리 하나로만 들어서 넘겨버렸다. 그 때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그 선임의 만두귀는 강렬했고,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 아닌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실전압축근육'은 모든 중대원들에게 경외감을 심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만두귀는 피해다녀라' 라는 격언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프로 출신 축구선수였던 그 선임. 군대는 전국 팔도에서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기에, 축구를 배웠던 사람들, 유학을 다녀왔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선임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프로 구단에서 훈련을 받고 경기를 뛰며 어느정도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그 선임. 미드필더로 이미 스무살의 나이에 1군에 출장한 진짜 '선수'. 티비에서 축구 중계를 할 때 나오던 그 선수.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물론 프로 선수였다는 것은 네이버에만 쳐도 다 나왔기 때문에 믿었지만, "제가 진짜로 하면 축구 재미 없어집니다." 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대대 축구대회에서 대대 최강 7중대를 상대로 우리 8중대 대표로 나왔던 그 선임은, 후반전 때 팀이 1대 0으로 지고 있자 "하아..." 라는 긴 한숨을 쉬고는 우리 골키퍼에서 상대방 골키퍼까지 혼자 공을 몰고 돌파해 여유있게 두 골을 때려박고 대대 체육대회에서 8중대를 우승으로 올려놓았다. 긴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그 선임을 쳐다보던 7중대장의 이마. 탈모가 시작된 그 넓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큼이나 그는 빛났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그는 호날두였다. 우리중대 호날두...호우... 그 날 이후 우리 중대는 소위 말하는 '짬순'으로 축구를 하던 룰이 사라졌다. 병장이라고 공격수만 할 수 없었고, 이등병이라고 수비수만 하지 않았다. 모든 포지션과 전술은 그 선임이 말하는 대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그 선임 옆에서 듬직하게 지키고 있던 고향만두가 생각나는 귀를 가진 씨름선수 선임의 포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기자 역사상 최강의 동반입대병들의 포스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선임들이 운동법과 축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모두가 경청했다. 사실 군대에 있으면서 어지간한 남자들은 몸 만드는 것과 축구에 목말라있었기 때문에 그 선임들이 하는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닌 '프로 씨름선수의 피지컬 훈련'과 '프로 축구선수의 기본기 훈련'이었다. 유투브에서 해도 솔깃할 만한 달콤한 조언들 아니겠는가. 그리고 축구 대회가 진행될 때면. "오우. 중대장님 나이스!" "아 그래? 헤헤 성호야 나 잘했어?" 일병이 엄지를 들고 칭찬하면 대위가 쑥쓰러워하며 고마워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야. 너는 축구 한 번 배워봐라. 가능성 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 신체 밸런스가 괜찮은데? 들배지기 하나 알려주까?" "알려주시면 제 한 몸 씨름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 선임들이 툭 뱉는 칭찬은 후임들에게는 '프로 선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엄청난 동기부여를 주었고, 거의 모든 중대원들이 주말만 되면 오전에는 씨름과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공을 들고 운동장을 누비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렇게 중대원들 몸이 점점 구릿빛으로 진해질 무렵. 나는 상병이 됐다. "어이. 랩쟁이." 가끔 씨름선수였던 그 선임은, 사단 대표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휴가를 받았던 나를 이렇게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다. "랩 한번 해보그라." "췍. 췍. 앰네ㅐ뤠눌내무랜ㅁ언ㅁ엉어단아ㅡㅏ 췍!" 그리고 부끄러움보다 만두귀의 공포가 더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씩 궁중 광대같은 생활을 하며 터미네이터들에게 예쁨을 받았고, 상병이 되고 그들이 고참이 됐을 때도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우리가 상병일 때, 대대에서는 또 체육대회가 열렸고, 축구대회를 위해 선임들은 중대원을 호출했다. "니는 공은 잘 못차는데 달리기가 빠르네. 골키퍼 하지 말고 측면 공격수를 해라." "잘못들었습니다? 저... 저는 공을 잘..." "닥치고 그냥 공 받으면 앞으로 툭 차. 그리고 뛰어. 누가 붙으면 어깨로 밀어. 그리고 슛을 때리던 패스를 하던 알아서 해. 쉽지?" "...그게 축구 맞습니까?" "야씨. 그럼 내가 농구선수냐? 너넨 다 기본기가 부족해서 여러가지 시키면 안돼. 하라는 것만 해." 그렇게 나는 왼쪽 공격수가 됐다. 그 선임의 전술은 매우 간단했다. 한 명 한 명 불러서 뭔가를 주문했는데, 다들 엄청 쉬운 것들이었다. "측면 수비수는 측면 공격수한테 무조건 공을 차. 받아도 그만 못받아도 그만. 오케이?" "중앙 수비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앞으로 뻥 차던가, 앞에 있는 나한테 주던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격수는 기다리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제가 공 올려드릴테니까, 발만 대시면 됩니다." -끄덕. 공격수를 맡았던 소대장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대 축구대회. 수비수에 있던 씨름선수 선임과 중앙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프로선수 출신의 선임, 그리고 '우리는 프로들에게 훈련받았다'는 자부심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던 중대원들과 간부들. 우리는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대대 최강이었던 7중대를 다시 만나게 됐다. 