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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

오늘 당신이 만나는 사람에게 웃음을 활짝 지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고맙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훌륭하다고 칭찬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그말이 당신에게 두배로 메아리가 되어서 돌아오기 때문 입니다.~♣ 오늘 당신이 나가는 일터와 하는 일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가져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 감사하는 마음이 일과 일터로부터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 입니다.~♣ 오늘 당신과 한솥밥을 먹는 가족에게 따뜻한 웃음을 보여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수고한다, 고생한다 라고 말해도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그 따뜻한 웃음과 따뜻한 말이 바로 행복의 문을 여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오늘을 웃음으로 시작하고 감사하는 당신이 손해 볼 것은 없습니다.~♣ 책속의한줄 http://me2.do/xSum6b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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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현황 및 전시일정
이중섭의 '흰 소' (1953~54)  - 현존하는 이중섭의 '흰 소'는 약 5점뿐이다.  - 기증 작품은 1972년 개인전과 1975년 출판물에 등장했으나 자취를 감췄다가 이번 기회에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이중섭의 '황소' (1950년대)  - 삼성가에서도 아끼던 작품으로 그의 부산시절 가장 중요한 작품. 이중섭의 '바닷가의 추억_피난민과 첫눈' (1950년대) 청전 이상범의 '무릉도원도'(1922)  - 존재만이 알려진 작품이었으나 이번 기증으로 약 10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 1980년대 이후 실제로 보기 어려웠지만, 다시 감상할 기회가 마련됐다. 김환기의 '산울림 19-II-73#30' (1973)  -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환기의 예술적 기량이 절정에 달한 1970년대 전면점화는 한 점도 없었다. 나혜석의 '화녕전작약'(1930년대)  - 나혜석 작품 진위평가의 기준. 장욱진의 '소녀(전면)/나룻배(후면)' (1939/1951) -  작품 뒷면에는 1939년 그린 ‘소녀’가 있다. 재료가 부족했던 시기여서 양면에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장욱진의 '공기놀이' (1937)  - 양정고보 재학 중 제2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최고상을 받은 작품. 여성 화가 백남순의 '낙원'(1937)  - 백남순의 유일한 1930년대 작품. 김종태의 '사내아이'(1929)  - 총 4점만 전해지는 김종태의 유화 중 1점 박래현의 '여인 A'(1942) 클로드 모네의 '수련' (1919~20) 파블로 피카소의 '무제(도자기)' 호안 미로의 '구성' (1953) 마르크 샤갈의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1975) 폴 고갱의 '무제' (1875) 카미유 피사로의 '퐁투아즈 시장' (1893)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 (1890년대)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1940)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1954) 김기창의 '군마도'(1955)   - 한국전쟁이 끝난 후 폐허를 딛고 재개된 1956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추천위원 자격으로 이 작품을 출품. 