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gabond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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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때때로, 엘피(LP)에서 흐르는 음악에 가해지는 'old 노이즈'가 클래식함을 더해주는 보물같은 소스일 때가 있다.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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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멋스럽네요... 부러워요 ㅎㅎ 엘피~
Haven't seen one of these in awhile my mom had this L p s and still She plays them wow🇺🇸
아 정말요??저는 엄청나게 비싼줄 알았어요 이때까지 ... 좋은 소식이네요 ^_^
@810jin 생각보다 그리 가격부담이 큰 아이템이 아니에요:) 고려해보세요-! 엘피판도 동대문 나가시면 백원 천원에 하나씩 구하실 수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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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좋은 음악상식] (3) 베토벤의 꽁으로 여행다니기 스킬
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저번에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https://www.vingle.net/posts/1206243 - 지난카드 : (2) 흙수저 베토벤의 운수 좋은 날) 오! 베토벤이 꿈에그리던 하이든의 제자가 되어 빈으로 떠난 얘기까지 했구나. 전에 말했다시피 베토벤은 하이든의 제자가 되자 곧 이렇게 외치지. "아 이 선생 완전 별로야..." 짠! 이 사람이 베토벤의 스승이었던 요제프 하이든이란다. 지난주에 배운대로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지. 근데 교향곡의 아버지가 아니라 무슨 너네 아버지처럼 친근하지 않니? 친근돋는 하이든은 실제로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품인데다가 베토벤을 만났을 땐 이미 당대의 거물 음악가였어. 베토벤을 세세하게 지도해줄 시간도 여유도 없었던 사람이지. (하이든 사진을 슬라이드 하면 나오는 곡은 그 유명한 '놀람 교향곡'이란다. 하이든 곡 한 곡 정도는 듣고가야지. 소리가 작다고 소리 키웠다가는 듣다가 깜놀할 수 있으니 참고하려무나.) 하이든은 베토벤에게 본인의 제자로 받아들여 '하이든의 제자'라는 명성을 줌으로써 여러가지를 경험하며 빈에서 실력을 키울 기회를 주고자 한거지. 반면 베토벤은 뭐랄까.. 고집쟁이 열정킹! >_</데헷 이런느낌? 하이든이 본인의 음악적 역량을 세세하게 전수해줘서 베토벤 본인을 집중적으로 성장시켜주길 바랐으므로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단다. 하이든의 교육방식에 실망한 베토벤은 음악계의 거장인 하이든에게 존중의 마음을 담아 고무고무 통수!!!!! 를 친단다. 제자가 된지 1년만에 사제관계를 청산하며 "하이든에게서는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하기 이르렀지. 녀석 껄껄... (하지만 하이든과 원수를 진 건 아니었어. 나중에 베토벤은 자신의 첫 피아노 소나타 3곡(op. 2-1,2,3)을 작곡해서 하이든에게 헌정하고 들려주기까지 한단다.) 하이든과 결별한 베토벤... 본의 선제후가 후원해주던 장학금 지급 기간도 끝나 생계에 위기가 닥칠 무렵 베토벤을 구원해 준 빛이 나타난단다. 누구였을까?? 세무서원이 된 둘째동생? ㄴㄴ 그럴리가. 베토벤의 둘째동생은 베토벤의 초기 습작들을 몰래 훔쳐 팔다가 걸려서 뚜드려 맞던 녀석이란다. 동생인지 도둑인지... 동둑쯤으로 하자꾸나. 약제사가 되어 큰 돈을 번 막내동생? ㄴㄴ그럴리가. 막내동생은 베토벤한테 돈 빌려준 다음 그걸 미끼로 베토벤 작품을 막 갖다판단다 사채업자인줄ㅋㅋㅋㅋㅋㅋ 동채업자 해라 너는ㅋㅋㅋㅋ 흠흠 무튼.. 베토벤의 가족은 정말이지 도움이 안되는 타입이었단다. 그럼 답은 뭐다?? 스★폰★서 리히노브스키 공을 비롯한 귀족들이 베토벤의 재능을 알아보고 재정적 지원을 해주었지. 후원을 받은 덕분에 베토벤은 음악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고 1796년 유럽을 도는 연주여행을 떠날 수 있었단다. 이때 리히노브스키 공은 여행에 동행하면서 베토벤에게 세계 각지의 많은 귀족가문들을 소개해주기도 하지. 여행을 다녀오고 이제 유명한 음악가가 된 베토벤. 그후 1800년경 드디어 작곡의 꽃이라는 '현악4중주'와 '교향곡'을 작곡해서 "베토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뒤를 잇는 인물"이라는 평을 듣게 된단다. 1번 음악 - 현악 4중주 작품번호 18 中 No.2 - 1. Allegro (7분) 2번 음악 - 교향곡 제 1번 다장조 작품번호 21 (28분) 이렇게 음악적 성숙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던 베토벤은 1802년 갑자기 이런 글을 쓴단다. “…… 만일 죽음이 나의 모든 예술적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만한 기회를 갖기도 전에 찾아온다면, 아무리 내 운명이 험난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일찍 찾아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죽음이 조금 더 늦게 찾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대로 죽는다 해도 난 행복해 할 것이다. 