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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켄트(Toshkent), 우즈벡 국가 만들기의 장(場)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각종 정치・경제적 개혁과 아울러 새로운 국가적 상징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의 정통성의 원천을 찾아 체계를 세우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들 국가들이 민족국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전통을 창출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민족국가 형성에서의 민족적 기억의 문제, 전통의 ‘발명’이라는 명제만큼 근래에 많이 논의된 것은 없을 것이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1870년대부터 제 1차 세계 대전까지의 시기에 유럽에서 전통이 대량으로 ‘창출’되었다고 보았다. 대중정치의 출현에 따라 사회조직과 구조를 유지시키는 매카니즘을 개발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던 지배자들은 의도적인 목적의식을 가지고 전통을 ‘창조’해 나갔던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전통의 창출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전통들은 새로운 국가휴일, 의례, 그리고 국민 영웅이나 각종 상징들과 이에 대한 대중적 호응이 결합됨으로써 제도화되었다.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서도 이러한 양상이 나타났다. 먼저 기존의 국기와 국가, 국가 문장 등을 새롭게 바꾸고, 도시나 농촌에서의 각종 기념물이나 상징, 경관 등을 정비하거나 새롭게 조성하였다. 그러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새롭게 전통을 창출하는 일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던 중앙아시아 지역은 여러 정치문화들이 각축을 벌이던 지역이었다. 크게 보면 이 지역은 오랫동안 아랍-페르시아적 이슬람주의, 범투르크주의, 그리고 러시아 패권주의라는 세 가지 정치문화가 뒤섞여 있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그만큼 민족적 정체성을 규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민족국가의 형성은 지연되었고, 하나의 독립된 민족국가를 구성해 본 경험이 없던 이곳 중앙아시아 지역은 185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의 정복 대상이 되어 부분적인 자치와 종속상태에 놓여 있다가, 1925년에 완전한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 되었다. 소비에트 시기에 이곳 중앙아시아 지역은 외부적인 힘에 의해 5개 공화국으로 분할되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형성된 각각의 공화국들의 국가적 경계는 각 민족들의 생활영역이나 점유공간의 경계와 일치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 지역에서의 ‘인민’은 언어나 종족적인 것이 아니라, 시민적이고 영역적인 것이었다. 이처럼 소비에트 시기에 인위적으로 분할되었던 소비에트 연방의 5개 공화국은 기존의 국경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개별 국가들로 분리·독립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정치문화들이 공존하고, 소비에트 하에서 60년 이상의 세계사회주의를 경험했던 이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민족국가에 걸맞는 새로운 전통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바로 과거의 전통을 ‘찾아내는 작업’과, 러시아 지배의 흔적을 ‘벗겨내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던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최대의 인구를 자랑하는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에서는 이러한 전통의 창출 과정이 더 많은 어려움을 수반하였다. 이곳 우즈베키스탄은 적어도 120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식적으로 8개의 언어가 교육되고 있다. 여타의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지역별로 민족구성이 다양하고, 또한 주민 다수가 신봉하는 이슬람교 내에서도 근본주의의 강도가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 다원적 성격이 무척 강한 지역이다. 