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zyy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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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신폭신한 토토로@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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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짱
구름에 처럼 푹신푹신
오호... ...
오 대박 저런것도 있다니..
세탁은어찌...? 쿠션이 죽지는 않는지...사이트 검색해봐야겠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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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AD.181~234
"삼국지"가 큰 영향력 갖는 동아시아 3개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꼽으라면 중국은 관우, 일본은 조운, 한국은 바로 "제갈량"이다. (예로부터 문을 숭상한 전통기조 탓인지...) 이 칼럼의 첫 포문도 그래서 제갈량으로 준비했다.. 여러분이 읽었던 삼국지에는 잘 나오지 않은 소제들 위주로 갈테니 다들 Focus! 고향은 서주 낭야현.(지금의 장쑤성 쉬저우) 조조가 부친 잃은 빡침으로 서주 제노사이드 자행 시 부친 제갈규가 형주로 거처 옮길 때 함께 이주. 부친 사후 숙부 제갈현 슬하에서 자란다. 3남2녀 중 넷째였고 당시 기준으로 신장이 무려 189cm가량으로 전란과 기근 탓에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0cm중후반이던 3세기 중국 기준 가히 거인이나 진배없던 장신에 용모도 잘 생겼단 기록이 남아있고 마른 체형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선비들의 주류 학업스타일은 토시 하나까지 달달달 외우던 방식이였는데, 제갈량은 그런 암기 위주가 아닌 요약정리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후한 마지막 천자인 헌제와 동갑인데다 사망한 해도 같았다. 그 유명한 유비와의 "삼고초려"는 나관중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으나, 실제로 사료에도 유비가 세 번 찾아간 끝에 제갈량을 만났다고 남아있다. 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이 유비를 피한건 아니였고 정말 서로 타이밍이 안맞았으며, 휴대폰도 없던 시절 이다보니 당시로서는 어찌보면 다짜고짜 찾아가서 마침 딱 만나는것도 쉽진 않았기에 그랬던듯 싶다. 그는 딱히 유비를 따를 마음은 없었으나, 임관하여 모실 마땅한 군주가 없던데다 당시 절친이던 서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유비를 모신다.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컷트되던 유망주가 입사제의 하는 중소기업 들어간 꼴. 연의내용과 달리 모친이 인질 잡혀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전까지 한 동안 제갈량과 서서는 유비 휘하에 있었고 방통과도 인척 관계였는데, 제갈량의 누나 중 한 명이 방통의 숙부의 아내.. 즉 숙모였다. 유비에게 임관 후부터 관우, 장비 형제의 그에 대한 텃새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였다. 장비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재사를 공경하는 편이라 제갈량이 일정 수준 능력을 보인 후로는 그닥 태클이 없었으나, 유비 다음은 자신이라 자부하던 관우의 견제와 경계는 제갈량으로서도 관우 사망시까지 참 벅찬 일이였다.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제갈량의 지시도 잘 이행하여 케미가 잘 맞은 덕에 제갈량이 가장 의지하던 무관은 "조운"이였다. "마량"과도 코드가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촉빠에 제갈량빠던 나관중에 의해 가장 주인공버프 크게 받은 인물 중 하나인 제갈량이였기에 소설 속 모습은 거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가깝게 묘사되나 그도 사람인지라 완벽의 면모만 있던건 아니고...ㅋ 분명 단점도 있었고 매사에 뛰어난건 아니였다. 우리에게 그는 탁월한 전략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전장에서의 전략과 전술, 병법에 능했던건 맞으나 당시 그 분야의 최강자는 사실 아니였다. 당대의 평가 등과 커리어들을 볼 때, 그는 전략가보다는 오히려 정치가로서의 실적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업적도 그쪽이 훨씬 많았다. 전체적 판세를 파악하는 전략적 면모는 오히려 주유, 조조가 앞섰고.. 전투에서의 전술적 재량은 방통, 법정에 뒤졌으며.. 후방보급에서는 순욱도 결코 제갈량 못지 않았고 심리전에 있어서는 가후나 정욱이 더 나았고 방어전술은 사마의가 우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특히 중국에서의 책략,전략가로서의 자질을 따질 때 큰 척도로 삼는 것은 기책.. 쉽게 말해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기응변 더 쉽게 풀어 전술적 "에드립"여부였는데, 제갈량은 앞서 말한 책사들에 비해 이 부분이 특히 좀 빠지는 편이였다. (중국 역사상 이 분야의 갑은 바로 "한신") 역사기록에서나, 소설에서나 제갈량 전술의 주요패턴은 지형 및 기후 등의 사전정보 철저 숙지를 베이스로 한 정석 응용이였던 범생 스타일. 그의 임기응변 부족론에는 반론도 있었는데, 사실 유비를 처음 섬기는 순간부터 오장원에서 숨 거둘 때까지 그는 남만정벌같은 일부를 제하면 대부분 조조~위를 상대하며 늘 열악한 자원과 인력으로 압도적인 적을 맞이했고.... 그가 이끄는 것은 유비세력 & 촉의 거의 전부였기에,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시의 리스크가 큰 기책을 선뜻 쓰기는 무리였다는 반론이 그것. 정치적인 치적은 소설에는 잘 안나오는데, 그는 촉의 경제발전 및 과학기술 개발과 심지어 사법제도 개편 및 군의 현대화 등 여러 분야의 내정에서 눈부신 업적들을 이뤄냈다. 