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ozy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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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박물관

2014.12.27
부산 도착해서
일부러 들린곳
사진은 많지만
몇가지만 포스팅
다른 박물관과
전시품이 조금 다른 느낌이다

7번 사진은 쓰시마에 원본이 있고
복사본을 전시 해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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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피카소 그림 완전 이상하지 않음???
<The Dream>, Pablo Picasso (1932) 피카소의 작품인 <꿈>이다. 소파에 잠들어 있는 여자를 그린 이 그림에 당신은 얼마를 지불할 수 있는가? 천만 원? 1억? 10억? 100억? '그래도 피카소인데...'라며 호기롭게 100억을 부른 사람일지라도 이 그림의 가격을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의 가격은 1800억이다. 피카소는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화가다. 아니, 이 잠자는 여자 그림이 뭐라고 1800억이나 한단 말인가? 이 그림이 뭐길래? 아니, 애초에 피카소가 뭐길래!! '잘 그렸다'고는 죽어도 못할 그림만 그리는 피카소에 왜 사람들은 열광하는가? 저 그림 나부랭이에 왜 누군가는 1800억을 갖다 바치는가? 분노 비슷한 감정과 함께 밀려드는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결해 보자. [I have an apple] 세상은 사과가 바꾼다. 세상을 만들고, 세상을 바꿔온 사과들을 우리는 '인류의 3대 사과'라고 부른다. 인류의 3대 사과 중 첫번째는 이브의 사과이다. 이브는 신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는다. 이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신처럼 살던 아담과 이브가 인간계로 쫓겨나고, 인류의 역사는 시작된다. (고 전해진다.) 두번째는 뉴턴의 사과이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를 보고 뉴턴은 만유인력을 발견한다. (고 전해진다.) 세번째는 세잔의 사과이다. "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할 것이다."라고 외친 화가, 폴 세잔이 그린 사과로 인해 큐비즘이 탄생하고 피카소가 괴상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딴 게 무슨 작품이야!!'라며 혼란에 빠진다. <Table Corner>, Paul Cezanne (1895~1900) 세잔이 그리는 '사과가 있는 정물화'의 대표적인 유형의 그림이다. 동네 미술학원만 가도 이정도 그림은 발에 채일텐데 이건 또 왜 3대 사과인걸까? 그렇게 잘 그린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게다가 눈썰미 좋은, '이과본능' 투철한 빙글러라면 발견할 발암 포인트들도 상당하다. 1. 빨간 화살표 - 빛의 방향이 다 제각각이다. 빛의 방향이 맘대로다보니 그림자의 방향이 다 다르다. 미대 입시 현장이었다면 찢어버려야 할 그림이다. 2. 파란 선 - 테이블의 끝 선이 맞지 않는다. 테이블이 멀리 있다가 가까이 있다가 한 것처럼 테이블과 시야 사이의 거리가 제각각이다. 미대 입시 채점관이 본다면 뒷목 잡을 그림이다. 3. 노란 선으로 표시한 각도 - 접시가 거의 수직으로 기울어져있다. 저정도 기울어져 있는 접시라면 과일이 다 쏟아지는 게 정상이다. 선배 사과인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 중력도 모르는건가? <Parrot tulips, carnations, columbine, marigolds and other flowers in a woven basket, with shells, peaches, cherries, cranberries, plums, a grasshopper and other insects, on a stone ledge>, Van der Ast 반면 이 그림을 보자. 16세기 네덜란드 화가가 그린, 기가 막히게 사실적인 그림이다. 빛의 방향도 정갈하게 일치하고, 구도도 매우 안정적이며, 모든 물리법칙들도 충실히 구현되어 있다. 그야말로 '잘 그린' 이 그림은 세잔의 그림으로 어지러워진 우리의 심신을 달래주는 느낌이다. (그림 제목이 무식할 정도로 드럽게 긴 것만 빼면 완벽하다.) 빛 방향 엉망, 거리감 엉망, 시야 엉망 물리적, 미적, 조형적 완벽 왜 저런 좋은 그림을 놔두고 세잔의 이상한 그림을 3대 사과에 껴주는 걸까? 세잔의 그림은 한 시점에 나올 수 없는, 제각각인 빛의 방향 때문에 이상하고, 제각각인 거리감 때문에 이상하고, 제각각인 각도 때문에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불만에 세잔은 대답한다. "한 시점이라고 한 적 없는데??" [진, 선, 미] 미술계에서 당연히 한 시점으로 그리는 걸로 약속됐는데 지 혼자 맘대로 그걸 깬 것이 대단하다는 건가? 아니다. 세잔의 가치는 '한 시점으로 그리는 걸 약속 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는 데에 있다. 미학의 목표는 예쁘게 그리자가 아니다. 미학의 목표는, 과학과 철학(혹은 윤리)의 목표와 같다.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목표이다. 진/선/미는 고대로부터 인류가 추구해온 가치이다. 무엇이 진리인가? (진) 무엇이 옳은가? (선) 무엇이 아름다움인가? (미)에 대한 탐구가 하나의 세트라는 것이다. 미학은 과학&철학과 세트로 세상의 본질을 파헤치는 것이 목적이고 가치의 근원이다. 따라서 화가는, 그리고 미학은 '한 시점으로 예쁘게 그리자'를 약속한 적이 없다. '세상의 본질을 파헤쳐서 드러내자'를 약속한다. 그 본질과 이치를 잘 표현하던 수단이 예전에는 빛의 방향이었고, 원근이었고, 물리적 안정이었다. 그게 '실제'고 '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적 생각의 흐름을 '사조'라고 한다. 당대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던 사조에 의문을 던진 게 세잔이다. 진짜 이렇게 생겼어? 이게 진리가 맞아? 그리고 그림을 통해 조곤조곤 질문한다. "본질인데 왜 한 면만 보여줘야해? 여러 면에서 보아야 본질에 더 가깝잖아" "본질인데 왜 한 순간의 모습만 담아? 다음 순간에는 변하는데 그 본질은 왜 표현 안 해?" "저렇게 정적으로 가만히 있다고? 안움직여? 움직이면 다 바뀔텐데?" 세잔은 테이블이 멀 때의 모습도 그리고 가까울 때의 모습도 그린다. 그래서 테이블 끝 선이 맞지 않고 삐뚤빼뚤하다. 세잔은 이쪽에서 본 모습도 그리고, 저쪽에서 본 모습도 그린다. 그래서 과일의 여러면이 다 그려져있고 빛의 방향과 그림자의 방향이 제각각이다. 세잔은 멀리서 비스듬히 본 모습도 그리고, 인스타 음식샷처럼 수직으로 본 모습도 그린다. 쏟아질듯한 접시의 모습은, 비스듬한 전체 구도와 다르게 위에서 내려다 본 접시의 모습을 그렸기 때문일지 모른다. 시간의 변화, 시점의 변화, 장소의 변화, 구도의 변화까지 담아냈다. 좀 더 본질과 진리에 가까우려면 시간, 시점, 장소, 구도의 변화까지도 담아내야 한다는 얘기다. '예쁘진' 않을 지 몰라도 '사조를 바꿔낸' 이 그림이 주장하는 바는 강력하다. 우리가 '사실적'이라며 입이 마르게 칭찬한 그림이 오히려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세잔이 쏘아올린 작은 사과] 세잔의 기법은 많은 화가들에게 충격과 영감을 준다. 화가들 중에서도 세잔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인정? 어 인정!"을 연발하던 화가가 둘 있었다. 그 두 명의 화가가 '브라크'와 '피카소'(드디어!)다. 브라크는 세잔이 이야기한 '본질'을 찾는 방법으로 '기하학적 도형'에 주목한다. 그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세상의 본질과 진리를 추적하다보면 세상은 결국 기하학적 도형으로 환원된다고 믿는다. '공'하면 축구공, 농구공, 볼링공, 낡은 공, 무거운 공, 노란 공 등등 여러 공을 이야기하지만 본질은 '원'이듯이 말이다. '집'하면 아파트, 주택, 한옥, 양옥, 원룸, 오피스텔, 큰 집, 작은 집 등등 여러 집이 있지만 본질은 '직육면체' 이듯이 말이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브라크에게 '집'을 그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알록달록 예쁜 집을 그릴 리는 절대 없다. 이런 그림이 니온다. <Houses at Estaque>, Georges Braque (1908) '잘 그렸냐'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라고 대답하겠지만, 솔직히 집 느낌은 어마무시하게 나는 이 그림이 브라크의 대표작이다. 으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는 이 그림을, 1908년 브라크는 당당하게 살롱 도톤이라는 전시회에 출품한다. 살롱 도톤은 보수적인 미술전에 반발해 시작된 진보적 작품을 위한 미술전으로, 이 미술전의 주최자 중 한명인 마티스는 진보적 미술의 아이콘 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 진보적인 미술의 아이콘 마티스도 이 작품은 진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이렇게 평한다. "야 이건 그냥 큐브 쌓아 놓은 거 아니냐??" 브라크의 작품을 낙방시키면서 한 마티스의 평은, 입체파(큐비즘)이라는 말의 어원이 된다. 이렇게 용어가 정립되기 바로 한 해 전, 기존의 미술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3차원적 그림으로 세상에 충격을 안겨 준 화가가 바로 피카소다. 세잔의 그림이 조곤조곤 의문을 제기하는 느낌이라면 피카소는 아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피카소가 지르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소재 <Venus of Urbino>, Tiziano (1537~1538) 여성의 누드를 소재로 한 그림은 많지만, 대개 이런 느낌이다. 실제로는 베네치아의 한 귀족을 그린 것이지만 제목은 '우르비노의 비너스'이다. 신화 속 여신 '비너스'를 그렸다는 명분은, 누드를 그려도 속되지 않고 신성한 그림으로서 인식될 수 있게 해 준다. 몸의 곡선과 질감 또한 극도로 이상화된, 여성적 아름다움의 전형을 담고 있다. 이러한 관습에 먼저 돌을 집어 던진 건 '마네'다. <Olympia>, Manet (1863) 마네는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모방하며, 여신이 아닌 창녀의 나체를 그린 그림 <올랭피아>를 내어 놓는다. 매혹적인 고개 각도와 표정으로 유혹하듯 바라보는 여신 대신, 세상 귀찮은 표정을 하고 있는 여인을 눕혀 놓았다. 몸의 비율과 형태도 굉장히 사실적이다. 여신이 있던 자리에 드러누운 여성은, 파리의 밤풍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현실에 없는 여신 대신 현실에 있는 창녀가 누웠다. 그림은 좀 더 '진실'에 근접해졌다. 여기에 피카소는 더 큰 짱돌은 집어던진다. < Les Demoiselles d'Avignon>, Pablo Picasso (1907)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이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에 그려진 누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도 <올랭피아>와 같이 사창가의 여성들이다. 바르셀로나 아비뇽 인근 사창가의 여성들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여신의 누드'라는 비현실적인 소재는 '사창가 창녀들의 누드'라는 기분나쁠 정도로 현실적인 소재로 치환되었다. 2. 표현 <올랭피아> 속 여인은 캔버스 밖 관람자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왼쪽 아래로 흘러내려가 버린 시선은 '도발적인 소재에 비해 위협감을 느낄 정도는 아닌'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아비뇽의 처녀들> 속 여인들은 괴상한 눈으로 관람자를 똑바로 쳐다본다. 기괴한 모습의 처녀들의 삐뚤빼뚤한 눈이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상황은 강렬한 위협을 선사한다. 