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haracat
3 years ago1,000+ Views
자칭 테러범인 남자가 떠나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카페의 문이 다시 열렸다. 덩치가 크고 배가 불룩한 남자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곧장 이 곳으로 다가왔고, 메고있던 백팩을 의자에 벗어 놓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물티슈로 닦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셔츠는 땀으로 젖어 있었다. 불룩하게 축 처진 배와 두툼한 종아리는 옆에서 보는 사람마저 답답하게 만들었다. 어느정도 땀을 추스렸는지 남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덥네요. 여긴 에어컨 안 틀어 주나?" "글쎄요." "이거 마셔도 되나요?" 테러범이 놓고 간 커피다.

"뭐, 그러시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자는 뚜껑을 열어 얼음과 함께 음료를 들이켰다.
"캬. 이제 좀 살겠네. 제가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은 아닌데......"

"밖이 많이 덥나 보네요?"

"네. 늦더위가 무섭다더니... 아, 이건 커피값 대신입니다."
그가 꺼낸 것은 두 장의 콘서트 티켓이었다. "진아영?"


"네. 아시죠? 제가 팬이거든요. 그래서 티켓을 5장이나 샀지 뭡니까."
음악에 관심은 없었지만 최근 TV에 자주 나오는 가수라 얼굴정도는 알고 있었다.
"콘서트 티켓이면 비싼걸로 아는데요. 이런걸 받아도 될련지......"
"괜찮습니다. 팬으로서 콘서트를 알리는 것은 당연한거죠. 여자친구와 보러 가세요. 내일 6시입니다."


그 후로 남자는 신인 여가수의 자잘한 프로필부터 시작해서 그녀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고 진정성이 있는지 일장연설을 토해냈다. 비싼 콘서트 티켓을 받은 이유도 있어서 나는 '네, 그렇군요, 아아 그런가요?' 등등의 적절한 대꾸를 해주었다. 하지만 머릿 속으로는 007가방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 보았다. 그러다 문득 남자의 의미심장한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한번씩 이런 생각을 합니다. 콘서트 도중에 폭탄이 터져 무너지는 셋트장에서 제가 아영씨를 구해내는 거죠. 그리고 그녀는 저와 사랑에 빠져....." 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폭탄이란 단어만이 귀를 사로잡았다. 나는 잠깐 고민을 한 뒤, 조심스레 007 가방을 테이블에 올렸다. "뭔가요, 이건?" "그쪽이 원하는 겁니다." "원하는 거요?" "네. 폭탄." 남자는 어이가 없는지 실소를 터뜨렸다. 그제야 나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그게, 그러니까 저도 건네 받은거라......" 나는 변명처럼 테러범의 이야기를 남자에게 해주었다. 아무도 믿지 않을 바보같은 이야기를 남자는 신중하게 들었고,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 테이블은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이야기를 들어준 남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거짓말이었다고 말을 해야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먼저 생각을 마친 사람은 그였다.
"내일까지 생각해보죠." 남자의 마지막 말은 몹시 진지하고 결의에 찬 모습이라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남은 커피를 마저 들이킨 그는 얼음을 와그작 와그작 씹으며 테이블을 떠났다. 남자가 중앙 테이블을 가로질로 카페를 나가자 여자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남자의 험담을 시작했지만 새차게 뛰는 심장때문에 여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바보같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머리를 부여잡은 채 심장을 진정시켰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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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감사합니다.^^
직접 쓰신 글인가요? 너무 잘 쓰시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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