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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리턴과 오자병법

대한항공의 땅콩리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뉴욕 JFK 공항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 비행기 1등석에 타고 있다가 마카다미아 너츠를 봉지째 내 놓았다는 이유로 승무원을 큰 소리로 나무라고, 사무장에게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지시해 이미 비행을 위해 게이트를 닫았던 비행기가 되돌아가 사무장을 하선시켰다. 항공사 오너라고 할 지라도 비행기에 탄 이상 한 명의 승객일 뿐인데 서비스를 과도하게 질책하고, 심지어 비행기를 되돌려 사무장을 내리게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월권 행위다. 승객들을 안전하게 이송해야 할 책임이 있는 기장은 운항 내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이것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조현아 전 부사장은 온갖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그런데 일이 점점 더 커졌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물론 조현아 본인도 언론에 나와 사과를 했지만, 짜여진 각본대로 진행한 사과 따위로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항공법 위반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면서 증거를 인멸하려 한 시도가 계속 포착되었다. 각 신문 1면에 사과문을 개재했지만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면서 더 큰 비난을 들었다. 여기에 조현아 전 부사장의 동생인 조현민 전무는 이번 사건이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대한항공 임직원 모두의 잘못이라며 불난 집에 스스로 부채질을 하고 있다. 밖에서 이 사건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대한항공이 왜 이렇게 악수를 계속해서 두고 있는지 의아할 만 하다. 애초에 매뉴얼대로 서비스한 직원에게 막말을 하고, 사무장을 하선시키고자 비행기를 되돌리고, 사무장과 승무원의 존엄성을 짓밟은 것은 물론 동승한 모든 고객들의 시간을 빼앗았고, 기장에게 불필요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주어 안전운전을 위협한 것 등 항공사 부사장으로써는 할 수 없는 행패를 부려 당사자와 이용객들에게 죄송하다고 자신의 잘못을 확실하게 짚어가며 진정성 있는 사과 한 번이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아마 조현아 전 부사장은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전혀 모르고, 자기가 왜 수사를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왜 이렇게 비난을 받고 있는지도 전혀 모를 것이다. 그 사람에게 대한항공은 자기 가문의 소유물이며 자신이 이어받을 집안의 재산이며, 당연히 대한항공에서 일하는 임직원들이란 자기네들의 경영활동에 필요해서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고용하는 머슴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대한항공은 자신의 왕국이고, 한진그룹은 아버지와 가문의 제국일 것이다. 왕인 내가 내 왕국에서 머슴들을 벌 주고, 비행기를 좀 돌렸다 한들 무엇이 잘못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비단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영자가 노동자와 고객을 하찮게 대했기 때문에 잘못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왕조 시대에 자기 왕국이라고 할 지라도 자기 나라의 근간인 백성을 혹독하게 대해선 안되기 때문에 잘못이다. 중국역사에서 전국시대 초기에 조현아 전 부사장과 정반대의 리더쉽을 보여준 무패의 장군이 있었다. 그는 위衛나라에서 별 볼일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유학과 묵학을 배웠다. 이후 노魯나라, 위魏나라에서 장군으로, 초楚나라에서는 재상의 지위까지 올라 부국강병을 이끌었고 특히 위나라에서는 후에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 세웠다. 그는 바로 오자병법을 남긴 오기다.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이야기>는 저 유명한 손자병법에 비견할 수 있는 오기(吳起)와 오자병법을 쉽게 풀어 소개한 책이다. 동양은 그 동안 유학이 승자의 학문으로 사상과 역사를 지배하여 제자백가의 다른 사상들은 홀대를 받았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묵자는 더 심했다. 오기와 오자병법 역시 묵자의 줄기를 잇고 있어 손자병법과 달리 그 동안 제대로 조망받지 못했지만 오자병법은 손자병법과는 그 근저에 깔린 사상과 병법에 대한 관점, 프레임이 달라 연구 가치가 더 크다고 역설한다. 유학과 묵학을 배워 자신만의 병법을 만든 오자병법은 결코 위기를 한 순간에 만회할 수 있는 필살의 비법 같은 것이 아니다. 도리어 너무나 상식적인 진리지만, 그렇기 때문에 기나긴 역사 속에서 아무도 제대로 하지 못한 방법이다. 그 방법이란 먼저 군대를 만들기 전에 나라 살림을 부강하게 하여 상비군을 만들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닦는다. 그리고 이 상비군을 사람들의 특성에 따라 분류해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켜 정예병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정예병들은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능력에 따라 대하고, 공을 세운 자에게는 반드시 그 경중에 맞는 보상을 한다. 이 것이 전부다. 오기가 살았던 시대는 춘추시대가 저물고, 전국시대를 맞이하던 때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전쟁의 양상이 서로 달랐다. 춘추시대에는 서로 약속을 정하고 너른 평야에 각자 진을 친 후 전투를 벌였다면, 전국시대는 게임의 룰이 파괴된 전면전을 벌이던 시기다. 그리고 각 국은 상비군보다는 필요에 따라 귀족들에게 부대를 빌려서 전쟁을 했는데, 이때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주로 생업에 종사하던 농민들을 징발해 군인으로 삼았다. 그리고 귀족인 자신들은 전차를 타고, 일반 병사들에게는 적당히 장비를 주고 보병으로 삼아 전쟁을 벌였다. 그 수가 몇 만에 이른다고 해도 당연히 제대로 훈련을 받고 진을 짜서 싸울 수 있는 군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오기는 바로 이런 전쟁의 틀을 바꾼 사람이다. 그는 상비군 나아가 정예군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정예병 5만이 있다면 오합지졸 50만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위나라에서 자신이 키운 몇 만의 정예병으로 진나라의 수십만 대군을 격파한다. 이 정예병을 키우기 위해서는 상비군이 생업과 가족에 대한 염려 없이 마음놓고 훈련에 임할 수 있는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부국강병을 스스로의 병법의 근본으로 삼았다. 