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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독서

"오라! 내 서재로, 책이 네 슬픔을 다스려주리라." Come, take choice of all my library, and so beguile thy sorrow.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소개 읽기 <오셀로> : http://goo.gl/5QydeC <햄릿> : http://goo.gl/6CqwyZ <맥베스> : http://goo.gl/d4OnbM <리어왕> : http://goo.gl/UBRr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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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약하면 진짜 죽던 시절.gif (스압주의)
1961년, 머리카락을 가발 공장에 팔기 위해 줄을 선 여성들의 모습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를 같이 온 어머니가 달래고 있다. 1961년, 당시 서울역 플랫폼 모습.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6.25 전쟁을 겪지 않은 첫 세대인 1954년생이 초등학교 (당시 명칭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들의 손을 잡고 교정으로 향하는 모습. 1962년 경상남도의 장날 풍경 짐을 머리에 이고 장터로 향하는 사람들 강원도 춘천에서 칡뿌리를 말리는 주민의 분주한 모습 1962년, 대구에서 열린 우시장 1962년, 모내기가 한창인 서울시 성동구 논현동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1동, 논현2동) 1963년, 평범한 남해 어촌의 풍경 방과 후 초등학생들이 들판으로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고 있다. 집의 재산인 소를 배불리 먹이고 잘 데리고 오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 당시 어린 학생들에게는 중요한 임무였다고 한다. 1964년,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의 턱걸이 연습이 한창인 교정  하나라도 더 해내려는 모습의 학생. 달리기를 겨루며 체육 활동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방영되었다. 고무신이 닳을까봐 맨발로 운동장을 달리는 학생들과 응원하는 친구들. 영유아사망률 1000명 당 218명. (2021년 세계 최악의 영아사망률을 기록하는 우간다의 2.3배) 신생아 5명 중 몸이 약한 1명은 첫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시대였다.  아이들에게 야외 활동을 장려하여 체력과 면역력을 기르자는 표어가 방송되었다. 1964년, 한국전력 직원들이 경상북도 영양군에 전봇대를 설치하고 있다.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가정까지 전기가 들어가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보릿고개 넘기기 운동'이 한창인 시골의 분주한 모습 전국적으로 문맹 퇴치를 위한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북 영덕군에 내려온 대학생들이 글을 모르는 주민들을 모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전국적으로 늘상 문제가 되었던 쥐떼 해결을 위해 '쥐잡기 운동'이 시작되었다. 잡힌 쥐를 보고 속이 시원한듯 웃는 어른들 1965년, 춘천 수력 발전소가 완공되었다. 산 능선에 올라선 시민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당시 고등학교의 수업 모습 교련 시간에 M1 총기 분해조립, 맨손으로 쇠봉 타기 연습을 하는 고등학생들. 전국에 큰 비가 내렸다. 잠긴 집과 들을 보고 망연자실한 사람들, 머리를 다친 동생을 돌보는 형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중부지방에서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청주 시민들이 힘을 합쳐 복구에 나서고 있다. 흙을 퍼내는 아버지들과, 갓난아이를 내려놓고 삽을 들어 복구를 돕는 어머니들 범람 위기의 청주 무심천에서 청주공업고등학교 학생들과 교사, 시민들이 힘을 합쳐 제방을 손보고 있다. 교복을 입은 청주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삽을 들고 수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 필리핀이 2배 이상 앞서던 시절,  거액을 들여 초빙한 필리핀 경제사절단이 내방했다. 