도발적인 소재의 도전정신이 최대한 발현되도록 해주는 장치이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입체주의 작품답게, 멀리서 본 얼굴, 가까이서 본 얼굴, 먼 배경, 가까운 배경, 측면에서 본 모습, 정면에서 본 모습 등등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3차원 적인 모든 속성을 쭈욱 늘어놓고, 2차원적 캔버스 안에 재구성한 것이다. 보기 예쁜 것과는 별개로, 기존의 표현양식이 다룰 수 없는 대상의 본질과 진실에 대해 실컷 표현한 작품인 것이다. 기하학적 도형으로의 환원도 드러난다. 그림의 맨 앞에 표현된 과일접시는(처녀들의 모습과는 다르게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 본 인스타 음식샷으로 그려졌다) 도형으로 환원되어 표현된다. 입체주의의 시작을 쩌렁쩌렁 알리는 매우 시끄러운 효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3. 모티프 '기존의 미술이 표현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을 찾아 해메던 진보적 화가들에게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영감의 보고였다. 피카소도 아프리카 미술에 크게 영향을 받은 작가 중 한 명이며, 특히 아프리카 조각 모티프는 그의 회화 곳곳에서 활용되었다. 다양한 시점이 혼합되어 기괴한 느낌을 자아내는 5명의 처녀 중 우측 두명의 임팩트는 특히 남다른데, 이는 아프리카 조각을 처녀의 얼굴형태에 직접적으로 차용한 효과이다. 도전적 소재의 적극적인 활용, 당대의 사조를 때려 뿌수는 표현의 확장, 새로운 영감과 모티프의 활용을 통해 쩌렁쩌렁한 소리를 내지른 피카소. 입체주의를 탄생시키며 회화 역사의 달력을 한 장 넘긴 피카소의 가치에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브라크가 일관성 있게 분석적 큐비즘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것과는 다르게, 피카소는 시대와 본인의 멘탈에 따라 다양한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여러가지 '색'으로 구분되는 피카소의 파란만장한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이후에 서술하기로 한다. **쉽고 재미있는 예술 이야기 ArtStroy Collection 팔로우
[펌] 단무지의 유래와 색에 관한 이야기
단무지의 유래에 대한 설은 매우 여러가지이다. 심지어 한국의 승려인 택암이 전파했다고도 알려져있는데 뭐 이건 같은 승려인 신미대사가 한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동급인 내용이고 전국시대 당시 일본의 타쿠앙 소호라는 승려가 만든 타쿠앙즈케라는 선식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타쿠앙은 절에서 장기간 동안 보관할 수 있는 간단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쌀겨와 소금으로 무를 절이고 버무린 뒤 항아리 담아 익히는 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이후 타쿠앙이 있던 동해사라는 사찰에 당시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방문하게 되어 대접을 해야하는데 산해진미에 익숙한 이에미츠를 위한 고기 같은게 절에 있을리가 없고 그냥 이 무절임에다 밥을 내어주게 됐다. 의외로 담백한 맛에 이에미츠가 반하게 됐고 이에미츠는 이 반찬의 이름을 물었지만 아무 이름도 없는 무절임이라는 말에 개발자인 타쿠앙의 이름을 붙혀 타쿠앙즈케 즉 타쿠앙절임 이라고 이름을 지어주게된다. 이 간단해보이는 무절임이 긴박한 전장터에서 밥을 제때 챙길 수 없는 병사들에게 쓸모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미츠는 이후 출병하는 병졸들에게도 통으로 허리춤에 차게한 채 전쟁을 하도록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게 ‘타쿠앙’은 오랜 시간동안 일본의 대표적인 야채절임으로 전해져 왔고 쌀겨로 수개월간 숙성시키는 방식으로 인해 제작 비용이 높은 고-오급 반찬으로써 막부의 장군이나 호위무사들의 밥상에서나 볼수 있는 음식이 됐다. 그런데 원조인 타쿠앙의 색깔은 지금 우리가 먹는 단무지처럼 노란게 아니라 뒤죽박죽이었다. 앞서 말한 쌀겨로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숙성기간에 따라 무가 노랗거나 회색 또는 갈색으로 변색되는데 만드는 사람마다 색이 달라서 이게 무슨 절임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결국 타쿠앙을 만드는 사람들은 색을 통일하기 위해 치자나무 열매를 우린 물 또는 울금을 첨가해서 노랗게 만들게 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 타쿠앙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면서부터 아예 황색 색소를 이용하는 케이스가 정착해 우리가 아는 단무지 색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엔 언제부터 단무지가 나온 것일까? 일제강점기 때 명월관이라는 식당이 처음 문을 열게되는데 이 명월관을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외식문화가 성행하게 됐다. 근데 당시엔 돈있는 사람들만 이런 고급식당에서 외식을 즐길 수 있었는데 주 고객이 누구일까? 바로 일본인이었다. 이 일본인들을 대접 하기 위해 고오급 반찬인 타쿠앙를 내오게 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된것이다. 중국집에서 단무지를 반찬으로 내게 된 것도 역시 일제 강점기 동안 인천에서 문을 열기 시작한 산동성 출신 중국인들의 요리집이 외식열풍으로 인해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마찬가지로 주 고객인 일본인 들의 입맛을 고려하여 내오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도 타쿠앙 이나 다꽝으로 불리던 이 고급반찬은 시대가 흐르고 급성장한 한국의 경제 상황에 맞춰 만만하고 친숙한 식재료가 됐고. 부르는 이름이 타쿠앙에서 단무지라고 변하게 되어 가장 성공적으로 일본의 잔재를 털어낸 단어가 됐다. 이렇게 한 중 일의 근대역사의 흐름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단무지는 어엿한 한국의 대표반찬이 되어 우리의 밥상을 지키고 있다.
지구 미니어처로 살펴보는 문명
NASA의 자료를 바탕으로 Anton Balazh라는 그래픽 아티스트가 만들어낸 형상들이다. 기존 지형도들이 수직적인 높이가 부족해 지형을 알아보기가 힘들어 해발 고도를 몇 배 더 높여서 지형을 체감시켜주는 지도다. 남미 칠레의 척박한 환경을 나타내는 안데스 산맥이 남미 서해안선을 따라 높이 솟아있다. 세계 3대 옥토라고 불릴 정도로 크나큰 농업, 목축 생산을 보여주는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지대가 펼쳐져 있다. 미국 서부와 멕시코 상부. 왼쪽 산지들 사이에 움푹 들어간 산지가 바로 캘리포니아주다. 그 아래 작은 섬들 네다섯 개와 면해있는 곳이 로스앤젤레스. 북쪽에서 내려오는 산맥이 로키 산맥이고, 가운데 떨어져 있는 산지들이 유명한 옐로우스톤이다. 알래스카의 모습. 아래로 길게 이어진 열도가 바로 알류산 열도. 미국이 애치슨 라인을 설정할 때 알류산으로부터 기준을 잡았고, 북한이 남한을 침공하는 결과를 낳았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의 북유럽 지역. 스칸디나비아 산맥의 척박한 지형과 추운 기후를 통해 바이킹들이 왜 배를 타고 약탈하러 다녔는지 알 수 있다. 프랑스의 국력의 원천이 된 프랑스의 드넓은 평야 지대가 눈에 띄고 '피레네 이남은 아프리카'라는 말을 나폴레옹이 남기게 한 범인인 피레네 산맥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실제로 스페인은 유럽 중앙에 얽힌 역사보다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과 싸우는 역사가 더 길었다. 아래쪽에는 아프리카의 아틀라스 산맥과 스페인 남부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다 끊긴듯이 떨어져 있다. 실제로 저곳은 지중해의 출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에, 영국이 점령한 뒤 내어주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이 왜 북부인지 알 수 있는 사진. 이탈리아의 아펜니노 산맥이 급격하게 우회하며 알프스 산맥과 이어져 있고,  그 사이의 평지에 밀라노나 베네치아 같은 대도시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오른쪽 상단에 물음표 모양으로 분지를 만들고 있는 산맥은 카르파티아 산맥으로 1차대전, 2차대전을 통해 헝가리의 영토는 줄어들었지만 과거 카르파티아 산맥이 감싸고 있는 저 평원은 온전히 모두 헝가리 왕국의 땅이었다. 소아시아라고 불리기도 하는 유럽 역사에 중요한 장소, 아나톨리아 반도다. 옹기종기 섬들이 모여있는 바다가 에게해이고 그 기준으로 왼쪽이 현재의 그리스이고, 오른쪽의 아나톨리아 반도가 현재의 터키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그리스와 아나톨리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요충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비잔티움(동로마), 셀주크 튀르크, 오스만 제국 등 수만은 대제국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아나톨리아와 그리스가 이어지는 부분에 있는 도시가 바로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이다. 오른쪽의 사막지대가 기독교의 발상지인 레반트 지역이다. 가운데 아래쪽에는 가장 오래된 문명인 이집트 문명을 키운 원동력. 비옥한 나일강 삼각주가 보인다. 아래쪽 페르시아만을 기준으로 아래쪽은 사우디 아라비아, 위쪽은 이란이다. 이란고원은 과거 페르시아 제국이 융성했던 지역으로 대부분의 땅이 고원지형이다. 아나톨리아/이집트/메소포타미아/이란 등 페르시아는 다양한 문명을 정복하며 최초의 세계제국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한 이란 고원의 위쪽에는 세계 최대의 호수 카스피해가 있다. 카스피해 왼쪽의 직선 산맥은 캅카스 산맥으로 러시아와 서아시아를 구분하는 장벽이 된다. UFC 파이터 하빕의 고향도 캅카스이고,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도 캅카스 출신이다. 인도다. 인도 남부의 넓은 고원은 데칸고원이다. 데칸 고원 위로 펼쳐진 넓디 넓은 평야는 힌두스탄 평원으로, 현재에도 대도시들의 다수가 저기에 있고 과거 인도의 대제국들도 저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힌두스탄 위쪽의 장막처럼 펼쳐진 산맥이 바로 난공불락의 히말라야 산맥이고 그 너머로 펼쳐진 높은 고원은 바로 티베트 고원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중국와 인도라는 바로 옆에 위치한 거대한 문화권이 섞이지 않고 유지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래쪽에 테즈메니아 섬이 있고, 그위로 호주 본토에는 동해안을 따라 산지가 펼쳐져 있는데 그 산지를 따라 브리즈번, 맬버른, 캔버라, 시드니 등 호주의 대도시들이 죽 이어진다. 호주의 드넓은 대천정 분지와 사막이 보인다. 실제로 호주 인구인 2400만 명 중 98%가 동서 해안의 대도시에 거주하고, 드넓은 사막에는 단 2%만이 산다. 뉴질랜드다. 남섬의 척박한 산지와 빙하지형이 보인다. 만년설로 뒤덮힌 산지가 서던 알프스 산맥이다. 인도와 중국의 사이에 위치한 인도차이나 반도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미얀마 등 우리가 아는 동남아다. 동쪽 해안선을 따라 쭉뻗은 산맥은 베트남과 라오스를 구분해주는 안남 산맥이고, 서쪽에는 미얀마의 지붕 아라칸 산맥이 뻗어있다. 중국이다. 오른쪽 위의 드넓은 평야가 바로 중원. 수천년 동안 사람들이 살면서 전쟁과 농사 등으로 지력을 다써버리고 기후 변화 등으로 황하강의 농업 생산량은 현재 매우 낙후된 상태지만 당시 황하강 유역의 중원은 고대 중국에서 물량을 사기급으로 뽑아내던 지역이다. 한국과 일본은 대다수가 산지인데, 일본은 도쿄지역에 칸토평야를 가지고 있다. 왼쪽 저멀리 위쪽에 보이는 사막이 황사의 근원지인 고비사막이다. 한반도 위쪽에는 만주벌판이 자리잡고 있는데, 러시아 연해주와 맞닿아 있는 오른쪽의 분지는 삼강평원으로, 오늘날 동북삼성의 최고 곡창지대이다. 출처 에펨코리아 이런거 보면 지형이 국력을 만드는게 사실인 것 같다 과거에 두발로 쳐들어가서 전쟁하던 시대에는 결국 지형, 기후가 승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니까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은듯
