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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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것을 의심하다

최근 논란이 된 드레스 사진이다. 드레스의 색이 파랑/검정이냐, 흰색/금색이냐로 논란이 일었고, 파검파(파랑/검정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무리)와 화골파(화이트,골드로 보이는 사람들)는 상대가 보는 색에 대해 '어떻게 그 색깔로 보이죠?!'라며 신기해했다.
나는 아무런 의심없이, 흰색/금색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사실은, 파랑/검정이었다. 빛과 사진의 과한 보정으로 흰색/금색으로 보일 수 있고, 인간 눈의 원추세포 등의 시세포가 색(빛)을 얼마나 민감하게 받아 들이는지와 주변 빛 환경에 따라 색을 다르게 인지할 수 있다는 의학적 견해와 함께 결론이 났다.
나는 어찌해도 흰색/금색으로 보여, 내 눈은 색에 민감치 못한가 했다. 그런데, 같은 사진, 같은 기기에서 본 저 옷이, 어둠 속에서 휴대폰에 띄워 볼때는 사진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파랑/검정 빛깔의 옷으로 보였다. 이럴수가! 내 눈은 이미 믿을 수 없게 되었지만, 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한번 흰색/금색(빛때문에 푸르스름하게 보이는 흰 천)이라 인식하니 전환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주변 빛의 영향으로 파란색과 검정색이 보이니 마술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이 곧 적응하니 다시 흰색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지금 어두운 곳에 가서 본다고 파랑이 되진 않는다. 내 의도가 이미 흰색/금색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파랑/검정은, 페이지를 열면서 이 이미지를 보겠다는 의도없이 우연히 눈에 들어왔을 때에만 보였다. 거참 신기하기도 하다.
사람마다 물리적 이유 뿐 아니라 마음과 의도에 의해서도 물리적으로 보는 것도 달라질 수 있다는걸 체감하니, 개인의 입장에서는 주관적인 세상만이 존재할 뿐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뻔하고 흔한 이야기지만, 피부로 체감하면 와닿을 때가 있는 법이다.

주관적인 세상에 절대적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눈에 담아내는 세상의 상象이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 이게 극명하게 다가왔다. 단순히 인식의 주관성이나 상대성을 이야기하는 차원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절대적인 현실이라 여기며 아무 의심없이 바라보던 대상들이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른 '실재'로 존재하겠구나 싶었다. 같은 하나의 사과가 나에겐 빨간 사과고, 상대에겐 파란 사과일 수 있다는 비유가, 현실에서 저 옷으로 인해 증명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사과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똑같이 연두 풋사과라고 인지하더라도, 누구는 풋풋한 맛이 좋다고 하고, 누구는 덜 익은 것이라 싫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생각의 시작점은 유사하다. 그리고 '취향 차이, 견해 차이'라고 타협하여 나와 상대의 차이를 인정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누구에게는 빨갛게, 누구에게는 녹빛으로 보인다면 시작부터가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질 것이다. 탐스럽게 잘 익었다며 감탄하는 빨간 사과를 보고 있는 사람의 말을, 연두 사과를 보는 사람은 의아하게 여긴다. 두 사람과 하나의 사과가 있지만, 그들의 세계에는 두 사람과 두 개의 사과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자신이 보고 있는 사과의 색이 정말인가 아닌가 같은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이런 '다르게 보이는 실재하는 것'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다르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개개인은 정말로 다른 세계에서 각자 살아가고 있는데, 이 안에서 서로 이해를 하네 못하네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일까. 주관적인 세상에, '진짜 이해'라는게 존재할 수 있긴 한가?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와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논쟁은,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라는 마음을 바탕에 깔고 시작된다. 색상도 사람마다 이렇게 달리 보일진대, 온갖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명제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그럼에도 서로 이해를 못한다며 싸우고, 왜 나같이 생각하지 않냐며 비난한다.
