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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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토스 타코 부럽지 않아요! 집에서 20분만에 또띠야 만들기

얌냠 맛있는 Braised beef tacos!
신랑이 미국인이다보니 멕시코음식을 워낙 좋아한다. 물론 나도. 한국에 있을 땐 제대로 된 멕시코 음식을 찾기 힘들어 슬퍼하다 강남역에 도스타코스가 생긴 후에는 주말이면 거기서 도스에끼스(Dos equis XX)와 함께 리프라이드빈이 잔뜩 들어간 부리또를 흡입하고, 바토스가 생긴 후에는 자주 찾아가 프레쉬 또띠야로 만든 부리또나 타코를 마가리타,블러드메리와 함께 흡입하곤 했다. (그나저나 바토스는 맥도날드 뒷골목에 조그맣게 초창기 자리잡았을 때가 참 좋았는데 이태원교회 근처로 이사가고 분점을 내고 나서부터는 뭔가 공장 분위기;;; 그래도 여전히 바토스는 마이 페이버릿!!! ^^. 도스타코스는 초창기와 다르게 분점이 생기면서 지점마다 맛도 다르고 점점 이상해져가서 여기저기 생긴 후에는 실망해서 안가게 되었다.)
당연히 집에서도 부리또나 타코, 파히타 기타 등등 멕시코 음식(뭐 대부분이 택스맥스)을 자주 해먹는 편인데, 또띠야는 당연히 구입해서 먹어왔다. 언제나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그랬는지
바토스 갈 때엔 '역시 프레쉬한 홈메이드 또띠야가 최고지~!'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걸 '집에서 만들어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연결 해본 적은 없었다.
며칠 전, 슬로우쿠커로 braised pulled beef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슬로우쿠커만 있으면 만들기는 누워서 떡먹기. 다음에 포스팅할 예정. 원래는 포크가 더 맛있지만 여기 쿠웨이트에서는 돼지고기를 구할 수가 없는 관계로 ㅜㅠ) 첫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그런데 다음날 타코가 갑자기 먹고싶은 거다. 그러나 집에는 또띠야도 타코쉘도 없고, 택시 타고 마트 가서 또띠야를 사오자니 너무 귀찮고....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신랑이 "만들면 되지!! 만들기 쉬울 걸?"
이렇게 해서 또띠야 만들기에 도전!!!
만드는 방법은 정말 울트라 쉽지만 다만 한가지, 핸드믹서가 있어야한다. 핸드믹서에서 도우용 후크를 사용하면 된다. 핸드믹서가 없으면 최대한 푸드프로세서 중에서 도우믹서 비슷한 용도를 가진 아이로 끼워서 사용하면 될 듯. (하지만 이건 안해봐서 장담은 못해요~)
재료는 매우매우 간단하며 아래 재료 분량으로 우리는 큰 사이즈 또띠야를 6장 만들었다.
<재료>
밀가루 1.5 컵 소금 1/2 티스푼 베이킹파우더 1/2 티스푼
식물성오일 3 테이블스푼 따뜻한 물 1/2 컵
<만드는 법>
1) 재료를 큰 볼에 넣고 믹서로 잘 섞는다.
2) 도우가 거의 하나로 잘 뭉쳐지면(약 1-2분?) 믹서를 빼고 손으로 동그랗게 하나의 덩어리로 잘 만져준다.
3) 덩어리를 원하는 또띠야 갯수만큼 나누어 동그랗게 볼을 만들고 1-2분 정도 둔다.
4) 쟁반에 밀가루를 많이 뿌린 후 밀가루 반죽 볼을 놓고 밀대로 밀어 얇게 편다. (또띠야 양쪽으로 생밀가루가 많이 묻어야 한다)
5) 밀대로 만든 형을 그대로 써도 좋고, 주전자나 냄비 뚜껑으로 찍어 동그랗게 만든다.
6) 프라이팬을 중간 이상의 불에 놓고 기름없이 그대로 살짝 구워낸다. (한쪽당 약 30초)
끝~!!! 완성된 또띠야에 얹고싶은 타코 재료를 얹으면 바토스 부럽지 않은 생또띠야 타코가 완성된다.
