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ingb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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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다네 왔다네 드디어 왔다네 ㅋㅋㅋ

애니팡 시인 하상욱 단편집 2탄ㅋㅋㅋ 목차부터 빵터짐ㅋㅋㅋㅋ 이미지 수가 10개가 넘어서 카드 두 개로 끊었으요 ;_; 2-2탄 링크는 여기> http://www.vingle.net/posts/69807 1탄 링크는 여기> http://www.vingle.net/posts/58503
9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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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배야~~~
재밌네요.
앜ㅋㅋㅋㅋㅋㅋㅋㅋ배아파 ㅠㅠ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목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목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작가 진짜 센스가 점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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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업무를 마치고 한글 문서 프로그램을 열었다. 물론 업무가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임의대로 오늘의 업무를 마쳤다. 오래 이 직장에 몸 담을 생각은 없지만, 어쨌거나 현재 시 잡지를 만들고, 시집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한국 시의 현장을 앞서 관찰하는 기회를 얻고는 있다. 그러나 또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범람하는 시와 시 평론 원고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아무래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싶어진다. 시를 쓴다고 해서 모두가 학술적인 차원에서 시를 다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분명 한국의 시단은 학술적인 영역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중심부에 오래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그런 느낌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 시단에서, 어쩌면 꽤 오래전부터 석박사 학위를 받거나 적어도 대학원 문턱이라도 경험한 시인이 부지기수이고, 평론을 겸하는 시인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시인 중에는 박사가 정말 많다. 물론 시라는 것이 단순한 말장난도 아닐뿐더러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재능이 빛나도 그 수명이 길지가 않기는 하다. 그러나 공부라는 것이 꼭 이 제도권 교육에서만 이뤄져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정말 많은 시인들이 대학원에 진학하지만 그것이 시 연구에 대한 열정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당연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시인들이 대학원에 가는 많은 수의 이유는 사실 생계와 연결된다. 시인은 직업이 될 수도 없을뿐더러, 요즘에야 전공과 상관없이 시인들이 등장하는 일이 잦지만 사실상 문예창작 전공자나 국어국문 전공자가 여전히 대다수라서, 취업에 굉장히 골머리를 앓는다. 문과 자체가 취업이 어려운 판에, 그 중 예술과 인문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문예창작 전공 출신들은 전공과 별개로 취업 준비를 하지 않으면 정말이지 갈 곳이 없는 수준이다. 그러니 시인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아 강의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갈 곳이 없기 때문에, 또한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자리나 구하면 결국 시와는 전혀 동떨어져 시 쓰는 일과 전혀 무관해지기도 해서, 지레 겁을 먹고 차라리 시와 멀지 않은 곳에 소속되려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연구 활동이 그럭저럭 할만 해서 박사 과정까지 밟아 운 좋게 교수가 되는 시인도 있고, 꼭 교수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시인으로서의 인지도와 학문적 성취의 균형을 잘 맞추어 최소한 문화센터의 강의라도 하거나, 문학잡지의 기획위원이나 편집위원들을 겸하고 그럭저럭 글쓰는 노동자의 삶을 유지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한국시의 획일화가 창궐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비슷비슷한 경로를 경유하니 시도 비슷비슷해지는 것이다. 통계에 근거한 얘기도 아닐 뿐더러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쩌면 바로 그런 사회적 불안심리가 시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아껴 읽고 싶은 너와 나의 이야기: 22