서북부의 카라칼파크 지역은 별도의 자치 공화국을 구성할 만큼 언어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서부지역은 이란계 타지크 족의 비율이 상당한 반면, 동부지역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강하여 중앙정부에게는 중요한 ‘골칫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특히 동부 페르가나 분지의 안디잔은 중앙정부에 저항하는 '폭동'이 여러 차례 발생한 정치적 민감지역이었다. 우즈벡 상층 지도부는 이러한 지역별 민족구성이나 종교적 차이를 극복하고 우즈베키스탄만의 동질적인 민족국가를 만들어 나가야 했다. 국가정체성은 국가기념일이라는 ‘시간적 장치’, 그리고 각종 국가기념공간이라는 ‘공간적 장치’라는 두 개의 양대 산맥으로 만들어지며, 이러한 시・공간적 장치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주체들의 수행적 행위로 표현된다. 전근대적 왕조국가들이 최고 지도자인 왕이나 그 가족들의 탄생이나 결혼 또는 즉위일을 기념했다면, 일반적으로 혁명이나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고 헌법을 통해 정치공동체의 최고 규범을 마련하는 근대 국민국가들은, 국가정체성의 시간적 장치들을 통해 주체들의 이러한 정치적 기억을 보존하고 끊임없이 재생산하려 한다. 이러한 국가기념일은 이를 경축하는 의례를 통해 기념된다. 또한 이러한 의례는 국가적 기억을 담고 있는 특정한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국가는 각종 기념물이나 박물관, 그리고 광장을 조성하고, 이러한 공간을 활용하여 국가적 기억이나 공동체적 기억을 보존하고 재생산한다. 우즈베키스탄의 민족문화 창출 과정에서도 이러한 과정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치밀하게 통제된 극장공연이나 음악행사와 같은 대중적 스펙타클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데, 특히 3월 21일의 나브루즈(Navro'z) 신춘축제와 9월 1일의 독립기념일이라는 두 개의 국경일에 대규모 야외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축제들은 분명 우즈베키스탄 민족형성의 중요한 수단이다. 이러한 국경일에 행해지는 국가적 기념의례는 항상 특정한 상징공간과 결합되어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근대국가들에서는 필연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이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상징적 공간이나 기념물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공간들은 민족문화나 국가의 정체성이 단적으로 응축되고 집약되어 있는 전시의 장인 것이다. 이러한 공간들은 전 국토에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수도나 지방의 중심도시들에 집중되어 있고, 도시 내에서는 특정 공간에 집약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장소들을 일컬어 ‘핵심적 상징공간’이라고 한다. 이들 ‘핵심적 상징공간’들은 주요 도시, 특히 수도의 중심부에 잇는 광장과, 여기에서 시작되거나 관통하는 도로로 구성된다. 광장이나 도로의 명칭은 민족적 기원을 상징하거나 전통을 만들어낸 영웅이나 특정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고 있으며, 이에 연관된 거대한 기념물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른 또 하나의 핵심적 상징공간은 역사박물관이다. 이 역사박물관은 국립박물관이나 미술관과 쌍을 이루면서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문화적 자산을 보여준다면, 역사박물관은 유구한 역사, 광대했던 영토, 강력했던 주권 등을 고고학적 자료와 역사적 자료로 말하게 하는 장소이다. 역사박물관은 인물과 사건에 관한 사진, 회화와 같은 시각언어, 유물과 이를 해석하는 문자언어의 결합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수도 타쉬켄트는 그야말로 이러한 핵심적 상징공간을 통한 하나의 전시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 타쉬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오래된 도시들, 즉 사마르칸트나 부하라, 히바 등과 함께 과거의 실크로드의 거점이었다. 그러나 타쉬켄트가 현재의 영광을 띠게 된 것은 19세기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복 이후부터였다. 남하하던 러시아는 1865년 당시 7만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성벽도시 타쉬켄트를 점령했고, 1867년 중앙아시아의 점령지역에 설립한 투르키스탄주의 수도로 타쉬켄트를 선택하였다. 러시아의 정복 이후 옛 시가지 옆에 유럽풍의 새 시가지가 들어섰으며,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1917년 자치공화국이 분리되면서 사마르칸트가 우즈베키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타쉬켄트는 1930년 다시 수도의 지위를 넘겨받았다. 