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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리스크 작전
주말 특집, 휴지다. (짤방은 큰 관련이 없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주로 영어권에서 휴지 품귀 현상이 일어났는데, 휴지와 관련된 재미나는 냉전 시대의 스파이 작전이 하나 있었다. 그 이름은 타마리스크(Tamarisk) 작전,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적진의 휴지를 모아서 분석하자는 내용이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쓰레기를 무심코 버릴 수 있으며 그 안에 귀중한 정보가 있는 서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전 내용을 자세히 보면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우연히도 소련은 독일 주둔 소련군에게 휴지를 지급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당시 소련군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온갖 종이를 다 썼다. 그중에 중요한 서류가 많았다. 게다가 동베를린에는 미국과 프랑스, 영국의 군연락사무소가 설치되어 무관들이 공식적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당연히 서로서로 간첩질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기도 해서, 이들의 행동에 물론 제약이 따르기는 했지만 다른 스파이질보다는 쓰레기 뒤지는 편이 훨씬 더 손쉽기도 했었다. 일단 이 작전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Афганская война, 1979-1989) 시기 때부터 시작된다. 전쟁을 어떻게 하는지 알기 위해서 서구 국가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다가, 영국이 아이디어를 하나 제시한다. 동독에 있는 소련 군병원의 쓰레기 더미를 뒤지자고 말이다. 공공연한 비밀이 됐지만 당시 동독은 친소련 아프가니스탄 군을 훈련시키고(참조 1), 소련군과 아프가니스탄 군의 부상병들을 치료하곤 했었다(참조 2). 참고로 당시 동독과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가 부상병들을 받아들였었다. 물론 인근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병원들도 소련 병사들을 치료했다. 즉, 동독 군병원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분석해 보면 소련이 어떤 탄환과 어떤 무기를 쓰는지도 알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었다. 미국과 프랑스는 영국에 찬성한다. 비록 절단된 손가락들이 서류 속에 나오는 건 다들 질색해 했지만 서방은 열심히 병원 쓰레기들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영국은 심지어 병원 뒤에 마련된 군 묘지도 뒤졌다. 세계적으로 식민 통치를 오래 했으니 묘를 뒤지는 노하우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또 있었다. 소련 및 동독군 훈련이 종료된 이후, 군인들이 볼일을 보고 남긴 종이를 뒤지는 것이었다. 온갖 쓰레기를 군연락사무소로 가져온 다음, 세척하고 정리한 후에 다시금 안전한 서베를린 혹은 서독으로 보내서 다시 정밀분석을 하는 과정이었다. 여기서 찾은 서류더미는 암호문에서 사기가 어떤지(볼일을 본 종이로는 편지도 많았다), 군과 당 그리고 군정보기관과의 관계, 일정과 신무기 시리얼 번호 등 온갖 정보를 다 갖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동독 북부의 Neustrelitz에서 영국은 소련군 최신 탱크의 장단점 및 장갑에 대한 최고 기밀이 들어가 있는 화장실 종이(…)도 발견한다. 심지어 후계 탱크에 대한 정보도 들어 있었다고 한다. NATO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 정보에 따라 NATO는 곧바로 새로운 대전차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들어간다. 그래서 서방 스파이들은 소련군이 바깥으로 나와 볼일을 볼 때면, 다 끝내고 닦은 다음 가기만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그 다음 썼던 종이를 챙겨서 본부에 보내면, 이 종이에 훈련 정보도 들어있고, 전투 작전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쓰여 있고 등등, 노다지가 따로 없었다. 휴지가 없으면 영광도 없는 법. 당시 소련이 비데를 쓰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김성모의 돌아온 럭키짱에 있는 대사, “왜 너희가 똥싸는데 내가 힘을 주어야 하느냔 말이야?”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내가 힘을 줘야 했었고, 영국은 이 스파이 행위를 ‘shit-digging’이라 칭했다. -------------- 참조 1. EAST GERMANY'S DIRTY SECRET(1990년 10월 14일): 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opinions/1990/10/14/east-germanys-dirty-secret/09375b6f-2ae1-4173-a0dc-77a9c276aa4b/ 2. Afghanistan: The First Five Years of Soviet Occupation(J. Bruce Amstutz, 1994) p446
