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alg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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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병을 안고 산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오늘은 중간에 이비인후과를 다녀왔다. 비경이 아닌 내시경으로 진료하는 것은 해부수업때 들은 이후로 직접 경험하는건 처음이었다. 내시경으로 본 내부는 정말 심란했다. 나도 의사도 심란해했다. 핑크색으로 보여야 할 점막은 과민반응을 어찌나 많이 했던지 거의 암세포 수준으로 하얗게 변해있었고 그 표면은 닭껍질같았다. 조만간 비중격 수술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부모님과 내렸다. 얼마 전에는 아산병원에 다녀왔다. 의사가 염증수치가 증가한 것을 보고, 이상한 건강보조제 먹는거 아닌지 의심했다. 나는 단순히 운동을 최근에 시작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피로감이 증가할 때면 늘어난 염증수치 때문이라며 스스로 합리화 하고 싶어진다. 아는 애가 발작을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응급실 가서 4sq를 찍었다고 한다. 공황장애에 우울증, 발작이 겹쳤으니 병동치료 대상이지만 금전적 부담 때문에 통원치료를 했다고 한다. 남자친구가 간호해주기로 했고, 그 애의 우울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족들이 모두 정신과 치료를 받는 조건으로 집으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기로 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그 애의 트위터에서 읽은 내용이다. 나는 이 애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자 버리고 두 다리, 세 다리를 걸치고 다니다가 성병을 옮아서 아직까지 산부인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발작은 항울제의 불성실한 복약 때문에 왔다는 것을 쉽게 짐작하고 있으며, 집안 문제는 그 애의 패악질에 대한 좋은 방패막이로서 여러번 작용해 왔다는 것을 안다. 연극 때 갈라섰던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우리의 작업에 자꾸 자기가 아는 사람을 끼워넣으려 했다. 그 사람이 아는 사람이란즉슨 홍대 디자인과, 브뤼셀 왕립 대학 어쩌고, 현직 피아니스트 어쩌고였다. 정작 그사람은 멘사 회원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고시낭인이었다. 우리의 방향을 존중하기 보다는 권위에 기대는 모습에 결국 갈라섰다. 최근에 그 사람이 연애를 시작한 모양이다. 매일같이 페이스북에 애인의 사진을 올리며 그 분의 미모를 찬양한다. 나는, 아니 아마도 그 사람의 페이스북을 보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 사람의 글들로부터 그 사람이 '나는 이런 대단한 사람과 연애한다' 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것이다. 그 사람의 애인은 예쁘장하다. 내 눈에도 보일정도로 전신에 대규모 공사를 한 사람이다. 그 여자도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보며 한 편으로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조금 슬퍼졌다. 누구나 병을 안고 살고, 그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구나 자기 병에 대해 이야기 할 시간이 온다. 나는 그 때, "그래서 어쩌라고" 되받아치고 싶어지는,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소비해 버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사람이 사람에게 실망을 느끼는 순간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사람도 결국 이런 사람이네" 혹은 "이 사람도 결국 평범하구나" 만큼 씁쓸한 실망도 없을 것이다. 나는 어떤 이에겐 일부러 이런 실망감을 유발시키기도 했고 어떤 이에겐 원하지 않는 순간에 이러한 평가를 받아보기도 했다. 사실 나는 평범하니까, 어떠한 평가를 받더라도 그것이 나의 평범함을 감추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작은 병에 기대어 나를 유별난 개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욕구를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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