서울에서 만원으로 데이트하기
요즘같이 날씨가 좋을 땐, 실내 데이트보다는 야외 데이트가 딱. 실내에 머물러 있으려면 데이트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드는데.. 날씨 좋은 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도 데이트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거!! 그래서 추천한다! 월말이라 허리띠 졸라매야 하는 커플들을 위해! 서울에서 만원으로 데이트하기! (이미지 출처 : 서울시립미술관) 1. 서울시립미술관(서소문) [하절기 (3월 ~ 10월)] 화~금 10:00~20:00 (토·일·공휴일 19:00까지) [동절기 (11월 ~ 2월)] 화~금 10:00~20:00 (토·일·공휴일 18:00까지) ※ 뮤지엄나이트 운영 (밤 10시 연장 개관). - 2016. 1월~8월 : 매월 2회(첫째, 셋째주 화요일) - 2016. 9월~계속 : 매월 둘째주 수요일, 마지막 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입장시간 :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는 무료 상설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데, 현재 볼 수 있는 전시는 다음과 같다. (1) 가나아트 컬렉션 앤솔러지 - 부문/작품수 : 회화, 한국화, 판화, 조각 / 28점 // 이 전시는 ‘가나아트 컬렉션’ 총 200점 중에서 선별한 24명 작가의 민중미술의 대표 작품 28점을 선보인다. '가나아트 컬렉션’은 지난 2001년 가나아트의 이호재 대표로부터 기증받은 한국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들이다. ...중략... 주로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반영한 역사적 민중미술 작품들을 비롯하여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극사실주의, 표현주의 경향의 작품들로 한국미술의 흐름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 - 전시소개 中 - (2)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 부문/작품수 : 한국화, 드로잉 등 / 30여점 - 도슨트 시간: 매일 오후 2시 (* 2016. 9.25까지만 운영) // “내 그림들이 흩어지지 않고 시민들에게 영원히 남겨지길 바란다.” ...중략...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는 꿈과 사랑, 환상에서 비롯된 정한(情恨)어린 스스로의 모습을 끊임없이 작품에 투영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은유한다. “그것이 사람의 모습이거나 동식물로 표현되거나 상관없이, 그림은 나의 분신”이라고 말하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 세계는 마치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전시는 이처럼 자전적(自傳的)인 성격을 가지는 작가의 작품 전반에 대한 자기고백적 측면에서 접근하여, '내 슬픈 전설의 이야기', '환상의 드라마', '드로잉', '자유로운 여자'라는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하였다. // - 전시소개 中 - 남친/여친 손 붙잡고 전시회를 둘러본 후엔 어딜 가면 좋을까?? 스크롤 아래로아래로 고고! (이미지 출처 : 서울자전거) 2. 서울자전거 따릉이 서울 여기저기, 현재(2016년 8월 29일 기준) 401곳에 운영중인 서울 자전거 대여소! 서울시민이 아니더라도 만 15세 이상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함. 1시간에 1000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이 장점ㅋㅋ 1일권, 7일권, 30일권, 180일권, 365일권 등 정기권도 이용할 수 있는데, 자세한 비용은 표를 참고할 것! 이용방법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스마트폰 앱 다운로드 -> 회원가입 -> 카드등록 -> 이용권 결제 -> 자전거 대여 -> 자전거 반납 순.. 더 자세한 방법이 궁금하다면 여길 클릭! 무엇보다 편리한 점은 꼭 대여한 대여소가 아니더라도 다른 대여소에 반납할 수 있다는 점! 서울 시립미술관 근처에도 따릉이 대여소가 있는데, 바로 시청역 9번 출구 뒤ㅋㅋ 여기서 따릉이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다음 데이트코스까지 이동해보면 어떨까? (이미지 출처 : 서울자전거) 3. 청계천 레이저쇼 (디지털 캔버스) 시청, 광화문 근처에서 따릉이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청계천 광교 사거리로 가면 따릉이를 반납할 수 있는 광교사거리 남측 대여소가 나온다ㅋㅋ 자전거를 반납하고 시원한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면서 청계천을 거닐어도 좋고, 혹시 도시락을 싸왔다면 자리 잡고 앉아 맛있게 까먹어도 굿굿ㅋㅋㅋ 그러다가 시간 맞춰서 광교와 광통교 사이에 있는 세월교로 가면 근사한 레이저쇼를 감상할 수 있다! *운영시간* (매 30분에 8분 가동, 22분 휴식 / 일 5회) 3월~4월, 10월~11월 : 19:00 ~21:00 5월~9월 : 20:00 ~ 22:00 매일 가는 카페, 영화관 말고 가끔은 이렇게 소소하게 하루를 함께 보내는 데이트를 해보는 게 어떨까? 이런 데이트는 날씨가 좋은 봄, 가을만 할 수 있으니 이때를 놓치지 말자!! 본문 출처 : '서울에서 만원으로 데이트에 식사까지?!' 中에서 http://goo.gl/RTsrzV
6월 아이와 함께 가볼만한 곳 '전국 박물관 31곳' 추천
안녕하세요. 이웃 여러분! 벌써 6월이네요. 오늘 일성 트루엘에서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나라를 보호한다'라는 호국과 '공훈에 보답한다'는 보훈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미래 대한민국의 주역인 아이들이 가볼만한 전국의 박물관 31곳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그리고 역사 속 영웅들을 만나고 기억할 수 있는 전국의 박물관 써리원!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가볼만한 그 곳! 지금 당장 만나보시죠! 01 국립중앙박물관 -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국립 박물관으로, 총 33만여 국보급 유물을 소장 - 각종 공연, 문화 프로그램 등을 체험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주변 전경이 있어 산책하기 좋음 ※ 진행 중인 특별 전시 <프랑스 근현대 복실, 단추로 풀다>, <선인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 <아라비아의 길> 위치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 6가 168-6) 운영시간   월·화·목·금 9:00~18:00 / 수·토 9:00~21:00 / 일요일·공휴일 9:00~19:00 입장료   무료(단, 유료 기획전시는 별도) 02 국립한글박물관 - 한글의 역사와 가치를 배울 수 있는 박물관 - 6~9세 어린이들을 위한 한글놀이터 및 외국인들을 위한 한글배움터 등 체험활동 제공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9 운영시간   일~금·공휴일 9:00~18:00 / 매달 마지막 수요일 9:00~21:00 /  토요일 9:00~21:00 입장료   무료 03 국립민속박물관 - 한국의 대표 생활문화 박물관으로, 한민족들의 생활양식·풍속 및 관습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 전시 ※ 진행 중인 특별 전시  <나도 울산사람 아잉교-수용과 포용의 도시>, <봄놀이 산 꽃밥>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 운영시간   일~목 9:00~18:30(6~8월) /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금·토요일 9:00~21:00 입장료   무료 04 국립고궁박물관 - 조선왕실의 역사와 문화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유물이 있는 곳 ※ 진행 중인 특별전시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 12 운영시간   평일 9:00~18:00 / 주말·공휴일 9:00~19:00 입장료   무료 05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19세기 말 개항기부터 오늘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전시 문화공간 ※ 진행 중인 특별전시 <67년만의 귀향>, <존리치 사진전 전쟁와 일상, 그리고 희망>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98 운영시간   월·화·목·금·일 9:00~18:00 / 수·토 9:00~21:00 입장료   무료 06 한성백제박물관 - 백제 초기 500년 역사를 간직한 한성백제와 관련된 유물 다수 전시 - 역사체험교실, 주말 문화유산 탐방, 주말 가족교육 등 다양한 문화행사 운영 위치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성대로 71 운영시간   평일 9:00~17:00 / 토·일·공휴일 9:00~21:00(단, 11~2월은 18시까지 운영) /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단, 특별·기획전시는 유료로 진행될 수 있음) 07 암사동선사주거지 -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과 유적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 - 움집만들기·토기만들기·채집체험 등 선사체험교육 프로그램 제공 위치   서울특별시 강동구 올림픽로 875 운영시간   화~일 9:30~18:00 /  매주 월요일 휴무 입장료   어른(19~64세) 500원 / 어린이(7~18세) 300원 08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투사와 해방 이후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가를 수감하였던 감옥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볼 수 있는 곳 - 감옥 안에서 실제 행해졌던 고문 방법, 취조실, 지하 독방 등을 그대로 재현 위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독립공원 운영시간   화~일 9:00~17:00 /  매주 월요일 휴무(단,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익일 휴관) 입장료   일반 3,000원 /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 어린이 1,000원 / 65세이상·6세이하·장애인 무료 09 전쟁기념관 - 한국에서 일어났던 전쟁 및 호국정신에 대한 다양한 기록과 자료를 전시한 곳 - F-15K 전투기 3D체험, 인천상륙작전 4D체험, 연평해전 3D영상 등 체험시설 제공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 29 운영시간   화~일 9:00~18:00 / 매월 마지막 수요일 9:00~20: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단, 일부 특별기획전 별도) 10 서울역사박물관 - 오늘날 서울이 있기까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와 관련된 역사와 전통문화 등 다수 전시 ※ 진행 중인 특별전시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 다시보는 청계천>, <남대문시장> 등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5 운영시간   평일 9:00~20:00 / 토·일·공휴일 9:00~19:00 (3~10월) 입장료   무료 11 경기도박물관 - 경기도 역사에 대한 고고유물·고문서·민속자료 등 3,500여 점 소장 - 청동기시대 유물 발굴 체험교실, 뮤지엄 아카데미 교실 등 다양한 교육 행사 진행 위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6 운영시간   1~6월·9월~12월(화~일) 10:00~18:00 / 7~8월(화~일) 10:00~19: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19세 이상) 