야밤의 역 앞 떡볶이 트럭을 보며, '졸아든 마음이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라는 문장을 적었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소망이 반영되었나 봅니다. 사랑과 삶의 이상적인 융합 속에서 사는 요즘, 그때의 문장을 다시 꺼내어 봅니다. 직업이 전부는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에 직업도 있는 것이다. 직업은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방편일 뿐이다. 삶을 직업에 맞추는 게 아니라 직업을 삶에 맞춰야 한다.⁣ ⁣ 학생들과의 담소의 흐름은 취업과 돈으로 흘러간다. "재미없어요. 그냥 하는 거예요."⁣ "취업 잘 된다고 해서 이 과 선택했는데, 저 취업 할 수 있겠죠? 불안해요." 메마른 웃음을 짓는 어린 청춘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안 자의 눈빛은 거칠고 어둡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손을 잡고 저 말을 해주고 싶다. 직업을 삶에 맞춰야 한다고. 이상적인 말이 아니라 저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고른 숨을 쉴 수 있다고.⁣ 넌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오늘도 삶을 살아내는 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전부가 아닌 전부를 생각하면서.⁣ ⁣ #사람에 대한 예의 #어크로스 #권석천 마제소바는 비빔장이 생명인 요리다. 이 비빔장을 맛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맛있게 만든 비빔장을 면에 잘 배게 만드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 장인들은 면을 채에 건져 젓가락으로 빠르게 비비는 과정을 더한다. 언뜻 보면 면에서 물기를 쫙 빼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면발엔 미세한 상처가 많이 나게 된다. 그 상처는 면발의 식감을 살리는 것과 동시에 면이 비빔장을 흡수하게끔 만드는 역할도 한다. ⁣ ⁣ 세상엔 이런 종류의 상처들도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가슴 찢어지는 이별을 몇 번 해 본 덕분에, 어떤 영문 모를 상처들 덕분에, 나는 지금의 내가 된 셈이다.⁣ ⁣ 상처가 아문 곳을 쓰다듬기 시작한다. 화상 자국과 꿰맨 자국, 딱지 진 곳과 알 수 없는 흉까지. 물리적인 것에 의한 상처는 만질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내면의 수없이 많이 생긴 상처는...까지 생각하다 침을 삼킨다. 나란 존재는 삼켜진 것들이 형상화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두운 걸까 생각하다 아무렴 어떤가 싶다. 지금의 나는 더 진하게 깊어지고 있으니, 어둠 따위 기꺼운 마음으로 담고 살아갈 수 있는 거다.⁣ ⁣ #그리운 누군가가 근처에 산다 #딥앤와이드 #여태현 나의 화단이 그저 평범한 꽃들로 채워진다 해도, 남들 것만큼 화려하지 않아도,⁣ 그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라면 족한 마음.⁣ ⁣ 그게 더 중요하다.⁣ ⁣ 척박한 환경에서 제일 늦게 피는 야생화인 좀딱취.⁣ 5mm 남짓 되는 작은 꽃을 보며 시기에 대해 사고한다. 적당한 때를 알지 못할지라도 주어진 삶 그대로 온전히 살아낼 때, 크고 작은 숨이 피어난다. 숨의 자국의 접점이 커져 삶을 이루고 그것이 나의 인생이었음을 진 자리에서 느끼지 않을까.⁣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는다는 진리가 꽤 매력적이다.⁣ ⁣ #2인조 #달 #이석원 글을 모르는 당신에게서 편지가 왔다⁣ 흙이 핥아주는 방향으로 순한 우표가 붙어 있었다⁣ 숨소리가 행간을 바꾸어도⁣ 정갈한 여백은 맑아서 읽어낼 수 없었다⁣ 문장의 쉼표마다 소나기가 쏟아졌다⁣ ⁣ 밀도 높은 당신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 시를 숨이라고 여긴 자의 눈을 응시하자 고요한 어둠이 내려앉는다 평온과 불안의 간극 속에서 온몸이 떨려와도 두 눈은 평형대를 내려오지 않는다⁣ ⁣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문학동네 #김희준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 초점을 두기보단⁣ ⁣ 나를 위한 다정함을 기억하면서⁣ 살아주세요.⁣ ⁣ 세상의 길은 내가 바라보는 시선대로⁣ 펼쳐진다고 믿습니다.⁣ 그 시선을 자신이 위축되지 않는 방향으로 ⁣ 이어가 주세요.⁣ ⁣ 오늘이라는 발자국이 이어져 만들어지는 길의 형태는 알 수 없는 자아를 닮았다. ⁣ 해무 속 섬에 불시착하여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떠다니는 미역이었다. 한 움큼 집어 입안에 욱여넣자 생의 첫 숨이 떠올라 울음이 났다. 파도를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으며 끝내 웃어버린 나의 그림자는 유난히 길었다.