상상력으로 현실 속 문제를 해결하자 : Baadal Nanjundaswamy
인도의 도로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죠 ! 실제로 2017년 기준 열악한 도로 환경때문에 3,597명이 사망하고 25,000명 이상 부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요 :( 오늘 소개할 인도의 화가 Baadal Nanjundaswamy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부에게 항의하고 있어요. 바로 도로의 구멍과 균열 위 3D 페인팅을 그리는 것이죠 !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 날이 어두워지면 잘 보이지 않는 도로 위 균열 주위로 그림을 그려 운전자들을 보호하고, 정부에게 빠른 복구작업을 요구하는 거죠 ! 정말 멋진 아이디어죠 ? 작년 7월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한 편의 영상은 258만회 재생되었고, 약 3만개의 좋아요를 받았으며, 트위터에서는 21,900 건의 좋아요, 740 개의 댓글 및 약 7,000번 리트윗되는 등 아주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어요 *_* 과연 어떤 내용의 영상이였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 헤헤 바로 우주비행사 복장을 한채로 벵갈루루의 도로 위를 걷는 영상이였어요 ! 흙먼지가 날리고 부셔진 도로의 파편들은 마치 달을 연상하게 만들었고, 작가의 영감을 자극했죠 :) 네티즌들의 엄청난 호응을 받은 이 영상은 정부 눈에 띄여 결국 도로는 보수 공사 후 깔끔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어요 *_* 이 영상 속 장소뿐만 아니라 작가님의 그림이 그려진 곳들도 보수공사가 진행되기 시작했어요 ! 재치 만점 작가님의 풍부한 상상력과 행동력으로 달라지고 있는 인도의 도로들 ! 그의 선한 영향력을 응원하게 되네요 *_* 멋져요 정말 <3 <3 <3
또 다른 뉴잉글랜드
일요일은 역시 역사지. 심심해서 써 보는 유럽사이다. 이 또한 주말 특집 혹은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 역사. 뉴잉글랜드 하면 당연히 미국 북동부의 메사추세츠, 커네티컷, 로드아일랜드, 버몬트, 메인, 뉴햄프셔의 랍스터, 야구, 마녀(…) 등이 생각나실 텐데 사실 또 다른 뉴잉글랜드가 600여년 전에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고 하면 믿어지시는가? 실제로 있었다. 앵글로-색슨 족이 켈트를 몰아내면서 세운 잉글랜드가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는 때가 1066년이다. 당시 헬리혜성이 출현하는 바람에 해롤드 왕이 프랑스 노르망디의 기욤으로부터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 헤이스팅스 전투. 승리한 기욤의 잉글랜드 후속 조치는 무시무시했다. 어느 정부든 이런 식으로 점령을 하면 뭐부터 한다? 토지 등기본 정리부터 합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둠스데이 북(Domesday Book, 1086년)인데 여기에 기욤의 후속 조치가 나온다. 기욤이 집권한 이후, 신하들 이름 500여 명을 보면 이중에, 잉글랜드식 이름을 가진 인물이 13명밖에 안 남아있다. 잉글랜드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던 귀족 가문 대부분을 모조리 멸문시켜버린 것이다. 말그대로 상류층을 싸그리 바꿔버린 것. 잉글랜드의 공식 언어가 불어로 바뀐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 그렇다면 그렇게 “치워진” 귀족들이 죽지 않은 경우 어디로 갔냐 이거다. 스코틀랜드나 프랑스, 스칸디나비아로 도망간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특이한 귀족들이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로 향한 것이다(참조 1). 역시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는 법이다. 물론 이들이 로마 가톨릭보다는 콘스탄티노플 교회에 더 충성했을 수도 있다는 추정도 있기는 하다(참조 2). 