4,000원 / 초등학생·청소년·군인 2,000원 / 유아(7세 이하) 무료 / 경기도민 25% 할인(신분증 지참 필수) 12 수원 화성박물관 -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역사와 관련된 문화유산 전시 - 조선왕실 전통 옷 입기 체험, 성벽 쌓기 체험, 수원화성 역사 문화 교육 등 다양한 행사 진행 위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 운영시간   매일 9:00~18:00 / 매주 월요일 휴관 * 단, 휴관일이 공휴일인 경우 익일 휴관 및 기타 지정 휴관일은 홈페이지 참고 입장료   어른 2,000원 / 청소년·군인 1,000원 / 어린이·노인 무료 / 4종통합관람권 구매 시 할인가능 * 4종통합관람권 : 수원화성·화성행궁·수원박물관·수원화성박물관 입장가능 통합매표권 13 구리 고구려 대장간마을 - 고구려 철기 문화를 볼 수 있는 유적 전시공원으로, 드라마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 등 촬영지 - 아차산 자락에 위치하여 주변에 아름다운 경관도 함께 감상할 수 있음 위치   경기도 구리시 우미내길 41 운영시간   평일 9:00~18:00 / 토·일·공휴일 9:00~19:00 입장료   무료 14 전곡선사박물관 - 전곡리 선사 유적지에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선사 박물관 - 막집짓기, 야외발굴체험장, 사냥체험 등 야외체험 가능 위치   경기도 연천군 전곡음 평화로 443번길 2 운영시간   1~6월·9~12월(화~일) 10:00~18:00 / 7~8월(화~일) 10:00~19:00 /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성인 4,000원 / 초등학생·청소년·군인 2,000원 / 7세 이하 어린이 무료 15 국립춘천박물관 - 구석기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강원지역의 문화유산 다수 전시 ※진행 중인 특별전시  <학수고대, 새로운 전시를 기다림> 위치   강원도 춘천시 우석로 70 운영시간   평일 9:00~18:00 / 토·일·공휴일 9:00~19:00 / 매주 월요일 휴관 * 4~10월 중 매주 토요일 21:00까지 연장개장 입장료   무료(단, 유료 기획특별전시 제외 16 DMZ박물관 - 유일한 분단국 상징인 DMZ를 테마로 하여 휴전선이 갖는 역사적 의미, 동족 간 이산의 아픔 등을 전시물과 영상물로 재구성하여 전시 - 정전협정서·전사자 유해발굴 유품 등 당시 아픔이 담겨있는 냉전의 유산을 실물로 볼 수 있음 위치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로 369 운영시간   화~일 9:00~18:00(3~10월) /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어른 2,000원 / 청소년(13~18세) 및 군인 1,400원 / 어린이(7~12세) 1,000원 17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 - 신석기 유적을 대표하는 오산리유적 및 주변 선사 유적들의 원형 및 다양한 출토품 전시 - 움집·체험장·쌍호 습지 탐방로 등 선사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야외시설 조성 위치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학포길 33 운영시간   9:00~18:00(연중무휴) 입장료   어른 1,000원 / 청소년 및 군인 500원 / 어린이 300원 18 강원종합박물관 - 한반도 지역에서 출토된 화석, 세계 최대 크기의 매머드 상아 등 세계 각국의 유물 2만여 점 전시 - 인공폭포 및 종유석 정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음 위치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강원남부로 3016 운영시간   매일 8:00~18:00 입장료   대인 9,000원 / 소인 7,000원 / 경로·국가유공자·장애인 6,000원 19 국립경주박물관 -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금관총 금관(국보 제87호) 등을 비롯한 신라시대의 각종 유물 전시 - 특히 뛰어난 신라인들의 금속공예기술과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공예품 다수 전시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운영시간   화~금 9:00~18:00 / 매주 마지막 주 수요일·3~12월 중 매주 토요일 9:00~21:00 / 일·공휴일 9:00~19:00 입장료   무료 20 대가야박물관 - 대가야와 고령 지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순장 풍습 등 전시 - 절구·다듬이 등 전통민속도구와 활비비, 손풀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어린이 체험학습관 있음 위치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대가야로 1203 운영시간   매일 9:00~18:00(3~10월) 입장료   일반 2,000원 / 청소년(만7~만18세)·군인 1,500원 / 유아·노인 무료 21 옛길박물관 - 문화지리의 보고인 문경의 문화와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곳으로, "옛길"을 주제로 한 박물관 - 박물관 주변에는 길과 관련된 조형물, 푸른 잔디 등이 있어 가족·연인과 함께 걷기 좋음 위치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44 운영시간  매일 9:00~18:00(3~10월) 입장료   어른 1,000원(문경시민 500원) / 어린이·청소년·군인 700원(문경시민 300원) 22 고성공룡박물관 - 공룡화석·세계의 다양한 공룡들을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공룡전문박물관 -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현장체험학습 공간으로 추천! 위치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자란만로 618 운영시간   매일 9:00~18:00(3~10월) 입장료   어른 3,000원 / 군인·청소년 2,000원 / 어린이(36개월 이상) 1,500원 23 군산근대역사박물관 - 과거 무역항으로 해상물류 유통의 중심지였던 군산 지역의 역사유물과 문화 전시 - <군산바다여행>, <바닷가친구들>, <바다도시 군산>을 주제로한 어린이 놀이 체험 가능 위치   전라북도 군산시 해망로 240 운영시간   9:00~18:00(3~10월) 입장료   성인 2,000(군산시민 1,000) / 청소년·군인 1,000(군산시민 500) / 어린이 500(군산시민 300) 24 고창 고인돌 박물관 - 청동기시대의 각종 유물 및 생활상과 세계의 고인돌 문화 전시 - 고인돌 끌기 체험, 불 피우기, 암각화 그리기 등 다양한 체험활동 제공 - 모로모로열차를 타고 고인돌박물관 둘러보기 코스 돌기 추천! 위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74 운영시간   매일 9:00~18:00 입장료   어른 3,000 / 청소년·군인 2,000 / 어린이 1,000 25 국립전주박물관 - 전라북도의 지역 역사와 관련된 미술, 유물 등을 비롯한 각종 민속자료 다수 전시 ※ 진행 중인 특별전시  <침몰선에 실렸던 고려 사람들의 꿈>, <강을 품을 바다>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쑥고개로 249 국립전주박물관 운영시간   평일 9:00~18:00 / 토·일·공휴일 9:00~19:00 * 3~10월 매주 토요일 야간개장 21시까지, 2017년 7월 1일부터 10:00 개관 입장료   무료 26 국립 광주박물관 - 광주·전남지역의 문화유산과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 - 유아, 초등, 청소년을 비롯해 가족과 외국인까지! 모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교육 프로그램 운영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 운영시간   평일 9:00~18:00 / 토·일·공휴일 9:00~19:00 /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휴관 * 2017년 7월 1일부터 10:00 개관 입장료   무료 27 국립 청주박물관 - 충북지역의 문화유산을 조사·연구·전시, 중원문화의 특색을 익히고 즐길 수 있는 곳 - 어린이 박물관학교, 전통문화교실 등의 문화 교육 프로그램과 각종 문화행사 진행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 국립청주박물관 운영시간   화~금 9:00~18:00 / 토(4~10월)·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9:00~21:00 토(1~3월, 11~12월)·일·공휴일 9:00~19:00 * 2017년 7월 1일부터 10:00 개관 입장료   무료 28 국립 공주박물관 - 웅진 백제 문화를 중심으로 충청남도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전시하는 박물관 - 주말 가족 프로그램, 주말 박물관 교실,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 위치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360 운영시간   평일 9:00~18:00 / 토·일·공휴일 9:00~19:00 입장료   무료 29 국립 부여박물관 - 충남 서부지역의 선사문화를 비롯하여 백제의 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곳 - 성인문화강좌, 청소년 문화학교, 모범장병 유적 답사, 어머니 박물관 교실 등의 사회교육 프로그램 운영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 16-9 운영시간   평일 9:00~18:00 / 토·일·공휴일 9:00~19:00 * 단, 임시공휴일은 9:00~18:00 입장료   무료 30 백제군사박물관 - 백제의 군사와 호국이라는 독창적인 주제로 백제시대의 유물과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는 특수박물관 -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자연학습공원과 호수공원을 비롯한 테마공원 및 다양한 문화체험 시설을 갖춤 위치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충곡로 311-54 백제군사박물관 운영시간   평일 9:00~18:00 / 월요일 휴무 / 설날 및 추석 당일 휴관 입장료   무료 31 국립제주박물관 - 제주의 토착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소개·전시하는 박물관 - 제주 문화의 형성 과정을 발전단계별로 볼 수 있도록 대공간전시실·선사고대실·탐라실·조선시대실·기증실·기획전시실·야외전시장 등으로 구성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동로 17 운영시간   평일 9:00~19:00(마지막주 수요일 21시까지) / 토요일 9:00~18:00 / 일요일 9:00~21:00 / 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
사진 안돼요, 그림 돼요 #미술관관람법
미술관에서 각잡고 고상하고 우아하게 작품을 감상하려는데 찰칵-_- 들려오는 셔터소리가 산통을 깬 적 다들 한번쯤 있으시져? 또는... 사진만 찍느라 그림 감상 제대로 못하고 나와서 후회한적도ㅋ 그래서 요즘은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전시들도 많잖아여, 근데 그냥 사진촬영금지 이케 써놓으면 너무 막 뭐랄까 막 아쉬우니까 그 때 그 기분 딱 남기고 싶은 마음도 무시할 순 없는거니까 이 미술관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해여 +_+ 그게 뭐냐면....ㅋ 그림그리기!!!!!!! +_+ 이 순간을 스케치로 남겨보세여!!!!!! 인거져 bbbb 바로 암스테르담에 있는 Rijksmuseum에서 실시한 이벤트라고 합니다 +_+ 스마트폰에 정신팔려서, 사진찍느라 오래 시간을 두고 보지 못 했던 작품들을 그림을 그림으로써 깊이 바라보게 되는거져! 물론 꼭 그려야만 하는 건 아니에여 사진도 모든 사람이 찍는 건 아니잖아여 ㅋ 다만 만약에 용기를 내서 그리기 시작한다면 그 전엔 미처 몰랐던 디테일들까지 볼 수 있게 되지 않겠어여? 그러니까 잘 그리든 못 그리든 결과가 중요한게 아닌거져. 특히 아예 그림그리는 이벤트를 연 날에는 스케치북과 연필까지 제공해 줬다고 하니...ㅋ 할 만 하져? 아이들에게도 재미난 감상의 시간이 됐을거고, 이미 대충대충 지나침에 익숙해져 있던 어른들에게도 물론 +_+ 어때여, 여러분도 종이와 연필을 들고 미술관으로 떠나 보지 않으시겠어여? 물론 사람 엄청 많은 특별전같은데선 안되겠지만여 ㅋ 사진출처 글구 이건 댓글 제보...ㅋ @ChoiJan 님 남친분이 여기서 일하신대여!!!!! 대to the박 이런 상세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ㅋㅋㅋ
