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by123
50,000+ Views

'레즈더비 패배' 리버풀, 50년만에 나온 최악의 기록 달성

리버풀이 14일(이하 한국시간) 오후 10시 30분 영국 맨체스터에 위치한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유와의 14/15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16라운드 노스웨스트 더비에서 0-3으로 대패했습니다. 이날 패배한 리버풀은 6승 3무 7패로 승점 21점에 머물고 있습니다. 승점 21점은 지난 64/65시즌 이후 리버풀이 리그 16경기 동안 챙긴 승점 중 가장 낮은 기록입니다. 무려 50년만에 나온 최악의 기록인 셈입니다. 당장 작년과 비교하더라도 리버풀의 부진은 눈에 띕니다. 지난 13/14시즌 리버풀은 6패 밖에 당하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거둔 7패 보다 더 적은 수치입니다.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획득 여부도 미지수입니다. 4위 웨스트햄과의 격차는 무려 승점 7점으로 벌어졌습니다. 유로파리그 진출조차 무산 될 위기입니다. 브랜든 로저스 리버풀 감독의 경질설이 나오는 게 이해됩니다. 몇몇 매체들을 리버풀 수뇌부가 로저스 감독의 대체자로 빌라스 보아스 감독을 낙점했다는 보도까지 내보내고 있습니다. 리버풀은 UCL에서도 1승 2무 3패 승점 5점으로 조별예선 탈락했습니다. 리그, 챔스 모두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리버풀입니다. 22일 열리는 아스날과의 리그 17라운드마저 패한다면 로저스 감독의 경질설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 지금까지 쌓아온 50년 팀 역사를 갱신했네요. 최근 50년간 최악의 페이스입니다. 로저스 감독 경질설이 현지에서 계속 흘러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리버풀 팬들은 답답하겠어요.
5 Comments
Suggested
Recent
발로텔리 울고싶겟다
핵이빨의 부재.
데 헤아는 온몸으로 연봉 협상한겁니다..ㅋㅋ
데헤아 진짜 미친 선방 장난 아니였어요 ㅎ
데헤아 레프 야신의 재림이라 할만큼 선방능력 진짜 죽여주더군요. 그나저나 팔카오는 완전이적은 안될 것 같죠? 나와도 교체출전정도니.. 맨유팬으로써 6연승 아주 기분좋네요 ㅎㅎ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박.지.성 맨유 시절 TOP5 골!!!
안녕하세요~스포츠구루 에디터 이준호입니다^^ 어제 박지성 국가대표 TOP5골 반응이 좋아 이번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멋진골 TOP5를 준비해봤습니다~극적인 골 아니고 멋진 골입니다!(극적 요소 살짝 가미^^) 제일 먼저 09/10시즌 아스날과의 24라운드에서 나온 40m 역습 골입니다~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최고의 몸 상태를 보여주던 박지성은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으로 역습 파트너를 잃게 되지만, 나니-루니와 함께 여전히 건재함을 알린 골이었습니다~ 아스날 원정에서 3-0으로 달아나는 쐐기골로 귀중한 승점 3점을 안겨줬죠~ 2010.2.1 두 번째 골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으신 리버풀전 헤딩골입니다! 로마전에서 골을 기록하고 돌아온 09/10시즌 리그 31라운드에 터진 골이었죠~ 라이벌 리버풀과의 홈 경기에서 전반 5분만에 토레스에게 골을 내줘 어렵게 경기를 풀어나간 맨유는 후반 15분, 1-1 상황에서 박지성이 플레쳐의 크로스를 받아 다이빙 헤딩골을 넣었습니다. 글렌 존슨이 발로 박지성의 눈두덩이를 찍어내려 피가 흘렀지만, 투지로 승리를 지켜낸 경기였죠! 이날 주인공은 토레스, 제라드, 마스체라노도 아닌 박지성이었습니다! 2010.3.21 세 번째 골은 박지성의 맨유 시절 최고의 경기였던 10/11시즌 울버햄튼과의 11라운드 경기였습니다. 이날 부상으로 나니, 긱스, 오언, 루니, 발렌시아가 모두 빠져 오베르탕, 베베와 함께 공격을 이끌었던 박지성은 자신이 해결사 노릇을 해내며 그동안 보여줬던 이타적 플레이가 팀을 위한 헌신이었음 보여주는 경기였습니다. 전반 45분, 플레쳐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었지만, 후반 21분 동점골로 홈에서 하위권인 울버햄튼에게 승점 3점을 챙기지 못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리고 추가시간 2분이 지난 후반 45분, 플레쳐의 패스를 박지성이 평소와 다르게 개인 플레이로 골을 만들어 냅니다!!! 결국 승점 3점을 챙긴 맨유는 그 해에 우승을 차지했죠. 