일렬로 도열한 한국 관료들의 90도 인사와 환대에 경제사절단 단장인 필리핀 농림상 로드리게스와 필리핀 사절단이 흡족하게 웃고 있다. 1965년 1월,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으로 다루었던 첫 1인당 국민소득 세자리 돌파 (110달러) 1961년 70달러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낮았던 1인당 국민소득의 증가를 새해 첫 뉴스로 꼽았다.  지나치게 과장된 그래프가 어이없지만 당시에는 매우 큰 소식이었던 모양이다. 1965년, 한국은 방글라데시를 2달러 차이로 처음으로 제쳤다.   파독 광부 예비소집에 모인 인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을 듣고 있다. 서독 탄광으로 떠나기 위한 광부 모집에 최종 합격한 20대의 젊은 광부들 독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 배웅하는 가족, 지인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올린 파독광부들이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다 한복을 입고 가족들을 향해 손수건을 흔드는 파독 간호사들 이륙 준비를 하는 여객기. 공항에 모인 시민들과 가족들이 파독 광부, 간호사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손을 흔들고 있다.  독일에 도착한 파독 간호사들이 거동이 불편한 독일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40도가 넘는 온도, 지하 1200미터가 넘는 탄광의 끝자락에서  11시간의 작업을 끝마치고 나온 파독 광부들 당시 파독 광부 평균연령은 25세, 파독 간호사 평균연령은 23세였다.  (출처 :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 국군의 남베트남 파병이 결정되었다. 만 38세의 나이에 맹호부대 사단장 겸 주월한국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채명신 소장(당시 38세, 6.25 참전)이 수통과 탄띠를 착용하고  출발 전 현충원에 묵념을 올리고 있다. 수도사단 맹호부대 사단장 - 소장 채명신 (당시 38세, 6.25 참전)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사단장 - 소장 이소동 (당시 38세, 6.25 참전)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여단장 - 준장 이봉출 (당시 39세, 6.25 참전) 1965년, 파병을 위해 도열한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맹호부대) 병력 전선으로 떠나는 제 9보병사단 (백마부대) 장병들의 결연한 표정 부동자세의 해병대 수색대 병사들 서울 시가지를 통과하는 파병 장병들을 향해 기도를 올리는 노인과  부채질을 해 주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이화여대 총장 김옥길 여사와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파병 장병들을 위해 쓴 문구가 방송되었다.  '조국 떠나 만릿길  온 겨레의 마음이  그대들의 방패가 되리  아세아 (아시아)의 최정예,  우리 국군 가는 길  오직 승리뿐이다.' 베트남 전선으로 향하는 국군 수송을 위해 36개편의 열차가 동원되었다.  수송 열차가 지나는 역, 마을 어귀마다 장병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시민들 대구역에서 잠시 정차한 수송열차. 국군 장병을 위해 기차역에서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중년 여성 한 병사가 역까지 배웅을 나온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산항에서 승선 전, 부하들을 향해 악수하는 중대장을 바라보는 해병 소위 이학철 (당시 23세) 파월 1진 해병 청룡부대 제3대대 9중대장 김종세 대위 (중앙, 당시 28세),  박준교 상병 (왼쪽, 당시 22세), 정명국 일병(오른쪽, 당시 21세)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종세 대위: "월맹 정규군 (북베트남 정규군)이 밀림에서 미군도 위협할 만큼 맹위를 떨치고 있고, 국군 장병들에 대해서 '단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 할 것'이라고 비방하고 있지만   산악에서 단련된 소부대 전술, 체력과 같은 신체능력, 실제 전투에서의 호전성은 우리 병사들이  크게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코 두렵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않습니다." 마지막 승선 인원인 맹호 혜산진부대 소속 소대장 소위 최정길(당시 24세)이  부산시 부시장을 비롯한 환송 인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당시 국내 최대의 여성단체 한국 부인회 회원들이 맹호부대 장병들을 환송하고 있다. 떠나는 장병들을 환송하는 부산 시민들과 수송선 난간을 가득 메운 장병들. 출발하는 수송선. 부산 시민들의 응원에 군가로 화답하는 장병들 멀어지는 부산항을 바라보는 해병 병사의 모습 1인당 국민소득 110달러 시절. 