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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툰 - 노잉이와 함께하는 생활 속 발견!] #14화 - 캐릭터 산업 편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는 캐릭터 산업!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캐릭터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포토툰으로 함께 감상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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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2021] 게임 프로모션 애니메이션, 어떻게 만드나요?
스튜디오뿌리는 2015년 설립되어 게임 프로모션 애니메이션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왔다. 지금까지 <메이플스토리>, <던전 앤 파이터>, <에픽 세븐> 등 여러 굵직한 게임의 프로모션 애니메이션을 담당했다. 게임 프로모션 애니메이션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질까? 애니메이션 발주 전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제작 과정에서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 스튜디오 뿌리 장선영 대표는 상세한 2D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설명하며, 원하는 영상을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게임 회사가 어떤 요소를 중점적으로 확인해야 할지 안내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강연자: 장선영 소속 : 스튜디오뿌리 대표 및 애니메이션 기획, 제작 총괄 이력: ▲ <공룡 메카드> 기획 ▲ <스쿠비두>, <벤처 브라더스>, <크루즈> 등의 CM, TV 시리즈, DTV 라인 프로듀서 # 게임 프로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데, 뭘 준비해야 할까요? 먼저 장선영 대표는 애니메이션 발주 전 게임 회사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을 설명했다. 발주 전 체크리스트는 육하원칙으로 생각하면 편하다. 언제까지 영상이 필요한지, 어디에서 틀 것인지,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예산이 있는지 상세히 설명할 수 있다면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작업 가능 여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 회사는 어떻게 찾아봐야 할까? 한국에 있는 2D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는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주로 어떤 나라에서 발주를 받느냐와 그림체로 나뉜다.  장선영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주로 발주를 받는 나라에 따라 애니메이션 회사의 작업 공정이 다르기 때문에, 해당 회사가 어떤 나라와 주로 작업하느냐를 확인해야 한다. 장선영 대표는 직접 연락해 알아보는 것이 좋다고 언급했다. 두 번째는 그림체다. 그림체는 삽화체와 만화체로 나뉜다. 8등신 캐릭터에 현실적인 움직임으로 연출하는 것이 삽화체다. 데포르메가 되어 있고, 표현이 과장된 그림체를 만화체라고 한다. 두 가지 그림체를 같이 작업하는 회사는 드물어, 해당 게임의 콘셉트에 적합한 그림체로 작업하는 회사를 찾는 것이 좋다.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제작자 협회', '한국애니메이션 산업 협회'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찾을 수 있다. 나무위키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탭을 참고해도 좋다. 혹은 레퍼런스로 찾은 영상의 제작사를 찾을 수도 있다. # 본격적인 제작은 어떻게 하나요? 컨펌은 뭘 해야 하죠? 제작사를 결정하고 계약이 완료되면 이제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애니메이션 제작 공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기획(프리 프로덕션) ▲메인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 → 메인 → 포스트로 컨펌 단계를 한 방향으로 밟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수정 사항에 대한 의견을 취합하여 한 번에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장선영 대표는 컨펌할 부서가 여러 개 있더라도, 의견을 모아 전달할 수 있어야 수정사항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 단계는 ▲톤앤매너 결정 ▲라인, 컬러 설정 ▲스토리보드 애니메틱 작성으로 나뉜다. 먼저 톤앤매너는 표현하고자 하는 분위기에 맞게 연출 기법과 색감을 정하는 작업이다. 