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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외도 후 상처로 어머니라는 존재를 지울려 합니다..

어머니께서 여러차례 외도를 작년 10월부터 해오셨어요. 이번엔 일이 커져서 아버지께서 바로 잡고자 하셨고 어머니는 다시는 그러지 않는 대신 그 남자와 통화내용이 담긴 녹음과 메세지를 지워달라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저희 어머니를 믿고 용서해준다며 다 지우셨습니다. 그러던중 어제 어머니와 동생과 아침을 먹던중 고2인 남동생 폰에 모르는 번호로 '넹'이 왔다길래 보니 어머니가 밖에서 만난 남자 번호더라구요. 너무 놀라기도했지만 어머니의 태도가 '아빠한테 절대 말하지말라고. 아무 일도 아니고 모두 정리됐다고.' 그것도 정말 여러번 이상하리만큼 말씀하셨어요. 동생도 저도 모든 걸 알고있는 상황에서 아니 어쩌면 동생이 녹음어플도 깔고 먼저 저에게 말했기에 저보다 어머니의 외도에 대해서 더 잘알고 있는데.. 몇 번의 외도에  실망스럽고 힘들어도 어머니를 이해하고자 안아주고 대화 시도하고 참 많이 노력했는데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또 그 남자와 연락하며 아빠를 속인다는 게 너무 화가나서 '또 바람피는거야?'라는 말을 동생 있는 곳에서 했어요. 엄만 제게 몇 분 후 오셔서 '호랑이새끼를 키웠다며' 평소에 감정기복도 심하고 자기중심적이셨던 엄마는 제게 폭언을 하셨구요. 그러다 오늘 아침에 아무도 없을 땐 제게 와서 '22년 키워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라며 앞으로 니 미래는 니가 알아서 해나가라고. 니가 어제 동생 앞에서 한 말 잘못했냐고 안 했냐고.' 늘 지고지순했기에 갑작스럽게 그랬던 저때문에 화가 많이 나기도했지만 그 속에서 서운함도 조금 느껴졌어요. 아빠는 이런 상황을 모르고 계시는데 그 남자한테 연락와서 말 한마디 했다가 엄마한테 계속 욕먹고있다고 나한테 이제 엄마란 존재는 없다고 말해도 될까요? 20년 넘게 동생과 저 키우시느라 힘드셨던 거 제가 전부 헤아릴 순 없지만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 인생에 어머니의 존재를 지울려 합니다. 늘 다정하시고 착한 아버지가 불쌍해요.  혹시 저와같은 경험이 있으신 분 계실까요? 저희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처럼 자식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 분도 아니고 정말 감정적인 분이십니다.  3일 뒤면 개강 앞두고 집에서 6시간 거리인 먼 곳에서 자취 하는데, 저 잘지낼 수 있을까요? 여기서 벗어나면 괜찮아질까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카테고리와 맞지 않다는 걸 알기에 죄송합니다.. 글을 오래 두지 않고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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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좀그렇지만 본인의연애도아닌데 속사정까지다안다고생각하시나요? 어머니행동이잘하신건아니지만 아버님께 말을옮기는건 제3자입장에서 할 일은 아니라고봅니다 본인이 믿고싶은부분만 믿지마세요 사랑을해도이별을해도 부모님께서 스스로느끼시기에 최선의 선택을 하실겁니다 저희엄마도 그러셔서 저도 충격적인적이있었습니다만 늘 폭언하시는아버지 외식한번 나가는 일없고 대화없이 돈으로만 사랑하시는 저희아버지. 나이가 좀 차고나니 부부간에 관계도 안하신다는거 알겠던데 .. 그래서 전 엄마탓안했어요 그런데 저보다 더 어린 제동생이 어느순간부터 엄마의 외도를 무기삼아 모든 말을 칼처럼하던군요 엄마의약점으로 여기고 함부로하고.. 그래도 저희 엄마는 혼자슬퍼하셨지 가정을 깨려고하거나 자식들에게 부족하게 대해주신적 없으세요. 제 엄만데 제동생의 이런점은 옳은일이라 보시나요? 상처를 받아도 본인보다 당사자들이 더 클겁니다 본인인생을사세요 배운점 느낀점 많으셨을텐데 본인의 사랑은 더 행복하길 빕니다
상처와 충격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겪었던 일이니까요. 그치만 조금만 마음을 추스리고 이성을 차린 후에 좋은 쪽으로 어머니아버지를 유도해보세요. 세상에 사연 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다들 노력을 통해 화목하게들 지내는거죠. 글쓴이분 힘내시고, 어머니께 나머지 가족들에게 상처주는 일을 더이상 하지말라고 간곡히 부탁하고, 엄마를 너무 사랑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 있으면 엄마를 더이상 존경하기가 힘이 들것같다고 입장을 단호히 얘기하세요. 그리고 아버지께는 엄마가 저러시는 이유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시라고 하시구요.