당시 서천지방의 대표적 특산물은 "비단"이였는데 이 비단의 생산량과 퀄리티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량을 시도했고, 이 비단사업의 대성공 덕에 촉한의 비단재벌들은 중원의 어지간한 부호들 싸닥션을 날릴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농지개간과 경작법도 많이 손봤고 천연가스 시추에 성공했으며, 내륙이라 소금이 금값이던 그때에 암염이라는 바위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도 개발, 놀라운 건 당시로는 의심만 받아도 목이 날아가고 삼족 멸하는건 우습던 위나 오와 달리 전문 수사관 시스템을 도입하여 증거와 증인심문 등 통한 체계적 수사시스템을 구축했던 것도 제갈량이였다. "인간" 제갈량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였고, 상당히 도덕적이였으며 청렴했음은 물론, 매사에 꼼꼼을 넘어 깐깐한 완벽주의자로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심 못 하는 스타일로서... 지금으로치면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비서실장, 외교부장관, 행정부장관, 산업경제부장관, 감사원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대법원장, 검찰총장을 합친 것보다 많고 다양한 업무들을 일일히 서류 뒤적이며 직접 처리했다. 이런 사람이 부하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직위가 황제 바로 아래인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이였기에 이런 사람이 상관이면 아랫것들 여럿 죽어나가는거 일도 아니였다... 제갈량 본인도 끝내 과로사했지만, 위, 촉, 오 통틀어 촉의 고위관료 과로사 비율이 가장 높은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참고로 그는 유비 사후 그냥 승상이 아닌, 황태자와 동급에 왕보다 높은 "상국"의 지위였으며, 그의 사후 승상직 자체가 영구 결석 처리되어... 촉한 역사상 유일한 승상이였다. 어벙띠리하기 그지 없던 유선도, 부친 유비의 유조도 있었고 제갈량의 영향력과 충심이 워낙에 굉장했던터라 제갈량을 부친처럼 대했고 꼬박꼬박 경어를 썼으며 제갈량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및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입헌군주제 수준이였으며, 오너는 따로 있으나 전반적 경영은 제갈량이 일임하는 전문 경연인체제의 C.E.O.나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퍼펙트같은 제갈량의 단점은 사람 보는 "안목"이 그닥이였다는거다... 촉에서 사람 잘 보는 분야의 최고수는 "유비"였는데, 이에 반해 제갈량은 그 뛰어난 여러 분야에도 불구.. 사람 보는 안목은 별로였다. 그가 발탁한 이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보자면.. 장완 - 결과적으로 훌륭했으나 대체로 직무태만인 스타일로서 제갈량이 뒤봐주지 않았다면 유비에게 밉보인 그로서는 진즉 Fired... 마속 - "읍참마속"이란 고사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실패작으로서 전투경험 전무에 글로 전투 배우고 나대다 끝내.....-_-;; 이엄 - 제갈량이 평하길, "육손에 견줄만 하다!"라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육손 근처도 못 감. 양의 - 업무능력에 대해 제갈량이 치켜세웠으나 인성 쓰레기에,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불화로 위연의 사망을 초래. 위연 - 제갈량이 발탁하진 않았으나, 유비는 잘만 활용한 최고의 맹장이건만 제갈량은 내내 겐세이만 줬고 결국 위연과 양의의 불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를 줌. 강유 - 능력과 인성은 좋았으나, 근자감에 휩싸여 끝없는 북벌시도로 촉한을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일등공신. 마량 & 비위 - 능력 자체는 대단들 했으나 단명. 오에서 마지막에 대장군 직위까지 오른 친형, "제갈근"과는 서로 모시는 주인이 달랐고 둘 다 각자의 소속집단의 중역이였기에 볼 일이 거의 없어 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막상 만나도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마흔 후반대에 들어 유일무이한 자식(제갈첨)을 하나 얻었고 꽤나 예뻐했는지, 제갈근에게 어린 첨의 자랑으로 가득 채운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위, 촉, 오는 모두 이민족(그들 기준 오랑캐) 문제가 난제였는데 무력으로 굴복 시키거나 축출 일변도였던 위나 오에 비해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비록 무력으로 제압은 했으나 이후 먼저 교섭 시도 후, 이민족들로 하여금 지금으로보면 "자치구"개념의 자율통치권을 인정하여 삼국 중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대이민족 대응법을 보여줬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맵고 짠 음식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편식이 좀 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식사도 정해진 때에, 정해진 장소에서 먹기 보다 대강대강 챙겨서 이런저런 일들을 보며 아무곳에서나 먹었다고 한다.(가정교육이...ㅋ) 이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나 고관절 쪽이 좋지 않아서 장년 이후 휠체어 비슷한 작은 의자형 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설이 있다. 적벽대전 앞두고 오에 가서 그곳의 재사들의 다구리를 말발로 역관광 시킨 이야기는 허구다. 짚단을 실은 배를 타고 노숙과 함께 조조군 진영으로 가서 화살 10만 개를 슈킹해온 일화도 허구다. 과로사는 분명해 보이지만, 정확한 사인으로는 "폐결핵"설과 "위암"설이 팽팽하다. 워낙 불규칙한 식습관과 수면부족 및 극도의 스트레스, 과로 등 암 발병에는 최적이긴 했다. 첫 칼럼인데, 두서도 없거니와 일단 너무 양 많고 내가 봐도 지루하다.... 그래도 뭐 읽을 사람들은 읽겠지 T-T 피드백 괜찮으면 앞으로도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스토리 위주로 갈 예정. 삼국지 관련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나 다뤄줬으면 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신청도 받음.
