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inn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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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반오십

Sheep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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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eppppㅋㅋㅋㅋㅋㅋㅋ 재밌네여 ㅋㅋ
와저를위한..또르륵
너무 좋아요ㅋㅋ
빠른92는 어찌하나
@jaeseongpark334 내년은 병신년 반오Shit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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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퇴근 후 카페를 갔다. 코로나 관련 산문 두 편과 단편소설 두 편을 읽었다. 산문은 뭐 그럭저럭. 소설은 두 편 다 문제가 많았는데, 한 편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가독성이 떨어졌다. 처음 보는 소설가였고, 이름을 검색해보니 아주 오래전에 등단한 사람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출간한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어떤 경로로 갑자기 잡지에 소설을 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토록 가독성 떨어지는 소설, 그것도 등단 소설가의 작품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시간이 아까웠다는 소리다. 또 다른 소설은 여성 서사였는데, 가독성은 좋았지만 시의성이 몇 박자 늦는 감이 있었다. 한국 문단에서 현재 여성 서사는 아주 급진적인 속도로 가지를 뻗어 나가는 중인데 5, 6년 전에나 나왔으면 겨우 봐줄 만했을까 싶은 초보적인 담론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이 소설로 인해 오히려 여성 서사의 현재, 문단의 중심에서 앞다퉈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다른 젊은 작가들의 힘을 새삼 느꼈다. 페미니즘 소설이 여전히 강세이지만 단순히 주제가 그것이라고 해서 박수받을 시기는 이미 지났다. 여성 서사의 첨단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윤리의 발굴이 한창이다. 작가라면 이 바닥의 동향을 꾸준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말하고 보니 찔리네.)
[토박이말 살리기]1-83 마닐마닐하다
[토박이말 살리기]1-83 마닐마닐하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마닐마닐하다'입니다. 이 말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음식이 씹어 먹기에 알맞도록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라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기월로 홍명희의 임꺽정에 나오는 "음식상을 들여다보았다. 입에 마닐마닐한 것은 밤에 다 먹고 남은 것으로 요기될 말한 것이 겉밤 여남은 개와 흰무리 부스러기뿐이었다."를 들었습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음식이) 씹어 먹기에 알맞게 무르고 부드럽다.'라고 풀이를 해 놓고 "마닐마닐한 군고구마는 겨울에 누릴 수 있는 하나의 즐거움이다."는 보기월을 들었습니다. 두 가지 풀이가 비슷한데 둘을 더해 다음과 같이 다듬어 보았습니다. 마닐마닐하다: 먹거리가 씹어 먹기에 알맞게 무르고 부드러우며 말랑말랑하다. 이 말은 저처럼 이가 튼튼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주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이가 좋지 않다고 마닐마닐한 것만 찾으면 이가 더 안 좋아진다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너무 단단한 것을 많이 드시면 이를 다칠 수도 있으니 알맞게 단단한 것들을 꼭꼭 씹어서 부드럽게 만들어 먹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마닐마닐하다'에서 '하다'를 뺀 '마닐마닐'은 '먹거리가 먹기 알맞게 무르고 부드러운 됨새(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됩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목구멍으로 마닐마닐 넘어갈 수 있는 것은 벌써 다 먹었고 지금 있는 것이라고는 보리죽 쑤어 먹을 것밖에 남지 않았다."를 보기로 들었습니다. 저는 마닐마닐한 것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달걀'이 떠오르는데 여러분은 무엇이 떠오르시는지요? 오늘도 토박이말에 마음을 써 봐 주시고 좋아해 주시며 둘레 사람들에게 나눠 주시는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4354해 열달 스무엿새 두날(2021년 10월 26일 화요일) 바람 바람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 #살리기 #마닐마닐하다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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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수필집 원고를 교정 보고 있다. 저자는 지방의 나이 지긋한 여성분인데, 대표의 측근 건너 건너 소개로 들어온 원고다. 이 원고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수준 미달인데, 이것에 굳이 ISBN을 등록하고 출간하여 유통시켜야 하나 싶은 회의감이 많이 든다. 원고를 읽다 보니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다. 