무난하게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결승전은 묘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애초에 우리가 연습한 것보다 7중대는 더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7중대장은 축구대회 전부터 쥐잡듯이 중대원들을 훈련시켰고, 결승전에서 축구선수 선임에게 무려 4명을 붙여 꽁꽁 싸매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축구선수는 일반 게임에서 진지하게 뛰면 안된다'는 주의로 중앙에서 패스만 뿌려주던 선임과 실력이 부족한 8중대원들, 그에 비해 악에 받힌 채 뛰어다니던 7중대원들로 인해 경기는 0대0으로 팽팽하게 전반전 막바지까지 흘러갔다. 그렇게 전반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패스가 최전방에 있던 소대장에게 흘러갔다. 센스있게 중앙에서 패스를 뿌려준 그 선임 덕분에 당시 중위였던 소대장은 마지막 슛을 날리게 됐고, 소대장은 힘차게 공을 찼다. -뚜둑! 공은 프리미어리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궤적을 그리며 아름답게 골대로 빨려들어갔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소대장에게 뛰어갔다. "와아!!! 소대장님!!! 대박!!!" 하면서 뛰어가던 우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힘차게 공을 찼는데... '뻥'이 아니라... '뚜둑'...?" 그렇게 생각하며 소대장 쪽을 쳐다보자 "와아!!! 내가 골이다!!!" 라고 말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소대장이 있었고, 축구선수 선임은 "아.. 십자인대 나갔네..." 라고 말하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종료되고, 소대장은 대대 엠뷸런스를 타기 위해 들것에 실려나갔다. "내 인생 최고의 슛이었어." 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우던 소대장은 그렇게 엠뷸런스의 구슬픈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대를 벗어났다. 그렇게 폭풍같던 전반전이 지난 다음 찾아온 후반전.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니까는 소대장님. 어휴. 나와 이 새끼들아!"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걸죽한 욕설과 함께 행보관이 공격수로 투입됐다. 장동건과 동갑이었지만 임하룡과 비슷한 연배의 얼굴을 소유한 행보관은 경기 시작부터 욕을 한 바가지로 퍼부으며 상대방 수비진을 농락했다. "나와! 다 뒤질래? 나와! 나오라고!" "7중대! 쫄지마! 얼굴만 늙었지 형이야! 쫄지말고 막아!" "아니 7중대장님 너무하십니다!" "행보관님 애들 겁주지 마세요!"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각종 예능축구들을 선보이던 행보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격진에서 시끄럽게 해준 행보관 덕분에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동안은 1:0이 유지됐다. 우리 수비진들은 평화롭게 산책을 했고, 예상 외의 행보관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10분동안만... "허억....허억... 아 씨바 힘들어..." 10분이 지나자마자 행보관의 체력은 거짓말처럼 급격하게 방전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위험한 한골 차 리드를 챙긴 채 아등바등 뛰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전이 끝나기 얼마 전. "어! 어! 씨바 비켜!" 축구선수 선임이 차올린 공이 정확히 행보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팡! -우당탕! 그 공은 정확히 행보관의 발등에 걸렸다. 무려 오버헤드킥. 행보관은 그 짧은 순간 육중한 몸을 띄워 공중에서 공을 차냈고, 공중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그의 무거운 몸은 중력과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어..? 어...?" "와아아!!!!!! 행보관님!!!!!" 우리는 믿을 수 없이 멋진 골에 놀란 채 환호하며 흙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행보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야! 야! 오지마! 이 씨바 오지마! 잠깐만! 진짜 야!" 행보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우리들은 행보관 위로 올라타며 기쁨의 세레머니를 했고, 세레머니가 끝난 후 행보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못했다. "야. 소대장님 태우고 간 엠뷸런스... 복귀했으면 일로 오라그래라...빨리..." 그렇게 방금 부대로 복귀해 체육대회를 즐기고자 했던 의무병과 운전병은 다시 들것을 들고 뛰어왔고, 날렵했던 소대장과는 달리 100키로에 가까웠던 행보관을 들기 위해 들것에는 4명의 장정이 달라붙었다. -웨용 웨-용 웨-용 그렇게 행보관은 떠나갔다. 허리가 나갔다며... 엠뷸런스는 오늘따라 더욱 구슬프게 사이렌 소리를 두 번이나 내며 초가을 연병장 바닥에 타이어자국을 남긴 채 떠나갔고, 그렇게 우리 중대는 대대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 시발 간부가 둘이나 실려간 팀을 어떻게 이겨..." 오늘따라 더 휑해보이는 이마를 빛내며, 7중대장은 절규했다. 그렇게 요란한 금요일이 지나고, 주말이 지난 후. 행보관은 허리에 복대를 찬 채 복귀했다. '앞으로 축구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소대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십자인대 파열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우리 중대장. 기아 타이거즈의 광팬이며 사회인 야구단에서 오래 활동했던 우리 중대장은 "축구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다치냐. 당분간 축구는 금지한다." 라고 말하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야구 글러브 10개를 부대로 주문했다. 그렇게 열심히 축구를 배우던 병사들과, 전직 프로 축구선수, 전직 씨름선수는 모두 4번타자를 꿈꾸며 배트를 휘둘렀고, 중대장은 매주 주말 환하게 웃으며 글러브를 들고 우리를 집합시켰다... ------------------------------끝 이상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재미는 음... 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 주세요!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