1930년대 지어진 전주폐가 리모델링 레전드
저는 오래 전부터 기와집에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아주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기와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여기야말로 꿈만 꾸던 그 집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치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 차근히 완성해나간 집을 지금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적산가옥 제가 마주했던 첫 모습입니다. 긴 시간을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폐허로 있다보니 무너지기 일보 직전 처럼 보였어요.  어떻게 고쳐야하나 심란한 마음 뿐이였죠. 보시다시피 전문가도 기피할 것 같은 상태여서 골조만 살리고 나머지는 거의 새로 지어야 했습니다. 다시 짓는다고 해도 이 집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느낌은 최대한 살리기로 했습니다. 원래의 모습을 너무 파괴하면 제가 이 집을 선택했던 이유가 없었거든요.  쓸 수 없는 기와는 모두 걷어내고 보수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기와와 비슷한 걸 구해 남아 있는 기존 기와와 함께 사용해 지붕을 만들었어요. 16평 주택의 재발견, (직접 그린 도면) 평수로 치면 크지 않는 크기여서 방을 다 오픈해 공간이 전부 이어지도록 미리 스케치한 후 시공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거형태 상 겨울엔 추위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어 이를 감안해 거실엔 냉난방기를 두고 방엔 보일러를 깔아 보온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어요.  나무 자체만으로 오랜 시간을 머금은 듯한 분위기를 풍겨 철거를 하면서 나온 목재들은 버리지 않고 문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문 앞에 놓여 있는 디딤돌도 철거에서 나온 돌을 재활용해 흔적들을 조금씩 남겨두었어요. 문을 열면 드르륵 정겨운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중문.  시간이 얽힌 거실 거실에서 바라본 마당 모습입니다. 마당 앞 툇마루처럼 생긴 곳엔 옛날 교실 바닥 자재를 깔아 거실과 공간을 분리하면서 통로의 느낌을 더 강조했습니다. 거실 안쪽까지 햇살이 깊숙히 들 수 있도록 큰 창은 철을 사용해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했어요.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차를 마시기에 딱 좋은 툇마루. 오죽과 감나무를 마당에 심어 겨울이 되면 다니 단 홍시를 먹을 수 있는 재미. 이런 즐거움이 마당 있는 집의 매력인 듯 해요. 사계절을 가장먼저 느낄 수 있는 작은 뜰.  복도 끝에 자리잡은 화장실.  낡은 것들이 모여 편안한 분위기를 주는 거실. 작은 심야식당 지인이 놀러와 얼굴을 보며 요리를 할 수 있도록 11자 형태의 아일랜드 주방으로 시공했습니다. 그리고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편히 오갈 수 있도록 식당 주방처럼 싱크대와 테이블 사이에 작은 문을 만들었습니다.  주변과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고재를 사용한 주방.  노출 천장엔 인더스트리얼 조명을 달아 스타일리쉬함을 더했다. 거실 큰 창으로는 이곳까지 햇볕이 닿지 않아 주방 천장 가운데를 뚫어 창문을 만들었습니다. 매일 아침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비가오는 날이면 천장 유리를 통해 들리는 빗소리가 고요한 집 안을 더욱 운치있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들게 해요.  주방에서 바라본 모습.  운치 가득한 사랑방 탁- 트인 시야가 시원한 유리문 너머엔 쉼을 위한 침실입니다. 폴딩도어문을 설치해 공간이 이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날씨가 더운 여름엔 활짝 개방해두고 추워지는 겨울엔 도어를 닫아두어 온도를 최대한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외국에 살았던 기억을 되살려  침실은 아늑하게 꾸몄습니다. 조명은 간접조명으로 대체하고 유리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독특해보이는 침대는 나무를 사러 갔다가 얻은 텃밭 상자를 이용해 침대 프레임 만들었습니다.  기성용품이 주는 획일화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대부분 직접 만들거나 리폼한 가구들이에요.  느긋하게 책을 읽기에 좋은 곳.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 곳  작은 휴양지. 낡은 질감의 나무문을 열고 나오게 되면 작은 테라스가 나타납니다. 늦은 점심 은은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있을 때면 해먹에 누워 낮잠을 자곤 해요. 몸과 마음이 풀리는  개인 야외온천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공간 욕실.  평소 반신욕을 좋아해 인테리어를 하면서 욕실에 힘을 가장 많이 주었어요. 꽉 막혀 있는 것 보다 자연풍경이 눈 앞에 보여지면 더 좋을 것 같아 통창을 내고 밖엔 단풍나무를 심었습니다.  창을 낼 때는 옆집 주변과 시야가 차단될 수 있는 높이를 고려하는게 가장 중요했어요. 여기에 누워 반신욕을 하다보면 가을엔 단풍나무가 겨울엔 소복이 쌓이는 눈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끼는 것 같아 너무 좋아요. 야외 온천에 온거 같기도 하고요. 은근한 나무냄새가 베일 것 같은 욕실 벽.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  저는 집을 고치거나 꾸밀때 항상 제가 뭘 좋하하는지 생각하고 저의 라이프 스타일이 어떤지를 생각해서 반영하려고 하는거 같아요. 그래야지 집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고 편한거 같아요.  이제는 이사를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조금 마당이 넓은 집으로 가고 싶어요. 요즘은 내가 뭘 좋아하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에 새로 이사를 가면 집에서 시간을 조금더 생산적으로 쓸수 있고 또 좋아하는 걸 하면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출처 와 감각이 대단하시네요 *_* 금손 재능러 저 폐가가 이렇게 다시 태어날줄 누가 알았을 까요 ! 지금은 또 새로운 집으로 거처를 옮기신 것 같은데 인스타 구경 갔다가 저도 모르게 팔로우 하고 왔어요 :) 인스타가 궁금하시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
[Weekly BIZ] [Cover Story] 제 작품 50번이나 본다고요? 49번 볼 시간에 다른 경험하세요