그러나 급격한 발전을 하던 타쉬켄트는 큰 위기를 맞게 된다. 1966년 4월 26일, 도시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인해 무려 3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도시의 대부분이 파게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 정부는 곧바로 파괴된 타쉬켄트의 재건 작업에 착수하였고, 소련 전역에서 도시 복구를 위한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이 타쉬켄트에 들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지진은 타쉬켄트를 소련식의 최첨단 계획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타쉬켄트 TV 타워가 건설되었으며, 중앙아시아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1967년에 120만의 인구수를 돌파한 타쉬켄트는 소비에트 연방에서 무려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로 거듭났다. 소련식 사회주의 도시계획의 중요한 특징인 공공 공간의 최대 활용 원칙에 따라 구성된 U자형 간선도로의 내부 중심에는 방사형의 상징적 공간들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레닌광장이나 스탈린 또는 마르크스와 같은 이념적 인물들의 상징적 기념물들이 있는 광장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와 우즈베키스탄의 독립 이후, 이슬람 중세도시로부터 사회주의 도시로 탈바꿈하였던 이곳 타쉬켄트는 또다시 사회주의 도시로부터 민족국가의 수위도시로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족국가로의 전환과정에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타쉬켄트의 간선 도로나 주요 광장의 명칭을 모두 바꾸었다. 핵심적 상징공간에 자리잡고 있던 레닌과 스탈린, 마르크스 동상과 같은 사회주의의 상징물들은 하나 둘 철거되고 그 자리는 소위 우즈벡 민족사에서의 영웅들로 대체되었다. 오늘날의 타쉬켄트의 핵심적 상징공간 중 가장 중요한 장소는 단연코 독립 광장(Mustaqillik Maydoni)일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최대의 광장인 이 독립 광장은, 주변에 상원, 내무성, 경제성, 국립도서관, 역사박물관, 투르키스탄 예술관, 현대미술관, 화가전시관 등이 빙 둘러 위치하고 있는 가히 우즈베키스탄 정치의 심장부라 할 만하다. 소비에트 시대의 레닌 광장으로서 레닌 동상이 우뚝 서 있던 이 장소는 1991년 독립과 함께 독립 광장으로 탈바꿈하였으며, 레닌 동상 대신에 독립기념비가 자리잡았다. 이후 이 광장은 지속적으로 재단장되었다. 광장의 입구에는 우즈벡 민족의 상징 새인 ‘후모’ 상이 있다. 독립 광장의 입구에는 에즈굴릭(Ezgulik, 선하고 고귀한 열망의 아치)이라고 불리는 장식이 있으며, ‘독립과 휴머니즘 기념비’라고 불리는 기념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 기념비는 1991년의 독립 기념비와 2006년에 조성된 행복한 어머니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립 기념비는 레닌 동상이 위치하고 있던 자리에 레닌 동상을 헐고, 우즈베키스타의 영토를 나타내고 있는 지구의(Globe)를 세운 것으로,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이것이 우즈베키스탄의 주권과, 신생 독립국의 세계 공동체에의 참여와 타국에 의한 인정을 상징화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6m 높이의 행복한 어머니상은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어머니는 모국을, 어린이는 미래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광장의 북쪽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 기념비가 자리잡고 있고, 동쪽에는 과거에는 레닌역, 현재는 독립 광장역(Mustagilik Maydoni)으로 명명된 지하철역이 위치한다. 독립 광장을 가로지르는 도로의 명칭은 라쉬도프(Rashidov) 거리이다. 이는 과거의 레닌 거리에서 개명된 것이다. 샤로프 라쉬도프(Sharof Rashidov, 1959-1983)는 작가이자 우즈베키스탄의 최고 소비에트 의장이었고, 공산당 제 1 비서를 역임했으며, 브레즈네프 시절 우즈벡의 실권자로 1982년 사망했다. 그의 이름이 타쉬켄트 중심 거리의 명칭이 된 것은 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카리모프의 이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름을 딴 라쉬도프 거리에 심지어 그의 동상까지 세워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독립은 아래로부터의 민족혁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처럼 위로부터의 역사적 전통의 창출의 길을 밟는 경우 지식인의 교체는 최소화된다. 