죽음이 나를 끝없는 고뇌에서 해방시켜 줄테니까. 죽음아, 올 테면 오너라, 용감하게 그대를 맞아주마…….” 뭐...뭐라는거야 뭐지?? 갑자기 베토벤이 중2병이라도? 베토벤이 이러는 이유는 그가 1800년경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알수 있단다. "처음에는 귀울림이 들리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차츰 들리지 않게 되어가고 있네..." 바로 청력상실이 시작된거지. 위에 중2돋는 글은 청력상실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베토벤이 1802년에 써둔 유서란다. 베토벤의 청력은 점점 희미해져 갔지만 굴하지 않고 창작활동을 계속했어. 청력상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 대문호들의 작품에 빠져 들었고 칸트와 인도 철학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당대의 대시인이었던 괴테나 쉴러의 작품도 열심히 읽었지. 내면의 세계에 더욱 심오한 철학을 성립될 기반을 쌓았어. 그런 불굴의 창작 정신으로 1804년 발표한 곡. 바로 베토벤의 걸작 중 하나인 '베토벤 제 3번 교향곡 - 영웅'이란다. "장애를 딛고 일어선 한 예술가의 당당한 자기 확신이며 거칠 것 없는 외침과도 같은 곡"이라는 평을 받는 명곡이지. 청력상실이라는 음악가에겐 치명적인 재앙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더 불타오르는 창작정신을 발휘한 결과란다. 그리고 이듬해인 1805년. 그의 필생의 역작 중 하나인 '베토벤 제 5번 교향곡 운명' 을 발표한단다 길면 안들을 너희들을 위해 7분짜리 1악장만 가져왔단다. 다는 안듣더라도 적어도 빠바바밤은 한번 듣는게 매너일 듯 하구나. 그 유명한 노래인 운명이, 그 유명한 베토벤을 통해서 어떤 삶과 과정을 통해서 탄생됐는지 알고나니 좀 다르게 들리지 않니? 아님 말고. 사실 나도 별로 뭐 막 다르게 들리진 않았단다. 말년의 베토벤은 점차 피폐해져 갔지. (딱 봐도 좀 피폐 돋는구나. 왜이렇게 노랗게 그린건지 아는 아이 있니??)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후세의 사람들이 찬탄할 만 한 것이었단다. 피아노 소리를 조금이라도 감지하기 위하여, 피아노 공명판에 막대기를 대고 입에 물어서, 그 진동을 턱으로 느끼며 작곡활동을 계속했다고 하니 왜 이토록 '위대한 작곡가'로 여겨지는지 알만하지않니? 위인이다 위인이다 말만 들었지, 이렇게 놓고보니 정말 올ㅋ 쫌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게다 껄껄 자... 그럼... 이 박사님의 음악상식은... 여기까지란다... 껄껄꺼루ㅠㅜ흐그규ㅜ극 다들 건강하고 교양있는 학생들이 되거라 (뭐... 대..댓글이 30개가 너..넘으면 다..다른 음악상식으로 도..돌아올수도 있고 그렇단다.)
[알면 좋은 음악상식] (1) 흙수저 베토벤이 취뽀한 썰
반갑다 얘들아! 너희들에게 안진지하게 클래식, 락, 팝 등등 음악 상식을 떠먹여줄 진지한박사라고 한다. 친절하다고는 하지 않았단다. 이 박사님은 매우 괴팍하니 조심하렴. 하지만 내용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마 첫수업은 그래! 이양반이 좋겠구만. 너희들이 아무리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애들이라도 한번쯤을 들어봤을만한 베토벤이란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서 '베토벤, 베토벤!' 거리는 것은 너희들의 무식함을 세계 만방에 떨치며 자랑하는 일이야. 베토벤의 이름은 Beet + Hoven 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Beet는 사탕무라는 뜻의 단어고 Hoven은 밭이라는 뜻이란다. 우리 축빠녀석들은 친숙할 '아인트호벤'의 그 '호벤'인지. 네덜란드식인 이 이름의 네덜란드 발음은 베이트 호번에 가깝고 베토벤이 나고 자란 독일식 발음은 베트 호픈에 가깝단다. 베토벤이라고 발음하는건, 외국인이 손흥민을 "오우! 소 능민! 히이즈 능민 쏘!" 라고 하는거랑 비슷한 무식함이란다. (하지만 난 쓰기 편하니 베토벤이라고 쓸거란다. 억울하면 박사가 되렴.) 무튼 이양반에 대해서 안 진지하게 잘 알려줄테니 잘 듣거라 흔히 이 양반을 가르켜'악성' 베토벤이라고 부르지 이때 '악성'이라는 말의 뜻은 저 표정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성질이 더럽다'는 뜻이라고 하면 매우 설득력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단다. '악성종양'할 때의 '악성'이라는 무식한 생각을 했다면 조용히 나가려무나. 이 악성은 樂聖, 즉 음악계의 성스러운 인물이란 뜻이다. 알아두도록 하렴. 베토벤 얘기가 나오면 "호오~ 음악계의 성인, 악성 베토벤 말이지?" 라고 하면 된단다. 이 베토벤은 원래 '금수저'가 될 수도 있었단다. 할아버지가 네덜란드의 귀족출신이지. 베토벤의 할아버지는 17살때 독일로 이민을 가서 궁정에 가수로 취직한 뒤 악장으로 승진하게 돼. 거기서 태어난 베토벤의 아빠도 궁정에 테너가수로 취직,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일까지 하며 돈을 벌지. 또 엄마는 궁정 수석요리사의 딸이니 스펙 좋고 괜찮은 집안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좋은 집안 망치는 건 바로 뭐다? 그래 술이란다. 베토벤이 아버지는 전형적인 괴팍한 술주정뱅이st 였지. 나중에는 술때문에 목이 상해서 더이상 일도 할수 없게 되고 베토벤이 돈만 벌어오면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곤 하지. 