日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一聲 아이들이 6세 될 때까지 TV시청 제한 바람직, 대신 책을 읽고 사물을 느끼게 해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 날것 포착하는 능력 잃게 돼 독서와 체험이 나의 힘, 읽고 상상하는 재미 놓치지 마라 3D가 대세지만 2D 고집하는 건 과잉 시대엔 오히려 빼고 또 빼야 책도 잡지도 많이 만들어져 가치 없어져 제대로 봐야될 것까지 지나쳐 버리게돼 日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 은퇴를 선언한 미야자키 감독에게 “더 이상 당신의 새 애니메이션을 볼 수 없어 슬프다”고 하자, 그는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역시 그런 말을 들을 때 은퇴하는 편이 좋아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도 마지막에 영화 만들었을 때는 다들 ‘이 영감 빨리 죽어라’ 그랬거든요(웃음)”. /이덕훈 기자 도쿄 최대 번화가 신주쿠(新宿)에서 전철을 타고 서쪽으로 30분쯤 달려 대학 캠퍼스와 주택가로 둘러싸인 히가시고가네이(東小金井) 역에 닿았다. 목요일 오전 작은 역사의 한적함을 뒤로하고 북쪽 출구를 나서 골목을 돌아 10분쯤 걸었다. 주택들 사이에 숨어 있던 3층 건물이 나타났다.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2) 감독 창작의 산실인 지브리 스튜디오다.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 사무실에 남녀 직원 3명이 앉아 있고, 책상 밑으로 고양이 두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사무실 바깥벽에는 최근 개봉한 미야자키의 마지막 장편(그는 지난달 공식 은퇴했다)인 '바람이 분다'와, 지브리스튜디오의 공동 설립자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勳·78) 감독의 올 11월 개봉 예정작 '가구야 공주 이야기'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안쪽 중앙에는 직원들이 쉬거나 식사하는 카페테리아가 있다. 1층 면적은 다 합쳐봐야 한 150평이나 될까? 메인 건물 외에 제2, 제3 스튜디오가 바로 옆에 있긴 하지만, 규모가 고만고만해 인근 주택들에 비해 전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스튜디오를 나와 도보 5분 거리인 감독의 개인 사무실에 당도했다.(그는 스튜디오 외에 별도 사무실을 갖고 있다.) '플랜더스의 개'에 나올 법한 유럽풍 아기자기한 외관이 예뻤다. 문 앞에서 머뭇거리자 창문 안쪽에서 보고 있던 미야자키 감독이 문을 열고 나와 활짝 웃으며 손짓했다. 그의 30년 팬으로서 그의 사적 공간에서 가진 단독 인터뷰는 가슴 뛰는 일이었다. 일본에선 흔히 "지브리는 언론 홍보가 따로 필요 없다"고들 한다. 일본의 모든 담당 기자들이 미야자키 팬이기 때문이다. 1990년 전후로 중·고교를 다닌 기자는 친구들과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천공(天空)의 성(城)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를 불법 복제 비디오로 돌려보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는 1979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 성(城)'으로 장편 데뷔한 이래 '이웃집 토토로(1988)' '모노노케 히메(1997)'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등 내놓는 작품마다 전 세계 어린이들, 나아가 많은 어른까지 매료시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본에서만 2350만명을 동원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야자키 감독의 표정은 '이웃집 토토로'에서 토토로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씩 웃을 때의 약간 짓궂은 표정을 쏙 빼닮았다. 말은 아주 빨랐고, 말 중간 중간 아주 나직하게 "정말로요"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감독님은 작품에서 '살아라! 세상은 잔혹하지만,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 메시지에서 관객들이 큰 위안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건 어쩌면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 저는 그런 격려를 원했던 것인지 몰라요. 제가 어떤 아이였느냐 하면 몸도 안 좋고 내향적이고 모순에 가득 찬 아이였거든요." ―감독님의 일에 대한 철학은 무엇입니까. "'네게 주어진 것을 온 힘을 다해 이뤄라'는 말이 있는데요. 제 경우엔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든 다른 뭐를 선택했든 정말 열심히 하라' '자신의 빵을 기뻐하며 먹으라'는 것입니다. 먹다가 배가 아플 수도 있고, 온갖 일들이 일어날 테지만요. 어떤 직업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특별하니까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다'거나 하는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창의성이 기업계의 화두가 된 시대에 미야자키 감독의 창의력 원천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다양한 체험과 독서' 딱 두 가지를 강조했다. 기자가 "'이웃집 토토로'나 '모노노케 히메'는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수십 번 반복해서 봤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자 그는 뜻밖에도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발끈했다. "제 작품을 50번 보는 대신 나머지 49번은 다른 경험을 해야죠. 반복해서 보는 49번의 시간에 무언가 잃고 있는 겁니다. 특히 어린이라면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할 기회를 놓치는 겁니다." 그는 "어린이가 여섯 살이 되기 전에는 TV도 보여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실과 TV 속의 것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나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영상으로 장사하며 이런 말을 하는 게 딜레마이긴 하죠"라고 덧붙였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디지털 콘텐츠를 즐기는 경우도 많은데요. "일러스트의 시대가 지나고, 영화의 시대, TV의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영상은 개인적인 것이 돼 버렸습니다.(누구나 언제든 영상을 접한다는 의미) 그러다 보니 현실에 접근하는 능력은 점점 더 약해져 갑니다. 