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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탈트 심리치료 : 접촉경계 혼란의 원인들

"내사를 보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고, 투사를 하는 사람은 타인이 자기에게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타인에게 하며, 병적인 융합관계에 있는 사람은 누가 누구에게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반전을 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하고 싶은 행동을 자신에게 한다. 내사를 하는 사람은 타인을 자기 자신으로 잘못 알고 있고, 투사를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타인의 것으로 잘못 지각하며, 융합을 보이는 사람은 나와 너를 구분하지 못하고 한 덩어리가 되는 데 반하여, 반전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두 부분으로 분열되어 있어 자기 자신과 행동을 주고 받는다." - 프릿츠 펄스 ----------------------------------------------------------------------- 1. 내사 (introjection) - 개체가 환경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태.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으로 생긴 내적 가이드가 마치 자신의 생각인양 여겨지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여자는 이래야해','아무하고나 집안 일 이야기하는거 아니다' 같은 부모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여 내사시킨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실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고 판단해서 '여자는 이래야 한다'라고 생각한게 아니다. 이미 내사되어 있었던 목소리인 것이다. 그런데 내 것으로 만든게 아니기 때문에, 이게 진짜 내 욕구와 상충되었을 때, 마치 내 욕구인양, 내 가치관인양 착각을 해서 내면에서 일어난 나의 욕구를 기각해버린다. '여자는 얌전하고 조신해야 해'라는 부모가 준 가이드는, 진짜 내가 '조신하지 못한,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어떤 일'에 대한 욕구를 떠올렸을 때 이를 제껴버릴 수도 있다. ​ - 개체는 환경과의 접촉을 통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여 소화하고 동화시킴으로써 성장한다. 이때 개체는 공격성을 사용하여 외부에서 들어온 것들의 구조를 파괴시켜 자신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놓는데, 퍼얼스는 이를 ‘치아 공격성’이라고 불렀다. - 예컨대, 개체는 부모나 선생님과 관계함에 있어 그들의 주장이나 행동 가치관을 자기 나름대로 따져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치아 공격성을 사용하여 외부로부터의 이물질을 파괴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야 한다. - 개체가 자신의 공격성을 사용하는 것을 제지당하게 되면 권위자의 행동이나 가치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것으로 동화되지 못한 채 남아있으면서 개체의 행동이나 사고방식에 악영향을 미치는 타인의 행동방식이나 가치관을 내사(introjection)라고 한다. - 펄스는 내사는 마치 음식물을 씹지 않고 삼킴으로써 복통이나 설사를 일으키게 되는 것처럼 사회와 부모의 가치관을 비판을 통하여 자기 것으로 동화시키지 못하고, 그냥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내면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 내사가 심한 개체는 자신의 진정한 욕구가 무엇인지 잘 모른 채 타인의 기대에 맞추어 사는데 익숙해져 있다. 이들은 대개 판에 박힌 행동을 하며 깊은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행동은 흔히 조급하고 참을성이 부족하다. - 펄스는 신경증의 원인을 부모태도의 나쁜 측면과의 동일시에 의한 것으로 보았다. 신경증은 개체가 자기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 사이를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는 것, 즉 ‘경계장애’고 말할 수 있다. - 내사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실제 부모의 교육이나 태도 그 자체보다, 부모의 교육이나 태도를 개체가 어떻게 내사하는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실제 부모나 선생님보다는 개체 속에 내사되어 있는 그들의 이미지와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통상 내담자는 ‘실제 부모’보다 ‘내사된 부모’가 더 엄격하고 도덕적이다. 2. 투사 (projection) - 자신의 생각이나 욕구, 감정 등을 타인의 것으로 지각하는 현상을 투사(projection)이라고 한다. 투사는 개체가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자각하고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것에 대한 책임 소재를 타인에게 돌림으로써 나타난다. -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투사를 창조적인 투사와 병적인 투사로 나누어 설명한다. 