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HanKorea
3 years ago5,000+ Views
근력은 단순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동작이나 행위로 설명될 수 없다. 근력은 인체가 지속가능한 힘을 발휘하는 능력으로 확인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지속적인 행위가 근력의 정의다. 우리는 근력의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근력향상이 근육발달로 이어지고, 신체건강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그렇다. 근력향상이 되지 않는 운동은 의미가 없다. 유산소든 무산소든 근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잘못된 운동이다. 근육이 발달하지 않는 운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운동이 아니라 관절을 혹사시키는 행위 정도로 규정될 뿐이다. 근력의 구성과 구분 나는 근력을 근장력이라 바꿔 정의하지만, 여기서는 근력이란 말을 그대로 쓰겠다. 근력은 근육의 수축력을 의미한다. 헌데, 근육은 매우 많다. 따라서, 한 단위의 근육만이 아닌 모든 근육의 수축력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뼈대와 근육과 관절을 함께 이해해야만 한다. 힘줄과 인대를 제하고 생각해보자. 인간은 뼈다귀의 이음으로 만들어진 구조에 근육이 붙어서 형성되어 있다. 분리된 뼈다귀가 이어지는 곳이 관절이고, 관절을 기점으로 근육이 나뉜다. 수많은 근육들은 수축하면서 관절을 구부리고 뼈대를 움직인다. 그것만 제대로 이해하면 운동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관절을 기능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눈다. 어깨 척추 골반은 뼈대를 나눈 것이고, 관절로 나누면 팔다리를 구분할 수 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네 발 달린 동물을 떠올려보자. 인간을 그들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팔다리를 동일하게 볼 수 있다. 팔다리의 관절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크게 나누면, 셋이 된다. 어깨와 골반, 팔꿈치와 무릎, 손목과 발목이 그것이다. 나는 이것을 상, 중, 하 관절이라 부른다. 관절을 이렇게 나누는 이유는 관절의 기능과 구조에 따라 운동의 방법과 순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한운동법은 큰 근육과 큰 관절을 기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복합적인 근육과 관절을 총체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자세와 동작을 기준으로 구성되었지만, 그 내면에는 관절의 기능과 구조에 따른 한계와 능력이 고려되어 있다. 우리는 큰 관절을 기준으로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다치지 않고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 그 순서는 상중하관절의 순서를 따른다. 사실, 전체적인 인체도 상중하로 구분해서 운동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상체, 중체, 하체 순으로 운동하는 것이 더 쉽고 빠르다. 그럼에도 내가 대부분의 방법에서 중체인 허리를 먼저 하고 하체를 한 다음, 마지막으로 상체를 운동하는 식으로 구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끈기가 부족하고 빠른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사람들의 심리와 반대로 운동의 방법을 구성하고 원칙을 정했다. 어떤 순서든 상관이 없지만, 확실히 상중하의 순서는 부상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 인체든 관절이든 상중하의 역순, 하중상의 순서로 꾸준히 긴 기간을 두고 운동하는 것이 부상도 적고 장기적으로 기초가 튼튼해지며 강인해질 수 있다. 그렇게 해봤자 몇 달이지만, 그것도 비효율적이라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그냥 상중하의 순서를 그대로 밝히는 것이다. 어찌됐든, 인체는 동시에 발달하는 것이고 다만, 근력과 근육의 향상이 약간씩 차이를 두게 될 뿐이다. 내가 부위별 운동을 만들면서도 가능한 관절을 기준으로 만들지 않은 이유도 전반적인 근력의 향상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관절을 기준으로 운동하면... 어깨와 팔꿈치와 손목, 골반과 무릎과 발목을 기준으로 운동하면 매우 빠르게 근력이 향상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것을 이제야 처음으로 말하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효과적이고 빠른 만큼, 부상의 위험이 높고 유혹의 손길이 많기 때문이다. 기초가 부실하고 체력이 약한 사람이 빠르게 근력향상에 이르면 대부분 샛길로 빠진다. 근육에 집착하거나 현란한 기술이나 동작에 심취하게 된다. 근력의 본질적인 의미를 잊어버리고 얄팍하고 얍실한 자신만의 정의를 찾고 힘을 추구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을 수도 없이 봐왔고, 그런 운동을 수도 없이 해봤다. 