모두 자기만의 세상이 있고 이것은 철저히 주관적이며,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려면 그의 시선을 쓰는 수 밖에 없다. 빙의 수준으로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공감하네 이해하네 하는 말은 얼마나 오만한가. 나는 너일 수 없고 너 역시 나일 수 없으니 서로 이해불가다. 단지 최대한 비슷한 상황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의 내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유사체험 속에서 '공감과 이해'가 일어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해해 달라는 것을 넘어서서, 왜 나와 같지 않냐며 싸워대고 서운해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 '어떻게 나와 똑같이 느끼지 않을 수가 있어?'
'당신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네요.' = '당신은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네요'
저 말들은, '어떻게 넌 내가 아닐 수 있어?', '당신은 내가 아니군요'와 같은 뜻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연히 넌 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내 맘같지 않은 상대'로 인해 가족을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이게 다 누굴 위해 하는 말인데-라며 자식에게 요구를 하는 부모는 자기 맘을 몰라준다며 억울해하지만, 부모가 들이민 밧줄은 자식에겐 징그러운 뱀일 수 있다. 너를 사랑해서 그런거야-라며 애인에게 손을 내밀지만, 그가 내민 연필은 그녀에게 송곳일 수도 있다.
왜 너한테는 뱀이니? 송곳이니? 넌 잘못되었어! 라고 하고 있는게, 모든 인간관계 문제의 본질적 비유가 아닐까 싶다. 그들의 세계 안에서는, 각자가 다루는 문제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같은 것을 보고 있지 않으니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빨간 사과를 보고 아무리 덜 익었다고 말한들 이해될 리가 없지 않은가. 빨간색을 분석하고, 뜯어내고, 맛을 보면서 복잡한 연구를 한들, 그게 연두색 풋사과가 될 수는 없는게다.
세상 속에서 개인이 인식하는 것은 철저하게 주관적이다. 이런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일치하는 이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느꼈을 감정과 그가 보는 관점을 잘 상상해서 '내 경우라면'하고 대입해보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상대와 내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좌절할 이유가 있을까? 그의 반응은 그의 관점에서 시작되어 나온 사고와 행동의 결과물일 뿐인데, 그게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아쉬워 할 수는 있더라도, '왜 너는 내가 아닌거야?!'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드레스의 색은, 신기하고 재밌는 이슈이긴 했는데 내 성향이 이런 탓에 이게 먼저 떠올랐다. 파란 드레스가 시세포의 작동 방식에 따라 흰색으로 보였듯이, 드레스의 색 논쟁이 생각세포의 작동 방식에 따라 '실재의 부재'를 떠올릴 소재로 다가온 모양이다. 이 또한 내 주관적인 세상을 보는 관점이겠구나 싶어 피식 웃어본다.
덧. 이제 흰색/금색으로도, 파랑/검정(짙은갈색)으로도 보인다. 노란 기운을 먼저 보느냐, 푸른 기운을 먼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듯 하다^^
감각 이전에 인식이 작용하여, <빛을 받아 색이 바래보이는 옷>으로 여기면 파란색으로, <빛이 가려져 색이 어두워 보이는 옷>으로 여기면 흰색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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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를 가지고 논문까지 나오네요ㅋㅋ
전 사실 이 드레스를 보고 처음에는 흰색+골드로 보였지만 나중에는 같은 사진을 보고도 파란색+검정색으로도 보였기 때문에 내가 분명히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아닐 수도 있고, 절대적인 옳음이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ravenda 떠올린 것이 조금 다르지만 같은 맥락의 이해를 갖고 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공감받은 기분이 드네요. ^^ 고맙습니다. @baaaaaaaaaam 저도 아주 진한 블랙이라기 보단 카키나 갈색에 가까운 바랜 블랙으로 보여요. ^^ @ghfla8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으니 모두 맞네요. ㅎㅎ @1054678 의식하지 않고 써서, 파랗다를 블루가 아닌 그린의 의미로 썼어요! 너른 연둣빛 들판을 푸른들판이라 하는데 푸른색이 블루와 그린 모두에 쓰이듯이요. 푸른사과 라고 해야겠네요. 단어도 이렇게 차이가 나네요^^ 덕분에 알았어요. @twyoon :-)
Anonym
같은 걸 보고도 다르게 보이기도하고 다르게 생각할수도 있고, 좀 더 다른사람을 이해해야겠네용.
그냥 저 드레스 별로인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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