기록에 따르면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 잉글랜드 귀족(백작 셋에 남작 다섯) 일행은 배 250-300척에 사람만 5천여 명이었다. 이들을 이끈 인물인 글로스터(Gloucester)의 시와드(Siward) 백작이었다. 당시 비잔틴의 알렉시오스(Αλέξιος, 1081-1118) 1세는 이들을 개인 경호부대, 바란지안(Varangian, Βαραγγῶν)으로 임명한다. 이는 비잔틴측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용맹한 앵글로-색슨 전사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고(…). 과연 이들은 알렉시오스가 치른 셀주크 투르크, 노르만족 등 수많은 전투를 돕는다. 당연히 바실레우스(Βασιλεύς, 동로마 제국의 황제를 뜻한다)로서는 이들에게 보상을 내려야 했다. 보상 하면 역시 부동산이죠. 원래는 비잔틴의 땅이었다가 현재 관리능력 부족으로 야만인들이 점유한 크림 반도의 땅을 바실레우스가 시와드 백작에게 인허가와 함께 개발권까지 부여한 것이다. 과연 이들은 크림 반도로 가서 야만인들을 내쫓고 런던이나 요크와 같은 도시를 세우고는, 그 땅을 뉴잉글랜드라 칭했다. ------------- 실제로 존재했다는 말인가? 증거는 많다. 그 이후 일대를 지나간 (프란치스코회, 참조 3) 수도사들에 따르면 자신을 색슨족(Saxi)이라 칭한 사람들이 나오고 론디나(런던) 혹은 수사코(서식스)와 같은 지명이 등장한다. 게다가 후에 바실레우스께서 세금 좀 내라고 징세관을 뉴잉글랜드로 보냈다가, 뉴잉글랜드인들이 징세관을 죽이는 사건도 발생한다. 독립한 것이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의 동방에 세워진 이 새로운 뉴잉글랜드 역시 바실레우스에게 계속 경호부대원을 제공했던 것 같다. 1404년까지 기록이 있다고 한다. 즉, 있기는 있었던 모양… 정도. 1553년에 이탈리아인들이 작성한 항해도의 흑해를 보면 론디나와 수사코라는 도시 명칭이 정확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들의 나라가 어땠는지에 대한 디테일한 면은 그들의 기록이 없어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는 후에 타타르의 잦은 침입, 그리고 결정적으로 몽골의 진출로 인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그 후에는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인들이 몰려왔고 말이다. 이들의 이야기야말로 드라마화 시키기 딱 좋은 소재이지 싶다. (물론 앵글로색슨의 언어와 영어에 큰 차이가 있지만) 주인공들이 영어로 말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테고 말이다. -------------- 참조 1. Kaiser, Reinhold, “Chronicon universale anonymi Laudunensis”, in: Encyclopedia of the Medieval Chronicle, Edited by: Graeme Dunphy, Cristian Bratu. Consulted online on 05 April 2020 <http://dx.doi.org/10.1163/2213-2139_emc_SIM_00665> First published online: 2016 2. 당시 보편(가톨릭) 교회의 동서 분리가 1054년이었으니 그 기억이 생생할 때이다. 3. 당시(1246-1247) 교종 인노첸시오(Innocentiu) 4세(1243-1245)가 몽골과의 연락을 위해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을 외교사절로 파견했기 때문에 기록에 남았다. 이 수도사들은 뉴잉글랜드가 타타르의 침입을 막아냈다는 말을 듣는다. The medieval 'New England': a forgotten Anglo-Saxon colony on the north-eastern Black Sea coast(2015년 5월 19일): https://www.caitlingreen.org/2015/05/medieval-new-england-black-sea.html 4. 짤방은 비잔틴의 바랑기아 경호대, 11세기 이후 아무래도 (뉴) 잉글랜드인들이 다수를 차지했다고 한다. https://en.wikipedia.org/wiki/New_England_(medieval)
성 코로나
주말 특집 코로나 성인 이야기이다. 사실 코로나라는 단어는 관이나 왕관을 뜻하는 라틴어(영어로는 crown)이기 때문에 저런 이름을 가진 인물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Covid-19의 애칭(…)과 이름이 같기 때문에 요새는 코로나 성인에게 기도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 코로나 성인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saint-corona-epidemics 때는 로마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토니누스 피우스 시절(138-161)의 시리아 속주(지금의 시리아와 레바논, 팔레스타인 등을 포함한다)에 주둔했던 로마군 병사 빅토르가 주인공이다. 