[펌] 따뜻한 등킨도나쓰의 세계
도넛하면 보통 미국을 떠올릴 텐데 실제로도 미국은 도넛을 존나 좋아하는 나라다 오죽하면 국가 도넛의 날National Doughnut Day까지 있을 정도임. 보통 6월 첫째주 금요일이다. 이날이 되면 등킨도나쓰를 비롯해서 미스터 도넛이나 크리스피 도넛 같은 전미 도넛 가게가 무료로 도넛을 푸는 부러운 날이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좀 웃기지 않냐 어쩌다 국가 도넛의 날 같은게 생겼을까 그게 뜬금없이 전쟁이랑 관련있음 1차머전 시기의 일이다 좃같지 않은 전쟁이 어딨겠냐만 1차머전은 진짜 개좃같은 전쟁이었는데 1차머전을 가장 괴롭게 만든 두 가지 중 하나는 참호였고 하나는 먹을 것이었음 진짜 전세계가 이 좃같은 전쟁 때문에 기아에 시달렸는데 영국에서는 사람 먹을 음식도 없다고 100만이 넘는 애완동물을 모조리 살처분한 적도 있었다. 저번에도 언급했지만 독일은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다리 달렸으면 책상도 끓여먹던 시절이다 배고픔이랑은 거리가 멀어보이는 갓메리카도 예외는 아니었음 좀 배부른 소리지만 딴 나라 군인들이 배가 고파 뒤질 지경이었다면 양키 병사들은 맛이 없어서 뒤질 지경이었다 본진이 바다 건너편에 있으니 먹을 수 있는 거라곤 바다 건너온 통조림 밖에 없는데 통조림은 보통 맛이 없단 말이야 순무에 순무 발라 처먹던 독일 얘들이 본다면 배가 불러 터졌다고 쌍욕을 퍼붓겠지만 미군 나름대로는 심각한 문제였다 먹는 즐거움마저 강탈당한 군바리들의 사기가 좋을 리가 없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미군이 가장 먹고 싶어하던 음식이 바로 등킨드나쓰였음 안 먹던 놈들이면 몰라도 먹던 놈들이면 그 괴로움을 참기 어렵다. 도나쓰... 존나게 맛있고 둥그런 설탕 듬뿍 도나쓰... 돈 존나 많은 양키들인데 그냥 주면 안 됨? 싶겠지만 도넛이란게 전쟁터에선 만들기 힘든 물건이잖아 튀김기랑 오븐도 있어야되고 그 구하기 힘든 설탕도 필요하고 뭣보다 양키 윗대가리들은 병사들이 밥만 먹으면 됐지 과자까지 챙겨먹일 생각이 전혀 없었음  부식 대우 개씹인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드나쓰 금단 현상을 일으킨 양키들이 허우적대는 모습을 안타깝게 본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구세군 대장이었던 '에반젤린 부스'였음 구세군 대장이었던 에반젤린 부스는 전선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양키들을 돌봤는데 이 과정에서 드나쓰 타령을 하던 장병들의 하소연을 듣게 된다 헤드샷맞고 머리통이 도넛이 되기 전에 도넛을 먹고 시퍼요 훌쩍거리는 부상병들의 신음소리를 들은 에반젤린 부스는 그날도 달려가서 양키 윗대가리들한테 딜을 건다 얘들 도넛 먹여도 됨? 당연하지만 전폭적인 지원 따위는 없었다 니가 알아서 해 수준의 데면데면한 허가만 얻어낸 에반젤린은 자원봉사자들 모집했는데 그 당시 기준으로 봐도 참 어메이징한 조건이었다 * 무급으로 도넛 만들 사람 구함 * 근무지는 최전방 * 독가스로 뒤질 수도 있으니까 방독마스크 들고 올 것 * 총맞아 뒤질 수도 있으니까 권총 챙겨 올 것 * 폭탄 맞아 뒤질 수도 있으니까 헬멧도 쓰고 올 것 근데 놀랍게도 이런 헬조건에도 불구하고 11명이나 되는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왔는데, 더 놀라운건 전부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 중에 제일 어린 사람은 스텔라 영이라는 꼴랑 16살짜리 소녀였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야전취사부대 '도넛걸'들이다 스텔라 영 이렇게 리볼버로 무장하고 헬멧 쓰고 밀가루 봉지를 등쳐맨 도넛걸들은 바로 최전선으로 달려간다 최전선으로 달려간 이유도 존나 상여자스러웠는데 후방에서 만들어서 식어빠진 도넛을 먹여봤자 통조림이랑 뭐가 다르냐는 것이었다 참호 속에 처박혀서 벌벌 떠는 양키들에게 방금 구운 도넛을 먹여주기 위해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최전방 참호로 간 거임 프랑스 전선의 최전방에서 반쯤 무너진 오두막을 발견한 도넛걸들은 여기를 '에반젤린 부스 헛'이라 이름 붙이고 처음으로 도넛을 만들기 시작했다 양키 윗대가리들의 원조가 거의 없는 자원봉사자 부대인지라 제대로 된 요리도구도 하나도 없었음 첫날에는 제일 기초적인 밀대랑 냄비조차도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주워온 걸로 반죽을 만들어서 튀겼는데, 밀대로는 포탄 탄피랑 빈 우유병을 써서 반죽을 밀었고 냄비 대신 쓰고 있던 헬멧을 벗어서 기름을 튀겼음 워낙 열악한 환경이라 한 번에 만들 수 있는 도넛이 겨우 7개 밖에 안 됐지만 근데도 하루종일 잠도 안 자고 도넛을 만든 결과 첫날에만 중대 하나를 먹이고도 남을 도넛을 만들어냈음 머나먼 엘랑스 땅까지 와서 개고생하던 양키들에겐 축복이 따로 없었다 에반젤린 부스 헛으로 구름처럼 양키들이 몰려들었음 이렇게 도넛걸들의 전설적인 활약이 시작되는데 폭탄으로 부엌이 날아가도 총알이 쏟아져도 최전선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따끈한 도넛을 만들어냈다 첫날에는 150개의 도넛으로 시작하더니 이틀째부턴 300개를 넘어섰고 어느샌가 자원봉사자들이 점점 더 늘면서 하루에 2500개의 도넛을 만들어내면서 전 전선에 도넛을 배달하기 시작함 양키들은 최전방에서도 등킨드나쓰를 만들어먹는다는 소문이 퍼지니까 양키들이야 당연히 신나고 순무에 순무 발라 처먹던 독일인들은 비참해지는 쏠쏠한 효과도 누렸음 이걸 극대화하기 위해서 양키 윗대가리들은 도넛걸들을 프로파간다 용도로도 써먹었음 1차머전 당시의 양키 신병을 '도넛보이'라고 불렀을 정돈데 당연히 전쟁 나감=도넛 먹음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도넛걸들의 활약이 유명했기 때문임 아무튼 처음에는 16살 여중생과 11명의 소녀들로 시작했던 도넛걸들은 전쟁 말이 되자 250명이 넘든 대부대로 커졌고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쉬지않고 도넛을 생산했음 이들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미국에선 딴 나라에서 보면 웃기게 보이는 국가 도넛의 날을 만들게 된 것임 이 때만든 드나쓰는 대충 이런 형태였다고 한다 갓메리카답게 설탕 듬뿍 들어간 거 보소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터키의 쿠르드족 침공, 쿠르드 족 설움의 역사 (미국... 할많하않)
어제부터 터키가 쿠르드족을 침공했다는 뉴스가 뜸... 이 뉴스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왜냐면 쿠르드 족이 굉장히.... 역사 자체가 너무나 안타까운 민족이기 때문임.. 그리고 어쨌든 미국도 꽤 관련이 되어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마냥 지나치기 어려운 사건임... 그냥 제가 알고 싶어서 정리한 것.. 먼저 쿠르드 족은 BC 9세기 메디아 족의 후손으로 지구촌 최대의 유랑 민족이라고 할 수 있음. 정식 국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민족임. 하지만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도 사용하는 아리안계 민족. (사진 속 국기도 쿠르드 족 국기) 유대인의 경우 유랑 생활을 하다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가(?) 자신들의 국가를 찾았지만 쿠르드 족의 경우 중동의 아직까지 여러나라에 흩어져 사는 중.. 현재는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인구가 꽤 많아서 중동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음. 쿠르드 족이 안타까운 이유는 독립을 하지 못해서도 있지만, 이들의 독립을 빌미로 아랍의 근접 국가들과 열강들이 쿠르드 족을 단물만 빨아먹는 등... 쿠르드 족이 도와주면 후에는 나몰라라함.. 배신만 몇번을 당했는지 잘 모르겠음. 배신과 설움의 역사임.. (당시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 1946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이란을 점령함. 소련의 도움으로 쿠르드 족은 이란 북부에 쿠르드 공화국을 세웠으나 1년도 안되어서 이란에 궤멸당함. 소련은 쿠르드가 공화국을 세우는 게 이란과의 협상을 할 때 자신들에게 유리했음. 그래서 그냥... 말 그대로 심심풀이로.. 이용했던 것임.. 이란이 1년도 채 되지 않은 쿠르드공화국을 공격할 때 쿠르드 족은 소련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소련은 군사를 지원하지 않았음. 197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함. 이때 세력이 점점 커지는 이라크를 견제하고자 미국은 이란을 지원했고, 그 속에서 쿠르드족도 이란-미국을 도와줌. 미국은 돈만 쓰면 되지만 쿠르드 족은 직접 자신들이 나가서 싸우는 거임.. 하지만 이란과 이라크가 국경분쟁에 합의하면서 쿠르드 족만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음. 두 친구가 싸워서 한 친구 편 들었는데 싸운 두 친구가 화해해서 나만 이상해지는 상황.. 이후 1980년대에 이라크 독재자 후세인은 이란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복으로 쿠르드인에게 독가스 세례를 했음. 그 결과로 쿠르드인이 5000명이 학살당하기도 함... -> 미국은 아무말도 하지 않음. (걸프전 당시 부시 대통령) 1991년 걸프전 이후 미국은 후세인 제거를 목표로 이라크 북부에 거주하고 있던 쿠르드 족에게 무장봉기를 부추겨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듯! 했으나 얼마 못가 역시 지원을 끊음 그냥.. 후세인 세력 약해지게 하는 일환으로 쿠르드 족 이용한 것. -> 그 과정에서 많은 쿠르드 족이 목숨을 잃거나 삶의 터전까지 다 잃고 난민 피난소에서 지냄. 2017-2018년에는 중동에 ISIS가 활개를 치고 다니던 시절... 이 때 미국의 골칫거리는 단연 ISIS 이 때에도 쿠르드 족은 미군을 도와. ISIS를 퇴치하는 것에 주도적인 역할을 함. 여전히 미국이 자신들의 독립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당시 ISIS와 싸우던 쿠르드 족 민병대) (각 커뮤에서 화제가 됐었던 ISIS와 싸우는 쿠르드족 민병대원 사진.) 쿠르드 족은 ISIS와의 전쟁에 앞장섰음. ISIS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에 어느정도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음. 대략 1만 1천명의 쿠르드 족이 ISIS 와의 전쟁에서 희생된 걸로 추정. 하지만.. 지금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미국은 또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발을 빼고... 중동 지역에서 미군은 철수하기에 이름. 왜냐, 자신들의 목적이었던 ISIS 격퇴를 달성했으니까... 미군 있을 필요 없다~ 이거임. 그리고... 터키의 쿠르드족 침공 기사가 남. ISIS 세력과 싸웠던 쿠르드 민병대가 터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을 거임. ISIS와 싸워줄 때는 좋았지만 이 민병대가 자신들, 즉 쿠르드 족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을 때는 터키 입장에서 골치가 아플테니까... 터키는 현재 쿠르드 족 민병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 중. (터키군의 공격으로 피난을 떠나는 시리아 쿠르드족 주민들) 어찌되었든 터키가 쿠르드족을 공격하겠다는 걸 미국이 알고 있었을 것이고 묵인 해줬으니 지금 공격을 하고 있는 것... 실제로 공격 전날 러시아와 미국에게 공격할 것이라고 계획을 전달했다고 함. 누군가의 힘을 빌릴게 아니라 자신들만의 힘으로 독립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지금 당장 그런 힘이 쿠르드 족에게는 없을 것. 그래서 자꾸 열강들에게 기대게 되고. 계속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함. 이런저런 국가들 사이에 끼여서 총알받이 신세로 내몰린 후에 버려지는.. 이번에도 역시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이 토사구팽을 했다고 말이 많은 상황이지만. 말만 많을 뿐... 도와줄 누군가가 없음. 참...