부모님은 부모님이고, 부모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자식입니다. 한번의 용서와 꾸준한 노력이 정말 큰 행복을 가져다줄수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은 그렇게 갈등하고 싸우던 시절조차 사무치게 그립네요. 그때는 세상 누구보다 미웠지만 지금은 너무도 사랑하고 애타도록 그리운 분입니다.
어머니의 존재를 지우신다 하셨는데 실제 지워지진 않겠죠? 단지 지우고 싶을 뿐이지 않나요? 부부사이에 외도가 정말로 부모자식간에 관계도 끊어야 할 정도로 나쁜건가요? 자식이 바람을 피면 부모도 관계를 끊자고 나오던가요? 부모의 죄는 그리도 크고 자식의 죄는 크지 않던가요? 조금 더 생각해보면 나(자식입장)에겐 관대하지만 남(부모입장)에겐 엄격한 룰을 적용하는건 아닌가요? 수십년 전 저희 아버님이 외도를 많이 하셔서 당시에는 힘들고 화도 많이 났었고 어머님이 너무 불쌍해서 반항도 많이 하고 했었지만..... 세월이 흘러흘러 나(자식입장)가 부모가 되고보니 당시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하네요. 물론 죄가 나쁘고 완벽하지 못하신 어머님이실지 모르지만 어머님의 상황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이유를 찿아보세요. 그리고 아버님의 상황도요. 그리고요 힘네세요. 님의 상황을 이해합니다.
어머니으 존재는 지우려 해도 지울수 없을 듯 합니다. 그건 나 자신을 지우는것과 같지 않을까요? 자식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다른분들의 말은 이해하고 맞다고 봅니다. 하지만 조금 놀란건 사실이네요~ 어머니의 존재를 우리는 여자로 먼저 봐야 할까요? 어머니라는 존재를 위대하게 보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식의 도리가 있다면 어머니로서의 도리도 있는 겁니다. 외도? 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이 외도후 하신 행동이 제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부부 사이의 문제로 해결 해야 하는건 맞지만 자식들이 이해하지 못할 나이가 아니라면 가족끼리 모여서 충분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잘잘 못을 따지 자는것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상황이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더이상의 상처는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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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는 주택보조금을 산정, 집행하는 기관으로 인터넷으로 가입, 신청을 한 후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우편을 통하거나 직접 제출을 하면 검토 후 각자에 맞는 보조금을 산정해준다. 아날로그의 나라 프랑스도 많은 변화가 있어 CAF도 모든 서류를 스캔한 뒤 온라인상으로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기에 가장 빠르게 처리된다는 직접 제출을 하러 간 것이다. 파리가 아닌 외곽 지역은 위험한 곳도 많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어제의 기억까지 더불어 떠올리며 긴장을 했다. CAF 아정스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 후 조금 걸으면 되는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외곽지역을 둘러가는 동안 보는 풍경은 파리의 중심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공항을 오가는 도로에서처럼 거리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아파트 단지도 높은 굴뚝이 있는 발전소나 공장 같아 보이는 곳도 자주 눈에 띄었다. 넓어진 센느강의 모습도 고풍스러운 건물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파리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여느 곳에 흐르는 고요한 강 그 따름이었다. 강변은 온통 풀밭이었고 강 위에는 큰 새들이 앉아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낯선 거리의 모습에 경계와 신기함이 반쯤 섞인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며 CAF 아정스에 도착을 하자 먼저 건물 입구에 긴 줄을 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파리의 주거비용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벅찬 짐이 되는지 아침부터 먼 곳까지 와 긴 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순서를 기다려 아정스의 직원에게 검토를 받고 제출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지만 건물 밖에 장치해둔 CAF전용 우체통에 집어넣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글도 많아서 우리는 긴 줄에 두 명을 더 보태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가기로 했다.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는 모습이 보여 우리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류가 잘 검토되길 바라며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아정스를 들렸다가 나온 한 흑인 아저씨가 우리를 응원을 해줬다. 그리고 홀로 줄을 서고 있던 한 한국 청년이 그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이신가요? 서류 그냥 여기에 넣고 가면 되는 거예요?” 서류를 봉투에다 넣어서 밀봉을 한 후 우체통에 넣어야 하는데 그 청년은 그런 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정스 안에 가면 봉투를 준다는 글을 본 것 같아 청년에게 알려주었다. 청년은 고맙다며 아정스 안으로 가고 우리는 남은 오후를 소중히 보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먼저 파리의 동쪽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들려보기로 했다. 내가 무척 가보고 싶어 하던 곳이었는데 영화의 성지에는 역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프랑스어가 조금 더 들릴 때까지 미뤄둬야지 했었다. 다만 오늘은 파리의 동쪽으로 나온 김에 인상적이라는 건물의 모습도 봐볼 겸, 영화 박물관이라도 봐보고 갈까 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있는 Bercy역으로 갔다.  역에서 나와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를 조금 걸으니 사진에서 봐왔던 역시나 다양한 곡선들이 인상적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눈에 보였다. 