그는 크리스트교를 믿었다고 하여 적발되어 고문을 당했는데, 고문을 당하고 있을 때 다른 군인의(??) 아내인 코로나 혹은 스테파나(참조 1)가 나서서 자신의 신앙을 커밍아웃하고 빅토르를 위로해준다. 뭔가 이상한 상황이기는 한데, 당연히 그녀도 잡혔고 두 그루의 야자수에 손발이 묶인 다음, 능지처참 식으로 처형을 당한다. 빅토르는 목이 잘렸고 말이다. 그리고 천 년 쯤 후, 십자군이 이들의 유해를 갖고 유럽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북동부 이탈리아(Feltre의 Anzù)에 안치됐다(참조 2). 아이러니한 점은, 이 지역이 현재 코로나 사태가 상당히 심하게 일어나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이 성유골은 신앙의 와이파이 라우터 역할(참조 3)을 하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곳으로도 이전된다. 그곳이 바로 독일 아헨 대성당(Aachener Dom). 안 그래도 아헨 대성당측에서는 올해 여름 코로나 성인의 일반 공개를 추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계획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실제 공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자, 독일 얘기가 나왔으니, 재미 없는 코로나 성인 이야기로 가 보자(참조 4). 첫 번째. 성 코로나는 전염병의 성인이 아니다. 두 번째, 코로나라는 이름은 왕관이 보였다는 일종의 환영(幻影)에서 나왔다. 세 번째, 설사 그녀가 실존인물이라 하더라도 그녀의 유해는 이탈리아 안추에 있다고 봐야 한다. 결론은 성 코로나가 아마 만들어진 인물에 가깝다는 말이다. 물론 성인 코로나는 일종의 “성인”으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그녀는 전염병의 성인이 아니라 도박(?!)과 보물 사냥, 벌목꾼들의 성인이라고 한다. 전염병의 성인은 오히려 고대 영국의 성인, 에드먼드(Edmund the Martyr, 참조 5)이다. 다만 이 에드먼드는 정말 까마득한 옛날 인물이고, 전염병의 성인으로 오른 것은 17세기였다는 점을 보시라. 이 성 코로나도 시대 상황에 맞게 전염병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편, 이 성 코로나를 모시는 곳이 또 있다. 오스트리아 동부의 Kirchberg am Wechsel이다. 여기서는 퐁풍우와 흉작 그리고 두둥, 전염병을 막아주는 성인으로 그녀를 모시고 있다. 현재의 코로나 판데믹 이전부터 말이다. 그렇다면 코로나 성인에 대해, 독일 아헨보다 오스트리아의 키르히베르크 암 벡셀이 더 권위가 있다는 말일까? 오스트리아 성당 관계자에 따르면, 성 코로나의 유해는 이탈리아 안추와 독일 아헨에 나뉘어 있으며, 코로나의 유해를 신성로마제국 오토 3세가 직접 모셨다고 한다. 즉, 유해 자체는 아헨 쪽에 더 정통성이 있다는 말이며, 오스트리아의 이 성당은 17세기나 되어서야 세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인식은 이렇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름이 코로나이니 일단은 성 코로나에게 기도해 보자는 것이다. 실제로 성비오10세회 캐나다 지부는 성코로나에 대한 기도문을 버젓이 인터넷에 올려 놓았다(참조 6). 우리모두 코로나 성녀에게 기도해 보자. 누가 아는가, 그녀가 하느님과 통하는 코로나 프록시 서버를 갖고 있을지. p.s. 여담이지만 코로나의 유해가 있다는 독일 아헨이 코로나를 피해가지는 못 하고 있다. 4월 4일 현재 확진자 1,213명, 사망자 27명이다(참조 7). -------------- 참조 1. 사실 시리아 속주라면 당시 라틴어보다는 그리스어가 공용어에 가깝기 때문에, 정말 시리아 속주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가정 하에서 친구분 아내의 이름은 코로나가 아니라 스테파나(Στέφανα, 영/불어의 스테파니)였을 것이다. 다만 이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있던 장소로 시리아 속주만이 아니라 시칠리아, 마르세이유 였다는 추정이 있다. 시칠리아나 마르세이유였다면 이름이 역시 코로나였을 것이다. 2. Basilica Santuario dei Ss. Vittore e Corona: http://www.santivittoreecorona.it 3. 거룩한 도둑질(2019년 3월 6일): https://www.vingle.net/posts/2579736 4. 버밍햄 대학 캔디다 모스 교수의 트윗(2020년 3월 21일): https://twitter.com/candidamoss/status/1241035325339848704 5. 그의 유해를 훔쳐와 모셔온 도시(지금의 프랑스 뚤루즈)가 1628-1631년간 프랑스에서만 100만 명을 희생시켰다고 하는 제2차 페스트 범유행을 피해갔었다! 6. Coronavirus : Saint Corona, protect us!(2020년 3월 24일): https://sspx.ca/en/news-events/news/coronavirus-saint-corona-protect-us-56031 여담이지만 현재 성비오10세회는 천주교와 다시 일치될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교리 통합 외의 문제는 양측이 모두 마무리 상태라고 한다. ‘르페브르의 비오 10세 형제회원 재일치위원회’ 역할의 종료(2019년 1월 19일): https://www.vaticannews.va/ko/vatican-city/news/2019-01/editorial-ecclesia-dei-exceptional-nature-ends.html 7. http://www.aachen.de/DE/stadt_buerger/notfall_informationen/corona/aktuelles/index.html