그런데 오자병법, 그리고 오기의 진면목은 이런 부국강병의 룰이 아니다.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시각, 즉 백성을 사랑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대하는 마음이다. 오기는 왕의 신하로써 명예를 중시했으나 결코 귀족들이나 국가라는 추상적인 집합체를 섬기지 않았다. 그는 바로 밭을 갈고, 칼과 창을 들고 싸우는 한 명 한 명의 국민과 병사를 진심으로 대했다. 실제로 오기는 위나라에서 장수로 있으면서 전선을 오갈 때 말을 타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자신의 식량을 짊어지고 행군했다. 막사 역시 일반 막사에서 병사들과 함께 취침하고, 전투가 벌어지면 가장 위험한 곳에서 싸웠다. 결코 자신은 편안하고 안전한 자리에 앉아 남의 귀한 생명을 사지로 몰아넣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솔선수범하는 자세와 더불어 백성들과 병사들을 바로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위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기의 병사들은 힘든 훈련과 엄중한 명령 때문만이 아니라도 오기 장군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울 수 있었다. 오기는 초나라에서 재상을 할 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병사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주기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귀족들의 기득권까지 제한하는 법을 추진한다. 여기에 오기에게 반감을 품은 귀족들이 결국 모의해 오기를 척살하고 만다. 모두가 자신이 사는 나라가 부강해지길 바란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즉각적인 이익과 대치된다면 대부분은 이를 반대한다. 멀리보고 성공한다면 나라가 더 부강해지고 영토가 넓어져 결국 스스로에게도 더 큰 이익을 줌에도 말이다. 병법가이자, 재상이자, 개혁가였던 오기는 결국 그렇게 생을 마감한다. 무엇보다 나라의 근간을 백성으로 보고 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부국강병을 이끌고 전국시대 최강의 군대를 이끌었던 오기. 그의 리더쉽을 보면 기업을 자신의 소유물로 보고 특권의식에 빠져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모두 자신의 손 아래로 보고 막 대하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정확히 반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행태는 비단 대한항공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재벌 그룹들이 이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재법 그룹들은 노동자를 결코 기업의 근간으로 보지 않는다. 핵심인재 몇몇을 빼면 언제든 대체 가능한 자원의 일부로 치부할 뿐이다. 크게 보면 우리나라 역시 그렇다. 각각의 왕국을 거느린 재벌사들을 전국시대 귀족으로 본다면 현재 제왕처럼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철저하게 귀족(재벌) 중심적인 정책을 펼치며 나라의 근간인 서민들의 등골을 빨아 먹고 있다. 끊임 없이 각종 세금을 올리면서 기업의 세금은 도리어 줄여주고, 약속했던 복지들은 전부다 없던 일로 공약을 포기하면서, 나라 안팎으로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이번 땅콩리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비난 여론도 사실 정부와 재벌들에 의해 계속 코너로 몰리고 있는 서민들의 나름의 저항의 표시일 수 있다. 항공사 오너라는 이유로 모두가 이용하는 항공기를 마치 자기 호주머니 속의 비행기 다루듯 하고, 자기 직원에게 고성과 막말을 퍼붓는 비상식적인 행태가, 사실 그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어 왔음에도 크게 부각되지 않다가 이 세상이 정말 자기들을 버리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자각하고 분노한 것일 수 있다. 이럴 때 조금이라도 현명한 기업이나 국가의 경영진이라면 이런 신호를 즉각 알아채고 설령 진심으로 노동자와 국민들을 어루만져 주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척 쇼라도 하고, 조금 더 나은 조건으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연 그런 것을 알아차리고, 이런 신호를 받아들여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위정자나 정치가가 있을까 의문스럽다. 오자병법을 다룬 <오기, 전국시대 신화가 된 군신이야기>는 전국시대 병법에 대한 고전이지만 동시에 국가경영과 부국강병을 논하는 정치서이기도 하고, 경영서적이기도 하며,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서이기도 하다. 오기의 원치과 태도를 시대를 초월해서 배우고 익힐 점이 있고 특히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오늘날의 정치경제 현실과도 맞닿은 점이 많다. 게다가 이 책은 다른 고전 텍스트들처럼 딱딱하게 원문 텍스트를 나열하며 뜻을 해석하는 고리타분한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자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논어를 펼친다면 백이면 백,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야 부터 시작한다. 공자가 누구였고, 그의 시대가 어떠했으며, 그가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제자들과 함께 해서 그의 사후 유학이 어떻게 제자백가를 평정하고 중국에서 중심 학문이 되었는지 등의 배경 설명이 없고, 공자의 텍스트를 당시의 맥락과 현대의 맥락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현대의 삶과 연결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오자병법의 텍스트를 충실하게 따라가기 보다는(사실 유실된 부분이 많다고 한다.) 오기가 살았던 시대에서 부터 오기의 삶과 전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후, 비로소 오자병법 텍스트로 넘어간다. 텍스트 역시 위무후와 오기의 문답들을 선별하여 보여주면서 그에 대해 현대적인 어투로 논평을 가한다. 그 점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것이다. 오자병법을 더 깊이 읽기 위해서는 또 다른 책을 찾아 공부할 필요가 있다. 물론 당신이 오기의 진심과 시대를 모순을 더 파고들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말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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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공이 느껴지는 독후감이군요. 저도 병법에 관심이 있는지라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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