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tissier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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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서 목발을 짚은
여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소록도에서
만난 최초의 환자였다.
멀리서도 단박 환자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외양을 하고 있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그 여자를 너무 주목해도 안 되고,
불쾌한 눈치를 보이며
피해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보통 행인과 엇갈리듯이
자연스럽게 엇갈려야 된다고 생각할수록
얼굴이 자연스럽지 못해지는 걸 느끼고 있었다.
여자가 좀더 가까워졌다.
그때 숲에서
맑고 드높은 새소리가 들렸다.
새소리는 규칙적이었고 좀더 커졌다.
나는 구원받은 것처럼 탄성을 질렀다.
“얘들아! 저 새소리 좀 들어보렴, 무슨 새일까?”
그러나 딸애들은
이상하게 난처한 얼굴을 하고
내 탄성을 못들은 척했다.
마침내 그 여자는
우리와 엇갈리고 멀어져갔다.
새소리도 은은하게 멀어져갔다.
그제야 아이들이 나를 핀잔주었다.
“엄마도 참 주책이셔.
새소린 무슨 새소리예요?
저 환자 목발에서 나는 소리였단 말예요.”
이런 때 무슨 변명을 시도했다간
더 주책 노릇 되고 만다.
박완서,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박완서 산문집 3권> 중에서
이미지 출처, 박완서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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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끄러운 솔직함이라니...
북티셰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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