날 것 그대로를 포착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던 그는 간접 체험이라 할 수 있는 독서의 중요성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책이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더라도 반드시 책부터 먼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셜록 홈스의 모험'을 책으로 보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꼭 책으로 먼저 읽어야 합니다. 문자로 읽었을 때의 놀라움을 영상으로 옮기면 별 볼 일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언어로 읽는 것의 재미가 훨씬 강렬합니다. 어떤 무대인가, 어떤 풍경인가 스스로 생각하는 동안에 무엇인가와 만날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주요 작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지난달 은퇴를 선언했지만, 이는 감독으로서 창작 활동을 그만둔다는 의미이지 지브리스튜디오에서 손을 뗀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여전히 개인 사무실에 일요일만 빼고 매일 출근하고, 지브리 미술관의 전시 작업에 관여하며, 지브리 사내 보육원인 '곰 세 마리 집'의 원장을 맡고 있다. 이번 인터뷰가 이뤄진 것은 지난 8월 한국에 출간된 그의 저서 '책으로 가는 문'이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일본의 '이와나미 소년문고' 창간 60주년을 계기로 미야자키 감독이 오랫동안 즐겨 읽은 소년문고 400여권 중 50권을 추천해 놓은 것이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그가 해주고 싶은 말들이 각각의 책 소개에 메모 형식으로 달려 있다. 지브리스튜디오는 "책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 어린이들에게 책 읽기의 소중함을 전해 줄 수 있다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애초의 약속 때문에 질문 내용이 다소 제약을 받았지만, 거장의 내면세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체험하려 하지 않는 젊은 세대 다시 체험 이야기로 돌아가자. 미야자키 감독은 요즘 젊은이들이 뭔가 저지르고, 시행착오를 하고, 체험하려 하지 않는다고 걱정을 늘어놓았다. "일본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굉장히 싫어하는 말인데요. 사람은 누구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폐가 됩니다. 정말 폐를 끼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 서로에게 아무도 없는 편이 좋을 거예요. 폐를 끼치지 않는 관계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발톱을 세우지 않으면, 관계를 갖지 않으면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관계를 갖지 못하고 서로 폐를 끼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착한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병적인 오타쿠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건 사회가 쇠약해지는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건 선인이나 악인을 논하기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체험이 부족한 젊은이들로 인해 애니메이션도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희는 뒤를 휙 돌아볼 때 눈의 초점이 먼저 돌아가고 나중에 고개가 돌아가는 표현 방법을 '미래 소년 코난'(1978년)에서 처음 시도했습니다(그는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직접 시연해 보였다. 그때 모습은 일흔 넘은 노인이 아닌, 30년 전 TV에서 봤던 '미래 소년 코난'의 주인공들 얼굴 표정 그대로였다. 표정, 눈매, 입 모양, 고개를 돌릴 때의 경쾌한 움직임 등은 '빙의'라 할 만했다). 이렇게 말이에요. 아시겠죠? 우선 눈부터 시선이 '사악' 벗어납니다. 순간적이지만 고개보다 눈이 먼저인 거죠. 그런데 30년도 더 전에 했던 것을 이번 '바람이 분다'에서도 똑같이 하는 직원들이 있었어요. 매너리즘 덩어리인 겁니다. 좀 슬펐습니다(웃음). '내가 30년 전에 가르쳤던 것을 그대로 지금까지 하고 있단 말이야? 적당히 좀 해, 스스로 좀 생각하라고'라는 거죠. 예전 애니메이션에서는 인물의 눈동자가 가끔 깜박입니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에서는 눈 깜빡임을 일부러 다 지웠습니다. 실사 영화를 보면 실제로 배우들은 눈을 깜빡이지 않아요. 눈을 깜박일 때를 보면, 피곤해서가 아니라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사악 뜨면서 연기를 할 때 의도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동안 저희는 그냥 관성적으로 눈 깜박임을 넣어 온 것이었어요. 일본에서 TV 애니메이션이 시작된 지 50년이 지났는데 말입니다. 옛날에 가르쳤던 것을 그냥 스스로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눈 깜박임은 넣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여겨 온 것뿐입니다. 제 아들(미야자키 고로 감독)도 애니메이션 일을 하고 있는데, 저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네가 정말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다면 좀 더 스스로 다른 것을 배워라. 지금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해라. 애니메이션으로부터 그림을 시작하지 마라. 실제의 것을 보고 스케치 데생으로부터 시작해라'라고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조언해 주실 말이 있다면? "기술은 이 세계에 들어오면 금방 마스터할 수 있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핵을 확실히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영향력과 표현력을 넓히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아도 좋아요.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다니, 이렇게 미숙한 실패를 하다니'라는 말을 들어도 좋아요. 잎을 피우는 필연의 힘을 가진 줄기만 있다면, 그 후 잎을 피우고 꾸미는 것은 서로 지혜를 짜내면 어떻게든 됩니다. 물론 최고의 이야기는 그러면서도 이파리와 그곳을 기어다니는 벌레들까지 생생하게 그리는 것이겠지만요. 지금의 일본 문화는 모든 게 희박하고 만화적이 되어 모두가 얄팍함밖에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일본은 생산하는 민족이라고 하지만, 조금씩 의심스러워지고 있습니다. 