어디에나 꽃은 있는 걸요 : 여행은 집 앞으로-
올해는 멀리 나가지 말아요. 현관문을 나와 걷는 10분여 간 만난 꽃들을 소개합니다 *_* 촌동네라 노바디 벗 매니플라워즈... 걷는 십여분 간 마주친 사람은 0명. 농사를 짓던 어르신들이 모두 들어가 식사를 하시는 점심시간의 산책이어서 더욱 그런 것이기도 하고. 어릴 땐 눈에 잘 들어오지 않던 꽃인데 언젠가부터 꽃만 눈에 들어오네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 자연의 경이로움을 알아 간다는 것... 이라고 말하고 나니 어릴 때도 꽃을 찾아 댕겼다는 사실이 번뜩 떠오릅니다. 손톱물 들이려고 봉숭아를, 줄기액으로 글씨 쓰려고 애기똥풀을, 꿀 빨아 먹으려고 사루비아나 아카시아를, 씨앗 후 불려고 민들레를,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려고 토끼풀을, 새콤한 맛이 좋아 자두풀(이라고 불렀는데 실제 이름은 며느리밑씻개라는 슬픈 이름이었다니...ㅠㅠ)을 찾아 댕겼던 어린 시절이...(아련) 그 땐 꽃이 관상용이 아니라 놀이용이었네요 참. 생각해 보면 꽃이 없는 동네가 없잖아요. 아파트 단지도 정말 잘 되어 있을 테고, 빌라촌도 구석 구석 화단이 얼마나 많은데. 아스팔트 틈새에도 들꽃들은 자라 나고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 더욱 소중해지는 봄 올해는 집 앞의 꽃들을 소중히 여기는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떨까요? 그럼 동네 산책길에 만난 꽃들을 몇장 더 첨부하며 마무리 할게요! 그리고... 현관문 안으로까지 들이친 봄🌸
해안선이 절경인 동양의 나폴리
해안선이 절경인 동양의 나폴리. 바람이 많이 불어서 갈매기조차 날기가 버거워보인다 바람과 투명한 바다, 거센파도가 가슴까지 시원하게 한다 풍경도 넘 아름답다 ~~ 장호리는 마을의 지형이 수컷 오리인 장오리를 닮았다고 해서 장오리로 불리다가 지금의 장호리로 바뀌었다. 장호항은 1971년에 국가어항으로 지정됐다 현재는 방파제 290m와 방사제196m를 비롯해 대규모 물양장과 호안을 갖추었다. 해안선이 절경인 동양의 나폴리초승달 모양의 용화해변과 유리처럼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 장호항전경 등이 한데 어우러진 풍광은 숨이 막히고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올 만큼 아름답고 웅장하다. 과연 한국의나폴리’라 불리울 만하다. 장호항 주변에 모래가 깔린 얕은 바다와 아름다운 갯바위가 많아서 게, 고둥잡이, 통발어업, 창경바리, 후릿그물 당기기, 스노클링, 스쿠버다이빙, 투명카누 타기 등 다양한 어촌체험활동이 가능해서 동해안최고의 어촌체험마을로 손꼽힌다. 게다가 데크전망대, 지압산책로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숙박업소와 음식점도 많아서 사계절 휴양지로도 안성맞춤이다. 주 어종오징어, 꽁치, 가자미, 문장호어촌체험마을 아름다운 항구와 기암절벽, 해안이 잘 어우러진 곳으로, 투명카누, 바다래프팅, 통발체험, 스노우클링 등 다양한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용화해변 백사장 한가운데로 용화천 냇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담수욕과 해수욕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삼척 #삼척가볼만한곳 #삼척장호항 #장호항 #한국의나폴리 #드라이브스루 #강원도래요 #강원seoyeon #강원도청 #강원도 #마카오서요 #강원도가볼만한곳 #여행 #국내여행 #여행지추천 #여행지 #여행에미치다 #여행사진 #여행자 #인생여행 #여행은언제나옳다 #안녕 #여행그램 #여행사진 #멋여행 #가슴떨리는여행 #힐링여행 #행복여행 #traveler #travelgram #travel
뉴튼의 조카, 캐서린 바튼