울버햄튼 매카시 감독의 화난 표정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2010.11.7 이어진 네 번째 골도 결승골입니다~그러고 보니 박지성 선수는 많은 골은 아니지만, 멋있는 골을 결승골로 많이 기록해 우리의 기억속에 남는가 봅니다. 이 골로 전반기에만 5골을 넣은 박지성이었습니다.(아시안컵 출전으로 후반기 고전, 맨유 시절 역대급 페이스) 자신의 국가대표 마지막인 2011아시안컵을 앞둔 박지성은 리그 17라운드에서 아스날을 만납니다. 그리고 전반 41분 나니의 크로스가 수비 발에 맞으며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뒤로 날라오지만, 감각적인 헤딩으로 이날의 유일한 골을 완성시킵니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기록한 27골 중에 5골을 아스날에게만 기록해 '아스날 킬러'로 자리 매김하게 됩니다! 2010.12.14 마지막 골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골 맞습니다! 일명 '이~야 골' 박지성 선수의 챔피언스리그 마지막 골은 10/11시즌 8강 2차전에서 터졌습니다. 첼시 원정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고 홈에서 열린 2차전도 치차리토의 선제골로 합계 2-0으로 앞서 나가지만, 후반 31분 드록바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맨유는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만약 첼시가 한 골을 더 넣게 되면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맨유가 탈락하게 되는 위험한 상황에서 박지성이 1분 만에 이날 결승골을 넣으며 첼시 선수들의 힘을 빼놓아 버립니다. 긱스의 환상적인 패스를 침착하게 가슴으로 떨궈 놓고 때린 왼발 슛은 그대로 골망을 가르며 올드 트래포트에 모인 팬들의 함성을 자아냈죠! 2011.4.13 박지성 선수가 맨유 시절 넣은 27골 모두 멋있지만, 재미로 5골을 선정해본 만큼 넓은 아량 부탁드립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좋아요 한 번 부탁드립니다~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추성훈이 아침마다 한다는 20분 운동 루틴
추성훈이 예전에는 오전 운동을 2~3시간씩 했었는데 나이들고 나서 (올해 46세) 오전 운동은 이거 20분으로 끝낸다고.. 그만큼 효율쩔고 체력 증진이나 지방, 셀룰 빼는데 직빵이라함 ㅇㅇ 1. 스키점프 스쿼트 완전히 밑까지 앉는게 포인트 한 번에 20개  2. 몽키점프 와이드 스쿼트 자세로 최대한 밑까지 내려와서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점프하는 것 점프 할 때 마다 손 바꿔줘야함 한 번에 20개 3. 와이드 스트레칭 와이드 스쿼트 자세에서 좌우로 스트레칭하기 가운데지점에서 일어나지 않는게 포인트 ㅇㅇ  이렇게 계속 앉은 상태 유지하면서 좌우로 움직여야함 한 번에 10개 (좌우 한 번씩 갔다와야 1개임) 4. 데빌 프레스 푸시업 후에 덤벨 위로 들기  추성훈은 한 쪽에 20키로 짜리로 지금 40키로 들고 있지만 ㄷㄷ;; 가벼운 아령이나 생수병, 아님 맨손으로 해도 효과있다고 한 번에 10개 5. 런지 중간 지점에서 쉬지말고 앞뒤로 반복해서 런지 한 번에 20개 - 이렇게 다섯동작을 1세트로 하루에 4세트를 사이 사이 쉬는시간없이 반복 1세트 할때 대략 5분정도 걸려서 20분이면 다 할 수 있다고 ㅇㅇ 집사부 멤버들하고 2세트 해봤는데 ㄹㅇ 11분만에 끝남.. * 다만 강도가 높기때문에 일반인은 2세트만 하거나 횟수만 반으로 줄여서 하라고 함!! * 출처 : 더쿠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박지성
나를 때린 수많은 선배들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얻어맞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선배의 몽둥이 세례를 견디어야 한다는 것,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폭력을 묵묵히 참아내야 하는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다. 잘못해서 맞는 것이라면 100대라도 기분 좋게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저 선배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이 선배가 감독한테 야단맞았기 떄문에 밤마다 몽둥이 찜질을 당해야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었다. 