세젤쉽 역사공부) 조선시대 대비, 왕대비, 대왕대비의 차이와 관계
글을 소개하기 이전에 "대비" "왕대비" "대왕대비" 등 호칭 구별이 늘 어려워서 한번쯤은 여기에 올려보고 싶어서 올려봄. 흔히 많은 사람들은 대비 = 왕의 엄마 (전왕의 왕비) 왕대비 = 왕의 할머니 (전전왕의 왕비) 대왕대비 = 왕의 증조할머니 (전전전왕의 왕비) 이렇게 생각하지만 전혀 아님. 조선시대 내명부 여인들의 서열은 세자빈 - 왕비(중전) - 왕대비 - 대왕대비, 이 순서였음. 왕대비는 보통 왕의 어머니뻘이지만 사실상 바로 전왕의 왕비를 가르키는 말이였고 대왕대비는 전전왕의 왕비를 가르키는말임. 근데 조선시대에는 대비가 3명이나 된 시절이 있었는데 성종시절과 고종시절이였음. 조선 성종이 즉위하니 선왕인 예종의 부인인 왕대비 인혜왕대비 안순왕후 한씨 (성종 숙부 예종의 왕비) 선선왕인 세조의 부인인 대왕대비 자성대왕대비 정희왕후 (성종 조부인 세조의 왕비)가 있었음. 근데 문제가 되는 인물이 있었음. 문제는 성종의 어머니 수빈김씨였음. 성종의 아버지 덕종은 세자시절에 사망한터라 명목상 수빈김씨는 대비도 아니고 왕비도 아닌신세....대왕대비 정희왕후는 왕도 못되고 서른도 안되서 요절한 아들 의경세자를 왕인 "덕종"으로 추존시킴. 그리고 이로인해 수빈김씨는 - 인수왕비를 거쳐서 인수왕대비로 봉승되었고 서열이 왕비까지 거친 인혜왕대비 (예종 왕비 안순왕후)보다 서열이 더 위가 되었고 이때 왕실 내명부 서열은 세조왕비 (대왕대비 정희왕후) - 덕종왕비 (왕대비 소혜왕후) - 예종왕비 - (왕대비 안순왕후) - 성종왕비 (중전 공혜왕후) 순서가 되었음. 문제는 이러한 대비가 3명이나 살아있는 사태가 철종때 벌어짐. 헌종이 죽고 김대왕대비 (순조왕비)가 고종을 데려와 즉위시킴. 궁중에는 남편이 이미 사망한 왕비가 3분이나 계셨는데 1. 순조의 부인인 순원왕후, 명성대왕대비 김씨 2. 선왕인 헌종의 모친이자 효명세자의 부인 효유왕대비 조씨 (신정왕후) 3. 대행대왕 헌종의 부인인 왕비 효정왕후 홍씨 이렇게 3명의 서열이 문제였음. 문제는 지금까지 왕실 내명부 서열이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였지만 대왕대비 위에 자리를 하나 만들던가 해야 되는 상황이였고 기존의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가 아니라 왕대비 아래 대비라는 직함을 또 만들어서 " 왕비 -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로 바뀌었음. 즉 기존의 대왕대비 순원왕후(순조비). 왕대비 신정왕후 (익종,효명세자빈)은 그대로 있고 그 아래 대비 자리를 만들어서 효정왕후를 대비로 존숭함. 그래서 왕실 여성 서열은 1. 대왕대비 김씨 (순조의 왕비) 2. 왕대비 조씨 (익종의 왕비. 효명세자빈) 3. 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4. 중전 김씨 (철종의 왕비) 이 순서였음. 신기한건 새로 즉위한 국왕 철종은 순원왕후와 순조의 양자였음. 즉 대비 홍씨 (효정왕후)에게는 시숙부였는데 선대 왕의 정실부인이였기 때문에 아침마다 문안인사를 갔다고 함. 그러던 중 1857년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죽은 뒤로는 왕대비 신정왕후를 대왕대비로 올리고 대비 효정왕후를 왕대비로 올림으로써 1. 대왕대비 조씨 (익종의 왕비, 효명세자빈) 2. 왕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3. 중전 김씨 (철종의 왕비) 기존의 "왕비 - 대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가 아닌, 다시 "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순서로 회귀한거임. 근데 문제는 철종이 죽은 이후 왕실서열이 꼬임. 바로.... 철종의 왕비 중전 김씨였음. 명목상 철종이 순조와 순원왕후의 양자여서 철인왕후는 대비 홍씨에게 시숙모임. 즉 철인왕후의 서열을 동서지간인 신정왕후와 동일시할지 혹은 효정왕후보다 낮게 할지 문제가 생겼으나 이때 새로 즉위한 국왕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를 싫어함.. 그래서 철종의 부인 철인왕후 서열을 3명의 대비들중 가장 아래로 낮추었음. 결과적으로 왕실 여성들의 서열은 1. 대왕대비 조씨 (익종, 효명세자의 부인) 2. 왕대비 홍씨 (헌종의 왕비) 3. 대비 김씨 (철종의 왕비) 4. 중전 민씨 (고종의 왕비. 명성황후) 이 순서가 되었어. 대비 김씨는 조카며느리인 왕대비 홍씨에게 아예 서열이 밀린거임. 보통 선선왕의 왕비면 무조건 대왕대비가 되는건 아니였음. 이러한 비운을 가진 인물은 바로 조선역사에 2명 있었음. 성종의 제3왕비인 정현왕후는 성종 - 연산군 - 중중까지 3대왕을 거쳐서 대왕대비가 되야 하지만 연산군이 폐위될때 그의 왕비인 신씨도 같이 쫒겨남..그래서 그대로 왕대비 자리에 있었는데 그 이유는 어짜피 새로 즉위한 왕도 뭐 손주뻘도 아닌 친아들 중중(진성대군)이였음. 인종의 왕비 인성왕후는 인종시절 중전, 명종시절 왕대비였기에 선조가 즉위하고 대왕대비가 되자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시어머니 문정왕후와 달리 다른상황이였는데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이 즉위할때 이미 인성왕후가 왕대비로 있었고 둘은 고부지간이여서 대왕대비로 승봉된 경우, 하지만 인성왕후는 바로 아래서열 명종비 인순왕후와 항렬이 같아서 대왕대비가 되지 못하고 그대로 왕대비자리에 있게됨. 더군다나 조정에서 인순왕후의 영향력이 상당했고 인성왕후는 뒷방신세여서 수렴첨정의 권한도 뺐기게 됨. 선조의 왕비 인목왕후는 선조(왕비) - 광해군(왕대비)를 거쳐 인조가 즉위했을때 광해군부인이 쫒겨났기에 그냥 그대로 왕대비자리에 있어도 되는거 아님?이란 생각이 있겠지만 새 국왕 인조는 선조의 손자였음. 즉 의붓할머니 - 의붓손자 관계였고 더군다나 당시 인조의 친어머니가 살아있던터라 대왕대비로 승격됨. 인조의 왕비 장렬왕후는 인조(왕비) - 효종(왕대비) - 현종(대왕대비)였기에 숙종때는 더 높은자리에 있어야 되는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지만 당시 효종왕비 인성왕후는 고인이였고 궁중에는 현종비와 인조비 둘 뿐이였기에 그대로 4대왕을 거쳤어도 대왕대비자리에 있게됨. 만일 효종비 인성왕후가 살아있었으면 철종이나 고종때처럼 왕대비 아래 대비자리를 만들거나 혹은 대왕대비 위에 대상왕대비같은 자리를 만들었을것임. 영조의 왕비 정순왕후는 정조 즉위 이후 조모뻘이여서 대왕대비로 바로 올리자는 여론이 있었는데 왕대비자리에 오를 사람도 없었고 이당시 장조(사도세자)는 죄인인터라 혜경궁 홍씨 역시 왕대비자리에 오르지못함. 정조의 양부 진종 (효장세자)의 부인 조씨 (효순왕후) 역시 고인이였던터라 정순왕후는 그대로 왕대비가 됨. 서양에서는 대비(태후)를 " queen dowager"로 표현하는데 유럽왕실에서는 만일 현왕의 어머니면 영향력이 강하겠지만 단순히 선왕의 왕비였으면 딱히 영향력이 강하지 않았음. 재혼도 가능해서 헨리 8세의 부인 캐서린 파는 재혼도 했다고 함. 다만 선왕의 왕비였기에 존중의 대상이긴 했다고 해. 대략 늘 사극을 보면서 왕실여성들 호칭이 궁금해서 공부해봤음. 출처 어허 일케 봐도 헷갈리네.. 쨌든 왕비 - 왕대비 - 대왕대비 라는거군
[펌] 냉혹한 세종대왕의 수박썰
세종이 즉위하고 5년차 찍었을 시절의 이야기 고기 먹고싶다 세종님 존나 큰일 났음 고기도둑이라도 들어왔음? 아니 고기는 아니고 수박도둑임 내시 새끼가 수박 한 통 훔치다가 들켰음 내가 들키다니 세종 5년 한문직이라는 이름의 내시가 궁궐에서 수박 한 통을 훔쳐먹다가 들킨 사건이 터진 것이다 허허 씨발 그래도 고기는 아니네 고기도둑이었으면 모가지 날렸을 건데 수박이라 내가 봐줌 아싸 대신 병신을 만들어주마 참고로 사극 등에서 존나 만만하게 나와서 그렇지 곤장은 보통 10대만 맞아도 곤죽되기 십상인 하드코어한 형벌이라 한 번에 30대 이상 못 때리는게 원칙이다 근데 이 수박도둑은 무려 곤장 100대를 선고받는다 그냥 맞다 뒤지라는 소릴 한 거다 그런데 세종의 분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백병원은 어디요 백병원 몸에 해로우니 푹 쉬세요 귀양지에서 100대 풀스윙을 견디고 간신히 살아남았더니 이번에는 귀양지 중에서도 존나 불지옥으로 유명한 영해로 귀양까지 보내버렸다 수박 한 통에 꼬추까지 포기해가며 들어온 궁궐 라이프가 완전히 끝장난 것이다 근데 솔직히 세종이 개빡칠만한 것도 한게, 일단 먹는 거 좋아하는 대왕인걸 둘째치고 일단 궁궐 물품 절도죄인데다가 뭣보다 수박이 엄청난 존재였다 조선시대 수박은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는데 수박 한 통이 쌀 다섯말, 즉 쌀 반 가마니였다 뭔소리냐면 수박 하나면 쌀 40kg이고 오늘날 돈으로 10만원이 훨씬 넘는단 소리다. 요즘도 10만원짜리 과일 하면 손 떨려서 못 먹는데 조선시대다. 임금 아니면 맘대로 못먹는다. 세종이 개빡칠만하다 불행히도 세종의 수박을 건드렸다 개작살난건 이 한 명이 아니었다. 7년이 지난 뒤인 세종 12년의 이야기다. 고기 먹고싶다 세종님 또 존나 큰일 났음 고기는 아니지? 또 수박임 휴 다행 내가 또 들키다니 이번에도 범인은 내시였다. 소근동이라는 이름의 내시는 궁궐 창고를 관리하는 작자였는데, 7년 전에 있었던 선배의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인지 또 세종의 수박을 건드린 것이다. 전례가 있어서 그런지 세종이 판결을 내리기도 전에 형조가 칼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세종님 이 새끼 대갈통은 깍둑썰기로 드릴까요 채썰기로 드릴까요 아니 수박 한 통 훔쳤다고 왜 대가리를 짜른다고 지랄임 처음 한 새끼보다 알고도 저지른 두 번째 새끼가 더 질 나빠 그리고 물건 관리하라는 새끼가 물건 훔치는 것도 존나 괘씸해 그런데 7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좀 유해진 것인지 왠일로 세종이 범인을 변호하고 나선다 야 암만 그래도 머갈통 짜르는건 좀 아니다야 불쌍하지도 않니 아니 7년 전에는 수박 도둑 새끼 궁댕이를 아주 뭉개놨더만 왜 이제와서 그래도 머갈통 짜르는 건 좀 그래 연산군 새끼도 아니고 꼭 궁궐에서 피를 봐야하니 내 집에선 육즙말고 다른 고기즙은 보기싫어 그럼 모가지짜르는 거에서 좀 딜해서 죽도록 줘패고 인증마크 찍는 걸로 합의하죠? 줘패는 건 그렇다치고 인증마크는 뭐임 (이마빡에 도둑이라고 타투를 알차게 찍어주겠단 뜻) 불알도 포기했는데 사회 이미지도 포기하게 생긴 소근동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때 세종이 또 끼어든다. 야 잠깐만 얘들아 이것 좀 봐 이 등신새끼 훔친 수박 좀 봐라 이거 푹 썩어서 냄새나는데? 이건 수박도 아니야 걍 음식물쓰레기지 수박 훔친 거면 어쩔 수 없는데 등신같이 음식물 쓰레기 훔치다 걸린걸로 타투 찍는건 좀 그렇지않냐? 기록을 면밀하게 살피는 일중독 세종답게 수박이 썩어있었다는 정보까지 놓치지 않은 것이다. 세종은 이걸 근거로 면상타투형은 면해주라고 명한 것이다. 엌ㅋㅋㅋㅋㅋ역시 세종대왕ㅋㅋ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 근데 물론 빠따는 때릴 거임 80대면 엉덩이가 곤죽까지는 안 가고 팥죽 정도만 될 거다 그렇게 소근동은 곤장 80대를 처맞고 병신이 되는 선에서 간신히 끝났다 그래도 고기였으면 능지처참이었을 거임 수박이면 어쩔 수 없지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펌] 냉혹한 영국 수탈의 세계