나는 그런 길에 빠졌다가 허리를 다쳤고 몸의 여러 곳을 다쳐봤다. 부상에서 회복되기 위해 다양한 재활운동을 했고, 스스로 운동법을 찾기 시작한 최근에 와서야 다시 본래의 큰 길로 돌아왔다. 수없이 경고하고 비판했으면서 이제는 아예 잘못된 방법과 샛길을 그대로 공개하고 설명하는 이유는, 어차피 내 힘으로는 그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운동을 하고 있고 부상을 입고 있는데,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그게 그래서 잘못되었고 이래서 잘못되었고, 그래서 부상을 입고 이래서 잘 다치는 것이라고 밝히고 증명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인체는 매우 효율적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반복된 자극과 저항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그것도 전체적인 충격에는 잘 버티지만, 특정 부위에 가해지는 충격에는 매우 취약하다. 대부분 관절에 집중되는 충격들은 부상으로 직결된다. 그러니까, 인체가 흡수하고 견딜 수 있는 지속가능한 충격과 자극을 명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무조건 관절이 상하거나 인대가 상하게 되어 있다. 어떠한 예외도 없이 무조건 다친다. 예외가 없기 때문에, 잘못된 운동방법은 명확하게 정리하고 추려낼 수 있다. 현대인들이 하는 운동 중에서 관절이나 인대가 잘 다치는 동작들은 정해져 있다. 더 심하면 근육이 파열되거나 뼈가 부러지지만, 비율적으로 관절과 인대의 부상이 압도적으로 많다. 극소수의 사람들(재활이나 운동전문가, 물리치료사 등)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동작들이 부상으로 직결되는지를 잘 알지도 못한다. 학교에서는 뭐가 문제인지를 가르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체육시간에 잘못된 운동을 가르치기도 한다. 관절을 기준으로 하는 대표적인 운동은 다 우리가 아는 것들이다. 철봉, 평행봉, 줄넘기, 윗몸일으키기, 앉았다 일어나기, 팔굽혀펴기, 앞구르기, 뒤구르기, 높이뛰기, 구기종목 등... 따지고 보면 관절을 쓰지 않는 동작 자체가 없겠지만, 관절을 혹사하는 운동이나 동작은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특히 근력이 약한 여자나 아이들이 하기에는 심하게 무리가 따르는 동작들을 학교에서는 꽤나 많이 가르친다. 체력을 향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관절을 극심하게 접었다 펴는 동작들을 가르치는 기존의 체육은 문제가 심각하며, 그것을 가르치는 학교는 매우 심각하다. 학교에서 체육 배워서 체력이 좋아졌다는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효과가 없으면 문제를 알아야 함에도, 관료제 사회는 모든 문제를 외면한다. 상명하달 구조의 피라미드 관료제는 위에서 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고치지 않는다. 관절을 혹사시키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뼈가 부러지는 경우가 많고, 손목이나 발목을 잘 삔다. 관절을 혹사시키는 운동을 자주 하면, 잘 넘어지는데다가 잘 다친다. 어딘가 잘 부딪치거나 긁히거나 베이는 것도 인체의 운동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여성이나 노약자는 그 상태에서 골밀도가 떨어지고, 척추가 휘어지거나 골반이 비틀어진다. 상대적으로 남자보다는 여자의 구조적 문제가 더 쉽게 발생한다. 가슴이나 엉덩이 근육이 얇으면 어깨와 골반이 과회전하고 척추가 약해진다. 다열근과 기립근이 약해지면서 허리통증이 동반된다. 이러한 모든 문제는 복합적으로 동시에 발생한다. 다만 통증이 부위별로 다르고 발생시기가 다를 뿐이다. 몇 십년에 걸친 척추의 문제는 총체적인 근력의 약화로 직결되고, 이는 근육의 부족으로 심혈관계와 장기의 문제로 이어진다. 질병에 걸리기 위한 최적의 조건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 임계점을 대략 오륙십 대로 볼 수 있다. 개인에 따라 칠팔십 대까지 늦춰질 수는 있지만, 대부분 오륙십 대에 인체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는 임계점에 도달한다. 이때부터는 회복력과 면역력 자체가 약하기 때문에, 다양한 질병에 노출된다. 이 모든 문제를 나는 지금 관절을 기준으로 운동했기 때문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운동이 아니라, 관절을 혹사시킨 것이다. 그래서 근육은 약해지고 근력은 떨어진다. 동시에 노화는 앞당겨지고 건강도 악화된다. 자신의 인체를 모르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은 다치거나 약해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어떠한 운동이나 의학도 인체를 사용하는 올바른 방법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조상의 지혜와 금언을 망각하고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되살리지 않고는 인류의 건강도 되살릴 수 없다. 