학창시절 셀 수 없을 정도로 선배들에게 두드려 맞으면서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후배들을 때리지 않겠다"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최고참 선배가 되었을때도 나는 후배들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후배들에게 진정 권위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기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에게는 자연스럽게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동안 내가 뛰어난 선배들을 직접 겪으며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어렸을적 어머니 심부름으러 오천원짜리 지폐를 들고 밖에 나섰다 잃어버렸던 날,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맞았습니다. 고작 한 대 맞은 것이라 그리 아프지 않았는데도 어머니는 그날 이후 며칠간 내게 무척 미안해했습니다. 축구부 합숙을 시작하면서 정말 정기적으로 매일 구타를 당하던 나를 보셨다면 아마도 까무라치셨겠죠. 박지성 어머니가 박지성에게 보낸 편지中 학창시절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맞고 들어와 혹시나 엄마 눈에 눈물이 맺힐까봐 친구하고 부딫혀서 그렇게 되었다며 겸연쩍게 씩 웃던 속 깊은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아버지 자서전 中 지성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대 그 중학교 축구부에서 며칠 훈련에 참석했다가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분명 학교에서 무슨일이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저기 멍자국이 많아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도 신경쓰지 말라고만 했다. 나중에서야 이유를 말하길 "아빠, 내가 단체 훈련 끝나고 따로 개인 훈련을 했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이 왜 너만 따로 훈련을 하느냐, 다른 선수들은 쉬고 있는데, 왜 유독 너만 튀는 행동을 하느냐면서 때리더라고요" 그후 박지성은 원래 가려던 중학교를 안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중학교로감 아버지 자서전 中 "아빠, 전 절대 수원공고엔 가지 않을거에요. 3년 동안 화성에서 생활 하면서 다시는 수원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지금 수원공고에는 절 괴롭혔던 사람들이 모두 뛰고 있단 말이에요" 수원공고 1학년 축구부 동기들도 지성이를 싫어했으니, 지성이의 마음고생이 어떠했으리란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수원공고에 다닐 당시 선배의 구타에 못이겨 몇몇 선수들끼리 팀에서 도망을 치기로 계획을 짰다. 당연히 박지성도 그 멤버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중 디데이 며칠을 앞두고 훈련 후 선배의 구타에 박지성의 팔이 부러졌다. 어쩔 수 없이 박지성은 합숙소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부상으로 인해 축구부 숙소 이탈 약속을 지킬수 없게 되었다. 수원공고 시절 지성이가 훈련을 마치고 집에왔는데, 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무슨일인가 싶어서 방문을 열어봤더나 인기척 소리에 후다닥 이불을 덮고 엎드려 있는 지성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그래? 어디 아픈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냥 좀 힘들어서.. 별일 아니에요" 아무리봐도 이상하다 싶어 이불을 들쳤더니 세상에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린 부분에 뻘겋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지성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확인하자, 온통 씨뻘건 멍투성이였다. 운동하는 선수들이라면 훈련 외에 구타와 체벌은 덤으로 따라다니는 부분이라 나 역시 알면서도 웬만해선 눈감고 못 본척 넘기기 일수였다. 그러나 그때 내가 직접 목격한 모습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당장 학교로 달려가서 지성이를 때린 사람을 붙잡고 마구 혼을 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부터일까, 지성이가 한국에서 축구를 했다간 선배들 등쌀에, 또한 줄서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의  사심에 의해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가끔 지성이는 이런말을 한다 "만약 내가 맞지 않고 축구를 배웠다면 지금 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박지성 축구센터를 세운 이유도 이때문이다. 