전자는 개체가 새로운 상황에 처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한 방편으로 의도적으로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후자는 개체가 직면하기 힘든 자신의 내적인 욕구와 감정 등을 회피하기 위하여 무의식적이고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 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감정이나 욕구뿐 아니라 개인의 생각이나 가치관도 포함되며, 부정적 측면뿐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도 투사가 가능하다. 미움이나 질투심, 분노감은 물론이고 부드러운 감정이나 자신감, 창조적 에너지등도 투사될 수 있다. - 폴스터 등은 투사가 내사의 영향에 의해 생긴다고 본다. 개체에 내사된 가치관이나 도덕적 규범이 개체로 하여금 특정한 욕구와 감정 혹은 생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타인의 것으로 지각함으로써 해결한다는 것이다. - 대인관계 갈등은 흔히 자신의 내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을 타인에게 투사함으로써 나타난다. 요컨대, 우리는 악을 자신의 안에 있는 것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자신 밖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타인을 악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들과 대리갈등을 일으킨다. - 다른 사람의 특정한 행동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며 심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의 심리에도 투사가 개입되었을 수 있다. 자신이 무척 하고 싶은 충동을 내사된 가치관 때문에 억압하고 있는데, 타인이 이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억압해온 충동이 통제를 벗어나려 하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 투사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능력이다. 이 능력이 없으면 타인을 이해할 수 도 없다. 인간은 자신의 심리를 근거로 해서 타인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의 투사행위를 모르고 있을 때이다. 자신의 악을 타인과 환경에 투사하여 싸우거나, 자신속의 잠재력과 창조적인 힘을 타인이나 기타 외부대상에 투사해버릴 때 생긴다. - 니이체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격에서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을 억압하고, 이를 외부의 대상에 투사하여 그것에 악마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것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 융은 니이체의 ‘그림자’개념을 수용했다. 개체로부터 수용되지 않은 인격의 부분을 ‘그림자’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투사는 개체로 하여금 타인에 대한 견해를 흐리게 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저해하기 때문에 위험한 것으로 보았다. 개체는 그림자를 외부에 투사함으로써 자신의 인격의 한 부분을 적대적인 쪽에 남게 하며, 소외된 그림자는 마침내 개체의 적이 되어 개체에게 적이 되어 보복을 가해온다고 하였다. - 흔히 파트너를 선택할 때 상대에게 자신의 긍정적인 속성들을 투사하고 상대를 쫓아다닌다. 이때 상대를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자신의 투사물을 사랑하는 것이다. 3. 융합 (cconfluence) - 퍼얼스는 융합이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 간에 차이점이 없다고 느끼도록 합의함으로써 발생하는 ‘접촉경제 혼란’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지극히 위해주고 보살펴주는 사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서로 독립적이지 못하고 의존관계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 융합으로 인하여 자신의 경제를 갖지 못할 때 개체는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제대로 해소할 수가 없고 따라서 삶은 미해결 과제를 축적시킨다. - 실제로 두 개의 다른 개체가 똑같은 감정이나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융합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융합관계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으며 그러자면 삶의 활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 융합관계는 흔히 공허감이나 고독감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고 또한 유지되는 측면이 있다. - 융합관계의 두 사람은 다 성장에 장애를 받는다. 서로가 경계가 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 살기 때문에 고독감이나 공허감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서로가 독립된 개체로서 유기체 욕구를 자각하고 접촉하지 못하므로 생동감을 상실하고 만다. - 어릴적에 융합관계를 체험한 내담자는 분리공포를 갖고 있는데 반해, 버림받고 고립상태에 있었던 삶은 타인으로부터 ‘삼켜지는데’ 대한 공포를 갖고 있다. 대게 심한 융합을 보이는 내담자의 부모자식관계는 너무 투과적인데 반해 ‘삼킴을 당하는’ 공포를 갖는 내담자는 지나치게 비투과적인 경우가 많다. 