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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백의 화려한 귀환, 리버풀의 343

[축구 디자이너의 축구 전술 이야기] 3백의 화려한 귀환 - 리버풀의 343
2002 한일 월드컵 우승팀 브라질을 비롯해 한국 대표팀이 주로 사용했던 3백 포메이션은 최근까지 축구 전술의 주류로부터 이탈해있었다. 얼마 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선전하며 잠시 이목을 끄는 듯 했으나 그게 전부였다. 3백 시스템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라지게 된 건 아니었다.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유럽 전역에서 유행했던 아리고 사키의 442 시스템(사키이즘) 이후, 그에 대한 파훼법으로 1.5선에 공격형 미드필더를 배치하는 4열 포메이션인 4231이 등장했다. 그에 이어 공격형 미드필더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 433(4141)까지 이 흐름에 동참하면서 최근 10년 간 이 세 시스템이 축구 전술의 주류를 이루었다. 때문에 원톱 전술이나 측면 공격을 수비하는 데 있어서 구조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한 3백 시스템이 점점 유럽 무대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433, 4231 등의 전술이 유행하면서 시대는 기존 공격수들에게 ‘진화’를 요구했다. 흔히 ‘9번 공격수’또는 최근 ‘가짜 9번’이라 불리는 최전방 공격수들이 바로 시대에 발맞춰 진화한 공격수들이라고 할 수 있다.(대표적으로 드록바, 레반도프스키, 벤제마 등) 이들에게는 압박, 연계, 공간 창출 등 득점 이외의 다른 역할이 요구됐다. 공격수들이 높은 위치에서부터 강하게 압박을 넣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수비수들과 심지어는 골키퍼에게까지 수비 능력 이외의 패스 능력, 탈압박 능력이 요구됐다. 이들에게도 ‘진화’가 요구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수비수로는 피케나 훔멜스, 단테, 마스체라노 등이 있고,골키퍼로는 마누엘 노이어 정도를 들 수 있다. 이제는 오로지 득점만을 생각하며 전방에서 어슬렁거리는 공격수가 좋은 공격수로 평가받기 힘들어진 것처럼 수비만 잘하는 수비수 역시 좋은 수비수로 평가받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14/15시즌 상반기에는 극심한 수비 불안, 부진을 보이더니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는 한 팀이 있다. 바로 얼마 전, 28R 번리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기록하며 리그 12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는 리버풀이다. 지금부터 리버풀의 14/15시즌 행보를 살펴보며 축구 전술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난 시즌 아쉽게 리그 우승 트로피를 맨시티에게 내주며 리그 2위를 기록했던 리버풀은 14/15시즌 상반기 내내 팀의 주축이었던 수아레즈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채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수아레즈의 영향도 컸지만 진짜 문제는 수비진에 있었다. 지난 시즌 101골이나 뽑아낸 공격진에 가려 있던 불안한 수비진이 이제서야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어떤 이유로 지난 시즌 2위를 기록했던 리버풀이 10위 권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는지, 전술적인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리버풀의 14/15시즌 상반기 주 포메이션을 살펴보았다.(편의상 변화가 시작된 17R 아스날전을 기점으로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눠 표현하겠다.)

<상반기, 혼돈의 리버풀>
리그 초반 리버풀은 주로 4231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만약 스터리지가 부상에 있지 않았더라면 지난 시즌 꿀맛 좀 봤던 다이아몬드 442를 주로 사용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됐건 리버풀은 로저스의 전술적 성향에 따라 점유율 축구를 기반으로 한 4231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현재 4231을 사용하고 있는 EPL 상위권 팀 : 첼시, 토트넘, 사우스햄튼, 맨체스터 시티(442 혼용)
상반기 리버풀의 주 공격 루트(속공이나 역습이 아닌 지공 상황이 때)는 최전방의 발로텔리가 버티는 플레이로 공간을 만들어주면 바로 아래의 스털링과 쿠티뉴, 랄라나의 빠른 드리블 돌파와 원투 패스로 기회를 만들어 나가는 식이었다. 이 공격 루트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방에서의 움직임도 중요하겠지만 그 전에 적절한 타이밍에 전방으로 공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성공적인 빌드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리버풀은 1차적인 후방 빌드업부터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공수 모두에서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상반기 리버풀의 후방 빌드업 과정
2명의 센터백이 좌우로 넓게 벌려서고, 제라드가 센터백 사이로 내려와 빌드업을 돕고, 상대방의 전방 압박이 가해지면 최후방의 미뇰렛까지 빌드업에 참여하는 것이 주 빌드업 과정이었다. 하지만 스크르텔과 로브렌, 미뇰렛은 빌드업 과정의 주인공 역할이 벅찼던 것인지 상대방의 압박에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서로에게 패스를 돌리는 모습만 보여줄 뿐이었다. 그들은 영락없는 ‘진화’하지 못한 수비수, 골키퍼였다. 당황한 수비진은 매 경기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하기 일쑤였고, 그래서인지 상대팀이 공격할 때보다 리버풀 수비진이 공을 소유하고 있을 때가 더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공수의 연결고리가 되어야 할 제라드마저 수비 부담이 커지다 보니 체력적인 부분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자, 글로만 이야기했을 뿐인데 어딘가 굉장히 답답하지 않은가? 답답했던 리버풀의 상반기 빌드업 과정을 통계와 함께 살펴보자.