생활 자체가 서브컬처로 완전히 메워져 대단히 흐리멍덩해지고 있죠. 이건 민족을 망하게 하는 근원입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미야자키 감독이 문 앞으로 나와 취재진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3D 컴퓨터그래픽이 대세이지만, 지브리스튜디오는 여전히 2D를 고수한다. 미야자키 감독의 '바람이 분다' 공개 기자회견 때 한 기자가 "3D를 만들 계획이 없느냐"고 묻자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야자키 감독이 2D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의 철학과도 연결된다. 그는 "요즘 영화들은 과잉"이라고 말했다. "과잉으로 세밀하게 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지금의 TV 영상을 보면, HD 영상이 돼서 화면도 아주 크고, 구석구석까지 다 보이죠. 하지만 그런 것까지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 얼굴보다 더 큰 아나운서의 얼굴 같은 것은 보고 싶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TV를 보지 않는 사람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브리 미술관에서만 상영한 단편 애니메이션 '보물찾기'에는 음성도 아예 넣지 않았습니다. 빼고 빼고, 점점 더 빼다 보니 '대사도 필요 없어'라는 식이 된 거죠. 그랬더니 마음이 아주 후련해졌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구나'라고 생각했죠. 영화 '바람이 분다'도 그 연장선입니다. 돌비사운드로 여러 방향에 스피커를 배치해서 이런저런 입체 음향이 나오도록 하는 일을 '바람이 분다'에서는 아예 안 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20~30명이 꼭 웅성거려야 반드시 좋은 게 아닙니다. 2명으로도 잘할 수 있습니다. 옛날 라디오 드라마를 보면 다 그런 식이지요. 일본이 안고 있는 문화적인 문제는 '너무 많다'는 겁니다. 너무 많은 양은 질 그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지금은 책도 잡지도 너무 많이 만들어져 한 권 한 권의 가치가 없어질 뿐 아니라, 제대로 봐둬야 하는 것까지 지나쳐 버리게 만듭니다.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 판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3D 애니메이션의 정상에는 미국 영화사 픽사(Pixar)가 있다. 그런데 픽사의 존 래스터 감독은 2009년 칸 영화제에서 "오래전부터 미야자키 감독의 엄청난 팬이었다"며 "'천공의 성 라퓨타'를 비롯해 그의 모든 영화를 좋아한다. 픽사의 모든 영화는 미야자키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2D이지만, 미야자키 영화의 묘사는 매우 생생하다. 그에게 묘사란 무엇일까. "근육을 그린다고 해보죠. 근육이라는 것은 의지입니다. 의지를 근육이 나타내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서 있는 때에도 뭔가 근심에 사로잡혀 있거나, 필사적으로 뭔가를 생각할 때는 어딘가 몸이 굳어지게 돼 있습니다. 그것을 표현한 조금의 선의 차이로 인해 인물이 무언가 생각한다든지 걱정한다든지 하는 느낌이 나오게 되는 거죠.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라 근육의 일부로 그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근육의 움직임이 옷에도 그대로 전해지게 됩니다. 머리카락도 그렇지요. 뭔가 기분이 좋다든지, 기분이 안 좋다든지 할 때 머리카락에도 나타납니다. 저희는 이 순간적인 변화를 포착해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세계는 아주 심오한 겁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생각할까, 어떤 기분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리게 되면, 갑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세계의 비밀로 통하는 문'이 열리게 됩니다. 애니메이터들에게 그런 것을 익혀달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하고 있는데요. 생각만큼 잘되지 않네요(웃음). 세상은 아주 깊은 겁니다. 그런 것에 눈을 뜨게 되면 자신이 개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다른 뭔가가 더 없을까 계속 찾게 되겠지요. 많은 것이 시작될 수 있을 겁니다." 세 차례 은퇴 번복했던 이유 미야자키 감독은 지난달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지만, 그는 전에 세 번이나 은퇴 선언을 했다가 번복한 전례가 있다. 체력적 한계를 이유로 물러나려 했던 그가 번번이 복귀한 것은 지브리스튜디오에 마땅한 후계자가 없기 때문이란 것이 정설이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계에 감독님의 뒤를 이을 뛰어난 젊은 인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애니메이션이 잔뜩 있는 시대에 그걸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어려운 겁니다. 모델이 너무 많은 거죠.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시대 쪽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꿈이 강했던 겁니다. 요즘 애니메이션 하는 친구들은 대개 '미래 소년 코난'을 보고 애니메이션을 하게 됐다는 식이에요. '백 투 더 퓨처'인 거죠." ―지브리가 작품화하기도 했고 '책으로 가는 문'에서 감독님이 추천하기도 한 아동서 '마루 밑 아리에티'와도 연결되는 내용인데요. 작품 속의 인간 세상에서 사는 소인(小人)들이 사실 우리일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인간들은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지요. 엄청난 무력감입니다. 무력감의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정부는 방사능이 지하수로 유출되는 것을 멈추겠다고 하지만 불가능합니다. 어느 시기까지 사람은 자신들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지만, 현대의 특징은 무력감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들 하지만, 결국 소인인 것입니다." 그는 인터뷰가 끝난 뒤 사무실 바깥으로 나와 일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동행한 사진기자가 그 모습을 포착하고 카메라 연사 버튼을 쉴 새 없이 눌러대자 '허, 참!'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까지 포즈를 취해 줬다. 아쉬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기억에 담고 싶은 마음을 알아줬기 때문이었을까?
삼국지 좋아하십니까?
