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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좋은시-빙어 해장/손택수

빙어 해장
손택수
산적 같은 내 사촌의 배는 불룩한 어항이 되었다
만취한 그가 산 빙어들
대접째 훌훌 들어마셔버린 것이다 나는 감히
따라 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멀거니 바라나 볼 뿐인데
동학군들 빨치산 노령병단들 숨어찾아들던 추월산
물과 함께 목구멍을 미끈덩 통과한 빙어가
내장 속으로 파다닥 빨려 들어갈 때
살얼음 밀치는 물결 같은 것이 일렁이는지
진저리를 치며, 어이
뱃속에 물고기가 노는 게 느껴지는구먼
이놈들이 장 청소를 하나 보네
사촌은 이게 이래봬도 역사가 있는 해장법이라
임진란 대 억울하게 죽은 덕령장군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온 거라 너스레를 떠는데,
집도 절도 없이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고향
불우하디불우한 사내들의 뱃속 술독을 다스리기 위해
식도를 뚫고 위장까지 곧장 물길 트는 빙어
담양호를 통째로 다 마셔버리기라도 할 듯이
꿀꺽꿀꺽 두 눈 가득 얼얼한 물빛 담는다
* 손택수
전남 담양 출생.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전차』. <부산작가상>, <현대시동인상>, <신동엽창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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