더이상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축구를 배우기 보다는 더 나은 환경속에서 축구를 자유로이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박지성 축구센터를 통해 어린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을 차고 달리면서 희망도 함께 꿈꾸길 바란다. 차범근이 박지성 국가대표 은퇴 발표를 하고 난뒤 쓴글.. "지성이가 은퇴를 합니다. 아니 한다고 합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릎에 물이 많이 차는 모양입니다. 무릎을 너무 많이 쓴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것도 무리하게 어려서 부터.. 지난핸가. 지성이가 어딘가에서 스피치를 하면서 우리나라 처럼 맞으면서 축구를 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유독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 하던 최고의  선수를 30살에 은퇴시키는 안타까움 앞에서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오유 유소년 대회도 열고 자선경기도 열어서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하는 애들한테 다 기부하던데 자기가 맞으면서 축구를 했던 시절이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서 그런지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처럼 축구를 안 하길 바라는 마음이 엄청 큰거 같습니다.. 예체능계의 똥군기는 진짜 언제쯤 없어질까요
오늘자 골장면보다도 더 값졌던 손흥민의 마지막 퍼포먼스
마냥 축구를 잘한다고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치열하고 냉정한 승부의 세계와 상반되는 감정인 따뜻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선수를 더욱 사랑합니다. 우리가 지금도 박지성을 해버지라 부르고 어느누구도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손흥민은 필연적으로 박지성과의 비교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박지성보다는 저평가를 받아왔죠. 바로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조금씩 손흥민에게서 그 감동의 냄새가 납니다. 바로 오늘 있었던 에버턴과의 경기에서 그 감동을 조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감동은 손흥민이 해버지 빙의한 흥민턴을 보여줬을 때도 아니고 역사적인 토트넘 홈경기 5경기 연속골의 대기록을 작성했을 때도 아닙니다. 감동의 순간은 오히려 평범한 그래서 쉽게 놓치고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정규시간이 거의 종료된 후반 89분, 지난 경기에 이어서 또 다시 풀타임을 소화하며 2경기 연속 풀타임을 소화했습니다. 항상 체력적인 문제로 교체 1순위였던 손흥민이었기에 연이은 풀타임에 손흥민은 몹시 지쳐보였습니다. 그런데 추가시간 2분이 거의 끝나가는 상황, 산체스는 경기 종료가 다가왔음을 느끼고 공을 멀리 차버립니다. 공교롭게도 볼은 손흥민 쪽으로 흘렀고 몹시도 지쳐보였던 손흥민이 갑자기 전력질주를 하며 전방 압박을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그 압박은 이내 골키퍼에게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휘슬이 울립니다. 시종일관 손흥민을 잡았었던 카메라가 경기 종료 후 곧바로 손흥민을 잡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전방 압박 후 지쳐 쪼그려 앉아 있던 손흥민이 있었습니다. 1골 1도움에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손흥민에 찬사와 기쁨이 느껴져야 하는데 되려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공에 대한 집념과 열정이 고스란히 화면을 통해 감동으로 전달됐습니다. 팬들은 승리도 좋아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선수들이 얼마나 팀을 위해 열정을 가지고 뛰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승리는 그 열정 뒤에 따라오는 것이니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손흥민의 마지막 전방압박은 그가 보여줬던 수많은 원더골들 보다더 더 값지게 느껴집니다.