술로 집안 말아먹는 아버지 외에도 베토벤에게는 여러가지 불행이 닥친단다. 베토벤의 어머니는 원래 7남매를 낳았는데, 둘째/셋째/넷째를 빼고는 모두 일찍 죽게된단다. 술주정뱅이 남편 뒷바라지하던 어머니도 베토벤이 16살때 폐결핵으로 죽게 돼. 둘째인 베토벤은 남은 형제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고 훗날 일찍 생계를 책임지게 되지. 동생인 셋째, 넷째들.... 이자식들도 아주 그냥 순양아치였는데... 이 얘기는 좀 나중에 들려주마. 뀨 어린시절의 베토벤이란다 정말 귀엽지 않니? 이 어린시절의 베토벤에게 음악을 처음 가르친건 아버지란다. 아버지는 어린 베토벤을 쥐잡듯이 잡으며 피아노를 가르쳤지. 저 귀염댕이를... 쯧쯧. 당시 유럽을 휩쓴 신동 '모짜르트'처럼 되어야 한다며 스파르타식 피아노 강습을 하면서 빨리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싶어했어. 그래서 베토벤이 첫 대중공연을 할때, 사람들에게 8살인 베토벤을 6살이라고 속여서 홍보했어. 240년 전부터 언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지. 무튼 괴팍하고 가혹하게 베토벤을 가르친 아버지와는 당연히 사이가 안좋게 된단다. 베토벤은 어린시절 피아노를 부수려 한 적도 있고, 아버지의 장례식때도 하나도 슬퍼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지. 너희들은 애 낳으면 살살 가르치거라. 그런 베토벤은 결국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서 9살때 평생의 은인이 된 궁정음악가 네페를 만나 본격적으로 음악의 기초를 배우지. 그리고는 스승의 도움을 받아 13살 때. 베토벤이 처음으로 출판한 작품인 '드레슬러 행진곡에 의한 9개의 변주곡(WoO 63)'을 작곡하지. 위 영상의 음악이 바로 WoO 63이란다. (WoO는 ‘작품번호 없음(Werke ohne Opuszahl)’이라는 독일어의 약어란다.) 너희들이 엄마 졸라서 산 문상으로 메이플 캐쉬템 지를 나이에 베토벤이 지은 곡이란다. 한번 들어보지 않으련? 이렇게 음악적 안목과 실력을 키우던 베토벤은,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네페를 따라다니며 오르간 보조주자로 일하게 된단다. 이때는 급여는 없고 그냥 열정페이로 일했지. 하지만 이후에 이 스펙을 바탕으로 드디어 궁정 예배당에 정규직으로 취뽀하여 일할 수 있게 되었단다. 이 후 베토벤은 승승장구 했을까? 이후 베토벤의 성공과 사랑, 몰락에 대한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겠네. 다음화에는 궁정 예배당에서 일하던 베토벤이 의느님 친구 소개로 귀족 집안에 피아노 과외하러 갔다가 스폰서 물게 된 썰부터 시작하지. 수업료는 댓글이란다. 댓글이 30개 이상이 되면 다음 수업을 빨리 준비하도록 하마. 자 그럼 열심히 복습하고 댓글 달아주렴.
하루 한 곡 추석스페셜 : 대중음악계 근20년 연대기 1탄 <1995년에서 1999년까지>
제가 최고로 좋아하는 명절음식 잡채로 에피타이저를 주 반찬으론 고깃국과 생선전으로 연휴를 씹어먹은 코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한 5킬로는 찐 것 같네요. 이 아랫배로는 둥기당두구두구 드럼이나 쳐야겠어염... 여러분의 연휴는 어떠셨나요?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TV앞에 앉아 채널을 돌리다보니 온갖군데에서 아이돌 특집을 하던데 모르는 친구들 투성이 수두루빽빽 전 정말 모르겠던데 어떠셨나요? 왠지 모른다고 하니까 나이가 먹었음을 인정하는 기분, 패배자의 기분에서 벗어날 수가 없던 코린은 코무룩.. 하다가 이왕 뒤쳐진 거 좀 더 뒤로가볼까 싶은 심산으로 결심하였습니당 뒤로 가기로요 ㅋㅋ 무려 20년을 뒤로 가보렵니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해마다 쏟아지던 대중음반들이 있었고 우리 모두 그 음반들 속에서 자랐으니 한 번 다같이 듣고 즐겨볼까요? 각 해마다 제가 뽑은 주요한 앨범들, 혹은 좋은 곡들을 추천하여 한 블록당 5개 이상의 곡씩 (매해마다) 추천해 올릴 생각이니 슬라이드로 넘기면서 봐주셔야해요! 밑으로만 내리지 마시고요^^ 그럼 시작합니다! 1995년 발표 음반 수록곡 1. 쿨 - 슬퍼지려하기 전에 2. 터보 - 나 어릴적 꿈 3. 솔리드 - 이 밤의 끝을 잡고 4. 듀스 - 이제 웃으며 일어나 5. 이소라 - 처음 느낌 그대로 6. 김건모 - 아름다운 이별 7. 이승환 - 천일동안 8. US - 지금 이대로 1996년 발표 음반 수록곡 1. 박미경 - 기억속의 먼 그대에게 2. 룰라 - 3!4! (고화질 뮤비라니...ㅎㄷㄷ) 3. 컬트 - 너를 품에 안으면 4. UP - 1024 5. 자자 - 버스안에서 6. DJ DOC - 나의 성공담 7. 서태지와 아이들 - Goodbye 8. 클론 - 쿵따리 샤바라 9. 서지원 - 내 눈물모아 10. 이예린 - 늘 지금처럼 1997년 발표 음반 수록곡 1. 부활 - Lonely Night (vocal. 박완규) 2. 에코 - 행복한 나를 3. 박상민 - 애원 4. DJ DOC - DOC와 춤을 5. 유승준 - 가위 6. 이승환 - 가족 7. 임창정 - 결혼해줘 8. 카니발 - 그녀를 잡아요 9. 이뉴 - 독립선언 10. 클론 - 도시탈출 1998년 발표 음반 수록곡 1. S.E.S. - 너를 사랑해 2. 이은미 - DeJa vu (Live) - 이 버전 피아노가 너무 좋아요 3. 강수지 - 하늘이여 4. 박정현 - 오랜만에 (R&B) 5. 핑클 - Blue Rain 6. 더더 - It's You 7. H.O.T. - 빛 8. 쿨 - 애상 9. 베이비복스 - 야야야 10. 1TYM - Good Love 1999년 발표 음반 수록곡 1. 패닉 -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 2. 베이비복스 - Get Up 3. YG Family - 세상의 축제 4. 젝스키스 - 예감 5. 신화 - T.O.P. 6. Bros - Win Win 7. god - 니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8. 이승환 - 세가지 소원 9. 드렁큰 타이거 - 난 널 원해 10. 코요태 - 만남 2탄은 바로 찾아옵니다! 명절특집이니까요! 헤헤헤