성대한 위문공연도, 거창한 위문품도 없었지만  시민들은 장병들의 무사귀환을 진심으로 빌어주었다. 첫 국내 기술로 만든 라디오가 시판되었다. 납땜질에 열중하는 어린 여공들 '벌거벗은 산에 나무를 심자' 식목일에 나무를 심기 위해 산으로 향하는 국민들. 남녀노소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가을 날, 고등학생들이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동장 흙바닥 위에서 유도 대결을 펼치고 있다. 1967년, 제2회 전국학생씨름대회. 씨름 프로대회가 존재치 않던 시절,  (씨름 프로대회는 80년대) 전국 고등학교에서 힘 좀 쓴다는 학생들이 모였다.  다른 지역 학생들의 경기를 살펴보는 서울 고등학생들. 치열한 결승전, 경북 영신고등학교 학생이 우승을 차지했다. 강원도 삼척시에 유례없는 대폭설이 내렸다. 지붕에 쌓인 눈을 치우는 주민들. 생활 체육으로 나날이 인기를 더해가는 씨름이 소개되었다. 씨름 대회를 구경하는 수많은 인파들. 국군 장성들이 베트남 전선을 방문했다. 전쟁터에서 경계근무 중인 해병 병사의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며 웃는 육군참모총장. 주월 맹호부대 병사들이 시멘트로 만든 역기로 밀리터리 프레스를 하며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 대다수가 임관과 동시에 베트남 전선으로 파병될 ROTC 5기생 생도들이  대간첩작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교관으로부터 산악 게릴라전 교육을 듣고 있다. '웃지않는 한국 해병들' - 미국 UPI 통신 보도 1967년, 짜빈동 전투에서 중대 병력으로 월맹 정규군 정예 1개연대 병력과  (호치민 휘하의 월맹군 제2사단 1연대) 맞붙어 승리한 해병 11중대 장병들이  미군의 초청을 받아 계단 위에서 미군의 위문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선글라스를 낀 정경진 대위 (당시 28세, 중대장)와 김용길 중사 (좌측, 당시 26세),  중앙에서 카메라를 노려보는 어느 청룡부대 11중대 병사가 카메라에 담겼다. 서울 운동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복싱 세계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인 '철권' 김기수 (당시 27세)가 도전자 프레디 리틀 (미국)과 15라운드까지 맞붙고 있다. 이를 악물고 덤비는 김기수의 기세에 밀리는 프레디 리틀 기립박수로 환호하는 시민들 타이들 방어에 성공한 김기수(당시 27세)의 기념촬영 1968년, 부산시 풍경 1968년, 서울의 모습 하늘에서 본 1968년 서울 첫 개통한 아현고가의 모습.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다니고 있다. 1969년, 한강철교 복구공사, 작업에 열중하는 현대건설 노동자들의 모습 서울과 부산을 잇는 한반도 최초의 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공사 현장의 모습 부족한 중장비 대신 인부들이 달라붙어 바위를 깨고 길을 닦고 있다.  1969년, 나룻배들이 경부고속도로 낙동강 방면 공사에 쓰일 석재를 운반하고 있다. 1969년 연말,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포항제철소' 공사가 시작되었다. 허허벌판인 영일만의 모습 1970년 1월 1일, 영일만 앞바다에 떠오르는 일출 삼천만이 힘을 합치면 역사는 바뀐다는 내용의 표어가 방송되었다. '우리도 할 수 있다. 삼천만 하나된 힘, 역사를 바꾸리라.' 한국 평균 나이 23세 시절 출처
병원과 독서
병원에 가면 정말 ~~~~ 지루합니다 혈액검사 하고 문진표 작성 하고 그때부터 대기대기대기대기 의사선생님 잠깐 보고 간호사님과 주사일정 잡고 주사 맞고 끝 대기대기 (약 1시간 30-2시간) 하는 시간과 주사 맞는 시간 (약30-40분) 너무나 지루해요 대기 시간에 읽을수있는 책이 꼭 필요해요 제가 좀 촌스런 사람이라 요즘 오디오북이나 이북 e-book 이 많지만 화면이나 소리로 책읽기가 영 집중이 안되더라구요 병원에서 읽은 책들 소개해볼께요 닥터앤닥터 육아일기 ㅎ 금동이 낳고 보던 잼나는 만화 육아일기에요 네이버에서 지금도 연재하고있어요 첫단행본이 나와서 구입 귀여운 레서의 메모지도 들어있습니다 ㅋ 산부인과 엄마의 임신과 출산 공학박사 아빠의 논문 기반 육아 라고 소개되어있는대요 내용이 정말 ㅋㅋㅋㅋㅋㅋ 엄청납니다 익스트림하고 예측불가 이야기 ㅋ 출산과 육아가 주를 이루지만 내가 자란 과정을 부모니 마음을 다시한번 생각하게되는 웹툰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잠에 빠진 순간 우리의 영혼이 백화점에 가서 꿈을 사는 내용입니다 ㅎㅎㅎㅎ 6개월 만에 30만부가 팔린 베스트 셀러에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성 판타지? 청소년 어른들 모두에게 어울리는 책이에요 9. 익명의 손님께서 당신에게 보낸 꿈에서는 눈물이 찔끔찔끔 났습니다 병원인데 울면 안되는데 ㅜㅜ 굉장히 빠르게 읽어지고 내용도 억지스런 부분이 없어서 좋았어요 에필로그는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읽었는데 완벽한 마무리 였습니다 !! 