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eis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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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 (1973) - 비하인드 씬

개인적으론 린다 블레이어의 계단씬과 목 돌아가는 씬이 제일 무서웠는데 계단씬에서는 린다 블레이어 허리에 보이지 않는 와이어를 연결했었다네요. ^^ 다시 봐도 섬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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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했으면 허리에 엄청난 무리가 갔을텐데 역시 아이들이라 유연하군요 ㅋㅋ
헐 다시 봐도 무서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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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면 의문사를 당한다? ‘아몬 라 왕녀의 저주’
아몬라 왕녀는 기원전 1,500년 무렵, 이집트 왕조 시대에 실제 존재했던 인물이다. 그녀가 서거하자 이집트 백성들은 아몬라 왕녀를 호화롭게 장식한 관에 넣어서 미이라로 만든 뒤, 나일강 강변에 위치한 지하 무덤에 안치했다. 그리고 시간이 400년쯤 흐른 1890년의 어느 날, 네 명의 젊은 영국인들이 이집트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아몬라 왕녀의 관에 흥미를 보이고 그 관을 구매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들은 제비뽑기를 해서 꽝이 나온 사람이 구매비를 대기로 합의를 봤다. 뽑힌 남성은 당시 기준으로 600 파운드 값을 치른 뒤 관을 호텔로 가지고 온다. 그런데 몇 시간 후, 그 남성이 호텔 방에서 사라진다. 유일하게 남성의 마지막을 본 목격자는 그가 어떤 것에 홀린 듯 사막을 향해 걸어갔다고 진술했고, 그 모습을 끝으로 그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관을 구입하는 데 같이 있었던 나머지 세 명 역시 비참한 운명을 맞게 된다. 첫 번째 남자는 이집트인인 하인의 총에 맞아 한 쪽 팔을 절단해야 했으며, 두 번째 남자는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가 여행 직후 파산했다. 세 번째 남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요양하던 도중 직장에서 해고되었으며, 결국 거리의 성냥팔이상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로 전락한다. 아몬라 왕녀의 관은 그 후 다른 사람의 손에 구매돼 영국으로 옮겨지게 된다. 그런데 관이 영국으로 들어온 직후 관을 구매해 옮긴 영국인의 가족이 길에서 당한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되고, 집에는 화재가 발생해 완전히 망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난다. 당황한 영국인은 자신의 불행이 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관을 대영박물관에 기증한다. 불운하게도, 저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관을 대영박물관으로 운송하던 트럭은 갑작스레 폭주해 걸어가던 시민을 그대로 치어 사망케했다. 이어 그 관을 운반하던 세 명의 인부 중 두 명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다리가 골절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이틀 뒤 원인 불명의 병을 사인으로 사망하게 된다. 참 다사다난하게 대영 박물관으로 오게 된 아몬라 왕녀의 관. 그런데 그날부터 경비원은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밤마다 누군가 음산하게 훌쩍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 이런 말들이 경비원들 사이에 돌자 아무도 아몬라 왕녀의 관이 있는 곳 근처로는 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용감한 직원이 이집트실에 들어가 관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그리고 여지없이 그의 막내 아들이 홍역으로 사망하고 만다. 박물관 측은 왕녀의 관을 지하실로 운반하기로 결정하는데, 지하실로 관을 운반한 사람들 역시 원인불명에 중병에 걸렸고 그 중 한 명이 사망한다. 마침내 아몬라 왕녀의 저주는 세간의 집중을 받게 되었고 신문 기자들이 곳곳에서 몰려와 취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사진기사가 관을 찍은 뒤 현상을 했는데, 필름에 나온 사진은 미이라가 아니라 섬뜩한 표정을 짓는 인간 형상의 얼굴이었다. 그 사진을 본 기자는 퇴근 후 집에 들어가 권총으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 후 아몬라 왕녀의 관은 박물관에서 개인 수집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개인 수집가 역시 패가망신하며 재산과 가족을 모두 잃게 됐다. 이렇게 되자, 누구도 아몬라 왕녀의 관을 인수하려고 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그 중, 고집 센 미국의 고고학자가 그 관을 인수해 뉴욕으로 가져가려고 계획한다. 1912년 4월, 이 미국인 고고학자는 아몬라 왕녀의 관을 싣고 뉴욕으로 첫 출항을 하는 최신식 호화 여객선에 타고 있었다. 그리고 4월 14일 밤, 아몬라 왕녀는 다시금 어마어마한 재앙을 내리고 만다. 고고학자가 탑승한 여객선은 무려 1,500명의 승객과 함께 대서양 속 차가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 . . . . . . . 그 여객선의 이름은 바로 '타이타닉 호' 다. 출처 : onedayoneinfo ㅗㅜㅑ....... 마지막에 너무 소름돋아서 가져왔음 저주란게 진짜 있는걸까 울고있는 소년 그림 저주가 생각나기도 하고.. 나는 마지막에 어디에 전시되있을까 궁금해서 쭉 읽었는데 바다에 잠겨버림 이런 글 ㅈㄴ 흥미돋음
