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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해지는 시간, Herb Alpert

Herb Alpert - This Guy's In Love With You|
주말 내내 다섯 편의 영화를 몰아서 봤다. 그중 가장 좋았던 영화는 <세상의 끝까지 21일>. 올해 마지막 영화로 보기에 제격인 영화였다. 영화는 소행성의 충돌로 지구가 멸망하기 전 21일을 배경으로 한 로드 무비다. '오늘 밤이 이 세상의 마지막 밤이라면, 당신은 어떤 시간을 보내겠는가?' 이 영화의 메시지와 지난 번에 받은 질문과 몹시 흡사해서 조금 놀랐다.

당신의 사랑이 필요하고 당신의 사랑을 원해요. 사랑한다고, 내가 당신의 남자라고 말해줘요. 그렇지 않으면 난 죽을지도 몰라요.
가사는 몹시 크리셰적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이런 노래를 사랑해.
사랑이 꼭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잖아.
오늘이 나의 마지막 밤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보고 누워 서로의 치부를 들려주며 밤새 이야기 나누다 조용히 잠들고 싶다. 그것이야 말로 서로를 구한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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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중국 노래가 이렇게 좋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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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어떤 사람(에세이 쓰기 4 편)
내가 아는 어떤 사람 이 주제를 보자마자 떠오른 한 인물 엄마! 나의 그녀 남연우 여사님! 그녀는 1947년 여름 양수리 작은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얼굴도 모르는 꼬마신랑에게 시집온 까막눈의 김 말순 외할머니의 첫딸로... 어린 부부사이에 태어난 그녀는 걷고 뛰기 시작할때에 6.25전쟁 피난을 가야만했고 외할아버지는 전쟁에 착출되었다. 그래도 아무 사고 없이 할아버지는 귀향하셨고 그렇게 세 식구는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아둥바둥 사셨다 그녀는 국민학생때 남달리 영특했다고 한다. 매일 십리길이 넘는 길을 그 작고 여린 몸으로 여름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겨울엔 살을 애일듯한 추위속에 손을 불어가며 발을 동동 굴러가며 그렇게 배움의 즐거움을 사랑했다 한다 그렇게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가야하지만..... 그녀 밑으로 동생들이 줄줄이 있었기에.. 살림밑천이던 맏딸은 담임선생님이 할머니를 찾아와 "어머니 제발 이아이 중학교 보내주세요 학업을 중단하기엔 너무 똑똑한 학생입니다 첫 등록금 제가 댈게요 제발 중학교 보내주세요..." 라는 그 눈물어린 호소에도 단호히 거절하고 이아이는 일도와야 한다 했던 나의 그녀... 그당시 얼마나 죽숨여 울었을까? 작고 여린 13살의 그녀는 얼마나 서러웠을까? 동생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가는걸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을까? 그렇게 그녀는 십대시절 동생들을 보살피는 엄마와도 같은 시절을 보냈고 23젊디 젊고 꽃다운 나이에 지금 나의 아버지와 선을 보았고 한달만에 팔려가듯 시집을 왔다... 그리고는 생활고와 시집살이에 시달리며 죽어라 일만했다... 젊은시절 꽃그림카드 놀이를 사랑하셨던 아버지 덕에 그렇게 힘들여 장만한 집도 날려드시고... 지금은 엄청 고린자비가 된 아버지가 집을 날려먹은것도 놀랍지만... 그 날린 집을 몇년 후 고대로 다시 찾아오신 나의 그녀가 난 너무너무 대단했다... 그렇게 되찾아온 집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늦둥이인 내가 태어나게 되었다. 내가 늦둥이 막내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나에겐 모든것이 관대했고 그덕에 이런저런 야기를 나누는 친구처럼 지냈다. 그녀와의 특별한 일화를 말하자면 끝이 없겠으나 나의 지금까지의 일생 중 10년대를 주기로 하나씩만 풀어보고자 한다 고등학교시절 잠시 삐딱선을 탈때도 그녀는 내게 관대했다. "엄마 나 오늘 나이트 갔다올게, 물 좋으면 나 안들어온다." 그러고는 한 새벽 2시쯤 기어 들어오면 그녀는 "오늘 물이 별로였구나~~ 피곤하겠다 어여자 낼 학교가야지 "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과 시원한 콩나물국이 식탁위에 차려져 있었다. 이제와 말하지만.... 저런 그녀였기엔 난 더이상 엇나갈 수가 없었다... 그녀가 정말 슬퍼할만한 일을 하고싶진 않았기에... 그녀가 날 너무나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날 믿고 있었기에... 이십대 중반때 일을 시작하면서 카드맛을 알아버린 나는 미친듯이 카드를 긁어댔고 돌려막다막다 막혀버려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그녀에게 털어 놓았다 우선 한대 맞고 잔소리 폭격 시작할줄 알았는데.. 