또 하나 추가해버린 주말 특집이다. 아이작 뉴튼(1643-1727)의 조카 캐서린 바튼(Catherine Barton, 1679-1739)이다. 이 캐서린 바튼은 뉴튼의 배다른 여동생(참조 1)이었던 해나 스미스가 낳은 딸이다. 다만 뉴튼의 지능을 물려받았는지(만유인력을 발견한 이유일지 모르겠지만, 뉴튼은 결혼을 안 했고 자식도 없었다) 아름답고 재치만점에 똑똑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너선 스위프트나 볼떼르의 칭찬을 많이 받았고, 뉴튼 자신도 캐서린을 좋아했었다. 그런데 조너선 스위프트나 볼떼르를 언급한 이유가 있다. 당시 볼테르가 영국에 망명 중이었기 때문이다. 볼테르가 원래 사사건건 로앙 공작(Guy Auguste de Rohan-Chabot)과 키배가 붙었었는데, 필명(볼테르) 때문에 또 한 번 싸움이 났었다. 볼테르는 그에게 결투를 청했고, 로앙 공작은 수하를 시켜 그를 흠씬 두둘겨 팬 다음, 바스티유에 밀어넣어버린다(아직 왕정 시절이다). 그래서 볼테르는 차라리 자신의 잉글랜드 망명을 청했고, 당국은 그의 청을 들어줬다. 그런 볼테르를 잉글랜드에서 거둬준 인물 중 하나가 조너선 스위프트였다. 혹시 볼테르의 소설, 미크로메가스(Micromégas, 참조 2)가 걸리버 여행기의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이들은 뉴튼의 조카와 자주 어울렸는데, 캐서린 바튼이 이들에게 얘기한 것이 바로 뉴튼과 사과나무 이야기였다고 한다. 이 얘기가 유명해진 계기는 1726-1729년 동안 체류했던 영국에 대한 볼테르의 책(Lettres philosophiques, 1734년 출간)의 15번째 서한 항목에 들어있어서였다. 1666년 캄브릿지 근처에 머무르던 뉴튼이 어느날 정원을 거닐다가 사과가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는 고민을 하더라는 내용이다. 사과가 왜 아래로만 떨어지는가? 흔히들 동화책에 나오는 것처럼 사과가 뉴튼 머리 위로 떨어진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 대한 기록은 캐서린 바튼의 남편인 존 콘뒷(John Conduitt, 1688-1737)도 거의 동일하게 적고 있다. 어라, 9년 연하의 남편? 존 콘뒷도 그녀에게 홀딱 반해서 뉴튼을 좇아 조폐국에 들어온 것이다. 결혼할 당시 그의 나이는 30세, 캐서린의 나이는 38세. 아마 그들은 행복한 부부로 지낸 것(딸도 하나 낳았다) 같은데… 캐서린이 좀 전력이 있는 분이시다. 결혼하기 전에는 할리팍스 백작(Earl of Halifax), 찰스 몬태규(Charles Montagu, 1661-1715)와 “자주 대화를 나누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 몬태규는 보통 인물이 아니다. 당시 영국에서 대장성장(First lord of the Treasury, 지금은 영국 총리가 맡고 있다)을 지낸 귀족 중의 귀족이었기 때문이다. 부인과 사별한 후, 1698년 캐서린 바튼이 그의 가정부가 됐었다. 몬태규가 1715년 사망했을 때, 그는 심지어 캐서린 바튼에게 막대한 유산을 상속시킨다. 몬태규도 역시 자식이 없었는데, 유언장에다가 “그녀와의 대화 안에서 가졌던 기쁨과 행복에 대한 작은 보상”이라 적었었다. 그래서 당시 여론은 역시 그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루머가 파다했다. 왕실 천문학자 존 폴램스티드(John Flamstee, 참조 3)는 “그들은 정말 훌륭한 대화를 나눴나 봅니다” 하고 빈정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뉴튼을 문학적 의미로 때린 사과나무의 행방은? 세 군데 정도(King's School, Grantham, Woolsthorpe Manor, Trinity College)가 서로 진짜 사과나무가 자기네 정원에 있다고 키배를 벌이고 있는 듯 하다. 짤방은 캐서린 바튼에 대한 책의 표지다. 실제 그녀의 모습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 참조 1. 뉴튼의 어머니가 새로 결혼해서(그래서그런지 뉴튼은 어머니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낳은 아이들 중 하나다. 그래서 성이 뉴튼이 아니라 바튼이다. 2. 볼테르가 1752년에 쓴 SF 소설이다. 출간된지 300년이 지났으니 스포일러 해도 되지 싶다. 시리우스 출신의 거대한 외계인 미크로메가스와 토성 출신의 한 서기관이 지구를 구경하려 했지만 자기들 몸집에 비해 혹성이 너무 작아서 구경을 포기하려던 찰나…! 고래를 발견하고, 학자 무리가 탄 배를 발견한다. 손으로 배를 집어 올리자 웬 곤충들이 모여있나 싶었지만 그 곤충들은 학자들 7명이었다. 미크로메가스는 그들과 철학적인 대화를 나눈다. (1) 대머리 물리학자 : 미크로메가스가 좋아했다! (2)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학자(고대 그리스어를 몰랐다는 것이 함정) (3) 데카르트를 따르는 학자 (4) 니콜라 말브랑슈를 따르는 학자 : 결국은 범신론자다. (5) 라이프니츠를 따르는 학자 : 영혼에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 (6) 로크를 따르는 학자 : 미크로메가스에 따르면 지혜를 갖춘 영혼을 거론하는 유일한 학자 (7) 소르본의 한 박사 :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인용하면서 하느님을 부르짖는다. 볼테르의 묘사에 따르면 “원생동물(…)” 미크로메가스가 보기에는 로크를 따르는 학자만이 그나마 제정신이었다. 그래서그런지 그는 모든 존재의 원인과 종말을 담은 지혜서를 하나 지구인들에게 남기기로 한다. 나중에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그 책을 펼쳐보니… 백지였다. 3. 런던탑의 까마귀(2020년 3월 7일): https://www.vingle.net/posts/2801362
스페인은 어째서 산업혁명에 뒤쳐졌을까?