신랑이 만드는 걸 내가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한참 반죽으로 같이 요리하며 주물럭거리던 리암씨가 자기 태블릿을 가져와서 사진을 찍는다. 최연소 블로거로 입성하려나? ㅋㅋ
키즈 태블릿이다보니 화소가 좋지 않고 그리 밝지 않은 환경이라 사진이 많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한 장! ㅎㅎㅎ
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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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저도 도전해봐야겠어요!!!!
또띠야를 직접 만들다니 대단하세요! 리암이도 너무 귀엽구용~
또띠아 만드는건 정말 생각도 못했는데 우와*_*
대박~
저도 타코 너무 좋아하는데 :) 도스타코 맛 없어져서 슬퍼요 나도 확 만들어볼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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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기억 지우기(트라우마 치유)
나쁜기억 지우기(트라우마 치유) -------------------------------------- 두번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멎을것 같아요. 우울해지고 불안해집니다. 뇌(기억)속으로 들어가서 다 없애버리고 싶어요. ------------------------------------- 트라우마..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욕하고 때린다.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간 사이 동네 친구들에게 매일 학대를 당한다. 친구들이 건드려도 꿈틀조차 못하는 지렁이만도 못하게 살아간다. 교통사고를 당한뒤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회사에서 상사로부터 벌레 취급을 당했다. 어릴때 친척으로부터 성적학대를 당했다. 엄마가 수면제를 드시고 그만... 상상할수 없는 예상조차 할수 없는 제발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이때의 기억(경험)만 없었더라면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텐데.. 라며 오늘도 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찌보면 대부분 우리들의 모습이기도하다. 한번 트라우마를 겪어버리면 평온하던 마을에 느닷없이 폭탄이 떨어진것처럼 아수라장이 된다. 그때 우리의 뇌는 바보 멍청이가 된다. 겁을 잔뜩 먹어 버린다. 이 공포가 영원할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정신줄을 놓아버린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여전히 마을을 돌아다니며 " 살려주세요. 제발... " 급기야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버리고 산으로 도망을 가 버린다. " 이 산은 안전할거야! " " 두번다시 마을로 내려가지 않을테야" " 마을은 괴물들이 점령을 했어 " 그렇게 그 사람은 홀로 산에 갇혀서 산다. 어둡고 외로운 마음의 감옥 즉, 자기생각(과거의 트라우마)에 갇혀서 여전히 현재를 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한때 평범하게 살았던 마을.. 내가 살고 있는 작은 집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나의 집으로 내려갈수가 없다. 아직도 그 마을은 폭탄이 터지며 들짐승들이 마을의 주인이 되었으며 좀비가 나를 물려고 하고 있으며 드라큐라가 저녁마다 활보하고 있으며 귀신이 나를 죽이려고 따라다닌다. ....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번다시 마을로 내려갈수가 없다. 그런데.... 마을에서 벗어나서 산에 숨어 있는다고해서 들짐승, 좀비, 귀신, 드라큐라가 내 눈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는가? 두려워서 눈을 감으면 눈앞의 고통이 사라지나? 듣기 싫다고해서 귀를 닫으면 해결이 되나? 눈앞의 현실을 보기 싫어서 매일 잠을 자버리면 세상이 달라지는가? 당신이 나쁜기억(트라우마)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고해서 그 기억이 사라지는가? 우리는 어쩌면 큰 착각을 하고 산 것이다. 당신은 몇가지 사실을 냉 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1.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그 트라우마가 당신의 현실에서 더이상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은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괴로워할 틈이 없다. 