이것은 우즈베키스탄의 현재의 지배층이 구 소련하의 지배층이었고, 우즈벡 공산당의 상층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립’의 강조는 사회주의 국가와 민족국가의 이념적 단절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카리모프를 비롯한 현재의 정치적 지도부는 연속적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대통령은 새로운 지배이념으로서의 독립을 활용하고는 있으나, 일단 그 자신부터 독립 이전에 우즈베키스탄 공산당의 최고 간부였으므로 독립이전의 우즈베키스탄에 대한 평가는 모호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다.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의 창출 과정에서 ‘찾아내는 작업’보다 ‘벗겨내는 작업’ 즉 상상력의 탈식민화는 자기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작업을 포함할 수 없기 때문에 훨씬 어렵게 된다. 카리모프의 ‘대선배’ 격인 라쉬도프의 이름을 딴 거리와 그의 동상에서 우리는 이러한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다. 타쉬켄트에서 독립 광장 다음으로 중요한 광장을 꼽자면 아미르 티무르 광장(Amir Timur Maydoni)을 꼽을 수 있다. 이 광장은 원래 투르키스탄 총독청사의 앞에 위치하면서 체미야에프의 주도 하에 건축가 율리아노프가 1882년에 조성한 것으로, 당시에는 콘스탄티노프 광장이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지배기에 붉은 광장으로 개명되고 광장의 한복판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 광장을 가로지르는 도로는 엥겔스 거리로 명명되었으며, 이것이 현재의 아미르 티무르 거리가 되었다. 과거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동상이 자리잡고 있었던 이곳 광장에는 현재 거대한 티무르 기마상이 놓여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독립 이후 아미르 티무르(Amir Timur)는 민족적 영웅으로 부각되었다. 민족국가의 형성에서 역사적 공통성의 상징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아미르 티무르였다. 아미르 티무르, 칭기스칸을 동경했지만 그의 혈족이 아니었기에 끝까지 칸을 칭하지 못하고 아미르의 칭호에 만족해야 했던 정복자. 죽을 때까지 거의 40년을 유라시아 사방 각지를 원정하고 정복하는 데 몰두했던 그는 동쪽으로는 터키, 서쪽으로는 명나라 국경, 남쪽으로는 인도, 북쪽으로는 러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국은 한 세기도 가지 못하고 북쪽에서 밀려드는 우즈베크족에 의해 몰락하고 말았다. 그의 5대손이었던 바부르는 북인도 지역으로 도망처 무굴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우즈베크족이 티무르의 후손들을 몰아내고 세운 우즈벡에서 티무르를 국민영웅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그러나 민족주의화라는 맥락에서의 민족적 영웅화 과정에서는 이런 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적 사실보다는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제국을 건설한 인물인 티무르에 대한 강조는 쉽게 우즈벡 지역, 아니 더 나아가 중앙아시아의 재건이라는 슬로건과 연결된다. 티무르의 우상화는 우즈벡의 국내적 역사쓰기의 맥락일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 정립의 방향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즈벡은 티무르를 통해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통합적으로 묶어 리드하려는 의도를 조심스럽게 표출하고 있다. 이는 티무르 탄생 660주년을 내세워 이루어진 티무르 동상 제막식에서 잘 표현되었다. 사마르칸트의 외국어 대학 앞에 세워진 이 동상의 제막식에는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7개국의 대통령들이 참석하도록 초대되었다. 우즈벡의 민족국가화에 따른 티무르의 우상화는 권위주의와도 밀접히 결부된다. 방송에서는 현재의 대통령에 관련된 보도와 티무르에 대한 홍보성 광고를 시간적으로 연속시킴으로서, 대통령의 이미자와 티무르의 이미지를 교묘하게 오버랩시키고 있다. 예컨대 대통령의 사진이나 동정은 신문의 1면 상단에 주요 뉴스시간의 처음을 장식한다. 뉴스 이전이나 후의 중간중간에 티무르에 관련된 사진이나 역사적 사실들을 삽입시킨다. 특히 티무르와 관련된 역사적 평가, 그리고 그의 리더쉽이나 용감성 등을 강조하는 내용들이 많다. 결국 이러한 행보는 카리모프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뒷받침하는 교묘한 장치인 것이다. 