⁣ ⁣ #네가 혼자서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에이블 #안상현 철학자가 원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바로 세계의 모습이다. 세계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윤곽을 따라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적어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하나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보길 바란다. 말 그대로 나름의 해석이므로 그것은 언제나 의인적 해석이나 구상이다. 철학자는 모든 일과 세계를 인간과 같은 것이라고 간주한다.⁣ ⁣ 고래 책방에서 처음 본 뒤로 계속 생각나던 이 책을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읽었다. 뭍에 던져진 사회 초년생일 때가 생각나고, 뼈 때리는 문장에 조용히 숨죽이며 괜스레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철학가와 작가의 문장은 그렇게 절친한 벗이 되었다. ⁣ ⁣ 니체의 말 위를 걷다가 해석에 걸려 넘어졌다.⁣ '사실이란 것은 없고, 해석만 있다'는 활자에 지혈되는 자의 눈동자 색이 궁금해진다. ⁣ ⁣ #을의 철학 #한빛비즈 #송수진 반 아이들은 언뜻 평화롭게 공존하는 듯 보였지만, 물리적 성질이 달라 합류 지점을 지난 뒤에도 각자의 흰빛과 검은빛을 유지하며 나란히 흐른다는 남아메리카의 두 강줄기처럼, 서로 섞이는 법이 없었다.⁣ ⁣ 텅 빈 어둠을 직시할 때마다 버려지는 것들이 생각난다. '평화롭게 공존하는 듯 보이나, 서로 섞이는 법이 없는' 현재처럼 말이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절규의 메아리가 귓전을 때리고 어깨 가득 재가 내려앉는다. 흰 종이 가득 검은 꽃이 피어날 때에만 온전한 숨을 쉴 수 있으므로 나의 눈은 늘 아래를 향해 있다.⁣ ⁣ #여름의 빌라 #문학동네 #백수린 "항상 움직이는 것은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는 활동이긴한데 본능적으로 몸에 밴 행동인 것입니다. 오히려 움직여서 피곤한 것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으면 피곤해진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표현일 겁니다. 또 그렇게 움직이다 보니 누구보다도 빠르고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요?"⁣ ⁣ 선택을 빙자한 침묵이 굳은 자가 말할 때마다 들리는 쇳소리에 온몸의 털이 곧추선다.⁣ 옹색하고 각진 시각으로 세상과 자신을 옭아매니 질식당하는 꿈을 자주 꿀 수밖에_⁣ 모든 것이 붕괴된 채 추락 중인 자들이 단념을 이어 붙여 나를 자꾸 올려보낸다. ⁣ 어느 순간을 지날 때면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 했다.⁣ ⁣ #회사를 다닐수도, 떠날수도 없을 때 #중앙북스 #박태현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우리, 춤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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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조금 늦게 잔 탓도 있지만 오늘은 어찌나 잠이 자도 자도 쏟아지는지 중간에 두세 번을 깼으면서도 일어날 생각이 들지 않았고, 거의 정오까지 계속해서 잤다. 언제나 그랬듯 자는 동안 쉬지 않고 꿈을 꾼 듯한 느낌이다. 그 모든 것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 중 둘은 그것이다. 하나는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아주 오래된 느낌의 남루하고 촌스러운 옷을 입고 등장한 것이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그는 나보다 한참 젊은데도 불구하고 고루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데, 그에 대한 내 생각이 옷차림에 반영된 것은 아닌가 싶다. 또 하나는 최근에 어떠한 이유로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있는 친구의 등장이었는데, 평소 나는 그가 별일 없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꿈에서는 그에게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친구에 대한 양가적인 마음 중 내가 애써 숨기고 있는 감정이 꿈에서 드러난 것일 테다. 특히 첫 번째, 옷차림으로 발현된 그에 대한 내 평가의 반영을 떠올리면서 이건 거의 프로이트의 연구 사례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잠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이유는 이처럼 계속되는 꿈으로 인한 숙면의 불능 때문일 텐데, 이렇듯 나는 꿈 없는 잠을 자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건 아마 지나치게 걱정이 많고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은 성향 때문이겠지만, 요즘은 종종 그러한 꿈의 범람이 성가시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꿈을 꾸는 것은 즐겁기도 하다. 