[펌] 시부야 총기 난사 사건 이야기
시부야 사건은 1965년 도쿄 시부야서 18세 소년에 의해서 발생한 무차별 총기난사 테러사건으로 소년 라이플마 사건 (少年ライフル魔事件) 이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사건이다. 사건은 1965년 7월 29일 오전 11시, 카나가와(神奈川) 현 야마토(大和) 시의 경찰서로 "숲 속에서 어린 아이가 공기총을 쏘면서 놀고 있다" 라는 신고가 접수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신고는 범인인 당시 18세의 야마모토(가명) 라는 소년이 일부러 경찰을 끌어들이기 위해 허위로 낸 것이었고, 당시 처음으로 출동한 순경의 가슴에 총을 한 발 쏘고는 머리(頭部)를 수차례 개머리판으로 강타하여 살해했다. 처음부터 범인의 목적은 경찰이 가진 리볼버를 뺏는 것이었고, 그 당시 일본에서는 전공투 등이 총을 손에 넣기 위해 경찰을 습격하는 사건이 제법 있었던 편이다. 그렇게 범인은 권총 한 정, 실탄 5발, 경찰수첩, 수갑을 획득했고, 제복도 손에 넣으려고 했으나 피 때문에 더러워져서 상의는 포기하고 바지만 빼앗아 갈아입었다 한다. 그리고 뒤이어 달려온 순경 2명 중 한 명에게 하복부 관통상을 입힌 뒤 도주했다. 본래 계획은 일본인의 얼굴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외국인의 차량을 빼앗아 도주하는 것이었으나, 뒤이어 달려온 경찰의 반응이 빨라서 차를 뺏는건 실패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신 범인은 경찰로 위장하여 사건 현장 근처의 민가로 들어가 당시 34세의 남성에게 "이 근처에 총격사건 때문에 범인이 도주했다. 차량을 징발해서 쫓겠다." 라고 속여 도쿄 마치다(町田)시 인근으로 이동했다. 12시 5분, 물론 범인의 기대와는 달리 경찰이라고 믿은 남자는 범인을 파출소 앞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남자가 차에서 내려 총기 사건의 범인에 대해 물어보려고 경찰에게 다가서자 순경은 총을 겨누었다. 왜냐하면 이미 범인이 경찰을 쏴 죽이고 총,뱃지,바지,경찰수첩 등을 훔쳐서 이동중이란 사실이 뉴스서 나왔기 때문이였다. 범인은 남성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한참을 대치하다가 마침 교차로에 서 있던 29세의 다른 남성의 차량을 발견하고 그를 협박해서 도주하는데 성공했다. 범인은 이런 식으로 3차례에 걸쳐 차량을 강탈해가며 오후 3시 30분 경, 시부야 방면에 도착했다. 범인이 굳이 다른 도주로가 아닌 시부야를 택한 이유는 본인의 단골 총포상인 로얄 총포화약점을 점거하고탄약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로얄 총포상 안에는 65세의 사장(남) 과, 16세 남자 직원, 그리고 21살의 여직원과 여동생(16세)이 있었다. 매대에 있던 여직원이 범인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으나, 범인은 바로 총을 들이밀고 가게에 샘플로 놓여있었던 45구경 S&W 권총탄 1발을 보충한 뒤, 3자루의 라이플을 빼앗았다. 그 시점에서 이미 주위에는 경찰차 50대, 장갑차 10대, 헬기 2대를 포함한 총 580명이 가게를 포위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대치가 지속되자 안 그래도 번화가인 시부야에 구경꾼들이 몰려 그 수가 약 5000명을 넘었고, 이는 전철, 버스 등이 경찰에 의해서 통제된 탓에 계속 늘어났다. 한편, 범인은 침착하게 총포상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인질극을 벌이며 지속적으로 위험 사격을 가했다. 당시 경찰은 범인의 소총 사정거리나 사격 실력을 낮추어보고 반경 100m 까지를 통제선으로 정했으나, 최대 500m 까지 몰려드는 구경꾼이나 경찰이 하나하나 맞기 시작해서 총 1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한편 범인은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며 총포상 주인에게 뺏은 탄으로 민간인과 경찰을 쏘는걸 즐겼다고 한다. 총격전이 시작된 지 50분 정도, 범인은 현재 상태를 오래 지속하기 보다는 도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무슨 패기인지는 몰라도 경찰에게 헬기를 요구했다. 이에 경찰 측도 범인의 사격이 뜸해진 틈을 타서 기동대 일부를 가게 뒷 편으로 우회시키는데 성공했다. 경찰의 계획은 범인의 측면으로 돌아가 창문으로 최루탄을 투척한 뒤 무력화시켜 체포하자는 거였다. 농성 시작 후 약 1시간 정도 경과한 오후 7시 13분, 기동대가 투척한 최루탄에 의해 가게 내에 최루 가스가 발생했지만 범인은 완전히 무력화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경찰이 순순히 헬기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범인은 여직원 자매에게 될 수 있는 한 많은 탄약을 가지고 오게 한 뒤 경찰차를 탈취해 도주할 생각이였다. 그러나 최루 가스와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두 자매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사이 범인은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범인을 친 사람은 바로 총포상 직원이었다. 비록 탄은 없었지만 라이플의 개머리판으로 범인을 때려 눕힌 뒤 남직원은 그대로 도망쳤다. 화가 나서 도주하는 인질을 향해 소총을 난사하던 중 생각보다 탄약이 금방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여직원 자매에게 다시 재장전을 시키던 도중 범인의 뒤에는 이미 우회에 성공한 형사 한 명이 버티고 있었다. 용감하게 범인에게 달려들어 제압에 성공하는 듯 했으나, 아직 범인에게는 경찰에게서 탈취한 권총이 남아 있었던 상황이였다. 범인은 두 발을 형사에게 발사했고, 1발은 뺨을 스쳤으나, 한 발이 좌측 가슴에 명중하여 중상을 입혔다. 범인 체포 직전의 사진이다. 그러나 예비용으로 있던 리볼버까지 다 써버린 범인이 더 이상 버틸 여력은 없었고 마지막으로 경찰차를 탈취하려고 도주를 시도했다. 