여자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남자분들은 책과 영화, 특히 게임 등으로 다들 "삼국지"를 접해 보았을터. 주로 게임을 통해 많이들 삼국지를 알게 되었을거라 예상되지만, 게임 하다보면 이게 또 스토리를 알고 해야 더 재미가 붙으니 책도 읽게 된다ㅎ 헌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삼국지는 "소설"이다. 즉, 작가적 상상력... 다시 말해, "픽션"(허구)이 섞인 문학작품이란거다. 의외로 이걸 인지 못하는 분들 제법 있어서, 삼국지속 내용이 모두 참인줄 알고 감탄한다ㅋ 삼국지는 중국에서 "칠실삼허"(七實三虛)라 한다. 7의 실제와 3의 허구, 쉽게 말해 3할은 뻥이란 소리. 우리가 서점 가서 본, 이리저리 전해들은 삼국지관련 내용들은 "삼국지연의"라는 소설로서, "나관중"이란 중국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소설가가 실제 역사와 구전되어 내려오는 민담 등에 자신의 창의력으로 반죽해 쓴 작품이다. 소설은 많은 이가 재미있게 읽어야 함이 기본이기에 당연히 감동과 웃음과 휴머니즘에 교훈도 있으니 참 재미진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아는 여러 삼국지 관련 유명 일화들 중, 안타깝게도 나관중이 지은 뻥이 대부분... (이는 차차 설명하기로~) 실제의 역사적 사실만을 무미건조하게 엮어놓은 사료도 있고 이는 "삼국지정사"라고 따로 있다. (니가 생각하는 그 정사 아님.. 正史 바른 역사) 지은이는 "진수"라는 중국의 촉한 말기의 역사가. 나도 읽어봤는데, 지루하다.. 교회 안다니는 사람이 성경 읽어보는 그 느낌이다. 그리고 열전이라 해서 각 인물의 이야기만 다룬 것들도 있는데, 이건 모든 인물들이 다 있지도 않고, 또 이 열전은 진짜 구해 읽기 쉽지 않다ㅋ 여담으로 삼국지 관련, 가장 많은 정보와 자료는 당연히 본진인 중국국가기록원이 갖고 있지만, 민간 중 그에 버금가는 방대한 자료는 바로 일본의 게임회사인 "코에이"(KOEI)에서 갖고 있다ㅋㅋ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의 바로 그 코에이) 워낙 많은 자료와 기록 토대로 심지어 각 인물들의 외형의 이미지메이킹도 상당히 잘 해놓은 덕에 숱한 미디어 속 삼국지 인물묘사는 코에이의 묘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는ㅎㅎ 아무튼 우리가 아는 삼국지가 삼국지의 전부가 아니며, 그냥 부풀려진 구전민담..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들이 많은데 앞으로 여기에서는 누구나 아는 그런거 말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화, 실제의 기록 등... 삼국지의 껍질을 벗겨보는 칼럼들을 다뤄본다. 삼국지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기대해도 좋을 듯! 부디 많이들 와서 적극적인 피드백들 해주시길!
#115 수식이 필요 없는 장면들, 스튜디오 지브리
2013년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에서 은퇴를 선언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최근 다큐멘터리에서 복귀에 대한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의 오랜 팬이라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그는 “아무것도 안하고 죽는 것보다, 하고 있는 와중에 죽는 편이 차라리 낫다”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할 때, 그가 설립부터 함께했던 ‘스튜디오 지브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순 없을 것 같은데요. 오늘 일일영감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속 장면과 일러스트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1985년 6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한 회사를 모체로 설립된 스튜디오 지브리는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등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을 다수 제작했으며, 국내에서는 지난 2014년 <스튜디오 지브리 입체조형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일상의 풍경과 상상 속 장면을 구현해내는 데에 그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지브리만의 감성이 녹아 들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철저하게 수작업을 고수했던 이전과 달리 최근 CG애니메이션 시작 단계임을 밝혔는데요. 이전과 다른 작업 방식을 택하여도 지브리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귀를 기울이면>, <바다가 들린다>, <코쿠리코 언덕에서>, <마녀 배달부 키키>,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이미지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식 사이트, > http://www.ghibli.jp
당부.
