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l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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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는 왜 뜨끈한가] 급하게 고속버스로 물건을 받아 배달할 일이 생겼다. 서울 도착 여덟 시. 그러면 일곱 시 쯤 사무실에서 일어서면 얼추 맞겠구나. 그렇게 되뇐 게 방금 인데, 시계가 오후를 건너고 일곱 시 십 분. 컴퓨터를 끄고 책상을 정리했다.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는데, 오늘도 정리는 개판이네. 정리해야지 해야지 마음만 먹고 미뤘던 책상을 보고 살짝 웃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자식이 시동을 걸었다. 그래 단번에 시동걸리면 재미없지, 애를 달래듯 살살 시동을 건다. 그렇게 출발해서 도착한 고속버스터미널. 허기지다. 그러고 보니 점심도 못 먹었고, 아침은 대충 때웠었고. 뭘 먹고 갈까? 배달 갔다가 먹을까? 그렇게 승차장으로 향하는데, 전주에서 먹었던 베테랑 칼국수가 생각났다. 그래. 여기 분점 냈던데, 한 번 가볼까? 날이 무척 추웠고, 왠지 비리지 않은 계란 국물이 무척 좋을 것 같다. 오늘 저녁엔 그럴 거 같다 늘 그렇듯 이란 말이 무색하게, 가게 앞은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있다. 터미널에 있는 베테랑 칼국수는 남자 한 명이 앉으면 꽉 찰 테이블이 여러 개 있다. 마주 보며 먹으면 2인 상이 되고, 상을 붙이면 4인 상이 되는. 효율적인 것인지. 모두 맛을 급하게 털고 나가는 듯 회전율이 빠르다. 긴 줄도 잠시. 내 앞에 서 계신 노신사 차례가 왔다. 그분은 입구 반대쪽 벽 테이블로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나는 그분의 테이블 옆으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마주 앉지는 않았지만, 붙은 듯 아닌 듯 경계가 모호한 작은 테이블을 대각선으로 마주 앉았다. 어색하게 눈이 마주쳤고, 나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멋쩍어 내 자리에 놓던 수저를 그분께 먼저 놔드렸다. 그리고 줄을 서며 먼저 주문했던 베터랑 칼국수가 나왔다. 수저를 놔드렸더니, 나에게 수저를 놓으라 휴지를 놓아 주셨고, 어색한 인사가 오갔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한 젓갈을 먹고, 어디 가시나 봐요? 응, 어디 가려고. 나는 이거 아까 먹었는데, 내가 이걸 좋아해서 또 먹으러 왔어, 실은 아까 송년회가 있어서 가기 전에 저녁으로 먹고, 자리 끝나고 지금 또 왔지 여기 참 맛있어. 어여 먹어 봐요. 무척 어색해지는 게 이상하지 않을 사이. 모르고 만난 사람이 공간에서 밀착되는 사이. 반대로 가까워질 계기가 있는 사이. 이것도 인연인데,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야채 파는 한민성이라고 합니다. 하고 명함을 건넸다. 어이고 그래요? 친환경 먹을거리가 중요하지. (...) 친환경 먹을거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건네셨다. 저희도 건강한 먹을거리를 키우시는 농부님들이 많아요. 제가 일일히 찾아뵙고 또 찾아뵙고 하며 관계를 만들었고요. 오늘 실은 배송이 있어서 물건 받으러 왔어요. 저희 배랑 과일도 좋고, 유기농 치즈랑 요거트 홍삼 등 있거든요. 혹시 나중에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하하 우리 집사람이 한살림 이사야. 아하 정말요. 하하하하. 이 분의 사모님은 한살림 이사셨다. 그래도 나중에 진짜 좋은 거 필요하실 때 연락주세요. 하하. 그래요. 재밌는 친구네. 내가 반말해도 되죠? 지금 약주를 좀 했기도 하고, 내가 직업상 말을 하대를 자주해서,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네. 물론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 주세요. 내가 명동 칼국수 만든 사람한테 그 집 비법은 들었는데, 이 집 비법은 잘 모르겠어. 한번 알고 싶은데 말이야. 이야기 주제는 식자재 유통으로 넘어갔고, 양념이 비밀인 집에서는 한 곳에 식자재를 맡기지 않는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러니까 한 곳에 맡기면 판매량이랑 해서 다 나오잖아 뭐가 들어가는지, 그래서 다 나눠서 유통 받을 거야. 식자재에서 시작해서 사업을 대하는 사람의 자세부터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분 어머니는 미아삼거리에서 떡볶이 포장마차를 하셨었고, 어려서부터 어머니를 따라 리어카를 몰았으며, 나와 같이 잘 날 수 있는 길은 바지런함 밖에 없는 사람은 부지런 해야 한다고 하셨다. 본인은 가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게, 공부였고,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처음 만난 분과 처음 가보는 식당에서 마주한 밥상이 이어졌다. 칼국수는 비어져갔고, 우리는 같이 일어섰다. 오늘 좋은 말씀 많이 주셔서 밥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칼국수를 먹었는데, 나는 밥이라고 말했다. 아니야 나이 먹을수록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고 했는데, 오늘 입을 너무 열어 미안하고 내가 계산해야지. 계산을 마치고 가게 앞. 그러면 가보겠습니다. 오늘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잘 가요. 하고 몇 마디 이야기가 오갔고, 나는 돌아서며 다시 인사를 드렸다. 그러다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봤더니, 그분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고 계셨고, 내가 뒤를 돌아보자 다가오셨다. 저기 있잖아. 나중에 뭔가 좋은 일이 갑자기 뜬금없이 생기면 내 덕인 줄 알아. 실은 내가 고위 공무원이거든. 자네 정말 잘 될 것 같아. 그리고 석 달 정도가 지났다. 그 문득 좋은 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요행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지는 않지만, 외투 가슴팍에 넣어둔 복권 처럼 무언가 따듯한 마음이다. 그냥 그때 뒤돌아보았을 때, 나를 보아주며 걸어와 한마디를 더 해준 그 모습이 참 따듯했다. 1974 -WAY HOME- Mondo Grosso https://www.youtube.com/watch?v=Gs5uCxXJ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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