결국 오후 7시 20분, 범인은 달려온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범인이 경찰과 민간인에게 난사한 것만 총 130여발을 넘는 총기난사 사건이 이렇게 끝나게 된 것이다 당시 18세 정도의 소년범 사건이 적은 편도 아니었고, 경찰이 총기를 탈취당하는 사건 자체가 적은 것도 아니었지만 시부야 같은 번화가를 무대로 대규모의 경찰과 대치하며 시가전과 같은 상황을 만든 사건은 전무했기 때문에 언론들은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지금이야 테러단체들이 이런 식으로 번화가서 무차별 총기난사를 하지만 그때는 이런 총기난사는 전무했으니)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범인은 이미 5살 때 우산과 폭죽을 조립해서 사제총기를 만들어서 놀았다고 하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스스로 사전을 찾아가며 미국 총기도감을 읽을 정도였고, 특히 일본 하드보일드 소설의 거장 오야부 하루히코(大藪春彦)의 소설 윈체스터 M70(ウィンチェスターM70) 즐겨 읽었다고 한다. 진술 조서에도 한 명의 경찰관을 죽이고 몇 명의 경찰에게 부상을 입힌데 대해서 "그 때, 2명의 경관을 오야부의 소설 주인공처럼 비정하게 먼저 죽였으면 나았을 것이다. 정을 가지고 도망쳐줬으면 하고 생각한 것이 실패였다." (あの時、2人の警官を大藪の小説の主人公のように情け無用で先に射殺しておけばよかった。 情をもって逃げてくれればと思ったのが失敗だった) 라고 말하는 등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니였다. 덤으로 단순히 총을 난사하고 싶다는 이유로 자위대에 지원한 적이 있으나 시험에서 불합격, 이후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막연한 증오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뭐 이런 놈은 군대 갔어도 큰일났을듯 하지만) 특히 누나 명의로 총기를 구입했다가 후에 자신의 명의로 등록한 뒤 몇 번이고 경찰에게 검문을 받은 것에 대해 상당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건의 발단 단계에서 경찰을 제일 먼저 노린 것은 이러한 경찰에 대한 증오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67년 4월 13일 요코하마 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고, 이 때 범인은 제발 자신을 사형시켜달라고 하는가 하면 차라리 자신을 월남전에 참전시켜달라는 등의 진술을 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런 진술이 "스스로 죽여달라고 할 정도로 죄를 뉘우치고 있는 모양이구나" 라고 순진하게 받아들여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1968년, 2심에서도 이같은 발언이 이어졌고 "총에 대한 매력은 지금도 역시 끝나지 않는다.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사형시켜줬으면 한다." (銃への魅力は今なお尽きない。再び多くの人に迷惑をかけないように死刑にしてほしい) 라고 강조, 결국 범인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다. 1969년 10월 2일 상고가 기각됨으로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1972년 7월 21일 25세의 나이로 범인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훗날 이 사건은 당시 일부러 총격전 현장까지 가서 구경하다가 눈 앞에서 사람이 총에 맞는 걸 목격한 전 도지사 출신 망언제조기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의 소설 혐오의 저격수 (嫌悪の狙撃者)에 비교적 상세히 그려져 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이시하라는 이 소년이 제정신이 아닌거에 대해서 동질감을 느꼈는지 "소년이 시가전을 벌인 것은 사회체제에 대한 막연한 불만과 증오를 표현한 순수한 행동이다." 라고 주장하며 실제로 두 차례 정도 법무대신에게 감형을 탄원하기도했다. 아무튼 이 사건은 패전 이후 일본 최초로 미성년자에 대해 사형선고가 내려진 첫 사건이며,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에 일어났던 무차별 총기난사 테러 사건이다. 요약. 1. 1965년 당시 18세였던 총기 덕후 범인이 경찰을 사살하고 총을 빼앗아 도주하다가 평소 단골이던 시부야의 총포점에서 580명이 넘는 경찰과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기난사를 해대면서 사건이 발생했다. 2. 초기에 경찰이 100m 정도로 통제선을 상정했으나 최장 500m 까지 도달하는 소총탄의 사정거리를 계산하지 못하고 5천명이 넘는 구경꾼이 몰리는 바람에 총 16명의 부상자 발생 결국 총포점을 우회하는데 성공한 기동대와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서 사형을 받게 되었다.
흉가에서 혼자 하룻밤 자고 나오면 상금 30억, 한다 vs 안한다
강원도 한 작은마을에 위치만대한민국 3대 흉가 중 가장 으뜸이라고 불리는' 갑둔리 흉가' 이 흉가는 대한민국 3대 흉가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열손가락 안에 드는 흉가라 각 나라의 퇴마사가 방문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잦은 인명사고로 정부에서 직접 나서 1999년 이 흉가의 출입을 제한하였지만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들의 발길까지는 완전히 막지 못하였다 갑둔리 흉가의 전설 강원도의 한 작은마을. 이 흉가가 위치한 곳은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 6.25 전쟁당시 많은 국군장병들이 사망한 곳이였다. 마을에서도 제법 거리가 있고 외진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원래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6.25 전쟁이 휴전되고 한참 유해발굴 작업이 성황리에 진행될 1955년때이다. 