금요일은 역시 역사지. 심심해서 써 보는 유럽사이다. 전형적인 역사 이야기가 아닌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이니 한 번 보시기 바란다. 발단은 넷플릭스의 드라마, “마드리드의 모던 걸(Las Chicas del Cable, 참조 1)”이다. 이 스페인 드라마의 배경은 1920년 초반, 스페인 최초의 전화통신 회사인데 연대를 잘 보시라. 미국에서 벨 전화회사가 생긴 연도가 1877년이고 이미 19세기 후반까지 영국, 프랑스에는 다 퍼졌었으며 1927년에는 심지어 대륙간 무선 전화(미국 버지니아와 프랑스 파리의 에펠 탑, 참조 2)까지 현실화됐었다. 유선은 이미 미국과 영국이 최초로 한 적 있었고 말이다. 스페인도 유럽 국가이니 당연히 근대 산업화로 나아가는 건 맞는데 왜 느렸을까? 물론 교과서에 답이 있긴 합니다. 식민지에서 들어온 막대한 금은보석(즉 금융자본의 융성)이 산업 육성(즉 산업자본의 발달)을 늦췄고, 그에 따라 열강에서 탈락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 정답이라서 시시하다. 더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는 없었을까? 크게 보면 19세기 당시, 첫 번째, 역사적 우연성(스페인 국내적 사정)이 있겠고, 두 번째, 사회적 우연성, 세 번째, 지리적 우연성(산업화 조건이 안 맞었다는 점)이 있겠다. 여러모로 역사는 조건도 조건이지만 우연이 많이 좌우하는 느낌적 느낌. --------- 19세기 스페인의 역사적 우연성, 정치적 혼란 때문에 못 했다. 19세기는 나폴레옹으로 시작된다. 나폴레옹이 스페인에 쳐들어와서 10여년 후 퇴출될 때, 스페인도 프랑스처럼 부르본(…) 왕조로 다시 왕정복고가 이뤄지는데 이때 프랑스는 스페인에게 새로운 프랑스식 헌법이라는 선물(?)을 안겨다줬었다. 이게 상당히 자유주의를 가미하고 있었지만, 새로 국왕이 된 페르디난드는 이 헌법을 무시한다. 그에 따라 19세기부터 이미 국왕을 위주로 한 보수파와, 다른 유럽(결국 프랑스를 의미한다)과 궤를 맞춰야 한다는 개혁파가 내전에 가깝게, 아니 내전을 시작한다. 보수파는 16세기 이후 존재한 적 없었던 보수적 스페인을 다시 세우려 했었고 예수회를 다시금 불러들였다. 이들 카를리스타(Carlista, 보수파)와 이사벨리노(Isabellino, 리버럴)의 싸움은 20세기 초 스페인 내전으로도 이어진다. 한 마디로, 19세기 내내 싸웠다. 식민지 사정도 스페인을 돕지 않았다. 나폴레옹에게 한 번 무너진 이후로 스페인 식민지들은 본국을 우습게 여겼고, 본국보다 더 순수한 스페인 혈통(멕시코)을 주장한다거나, 압제받는 남미인들을 위한(시몬 볼리바르 등) 혁명 등으로 대부분 독립해버린다. 이 또한 스페인에게 결코 유리한 상황이 못 됐다. --------- 19세기 스페인의 사회적 우연성, 사회구조가 산업화를 막았다. 스페인에서 그나마 산업화가 된 지역을 보면 북서쪽의 바스크와 북동쪽의 카탈루니아/발렌시아이다. 왜 하필 프랑스에 붙은 지역들만 발전했는지의 이유는 세 번째인 지역적 우연성하고도 겹치는데, 사회적인 이유로 얘기를 하자면 이들이 카스테야노(즉 마드리드)로부터 영향력이 약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카스티야의 정체성은 오로지 정치와 집권이었다. (유대인과 아랍인을 내쫓은 배경도 다 거기에 있었다.) 마드리드의 왕족 계층과 경화벌열(京華閥閱, 서울경기 지방의 양반들)은 농업 지대를 추구했으며, 이들의 정책도 결국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었다. 따라서 온갖 혁명과 데모, 혹은 노예(…)를 통해 산업화를 이룬 영국과 프랑스 등과 달리, 스페인에서는 일할 만한 노동자들이 배출되지 않은 것이다. 그 증거? 19세기-20세기 스페인 철도는 서유럽 국가들로 연결된 것이 아니었다. 모두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스페인 국내 통치를 위해 연결된 철도망이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지리적 이유로 연결된다. --------- 19세기 스페인의 지리적 우연성, 태어난 곳이 여기인 걸. 