기본적인 글쓰기 역량이 전혀 안 되어있는 것이나 수필다운 깊이를 전혀 담보하지 못하는 것은 둘째 치고, 저자가 긴 시간에 걸쳐 써온 한 편 한 편의 글들이 예외 없이 거의 모두 심각한 수준으로 시대착오적이다. 그녀의 원고는 간단히 말하자면 가부장제와 남아선호사상을 비롯한 전반적인 여성혐오에 완벽하게 학습된, 그리하여 자신이 피해자인 것을 모르지는 않으나(아니 모르는 것일까?) 그것을 전혀 문제 삼지 않고(혹은 문제 삼지 못하고), 오히려 그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무조건 문제를 삼고 싸우라는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고,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명색이 작가라면 말이다. 젊어서 오로지 피해자이기만 했던 그녀는 이제 나이가 들어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위치가 되었다.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녀에게 학습된, 이제는 사라져야 할 유산이 고스란히 자녀 세대에게도 답습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렇다. 가령 본인 역시 늦둥이 아들을 낳기 전까지 숱한 핍박을 받았음에도, 자신의 딸 역시 아들을 낳기를 은근히 바라는 그 무모함이나, 이제 막 성인이 된 딸에게 ‘여자다움’을 가르쳤다고 하는 부분이나, 평생을 남의 생일은 알아도 며느리의 생일은 모른 척한 시어머니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그리워하는 것, 그러한 어머니와 아내로부터 방관자로서만 일관한 남편에게 여전히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레 행동하는 희생자적 태도 같은 것들은 정말이지 남자인 내가 봐도 답답할 지경이다. 이런 나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그 근원이 뭐가 됐든 행복하다는 사람에게 당신은 뭘 모르고 있다고, 당신은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권리는 없으며, 남의 가정사에 재를 뿌리고 싶지도 않다. 다만, 그 행복은 그 집안에서만 통용되었으면 한다. 혹자는 그 시대 어머님들은 다 그렇다, 그들을 욕해서는 안 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 자체를 욕하자는 게 아니다. 그녀는 당연히 여성혐오 사회를 구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은 것뿐이다. 다만 그게 그녀의 의도처럼 이 사회에 이상적인 방식은 아닐 뿐. 또한 그녀가 피해자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녀의 정당화된 삶이 가족들끼리만 돌려보는 가족 문집이 아니라 엄연히 유통되어 판매가 가능한 도서가 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물론 아직 나오기도 전인 이 책이 전반적인 상황에 비추어 팔리지 않을 것도 이미 잘 알고 있고, 세상에 이런 책이 나왔는지 사람들이 거의 모른 채 묻힐 가능성이 90% 이상이다. 저자 또한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엄연히 출판 시장 한구석에 올라가는 도서다. 한 집안의 며느리, 아내, 엄마로서의 그녀의 삶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가부를 떠나서 윗세대 어른들의 공고한 사회를 무너뜨리고 싶은 투사로서의 욕심도 힘도 그다지 없다. 다만 나는 작가로서의 그녀를 비판하고 싶다. 그녀의 글을 보고 있자면 작가로서의 자의식도 없지 않은데, 그녀의 잘못은 이 모순되는 두 위치의 욕망을 어떠한 분리도 없이 가지려는 것이다. 의도를 떠나서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에 기여하는 위치에 있더라도, 동시에 작가로서의 자의식도 가지고 싶다면,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위치로 빠져나와야 하지 않을까.(하긴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노골적인 공헌자가 되지도 않았겠지만.) 그래야 그나마의 정신승리라도 가능해질 테고. 이름 앞에 ‘작가’를 붙였다고 해서 자연스레 작가가 되는 게 아니다. 생활인으로서의 그녀와 작가로서의 그녀가 전혀 분리되지 않고 있으니 작가로서의 그녀가 생활인으로서의 그녀에게 완전히 잠식되어 있다. * 말이 나온 김에 여성 운동 및 남녀갈등에 대해 짧게나마 얘기해보고 싶다. 아무리 신중히 말을 골라도 내 생각에 허점들이 많을 것이나, 감안하고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나는 페미니즘을 응원하지만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아니,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기보다 영영 완전한 페미니스트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나 역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기여한 남성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혐오가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페미니즘을 들여다보고 공부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적어도 무지에 의한 혐오는 멈추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그런데 페미니즘은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도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한참을 언급한 나이 지긋한 여성 세대뿐 아니라 내 또래의 세대 또한 마찬가지다. 내 또래 세대가 바로 그 윗세대를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피해자임을 오롯이 직시하지 못하는 내 또래 여성을 생각보다 여러 차례 보았다. 자신이 피해자임에도 무지로 인해 가해자의 세계를 대변하게 되는 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내 또래보다 젊은 세대들은 사실 그 굴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강경하기도 하다. 그래서 그것에 반발하는 남성들이 생겨나고 남녀갈등은 거의 진흙탕 싸움이 되다시피 했는데, 미러링에 대한 생각은 그러하다. 