눈에 보이는 유골들은 발굴작업이 다 끝나 발굴본팀은 철수를 하였고 인부3명이서 밤늦게까지 아직 찾지 못한 유골들 발굴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 작업 중 한 인부가 갑자기 눈이 뒤집혀 개거품을 문 뒤 돌연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빠르게 이 소문이 퍼지면서 이곳의 유해발굴 작업은 급하게 종료되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마을주민들은 이 자리에 많은 죽음의 넋을 기르기 위해 신당을 차려 주민들끼리 돌아가면서 관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1977년 이 신당을 돌보던 마을주민 30대 여인이 신당 처마밑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경찰은 단순자살로 사건을 종결시켰지만 이 조금한 마을은 이 사건으로 크게 떠들석하였다. 마을주민들의 말로는 그 여인이 자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것. 그 후로 그 신당에 대해 흉흉한 소문이 돌더니 끝내 신당은 마을주민들 관리가 끊겨 지금의 흉가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1980년 또 한번 이 작은마을이 들썩이게 된다. 이 신당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40대 남성의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심하게 부패된 이 시신은 머리가 없었는데 경찰은 이 사체가 타 지역에서 살인된뒤 이 신당으로 유기됐을 거라고 조사를 하였다. 그 뒤로 이 사당은 마을에서 흉물이 되었고 이상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었다. 매일밤 이 신당근처에서 소름끼치는 여러사람의 비명소리가 난다는것이다. 무서움을 이기지 못한 마을주민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몇몇의 주민들만 남은 상태이다. 이 흉가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81년 티비방송을 통해서이다. 당시 촬영 계획을 맡고 지휘했던 이 모씨 PD는 촬영 뒤 2년간 악몽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살을 하여 그 뒤 이 흉가는 더욱 유명세를 탔다. 이 흉가가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한 무속인들이 굿을 하기 위해 이 흉가를 찾았다. 하지만 굿을 하기도 전에 무속인들은 혀를 차면서 발길을 돌렸다. 이 흉가는 굿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웬만한 잡귀들도 아닌 악령들만 득실득실 모여산다는것이 무속인들의 공통된 주장이였다. 한 무속인은 이 흉가를 보자마자 울면서 무릎을 꿇고 싹싹빌더니 비명소리를 지르면서 도망갔다는 얘기도 있다. 그 뒤 1997년 이 흉가에서 또 다른 사체가 발견된다. 20대 타지 여인의 사체였는데 동맥을 그었는지 바닥에는 굳은피가 흥건하였고 눈은 뒤집혀져 흰자만이 보였으며 입에서도 피 토를 하였는지 얼굴전체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당시 이 사건을수사하던 한 형사가 갑자기 미쳐 날뛰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그 뒤 형사는 아직도 정신병원에 수감중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주민들의 계속된 요청으로 1999년 강원정부가 직접 나서서 이 흉가에 민간인이 출입할수 없게 조치를 취하였다. 하지만 그 흉가를 관리하겠다는 인원도 없었고 사실상 흉가는 그대로 방치가 되었으며 2001년 흉가체험을 온 일행중 한 30대 남성이 심장마비사를 하였다. 때문에 이 흉가는 퇴마사들도 금기시하는 곳이 되었다. 1981년 여러 무속인들이 마을에서 굿을 열려고 준비중이였지만 흉가를 본 무속인들은 바로 철수를 하였다. 흉가로 들어가는 입구 체험단 사례1 낮에 미리 사전답사를 하여 들어가는 길을 익히고 밤에 갑둔리 흉가를 출발하기 위해 그 마을에서 민박을 얻었지만 흉가체험을 위해 민박한 사실을 안 민박주인 할머니가 우리를 쫓아냈습니다.  그때부터 겁이 좀 났지만 강원도까지 와서 포기할수는 없었습니다. 그때 포기했어야 했는데... 결국 흉가체험 후 차를타고 강릉으로 가길 결정했고 ... (중략) 입구에서 부터 다리가 후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일행 모두가요... 그 중에 여자인친구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고 공포감은 배가 되었습니다. 무서움을 떨치기 위해 넷이 손을 나란히 잡고 드디어 흉가를 본 순간 저희는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차 있는 방향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흉가 창문으로 비춰진 그 수 많은 귀신들이 자기들도 손을 나란히 잡고 우리를 환영한다는 듯 그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후기를 쓸가 말까도 고민했는데 혹시 호기심으로 가실분들은 제 글을 꼭 읽고 가지말라고 바짓가랑이도 잡고 말리고 싶기 때문에 이렇게 작성하는 것입니다. 꼭!! 제발 가지 마세요!! 제가 다 부탁드립니다!! 체험단 사례2  기센 친구들 3명이서 제가 기가 약하기 때문에 같이 갔습니다 ;; 입구부터 후덜덜 하더라구요 ㄷㄷ  아 근데 진짜 가지말걸... 아 ... 너무 유명해서 다들 아시다시피 갑둔리 흉가는 입구에서부터 휴대폰이 안터져요 ㅠㅠ 산 안쪽에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입구에서 제 휴대폰이 갑자기 꺼지는데 저 진짜 심장마비 걸릴뻔 했습니다... 강심장인 제 친구가 흉가에 들어가서 사진을 막 찍는데 너무 무섭더라구요;; 카메라 플래시 터질때마다 뭐가 자꾸 보이는거 같기도 하구;; (중략) 결국 무사히 나와 돌아가기 했는데 문제는... 돌아갈때 괜히 뒤돌아 봤습니다;; 갑자기 처마 밑에 밧줄이 스스륵 내려오더니.. 아... 진짜 다신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무작정 뛰었습니다; (중략) 제 강심장 친구가 우는걸 그 날 처음봤습니다. 이 흉가에서 하룻밤을 혼자 자고 나온다면 상금을 30억 준다고 한다. 나는 한다 vs 안한다 ㅊㅊ : ㅉㅂ 죽어도 안합니다.. 저걸 왜 합니까.. 죽으면 30억이 필요가없어요.. 30억이 노잣돈이라면무슨 소용입니까.. 포기하겠습니다..