앞서 북서쪽 바스크와 북동쪽 카탈루니아/발렌시아가 공업지대라고 했다. 그게 이유가 있다. 프랑스와 인접해 있고 해양 운송이 가능하며(각각 빌바오와 바르셀로나), 짤방에 나오지만 그나마 철과 석탄 산지가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대부분 석탄 및 철광 산지와 연결된 지역, 그러니까 서유럽에서는 벨기에-프랑스-독일 접경지대가 산업화 지역임을 아실 수 있을 것이다. 동유럽에서는 실레지아, 그러니까 체코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지만 철도망이 자원을 실어나르는 망이 아니었다. 즉, 내부는 경제성이 낮았고, 바스크와 카탈루니아 역시 프랑스 등 서유럽이 그 대상이었다. 또한 투자 자본도 마드리드가 아닌, 다른 서유럽 국가들로부터 들어왔다. 스페인 내부적으로는 산업화를 위한 충분한 자본을 형성시키지 못했다. --------- 물론 유럽에 위치해 있고 프랑스 바로 밑에 있었으니 스페인도 20세기부터(바로 마드리드 모던 걸의 배경이다) 그럭저럭 산업화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를 만나면서 기회를 완전히 잃는다. 세계대전 후 마샬 플랜의 지원도 못 받았고 말이다. 같은 위도에 위치한 이탈리아랑 비교하면 더 그렇다. Spain is different!, 1960년 프랑코 시절 스페인의 관광홍보 슬로건(참조 3)이다. 여러모로 사실이다. -------------- 참조 1. 마드리드 모던 걸: https://www.netflix.com/title/80100929 2. Speech Crossed The Atlantic for the First Time 100 Years Ago This Week (2015년 10월 22일): https://time.com/4081211/transatlantic-speech-transmission-1915/ 3. «Spain is different!», el eslogan que cambió para siempre la imagen de España(2015년 3월 27일): https://www.abc.es/espana/20141221/abci-spain-diferent-201412181821.html 4. 짤방 출처: https://europeanlit.weebly.com/introduction.html
세계의 신기한 국경선들.jpg
미국 애리조나와 멕시코 사이의 국경 국경을 사이에 두고 미국인과 멕시코인이 배구경기를 하고있음.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선 의외로 왼쪽의 개발되지 않은쪽이 미국 멕시코는 미국과 가까운쪽이 여러모로 유리해서 개발이 되어있음 슬로바키아 - 오스트리아 - 헝가리국경 세 나라의 국경이 물리는 지점에 삼각형 테이블이 있음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 걍 걸어서 넘으면 됨..ㅋ 아이티 - 도미니카 공화국 국경 울창한 지역이 도미니카 나무다 뽑아가서 황폐한쪽이 아이티. 아르헨티나 - 브라질 - 파라과이 국경 자연에 의해 생겨난 국경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이과수 폭포에 의해 국경이 형성되기도 함 스페인 - 포르투갈 국경 포장된 도로쪽이 스페인 비포장 도로쪽이 포르투갈 그리고 스페인에서 출타고 포르투갈쪽으로 넘어갈수 있음ㅋ 폴란드 - 우크라이나 국경 양국의 화합을 상징하는 물고기 문양이 있음 미국 - 캐나다 국경 국경지대가 모두 숲이라서 국경선 따라서 나무 다 잘라버림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국경 인도-파키스탄 국경 남한 - 북한인줄 중국 - 마카오 국경 좌층통행하는 마카오와 우측통행하는 중국의 특성에 의해 만들어진 국경 스위스 - 프랑스 국경 이 호텔은 반은 스위스 반은 프랑스에 위치하고 있어 양국 모두의 법률을 적용받음 대한민국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국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