노수현의 '계산정취'(1957) 김은호 '간성(看星)'(1927)  외 다수 작품 -------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 유영국187점(회화 20점, 판화 167점), 이중섭 104점(회화 19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 등), 유강열 68점, 장욱진 60점, 이응노 56점, 박수근 33점, 변관식 25점, 권진규 24점 등 한국 근현대미술 작가 238명의 작품 1천369점  - 195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이 320여 점으로 전체 기증품의 약 22%  - 1930년 이전 출생해 근대작가 범주에 들어가는 작가 작품이 약 860점으로 약 58% ------- 해외 거장 작품 모네, 고갱, 피카소,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마르크 샤갈 등 외국 근대작가 8명의 작품 119점  - 국립현대미술관 역사상 처음으로 소장하게 됨 전시일정 덕수궁관 ・2021년 7월 '한국미, 어제와 오늘'  - 도상봉의 회화 등 일부 작품 첫선 ・2021년 11월 '박수근 회고전' ------- 서울관 ・2021년 8월  '이건희 컬렉션 1부: 근대명품'(가제) 전  - 한국 근현대 작품 40여 점 전시 예정. ・2021년 12월 '이건희 컬렉션 2부: 해외거장'(가제) 전  - 모네, 르누아르, 피카소 등의 작품 전시 예정. ・2022년 3월 '이건희 컬렉션 3부: 이중섭 특별전'  - 이중섭의 회화, 드로잉, 엽서화 104점 전시 예정. ------- 과천관 ・2022년 4월 / 2022년 9월 '새로운 만남'  - 이건희 컬렉션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및 아카이브의 새로운 만남을 주제로 한 전시 예정. -------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뮤지엄(LACMA) ・2022년 9월 한국 근대미술전  - 이건희 컬렉션 중 일부를 선보여 수준 높은 한국 근대미술을 해외에 소개할 계획. ------- 청주관 수장과 전시를 융합한 '보이는 수장고'를 통해 이건희 컬렉션 대표작들을 심층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할 예정. ------- 2022년 지역 미술관과 연계한 특별 순회전 개최. 출처
조선족 최대 아웃풋.jpg
1. 1934년 중국 길림성에서 조선족의 자녀로 태어남 2. 조선족 최초로 베이징대 아랍어학과 입학 및 수석 졸업, 중국 최초 ‘국비장학생 1호’가 되어서 이집트 카이로대에서 아랍 문학 전공, 그 이후에는 모로코 중공 대사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  3. 60년대에 갑자기 민족주의에 물들어서 북한으로 귀화 신청 (참고로 귀화 요청하자, 당시 외무부장이랑 싸우고 이래도 안 해주니까, 저우런라이한테 직접 편지써서 귀화 허가 받아냄)  4. 60년대가 중국에선 문화대혁명 기간이라서 많은 조선족들이 북한으로 넘어갔으나, 북한에서도 50년대부터 김일성 제외한 나머지 종파 세력들 정리하고 있어서, 이때 넘어간 조선족들도 대다수가 숙청 당했는데, 저우런라이 허가증 들고 있어서 숙청 피함  5. 북한으로 귀화한 후 1974년까지 평양 국제관계대학 교수와 평양외국어대 동방학부 아랍어학과 교수로 재직, 마지막에는 아랍어과 학과장까지 맡음. 아랍 대표단이 북한에 올때 김일성 통역도 맡음  6. 언어 실력과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북한 노동당이 스카웃, 4년 5개월에 걸쳐 간첩 교육을 받으면서 남파 간첩으로 변신 7. 노동당 지령받고,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레바논에 가서 현지 도움으로 레바논 국적 획득 8. 레바논 국적으로는 남한에서의 활동이 힘들다는 판단, 튀니지로 가서 대학원 석사 학위를 따고 사회 경제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기회를 모색. 튀니지는 호적관계법이 잘정비되어 있어 국적을 취득하기 힘들다고 판단. 말레이시아 대학 이슬람 아카데미 강사(1982.7)를 거치는 등 호주, 파푸아뉴기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국적 취득 기회를 모색하였으나 모두 실패. 1983년 4월 필리핀에 입국, 1984년2월에 필리핀 아버지와 레바논 어머니 사이의 아들인 '무하마드 깐수'로 국적 세탁하고 한국에 입국 9. 위장을 위해서 연세대 어학당에 들어와서 한국어 배움. 그러다가 단국대 사학과 박사 과정 밟아서 박사 학위를 취득. 동서 문명 교류사와 실크로드학의 권위자로 1990단국대 사학과 초빙교수, 1994년에는 조교수로 임명. 이 기간에 간호사 출신 아내 만나서 결혼도 함 10. 1984년 6월부터 라디오를 이용해 1996년 7월까지 161차례에 걸쳐 북한의 지령을 수신.  11. 1996년 3월부터 팩스로 전송 수단을 바꾸는 바람에 잡힘. 12. 안기부에서 전향시키려고 했으나, 북한에 남아있는 처자식들 때문에 거부. 그리고 남한에서 만난 아내한테 자기 잊어달라고 했으나 매달 찾아와서 면회하자 맘 흔들리고 전향. 13. 원래는 사형 내려졌는데, 연구 성과, 전향 의사, 북한에 넘긴 자료가 단순히 언론 보도 자료만 넘겨줘서, 국가 기밀 위협 혐의가 없다 판단하여 징역 12년으로 최종 판결 14. 이후에 광복절 특사로 4년 만에 출소. 2003년에 특별 사면, 복권 돼서 학계로 복귀 참고로 이 분이 최초로 처용 이슬람인 도래설 주장했고, 쿠란 표기법 종결시킴 고오급 인력 키워서 남조선에 헌납한 북조선 (출처) 무려 자기가 연구한 학문 혹시 도움될까봐 북한에 보냈는데 이런 거 보내지 말라고 해서 서운하셨다고 ㅋㅋㅋ