단순히 웅장하고 멋있어 보이기만 하는 광장의 상징물과 배치 하나하나에는 모두 이러한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런데 티무르의 우즈벡 민족화 작업에서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그의 이미지가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전쟁영웅으로서 불가피하게 전쟁 및 살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티무르의 정복전은 엄청난 파괴와 살육을 수반했다. 정복된 도시는 폐허로 변해버렸고 높은 미나레트가 있었던 곳에는 수만 명의 해골로 이루어진 탑이 쌓였다. 그 파괴의 정도는 칭기스칸 시대를 능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떤 학자들은 그를 문명의 도살자(butcher)로 부르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보다 부드럽고 평화로운 또 다른 영웅이 필요했고, 이러한 맥락에서 알리셰르 나보이(Ali-Shir Nava'i)가 국부로 선정되었다. 나보이는 17~18세기에 활동한 시인으로서, 혈통상으로는 우즈벡 민족인지 불분명하지만, 우즈벡적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어서 민족적 호소를 하는데 매우 적절한 역사적 인물이었다. 결국 무(武)의 이미지를 담당하는 아미르 티무르와, 문(文)의 이미지를 담당하는 알리셰르 나보이가 우즈베키스탄 민족 정체성 형성에서 한 쌍의 켤레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타쉬켄트에는 이 두 광장 이외에도 부뇨드코르 광장(Bunyodko Maydoni, 창조 광장)과 지진복구 기념광장 등 수많은 핵심적 상징공간들이 위치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부뇨드코르 광장은 우즈베키스탄의 정체성의 변화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표이다. 부뇨드코르 광장은 소비에트 시대의 인민친선광장이 개명한 것으로, 소비에트 시기에 인민친선궁전(People's friendship palace), 인민친선기념비, 그리고 샤마흐무도프(Shaahmed Shamahmudov) 가족상 등으로 구성된 광장이었다. 1966년 타쉬켄트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시가지가 파괴되자, 사회주의 여러 국가에서 대규모로 재건지원단이 파견되었고, 이들은 이 광장주변에 텐트를 치고 활동을 하였다. 이 재건활동을 기념하여 1982년 ‘인민친선광장’이 조성되고 이와 함께, 6000석 규모의 대규모 극장인 ‘인민친선궁전’이 만들어졌다. 이 건물의 정면에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을 기념하는 인민친선기념탑이 세워졌다. 이 기념탑은 사회주의 형제국들의 깃발을 새겨 넣는 탑 형태였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와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의 사회주의적 국제연대는 점진적으로 퇴색되어 갔고, 이것은 우선 인민친선탑의 해체로 나타났다. 그에 뒤이어 2008년 4월 8일, 타쉬켄트 시장 압둑카할르 투타예프(Tuhtayev)는 인민친선궁전의 명칭을 독립궁전으로 바꾸고, 샤마흐무도프 가족상을 교외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그에 따라 며칠 후 그 가족상이 해체되어 칠란자르 쪽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광장의 이름은 부뇨드코르, 즉 창조광장이 되었다. 인민친선광장의 해체는 우즈베키스탄의 국제관계의 변화를 반영한다. 기존의 사회주의 국가 간 네트워크의 약화에 따른 정치지형의 변화는 결국 핵심적 상징공간의 내용과 형식에 변화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무척 흥미로운 점은 독립 광장, 아미르 티무르 광장, 그리고 부뇨드코르 광장과 같은 이들 핵심적 상징공간들은 현재 독립 이후의 우즈베키스탄의 민족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소로 기능하고는 있지만, 이들은 모두 소련 시기에 조성되었으며, 그 상징적 기능은 그대로 유지된 채, 내용만이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권력을 드러내는 공간적 배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상징적 기념물이 있던 자리에 내용을 달리하는 상징물이 그대로 자리잡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만 새로운 상징물이 새로운 공간에 설치되고 있다. 상징공간의 변화를 통해서 본다면, 레닌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적 기념문화가 지역별 특성을 살린 민족주의적 기념분화로 대체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우즈베키스탄의 독립 이후의 문화적 재생은 소비에트적 상징정치의 소거라기보다는, 어쩌면 재전유(re-appropriation)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까울 듯하다. 