감자대기근 1800년대의 아일랜드는 영국새끼들한테 존나게 수탈당하고 있었는데 그 수탈의 잔학함이 조선 삥뜯는 일본조차도 ㅈ밥으로 보이게 만들 정도로 악랄했다 얼마나 악랄하게 아일랜드를 뜯어먹었냐면 아일랜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게 감자밖에 없을 정도였다 감자 빼고 나머지는 전부 영국에게 뜯겼다 문제는 이 시점에 감자만 골라조지는 악랄한 전염병인 감자마름병이 터지기 시작했다는건데, 감자 밖에 없는 나라에 감자를 못 먹게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냐 사람이 과장 하나 없이 수백만 단위로 굶어뒤지기 시작했다. 영국은 어떻게 했냐고? 하지메마시떼 아일란도 하지메마시뗴는 ㅆㅂ 굶어뒤져가는데 우리 좀 도와줘  그동안 우리한테 존나 식량 뜯어갔잖아 이젠 니들이 우리한테 퍼줄 시간 아님? 님 빨갱이임? 갑자기 뭔 빨갱이드립이야 아직 공산주의 만들어지지도 않았음 아니 자유시장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가 니들을 먹여살릴 이유가 전혀 없잖음 ㅋㅋㅋ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아야 자본주의가 잘 굴러가는데 니들은 보이지 않는 손 모름? 보이지않는건 니 양심이겠지 징징대는 개소리 잘 들었고연 굶어뒤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부족하네여 근데 식량 언제 팔 거임?  뭔 미친 개소리야 우리 먹을 식량도 없는데 뭘 팔라는 소리야 니네 땅 주인이 판다는데? 아참 니네 땅 주인이 나였지  영국 미친놈들은 진짜 개새끼였다. 영국은 아일랜드를 그렇게 삥뜯었던 주제에 굶주리는 아일랜드에 식량을 공급하는 것을 거부한다. 왜냐면 이 당시 영국의 집권당이 자유당이었는데 이 새끼들은 자본주의 돼지들이라 자유방임주의가 모든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짜 거지같은게 아일랜드 땅들은 대부분 영국이 가지고 있었다. 자유방임주의의 원칙에 따라 아일랜드 삥뜯기는 평소처럼 계속되었다. 아일랜드의 땅을 소유하고 있는 영국인 지주들은 길에서 아일랜드 사람이 죽든 말든 식량을 팔아댔고 영국은 또 그걸 좋다고 사갔다. 전 아일랜드의 밭에서 굶주린 농부들이 뒤져가는 동안 영국배들은 부지런히 아일랜드에서 나온 식량을 본국으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이게 역사에서도 유명한 아일랜드 대기근이다 사실상 영국이 수백만 명을 굶겨죽인 사건 때문에 지금도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국을 찢어죽일 정도로 증오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반영 감정에 비하면 한국의 반일 감정은 우정처럼 보일 정도다. 보어전쟁 보어인이라는 사람들이 있다. 기원이 워낙 복잡한데 간단하게 땡치자면 아프리카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사람들이다. 이 보어인들은 처음엔 비교적 평화롭게 잘먹고 잘살고 있었는데, 문제가 터졌다. 얘네 땅에서 금이랑 다이아몬드가 펑펑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왜 문제냐고? 하지메마시떼 보어상~ 영국새끼들이 그걸 알았거든. 이웃집에 좋은 물건이 있으면 정중하게 대문부수고 들어가서 신사적으로 집주인을 때려죽인 다음 품위있게 집으로 가져오는 그 새끼들 말이다. 물론 당연히 보어인들은 영국이 힘들게 세운 나라를 날름 처먹으려는 걸 눈뜨고 보지 않았다. 하지메마시떼는 ㅈㄹ ㅈ이나 까샘 보어인들은 무시무시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막강한 전투력으로 영국군을 개박살내는데, 보어인들의 저격실력이 엄청나게 무서웠던 나머지 아직도 명사수의 대명사로 보어인들을 뽑을 때가 있다 아무튼 영국은 대차게 박살이 났다. 보어인들은 민간인들의 도움으로 신출귀몰하면서 영국군의 뚝배기를 까기 시작했고, 영국새끼들은 참 영국스런 해답을 내놓는다. 자꾸 그렇게 비겁하게 민간인들 뒤에 숨을 거임? 정정당당모름? 지구 역사에서 가장 쓰레기같은 놈들한테 듣고 싶은 소린 아닌데 ㅆㅂ 한 마디도 지질 않네. 생각해보니 민간인이 문제임. 민간인만 없으면 게릴라도 못하는데  뭐 민간인을 다 없애기라도 하게? 오또케 알았음? 영국식 정정당당함이란 이런 것이다. 게릴라전으로 골치가 터지니까 영국새끼들은 진짜로 민간인을 없애버리기로 한다. 어떻게 없애버렸냐고? 나치보다 150년 빨리 아우슈비츠를 만들어서 없앴다. 농담 아니고 진짜임. 세계최초의 인종 절멸 수용소는 나치가 아니라 영국이 만들었다. 보어인들은 단지 보어인이라는 이유로 총을 들고 있지 않아도 수용소로 끌려갔다. 수용소 안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영국제 총알 뿐이었다. 수만명의 보어인들이 선 채로 굶어뒤졌고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다. 이렇게 또 영국은 수만 명의 보어인들을 굶겨죽이면서 보어전쟁에서 추하게 승리를 거둔다. 뱅골 대기근 이번에는 2차대전 중의 일이다. 아직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일본의 대공세로 인도에는 사방에서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먹을 입들은 존나게 늘어나고 있는데 식량생산지역은 일본놈들이 다 처먹고 있었다. 필요량은 늘어나는데 공급량이 줄면 어떻게 된다? 굶는 사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인도 그 넓은 땅에서 식량도 제대로 생산 못하냐는 의문이 들텐데 하필 이 시기에 자연재해가 존나 터지면서 농사가 흉년이 났다. 인도는 고심끝에 지금까지 신나게 자기를 삥뜯어왔던 영국에게 헬프를 치기로 한다. 그동안 삥뜯어왔으니까 이번엔 자기들이 좀 도움을 받아도 되지 않겠냐는 논리였는데 아무리 영국이 씨발새끼들이라도 사람이 굶어뒤져가면 돕지 않을까싶었던... 아. 결말은 뭐 말 안 해도 알 거라 생각한다. 영국아 우리 굶어뒤질 거 같은데 제발 좀 도와줘 아 진짜 내가 돕고 싶은데 내가 정말 진심으로 성심성의껏 돕고싶긴 한데 일본놈들이 너무 무서워 안 되겠음 ㅈㅅ 개소리야 ㅆㅂ아 일본군이랑 우리 굶어뒤지는게 뭔 상관인데 사실 지금 우리 먹을 식량도 없는데 인도인 니들까지 먹일 식량이 없다고 직접적으로 말해버리면 니가 상처입을 거 같았어 미친놈 인도로의 식량 지원을 거부한게 누구냐면 바로 그 자랑스러운 영국의 전쟁영웅 처칠 새끼 되시겠다. 참 영국적인 영웅이긴 하네. 아무튼 인도는 평소에 대영제국의 막대한 부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수탈당했지만 정작 본인들이 굶주릴 때는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하면서 수백만명이 또 굶어죽게 된다. 이쯤되면 영국 새끼들이야 말로 기근의 기사가 아닐까 싶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조선시대에 일어난 희대의 패드립 사건
이성계: 이제 나라도 새로 번듯하게 차렸으니 여러가지 할 일이 많군 어디보자... 중국 사신: 에헴에헴 대명황제폐하의 명이오~ 응? 명나라가 우리한테 무슨 볼 일이 있다고?  (대충 조선어민 비난하는 내용)  고려의 배신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가.... (이하생략) !!!!!! 니 방금 한말 다시 해봐라  (???) "이인임의 아들 이성계가" 라고 했는데요? 내가 왜 이인임의 아들인데 시X발련아 ※ 이성계가 열받은 이유 이인임(성주 이씨): 고려시대 최강 권문세족, 후에 이성계+최영에게 숙청당함 이성계(전주 이씨): 고려시대 신흥무인, 아버지는 고려시대 무신 이자춘 애초에 본관도 다르고 정치색깔도 완전히 다른 둘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된다면 ex) 트럼프 "느그 아부지 박정희라며?" 박원순 "시X발련아" 아니 고려에서 피난 온 망명자들이 님 아버지 이인임이라고 하던데요?? 우리나라 법률(대명회전)에도 그렇게 기록되었고요 (참자 참어...) 그러면 우리쪽에서 사신 보내서 해명할테니 오늘은 돌아가봐라... (그러나 태조가 해명글을 올렸는데도 불구하고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를 때까지 명나라는 답신조차 안 보냈었다 ..) 태종 이방원: (아버지에게 속죄할 겸 명나라가 친 패드립이나 고쳐달라고 할까?) 여봐라 명나라에 가서 이인임 건에 대한 조선의 의견을 전달하도록 하라 네이~ 명 영락제: 응? 이게 뭐야 방원 아우가 보낸 글이네 이런 사건이 있었군 사신은 전하라 내가 책임지고 고쳐줄테니 방원아우는 걱정하지 말라고 네이~ 역시 락제형님이야 화끈하게 고쳐주신다니깐 ㅎㅎ (그러나 약 100여 년뒤...) 저... 전하 긴히 드릴 말씀이... 중종: 무슨일이오? 최근 명나라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아직도 태조대왕의 가계도가 고쳐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뭐라????? 내 이것들을 그냥 (명나라에 전화 넣는 중...)  명나라: 여보세요?  야!!!! 너네 우리 가계도 고친다메!!!!! 아니 우리가 너네 가계도 고치기 전에 고려사 좀 참고하니깐 이성계가 고려 4왕(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 죽였다며? 그건 또 뭔 개풀 뜯어 먹는 소리야 3명(우왕, 창왕, 공양왕)밖에 안죽였거든 (ㅅㅂ 3명이나 4명이나 그게 그거지) 아니 공민왕 죽인게 이인임아냐? 그게 왜? 이인임 아들이 이성계니깐 연좌제 적용하면 이성계가 공민왕 죽인거지 (대환장) 울 태조 아빠 이인임 아니라고!!!! 어쩌라고 십덕섀끼야 당장 바꿔!!! (이 시X)  결국 이 문제(종계변무)는 중종-인종-명종 때까지 해결되지 않았고 선조 21년(1587년), 선조의 피나는 노력으로 해결되었다. (임진왜란때 큰 똥을 싸질렀음에도 선조 뒤에 '조'가 붙은 이유가 200년 가까이 풀리지 않은 종계변무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몽환적인 경험이 가능한 "본태박물관" 볼거리가 가득해요