근력과 관절의 강화 근육이 힘줄을 포함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영어는 muscle과 tendon으로 근육과 힘줄을 구분한다. 허나, 근육이란 한자에는 힘줄 근과 고기 육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함유되어 있다. 근력은 정확히 말해, 힘줄의 힘을 뜻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근력을 근육의 힘이라 해석한다. 본질을 파고들지 않고 피상적인 해석에 머무르고 만 것이다. 실제로 운동을 하며 인체의 한계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힘줄의 의미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삐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인대의 부상이다. 늘어나거나 염증이 생기거나 찢어지는 경우에 그런 표현을 사용한다. 문제는 그것을 관절인지 인대인지 근육인지 힘줄인지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저 대충 발목이 삐었다, 어깨가 아프다, 무릎이 아프다, 손목이 시큰거린다며 증상을 표현하면서도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의사만 알아야 하는 의학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다. 자신의 몸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째서 아픈지를 명확히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음에는 부상을 입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다쳤거나 아프다고 해서, 운동을 회피하거나 부상 부위에 대한 근력운동을 외면하면 결국 더 약해질 뿐이다. 이러한 부상의 경험이 반복될수록 인간은 심리적으로 불안감이 커질 것이고 운동을 기피하는 상황을 스스로 초래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현대인의 인체가 스스로 약화된 배경에 의학과 학교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비판적인 견해를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기존의 학교교육과 체육, 생활체육의 배경을 유럽이 이끌고, 재활치료에 대한 개념 자체가 피상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개개인의 건강상태는 국민 각자가 해결할 뿐, 국가는 아무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건강보험이나 산업재해보험 정도가 국가가 하는 최선일 뿐이다. 나는 이러한 측면에서 국가와 보건기관, 교육기관의 무책임함을 강하게 질타하고 비판한다. 개인의 건강상태를 끌어올리는 방법은 올바른 인체 지식과 운동 방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은 성년이 되기 전의 청소년기부터 교육되어야 하며, 지속적인 생활체육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제 막 태동한 국민생활체육의 국가적 노력은 여전히 파편화되어 진행되고 있다. 기존의 단체와 분야에 맞춰져서 스포츠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과거와 아무런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통합된 인체와 건강에 대한 의학적 관점이 정립되지 않는 한, 결코 예방의학이나 재활의학이 그 중요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현재는 가정의학이나 운동처방, 재활의학, 응급의학, 물리치료 등으로 분리되어 있다. 인체를 강화하는 운동방법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생리학은 의학의 체계 내에서 포섭될 수 없다. 모든 의학이 병리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실에서 생리학에 대한 임상적 연구가 축적되고 정리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운동에 대한 중요성이 병리적 질병에 뒤처지게 될 것이다. 결국 의학의 본질이 흐려지고 되살아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병에 걸린 사람을 수술이나 다른 요법으로 치료했다고 하자.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한 번 환자는 영원히 더 나은 상태로 회복될 수 없는가? 그것은 개인의 노력에 달린 일일까? 의학계가 생리학과 운동학에 대한 연구에 병리학과 똑같은 비중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의학의 본질 자체가 무너진다. 내가 근력과 관절에 그토록 집착하고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육이 발달하고 힘줄이 강하고 관절이 유연하고 뼈대가 튼튼하면 인체의 건강상태는 개선된다. 물론 음식물 섭취와 정신적 상태에서 문제가 없어야겠지만, 이것들은 운동과 함께 복합적으로 개선된다. 운동을 아무리 해도 많이 먹고 유해한 것을 먹으면 소용이 없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건강 자체가 확보되지 않는다. 아무리 정신적으로 무해하고 소식을 하고 건강식을 섭취하더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본질적인 인체의 건강은 개선되거나 회복되지 않는다. 