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ghai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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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들어보는 크리스마스꽃~ 포인세티아 >.<

크리스마스의 상징과도 꽃, 포인세티아! 원래는 아열대인 멕시코가 원산인 식물로 추위에 약한데 ^^ 미국과 유럽에서 빨간색이 마귀를 피한다고 해서, 크리스마스에 장식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하네용~ 오호~~ 화려하고 너무 아름다운 꽃, 포인세티아! 종이로 접어보아요~ 아이랑 함께 해요 >.< ㅋㅋㅋ <준비물> 빨간색 A4 풀( 양면테이프), 자, 칼, 연필 금가루 (선택, 설마 진짜 금가루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겠지...... ) <how to> 1. A4를 반으로 접고, 1/3만큼씩 잘라줍니다. (이럼 A4 한장에서 총 6개의 종이가 나오겠죠~~~?저처럼 정확하게 자르는것에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들은 -.- ㅋㅋㅋ 빨간색 색종이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2. 사진처럼 접어줍니다. 접고 접고 접어용 3. 양 끝을 모아서 풀로 붙여줍니다~ 딱 달라붙을 수 있게 나무집게 같은걸로 집어놔주면 좋겠죠~~? 4. 5개를 쭉쭉 이어 붙여주면 쨔잔~ 포인세티아 완성!!! 문방구에서 파는 금가루같은걸 위에 발라주면 더 블링블링해지겠습니다 ^^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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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접어봐야겠어요~
색상지가 제일 느낌이그럴듯하네요 꽃잎을 모아서붙이기엔 풀로는역부족이라ㅠ양면테이프를왜쓰라했는지알겟어요 저는실핀으로고정시키면서했습니당ㅎ
오래된 못쓰는 메뉴큐어나 쉐도우 이용해도 좋을꺼같아요~ ㅎㅎ
예쁘다.....
저도 색종이로 해야겠어요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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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을 느끼는 아이를 돕는 방법
불만은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바꾸려고 노력하게 하는 강력한 감정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항상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 세상에서 살아갈 채비를 갖춰야 한다. 때로는 아이 자신이 바뀌어야 하며, 부모는 아이가 자기 뜻을 내려놓고 마음대로 하지 못해도 큰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려면 부모는 우선 아침으로과자를 먹고 싶다거나 잘 시간이 지나도 자지 않겠다는 욕구나 바람을 지닌 아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어른이 해야 할 일은 인생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음을 보여 주는 책임을 맡는 것이다. 이를테면 “자러 가기 싫어. 나는 햄스터처럼 야행성이야.”라고 주장하는 세 살짜리를 재울 때처럼, 그럴 만한 기회는 수없이 많다. 유아가 부질없음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은 논리적 과정이 아니라 감정적 과정이다. 아이들은 어떤 것이 소용없는지 판단할 줄 모르며, 어떤 소망을 이룰 수 있고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는지 알아내려면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포기할 줄 모르므로 아이가 헛된 노력을 그만두고 쉬게 하려면 어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논리나 이성으로 아이가 무언가를 그만두게 하려는 설득은 대개 실패하게 되어 있다. 부질없음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아이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살펴야 한다. 아이는 자신이 인생의 한계와 제약에 부딪혔음을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어른은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아이의 마음에 명확히 전해야 한다. 아이는 어른의 ‘안 돼’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감정적으로 이해하게 해야 한다. 미로에 들어갔을 때처럼 아이는 어디가 막다른 곳인지 느껴야 다른 길을 찾아 나올 수 있다. 어떤 네 살짜리는 아빠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을 깨닫자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자꾸 안 된다고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엄마한테 이를 거야.” 아이는 자신이 변화를 불러올 수 없을 때 슬픔과 실망, 상실감을 느껴야만 부질없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의 마음이 부드러운 상태여서 취약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노여움은 결국 슬픔으로 변한다. 불만 가득했던 기분이 부질없다는 기분으로 바뀌는 것이다. 슬픔의 눈물은 부질없는 노력이 끝났으며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아이의 뇌가 받아들였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그칠 줄 모르던 칭얼거림과 불만 가득한 에너지는 거의 마법처럼 슬픔과 실망으로 바뀐다. 짜증은 멈추고 감정적 에너지는 사그라져 아이는 마침내 쉴 수 있게 된다. 바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때 아이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들고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유아가 삶의 부질없는 측면을 깨닫고 유연성과 융통성을 획득하는 것은 바뀔 수 없는 상황에 슬픔과 실망을 느끼며 흘리는 눈물을 통해서다. ※ 위 콘텐츠는 《엄마, 내 마음을 읽어주세요》 에서 발췌 ·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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