특별히 악몽을 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도 꿈을 꾸는 통에 새벽녘에 일어나면 그 사이에 꿈이 휘발돼버릴까 싶어 곧바로 인터넷 창을 켜고 그 꿈의 해몽을 검색해보기도 한다. 그 해몽들이 들어맞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다. 그러나 나는 꿈을 통해 요근래 나의 강박이 무엇인지를 되짚어보기도 한다. 내가 애써 숨기고 있는 고민과 욕망들이 대개 꿈으로 나타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참 여러 가지 양상의 꿈들을 경험해 본 것 같다.  물론 착각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꿈을 꾸면서 오감을 다 느껴보고자 했고 느껴본 적이 있다. 현재까지 나는 오감 중 미각을 빼고는 모두 경험해 보았는데, 가장 어려운 것이 촉각과 미각이었다. 시각적인 꿈은 대개 총천연색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한 지점만 명확히 컬러를 드러내는 경우다. 그러니까 흑백이라고 정의하기도 사실상 힘들지만, 가령 흑백에 가깝다고 인지되는 풍경 가운데 누군가의 티셔츠만이 빨간색으로 드러나는 경우이다. 후각적인 꿈의 경우는 기억하기로는 두 번인데, 둘 다 탄 냄새였다. 선잠에 들어있는 경우였는데, 나는 그것이 분명 현실의 냄새라고 생각했지만, 잠에서 깨자 냄새가 바로 사라졌다. 두 번의 경우 모두 그렇다. 내 인지의 불명확성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두 번이나 있었던 일이다. 청각의 경우는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누군가 불러준 문장이라는 것이다. 무언가를 보고 읽은 것이 아니다. 분명히 누군가의 목소리로 발음된 것들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대개 메모장에 적어놓고 맨 정신으로 읽어보면 건질 만한 것이 없다. 촉각은 꽤 힘들었지만, 어떤 물건의 테두리를 꼭 움켜쥐고 그 감각을 기억한 것인데, 일어났을 때 내 주위에 꿈 속의 물건으로 착각을 했을 만한 그 어떤 것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내가 어떠한 물건을 잠결에 잡았을 경우, 꿈 속에서 그것이 다른 물건으로 발현되어 촉각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인데, 그럴 만한 물건은 내가 누워 있는 곳 어디에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꿈속에서 온전히 현실의 어떤 도움 없이 내 의식이 만들어 낸 촉각을 경험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온전히 착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미각은 사실 최근에 경험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아직 미각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가위는 아주 어릴 때 한 번 그리고 청소년기에 한 번, 그리고 요즘은 아주 피곤할 때 가끔씩 한 번 눌린다. 대개 가위에 잘 눌리는 사람들은 악몽을 동반한다고 하는데, 내 경우  가위가 특별히 악몽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 상황보다 더한 공포는 사실 없다. 꿈을 꾸면서 이것이 꿈이라고 인지하는 자각몽 역시 두어 번 정도 꿨고, 역시 어릴 때 꿨다. 최근에는 전혀 꿔본 적이 없다. 이처럼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꿈에 대한 비슷비슷하면서도 특별한 경험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작년에는 어떤 잡지에 시 세 편과 산문 한 편을 발표했는데, 그 중 한 편은 실제로 경험한 일을 꿈을 꾼 것처럼 각색한 것이고, 한 편은 꿈에서 경험한 일을 실제 겪은 것처럼 각색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산문에 썼다. 이토록 꿈을 많이 꾸는 삶이라면 차라리 꿈이라는 것이 생시와 동일한 지분을 갖고, 하나의 견고한 세계로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그때 우리는 어느 쪽을 꿈으로, 생시로 불러야 할까. 그런 경계가 모호해진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현실에서 좋지 않은 일을 겪었을 때 꿈에 가서 이 한 마디를 하면 그만 아니겠냐고. "참 나쁜 꿈을 꾸었군." 꿈이 마치 생시와 평행세계처럼 흘러간다면, 그래서 내가 같은 꿈을 계속 이어서 꾼다면 어떨까. 꿈에 가면 생시처럼 내가 사는 집도 있고, 내가 다니는 직장도 있고, 또 그쪽 세계의 내 부모가 다르고, 내 친구들이 다르다면. 우리는 남루한 일상을 반대쪽 세계를 통해 상쇄시킬 수도 있을까. 우리는 실제로 현실처럼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기도 하고, 꿈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놀라운 일을 현실에서 마주하기도 한다. 우리의 감각 체계가 너무나 무딜 뿐 어쩌면 그런 세계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나는 무척 높은 확률로 꿈을 꾸게 될 것이다. 내게 알은 체를 하며 다가오는 이가 있다면 물어봐야겠다. 우리 집이 어디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