자신의 실수를 고백한 클롭 감독
16/17시즌 EPL 1R 최고의 빅매치는 아스날vs리버풀 경기였습니다. EPL을 기다려온 팬들에게 충분한 선물이 될 수 있는 경기력과 결과였습니다. 이 경기에서는 쟁쟁한 선수들의 플레이 뿐 만 아니라 위르겐 클롭 감독의 세레모니 역시 볼거리 중에 하나였습니다 랄라나의 역전골이 터진 후 위르겐 클롭 감독은 특유의 열광적인 세레모니를 보여줬습니다. 킹콩? 세레모니 이 후 안경까지 떨어뜨릴 만큼 격한 턴동작 ㅋㅋㅋㅋ 그리고 사디오 마네의 메시 빙의 골이 터진 후! 선수들과 함께 세레모니를 즐긴 위르겐 클롭 감독! 이 골로 리버풀은 아스날에 4:1로 크게 앞서게 됐습니다. 하지만 클롭 감독은 후에 여기에 자신의 큰 실수가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위르겐 클롭 (50, 내가 아주 큰 실수를 했어) "우리는 역전에 성공했고 놀라운 골들을 넣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 스스로가 선수들의 세레모니에 참여하는 크나큰 실수를 하게 됐어요. 인생에 있어서 한 두 번 정도는 있을 수도 있지만 이번엔 너무 이른 시간에 세레모니를 했어요." "그 세레모니로 모두에게 좋지 않은 사인이 가게 됐어요. 왜냐하면 모두의 마음에 '이제 끝났다'라는 생각을 만들게 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경기 시간은 30분이나 남아있었어요. 좋지 않았습니다." "관중들은 화가 나있었고 아스날은 싸우기 시작했어요. 그들의 성격을 보여줬고 1골차 까지 따라 붙었고 그제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죠." "압박은 있었지만 엄청난건 아니었어요. 힘든 과정이었지만 승리를 따냈습니다. 세레모니 안하고 못배길 만큼 멋진 골이긴 했어요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저렇게 3골 먹은 것에 대한 피드백을 스스로에게 하는걸 보면 이 감독의 끝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네요 ㄷㄷㄷ
군대실화) 본격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누군가가 제게 그러셨죠. "이 분이라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재밌게 쓰실 수 있을걸요?"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껄껄... 그 말. 정말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제가 한 번 써보겠습니다.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 나는 육군 출신이다. 육군이란 무엇인가. 밥 먹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운동뿐이고, 운동 중에서 '축구'와 '족구'에 환장하는 종족. 첫 번째로 동명동 메시, 서초구 히바우두, 달서구 호날두 등등... 전국에서 숨어있던 동네 고수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며. 두 번째. 축구라고는 맥주 한 잔 하면서 프리미어리그를 보며 입으로만 축구하는 남자들이 모이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태어나서 축구를 해본 적도 없는 부드러운 사내들이 모여 눈치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저 세 부류들 중 1~2번에 속했다.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다. 중학교 때 축구보다 먼저 '슬램덩크'에 빠진 나는 열심히 농구만 했고, 고등학교 때는 농구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반강제로 골키퍼를 맡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됐다. 국어국문학과.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 학과였고, 사지 멀쩡한 남자들은 체육대회 때 반강제로 축구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특히 내가 신입생이 됐을 때, 축구를 열심히 하며 체대생을 꿈꿨지만 부상으로 인해 축구 유망주를 접고 국문과에 입학한 예비역 선배 한 명과, 축구에 미쳐 학과 수업보다 축구를 더 사랑했던 선배 두 명이 날이면 날마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인원들을 모아 반강제로 축구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골키퍼를 열심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순히 과대라서 선배들에게 잘보이고 싶었던 나는 팔자에도 없는 다이빙을 열심히 하며 골키퍼를 했고, '너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며 축구 유망주를 꿈꿨던 그 선배는 시간날 때마다 나를 호출해 골키퍼 연습을 시켰다. 어찌 보면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부에서 배웠던 사람에게 배웠으니, 나도 축구부 시스템으로 훈련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방구석 입축구 전문가에서 국문과 골키퍼가 되었고, 선배들의 무수한 압박 속에 승부차기에서 두 골을 막아내며 국어국문학과가 공대를 꺾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입대한 군대. 