그때 그녀는.... "아... 이건 전적으로 엄마 잘못이다 엄마가 진즉에 너에게 경제 교육을 시켰어야 했는데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못했다 카드라는건 정말 위험한거다....." 하면서 나를 타이르셨고 앞으로 니가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지 한동안은 관여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내 침대맡에 도저히 막을 수 없었던 그 최후의 금액이 올려져 있었다 그날 이후 난 돈의 무서움을 알게되었고 지금까지도 마음 깊이 새기며 돈을 잘 쓰려 노력중이다. 서른 중반 결혼까지 생각했던 애인에게 버림받고 식음을 전폐하고 삼일 밤낮을 방에 쳐박혀 울고만 있을때... 그녀가 조용히 내게 다가와 일으켜 안으면서... "내 딸... 그렇게 아파? 엄마는 한달만에 팔려오듯 시집와서 사랑을 잘 몰라... 그래서 지금 너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어서 그게 너무 슬프다..." 그때 난 정말 엄마를 껴안고 엄마와 함께 오열하며 그렇게 사랑의 열병이 조금씩 치유되어져 갔다 그리고 내가 40이 되던 어느날... 그녀는 "너 노후준비는 하고있니? 더이상 결혼하란 말은 안할게 대신 후에 너 혼자서 살 수 있는 준비는 꼭 해라...음... 근데 내가 부모로서 너를 출가시키지 못한 죄도 있으니..." 그러면서 그녀는 그녀의 전 재산중 일부를 떼어 집장만에 보태주셨다...혼자서라도 잘 살으라고 그렇다 그녀는 나의 그녀 남연우 여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다.. 언젠가 내가 그녀에게 물은적이 있다 "엄마... 이모랑 삼촌은 많이 배웠는데 엄마 못배운거 속상하거나 억울하지 않아?" 그때 그녀는 "처음엔 많이 속상하고 억울하고 그랬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엄마가 배움이 길었다면.... 정말 교만해졌을거 같아 엄마가 배운게 없어서 그나마 겸손할 수 있었고 어려움을 인내할 수 있었던거 같아...그러니까 이렇게 예쁜 막내딸을 만났지... 엄마가 배움이 길었으면.... 너 태어나기 애저녁에 이집 나갔어...." 난 이말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녀가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등도 많이 굽고 기력도 많이 약해져서 함께 걸어갈때 내가 일부러 천천히 걸어야 하고 ... 그녀의 그 맛나던 음식도 이젠 맛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나의 베프이고 나의 그녀이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군가요?" 라고 묻는 다면 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남연우요!" 라고 말할거다! 쓰다보니 옛날옛날 빙글에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것이 기억나서 링크 걸어보아요^^ https://vin.gl/p/1498449?isrc=copylink
생트 샤펠,
좁은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어디에선가에서 연이어 터지는 희미한 탄성이 우리의 귀에 조금씩 더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이름 모를 우리 앞의 등들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고 우리는 이 짧은 고행이 곧 끝남을 알 수 있었다. “와아.”  우리의 뒤를 이어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은 채 우리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우리에게 쏟아져 내려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좁은 어깨를 하고 걷던 봄날, 우리의 머리를 뒤덮으며 내리던 시린 붉은 비, 그 여린 듯 진했던 벚꽃비처럼 그것은 한 뭉텅이로 우리의 추억 안에 지울 수 없는 색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비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한국에서 받아온 기본 서류들을 번역하고 공증을 받기 위해 트램을 타고 벼룩시장이 유명한 Vanve까지 갔다. 그리곤 다시 지하철 13호선을 타고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있는 Varenne역으로 갔다. Varenne역은 근처에 로댕 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지하철 출구로 나와 대사관들이 모인 거리로 걸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육군박물관이 보이고 그 앞 광장 너머로 에펠탑이 보이는 마치 서울의 광화문과 같은 느낌의 지역이다. 육군박물관 뒤편으로 황금색 돔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그곳이 바로 프랑스혁명의 영웅이자 동시에 역적인 애증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일가가 묻혀 있는 Tombeau de Napoléon이다. 