초여름 장마에 읽기를 바라는 시집
제목처럼 초여름 장마에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시집 추천글을 들고 왔어요. 기재된 모든 시집은 순수문학이에요. 조금 더 대중적인 글을 찾는다면 맞지 않을 수 있어요. (ㅠㅠ) ** k=keyword 1. 포개놓은 접시처럼 단단하면서도 위태로운 장미의 꽃잎 손가락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어 겨누었는데 폭격이 시작된다 봄은 전방위적으로 와서 무작위로 쓸려내려간다 세계는 피의 정원 권총을 장미로 장식한다고 해서 총구에서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총구를 손가락으로 막을 수는 없다 심장과 총구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는다 장미 꽃다발에서 권총을 꺼내 누군가의 심장을 겨누는 시절은 갔다 -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누고 널 사랑해 두 손을 모아 장미꽃을 바치며 널 사랑해 우리는 서로의 눈이 아니라 발밑을 보며 춤을 추고 있었지 권총과 장미 中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신철규 K  그득한 슬픔의 아름다움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속 세계는 무척 파랗고 그만큼 냉혹해요. 아무리 헤엄쳐도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무거운 슬픔이 드러난 문장이 많아요.  그렇지만 어떤 부분에선 또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번쯤 읽었으면 하는 작품이에요. 이미지 묘사가 뚜렷해 장면이 절로 눈앞에 그려지곤 했어요. 느낌보단 주로 장면을 묘사해요. 그래선지 대체로 한편당 길이가 길어요. 2.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화과 숲 「구관조 씻기기」 , 황인찬 K 흐르는 고요함 오늘 추천한 다른 시집들과는 달리 조금은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시집이에요.  감정의 과잉을 나타낸다기 보단 사회의 어두운 내면을 시인만의 따뜻한 방식으로 포용하는 느낌. [황인찬의 시는 '도취'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다. 표면적으로는 애초에 그 어떤 감정의 너울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듯 황인찬의 시적 주체는 격양되는 법이 없고 크게 절망하여 한탄하는 일도 없다. 그저 너를 지켜보는 것으로 나의 일을 다하였다는 듯이 담담하게 대상을 바라볼 뿐이다. 작품해설 '서글픈 백자의 눈부심', 박상수] 3. 너에게 줄 선물이 있어 이런, 목에 깃털이 잔뜩 뽑혀 있네 빨갛게 부푼 곳에 맑은 꿀을 발라 줄게 조금만 조금만 가까이 와 봐 - 선물 상자를 열면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온다 앵두들이 한 움쿰 익어 가고 있을 거야 너의 안경이 하얗게 변할 동안 나는 눈을 세 번 깜빡깜빡하고 그사이 두 번 입맞춤을 할게 청혼 中 「조이와의 키스」 , 배수연 K 음울한 동화 시집에선 '조이' 라는 이름의 누군가가 자주 등장해요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적인 분위기의 표현이 많아요 문장이 파격적이라 입문용으로는 조금 힘들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만큼 낭만적이기도 해요. 구체적인 사랑을 묘사한 순간이 많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가느다란 눈썹을 꺼내 네 발 에 시를 적었어- , -조이의 굽은 손가락을 작은 지팡이처럼 걸어 잡고 한낮이 지나도록 앉아 있었다- 4 소년이 손을 열어 보여준 건 칼이었다. 분홍색 손바닥 위로 슬몃 피가 비쳤다.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 소녀는 분명히 비웃었다. 소녀는 뚫어지게 소년을 응시했다. 칼, 사춘기3 中 「사춘기」 , 김행숙 K 떠들썩한 미숙함 김행숙 시인의 첫 시집. 처음의 들뜸과 미숙함, 약간의 과도함이 잘 드러난 작품. 마치 처음 맞이한 사춘기처럼. 제목처럼 사춘기思春期 를 써낸 시가 많아요. 발칙하고 미숙한. 간혹 유령이 등장하는 시도 있는데, 조금은 섬뜩하기도 하고 재치있는 발상이 간혹 있어 흥미로웠어요. 5 열두 시간과 열두 시간이 똑같았다. 사랑은 어둠을 좋아했으므로 사랑하지 않는 날들이 지속된다. 낮 中 「에코의 초상」 , 김행숙 K 짙은 사색의 흔적, 삼켜버리기엔 너무도 거대한 사랑 / [김행숙은 시쓰기를 “삶의 운동, 사랑의 행위”이라 말하며, “이 말썽 많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줄곧 써오고 있다”고 한다.] 사춘기와 에코의 초상의 출판 년도 차는 11년 정도인데, 그 시간의 간극에서 작가가 얼만큼 성장했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에코의 초상」.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아요. 그리고 죽음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간', '사랑'에 관해서도 긴 관찰을 통해 이야기해요. 미숙하고 옛 분위기가 드러난 문체의 시를 읽고 싶다면 사춘기를, 인간과 사랑에 대한 더 깊은 사색을 원한다면 에코의 초상을 읽어보길 권할게요. :) 출처ㅣ쭉빵, 프리저브드 플라워