최고의 비틀즈 노래는 무엇?
이제는 정말 지겨울 만큼 이름을 들어온 그룹 비틀즈. 20대의 젊은이들에게는 아니 40대 이하의 사람들에게는 태어나기 전에 해산을 한 전설적인 밴드로, 단 7년의 기간 동안 13장의 앨범을 발표한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활동을 보인 신화적인 존재, 비틀즈.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알지만 그들의 음악은 예스터데이나 렛잇비 정도만 아는 게 현실이다. 좀 좋아한다는 사람이 베스트 앨범 한 장정도 가지고 있는 정도가 보통인데,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르는 비틀즈의 명곡도 많이 있다. 비틀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진짜 비틀즈의 음악만으로 순위를 정한다면 어떤 노래가 최고의 노래일까? 비틀즈의 정규 앨범 13장의 음악을 차트화 해서 저명한 음악잡지 롤링 스톤이 발표 했다. 100위까지 발표 했지만 사정상 Top10만 다뤄보겠다. 10.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존 레넌과 폴 메카트니라는 투 탑만 생각했던 비틀즈라는 그룹에 조지 해리슨이 각성하면서 만든 명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은 일대 충격이었다. 비틀즈의 각개전투 앨범 화이트 앨범에 실린 이 곡은 이후 조지 해리슨이라는 인물의 활동에 큰 등불이 되었던 곡이다. 09. Come Together 비틀즈의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인 [Abbey Road]에 실린 곡. 제목이야 Come Together이고 노래 가사도 같이 하자는 내용 같지만 결국 마지막이 되었다. 08. Let It Be [Abbey Road]보다 먼저 녹음되었지만 그 후에 발매 되어서 비틀즈의 디스코그라피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앨범 [Let It Be]에 실렸던 대표 곡. 국내에서도 비틀즈의 대표곡 중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곡이다. 07. Hey Jude 68년 발매한 싱글 “Hey Jude”는 당시 발매 되었던 정규 앨범인 화이트 앨범에는 실리지 않은 곡이다. 7분 넘는 대곡이었지만 마지막 인상적인 후렴구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고 미국에서 무려 9주나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빌보드에서 선정한 올타임 베스트 싱글에서 10위를 차지했다. 폴 메카트니가 작곡한 이 곡은 재미있게도 존 레넌의 아들을 위한 곡이다. 06. Something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터진 조지 해리슨의 포스는 마지막 앨범 [Abbey Road]에서 유종의 미를 보여주는 곡 “Something”을 만들어냈다. 조지 해리슨 곡 중 최초의 1위 곡이다. 05. In My Life 비틀즈가 아이돌 밴드에서 진정한 음악가로 선언한 앨범 [Rubber Soul]에 실린 곡. 앨범에 실린 곡들 중에 싱글을 발표한 곡이 없지만 한 곡 한 곡 이전 작들에 비해 무게감과 완성도가 높았고 그 중 “In My Life”는 “Norwegian Wood”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은 트랙이다. 04. Yesterday 설 명 필 요 없 음 03. Strawberry Fields Forever 67년 앨범 [Magical Mystery Tour]에 실렸던 트랙이다. 신은 그들에게 음악을 주고 영화를 빼앗았다 라는 말이 나올 만큼 OST로 제작된 [Magical Mystery Tour]는 성공했고 영화는 실패했다. 후기 앨범치고는 지명도가 낮은 앨범이지만 곡만큼은 역시나 명불허전이다. 02. I Want to Hold Your Hand 63년 발표한 싱글 “ I Want to Hold Your Hand”는 톱10안에 유일하게 들어간 초기 시절의 음악이다. 이건 음악적인 완성도 보다는 비틀즈라는 밴드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이라서 라는 생각이 든다. 노래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음악적인 무게감면에서는 지금까지 언급된 곡과는 많이 차이를 보인다. 01. A Day in the Life 드디어 나왔다. 비틀즈를 논할 때 그리고 록 역사를 이야기할 때 항상 최고의 앨범으로 뽑는 1967년작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 실린 마지막 곡 “A Day in the Life”는 최고의 앨범의 마지막 곡으로 실리기에는 완벽한 트랙이다. 매우 실험적인 트랙이라 대중성 면에서는 좀 약하지만 음악적인 무게감면에서 지금도 이에 필적할만한 트랙을 찾아보기 힘들다. 모든 곡이 다 끝난 다음 맨 안쪽 골에 들어간 효과음의 무한 반복은 CD세대나 디지털 음원 세대는 절대 누릴 수 없는 LP의 영원함이다. [출처] 최고의 비틀즈 노래는 무엇?|작성자 헬로준넷 the source of / Hellojunenet web (KOREA) information web youtube - http://www.youtube.com/hellojunenet blog - http://blog.hellojune.net moremusic - http://www.moremusic.co.kr facebook - http://www.facebook.com/moremusic.co.kr2 HelloJune.Net - http://www.hellojune.net twitter - http://www.twitter.com/hellojunenet