즉 과거에는 그 트라우마가 사실이였을지몰라도 지금은 최소한 사라졌거나 당신이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약화되었다. 2. 들짐승 괴물 좀비 드라큐라 귀신은 없다. 고통받은 당신의 울부짖음일 뿐이다. 그 기억 두려움의 강도에 따라서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즉, 그 무서운 존재는 마을을 활보하는 것이 아닌 그대 마음에 영원히 머무른다. 산으로 도망가봤자 고통만 더 커진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3. 이제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라. 당신처럼 산속에 숨어있는 사람도 있고 아침마다 등산하는 사람도 있고 정신차리고 산을 내려가는 사람도 있고 당신처럼 산으로 도망가는 사람도 있고 논밭에서 열심히 농사일 하는 사람도 있고 멱살잡고 칼들고 싸우는 사람들도 있고 당신을 도와줄 경찰관과 소방관도 있고 당신이 밀어줘야할 노인의 수레도 있다. 세상이 달라졌지만 당신은 10년전 기억속에 갇혀 산 것이다. 어찌어찌 잘 피해서 도망왔지만 당신의 집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제 그 집으로 다시 가보자. 4. 내 집이 왜 폐가가 되어버렸지? 주인인 당신이 버린 것이다. 귀신이 살지도 않지만 당신이 버린이상 귀신집이 되어버렸다. 거미줄을 헤치며 방으로 들어가보자. 당신의 일기장을 다시 들춰보자. 쓰다가 멈춘 일기를 다시 써 내려가자. 구석방에 거지처럼 상한 음식을 먹고 있는 당신의 소중한 가족이 그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면.. 그들을 당신이 보호해줬어야 하는데 당신이 떠나버린 이후 버려졌다. 당신은 어찌어찌 트라우마로부터 도망갔지만 당신으로 인해서 소중한 가족들이 폐가에서 오늘도 피눈물의 기다림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당신이 전쟁트라우마로 인해서 매일 술을 먹고 가족에게 폭력을 쓰는것처럼 말이다. 당신이 경험한 고통의 울부짖음도 있지만 당신을 매일 지켜봐야 하는 그들의 고통도 트라우미 이상이다. 당신은 과거 기억에서 트라우마를 경험한 실제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힘들게한 트라우마의 실제 가해자이기도하다. 슬프게도 말이다. ㅜ 5. 폐가를 새롭게 수리하자. 눓은 냄비도 계속 딲으면 깨끗해진다. 불타 없어졌다고 해서 끝난것이 아니다. 당신은 사라지거나 없어지거나 훼손될수 있을지 몰라도 그 집터는 영원히 당신의 것이다. 그 자리에 이제는 튼튼한 벽돌집을 지으면 된다. 깨끗하게 쓸고 닦고 다시 나만의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주자. 이곳이 트라우마의 참상이 아닌 나의 보금자리로 새롭게 리모델링하자. 놔둘수록 흉칙해지고 귀신집이 된다. 그러면 평생 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떠돌이처럼 살아가게 된다. 6. 트라우마로부터 도망가지 말자.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속의 구절이 생각난다.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도 결국 우리가 그렇게 인식하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우린 '스트레스 받는다'고 표현하지 않는가? 이 말은 내가 안받을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도 나의 선택영역이다. 미세먼지 공포때문에 집에 갇힌 사람도 있고 마스크쓰고 가볍게 놀러간 사람도 있다. 어떤 일이든 크게 보면 우주처럼 커지고 작게 보면 먼지처럼 작게 보인다. 그래서 나쁜 일들은 최대한 작게 작게 보면서 담대하게 살아야 할 것이며 좋은 일들은 최대한 크게 크게 보면서 감사하는 맘으로 살아야 한다. 우린 트라우마에 갇혀서 고통받을 시간이 없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받은 내 삶을 지금이라도 아름답게 보상해줘야 한다. 그것이 가장 지혜롭게 트라우마로부터 벗아나는 방법이 아닐까?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매일 청소하자. 내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매일 놀아주자. 내 마음에게 매일 괜찮다며 안심시켜주자. 내 마음의 손을 잡고 자주 놀러다니자. 내 마음이 강해질수 있도록 수행을 하자. 내가 외롭지 않도록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자. 내 마음의 손을 잡고 무의식 여행을 하자. 내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말자. https://youtu.be/P3Lb6s4yLDI 김영국 행복명상센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