공증이 완료된 서류를 다음날 오전 11시 이후에 찾으러 오라고 해서, 다음날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다시 트램에 올랐다. 트램은 전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받아 만든 그래서 각국의 이름을 딴 기숙사들이 모여 있는 씨떼 유니벡시떼를 지난다. 건물들은 조금 낡았지만 가격이 싸서 인기가 많고 따라서 입주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곳이다. 하루를 다녀왔다고 익숙해진 풍경들을 지나 Porte Vanve역에서 메트로 1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우리의 근처에 서있는 누군가의 인상이 문득 나의 눈을 잡아맸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하고 또 영화를 만들다 보니 사람들을 관찰하고 혼자서 그들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 그리고 감정이나 목적까지도 추측 추리 상상하는 버릇이 몸에 깊게 베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을 지레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편견이 되진 않을까 싶어 절로 완료되는 짐작들을 애써 지워 버리려고 애먼 노력을 또 하곤 하는데 이곳은 낯선 땅이라 내 생각들이 편견일 확률 또한 높아서 여태껏 한국에서 보다 더욱 조심을 해왔다. 프랑스의 지하철에 대한 여러 글들을 많이 봤고, 소매치기와 거동이 이상한 사람들을 마주친 여러 사람들의 경험담도 또 그때 그들의 대처들도 지나치게 보고 이곳으로 왔지만, 지난 한 달간 딱히 위험한 상황을 만난 적은 없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아무런 사건 없이 생활을 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방심했을 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는 글을 읽고는, 반은 장난으로 ‘방심하다 당한다’ 며 서로에게 잦은 주의를 주곤 했지만, 시간의 힘이 참 무서워 요즘은 긴장을 거의 안 한 채 지내고 있던 참이었다.  13호선은 우리가 주로 타고 다니는 7호선과는 다르게 의자가 한편으로는 한 열이 나있고 다른 한편으로 두 열이 나있는 비대칭 구조이다. 다른 호선의 지하철들처럼 정방향의 의자와 역방향의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구조는 마찬가지였다. 나와 엠마는 두 열의 의자가 나있는 쪽에 정방향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그 남자는 다른 쪽 한열의 역방향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문득 들었던 부정적인 인상을 지워내고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을 하고 있을 때, 어떠한 짐작되는 이유도 없이 그 남자가 불쑥 나의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왔다. 다른 이곳의 사람들과 달리 나를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혹 소매치기를 하려는 건 아닐까 싶어 하던 검색을 멈추고 핸드폰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남자의 목적은 우리의 물건이 아닌 건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어떠한 수작도 없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우리는 괜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 남자는 계속 우리의 돌린 옆얼굴을 노려보다가 심지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창문에 비친 우리를 눈을 찾아내 노려보기 시작했다. 순간 확실해지는 이상함에 나는 등이 굳었다. 평일 오전이라 객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창문에 비친 남자를 주의 깊게 견제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남자는 왠지 모를 흥분까지 느끼며 우리의 돌린 얼굴과 창문에 비친 우리의 이미지를 번갈아 노려보는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했고 급기야 몸을 조금씩 떨기까지 했다. 연기를 통해 익힌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일반적으로는 감정이 신체의 징후를 만들어내지만 신체의 징후 또한 숨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나는 더욱 긴장을 했다. 남자의 신체 징후는 분명 이 감정이 그의 내면 안에 가만히 갇혀 있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의 감정과 신체가 서로를 계속 불러내며 확장을 해가고 있을 때 열차는 다행히 이름 모를 정거장에 멈춰 섰다. 나는 마치 이곳이 Varenne역인 듯, 당연한 듯 엠마를 데리고 열차에서 내렸다. 