타쉬켄트의 이들 핵심적 상징공간에서 살펴볼 수 있는 민족국가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통의 창출과 상징의 정치의 중요한 특징은, ‘인물의 정치’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반면 ‘장소의 정치’는 비교적 지속적이라는 사실이다. 국가정체성은 도심의 광장과 같은 상징공간과 그곳에 치밀하게 배치된 여러 상징물들을 통해서 집약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바로 타쉬켄트의 각종 광장이나 기념관이 이러한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 이들은 문자매체나 영상매체와는 달리, 조성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지만 한번 조성되면 쉽게 변화되지 않는 일종의 경성 저속 미디어(hard and slow media)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쉬켄트는 도시 자체가 그야말로, 우즈베키스탄의 현 정치지형을 반영하여 의도적이고 치밀하게 구성되고 배치된 핵심적 상징공간들의 향연의 장이자, 현 우즈베키스탄 정권에 의한 국가적 차원의 전시의 장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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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2박 3일 먹방 여행기! 01. 국수 만찬 첫 번째로 소개할 곳은 고기 국수를 맛볼 수 있는 국수 만찬입니다 :) 국수 만찬은 여행객과 현지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곳이에요. 고기 국수, 멸고 국수, 멸치 국수, 비빔 국수, 비고 국수를 판매하는데요. 가장 추천하는 메뉴는 역시 고기 국수랍니다. 엄청난 양을 짐작하게 하는 그릇의 깊이부터 압도적! 뽀-얀 국물에 잘 삶아진 고기 고명이 넉넉하게 올려져 있는데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잡내는 하나도 없이 깊은 국물맛이 인상적이었어요. 여행 후 서울에 돌아와서도 종종 이곳의 국물이 생각날 정도...! 이곳은 고기 국수 외에도 3가지의 곁들임 메뉴들을 판매하고 있어요. 아강발, 돔베고기, 물만두인데요. 저와 일행은 물만두를 주문했는데, 고소한 깨와 향긋한 부추를 올려주는 독특한 비주얼! 국수 국물에 물만두 몇 알을 넣고 국수와 함께 먹는 것도 추천해드려요 :-) 02. 민경이네 어등포식당 고기를 먹었으니 생선을 먹으러 가볼까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곳은 바로 민경이네 어등포식당입니다. 민경이네 어등포식당은 우럭튀김을 먹기 위해 방문한 곳인데요. 커다란 우럭을 머리부터 꼬리까지 통째로 튀겨 빨간 양념을 발라서 내어준답니다. (우럭 튀김 해체 후에 사진을 찍어 버렸다는 슬픈 사연...) 우럭 튀김은 가운데 등뼈를 제외하고 머리부터 꼬리까지 모-두 먹을 수 있었는데요. 씹을수록 바삭하고 고소한 맛과 감칠맛 나는 양념이 그야말로 밥도둑...! 우럭 정식만 먹기엔 뭔가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면 우럭 정식과 단짝을 이루는 또 하나의 베스트 메뉴 '물회 국수'를 주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D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에 쫄깃한 한치와 오독오독한 전복, 싱싱한 채소, 소면까지... 몸보신 제대로 되는 느낌! 03. 경일식당 매콤한 음식을 좋아한다면 이곳으로! 지금 소개하는 경일 식당은 현지인이 즐겨 찾는 낙지 볶음 맛집이에요 :) 메뉴는 두 가지, 제육볶음과 낙지 볶음인데요. 개인적으로는 통통한 낙지 볶음을 주문할 것을 추천합니다. (2인분 이상 주문 가능) 메인 메뉴인 낙지 볶음이 나오기 전 달걀말이와 순두부를 반찬으로 내어주는데요. 메인이 나오기 전 다 먹지 말 것... 바로 이 두 반찬이 낙지 볶음의 매운맛을 중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답니다. 옆에 곁들여 나오는 소면을 비벼 호로록 먹은 뒤, 따끈한 밥에 낙지와 콩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 먹는 순간 스트레스 아웃! 기분 좋은 매운맛을 느끼러 방문해보세요. 04. 문화통닭 제주도 통닭 맛집 중 한 곳인 문화 통닭을 소개합니다! 문화 통닭은 포장과 홀 식사(1시간 전 예약)만 가능한 치킨집이에요. 이곳의 대표 메뉴는 알-싸한 마늘 향이 인상적인 마농(마늘) 치킨인데요. 튀김 옷에서 풍기는 카레 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위에 올려진 마늘 토핑이 입맛을 돋우는 환상적인 케미...! 제주도에서 종일 먹기만 해서 배가 부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냄새를 맡는 순간 거부 불가- 문화 통닭의 특이한 점은 치킨 무와 함께 겉절이 김치를 포장해준다는 점인데요. 치킨이 살짝 느끼하다 싶을 때(그럴 리는 없겠지만...) 