안녕하세요. Three Kingdoms Generation.의 필자입니다. 일단 삼국지관련 내용의 글이 아닌 점 먼저 사과드립니다.ㅎ 오늘은 이것저것 몇 가지 말씀 올리고자 타이핑을 합니다. 1. 표절. 연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데다, 아직 카드나 팔로워가 많은 편은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이리저리 빙글을 뒤적이다보니 몇 곳에서 제가 쓴 글과 흡사한 카드들을 몇 번 목격했습니다. '삼국지'라는 역사 및 소설관련 컨텐츠를 다루다보니 당연히 내용은 비슷할 수 있는 점 십분 헤아리지만 읽어보면 제가 쓴 문장의 구성이나 표현, 어휘까지 같거나 매우 흡사한 경우들이 있더라구요. 제가 쓰는 이 칼럼은 보시는 분들의 생각 이상으로 공을 들여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제가 삼국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어린시절부터 찾아보고 조사하고 공부하며 모은 수 많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쓰여지며, 이것들을 알맞게 구성하여 쓰다보면 순수 작성시간만 짧게는 2~3시간, 길면 5시간 가까이 소요됩니다. '아니, 겨우 스마트폰으로 글 쓰는게 뭐 이리 오래 걸려???' 하실 수도 있어 의아하시겠지만... 저도 그냥 베껴 쓰거나 하는게 아닌 제가 아는 지식들을 좀 읽기 편하게, 그나마 재미있게, 되도록 자연스럽게 쓰고자 어떻게 쓸 지를 고민하고 다듬으며 쓰다보니 그리 시간이 걸리며 저도 제 생업과 사생활이 있다보니 마냥 시간을 내기 힘들어 보통 2~4일에 걸쳐 써나갑니다. 물론, 제 칼럼들을 베끼셨던 참고하셨던... 그분들이 사익을 추구하여 그러시진 않은 거 같긴 해도 어쨌건 저로서는 수일 간 공들인 제 성과물이 누군가에 의해 몇 분만에 표절 되는건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전에 어느 독자분께서 자신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출처를 밝혀서 사용하고 싶다고 하셨던 적이 있었는데, 얼마던지 스크랩, 클립해 가셔도 좋고 오히려 그렇게 여기저기 이리저리 제 글이 퍼져나가 삼국지에 대해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느끼시는 분이 늘어나는 것은 저로서도 즐겁고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단순 표절은 금해주셨으면 하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존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혹자는 '니가 첨부하는 그림과 사진은 그럼 뭐냐'라고 하실 수도 있지만, 제가 첨부하는 매체들은 누가 봐도 어디의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들이고 매체의 저작권자들이 이미 이익추구가 아닌 분야들에 대한 개방을 허한 매체들이라 제 글을 베끼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2. 부진. 안타깝게도 점점 연재가 진행될 수록 초반에 비해 '팔로워증가', '좋아요', '클립' 등의 수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그 원인으로는 첫째가 너무 더딘 제 "연재속도", 두번째는 "인기스타의 부재"가 아닌가 싶네요ㅎ 일단 연재속도에 대해서는 참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헌데 위에서 말씀 드렸듯, 글 쓰는데 걸리는 시간 자체가 길고 또 제가 전문작가가 아닌 관계로 일과 사생활이 병행되며 연재하다보니 아무래도 더뎌지네요;;, 그렇다고 스피드를 좀 내보자고 분량을 줄이자니 이 칼럼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의 기대치와 수준을 고려할 때, 분량의 축소는 곧 내용의 양과 질의 하락.. 다시말해, 퀄리티 하향의 우려가 생길거 같아서.. 물론, 길게 쓴다 능사는 아니지만 다른 분야와 달리 역사관련물은 내용이 디테일할수록 즉, 분량이 길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연재속도 탓에 분량을 타협할 생각은 없다보니 그런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댓글보면 조운, 조조, 장료, 여몽 등등 네임밸류 있는 인물들에 대한 니즈가 많은데, 일전에 이미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제 나름으로는 그런 인기인물, 유명인물들이 초반에 나오기 시작하면 뒤로 갈수록 이 칼럼의 위력이 반감할까 싶은 우려로 좀 아껴두던 터였습니다. 게다가 비록 우리가 잘 모르는, 혹은 아예 처음 듣는 이름의 인물들을 제가 재조명하여 그들 역시 역사 속의 주요했던 이들임을 부각시켜주고픈 마음도 컸기에ㅎㅎ 아무튼 연재속도도 최대한 스퍼트를 올려보고 앞으로는 중간중간 이쯤이다 싶을 때 유명인물들도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 3. 부탁. 대신 저도(건방지게) 부탁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읽어주시는 것으로도 참 고맙습니다만..ㅎㅎ 그래도 기왕이면, "좋아요"도 좀 클릭해주시고, 또 "클립" 해가셔서 본인들 컬렉션에도 게시하여 보다 많은 분들이 보실 수 있게끔 홍보도 부탁 드립니다! 나아가 아직 팔로우 안하신 분들은 "팔로우"도 해주십사 고개 숙여 청을 좀 드립니다. 허허허;;; 물론, 다양한 내용의 "댓글"들도 언제나 대환영! 길이와 내용 관계없이 댓글들은 항상 힘이 되거든요. 제가 여기에 글 써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어디 입사지원할 때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그저 취미로 쓰는 것인지라 여러분들의 "팔,좋,클,댓"의 피드백이 제 엔돌핀이고 에너지!! 또, 혹시 Three Kindoms Generation.의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나 건의사항 있는 분들은 지금 이 글에 댓글을 좀 부탁드립니다. 4. 출판. 댓글 주시는 분들 중 은근 많은 분들이 해주시는 말 중에 "책 내시면 꼭 살께요!" "한 번 책으로 내보세요ㅎ" 등등이 있습니다. ..ㅋㅋㅋ 출판이라...허헣 일단 누가 책을 내줘야 저도 출판을 하는거겠지만, 제가 전문작가가 아니다보니 필력도 부족하고 또 요즘같은 모바일시대에 설령 책을 낸들, 인쇄간행물이 과연 얼마나 판매가 될지도 의문이고..ㅋ 그리고 이 칼럼독자분들이야 아니라 생각하시겠지만 요새 들어서는 워낙에 미디어가 풍년이다보니 삼국지라는 컨텐츠가 어딘가 모르게 매니악한 소제로 치부된다는 인상도 받습니다만ㅎ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삼국지를 읽지 않은 자와는 벗 삼지 말라"는 말까지 있던 보편적 매체였는데, 지금은 삼국지가 뭔지 모르는 분들도 적잖은 세상 같아서 좀 서글프네요...T-T 여튼 출판관련 말씀들은 그만큼 좋다는 칭찬들이시니 기분좋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엇?! 벌써 새 카드가 올라왔어!?' 하시는 마음으로 반갑게 클릭했더니 왠 쓰잘데없는 사설이냐며 실망하셨을 분들께는 다시 한 번 사과와 양해를 올리며, 삼국지관련 내용은 최대한 빨리 연재할께요! 항상 많은 관심 주시고 찾아 주시며 읽어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 드리고 싶네요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