퍼오는 공포썰) 사람이 더 무서운 이야기
귀신이 정말 무섭긴 하지만 사실 귀신도 사람의 종착점인거잖아 그것도 한이 서린 사람들 아니면 그냥 못된 사람들 그래도 귀신은 사람한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기 쉽지 않지만 사실 사람은 그럴 수 있잖아. 그것도 어렵지 않게, 꽤나 많은 방법으로. 또 세상에는 생각보다 나쁜 사람들이, 무서운 사람들이 너무 많고. 뉴스 기사들을 보면 어쩜 사람들이 저럴까 싶은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잖아. 또 그런 기사를 볼 때 마다 저런 사람들이 귀신이 되면 어떻게 될까 싶어서 더 무섭기도 하더라. 뭐 그런 사람들은 기분 다 풀면서 살았으니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 것 같지도 않지만.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이야기를 가져와 봤어. 짧으니까 후딱 같이 보쟈! _______________________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고요, 좀 섬뜩했다라고나 할까... 제가 지금은 자동차 회사에서 설계를 하고 있지만,원래 토목과 출신이고 토목기사생활을 했습니다. 공무쪽으로... 1년 반동안 토목기사 생활을 했는데, 제가 처음 일하던 곳은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입니다. 태풍 매미로 인해 유실된 다리 복구 공사였습니다. 저 곳 굉장한 오지 입니다. 컨테이너 박스 하나 가져다 놓고 현장사무실로 썼었고, 숙소는 현장사무소앞 슈퍼 2층이 제 숙소였습니다. TV수신이 잘 안될만큼 오지구요, 말이 슈퍼지..냉장고에는 유통기한 1주일 지난 우유들도 있고, 새우깡 하나 집어들고 "얼마예요?" 그럼 할머니가... "천원!" '이런..샹' 떡하지 봉지에 500원이라고 적혀있는데... 그럼 할머니는 '꼽냐?' 이표정으로 쳐다보시고, 손님은 왕이라는 말은 개나 줘버리라는 곳입니다. 제대로 된 슈퍼를 가려면 30분을 차를 타고가야되는 그런곳입니다. 위로 가면 지리산쪽이고 밑으로 가면 경호강 레프팅 하는 곳으로 통하는 중간쯤에 저희 현장이 있었고요. 도로는 좁지만 공사현장이 많은 관계로 덤프트럭들이 상당히 많이 다니는 위험한 곳입니다. 근처에 밥집도 없어서...15분간 차를 타고 가서 밥을 먹고 다시 현장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 당시 제 차가 마티즈였습니다. 소장님과 밥을 먹고 올라오는데 덤프트럭이 옆으로 지나가더군요. 제 마티즈 옆으로 날아갈뻔. ㅡ,.ㅡ "이야 저기 받히면 뼈도 못추리겠는데요." "덤프들은 한빠리 할때마다 그게 다 돈이니까 저렇게 미친듯이 달린다." "그래도 너무 위험하게 다니는데..." "김기사도 운전 조심해라..여긴 신호등도 없고 오지라서 사람들도 안다녀서 목격자도 없어. 바쳐서 죽으면 죽은 사람은 말이 없자나... 죽은 사람만 억울한거야" "진짜 조심해야겠네요" 거기 현장에는 저랑,현장소장님,대리 한분이 현장을 지켰습니다. 다리에 콘크리트 타설 날. 이 날은 아주 중요한 날이라,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좀더 일찍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밥을 먹고 올라오는데 한 300미터 앞에 사고현장이 보이더군요. 덤프트럭은 앞에 오른쪽 바퀴가 빠져있고, 소렌토 차량은 가드레일을 뚫고 반쯤 걸쳐 있는 상태더군요. 처음 보는 사고현장. 심장이 쿵닥쿵닥 거리더군요. 소렌토 차량은 차량지붕이 반쯤 날라가있고, 소렌토 운전자는 얼굴이 완전 피로 얼룩져 있었으며, 눈은 뜨고 있는데 초점은 없고 고개만 끄떡 끄떡 거리고 있더군요. 정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사람 같더군요... 소렌토 차량 길 건너편에는 덤프 기사가 똥씹은 표정으로 담배만 피면서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는거 같더군요. "소장님. 저사람 꺼내야 하지 않을까요?" "저정도 상태면 괜히 도와준답시고 꺼내다가 잘못되면 우리가 덤탱이 쓴다. 좀 있으면 레미콘차 올꺼니깐 그냥가자." "그치만..." "박대리 니는 119에 전화해주라" 그때 박대리가 전화를 꺼내서 119에 전화를 해서 위치를 설명하고 뭐 이래 저래 이야기를 하고 끊더군요. "아까 덤프기사가 기다리고 있는거 같던데... 왜 또 신고를?" 소장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전에 한번 말햇제? 이런 대서 사고나면 목격자도 없다고... 아까도 덤프기사 혼자 있더라 아이가. 가해자 피해자 중에 누가 한명 죽으면 모든 진실은 산사람말이 진실이 되는거야. 박대리! 아까 전화 했을때 출동했다 하더나?" "아니요. 그냥 사고 접수 받던데요" . . . . . . . "그 덤프기사. 그 사람 죽기 기다리고 있던거야" [출처] 실제로 겪었던 무서운 이야기 _______________________ 실제로 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어. 저렇게 사고 나서 피해자가 불구가 되면 엄청난 돈을 계속해서 물어줘야 하지만 죽으면 그것 보다 적은 금액에 합의가 가능하다고, 그래서 오히려 확인 사살 하는 기사들도 있다고. 에이 뭐 정말 그렇겠어 싶지만 만에 하나라도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긴 할거라고 생각하니 진짜 무섭네... 혹시 관련해서 들어본 이야기들 있어?