그 중에서도 내가 나왔던 부대는 정말 공놀이에 미친 사람들 투성이었다. 군화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차에서 내린 행보관님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족구장에서 서브를 꽂아넣고 하품을 하며 출근하기도 했고, 육중한 몸놀림으로 '훈련이나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중대장이 안정환처럼 수비수를 농락한 뒤 세레머니를 하기도 했다. 축구를 너무 하고 싶어서 부대원들과 간부들이 사이좋게 삽 한자루로 언덕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정성스럽게 철근을 용접해 부대 내에 풋살 경기장을 만들었던 미친놈들의 소굴이었다. 그리고. 우리 중대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유망주로 불리다 불행한 사건에 휘말려 일반 육군으로 입대한 프로 선수. 소속팀과 이름은 밝힐 수 없다는 점. 심지어 그 사람과 동반입대한 친구는 대한민국 프로 씨름선수 출신이었다. 아무도 그 둘에게 개길 수 없었다. 그 선임들이 일병 때였다. 나와 2개월 차이가 났기 때문에 나도 일병이었고, 자주 붙어다녔다. 그 당시 중대에서 운동을 좋아하고 격투기 좀 배웠다 싶은 선임들, 간부들이 모두 그 씨름선수에게 "야. 나랑 씨름 한 판 해보자. 나도 운동 좀 했다." 라고 말하며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 선임은 넉살 좋게 웃으며 "에이. 진짜 다치십니다. 그럼 저는 프로 출신이니, 다리 하나를 들고 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샅바를 잡았고, 그 선임은 그렇게 중대의 모든 도전자들을 다리 하나로만 들어서 넘겨버렸다. 그 때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그 선임의 만두귀는 강렬했고,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 아닌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실전압축근육'은 모든 중대원들에게 경외감을 심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만두귀는 피해다녀라' 라는 격언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프로 출신 축구선수였던 그 선임. 군대는 전국 팔도에서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기에, 축구를 배웠던 사람들, 유학을 다녀왔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선임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프로 구단에서 훈련을 받고 경기를 뛰며 어느정도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그 선임. 미드필더로 이미 스무살의 나이에 1군에 출장한 진짜 '선수'. 티비에서 축구 중계를 할 때 나오던 그 선수.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물론 프로 선수였다는 것은 네이버에만 쳐도 다 나왔기 때문에 믿었지만, "제가 진짜로 하면 축구 재미 없어집니다." 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대대 축구대회에서 대대 최강 7중대를 상대로 우리 8중대 대표로 나왔던 그 선임은, 후반전 때 팀이 1대 0으로 지고 있자 "하아..." 라는 긴 한숨을 쉬고는 우리 골키퍼에서 상대방 골키퍼까지 혼자 공을 몰고 돌파해 여유있게 두 골을 때려박고 대대 체육대회에서 8중대를 우승으로 올려놓았다. 긴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그 선임을 쳐다보던 7중대장의 이마. 탈모가 시작된 그 넓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큼이나 그는 빛났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그는 호날두였다. 우리중대 호날두...호우... 그 날 이후 우리 중대는 소위 말하는 '짬순'으로 축구를 하던 룰이 사라졌다. 병장이라고 공격수만 할 수 없었고, 이등병이라고 수비수만 하지 않았다. 모든 포지션과 전술은 그 선임이 말하는 대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그 선임 옆에서 듬직하게 지키고 있던 고향만두가 생각나는 귀를 가진 씨름선수 선임의 포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기자 역사상 최강의 동반입대병들의 포스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선임들이 운동법과 축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모두가 경청했다. 사실 군대에 있으면서 어지간한 남자들은 몸 만드는 것과 축구에 목말라있었기 때문에 그 선임들이 하는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닌 '프로 씨름선수의 피지컬 훈련'과 '프로 축구선수의 기본기 훈련'이었다. 유투브에서 해도 솔깃할 만한 달콤한 조언들 아니겠는가. 그리고 축구 대회가 진행될 때면. "오우. 