나를 부르는 숲입니다 빌 브라이슨 작가를 의식하지 않았는데 거의 모든것의 역사 바디 우리 몸 안내서 위 두 책을 이미 가지고 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를 부르는 숲은 북유럽이라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김은희작가의 추천책으로 알게되었어요 병원 가서 읽을 책을 미처 챙기지 못해서 좁디좁은 병원안 책방에서 발견한 책입니다 병원에 딸린;; 서점이라는게 다양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건강 관련 책이 많더라구요 어떤 의사가 쓴 책이라든지 자연치유나 마음 다스리는법 등등 다양하지 못한 곳에서 김은희작가의 추천책이 반가워 구입했는데 그날 빵집에서 ;; 너무 오래 서성거려서 얼마 읽지 못하고 집에 가져와서 좀 오랫동안 가방에 그대로 잠들어있던 책이에요 작가가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등산하는 내용인데 읽다가 아 이런 말투 어디서 들어본거 같은데 라는 생각과 함께 작가를 검색해서 이미 소장중인 책의 저자라는걸 알게됐져 ㅋㅋㅋㅋㅋ 본격적인 등산에 앞서 곰에대한 부분을 읽으며 얼마나 우꼈는지 흔하게 생각하는 등산 내용이 아니라 등산을 싫어하는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맨날 금동이 책만 읽다가 두달에 한번씩 병원가서 읽을거리를 준비하는게 기대되고 어떤 책을 살까 쇼핑하는게 좋네요 예전에 읽었던 책들도 다시 한번 읽어보려구요
할아버지의 검은 봉지
저는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오래전 저희 가족은 한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고 이사 기념으로 만든 떡을 이웃 주민과 나눴습니다. 이웃 중 할아버지 한 분이 유독 고마워하시며 현관문 손잡이에 작은 호박 두 덩이와 호박잎이 담긴 검은 봉지로 답례를 하셨습니다. ​ 이후에도 손수 만든 음식을 가지고 찾아가면 얼마 후 저희 집 현관에는 검은 봉지가 걸려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봉지에는 김부각, 깻잎과 콩잎 등 소박한 답례와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렇게 저희 가족은 노부부와 소소한 인연으로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 그러던 어느 날, 위층에서 ‘쿵’ 소리가 들렸고 평소 거동이 불편하던 할머니가 생각나서 급한 마음에 올라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인기척이 없었고 불안해진 저는 곧장 119에 신고했습니다. ​ 구급대원과 함께 문을 뜯고 들어간 집에는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할머니는 빠른 발견으로 위급한 상황은 넘겼고 뒤늦게 병원으로 달려온 할아버지는 저의 두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계속하셨습니다. ​ 그리곤 그날부터 할아버지는 매일 새벽마다 저희 집 차를 몰래 세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 차를 숨기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찾아내 깨끗하게 세차를 해 놓으셨습니다. ​ 저희 남편까지 나서 할아버지를 겨우 설득해 세차를 멈추게 했지만, 대신 문고리엔 검은 봉지가 더 자주 걸렸습니다. ​ 그리고 얼마 후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고 할아버지는 자식과 함께 지내기 위해 이사를 하게 되셨는데 이사하는 날, 할아버지는 저희 집에 찾아와서는 옥가락지 하나와 은가락지 하나를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아들만 둘인데 막내딸 생긴 기분이어서 좋았어. 그리고 이삿짐 정리를 하다 보니 이거를 발견했는데 아마도 먼저 간 그 사람이 막내딸에게 주라고 남겨둔 것 같아서 들고 내려왔어.” ​ 저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주신 가락지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제법 긴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문득문득 할아버지와 검은 봉지가 떠오릅니다. 오늘 사연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매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따뜻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 주변에는 존중과 배려를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 쑥스러워서, 바빠서 등 다양한 이유로 덮어두었던 마음을 작게나마 표현해 보세요. 세상은 따뜻함으로 물들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겨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을 네가 먼저 그에게 베풀어라. – 공자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정 #이웃 #관심 #이웃사촌 #인생 #삶