예전에 군대 훈련소에서 들었던 무서운 이야기들
훈련소 힘들죠 ㅠ 힘들어유 하필 여름 기수라 덥고 습할때 훈련받아서 더 힘들었었네요 일과 다끝나면 21시쯤 되서 생활관 들어오는데 그때 솔직히 잠 다들 안오거든요 그래서 저희 생활관은 9명 돌아가면서 서로 알고있는 무서운이야기 하나씩 하고 잤어요 ㅋ 벌써 2년전이라 잘 기억은 안나는데 제 기억에 남을 정도로 소름돋았던 이야기들 하나씩 끄적여 볼게요 들었던 내용 그대로 반말로 할게요 1. 사람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귀신 1 사람의 행동을 반대로만 따라하는 귀신이 있다고 해 예전에 아는사람이 시력이 굉장히 좋았어 근데 어느 순간부터 시력이 점점 떨어지더래 문제는 안경을 쓰더라도 시력이 돌아오질 않고 이 시력저하의 원인을 어떤 안과의사도 못 밝혀내는거야 참 기묘한 일이야 그렇게 거의 마이너스 가까이 시력이 떨어져서 살고있는데 그 사람 지인중 귀신을 보는 친구가 있었어 정말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면서 하는 말이 요새 어디 불편한곳 없냐고 물어보는거야 느낌이 쎄하더래, 그래서 말했지 눈이 요즘 불편하다고 그 귀신보는 친구가 하는말이 지금 니 눈앞에서 여자귀신이 눈 앞에서 마주보고 있다고 그것도 허공에 거꾸로 선채로 눈을 맞대고 있었대 안과의사들이 못찾아내는것도 당연했겠지 그 친구가 말하는대로 굿 한번해서 귀신쫒아내고 나서는 시력이 다시 점차 원래대로 돌아왔다고 해 몇달동안 귀신이 거꾸로 선채로 나만 노려본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2. 사람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귀신 2 2년차 커플이 있었어 데이트를 하는 도중에 고깃집에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근데 남자가 고깃집 내부를 보자마자 여자 손을 확 끌고 밖으로 나가버리는거야 여자가 대체 무슨일이냐고 물었지 남자가 말하길 귀신중에는 사람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귀신이 있대 근데 그 고깃집을 들어가니 손님들이 전부 상추에 고기를 싸서 먹는게 아니고 고기에 상추를 싸서 먹고 있었대 그 말 듣자마자 여자가 기묘하게 웃으면서 "대단한데?" 라면서 팔이 꺾인채로 손등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어 3. 내무실 살인마 맨 위에 올려놓은 짤이야 다시 설명하면 이등병 A는 새벽 3시에 잠에서 깨고 화장실에 갔다가 자기 선임 B가 사람을 죽인걸 보고 말았어 그걸 보자마자 이등병 A는 다시 생활관으로 도망쳐와서 자는척을 했어 들키면 죽으니깐 근데 하필 그때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어두워서 선임 B는 누가 자기를 봤는지 모르는 상황이야 선임 B가 생활관에 들어와서 누워있는 얘들 한명한명한테 물어봐 "방금 화장실 갔다왔냐?" "아닙니다." "방금 화장실 갔다왔냐?" "아닙니다." "방금 화장실 갔다왔냐?" "아닙니다." "방금 화장실 갔다왔냐?" "아닙니다." "방금 화장실 갔다왔냐?" "아닙니다." "방금 화장실 갔다왔냐?" "아닙니다." 이제 선임 B가 이등병 A한테 물어봤어 "방금 화장실 갔다왔냐?" 이등병 A는 무덤덤하고 차분하게 대답했어 "아닙니다." ............. "니가 봤구나 ^^" 사실 선임 B가 자문자답을 하고 있었던거야 새벽 3시에 다들 자고 있을테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겠지 근데 그걸 보고 방금 들어온 이등병 A는 당연히 깨어있고 자기 차례가 되니깐 무의식적으로 아닙니다라고 말해버렸어 4. 귀신을 보는 후임 산속 외진곳에 위치한 부대가 있었어 이등병 A는 이곳으로 자대배치를 받은지 얼마 안됐고 이 이등병 A가 귀신을 볼 수 있다는 얘기가 퍼지게 돼 일병 B는 얘가 진짜 귀신을 보는지 관심이 생겼고 마침 새벽 초소근무를 이등병 A랑 같이 서게 됐어 산속이라 심심하니깐 서로 노가리좀 까다가 일병 B가 궁금해서 한번 물어봤어 "야 너 진짜 귀신보냐?" ................ 그 말을 듣자마자 이등병 A는 5초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갑자기 눈이 뒤집히며 기절해 버렸어 당연히 그날 부대는 난리가 나고 일병 B는 경위조사를 해야하니깐 의무대대에 실려간 이등병 A를 찾아가서 그때 대체 왜 기절했냐고 물었어 "산 속이라서 귀신이 엄청 많았는데 일병님이 그때 귀신보냐고 묻자마자 모든 귀신이 저를 쳐다봤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습니다." ------------------- 더 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나중에 또 생각나면 한번 더 올리겠습니다.
5,300여 년간 얼음 속에 갇혀 있던 사람(사진주의)
1991년 9월 19일 알프스 산맥 피나일봉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던 독일인 등반가 헬무트 지몬과 아내 에리카는 해발 3,200m 부근 외치 계곡 빙하지대에서 얼음 위로 상반신이 드러난 사체를 발견하게 된다. 발견 당시 두 부부는 조난 당한 산행가의 사체로 오해하여 지역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그만큼 사체의 상태는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냉동 미이라 곁에서 현대인의 것이라고는 볼수없는 유물들이 함께 발견되면서 뼈와 피부로 연대를 측정한 결과 5300년 전의 석기시대인으로 밝혀졌다. 또 미라의 뼈와 근육에서 DNA를 뽑아내 분석한 결과 유럽인의 조상으로 판명 되었다. 그리하여 그를 발견된 지역명 Oetzi 을 본따 아이스맨 외치(Oetzi The Ice Man)로 부르게 된다. 외치의 사체를 현대 의학 기술로 철저하게 분석한 결과 외치는 159cm 키에 46세의 남자이며 웨이브진 머리카락과 눈은 갈색이였다. 