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단은 이탈리아 해군의 군 모집 포스터였다(참조 1). 누구나 봐도 알 수 있…을까? 다른 거 다 좋은데 하필 포스터에 영어’만’ 쓰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cool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나라 모병 포스터에 저리 쓰여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번에는 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 엑스포 홍보 웹사이트(공식)를 보자(참조 2). Very Bello라 쓰여 있다. 우리야 땡큐 베리 감사라고 농담조로 얘기하지만 공식적인 슬로건으로 저런 표현을 감히 쓸 수 있을까?
이제 기사 내용이다. 2011년 밀라노의 폴리테크니코(학생 수가 4만여 명)는 세계화(!)를 위해 석박사 과정의 수업을 2014년부터 모두 영어로 바꾼다고 선언했다. 이 폴리테크니코 디 밀라노(Politecnico di Milano)는 1863년(!!)에 세워진 이탈리아 최대의 기술대학인데, 당연하겠지만 공립학교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으니 잘 보시라.
대학교 교수들이 대학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게다가 이 교수들이 근거로 든 법이 굉장했다. 무려 1933년 베니토 무솔리니 시절에 있었던 칙령(참조 3)이었다. 이 칙령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La lingua italiana è la lingua ufficiale dell’insegnamento e degli esami in tutti gli stabilimenti universitari.
(이탈리아어는 모든 대학 내에서 교육 및 평가의 공식 언어이다.)
그리고 판결은 놀랍게도 교수들이 승(무솔리니에게 영광을)! 하지만 대학측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항소했다. 그래서 지금은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까지 소가 올라가 있다. 영어 수업을 막는 행위가 이탈리아 헌법에 위반하지 않느냐였다.
헌법? 헌법은 어떻게 돼 있길래? 제33조를 보자.
L’arte e la scienza sono libere e libero ne è l’insegnamento.
(예술 및 과학은 자유로우며, 자유로이 가르친다. - 직역해서 좀 이상하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보면 공화국이 학문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이다.)
즉, 헌법으로 해석하면 대학측이 석박사 학위 과정 수업을 영어로 해도 괜찮지 않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자유로우니까 말이다. (여담인데, 사립 학교 설립은 자유이지만, 국가에게 운영비를 의존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동 헌법 조항에 있다. Enti e privati hanno il diritto di istituire scuole ed istituti di educazione, senza oneri per lo Stato.)
소의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점은, 외국어로 가르치는 것이 같은 문화권(?)과 비슷한 뿌리를 가진 언어권(?) 교수에게도 어려우며, 내용 전달이 역시 쉽지 않다는 단점과 함께 앞으로 전세계를 상대로 해야 할 학생들이 “실질적인 공용어”를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는 장점이 같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위의 폴리테크니코같은 공대면 그런 실력이 더 필요하다. (다른 학문도 다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끝으로, 언제나 유쾌한 이탈리아인들이 렌치 총리 영어 실력을 비웃는 영상을 보도록 하자(참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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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2. 밀라노 엑스포 웹사이트: http://verybello.it/?lang=it
3. Regio Decreto 31 agosto 1933, n.1592, 정확히는 제271조 : http://www.iuav.it/Didattica1/master/regio-decreto-31-agosto-1933--n.-1592.pdf
5. VIDEO: Renzi jokes about his English skills: http://www.thelocal.it/20150227/video-renzi-jokes-about-his-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