이곳은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원래는 미국 문화원이었던 곳이다. 2005년, 에펠탑을 마주 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샤이요 궁 안에 있던 옛 시네마테크를 옭겨오기 위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영화 몽상가들에 등장하던 68 혁명의 주무대였던 프랑스 영화의 최전성기를 지탱하던 ‘그 시네마테크’ 는 이 건물이 아니지만 시네마테크는 위치나 외형보다는 내용이 더 핵심이기에 Cinematheque Fracaise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들떴다. 시네마테크 앞에는 조용하고 예쁜 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회전목마가 있어 이질적인 건물과 함께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거 같아 예고편처럼 사진 몇 장만 찍고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Bercy는 계획도시처럼 긴 공원을 따라 길고 낮은 아파트가 쭉 이어진 곳이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Bercy village라는 예쁜 쇼핑몰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세계 최대의 와인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유지한 채 내부만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의 쇼핑몰로 꾸민 곳이다. 당시 와인을 운송하던 기찻길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파리가 아닌 지방 소도시의 번화가를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테라스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기에는 좋은 곳 같았다. 햇볕은 좋았지만 날씨는 꽤 차가웠는데 테라스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남은 낮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엠마가 마침 지하철을 타면 한번 만에 가는 곳에 Châtelet역이 있다며 Sainte Chapelle에 가보자고 했다. 처음 어학교재를 사러 시떼섬에 갔을 땐 긴장된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다. “Oui.” Sainte Chapelle은 고등법원 건물과 붙어 있어 파리의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보안 검사를 하고 있었다. 흡사 공항에서와 같이 짐 엑스레이 감사와 금속탐지 검사도 거친 후 부속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자 센느 강 어느 다리에서도 보이던 날카로운 첨탑이 가고일 꼬리를 꽉 쥔 채 우뚝 서 있었다. 검은 괴수들이 사방으로 울부짖고 있는 검은 첨탑 너머의 하늘은 티 없이 파랬다. 그래 신은 이곳에는 없는 거지. Sainte Chapelle은 성루이라고 불리는 루이 9세가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금전적 지원의 형식으로 사들인 예수의 가시 면류관과 후일 모은 예수의 못 박힌 십자가 조각 등의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왕실 전용 예배당이자 보물창고이다. 티켓을 끊고 듣어간 곳은 성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높이에 기둥이 유난히 많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단출한 홀이었다. 심지어 그곳 안에 기념품을 파는 곳과 안내 전단을 배포하는 곳까지 같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이곳이 사람들이 그렇게나 찾을 만한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궁중 관리들과 성당을 관리하는 이들을 위한 예배공간이고 왕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준비된 곳은 이 낮은 홀이 위층 공간이었다. 이곳이 보통의 성당들 보다 낮은 이유도 기둥이 많은 이유도 위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파리에 온 후 수없이 오른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위쪽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아래층의 모습에 실망해서인지 별다른 기대는 가지지 않고 허벅지를 손으로 도우며 계단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을 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뱉고 말았다. “와아.” 그곳은 그 안 든 것이 어떠한 모습의 어떤 마음의 사람이든 그 안에 든 것이 어떤 피비린내가 나는 프로필을 지닌 물건이든 아이들의 보석함의 고증 없는 ‘보석’ 들처럼, 모두를 모든 것을 그저 순수히 빛나게만 만들어버리는 섬뜩한 마법의 공간이었다. 15미터의 거대한 스테인글라스가 최소한의 테두리만 두른 채 공간 안으로 피할 수 없는 색깔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고개를 들고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것들, 가령 하늘이나 별 같은 것들. 내가 한다던 비워내고 납득하는 그런 아름다움 말고 집요하게 강요하는 채우고 또 채워서 지나침을 훨씬 더 지나쳐 내가 모르는 곳으로 그곳으로 넘어가 버린 아름다움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예술이 미리 지고서 핑계만 오래 고민하고 있던 건 아닌지 조금 씁쓸했다. 이 곳은 온통 빼곡하다. 빈 손으로 꾸밈도 없이 걷기 위해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얘기를 해 왔는데 벌칙처럼 온통 내가 못하는 그저 아이처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할 것이 가득한 이 곳으로 불쑥 와버렸다. 우습다. 사람은 그렇게 멋대로 걸어간다. 자기 물건이 가장 지겨워서, 자신과 다른 이의 품으로 기꺼이 간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낯설어진 나를 나는 또 가까스로 소개를 해야 하겠지. 내가 마치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돈도 잘 내고 길도 잘 찾고 하지만 내일에 해야 말만은 여전히 모른다. Oui ou Non 으로 대답하는 내 시꺼먼 마음에 뭐가 걸쭉하게 녹아 있는지 꺼내지 못해서 모르겠다. 가끔은 주말에 무엇을 또 보러 가기가 조금 겁날 때가 있다. 보고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해서 보여주고 싶어 그런 거겠지. 안다. 그 마음.  좋은 것을 보고 나면 우린 더 많이 지쳐 파리 지하철의 악명도 다 잊고서 머리를 붙여가며 졸기까지 한다. 안다. 당신의 그 마음도. 글, 영상 레오 촬영 레오, 엠마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