15.06.26
어제 먹은 삼겹살 냄새가 아직, 옷에 배었습니다. 돼지 시체의 살점이 기름에 지글지글 타들어간 냄새죠. 군대에 있을 때 살아있는 오리를 직접 잡아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장교들이 던져준 오리를 그들에게 요리해 바치기 위해서. 경험이 없었던 우리는 목을 비틀기 위해, 목을 칼로 날리기 위해 그야말로 생난리를 쳤죠. 결국, 차마 산 오리의 목을 비틀진 못하고, 대신 목을 줄로 묶은 채 나무에 한동안 걸어두었습니다. 퍼덕거리던 오리는 한참 후 축 늘어져 있게 됩니다. 어지간해서 손에서 푸드득거리는 짐승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요리한 오리고기를 제가 먹었을까요? 네, 몇 점 먹었습니다. 전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았습니다. 이제 가끔, 저는 제가 먹을 닭을 직접 잡고 싶습니다. 손에 피를 묻히고 싶습니다. 식욕이 떨어지는 일인가요? 네. 당연하죠. 전 현재 우리의 식욕이 끔찍할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해요. 좀 줄여야죠. 그렇게 하면 사회에 팽배한, 또 우리가 갖고 있는 음식에 대한, 조금은 천박하다고 할 수 있을 그런 감각들을 덜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많은 걸 타인에게 위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본주의는 어쩌면 타인에게 죽음을 위탁하는 시스템일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의 성공이란 자기 손에 묻혀야 했을 피를 남의 손에 떠넘기는 자들의 것이 아닌지. 도축을 하는 이가 따로 있고 고기를 먹는 이가 따로 있습니다. 전쟁에서 피 흘리고 죽어가는 이가 따로 있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이가 따로 있습니다. 생명 경시 풍조는 죽음 경시 풍조라는 말로 바꿔도 다를 바 없을 것 같습니다. '죽음'을 제대로 배우면 생명의 존엄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겠죠. 혀 끝의 감각을 위해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처럼,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전쟁을 게임으로 생각하는 사람처럼, 누군가를 고문하는 일이 국가 안보를 위한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사람처럼 되지 않을 수 있겠지요. 야만성을 잃은 인간은 어쩌면 야만인보다 더 무서운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john lennon imagine https://youtu.be/XLgYAHHkPFs
하루 한 곡 스페셜 : 피아노를 배우고 싶게 만드는 연주곡 10곡 소개
저는 레스너이기도 합니다. 제 레슨생들의 대부분은 프로들이시거나 프로 입문의 꿈을 갖고 계신 전문 음악인들이 80% 정도? 단지 취미를 위한 레슨생보다 비중이 큰 편이지만, 특히 취미를 위해 악기를 배우시고자 하는 분들은 수많은 악기 중 피아노를 선택한 계기가 나름 정말정말 확실한 편이랍니다. 주로 듣기 편한 이지리스닝 장르의 곡을 들으시고 스트레스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이런 곡을 직접 듣고 연주하고 더 나아가서는 직접 만들고 싶다 생각하셔서 오시는 거지요. (내가 다 뿌듯 ) 아무튼 오늘 하루 한 곡 스페셜에서는 많은 분들에게 자극이 되주었는지 저에게 연주, 레슨, 악보를 많이 요청하시며 실제로 레슨도 많이 하는 곡들을 소개해드리렵니다. 전문 음악인들의 선곡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취향에도 잘 맞고 귀에 익숙한 곡일거에요~ 함께 즐겨요!! 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 - 언제나 몇 번이라도 (Easy-listening, New age piano, Soundtrack) 2. Dimitri Shostakovichi - Jazz waltz no.2 (Classic) 3. 이루마 - River flows in you (Easy-listening, New age piano) 4. Debussy - Clair de luna (Classic) 5. 히사이시 조 - Summer (Easy-listening, New age piano, Soundtrack) 6. DJ Okawari - Flower dance (Sibuya K, Easy-listening) 7. Chopin Etude Op.10 no.5 (흑건) (Classic) 8. Michel Petrucciani - September second (Jazz) 9. 몽라 - Paris Paris (Easy-listening, New age piano) 10. Opera Carmen - Habanera (Tango)
2pac