혼자는 외롭지만, 둘은 괴로운 사람들
혼자는 외롭지만, 둘은 괴로운 사람들 누군가와의 관계가 힘들고 버거워 차라리 아무와도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열 일 제쳐두고 무인도에 가서 한 세월 살아보고픈 충동이 생길 때가 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그럴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강은호, 김종철, 나는 아직도 사람이 어렵다 中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은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캉디드가 물었다 "우리를 화나게 하려고요" 마르틴이 대답했다 /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죽고 싶다 말하지만 정말로 죽고 싶지는 않고, 살고 싶다 말하지만 정말로 살았던 적 없고, 죽고 싶은데 누가 자꾸 살려놓는 거니 살고 싶은데 왜 목을 조르는 거야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아니,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거 맞잖아 /김박은경, 오늘의 일기 솔직하게 인정하자 현실은 언제나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엉망이고 당신의 생은 여전히 고달프고 나아질 기미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도 그럭저럭 이 지난 한 생을 견뎌내고, 살아내는 까닭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 하나쯤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최갑수, 잘 지내나요 내 인생 새벽에 누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나쁜 꿈에서 깨어나면 또 한 겹 나쁜 꿈이 기다리던 시절 /한강, 거울 저편의 겨울2 우리는 시시각각 이별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시시각각 자신과도 이별하며 살아간다 /박경리, 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서 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신철규, 눈물의 중력 나는 친절해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슬프게 할까봐 조금 조심스러워졌을 뿐이다 /은희경, 그것은 꿈이었을까 우는 것은 마음을 청소하는 일이다 봄날이 가는 것이 못 견디겠는 날이 있는가 하면 기다림의 힘으로 살아봐야지 하는 날도 있더라 /박연준, 소란 우리는 아플 때 더 분명하게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이현승, 빗방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텍스트 출처ㅣ쭉빵,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마 이미지 ㅣ 영화 <봄날은 간다>,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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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공원의 운동장에서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가 들어왔다. 운동장이 꽤 커 보이는데, 적혀있기로는 한 바퀴가 612m라고 한다. 한 바퀴를 걷고 한 바퀴를 뛰는 식으로 여덟 번을 돌았다. 2.4km 정도를 뛴 셈이다. 운동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도 석 달을 러닝머신에 의지해 뛰다 보니 체력이 많이 늘었다. 내일은 피티 30회가 되는 날이다. 마지막인 셈이다. 아마 조금 더 연장할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에는 코치님과 운동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올해는 무조건 운동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올해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다. 