많은 학자들이 당시 유럽인이 푸른 눈을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던 것과 달리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때까지는 푸른 눈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내장에 든 내용물을 2년간 DNA 분석한 결과 두 번에 걸친 식사의 음식물이 밝혀졌다. 그는 죽기 전에 산등성이에서 곡식 야채 야생 염소고기를, 해발 3200m 지역에서는 곡식과 붉은 사슴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그는 염소가죽 정강이받이에 풀잎 망토를 입었고 잘 짠 신발을 신었으며 곰 가죽 모자를 썼으며 뼈에 도끼날을 묶어 만든 구리도끼와 함께 돌촉 화살이 든 화살통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연구팀은 외치가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죽었다고 예측되었지만 발견 10년 후인 2001년 X선 촬영에서 왼쪽 어깨 뒤에 깊이 박힌 돌 화살촉이 드러나면서 살해된 것으로 추론됐다. 그리고 그는골반뼈 세포핵으로부터 추출한 DNA 분석 결과 O형 혈액형을 가졌으며 젖당(락토스) 소화장애증, 심장병 소인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중추신경계, 심장혈관계, 관절, 피부 등에 통증 및 발진 등을 일으키는 라임병을 유발하는 보렐리아 박테리아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미라의 등, 발목, 오른쪽 무릎 뒷부분의 피부에 문신이 돼 있는 것은 라임병으로 인한 통증치료 차원에서 시술된 듯하다고 추측했다. 2002년 3월에는 외치의 오른손에서 적을 방어하면서 생긴 듯한 상처가 발견됐고 2007년 8월에는 외치의 칼 화살촉 옷에 묻은 혈흔의 DNA를 분석한 결과 이 피가 네 사람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국 외치는 여러 사람들과 격렬하게 싸우는 과정에서 어깨에 화살을 맞아 죽은 것으로 결론 났다. 하지만 사체를 연구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대학의 고고학 연구진은 아이스 맨이 화살에 맞아 숨졌다는 기존의 가설을 뒤엎고 직접적인 사인을 실족사로 확인했다고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연구진은 아이스 맨은 살해당한 게 아니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연구팀을 이끈 볼프강 레체이스 박사는 “그가 화살에 맞은 건 죽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냥을 하려고 산에 오르던 중 추락해 왼쪽 쇄골 아래 동맥에 구멍이 나는 치명상으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얼마전 그의 생전모습을 복원한것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복원된 외치의 외모는 주름이 많고 볼이 움푹 패여 현재의 45세 남성과는다소 다른 이미지지만, 5,300년전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지만 미이라로 발견되어 현세에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는아이스맨 외치. 그는 선사시대 인류를 파악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까지 이탈리아 사우스 타이럴 고고학박물관에 –6°C가 유지되는 특수한 방에 보존돼 있다. 출처 : 인스티즈 와 5300년전 미라로 뭐먹었는지 무슨병있는지 DNA고 다 밝혀내네 미친과학;; 세상좋아졌다 정말로;; 누군 연구해서밝혀내고 난 가만히 폰으로 쉽게 접하고
펌) 롯데월드 진짜괴담, 가짜괴담 정리
롯데월드 괴담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뭐가 구라고 뭐가 진짠지 제대로 정리해봄 (글쓴이는 롯월에서 약 2년간 어트랙션(놀이기구)팀으로 근무했음 정확도는 보장함) <ㄹㅇ 찐괴담> 1. 신밧드의 모험 괴담 메르스사건으로 한창 입장객이 없던때 있었던일이라고 들었음. 신밧드의모험도 기본 10~20분이상은 항상 대기시간이 있던 나름 인기 어트랙션이었는데 유독 입장객이 없던 날이있었음. 그래서 신밧드의모험도 대기시간이 0분이었고 탑승객도 하나도없이 전부 빈 보트로 그냥 운행을 돌리고있었음(신밧드의모험은 보트를타고 지하를 탐험하는 방식의 어트랙션임) 근데그때 어린아이 한명과 아이엄마로 보이는 손님 두명이 타러옴. 당시 탑승장엔 마이크로 탑승안내하는 알바랑 승,하차 도와주는알바, 보트출발시키는 알바 총 세명이있었는데 손님이 한명도없어서 지루하던 찰나여서 그손님들이 너무 반가워갖고 막 평소보다 오버하면서 안내 멘트도 날리고 아이한테 손인사도 마구 흔들어 주면서 그 두손님을 태우고 보트를 출발시켰다함 근데 운행시간 10분이 한참 지나도 그 손님들이 탄 보트가 안오는거임. (그손님들을 태웠던 보트빼고 다 빈보트였음) 그래서 이거 탑승중에 뭔가 사고가 일어난게 분명하다 판단한 직원들이 안전팀이랑 정비팀을 불러서 당장 운행을 멈추고 지하 내부를 샅샅이 뒤졌으나 그손님들은 못찾았고 혹시나해서 cctv를 돌려봤는데, 그때 탑승장에 있던 알바생들이 아무도없는 허공에다 손인사하고 멘트날리고 승하차도와주고있었다함. 2. 혜성특급 괴담 먼저 이 어트랙션은 360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를 타고 어두운 지하를 순환하는 방식의 롤러코스터임 이사건이 일어난 날도 입장객이 별로 없어서 혜성특급도 대기시간이 거의 0분인 생태였는데 눈치게임성공해서 신난 어떤 어린이손님과 엄마손님 둘이 유일하게 와서 계속 연속으로 탑승을 하고있었다함 그러다 아이엄마는 지치고 아이혼자만 타라고 해서 아이만 다시 혼자 입장을 하게되고 그어린이 손님은 이번엔 맨 끝자리를 택했음 그렇게 그아이 혼자만 탄 열차를 그대로 출발시켰고 알바생들은 운행이 끝나고 돌아올때 반겨줄 준비를 하고있었다함. 