겉절이를 한 입 먹고 나면, 바로 치킨 2회차 시작이 가능하답니다 :-) 05. 흑돼지가 있는 풍경 제주도에 왔으니 흑돼지를 먹어야 섭섭하지 않겠죠? 맛이 좋은 흑돼지 오겹살을 먹을 수 있는 흑돼지가 있는 풍경입니다. 우선, 상차림으로 간장 게장, 편육, 고사리 등이 푸짐하게 차려져서 만족스러웠는데요. 이어 등장한 고기의 자태에 눈을 떼지 못했답니다. 지방과 살코기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고, 돼지 껍데기가 붙어있어 쫄깃한 식감까지...! 또, 함께 곁들여 나오는 전복과 새우가 돼지기름에 구워져 고소한 맛이 두 배 :) 흑돼지가 있는 풍경에서 몸보신 제대로 하고 돌아왔답니다. 06. 우진해장국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사리 육개장으로 유명한 우진해장국! 각종 방송과 SNS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제주도 대표 맛집이죠. 볼로 에디터 역시 제주에 방문하면 이곳은 빼놓지 않고 꼭 방문한답니다 :) 고사리와 고기가 걸쭉하게 씹히는 고사리 육개장에 밥 한 공기를 딱! 넣고 말아 먹으면 힘이 솟아나는 기분! 고사리 육개장뿐만 아니라 제주 토속 음식인 몸국도 맛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공항에서 가까워서 본격적인 제주 여행을 시작하기 전 또는 제주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기 전에 방문하실 것을 추천해요. 07. 로맨틱 하드보일드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으니, 한적한 카페로 가볼까요. 조용한 바다 전망 카페를 찾는다면 로맨틱 하드보일드를 추천합니다- 애월읍에 자리한 이 카페는 반짝반짝 빛나는 애월 바다를 보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어요!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달콤 쌉싸래한 아인슈페너는 말 그대로 꿀맛... 정말이지 나만 알고 싶은 공간이었답니다 :D 배가 아무리 불러도 밥 배와 디저트 배는 따로 있죠?! 커피와 함께 먹을 디저트를 찾는다면 독일식 팬케이크인 더치 베이비를 주문해보세요~ 겉은 쫀득하면서도 속은 촉-촉한 더치 베이비 한입에 커피 한 모금을 먹는 순간 기분이 UP! 되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08. 까미노 이번엔 넓은 초록 들판으로 가볼까요? 카페 까미노를 소개합니다 :) 초록초록 보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고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드는 넓은 들판... 향긋한 풀 냄새를 맡으며 만끽하는 여유가 인상적인 곳이었는데요. 조용히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공간(노키즈존), 통유리로 된 실내, 야외 테이블, 탁 트인 2층 옥상 공간까지 다양한 공간에서 쉼을 가질 수 있어요. 귀여운 우유갑 모양 병에 담겨나 나오는 진-한 밀크티와 함께 기분 좋은 광합성을 해보는 거 어떨까요? 09. 우도 땅콩 막걸리 우도의 특산물인 땅콩으로 빚은 우도 땅콩 막걸리! 달콤한 첫맛과 고소한 뒤끝이 매력적인 전통주였는데요. (마치 아침X살 음료수 같은 느낌이랄까...?) 다른 술들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라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한 두잔 정도는 거뜬히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치만, 달다고 계속 마시다 보면 어느새 이 세상 텐션이 아닌 나를 마주하게 될 테니 조심해야겠죠 :D 10. 회 종일 먹어서 거하게 먹긴 힘들고, 제주에 왔으니 회는 꼭 먹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통 시장으로 고고! 볼로 에디터는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전통 시장인 동문 재래시장을 방문했는데요. 동문 시장 곳곳에 있는 횟집에서는 1만 원-4만 원대 가격에 다양한 회를 포장 판매한답니다. 게다가 쫀득탱탱한 딱새우회 역시 1만 원 이하로 맛볼 수 있다는 것! 여러 종류의 회를 가성비 좋게 맛보고 싶다면 꼭 방문해보세요 :-) 지금까지 2박 3일 동안 먹고 온 제주의 맛집들을 소개해드렸는데요 :) 그때는 너무 배가 불러 힘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더 먹고 올걸... 하는 후회가 되는 느낌이네요. (머쓱ㅎㅎ) 휴가철은 지났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제주는 언제 방문해도 좋은 거 아시죠? 훌쩍 떠나고 싶은 날, 볼로와 함께 제주로 먹방 여행을 떠나보세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 ▶  https://withvolo.com/subview/543976 ▶ https://withvolo.com/subview/540231 ▶ https://withvolo.com/subview/536676 ios : https://goo.gl/kj0EjD android : https://goo.gl/X3xykZ