장선영 대표는 스튜디오뿌리가 제작한 PV를 예로 들어 톤앤매너를 설명했다. 가령 <제 5인격>의 PV는 게임의 공포, 스릴러, 미스테리한 분위기에 맞춰 차가운 색감과 수평이 맞지 않는 앵글을 사용해 불안정한 느낌을 줬다. 톤앤매너를 결정하면 설정 작업에 들어간다. 먼저 라인 설정이다. 일러스트만 두고 작업을 할 경우, 사람마다 디테일의 정도나 인상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채색하지 않은 일러스트를 통해 기준을 잡는 과정이 라인 설정이다. 여기서 게임 회사는 인물의 비율이나 인상, 디테일의 정도, 라인의 두께 등을 컨펌하면 된다. 배경 디자인도 라인 설정을 하는데, 인게임의 배경 디자인이 명확한 경우 배경 설정 컨펌은 건너뛰기도 한다. 라인 설정이 완료되면 컬러 설정 작업에 들어간다. 여기서 채색이 적절한지 컨펌을 받는다. 다만 이 단계에서 라인 설정에서 이미 정했어야 할 디테일 수정을 요구하면 작업이 어그러질 수 있어, 가능하면 컬러에 관해서만 컨펌을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최종 화면에 나올 키 배경에 관해서도 컨펌을 받는다. 키 배경을 기준으로 나머지 배경을 작업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수정했으면 하는 부분을 자세히 전달해야 한다. 키 배경까지 결정되면 이미지보드(콘셉 아트)을 만들어 전체적인 톤, 분위기, 라이팅이 괜찮은지 확인한다. 다만 인 게임 배경과 톤이 큰 차이가 없다면 이미지보드는 건너뛰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스토리보드 작업이다. 이어질 모든 작업은 스토리보드를 기준으로 하므로, 의심스러운 부분은 이 단계에서 모두 해결하는 것이 좋다. 여기까지 컨펌이 완료되면 기획 단계는 끝이 난다. 메인 프로덕션은 실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과정이다. 먼저 전체 영상의 톤을 볼 수 있도록 '우선씬', '효과씬'을 만든다. 우선씬은 우선으로 작업할 컷이라는 뜻으로, 화면의 전체 톤을 볼 수 있는 장면을 정해 먼저 만드는 것이다. 보통 장소별로 지정하거나 해당 애니메이션을 대표할 수 있는 장면으로 설정한다. 광고 일정 때문에 먼저 필요한 컷을 지정할 때도 있다. 효과씬은 우선씬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보통 같은 효과를 여러 컷에서 동일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는 씬을 먼저 작업한 후, 나머지 컷의 연출을 여기에 맞춰 진행하는 것이다. 또한 캐릭터가 중요한 작품일 경우 얼굴이 크게 나오는 컷을 지정해 컨펌을 받기도 한다. 우선씬과 효과씬을 지정하면 먼저 해당 씬을 먼저 작업해 촬영한다. 우선씬 컨펌이 완료되면 나머지 애니메이션은 여기에 맞춰 작업한다. 촬영이 모두 완료되면 수정에 들어가는데, 가능하면 첫 번째 납품 영상(TK1)에서 모든 수정내용을 적는 것이 좋다. 메인 프로덕션이 마무리되면 마지막으로 포스트 프로덕션에 들어간다. 애니메이션은 불필요한 씬을 만들어 편집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포스트 프로덕션에선 주로 사운드 관련 작업이 이루어진다. 성우 녹음은 선 녹음과 후시 녹음이 있다. 음성 녹음은 주로 후시녹음을 사용한다. 영상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후시녹음과 BGM 작업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게임 회사는 초수별로 컷 내용과 BGM, 효과음에 반영이 되었으면 하는 사항을 상세하게 작성해 애니메이션 회사로 전달한다.  완성된 사운드와 영상을 합성하면 애니메이션 제작이 끝난다. #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한 시대 마지막으로 장선영 대표는 2D 애니메이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최근 트랜드는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 ▲디지털 전환과 3D 기술 ▲웹툰, 게임 기반 애니메이션의 활약이다. 먼저 유튜브, 틱톡, 넷플릭스 등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짧지만 다양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도타 : 용의 피>처럼 특정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게임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배경이나 그리기 힘든 부분을 3D로 만드는 등 애니메이션 제작에 3D 기술을 활용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장선영 대표는 생각하는 것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한 시대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장선영 대표는 "결국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의도와 사람들"이라며 "저희에게 믿고 일을 맡겨주신 분들과 저희 영상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좋은 협업을 이뤄 함께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고 언급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