후자의 경우 건강한 융합체험이 필요하다. - 퍼얼스 등은 융합이 되면 서로의 경계가 없고 서로의 차이가 인식되지 않아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대한 자각이 생기지 않아 불건강하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건강한 융합도 있음을 지적하였는데, 이는 건강한 개체가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동일시하여 하나가 되는 현상이라고 하였다. 반면 불건강한 융합은 알아차림과 접촉의 결여로 인하여 독립적인 개체간의 만남에서 체험되는 생생함과 흥미진진함 같은 것이 없다. 4. 반전 (retroflexion) - 타인이나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것 대신에,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외부에 하고 싶은 행동을 자신에게 하거나, 외부에서 나에게 해주길 바라는 행동을 스스로에게 하는 상태. 내 욕구를 억압하는 환경이나 타인이 있었지만(내사), 어느새 내가 나를 스스로 억압하고 있다. 어떤 것이 내 욕구인지 알 수 없어 경계에 혼란을 겪게 된다. - 반전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환경이 용납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환경으로부터 어떤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또한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기는 하지만 반전행동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욕구나 충동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5. 자의식 (egotism) - 자의식(egotism)이란 개체가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고 관찰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에 생긴다. 자의식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싶고, 관심을 끌고 싶어 하지만 거부당할까 두려워 행동을 드러내놓고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 자의식은 반전으로 인해 생기는 현상으로 개체가 자신의 주의를 매력을 느끼는 대상이나 혹은 분노를 느끼는 대상으로 향하는 대신 자기자신에게 향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자의식은 밖으로 향하지 못하고 안으로 향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 자의식이 심한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조정하여 현실에 잘 적합 시키고 표면적으로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소위 ‘점잖은 신사’들이다. 퍼얼스는 이러한 자의식은 정신분석 치료를 오랫동안 받은 사람들에게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증상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자신의 문제를 분석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으나 자신과 환경을 통합적으로 체험하지 못한다고 한다. 6. 편향 (deflection) -환경과의 접촉을 피해버리거나 혹은 자신의 감각을 둔화시켜버림으로써 환경과의 접촉을 약화시킨 상태. 이때 개체는 환경과의 접촉에 사용되어야 할 에너지를 철회함으로써 접촉을 피한다. 개체는 편향을 사용함으로써 만일의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좌절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고, 현재 존재하는 고통을 덜 느낄 수 있다. 편향이 습관적인 행동이 되면 개체는 타인이나 환경으로부터 고립되며, 삶의 활력과 생동력이 감소되어 무기력해지게 된다. - 편향은 지식인에게서 많이 볼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은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빙빙 돌려 말함으로써 초점을 흐리게 하거나, 말할 때 상대편의 눈길을 피하거나 직접 상대편에게 말하는 대신에 간접적인 개념적 묘사를 함으로써 편향할 수 있으며,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거나 눈길을 피하거나 말하는 사람에게 다시 질문함으로서 편향할 수 있다. - 편향은 개체가 불안, 죄책, 갈등, 긴장 등 여러 가지 부적인 심리상태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적응기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불안의 방어가 중요한 목적이다. - 펄스는 “불안은 현재와 미래사이의 간격이다”라고 말했다. 즉, 개체가 지금 여기를 떠나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면 그러한 예상행동이 지금 여기의 흥분을 억제하게 되고, 이때 행동으로 바뀌지 못한 흥분은 불안으로 체험된다. 개체가 미래로 달려가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은 더욱 커지게 된다. <출처 : 게슈탈트 심리치료> 덧. 펌질에 유리한 서비스라서인지 모르겠는데, 기본 에디팅이 안되서 정보 전달에 불리하다 ㅠ.ㅠ 흑. 자세한 내용은 블로그에서..라며 본문 생략을 해야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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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하지 않는 마음 가져보기