우선은 미러링이 나오게 된 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소 극단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여성들은 이제껏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돌변한 게 아니라, 더는 먹히지 않는 목소리에 힘을 줄 때가 된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오랫동안 굳어져 온 관습을 어떻게 조용한 목소리로 바꾸나. 강경하게, 큰 소리를 내야 사람들은 겨우 돌아본다. 다른 비슷한 예로, 광장에서의 LGBT 운동을 들 수 있다. 그들을 비난하는 의견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다. 꼭 저렇게 극단적인 분장을 하고 요란을 떨어야 하나, 조용히 지낸다면 굳이 욕할 생각 없다. 이 의견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혐오성이 짙다. 당신들의 삶에 관심 없으니 티내지 말고 숨어서 지내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다소 과장된 듯한 퍼포먼스를 하는지 역시 알 것 같은데, 그래야 그들의 존재를 봐주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큰 목소리와 눈에 띄는 행동이 필요할 뿐이다. 다만 나는 주객이 전도되어 어떠한 성취도 없이 혐오만 남는 것은 반대다. 페미니즘의 목표는 남녀가 동등한 권리를 갖고 그로 인해 모두에게 이상적인 사회로 진화해가자는 것이지, 이제껏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한 남성을 영원히 적으로 돌리고 살자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세상에는 온갖 차별이 만연한다. 여성차별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 차별, 인종 차별, 노인 차별 등 갖가지의 차별이 존재하는 만큼 모두가 어느 위치에서는 피해자이고, 어느 위치에서는 가해자다. 모든 이가 어떤 식으로든 편견과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면, 무조건 배제하지 말고 적어도 차별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최소한으로라도 존중되었으면 한다. 어렵기는 하지만 그렇게 뭔가를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역시 그 단계는 남성들이 충분히 여성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경청할 준비가 되었을 때(과연 그 때가 오기는 할까.)나 올 것이다. 지금은 피해자가 자신을 대변하는 상황에서 부득이하게 저지른 사소한 실수 같은 것을 지적할 때가 아니라, 우선은 그의 호소를 들어주어야 할 때인 것이다. 아주 긴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해야 할 거다.
짓밟혀도 꽃피우는 민들레
지금의 제주도를 최대의 감귤 생산지로 정착시키고, 맛도 좋고 튼튼한 강원도 감자를 계량, 현재까지 이어지는 배추와 무의 품종개량, 우리 땅에 맞도록 개량된 쌀, 과일 품종의 정착과 대량생산기술개발, 씨앗의 생명력 강화 개량 등을 이끈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식물학자 우장춘 박사입니다. 그는 조선말 무신이자 친일파 우범선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 그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그 결과로 가세가 기울자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보육원에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 그렇게 아버지의 원죄를 짊어지고, 일본에서는 조선인, 조선에서는 민족반역자의 아들로 삶을 살아야 했던 비운의 천재였습니다. ​ 그런데도 그는 신념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 도쿄 국제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으며 세계적인 육종학자가 되었습니다. ​ 집안 형편과 출신 때문에 실력과 관계없이 실업 분야를 선택했지만, 그는 그곳에서 정상에 오른 것입니다. ​ 광복 후 식량난에 허덕이던 대한민국이 도움을 청하자 우장춘 박사는 남은 일생을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자 했습니다. ​ 그렇게 우장춘 박사는 죽는 날까지 어깨를 짓누르던 아버지의 그릇된 그림자를 어떻게든 지우고자 사력을 다했습니다. ​ 그러나 죽는 날까지 따라다녔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리고 긴장된 한일관계 속에 훈장 수여를 놓고 갑론을박하던 정부는 우장춘 박사가 사망하던 그해 병상에 있는 그에게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했습니다. ​ 병상에서 포장을 수여받은 우장춘 박사는 한참을 오열하면서 말했습니다. ​ “조국이 드디어 나를 인정했다!” 우장춘 박사가 한국으로 돌아가려 할 때 뛰어난 인재를 잃고 싶지 않던 일본 정부는 우장춘 박사를 감옥에 가두려는 초강수도 두었지만 스스로 조선인 수용소로 들어가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우장춘 박사는 가족을 위해 쓰라고 대한민국에서 준 돈까지도 우량종자를 사버리는 데 기꺼이 사용했습니다. ​ 수많은 냉대 속에서 학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길가에 핀 민들레처럼 살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 밟혀도 밟혀도 끈질긴 자생력을 갖고 금빛 찬란한 꽃을 피우는 민들레. 마치 민들레처럼 살아간 우장춘 박사의 좌우명은 그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 ​ # 오늘의 명언 얼굴을 들어 태양을 보라. 그리하면 그림자는 뒤로 물러날 것이다. – 지그 지글러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고난#역경#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아모레 셈프레