중대장님 나이스!" "아 그래? 헤헤 성호야 나 잘했어?" 일병이 엄지를 들고 칭찬하면 대위가 쑥쓰러워하며 고마워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야. 너는 축구 한 번 배워봐라. 가능성 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 신체 밸런스가 괜찮은데? 들배지기 하나 알려주까?" "알려주시면 제 한 몸 씨름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 선임들이 툭 뱉는 칭찬은 후임들에게는 '프로 선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엄청난 동기부여를 주었고, 거의 모든 중대원들이 주말만 되면 오전에는 씨름과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공을 들고 운동장을 누비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렇게 중대원들 몸이 점점 구릿빛으로 진해질 무렵. 나는 상병이 됐다. "어이. 랩쟁이." 가끔 씨름선수였던 그 선임은, 사단 대표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휴가를 받았던 나를 이렇게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다. "랩 한번 해보그라." "췍. 췍. 앰네ㅐ뤠눌내무랜ㅁ언ㅁ엉어단아ㅡㅏ 췍!" 그리고 부끄러움보다 만두귀의 공포가 더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씩 궁중 광대같은 생활을 하며 터미네이터들에게 예쁨을 받았고, 상병이 되고 그들이 고참이 됐을 때도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우리가 상병일 때, 대대에서는 또 체육대회가 열렸고, 축구대회를 위해 선임들은 중대원을 호출했다. "니는 공은 잘 못차는데 달리기가 빠르네. 골키퍼 하지 말고 측면 공격수를 해라." "잘못들었습니다? 저... 저는 공을 잘..." "닥치고 그냥 공 받으면 앞으로 툭 차. 그리고 뛰어. 누가 붙으면 어깨로 밀어. 그리고 슛을 때리던 패스를 하던 알아서 해. 쉽지?" "...그게 축구 맞습니까?" "야씨. 그럼 내가 농구선수냐? 너넨 다 기본기가 부족해서 여러가지 시키면 안돼. 하라는 것만 해." 그렇게 나는 왼쪽 공격수가 됐다. 그 선임의 전술은 매우 간단했다. 한 명 한 명 불러서 뭔가를 주문했는데, 다들 엄청 쉬운 것들이었다. "측면 수비수는 측면 공격수한테 무조건 공을 차. 받아도 그만 못받아도 그만. 오케이?" "중앙 수비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앞으로 뻥 차던가, 앞에 있는 나한테 주던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격수는 기다리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제가 공 올려드릴테니까, 발만 대시면 됩니다." -끄덕. 공격수를 맡았던 소대장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대 축구대회. 수비수에 있던 씨름선수 선임과 중앙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프로선수 출신의 선임, 그리고 '우리는 프로들에게 훈련받았다'는 자부심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던 중대원들과 간부들. 우리는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대대 최강이었던 7중대를 다시 만나게 됐다. 무난하게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결승전은 묘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애초에 우리가 연습한 것보다 7중대는 더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7중대장은 축구대회 전부터 쥐잡듯이 중대원들을 훈련시켰고, 결승전에서 축구선수 선임에게 무려 4명을 붙여 꽁꽁 싸매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축구선수는 일반 게임에서 진지하게 뛰면 안된다'는 주의로 중앙에서 패스만 뿌려주던 선임과 실력이 부족한 8중대원들, 그에 비해 악에 받힌 채 뛰어다니던 7중대원들로 인해 경기는 0대0으로 팽팽하게 전반전 막바지까지 흘러갔다. 그렇게 전반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패스가 최전방에 있던 소대장에게 흘러갔다. 센스있게 중앙에서 패스를 뿌려준 그 선임 덕분에 당시 중위였던 소대장은 마지막 슛을 날리게 됐고, 소대장은 힘차게 공을 찼다. -뚜둑! 공은 프리미어리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궤적을 그리며 아름답게 골대로 빨려들어갔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소대장에게 뛰어갔다. "와아!!! 소대장님!!! 대박!!!" 하면서 뛰어가던 우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힘차게 공을 찼는데... '뻥'이 아니라... '뚜둑'...?" 그렇게 생각하며 소대장 쪽을 쳐다보자 "와아!!! 내가 골이다!!!" 라고 말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소대장이 있었고, 축구선수 선임은 "아.. 