엠마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놀란 얼굴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우리를 따라 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끝까지 그를 살폈다. 다행히 그 남자는 열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열차가 정거장을 떠날 때까지 남자는 우리를 노려 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굳었던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잠자리를 설쳤다. 결국 다음날, 여러 번 울린 알람에도 우리는 침대 위를 떠나지 못했다. 오전 수업이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발을 돌려 올린 창문 밖에서 위로 같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을 받으며 숨을 좀 녹인 후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렌즈로 파리를 바라보진 말자고 다짐을 했다.  기왕 학교를 못 간 김에 우리는 파리의 동쪽 크레테유라는 곳에 위치한 우리 지역 CAF 아정스에 서류를 내러 가기로 했다. CAF는 주택보조금을 산정, 집행하는 기관으로 인터넷으로 가입, 신청을 한 후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우편을 통하거나 직접 제출을 하면 검토 후 각자에 맞는 보조금을 산정해준다. 아날로그의 나라 프랑스도 많은 변화가 있어 CAF도 모든 서류를 스캔한 뒤 온라인상으로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기에 가장 빠르게 처리된다는 직접 제출을 하러 간 것이다. 파리가 아닌 외곽 지역은 위험한 곳도 많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어제의 기억까지 더불어 떠올리며 긴장을 했다. CAF 아정스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 후 조금 걸으면 되는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외곽지역을 둘러가는 동안 보는 풍경은 파리의 중심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공항을 오가는 도로에서처럼 거리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아파트 단지도 높은 굴뚝이 있는 발전소나 공장 같아 보이는 곳도 자주 눈에 띄었다. 넓어진 센느강의 모습도 고풍스러운 건물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파리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여느 곳에 흐르는 고요한 강 그 따름이었다. 강변은 온통 풀밭이었고 강 위에는 큰 새들이 앉아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낯선 거리의 모습에 경계와 신기함이 반쯤 섞인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며 CAF 아정스에 도착을 하자 먼저 건물 입구에 긴 줄을 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파리의 주거비용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벅찬 짐이 되는지 아침부터 먼 곳까지 와 긴 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순서를 기다려 아정스의 직원에게 검토를 받고 제출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지만 건물 밖에 장치해둔 CAF전용 우체통에 집어넣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글도 많아서 우리는 긴 줄에 두 명을 더 보태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가기로 했다.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는 모습이 보여 우리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류가 잘 검토되길 바라며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아정스를 들렸다가 나온 한 흑인 아저씨가 우리를 응원을 해줬다. 그리고 홀로 줄을 서고 있던 한 한국 청년이 그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이신가요? 서류 그냥 여기에 넣고 가면 되는 거예요?” 서류를 봉투에다 넣어서 밀봉을 한 후 우체통에 넣어야 하는데 그 청년은 그런 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정스 안에 가면 봉투를 준다는 글을 본 것 같아 청년에게 알려주었다. 청년은 고맙다며 아정스 안으로 가고 우리는 남은 오후를 소중히 보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먼저 파리의 동쪽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들려보기로 했다. 내가 무척 가보고 싶어 하던 곳이었는데 영화의 성지에는 역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프랑스어가 조금 더 들릴 때까지 미뤄둬야지 했었다. 