The Notorious B.I.G.와 더불어 힙합계의 양대산맥. 서부 힙합의 제왕 힙합계의 엘비스 프레슬리 혹은 비틀즈의 존 레논격인 존재입니다. 그는 특히 존 레논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자신이 만든 노래에 사상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등 마치 사회운동가와도 같은 음악 활동으로 대중의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 뒤 이른 나이에 총탄의 이슬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입니다. 본명은 투팍 아마루 샤커(Tupac Amaru Shakur). 가끔 2pac에서 2를 '이'로 잘못 읽어서 실수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설마) 친형은 떠그 라이프의 멤버 모프림 샤커. 그의 이름은 잉카의 마지막 황제였던 투팍 아마루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예명도 본명의 Tupac을 변형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본토에서는 아직도 Tupac이라고 불리우고 있습니다. 더불어 마카벨리라는 예명도 있습니다. 이 예명은 그가 데스 로우 레코드에 영입된 후 마키아벨리즘에 심취하여 지은 예명이라고 합니다. 뉴욕에서 랩하던 시절엔 MC 뉴욕이란 예명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1971년 6월 16일에 뉴욕에서 출생했으며, 1996년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총격사건에서 젊은 나이에 살해된 비운의 천재 랩퍼입니다. 스눕 독, 닥터 드레 등과 함께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랩퍼 중의 한 명입니다. 그러나 팍의 초창기 음악 성향은 그의 고향인 뉴욕에 있는 래퍼들의 영향을 받은건지 웨스트 코스트 랩과는 거리가 있어보입니다. MTV에서 베스트 래퍼를 뽑으면 여전히 5위권 이내, 1위 아니면 2위 하는 인물입니다. 전세계 힙합계를 통틀어서 최고의 랩퍼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참으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20살이 되던 해까지 8번의 체포 경력을 가졌으며 8개월 동안 수감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따라하다가 인생 종치는 일이 없어야 하겠죠...;; Digital Underground의 수장 쇼크 G에게 프리스타일 랩을 들려준 뒤, 그의 로드매니저로 일하다가 'Same Song'에 객원 래퍼로 피쳐링을 하면서 데뷔 했을때는 그저 그렇게 히트를 쳤고 'Strictly 4 My N.I.G.G.A.Z'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강도에게 총을 맞았다 되살아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 사건 당시에 절친이었던 비기(Notorious B.I.G.)와 배드 보이 소속사 사장인 션 콤즈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비기가 투팍을 총으로 쐈다는 언플이 나오면서 투팍은 비기를 범인으로 간주하지만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고 마는데... 이 사건은 서부, 동부의 힙합 지역 감정이 생겨난 원인이기도 합니다. 다른 이야기로 따르자면 건물에 괴한이 칩입하자 비기가 친구인 투팍을 구하러 총을 가지고 가다가 경찰의 조사를 받아 오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배신감을 느낀 투팍이 비기와 퍼프 대디를 죽이려고 총을 가지고 가려다 경찰에 저지되었다고 합니다. 팍은 이 사건을 모토로 'Holla at me'라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죽음을 넘어서 뭘 봤는지 총격사건 직후에 낸 앨범 'Me Against World'가 히트를 쳤지만 이 앨범이 나온 후 활동하기도 전에 투팍이 강간죄로 구속되어서 교도소로 갔고 이 앨범이 히트를 쳤을 때는 투팍이 교도소에서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데스 로우 사장인 슈그 나잇이 투팍을 보석금에 풀어주고 투팍은 유명 힙합 소속사 데스 로우로 이적을 합니다. 자유를 얻은 투팍은 비기에게 분노하게 되고 아웃로우즈 컴필레이션 앨범에 비기와 퍼프 대디, 배드보이 레코드, 동부 힙합을 디스하는 곡인 'Hit'em up'를 넣게 됩니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지다 보니 동부 힙합과 협동하는 곡을 만들고 화해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팍과 비기의 비프가 동서부 힙합 전쟁의 시초로 잘못 알고있는데, 사실 투팍 이전에도 서부 힙합이 부흥할 때 동부 래퍼의 대선배격인 Tim Dog이 폭력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인 서부 힙합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Fuck Compton'이라는 곡으로 당시 서부 힙합의 대표적인 그룹 N.W.A와 그들의 고향 컴튼을 깐 적이 있습니다. 1집 2pacalypse Now (1991년) 투팍의 데뷔 앨범이며 약 5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사회 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노래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이나 경찰을 비꼬는 가사가 나옵니다. 이 앨범을 들은 한명이 경찰을 쏘거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할 정도니 말이죠. 실제로 한 소년이 경찰에게 총을 쏜 후 3번 트랙곡인 'soulja's story'가 그에게 '경찰을 쏘게할 동기를 주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일부 정치가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당시 부통령이였던 댄 퀘일은 공중파방송에서 투팍을 비난했습니다. 