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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잔. 등대 - 下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고요한 포구였다. 포구는 몹시 고요했고, 가끔씩 밀려와 부숴지는 파도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이제 다 왔습니다. 저기, 보이는 저 곳이 목적지입니다." 고양이가 가리킨 포구 한 편에는 우뚝 솟은 흰색 기둥이 어렴풋이 보였다. 얕게 깔린 물안개때문에 흰색 기둥은 흐릿한 윤곽만을 내비쳤다. 기둥이 가까워질수록 윤곽은 점점 뚜렷해졌고, 마침내 기둥을 가까이 했을 때 그것이 새하얀 등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등대는 외롭게 보였다. 나는 가만히 손을 등대에 가져다 댔다. 등대가 머금고 있던 냉기가 순식간에 손바닥을 거쳐 심장을 옥죄어 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건축물이 전해주는 특유의 안정감과 위로감이 심장을 어루만졌다. 고양이는 잠시 등대 주변을 서성였고, 이내 가만히 서서 수평선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등대를 등에 기댄 채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옆에 내려놓고, 목도리를 바짝 여몄다. 추위는 쉽사리 물러가지 않았고, 천천히 무릎을 세워 양 팔로 꼭 끌어안았다. 신기하게도 등 뒤에서 느껴지는 등대의 존개감이 온기가 되어 전해져 왔다. 나는 한동안 무릎을 끌어안고 고양이처럼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았다. 낮게 밀려오는 파도와 새파란 하늘에 박힌 하얀 구름, 그리고 구름을 닮은 고요한 등대의 자태는 흘러가는 시간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잠시, 아주 잠시 눈을 감아 보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놀랍게도 수평선은 황금빛 노을로 물들어 있었고, 등대 역시 서서히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길게 늘어선 등대의 그림자는 점점 짧아지더니 얼마 지나지않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멀리 보이는 가로등이 차례로 불을 밝혔고, 수평선에 걸려있던 배들 역시 주홍빛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오직 이 곳만이 어둠에 휩싸인 그대로였다. 난 살며시 고개를 들어 등대를 바라 보았다. 검게 가라앉은 등대는 무언가 결락된 슬픈 짐승처럼 보였고, 그것은 '나'와 닮아 있었다. 굳게 감긴 짐승의 눈동자는 쉽사리 뜨일 것 같지 않았다. 난 다시 자리에 주저 앉아 등대의 눈이 뜨이길 기다렸다. 주변의 분위기때문인지 마음은 고요하게 가라앉았고, 저절로 여태까지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동안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꿈은 사라지고 없었다. 난 그저 사회가 만든 시간의 관념에 쫓겨 달려왔을 뿐이었다. 이는 마치 공장의 컨베어벨트 위를 달리는 꼴이었다. 그토록 소중했던 꿈의 부재도 깨닫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꿈을 찾지도 못하고 영원히 컨베어벨트 위에서 달려야하는 미래를 생각하자 거대한 상실감과 슬픔이 밀어 닥쳤다. 차갑게 감긴 등대의 눈을 올려다보자 슬픔은 더욱 커졌고, 잊었던 추위가 다시 찾아왔다. 나는 고양이를 찾으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등대는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눈을 떴다. 순간적인 빛 때문에 정신이 아찔했다. 등대의 빛은 아주 길고 새하얗게 수평선을 향해 뻗었다. "아름답죠?"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고양이가 다가오며 속삭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매번 이 빛을 볼때면 드는 생각이 있어요. 이 빛은 단순한 섬광이 아닌 등대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그랬다. 등대는 묵묵히 자신의 정체성을 어두운 바다를 향해 쏘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부숴져 흩날리는 빛의 파편은 천천히 나를 어루만졌고, 참았던 눈물은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나'를 닮았다 생각했던 등대가 이토록 아름다운 빛을 내뿜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물때문에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등대의 빛이 일렁였고, 그 일렁임에 맞춰 가슴 속 파문은 점점 넓고 깊게 퍼져나갔다. 나는 한참동안 가슴을 부여잡고 울음을 삼켰고, 등대의 빛은 이런 나를 위로하듯이 등을 어루만졌다...... ------------------------------------------------------------------------ "어떤가요? 그때 함께 보았던 등대와 닮았나요?" 어느새 다가온 제럴드가 말을 붙였다. "네. 무척 닮았네요." "기억만으로 그린거라 불안했었는데, 닮았다고 말씀해주시니 다행이네요." 그는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나는 한동안 더 등대 그림을 감상했다.그 날의 섬광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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