다만 오늘은 파리의 동쪽으로 나온 김에 인상적이라는 건물의 모습도 봐볼 겸, 영화 박물관이라도 봐보고 갈까 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있는 Bercy역으로 갔다.  역에서 나와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를 조금 걸으니 사진에서 봐왔던 역시나 다양한 곡선들이 인상적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눈에 보였다. 이곳은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원래는 미국 문화원이었던 곳이다. 2005년, 에펠탑을 마주 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샤이요 궁 안에 있던 옛 시네마테크를 옭겨오기 위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영화 몽상가들에 등장하던 68 혁명의 주무대였던 프랑스 영화의 최전성기를 지탱하던 ‘그 시네마테크’ 는 이 건물이 아니지만 시네마테크는 위치나 외형보다는 내용이 더 핵심이기에 Cinematheque Fracaise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들떴다. 시네마테크 앞에는 조용하고 예쁜 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회전목마가 있어 이질적인 건물과 함께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거 같아 예고편처럼 사진 몇 장만 찍고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Bercy는 계획도시처럼 긴 공원을 따라 길고 낮은 아파트가 쭉 이어진 곳이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Bercy village라는 예쁜 쇼핑몰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세계 최대의 와인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유지한 채 내부만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의 쇼핑몰로 꾸민 곳이다. 당시 와인을 운송하던 기찻길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파리가 아닌 지방 소도시의 번화가를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테라스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기에는 좋은 곳 같았다. 햇볕은 좋았지만 날씨는 꽤 차가웠는데 테라스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남은 낮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엠마가 마침 지하철을 타면 한번 만에 가는 곳에 Châtelet역이 있다며 Sainte Chapelle에 가보자고 했다. 처음 어학교재를 사러 시떼섬에 갔을 땐 긴장된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다. “Oui.” Sainte Chapelle은 고등법원 건물과 붙어 있어 파리의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보안 검사를 하고 있었다. 흡사 공항에서와 같이 짐 엑스레이 감사와 금속탐지 검사도 거친 후 부속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자 센느 강 어느 다리에서도 보이던 날카로운 첨탑이 가고일 꼬리를 꽉 쥔 채 우뚝 서 있었다. 검은 괴수들이 사방으로 울부짖고 있는 검은 첨탑 너머의 하늘은 티 없이 파랬다. 그래 신은 이곳에는 없는 거지. Sainte Chapelle은 성루이라고 불리는 루이 9세가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금전적 지원의 형식으로 사들인 예수의 가시 면류관과 후일 모은 예수의 못 박힌 십자가 조각 등의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왕실 전용 예배당이자 보물창고이다. 티켓을 끊고 듣어간 곳은 성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높이에 기둥이 유난히 많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단출한 홀이었다. 심지어 그곳 안에 기념품을 파는 곳과 안내 전단을 배포하는 곳까지 같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이곳이 사람들이 그렇게나 찾을 만한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궁중 관리들과 성당을 관리하는 이들을 위한 예배공간이고 왕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준비된 곳은 이 낮은 홀이 위층 공간이었다. 이곳이 보통의 성당들 보다 낮은 이유도 기둥이 많은 이유도 위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파리에 온 후 수없이 오른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위쪽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아래층의 모습에 실망해서인지 별다른 기대는 가지지 않고 허벅지를 손으로 도우며 계단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을 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뱉고 말았다. “와아.” 