심지어 불매운동까지 벌일 정도로 사회의 파장을 일으킨 앨범입니다. 그리고 1년 뒤...전설이 된 그의 데뷔작이긴 하지만 사회작 파장에 묻혀 대중의 인지도는 적은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앨범이 알앤비 차트 13위에 오른 적 있으며 싱글인 'BRENDA'S GOT A BABY'이 3위를 차지한 적 있습니다. 대부분 국내 리스너들에게도 별로 언급되지 않는 앨범이기도 하지만 매니아에서는 호평을 받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2집 Strictly 4 My N.I.G.G.A.Z. (1993년) 1집보다 더 과격하게 변해서 돌아온 노래. 1집의 노래들이 경찰과 백인들을 비판하는 한편 '흑인들이 이대로 가난하고 무식하게만 살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변하자.' 같은 메세지를 전하는 것에도 초점이 맞춰진 것과 달리 2집의 노래들은 사회를 까는 과격한 가사 자체에 중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도 어느 부분에서는 1집보다는 많이 순해진 앨범. 수록곡 중에선 1집의 메시지가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흑인 여성들에게 힘을 내라고 전하는 'keep ya head up'과 파티송인 'I get around'가 가장 유명합니다. 3집 Me Against The World (1995년) 4집 'All eyes on me'와 함께 투팍의 최고 명반 중 최고로 꼽힙니다. 투팍이 가진 서정성을 가장 잘 표현한 앨범으로 1, 2집이 사회적인 분노를 담았다면 3집의 경우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Dear Mama' 같이 시적인 내용이 주가 되고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앨범의 전곡에 샘플링이 사용되었습니다. 앨범은 차트에서 장기간 머무르며 수백만장을 팔았지만 정작 투팍은 앨범이 나올 쯤에는 감옥에 있었다고 합니다. 별다른 활동 없이 앨범만 수백만장을 판 것입니다. 4집 All Eyez on Me (1996년) 데스 로우 레코드가 보석금을 내고 투팍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투팍과 계약한 뒤 투팍이 그곳으로 소속사를 옮기면서 발매한 앨범입니다. 힙합 앨범 사상 최초의 더블시디로 제작 되었습니다.(이로 인하여 더블앨범 제작이 유행이 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톱스타 반열에 올라서 투팍의 위치를 대변해주는 앨범으로 Dr. Dre 같은 최고의 프로듀서가 만든 비트와 조지 클린턴이나 로저 트루먼 같은 전설적인 뮤지션들까지 참여해서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 피쳐링진도 스눕 독과 독 파운드 같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서부 힙합 뮤지션과 더불어 메소드 맨 & 레드맨 같은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래퍼들까지 참여하였습니다. 상업성과 작품성 모두를 겸비한 앨범으로 극찬을 받았으며 지금도 최고의 힙합 앨범을 꼽을 때 베스트 5 안에 반드시 들어가는 앨범이기도 합니다. Makaveli - The 7 Day Theory (1997년) 투팍 사후 1주일만에 발매된 앨범입니다. 원래 발매 예정이었으나 앨범 발매 직전에 투팍이 사망하였습니다. 특이하게 투팍이 아닌 아웃로우즈 시절 예명인 마카벨리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으며 'All Eyes on Me' 같이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예전의 과격함을 부각시킨 앨범입니다. 자신의 크루인 'Outlawz'를 제외하고는 다른 뮤지션의 참여도 없었지만 앨범 자체의 평가는 상당히 좋습니다. 동부 힙합을 디스하는 듯 나스에 대한 디스곡도 존재합니다. 참고로 나스는 이걸 듣고 울었다고 하네요. R U Still Down (1997년) 투팍이 데스로우로 소속을 옮기기 전에 녹음해뒀던 미발표곡 모음집입니다. 앨범에 수록곡들이 예전 앨범보다 못하더라도 'Do for love'와 같이 명곡이 있어서 들을 만한 편. Greatest Hits (1998년) 사후에 나온 베스트 앨범 미발표곡 중 하나였던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Changes'가 대히트를 쳤습니다. 아마 투팍의 대박을 친 곡들은 여기에 다 수록되어 있으니 베스트 앨범 중에서 입문자에게나 매니아에게도 소장가치가 상당히 있는 편입니다. 2pac & outlaws - Still i rise(1999년) 그의 크루인 'Outlaws'와 함께 합작한 앨범. 투팍의 전담 프로듀서나 다름없는 Johnny J가 대부분을 프로듀싱하였습니다. 이 중에서 'keep ya head up'의 후속곡 격인 'baby don't cry' 수록. Until the end of time(2001년) 역시 미발표곡 모음집. 평가는 그저 그렇고 프로듀싱을 전부 다시 했지만 사람들의 평가는 이전곡들이 더 좋았다고... 그러나 투팍의 이 사후 앨범은 계속해서 차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Better dayz (2003년) 미발표곡 중 이때부터 음악 퀄리티가 하락하기 시작... 그냥 이전 곡이 낫습니다. 투팍의 앨범이면 무조건 사겠다는 열혈팬이 아니라면 소장하지 않는 것이 좋을 정도. Nu-Mixx Klazzics (2003년) 투팍의 리믹스 앨범. 그러나 원곡을 너무 망치고 리믹스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까이고 있는 앨범. Resurrection (2003년) 영화 투팍의 O.S.T라고 하지만 투팍의 목소리를 갖다 붙인 곡도 있습니다. 