상처 입은 꽃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빨래터에서 얼굴에 젖살도 빠지지 않은 여자아이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빨래는 아주 힘든 노동입니다. 하지만 답답한 날씨에 시원한 물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평범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별 대단치도 않은 일에 까르륵 웃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일본인들이 여자아이들을 강제로 데려갔고, 그 이후 아이들은 다시는 환하게 웃지 못했습니다. 4년 동안 부산과 일본, 대만을 거쳐 홍콩,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끌려다니며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비극은 소녀들의 삶을 모두 무너뜨렸고, 새하얗던 소녀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극악무도한 일본군에게 다시 잡혀 때릴 데도 없는 어린 소녀를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빨래터에서 친구들과 끌려간 이효순 할머니. 21살, 너무도 꽃다운 나이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향할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했고 미치도록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집에는 부끄러워서 못 가겠어…” 그리고 2015년 5월 27일, 91세의 이효순 할머니는 마음속 한을 풀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그렇게 살고 싶었어.” ===================================== 저들은 지금도 거짓을 말합니다. ‘어떤 강제도 없었다. 그들은 돈 때문에 스스로 자원한 것이다.’ 저들은 지금도 거짓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했다. 지금 이러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저들은 지금도 거짓 앞에 당당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어떠한 것에도 사과할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당연한 진실을, 분명한 역사를, 당당한 사과를 그들에게 원할 뿐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어린 소녀는 어느덧 주름과 백발이 가득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하갱도에서 석탄을 캐던 소년은 자식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8월 15일 74주년 광복절입니다. 잘못된 역사는 잊히는 순간 또다시 반복됩니다. 다시는 짓밟힌 할머니와 착취당한 할아버지가 우리 역사에 등장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 김학순 할머니 – =Naver"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역사왜곡 #다시일본패망 #일본망언 #진실 #8월15일 #광복절
정체불명의 거대한 알을 구입한 영국사람
영국에 사는 샬롯 해리슨은 이베이에서 3만원짜리 거대 알을 구입한다. 이 거대 알은 ‘에뮤’라는 새의 알로, 에뮤는 아라비아어로는 ‘세상에서 가장 큰 새’를 뜻한다. 실제론 타조에 이어 세상에서 두 번째로 큰 새이며, 시속 50km까지 달릴 수 있는데, 날카로운 발톱에 강력한 발차기 능력이 있어 가까이하기 위험한 새이다. 부화시키고 싶어 ‘부화기’에 넣었다. 놀랍게도 47일 후 에뮤가 알을 깨고 나왔고.. 새끼 에뮤는 샬롯을 엄마라고 생각하여 졸졸 따라다녔고, 샬롯은 이런 에뮤를 귀여워하며 ‘케빈’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가족처럼 지냈다. 이후 샬롯은 ‘케빈’의 성장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는데, 문제가 생긴다. 누군가 이 영상을 보고 가정집에서 ‘에뮤’를 키우고 있다고 신고한 것. 이후 영국 동물학대방지협회에서 샬롯의 집을 방문했고, 샬롯은 케빈을 떠나보내야했다. 동물협회는 케빈을 데려가며 “에뮤를 가정집에서 키우는 것은 적합한 일이 아니며, 에뮤는 최고 165cm, 몸무게는 60kg까지 늘어나는데, 성장하면서 주인까지 공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샬롯은 “누군가 단체에 제보했다는 사실에 상처받았다. 우리는 이미 케빈이 커졌을 때를 대비한 계획도 세웠다. 케빈은 우리 가족이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심경을 토로했다. ㅊㅊ 루리웹 (에뮤전쟁 만화 실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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