그곳은 그 안 든 것이 어떠한 모습의 어떤 마음의 사람이든 그 안에 든 것이 어떤 피비린내가 나는 프로필을 지닌 물건이든 아이들의 보석함의 고증 없는 ‘보석’ 들처럼, 모두를 모든 것을 그저 순수히 빛나게만 만들어버리는 섬뜩한 마법의 공간이었다. 15미터의 거대한 스테인글라스가 최소한의 테두리만 두른 채 공간 안으로 피할 수 없는 색깔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고개를 들고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것들, 가령 하늘이나 별 같은 것들. 내가 한다던 비워내고 납득하는 그런 아름다움 말고 집요하게 강요하는 채우고 또 채워서 지나침을 훨씬 더 지나쳐 내가 모르는 곳으로 그곳으로 넘어가 버린 아름다움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예술이 미리 지고서 핑계만 오래 고민하고 있던 건 아닌지 조금 씁쓸했다. 이 곳은 온통 빼곡하다. 빈 손으로 꾸밈도 없이 걷기 위해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얘기를 해 왔는데 벌칙처럼 온통 내가 못하는 그저 아이처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할 것이 가득한 이 곳으로 불쑥 와버렸다. 우습다. 사람은 그렇게 멋대로 걸어간다. 자기 물건이 가장 지겨워서, 자신과 다른 이의 품으로 기꺼이 간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낯설어진 나를 나는 또 가까스로 소개를 해야 하겠지. 내가 마치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돈도 잘 내고 길도 잘 찾고 하지만 내일에 해야 말만은 여전히 모른다. Oui ou Non 으로 대답하는 내 시꺼먼 마음에 뭐가 걸쭉하게 녹아 있는지 꺼내지 못해서 모르겠다. 가끔은 주말에 무엇을 또 보러 가기가 조금 겁날 때가 있다. 보고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해서 보여주고 싶어 그런 거겠지. 안다. 그 마음.  좋은 것을 보고 나면 우린 더 많이 지쳐 파리 지하철의 악명도 다 잊고서 머리를 붙여가며 졸기까지 한다. 안다. 당신의 그 마음도. 글, 영상 레오 촬영 레오, 엠마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배우 '리즈 위더스푼'이 직접 영화 제작사를 차린 이유
금발이 너무해, 빅 리틀 라이즈 등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 리즈 위더스푼 2012년 리즈의 에이전시에서 대본 하나를 갖다줬는데 그 대본을 보자마자 리즈의 반응은 "나는 이 쓰레기 같은 영화 안할거야. 이건 끔찍하고 여성 혐오적이야."였음. 그랬더니 에이전시는 모든 여배우들이 이 역할 하고싶어서 안달났다고 함. "할리우드의 모든 여배우들이 이 역할을 원한다면 뭔가 조취를 취해야해. 이건 나에게도 좋지 않고 동료들에게도 좋지 않아." 실제로 자신이 좋아하는 여배우 6명이서 영화의 형편없는 역할을 맡기 위해 경쟁하는 것을 보고 진짜 안되겠다 싶었다고 함. 그동안 리즈 위더스푼이 영화 제작사에 여성 영화 대본을 가져갈때마다 영화 제작사들은 '우리 이미 여성 영화 하나 제작하고 있어, 한 해에 여성 영화 두개는 제작하고 싶지 않아'라고 했다고 함. 이러한 이유들로 리즈는 이런 제작사들의 돈은 원하지 않아! 하고 2012년 다른 회사와 합병해 '퍼시픽 스탠다드'라는 제작사를 만들었고 2016년에 독립해서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완전히 주력하겠다며 현재는 '헬로 선샤인'이라는 제작사를 운영하고 있음.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사를 차린 후 제작한 작품들은 영화 <와일드> 영화 <나를 찾아줘>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 등이 있음 모두 여성작가가 쓴 책이 원작이고 당연히 여성서사 작품들임. 리즈 위더스푼의 제작사가 제작한 '리즈 위더스푼과 빛나는 그녀들(Shine on with Reese)'라는 다큐의 한 장면 위 소개글처럼 리즈 위더스푼이 여러 분야의 여성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토크쇼고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음! 또 리즈 위더스푼은 영화 제작에만 그치지 않고 '리즈의 북클럽'이라는 소셜 계정을 운영해 여성의 책(여성 작가, 여성 서사)을 매 달 하나씩 추천하고, 어린 소녀들에게 영화 제작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연구실도 운영한다고 함. 또 여성 중심 팟캐스트와 특강 투어 등도 진행하고 있음. " 나서서 말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해요. 우리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어요. " 출처 : 쭉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