먼저 히트맵을 보면 하프라인 아래쪽에서 2명의 센터백과 골키퍼의 볼 터치가 꽤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팀 전체 볼 터치의 30% 이상을 이 3명의 선수가 차지하고 있는데, 문제는 대부분이 의미 없는 볼 터치였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압박에 못이겨 3명의 선수끼리 주고 받았던 패스가 대부분이었다.(리버풀 경기를 챙겨 본 사람이라면 스크르텔과 로브렌, 미뇰렛이 무의미한 패스를 주고 받았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리버풀을 상대하는 팀들은 리버풀 수비진의 약점을 놓치지 않았고 마치 물 만난 물고기들처럼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시도하며 신나게 수비진을 괴롭혔다. 리버풀 수비진에서는 조직력이란 걸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비라인이 전체적으로 흔들리면서 결국 지난 시즌 EPL 탑 수비수급 퍼포먼스를 보였던 데얀 로브렌은 최악의 폼을 보여주며 콥들의 온갖 비난을 한 몸에 받았고, 중요한 순간마다 슈퍼 세이브를 보여줬던 미뇰렛마저도 예전 폼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또한 리버풀 수비진의 경기당 롱패스 횟수는 맨체스터 시티나 첼시와 비교하여 약 1.5배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술적인 선택이었다기 보다는 빌드업 과정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약한 피지컬을 지닌 스털링과 쿠티뉴를 필두로 한 리버풀의 공격진을 생각해보았을 때, 롱패스는 역습과 같이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애꿎은 수비 조합만 계속해서 바뀌었고, 마침내는 No.1 골키퍼까지 바뀌는 등 리버풀에는 엄청난 혼란이 찾아왔다. 저번 시즌 유연한 전술 변화를 선보이며 명장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로저스 감독 역시 ‘또져스’라는 팬들의 조롱과 함께 경질설에 휩싸이게 된다.
<하반기 리버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다>
그러나 17R 이후 로저스 감독은 보란듯이 그 오명을 씻어냈다. 끈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던 리버풀은 그 노력의 결실을 보이며 리그 12경기 무패 행진 중에 있다.
17R 이후 리버풀은 343을 주 포메이션으로 쓰기 시작했다. 343의 3에 해당하는 공격진에는 쿠티뉴와 스털링, 랄라나 등 빠른 드리블 돌파와 연계 플레이가 좋은 선수들이 배치됐다.(사실 선택지가 별로 없었던 리버풀, 발로텔리…) 4에 해당하는 미드필더진의 중앙에는 헨더슨과 조 앨런(또는 루카스)이 빌드업과 수비를 도우면서 전방으로 패스를 뿌리는 역할을 맡았다. 좌우 날개에는 왕성한 활동량을 가져가며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는 모레노와 마르코비치가 자리했고, 마지막으로 리버풀의 343을 완성시켜준 3백에 사코와 스크르텔, 그리고 앰레 찬이 자리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No.1 골키퍼 미뇰렛까지. 리버풀의 343 시스템은 수비시 발빠른 공격진을 활용해 전방 압박을 하다가도 상대방이 하프라인을 넘어서면, 3톱 중 2명의 선수가 내려와 541의 형태를 취하며 강력한 두 줄 수비 라인을 형성했다. 공격시에는 자칫 잉여 자원이 될 수 있는 3백 중 1명, 리버풀 3백의 핵심 선수인 앰레 찬을 전진 배치시키면서 3백의 구조적 한계를 해결해냈다.하지만 이보다도 리버풀의 343 시스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상반기 내내 답답했었던 후방 빌드업 과정이 하반기에 들어 원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리버풀 빌드업 과정의 포인트는 바로 2명의 센터백을 기점으로 생기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두 체인(Chain)이다. 그 중에서도 오른쪽 다이아몬드에 속해 있는 앰레 찬이 하반기 리버풀의 빌드업 과정의 핵심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중앙 미드필더 출신인 이 독일 선수는 3백의 오른쪽 위치에서 뛰어난 패스 능력, 볼 키핑 능력을 보여주며 주변 동료(다이아몬드에 속한 3명의 선수들)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탈압박 플레이로 명실상부한 리버풀의 핵심 선수로 거듭났다. 왼쪽의 마마두 사코 역시 다이아몬드 형태로 포진한 주변 동료들을 활용하여 탈압박을 해내며 주특기인 시원시원한 전진 패스를 발휘했다. 이렇게 상반기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빌드업 과정이 하반기들어 살아나면서 리버풀의 수비 지역에 평화를 가져다 줬다. 동시에 빌드업 과정에서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스크르텔과 미뇰렛은 본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스크르텔은 마치 벽과 같은 존재로 거듭났고, 안정적인 수비라인을 앞에 둔 미뇰렛도 ‘경기당 실점 0.6골, 실점당 선방2.5회’라는 No.1 골키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게 됐다.(16R까지 경기당 실점 1.5골, 실점당 선방 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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