근데 아까까지 타고돌아오면 신나게 웃던아이가 이번엔 엉엉 울면서 공포에 떨면서 들어오더래 그래서 놀란 직원들이 아이를 진정시키면서 왜그러냐고 물으니까 아이가 말하길 열차 의자가 360도 돌아가는 방식이라 중간중간 레일쪽이 보이는데 저멀리서부터 어떤 아이 귀신이 레일 위를 달려서 열차를 쫒아오고있는게 보였다함 그러고 점점 가까이 따라붙더니 자기가 탄 의자가 더이상 돌지 못하게 레일쪽을 바라보도록 붙잡고는 운행내내 입이 귀까지 찢어진 기괴한 얼굴로 미친듯이 웃으면서 나랑놀자~ 어디가~ 나랑친구할래~? 이러면서 계속 말걸었다함 3. 환타지 드림괴담 이 놀이기구는 좀 생소할수있는데 이것도 열차를 타고 지하를 구경하는 방식임 원래 애들용으로 만든거라 막 움직이는 과자랑 사탕, 인형로봇 이런 것들로 꾸며놨는데 오래되고 관리를 잘 안해서 여기저기 고장나고 망가져서 지금은 분위기가 사진처럼 좀 섬뜩하고 인지도도 낮고 탑승객도 많지않음. 암튼 이 어트랙션은 탑승장이 지하에 있어서 타려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참 내려가야하는 구조인데 파크 마감시간에 안에 아무도 없는데도 에스컬레이터 쪽에서 아이들이 쿵쿵 뛰어내려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소리가 들리거나 운행 구간별 cctv에 간혹 어떤 아이의 형체가 지나다닌다거나 하는 목격담이 있음. 워낙에 인지도가 없는 놀이기구라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얘기는 별로 안유명함 <구라 괴담> 1. 아크 어드벤쳐 개구라임. 롯월 구조상 이런게 있을곳이 없음 초딩들이 간혹 이거 위치 물어볼때마다 4층에 한번 찾아보세요 하고 장난쳤었음 한창 이 괴담 떠돌때 롯데에서 입장객 늘리려고 홍보용으로 써먹는단 얘기가 있었음ㅋ 2. 자이로드롭 괴담 자이로드롭 꼭대기에서 머리카락이 걸려서 내려오면서 머릿가죽 뜯어졌단 그얘기 모르는사람없을텐데 존나 개구라임 구조상 라푼젤이 아닌이상 불가능함 + 롯데월드가 귀신들이 좋아하는 조건은 다갖춘곳이라함 습하고 어두운곳(지하)많고.. 출처 : ㅉㅃ 내가 아는 놀이동산 괴담은 에버랜드 장미공원? 거기에 다리 없이 팔로만 기어다니는 남자 있다는 얘기
이메일 영화글 연재 '1인분 영화'를 9월에도 진행한다.
셀프영업 꿈나무의 이메일 영화글 연재 <1인분 영화>는 9월에도 진행합니다. 아직 팔월이 한창인 줄 알았는데 8월 연재 글이 벌써 세 번밖에 안 남았지 말이에요! 가을이 오는 것을 틈 타 조금 더 기운을 내어 쓰기를 계속할 수 있겠습니다. 본 연재는, 공개된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에 쓰는 글보다 더 많은 양질의 글을 꾸준히 쓰고자 진행하는 작은 프로젝트입니다. 소수의 구독자만을 위한, 더 퀄리티 있는 특별한 글을 쓰고 싶어하지만 기존에 쓰던 글과 그렇게까지 다르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링크)를 확인하시면 됩니다. <1인분 영화>는 4주간 월, 수, 금요일마다 주로 자정 무렵(더 빨리 보낼 때도 있습니다)에 영화에 대한 글을 신청한 이메일로 보내드립니다. *이주의 동진픽(월): 매주 한 편의 영화를 선정해 리뷰를 씁니다. (2,000자 안팎) *개봉되지 않은 영화(수): 한 주 동안 있었던 영화 소식들을 정리합니다. 주로 외신 영화매체을 기반으로 하며, 영화계 전반을 아우르기보다는 주로 제가 관심 있게 본 뉴스 위주로 정리합니다. 분량은 월, 금보다는 좀 더 깁니다. *여기 영화 하나 추가요(금): 매주 한 편의 영화를 선정해 에세이를 씁니다. (2,000자 안팎) 8월에 실수로(?) 10개월치 구독료를 입금하신 분이 계셔서 연재를 강제로 아홉 달은 더 진행해야 하는데요,,, **기존 구독자 분은 이메일 주소를 변경하지 않으신다면 폼 작성 없이 송금만 해주셔도 됩니다. **호오옥시나, 계속 읽고 싶은데 매월 그때그때 폼 작성하는 게 번거롭다! 하시는 경우, 구독하고 싶은 개월 수만큼(9,000 x n)의 구독료를 보내주신다면, 그만큼 신청하신 것으로 반영해드립니다. (그렇다고 한 1년치를 한꺼번에 보내주시면,, 천재지변이 생긴다든가(?) 할 수도 있으므로 대략 3개월??? 그 정도까지만요,,,) <1인분 영화> 9월호 개요_ *연재기간: 9월 2일부터 27일까지 매주 월, 수, 금요일 *연재내용: 4주간 총 12편의 글 *신청기간: 9월 1일(일) 자정까지 *신청방법: 프로필 링크(네이버 폼)에 구독 정보 입력 및 구독료 송금(9,000원) *국내 은행계좌 혹은 페이팔(PayPal) 통해 송금 가능 <1인분 영화>의 8월 구독 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과월호를 읽고 싶은 분이 있다면, *연재 글은 이메일을 제외한 다른 곳에 업로드하지 않지만, 먼 미래에는 책의 원고로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 전체가 아닌 일부는 캡처 혹은 인용하시는 것은 자유롭게 가능합니다. <1인분 영화> 8월호 글 발행 목록(8월 24일 기준): 01_'러블리 본즈' - 아픈 마음들을 바라보는 판타지 02_2019년 8월 1주 DJ의 할리우드 통신 03_나는 개츠비의 불빛을 본 적 있다 04_'엑시트' - 삶이 쓸모 있다는 희망을 주는 엔터테인먼트 05_2019년 8월 2주 DJ의 할리우드 통신 06_역사 소재 영화를 대하는 어려운 기분 07_'라이온 킹' - 영원히 순환하는 이야기를 향한 고전적 야심 08_2019년 8월 3주 DJ의 할리우드 통신 09_타임 캡슐, 거기 잘 있나요? _ 프립 소셜 클럽 '영화가 깊어지는 시간'도 모집 중입니다. https://www.frip.co.kr/products/12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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