평판은 좋지 못한 편. 2pac Live (2004년) 투팍의 라이브 앨범. 정식 라이브도 아닌데 짜깁기로 발매한 앨범(...) Loyal to the Game (2004년) 미발표곡. 에미넴이 프로듀서를 했지만 투팍이 랩한 것에 그냥 음악 덧붙인 수준. Pac's Life (2006년) 미발표곡. 쓰레기 앨범입니다. 투팍의 어머니가 투팍을 너무 추모하고 싶었는지 장르를 따지지 않고 아무나 다 피쳐링을 시켜서 그런지 앨범이 개판입니다. '2pacalypse Now'부터 'All eyez on me'까지는 투팍이 생전이 발매한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고 그 다음부터 나오는 앨범은 거의 미수록곡을 짜깁기해서 나온 곡입니다. 지금은 거의 망해가는 데스 로우가 아마루 레코드와 힘을 합쳐서 짜깁기 앨범을 만들어 내려는 중(...). 2010년에 투팍 사후 앨범 미발표곡으로 닥터 드레와 제이지를 디스한 'war gamez'라는 곡을 공개했습니다. 죽어서도 이지 이와 더불어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더 게임 같은 베테랑이나 켄드릭 라마, 스쿨보이 Q 등의 최근 뜨고있는 신인들에게도 상당한 리스펙을 받으며, 극단적인 경우는 이분의 스타일을 말 그대로 벤치마킹한 소위 짝퉁 투팍 래퍼도 있을 정도. 대표적으로 자 룰 등이 있습니다. 이 작자는 아예 뻔뻔하게 팍의 랩 자체를 모창했습니다. 심지어는 인터뷰에서 자기가 투팍이라고.... -ㅅ- ;; (요즘 누굴 보는거 같은 느낌은 기분탓이겠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2년 4월 15일 코아첼라 뮤직페스티벌에서 홀로그램으로 2pac을 복원해 Snoop Dogg과 함께 'Hail Mary', '2 of Amerikaz Most wanted' 2곡을 부르게 했습니다. 1년동안 40만달러를 투입해서 만들었다고... 이에 대해서 갑을론박이 오고갔으나 공연 반응은 괜찮은 듯 합니다. 일본에 방문 한적이 있습니다. (한쿡은....) 여기서부터는 여담이지만 ... 이 시대, 그리고 서부 힙합이 늘 그래왔듯이 가사에는 폭력과 마약 그리고 섹스에 대한 내용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흑인의 인권에 대한 내용, 여성 보호에 대한 내용들을 다뤘습니다. 그의 슬로건인 "깡패 같은 삶(Thug life)"라는 말 자체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자신같은 사람을 일컫는다고.... 험난한 인생을 살았음에도 상당히 시적인 가사를 써서 이 분야에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생존설도 돌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근거론 대표적으로 사후에 발표된 뮤직비디오에 투팍이 신고 나온 신발은 투팍 사망 전에는 발매되지 않은 모델이라는 점, 사망 후 바로 화장되었다는 점, 사고 당시 경찰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등등 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자메이카에서 살아있는 투팍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또는 쿠바 그들이 말하기론 2014년에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데 이미 2015....(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사후에도 앨범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생전에 이미 수백곡을 녹음해놨기 때문에 죽은 뒤에도 계속 앨범이 나오고 있다는 것. 이 쯤 되면 생존설이 생길 만도 합니다. 미스터리 갤러리의 유명한 고인드립 꾸준글 중에는 '투팍은 살아있다'라는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꾸준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곡들은 앨범에 발매되지 않을 만한 퀄리티라는 점, 같이 껴서 나오는 기존곡들의 리믹스가 개판이라는 점 등에 의해 사후 앨범은 계속해서 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랩퍼라는 위상에는 변함이 없을 듯 하네요. 그러나 엘비스 프레슬리, 커트 코베인, 가장 최근의 마이클 잭슨의 사망 당시에도 생존설은 돌았습니다. 지금껏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세상을 떠났음이 확실한거 아닐까요. 그가 화장한 것을 본 사람도 있으니 죽은 것이 맞습니다.(솔직히 생존설이 돌고 살아 나온 가수가 있었나? )이런 쓸데없는 추측보다는 구글링만 해봐도 2pac 부검 사진이라 검색하면 나옵니다. 물론, 생존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부검사진이 조작 되었다고 말한지만 말이죠. 궁금한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영문의 압박....) http://www.egotripland.com/evidence-2pac-tupac-still-alive/ 이걸 투피에이씨로 읽느냐 투팍 이팍 으로 읽느냐에 따라서 힙덕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골라낼 수 있다고 합니다. 가끔 자기가 힙합 매니아라고 하는 사람한테 읽으라고 해보는 것도...ㅋ (빙글러들은 없을듯함 ;;;) 이승철은 슈퍼스타k2에서 투팩이라고 읽었다고 합니다. 음악에 입문하기 전에 투팍의 시를 담아낸 '콘크리트에 핀 장미' 라는 책도 발간되었습니다. 타임지에서 선정한 미해결 힙합 살인사건 탑 10중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