내년에는 내년 몫의 계획들이 있어서. 걷고 뛰면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유튜브 방송을 들었는데, 최근 오스카에서 대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에 대한 소개였다. 노마드의 삶을 다큐 형식으로 푼 영화인 것 같은데, 어쩌면 나는 물리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정신적으로는 노마드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자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자. 그러나 그것은 자유를 갈망해서가 아니라, 늘 지금 이곳을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릴 것을 알기에 먼저 떠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둬야 할까. 나는 어디로든 가야 하므로 내게 부지런히 연료를 넣고 있는 거다. 내일도 쉼 없이 걷고 뛰어야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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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상대가 극단적인 사람이라면, 그러니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에 너무 극단적이라 어떤 얘길 해도 모든 것이 그쪽 방향으로 치닫는다면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 어떤 얘길 해도 어차피 그쪽으로 흘러갈 테니까. 그렇다면 어떤 대화의 시도도 거의 무의미하며, 그러므로 대화는 곧 단절된다. 뭐 그런 가치는 정치적 이념일 수도 있고, 종교일 수도 있고, 흔치는 않지만 문학, 특히 시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지향하는 그 극단적인 가치가 다름 아닌 바로 '나'라면. 나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이라면. 참 난감할 것이다. 그 난감한 사람 중 하나가 역시 부모라는 존재이다. 엄마를 떠올리자면 뭐 거의 그런 식이지만, 오늘 역시 그랬다. 가족 식사를 마치고, 엄마의 방에 들어가 보니 침대 위에 최근에 출간된 박완서의 에세이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다른 장르도 아닌 문학이라니. 나는 엄마가 문학 도서를 읽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워, 웬 박완서의 책을 읽고 있냐고 물었다. 그건 순수하게 엄마가 문학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역시 돌아오는 답은 그러했다. 생일 선물로 직장 동료에게 받은 거라며, 안 읽었으면 가져가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그런 의도의 말을 한 게 아니다. 신간 한 권 구해서 읽는 게 내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엄마는 내게 자신의 것은 다 주고 싶다. 언제부턴가는 엄마의 물건 중 생소한 것이 보여도 그것에 대해 묻기가 조심스럽다. 돌아올 말은 뻔하니까. 가지고 싶으면 가져가라. 해준 음식을 먹을 때 칭찬하기도 두렵다. 싸줄 테니 가져갈래? 가져갈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곤란할 뿐이다. 뭐 뻔한 말이 돌아올 것을 역시 뻔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말한다. 맛있다. 그래도 그것이 부모의 기쁨인 것을 잘 아니, 퉁명스레 대하기도 어렵고, 내내 거절하기도 힘들고, 여러모로 엄마와의 대화는 힘들다. 부모와 순수하게 대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뭐 그렇지 않고 자연스런 대화가 가능한 부모자식들도 많겠지만, 우리 집안의 문제로만 따지자면 대화의 부재가 곧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것은 엄마의 잘못만도 아니고, 나의 잘못이기도 하다. 결국 해결책은 많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일 뿐이다. 역시 가장 어려운 관계는 부모자식이다. 언젠가 어버이날에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늘은 시도하는 모든 것이 불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불효가 될지라도 관계를 위한 많은 시도가 있어야 결국 친밀감을 형성하고, 미약한 효라도 끌어낼 것이다. 오월은 여러모로 쉽지 않은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