<일기시대> 문보영
<일기시대> / 문보영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일기시대>를 읽으면서 확실히 깨달았는데 나는 글 같지 않은 글(?)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일기시대> 속에는 문보영 시인의 일기로 이뤄진 글들이 들어있는데 일반적인 일기라고 보기에는 조금 특이하다. 성인의 일기라고 하면 보통 다른 요소가 딱히 없는 줄글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일기시대> 속 일기에는 뜬금없이 그림이 등장하기도 하고 사진이 나타나기도 하며 시나 짧은 소설 비슷한 것부터 굳이 각주가 없어도 될 것 같은 내용에 굳이 상세하게 달리는 각주까지 온갖 요소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일기시대> 속 글들은 소설이기도, 시이기도, 에세이이기도, 논픽션이기도, 기행문이기도, 시나리오나 희곡이기도 하다.(심지어 한 글 안에서도 장르가 계속 바뀐다.) 나는 한 꼭지를 읽고 다음 글로 넘어갈 때마다 이번에는 도대체 뭐가 나올까 하는 마음으로 두근거리며 책을 읽었다. 문보영 시인은 이렇게 썼다. '그렇게 아무거나 쓰다 보면 어느 날 그 글은 소설이 되기도, 시가 되기도 한다. 일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기에.'(p.34) 자신의 말처럼 문보영 시인은 정직한 일기를, 즉 아무거나 썼고 나는 <일기시대>를 다 읽고 나서야 내가 글 같지 않은 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글, 아무거나 쓴 글에 끌린다는 걸 깨달았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처럼 넘쳐나는 각주와 참고문헌들로 인해 소설보다는 논문에 가까운 소설이라던가, 정영문의 장편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로 이루어져 도무지 서사를 따라갈 수 없음에도(사실 서사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마치 산문시처럼 이어지는 문장의 흐름과 리듬이 좋아 계속 읽게 되는 그런 글들 말이다. 어쩌면 이것들도 일기의 일종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일기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그 지점에서 개인적으로 반성하게 된 부분이 있는데 지금까지 100권이 넘는 책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매번 비슷한 형식으로 글을 썼다. 조금 더 아무거나 써야겠다. 책에 대한 일기라고 생각하면 아무거나 쓸 수 있지 않을까?) <일기시대>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은 <내 방에 물건 두고 가지 마>이다. 그중에서도 뒷부분에 나오는 눈물 모양 텐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한 예술가가 나무에 매달린 눈물 모양 텐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눈물 모양 텐트는 단순한 장식품이나 예술품이 아니어서 실제로 사람들이 묵을 수 있다. 그 안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여가를 즐길 수 있으며 들어간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텐트의 모양은 수시로 바뀐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어떤 거대한 슬픔을 겪은 이들의 생활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을 거대한 슬픔은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눈물 모양 텐트 속에서 생활한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흐른 뒤, 텐트 바깥의 우리가 보기에는 그들이 멀쩡해진 것 같고 모두 훌훌 털어버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직 그들은 눈물 모양 텐트 속에 갇혀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때면 텐트의 모양을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았고, 우리의 슬픔을 받아주던 착한 사람들이 지쳐가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야만 한다고. 아직 눈물 모양 텐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들은 텐트 바깥의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슬픔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 텐트의 모양을 바꾼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이 아직 눈물 모양 텐트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고 만다. 