오래전 유럽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아모레 셈프레(영원한 사랑)’라는 이탈리아어가 적힌 두 통의 엽서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숨을 거둔 한 할머니의 사연입니다. 1941년 이탈리아의 장교였던 루이지는 그리스 아름다운 항구도시 파트라이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첫사랑 안겔리키를 만나게 됐습니다. ​ 행군하던 루이지는 안겔리키에게 길을 물었고 그녀는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루이지는 그녀가 굶주림에 지쳐 있음을 눈치채고는 갖고 있던 전투식량과 음식들을 그녀에게 나눠주었고 이를 계기로 이 두 남녀는 가까워졌습니다. ​ 이후에도 루이지는 먹을 것을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고, 그렇게 서로의 말을 배우며 비밀스러운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 그러나 19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급하게 루이지는 고국으로 귀국해야 했습니다. 비록 적군의 장교였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청혼했고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 그렇게 이탈리아로 돌아간 루이지는 그녀에게 매일 편지를 썼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그녀의 고모가 그들의 결혼을 막기 위하여 편지들을 소각해버렸던 것이었습니다. ​ 루이지는 이를 모른 채 답장을 기다렸지만, 천일이라는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실망한 루이지는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 긴 세월이 지나고 루이지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자, 희미한 옛사랑인 안겔리키를 찾고자 했습니다. ​ 그의 노력에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루이지와 안겔리키는 반세기가 흐른 뒤에야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 안겔리키의 첫마디였습니다. 사실 그녀는 60년 가까운 옛날의 결혼 약속을 여전히 믿으며 살던 지역을 떠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 너무도 감격한 둘은 다시 결혼을 약속합니다. 당시 그들의 나이는 77세, 79세였습니다. ​ 이 만남 이후로 루이지는 청년 시절과 같이 안겔리키에게 매일 ‘아모레 셈프레(영원한 사랑)’라는 단어가 적힌 사랑의 편지를 보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습니다. ​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다음 해 결혼식을 2주 남겨놓고 안겔리키는 그가 보낸 편지들을 가슴에 안고 숨을 거두기 전 이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 ‘티 아스페토콘 그란데 아모레’ (난 위대한 사랑을 안고 그대를 기다렸어요.) 사랑은 시간이 지나 청년에서 노인이 되어도 언제나 늙지도 않고 반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 곁에 주렁주렁 조건을 달아놓고 세상의 잣대로 사랑의 조건을 평가합니다. ​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남는다 한들 남은 것 중 어떤 하나라도 진정한 사랑보다 값진 게 있을까요? ​ ​ # 오늘의 명언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 막스 뮐러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사랑#사랑의조건#영원한사랑#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
나폴레옹의 세 마디
한 소년이 동산 위 무지개를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붙잡고 싶어 말 등에 올라타고 동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무지개는 저 멀리 산 위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이번엔 산을 올랐습니다. 무지개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로 정상에 섰지만 무지개는 바다 위에 떠 있었습니다. ​ 아무리 높은 곳에 올라도 무지개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곤 실망한 소년은 피곤함에 지쳐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 이 소년의 이름은 나폴레옹입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꿈이 큰 소년이었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처절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 그 결과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프랑스의 황제로 군림했고 많은 부와 명예를 손에 쥐었습니다. ​ 그러나 전쟁에 패한 후 쫓겨간 유배지에서 초라한 죽음을 앞두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프랑스, 군인, 조제핀.” ​ 그가 사랑한 조국 프랑스, 그의 명예와 긍지 군인, 마지막으로 그와 이혼한 첫 아내 조제핀… ​ 이 세 마디는 나폴레옹이 가장 사랑하는 것들로 인생의 허무가 담긴 아쉬운 절규였습니다. 죽음은 모두에게 평등합니다. 그 누구도 죽음의 그림자를 피할 수 없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 후회되는 기억보다 행복했던 기억이 더 많길 원한다면 지금의 삶에서 허무한 것과 가치 있는 것을 구분하며 사는 지혜로운 삶을 사십시오. ​ ​ # 오늘의 명언 하루하루를 자기 인생의 마지막 날같이 살아라. 언젠가는 그날들 가운데 진짜 마지막 날이 있을 테니까. – 레오 부스칼리아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죽음#공수레공수거#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한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