무슨 즙을 먹고 보약을 먹거나 보충제를 먹는다고 오장육부가 활발해지고 근육이 생기고 뼈대가 튼튼해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모든 건강의 궁극적인 답은 운동에 있다. 너무나 뻔한 소리임에도 기존의 의학과 인류는 이것을 무시하고 외면한다. 근력과 관절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운동방법과 적정한 휴식이 반복되어야 한다. 운동 중의 휴식이 훨씬 더 중요하다. 운동과 휴식의 개념을 시간적으로 쪼갤 수 있어야 관절이 받는 저항과 그에 따른 한계를 스스로 체득할 수 있다. 앞서도 지적했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개개인이 스스로의 관절 강도와 회복 속도를 유무의식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결국 관절의 기능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운동을 지속하게 된다. 이러한 임상적이고 경험적인 기전을 나는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강조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에 따른 운동신경과 운동능력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의학적 연구가 축적되지 않더라도 확신을 갖고 스스로 연구해야 한다. 자신의 운동능력이 발달하는 기전에는 관절의 강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힘줄의 능력이 배가된다. 쉽게 얘기해서, 자신의 뼈를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를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운동능력이고 근력의 본질이다. 그것은 인대를 위협하지 않는 관절의 방향과 각도를 이해하면서 힘줄을 통해 근육을 수축하는 능력이다. 거기에는 운동신경이 관여하고, 또한 인대나 힘줄, 근육이 입게 되는 통증을 예민하게 인식하는 감각이 관여한다. 이것이 총체적으로 반복되고 두뇌에 인식되었을 때, 인체는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근력운동의 강화순서 내가 짜는 운동순서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전제가 있다. 개인에 따라 반대로 적용하거나 추출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러한 것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인체를 스스로 이해하는 만큼 운동능력도 발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이 발전한 만큼 스스로 방법과 순서를 짜면 된다. 모든 운동은 큰 근육과 큰 관절을 기준으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립이 완전히 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에 작은 관절이 반복된 운동에 노출될 경우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큰 관절 중심의 운동을 할 때는 매우 엄격한 자세가 요구된다. 특히 손목과 발목은 쉽게 다치므로 처음에는 가능한 고정시키고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세를 구성해야 한다. 대부분의 운동은 중관절(팔꿈치와 무릎)을 혹사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어깨나 골반을 의식하지 않고, 손목과 발목이 아프지 않은 자세로 지속적으로 팔꿈치와 무릎을 괴롭히는 것이 현재의 운동이다. 그래서 운동선수가 가장 많이 다치는 부위는 무릎과 팔꿈치며 그 후에 상하의 관절이 다치게 된다. 누구나 운동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손목이나 발목, 손이나 발이 다치는 행위를 피하고 하지 않는다. 문제는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인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기초가 부실한)에서 운동을 하면 무릎과 팔꿈치에 높은 수준의 저항과 자극을 반복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어떠한 운동도 무릎과 팔꿈치의 자극을 피할 수 없다. 허나, 어떻게 운동하는가에 따라 중관절이 강해질 수도 있고 반대로 약해지고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강해진다는 의미는 관절과 이어진 힘줄과 근육이 강하게 수축하는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그것을 이해하면 누구나 강해질 수 있다. 상중하의 관절순서로 운동을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고, 그것을 쪼개서 설명하는 이유도 누구나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모든 인간은 강하게 태어났고, 누구나 노력만 하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 대한
0 comments
Suggested
Recent
4
Comment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