십자인대 나갔네..." 라고 말하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종료되고, 소대장은 대대 엠뷸런스를 타기 위해 들것에 실려나갔다. "내 인생 최고의 슛이었어." 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우던 소대장은 그렇게 엠뷸런스의 구슬픈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대를 벗어났다. 그렇게 폭풍같던 전반전이 지난 다음 찾아온 후반전.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니까는 소대장님. 어휴. 나와 이 새끼들아!"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걸죽한 욕설과 함께 행보관이 공격수로 투입됐다. 장동건과 동갑이었지만 임하룡과 비슷한 연배의 얼굴을 소유한 행보관은 경기 시작부터 욕을 한 바가지로 퍼부으며 상대방 수비진을 농락했다. "나와! 다 뒤질래? 나와! 나오라고!" "7중대! 쫄지마! 얼굴만 늙었지 형이야! 쫄지말고 막아!" "아니 7중대장님 너무하십니다!" "행보관님 애들 겁주지 마세요!"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각종 예능축구들을 선보이던 행보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격진에서 시끄럽게 해준 행보관 덕분에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동안은 1:0이 유지됐다. 우리 수비진들은 평화롭게 산책을 했고, 예상 외의 행보관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10분동안만... "허억....허억... 아 씨바 힘들어..." 10분이 지나자마자 행보관의 체력은 거짓말처럼 급격하게 방전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위험한 한골 차 리드를 챙긴 채 아등바등 뛰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전이 끝나기 얼마 전. "어! 어! 씨바 비켜!" 축구선수 선임이 차올린 공이 정확히 행보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팡! -우당탕! 그 공은 정확히 행보관의 발등에 걸렸다. 무려 오버헤드킥. 행보관은 그 짧은 순간 육중한 몸을 띄워 공중에서 공을 차냈고, 공중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그의 무거운 몸은 중력과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어..? 어...?" "와아아!!!!!! 행보관님!!!!!" 우리는 믿을 수 없이 멋진 골에 놀란 채 환호하며 흙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행보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야! 야! 오지마! 이 씨바 오지마! 잠깐만! 진짜 야!" 행보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우리들은 행보관 위로 올라타며 기쁨의 세레머니를 했고, 세레머니가 끝난 후 행보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못했다. "야. 소대장님 태우고 간 엠뷸런스... 복귀했으면 일로 오라그래라...빨리..." 그렇게 방금 부대로 복귀해 체육대회를 즐기고자 했던 의무병과 운전병은 다시 들것을 들고 뛰어왔고, 날렵했던 소대장과는 달리 100키로에 가까웠던 행보관을 들기 위해 들것에는 4명의 장정이 달라붙었다. -웨용 웨-용 웨-용 그렇게 행보관은 떠나갔다. 허리가 나갔다며... 엠뷸런스는 오늘따라 더욱 구슬프게 사이렌 소리를 두 번이나 내며 초가을 연병장 바닥에 타이어자국을 남긴 채 떠나갔고, 그렇게 우리 중대는 대대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 시발 간부가 둘이나 실려간 팀을 어떻게 이겨..." 오늘따라 더 휑해보이는 이마를 빛내며, 7중대장은 절규했다. 그렇게 요란한 금요일이 지나고, 주말이 지난 후. 행보관은 허리에 복대를 찬 채 복귀했다. '앞으로 축구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소대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십자인대 파열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우리 중대장. 기아 타이거즈의 광팬이며 사회인 야구단에서 오래 활동했던 우리 중대장은 "축구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다치냐. 당분간 축구는 금지한다." 라고 말하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야구 글러브 10개를 부대로 주문했다. 그렇게 열심히 축구를 배우던 병사들과, 전직 프로 축구선수, 전직 씨름선수는 모두 4번타자를 꿈꾸며 배트를 휘둘렀고, 중대장은 매주 주말 환하게 웃으며 글러브를 들고 우리를 집합시켰다... ------------------------------끝 이상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재미는 음... 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 주세요!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