제주도가볼만한곳을 꼽으라면 여기도 꼭~!! 추천드리고 싶어요. 본태박물관은 유명한 건축가인 안도타다오가 만든 건축물이기도 한데요. 4개의 전시실과 1개의 카페테리아, 본태가든, 아트샵과 호수까지 여유롭게 작품도 보고 체험도 하고 맛있는 식사와 커피까지 모두 가능한 곳입니다. 고려시대 생활 유품부터 현대미술의 거장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까지 다양한 문화작품이 공존하는 곳이예요. 위의 사진은 쿠사마 야요이의 유명한 작품중 하나 인데요. 거울방이예요. 100개의 LED전구가 거울 그리고 바닥의 물 천정의 거울까지 어우러져 무한 공간감에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예요. 뉴욕MoMa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작품인데 제주도 본태박물관제3전시실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어서 넘넘 좋았어요.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62번길 69 (상천리 380) 전시관람시간 : 10:00~18:00 (연중무휴) 여기는 제1전시실로 향하는 곳 건축물의 오픈된 공간이지만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석탑이 건물에 숨어 있어요. 오픈되면 어떨까란 의문도 들었죠. ㅎㅎ 탑이 답답해하는건 아닐까요? ㅎ 유명한 건축가 안도타다오의 빛,공간,물,직선의 어우러짐, 간결하고 심플하지만 뭔가 여운을 주는 건축물로 유명하죠. 이미 제주도커플여행으로 오신 분들의 데이트코스로 인증샷이 되네요. ㅎㅎ 커플들이 참 많이 찾으시더라구요. 제1전시실을 나오는 출구에는 본태 카페테리아가 통로로 있어요. 맛있는 음식 냄새에 그냥 지날 수가 없어서 ^^ 카레 한치우동을 시켰어요. 테이블 플레이팅이 넘 맘에 들었어요. 혼자 먹어도 이렇게 먹으면 뭔가 특별한 날이 되는 것 같더라구요. 주말 이렇게 여유를 부리다니 행복했어요. 카페테리아 앞에는 이렇게 호수가 있답니다. 자전거를 시원하게 타는 조각상이 마치 계속 달려나갈 것만 같아요. 배도 든든 이제 제2전시실로 향합니다. 제2전시실은 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전통의 기왓장과 현대 팝아트 작품의 조화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잘 어울려요. 입구 부터 호기심 가득이예요. 이곳에서 유명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보실 수 있고, 21세기를 빛낸 멋진 작가들의 세계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요. 제2전시실은 실내화를 신고 둘러볼 수 있게 되어 있답니다. 자연과 어우러진 큰창의 벽면이 햇빛을 담고 작품들과 마주 보고 있어요. 제 3전시실은 처음에 보여드렸던 그 몽한적인 LED거울방과 이 호박을 만날 수 있답니다. 쿠사마야요이의 작품들로 꾸며진 곳이예요. 이 호박 모양 조각상도 사진엔 작아보여도 사람키만큼 큰 조각이었어요. 사진으로만 보다가 직접 보니 엄청 크더라구요. 그리고 제 4전시실은 우리나라의 옛 장례식에 썼던 상여를 보관 전시하는 곳이예요. 왠지 으스스한 느낌이지만 떠나는 이를 달래주는 작은 목각 인형들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모습들이 위로를 해주는 것 같았답니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도 이렇게 다같이 함께하고 서로 안아주는 따뜻한 문화였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제 4전시실을 나오면 언덕백기에 조각들이 마치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것처럼 정원에 꾸며져 있답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조각상들 곁에서 기념 사진을 찍어도 좋은 공간이랍니다. 제주도에서 볼수 있는 구멍 송송 뚫린 현무암 조각도 한켠에 이렇게 있구요. 구석구석 발길 닿는 곳마다 신경을 써주신 것 같아요. 아트샵~! 아트샵에는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생활 소품들도 있는데요. 생각보다 엄청~! 비싼 것도 있지만 조각보등 다양한 작품, 상품이 있어서 선택의 폭이 다양하답니다. 아트샵에는 이렇게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만한 재미있는 아이템과 소장하고 싶은 깜찍하고 귀여운 소품들도 있어요. 전시를 다보고 나와서 멍하니 서귀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조각상도 있답니다. 조각상 가운데가 비어 있는데요. 저긴 남자가 웅크리고 앉아도 충분할 만큼 넓은 공간이예요. 저곳에서도 기념샷을 찍으시는 분들이 있으시더라구요. ^^
[스압] 전쟁 덕에 대박난 음식 몇 가지
스팸 요즘 한국에서야 스팸을 공짜로 뿌린다면 유토피아가 됐다며 좋아하겠지만 공짜 스팸이라고 꼭 좋지만은 않았다. 2차대전을 보면 특히 그렇다. 1940년 영국의 식량사정은 개박살난 상태였는데 왜냐면 나치새끼들이 잠수함을 때려박아서 온 바다에서 분탕질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량 상당수를 해외에 의존하는 영국에게는 심각한 문제였다 당시 영국이 얼마나 굶고 살았냐면 배급표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영국 성인 남자가 받을 수 있는 식량은 고기 550g과 달걀 반 개가 전부였다 고기 550g이면 삼겹살 3인분 정도 된다. 충분히 많지 않냐는 생각이 들 텐데 이걸로 1주일 버티라고 하면 생각이 좀 달라질걸 하루에 고기 0.5인분 이하니까 그런데 갓조국 미국이 전쟁에 참가하고 동맹국한테 식량을 무자비하게 뿌리기 시작하면서 식량의 양적인 상황은 많이 나아지기 시작한다 갓조국이 뿌린 음식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스팸이었는데 말 그대로 수억 개씩 뿌려댄 덕분에 영국 사람들은 처음 몇 달 정도는 환호했다 물론 아침에 스팸 수프먹고 점식으로 스팸 바베큐먹고 저녁으로 스팸 스튜 먹는 걸 6달 정도 반복한 뒤에는 앵간히 인성 좋아도 욕을 참기 힘들 것이다 근데 스팸 안 먹으면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거든 굶어 뒤지는건 별로 유쾌한 선택지가 아니다보니 다들 꾸역꾸역 스팸을 먹게되고 결국 스팸은 공전의 대박을 치는 초히트상품이 된다 영국인들은 조금이라도 스팸을 덜 물리게 먹어보려고 온갖 음식을 개발했는데 그래봤자 유전자 단위로 요리재능에 파멸을 선고받은 영국인들인지라 결과물은 신통치않다 당장 저 유명한 스팸튀김부터 시작해서 스팸 팬케이크라든지 딸기잼에 찍어먹는 스팸도넛이라던지 파멸적인 음식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런걸 먹고도 전쟁에서 싸운 영국군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스팸메일이란 표현의 유래가 되었을 정도로 스팸 이미지가 개똥일만도 하다 스팸 비싸서 명절 선물로 교환하는 한국은 서양권에서 보면 상당히 특이한 이미지겠지 딱히 영국에만 스팸이 뿌려진 것은 아닌고로 다른 장소에서도 남아도는 스팸을 이용한 요리가 발달하는데, 하와이에서 발달한 스팸 무스비처럼 그럴싸한 요리도 있다. 왜 뜬금없이 하와이에서 일본음식에 들어가는 무스비와 스팸이 퓨전합체를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하와이 음식임 넓게 보면 부대찌개도 이 부류에 들어간다 물론 개중에는 영국만큼이나 끔찍한 피조물이 탄생하기도 하는데 홍콩의 스팸 라멘이 그것이다 누가 영국식민지 아니랄까봐 진짜 굉장한 비쥬얼이다 장어 스팸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선 비싼데 영국에선 개싸구려 이미지인 케이스다 원래 영국에서 장어 하면 가난뱅이 새끼들이나 먹는 생존식품이라는 이미지였다 고슴도치 고기나 비둘기 구이쯤 되는 이미지였던거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영국은 제일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라는데서 장어 이미지가 박살난다 장어가 우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며 러다이트 운동을 일으켰기 때문은 아니고, 산업혁명으로 우후죽순 세워진 공장들에서 나온 폐수가 다 어디로 갔을 거 같음? 템스강으로 전부 흘러갔다. 곧 템스강은 참피 수영장만도 못한 끔찍한 꼬라지로 바뀌었고 템스강에 살던 물고기 새끼들은 전부 용궁으로 사출당했다 장어만 빼고. 장어는 그 지랄이 난 템스강에서도 오히려 활개치면서 활발히 번식했다 다들 알다시피 장어는 진짜 엄청나게 생명력이 강한 생선인데 이 놈이 정력에 좋다는 소문도 그 생명력에서 비롯된거다. 대갈통 잘라서 냄비에 넣고 끓여도 도무지 뒤지질 않는 존나 킹기도라같은 놈이다. 장어가 안 뒤지면 좋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생각해봐라 폐수 오염물질 둥둥 떠다니는 곳에서 살아가는 생선 건져먹을 생각이 드냐 당연히 멀쩡한 사람이면 안 건드리지. 내일 설사로 뒤지더라도 오늘 고기맛은 봐야겠다는 흙수저들이나 건져먹는게 장어였다 근데 2차대전이 터졌다. 그리고 잔혹한 소금돼지시체뭉침 스팸이 식탁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결국 영국인들은 절규하며 강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빈민들이나 먹던 장어는 전영국인이 즐기는 대중식품으로 격상하게 된다 아 차라리 격상하지 않는게 좋지 않았을까 쓰레기물에서 살아서 그렇지 비쥬얼도 그야말로 쓰레기 그 자체다 어떻게 소스까지 초록색이지 색깔이 참피색인 이유는 전쟁 중에도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파슬리로 소스를 만들어서 그런데 암만 봐도 참피 갈아서 만든 것처럼 생겼다 장어를 그냥 굽고 젤리 될 때까지 만든 장어 젤리와 장어 토막친 것과 파이에 초록 소스를 끼얹어 내는 파이 앤 매시는 스팸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육류였기 때문에 또 대박을 친다 다만 이런 튀김+국물 조합은 재료의 품질을 숨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해서 썩어가는 장어로 만든 파이 앤 매시 떄문에 벌어지는 수많은 식중독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었다 팝콘 영화관 하면 팝콘을 빼놓을 수 없다 X스맨 X크 X닉스 같은 X같은 영화를 보면 내 손 안에 팝콘이 들려있다는게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진 그레이가 개소리 떠는 걸 보느니 입안에서 팝콘 부서지는 소리 감상하는게 몇 배는 더 박진감 넘친다 그런데 의외로 팝콘=영화관 이미지가 잡힌것도 2차대전 때의 일이다 2차 대전에도 미국 영화 산업은 존나게 활발했는데, 이 당시에는 오히려 영화관에 팝콘 들고가는게 금지였다 왜 금지인지 이유가 안 떠오르면 최근 영화관 갔다가 영화 끝났을 때 영화관 바닥의 참상을 생각해보자 바닥에 끝없이 널려있는 팝콘쪼가리를 영화관 주인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욕지거리가 터질 것이다 그래서 2차머전까지 영화관에서 인기있는 식품은 달달한 초콜릿이나 사탕 계통의 음식이었고 팝콘은 길거리에서 가끔 사먹는 싸구려 음식 정도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2차머전이 터지고 나서 이 잘나가던 영화관 초콜릿이 전멸해버리는데, 왜냐면 초콜릿 생산량이 전부 군바리들에게로 몰렸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전쟁터에서 단 거 만큼 절박한게 없다 아무리 갓조국이라도 군인한테 설탕 몰빵해주면서 민간에까지 뿌릴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곧 미국 전역은 당분 부족에 시달리게 되는데 영화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 보면서 혓바닥이 심심하신 관객들을 위해서 등장한 것이 싸구려 식품의 대명사 팝콘이었다 팝콘은 원가가 진짜 싸도 너무 싸서 전쟁 중의 박살난 경제 상황 중에서도 충분히 저가로 공급될 수 있었다 결국 팝콘이 영화관 식품의 대명사가 될 때까지는 채 5년도 걸리지 않았다 근데 분명 싸서 경쟁력 가졌던 새끼들인데 요즘 가격은 왤케 창렬인지 모르겠다 X발 옥수수 덩어리에 꿀 존나 얇게 처발랐더니 국밥 두 그릇 가격이 나오네 개새끼들 결론은 영화관에 국밥을 들고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 - 개드립] 놀랍게도 심한 욕은 필터링한 상태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