그들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밤이 되어 혼자 남으면 너무나 지쳐 모든 움직임을 멈출 것이고 텐트는 다시 눈물 모양으로 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 커다란 슬픔을 겪은 이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면 그가 텐트의 모양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제 책 리뷰(라고 쓰고 책일기라고 읽는다.)에 조금 더 아무거나 쓰기로 했으니 아무거나 이어서 써 보자면 <일기시대>속에서 몇몇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맞춤법이 틀린 것 같다거나 문장이 어색한 부분들이었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첫째, 내 맞춤법 실력이 미천하여 옳은 맞춤법이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둘째, 작가나 편집자가 특별한 의도로 남긴 것이다. 셋째, 제대로 수정되지 못한 맞춤법이나 오탈자이다. 어떤 경우든 간에 이점이 있는데 첫 번째 경우라면 옳은 맞춤법을 알게 되었으므로 내 맞춤법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고 두 번째 경우라면 작가와 편집자의 특별한 의도를 읽어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세 번째 경우에 꽤나 큰 기대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산 책이 1판 1쇄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어색하게 느낀 부분들이 제대로 수정되지 않은 맞춤법이나 오탈자라면 당연히 2쇄부터는 수정되어 나올 것이고 이 잘못된 맞춤법과 오탈자는 오로지 내가 산 1판 1쇄에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 만약 문보영 시인이 시간이 지나며 좋은 작품을 쏟아내어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된다면? 그때는 <일기시대> 1판 1쇄의 가치가 미친 듯이 뛰어올라 한 권에 수백, 수천만 원을 호가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1판 1쇄에만 남아 있는 잘못된 맞춤법과 오탈자가 진품을 판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아, 이건 진품이 아니군요. 보십시오, 여기 '그래서'라는 단어에 오탈자가 없지 않습니까? 진품은 서 자가 빠져 있습니다. 아쉽지만 가품이네요.) 그 날을 기다리며 <일기시대>는 지퍼백에 넣어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겠다.(존버는 승리한다!) 이번에 책을 사면서 굿즈인 노트도 함께 받았는데 그 노트에는 <일기시대> 속 문장들이 하나씩 적혀있고 그 밑을 독자가 직접 채울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참에 그 노트를 가지고 일기를 좀 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하루 만에 방학 동안의 밀린 일기를 전부 썼던 때 외에는 제대로 일기를 써 본 적이 없다.(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방학 숙제를 빌미로 전국의 초등학생들에게 일기 쓰기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현재 일기를 쓰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일기시대>도 읽었고 초등학교 때처럼 억지로 써야 되는 것도 아니니 굿즈 노트 속에 일기를 쓴다면 굉장히 아무거나 쓸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면 내가 쓰는 책 리뷰도 조금 더 아무거나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면 일기도 쓸만하지 않을까?(일기를 쓰기로 결심하면서 하나 다짐한 게 있다. '참 재미있었다'로 끝내지 않기.) <일기시대> 속에서 인상 깊었던 글 세 꼭지를 소개하며 마치겠다. 가장 웃겼던 글은 <선 넘기는 기본 메뉴, 박기는 사이드 메뉴>. 가장 슬펐던 글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1, 2화. 가장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든 글은 <내 방에 물건 두고 가지 마>. 책 속 한 문장 그렇게 '눈치'라는 것은 저절로 생겨난다. 어른이 된 황구는 생각하곤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눈치가 없는 사람들은 눈치가 없어도 공동체에서 내쳐질 위험이 없었기 때문에 눈치를 배울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