사진 출처 : flickr - burntfeather 서커스단 코끼리의 발목에 밧줄을 묶어두면 도망가지 못한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끼 때부터 발목에 밧줄을 걸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겪게 하면, 밧줄 따윈 쉽게 끊어버릴 수 있는 큰 코끼리가 되어서도 그 밧줄을 끊을 생각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죠. 더 강한 줄로 단 한 번 강하게 구속했다면 코끼리가 이렇게 좌절한 상태에 빠졌을까요? 좌절은 그렇게 서서히 마음이 얼어붙어버린 겁니다. 원래의 자신과 잠재력을 잊고 그냥 멈춰버린 시간입니다. 목표를 방해받고 분노하다 분노조차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하며 목표를 잃고 좌절에 빠집니다. 좌절은 이런 무기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인생을 병들게 합니다. 자, 그럼 여러분이라면 밧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코끼리에게 무슨 말을 해줄 것 같은가요? 좌절감을 이겨내도록 설득해 도와준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냥 끊어보라고, 끊을 수 있다고 말해줄 수도 있겠죠. 실은 그 말이 맞습니다. 끊을 수 있고 일단 해보면 너무 우스운 일이었음을 깨닫게 될 겁니다. 하지만 코끼리는 아마 이렇게 말하겠죠. “불가능해요. 예전에 이미 많이 시도해봤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그 자리에서 다른 밧줄을 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면 코끼리는 이런 항변을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강하잖아요. 나는 서커스단에 계속 묶여 있던 약한 코끼리라고요. 그리고 당신이 썼던 그 밧줄은 약했을지도 모르고요.” 네가 더 강하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되겠군요. 포기하고 그냥 묶여 있으라고 말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그래도 좀 더 시도해봐야겠죠. 그럼 이렇게 말해볼까요? “너는 약해도 코끼리야. 자신을 좀 더 믿어봐. 할 수 있어.” 코끼리가 스스로 찾아와 방법을 물었다면, 변화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 코끼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겠죠. “안 된다니까요. 당신은 말로만 하니까 될 것 같은 거예요. 나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알아요.” 답답하죠. 그런데 실제로 좌절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지금의 말에 공감가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물론 공감이 된다고 그 생각이 옳은 것은 아니죠. 자, 그럼 이렇게 말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밧줄을 끊으려 할 필요는 없어. 그냥 발을 조금 움직여보는 건 어때? 지금껏 한 자리에는 있을 만큼 있었잖아? 매일 어제와 다른 곳에 발을 둬보는 거야. 한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여보는 거야. 그냥 지금 조금 움직여보는 거야.” 혹시 여러분 마음에도 밧줄이 있지는 않은가요? 스스로 얽어맨 부정적 신념이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한번 그 마음을 설득해보세요. 얼핏 생각하면 좌절에 빠진 코끼리를 설득하는 것이 쉬운 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코끼리는 엄청나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니까요. 그리고 밧줄은 과거에는 거대한 존재였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죠. 코끼리가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있든 없든 아무 상관없을 정도로 미미합니다. 하지만 코끼리는 엄청나게 큰 존재로 의식하고 있죠. 밧줄을 끊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실제로 코끼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현재의 밧줄이 아니고 과거의 기억입니다. 하지만 그 밧줄이 너무 강하고 자신은 힘이 없다고 생각하죠. 자신의 기억에 사로잡혀 현실성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이게 코끼리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일까요? 좌절에 빠진 사람들의 생각도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모두 자신의 밧줄만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리고 자신은 특별하게 약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할 수 없다고 스스로 믿게 만들어놨죠.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내면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것 같아도 항상 조금 더 할 수 있죠. 그리고 그보다 더 할 수도 있죠. 그것이 무엇이든 한계인 것 같다가도 해보면 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코끼리보다 더 강합니다. 밧줄처럼 한계라고 믿는 무언가가 생기기 전까지 한계는 없습니다. 결국, 무엇을 믿느냐의 차이입니다. 밧줄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