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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판매 1위 닛산 캐시카이 시승기

닛산 캐시카이는 일본 태생의 차량이지만 유럽에서 소형 SUV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차량입니다. 캐시카이의 매력을 집중적으로 탐구했습니다!! 자동차 전문 매거진 카홀릭 : http://carholic.net/7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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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비싼 SUV 베스트 5
세계에서 가장 비싼 SUV 베스트 5 선정..1위는 얼마? 전 세계적으로 SUV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 향후 SUV를 비롯한 크로스오버 자동차의 비율이 전체의 50%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다. 해외 자동차 전문매체 베스트테크카는 사진으로 접할 수는 있지만, 오너가 되기엔 다소 무리가 따르는 비싼 SUV 베스트 5를 선정했다. 1위는 러시아 튜너 다르츠(Dartz)사의 2015년형 프롬브론(Prombron)이 선정됐다. 차량 가격은 125만 달러(한화 약 13억7562만원)으로 압도적인 가격표를 달고 있다. 프롬브론 블랙 샤크 모델의 경우 6리터 V8 트윈터보 엔진으로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최고출력 1500마력까지 가능하다. 2위는 메르세데스-벤츠의 G63 AMG 6×6이다. 가격은 61만5000달러(한화 약 6억7680만원)으로 5.5리터 V8 트윈터보 엔진과 7단 자동변속기가 제공된다. 536마력의 출력으로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시간 6초 미만, 최고속도는 160km/h에서 제한된다. 3위는 미국 컨퀘스트(Conquest)사의 방탄차 컨퀘스트 나이트 XV이다. 가격은 31만달러(한화 약 3억4115만원)으로 예상보다 저렴하다. 단조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된 휠과 초고강도 철에 케블라 섬유를 입힌 보디는 방탄이 가능하다. 최고속도는 246km/h까지 가능하다. 4위는 네덜란드 스파이커사의 D8 페킹-투-파리이다. 가격은 29만5000달러(한화 약 3억2464만원)으로 실제 구입이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때 생산을 고려한 모델로 지난 2006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됐다. 스파이커 특유의 인테리어는 압도적인 고급스러움을 연출한다. 5위는 다르츠(Dartz)사의 보급형 모델 콤뱃(Kombat) T98이다. 가격은 22만5000달러(한화 약 2억4761만원)으로 상급모델인 프롬브론의 1/6에 불과하다. 8.1리터 엔진으로 최고속도는 289km/h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방탄 SUV로 알려져 있다. 차체를 케블라 섬유로 감쌌다. 글 이한승 기자 hslee@dailycar.co.kr 제공 대한민국 1등 자동차 뉴스채널 데일리카 www.dailycar.co.kr 데일리카 관련뉴스언론사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기아차, 손준성 의류기업 CEO에게 ‘더 뉴 K9’ 1호차 전달 혼다가 3억번째로 생산한 모터사이클은? ‘골드윙’ 콤팩트 SUV ‘티볼리’, ‘QM3’·‘트랙스 디젤’과 격돌 벤츠, 소방대원과 ‘자동차 안전구조 세미나’ 개최 벤츠, ′CLA 슈팅브레이크′ 공개..왜건 형태 ‘눈길’ 출처-네이버
타이어 회사 굿이어(Goodyear) 탄생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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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약칭
... <사진= 얼굴 사진은 닛산 창업주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 ... 닛산 자동차는 도요타, 혼다차와 다르게 창업자의 이름을 따지 않았다. 지금의 브랜드명 닛산은 ‘닛폰산교’(日本産業)라는 회사의 약칭이다.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는 누구? 닛산(日産)자동차는 1933년 12월 도바타주물(戶畑鑄物)을 이끌던 아유카와 요시스케(鮎川義介:1880~1967)라는 이가 설립했다. 이때의 이름은 ‘자동차제조주식회사’이다. 1934년 6월, 통칭 닛산으로 불리는 닛폰산교(日本産業)의 전액 출자를 받아 회사 이름을 닛산자동차주식회사로 바꿨다. 아유카와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쿄 제국대학 공과 대학을 나온 그는 신분을 속이고 직공으로 일했다. 야마구치 현 야마구치시에서 태어난 그의 집안은 평범하지 않다. 그의 외할머니가 유력 정치인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1836-1915, 조선 주재 공사 역임)의 누나다. 아유카와는 1910년 이노우에의 지원을 받아 도바타주물(현 히타치 금속)을 설립했다. 아유카와는 1928년 ‘구하라 광업’이라는 회사를 인수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닛폰산교’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아유카와는 닛폰산교를 중심으로 일본광업, 히타치제작소, 일본수산, 닛산자동차를 거느렸다. 신흥 재벌 닛산콘체른(Konzern)이었다. 닛산콘체른의 중심인 닛폰산교는 1937년 만주국으로 이주해서 만주중공업개발로 이름을 바꾸고, 일본과 만주에 걸쳐 콘체른을 형성하려 했다. 당시 아유카와를 만주를 불러들인 이는 현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1896~1987, 56-57대 총리)였다. 일본 상공성의 유능한 관료였던 기시는 만주국의 산업차장으로 발탁돼 1936년 부임했다. 패전으로 닛산콘체른 해체...닛산자동차 독립 당시 만주에서 일했던 기시 노부스케, 아유카와 요시스케, 남만주철도(만철) 사장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 세 사람을 ‘만주의 3스케’로 부른다. 아유카와의 닛산콘체른 야망은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좌절됐다. 전후 연합국에 의해 콘체른이 해체되면서 닛산자동차가 독립했다. 이후 닛산은 1966년 스포츠카를 만들던 프린스자동차와 합병하면서 기술력을 한층 더 높였다. ‘판매의 도요타, 기술의 닛산’이라는 말은 이런 이유 때문에 나왔다. 1966년 닛산은 써니...도요타는 코롤라 출시 닛산은 1966년 2월 기존 ‘블루버드’를 대체할 신형 대중차 써니(Sunny)를 출시했다. 그해 10월 도요타의 코롤라(Corolla)도 세상에 나왔다. 코롤라는 라틴어로 ‘화관’(花冠)을 뜻한다. 당시 도요타는 라이벌 닛산의 써니를 의식, 코롤라의 배기량을 갑자기 바꾸면서 신형 엔진 코드에 Z자를 새겨 넣었다. Z는 러일전쟁에서 연합 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가 발틱 함대를 격파했을 때 걸었던 깃발을 상징한다. 도요타의 ‘타도 닛산’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자동차공업회(JAMA:Japan Automobile Manufacturers Association)는 도요타와 닛산이 경쟁을 벌이던 1966년 그해를 일본 ‘마이 카’ 시대의 원년(The first year of My Car)이라고 표현한다. 아유카와는 태평양 전쟁 이후 어떻게 됐을까. 그는 닛산그룹 각사의 출자를 받아 ‘중소기업 조성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중소기업 진흥에 힘썼다. 말년까지 정치인(참의원)으로 살다 1967년 사망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5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