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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죽어지는 걸로 화목한 가정이 어찌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일까.

그녀는
6.25를 겪고,
친오빠를 여의고,
가족 전체가 심각한 가난을 겪습니다.
미군 부대 초상화 부에서 일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1970년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마흔,
『나목(裸木)』이라는 소설로 등단합니다.
그녀의 딸, 호원숙은 이렇게 말합니다.
"노망이 든 할머니와
늘 해왔던 아버지 수발과
해마다 돌아오는
아이들의 입시로부터
어머니는 놓여날 수가 없었다.
그 가족사를 회피하지 않으면서
결국에는 다 문학으로 풀어내셨다.
그 어떤 것도 외면하지 않고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한국에서 해방 이후
여성의 몸으로 시대를 견뎌오며
한 가정을 꾸려나가던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박완서.
어머니로,
며느리로,
아내로,
할머니로.
그녀의 삶은 한국 여성의 삶을 대변합니다.
날카롭게 벼려진 시대의식은 소설 속에서
우리 마음을 따끔거리게 하기도 합니다.
돌아가신 후,
소설에서
그녀를 다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녀의 삶은 우리 역사 80년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 삶과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역사의 기록처럼 그녀의 기록은
이 시대 여성의 발자취였습니다.
이번에 박완서의 삶이 기록된 책이
7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1977년부터 1990년까지 출간되었던
박완서의 산문집을 모았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와
너무 많은 생각이 있어서
이 책을
한마디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늘은 여성으로서의 박완서를 소개합니다.
“식구들을 위해 장을 보고
맛있는 반찬을 만드는 일,
매일매일 집 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아
쾌적하고 정갈한 생활환경을 만드는 일,
아이들 공부를 돌보고
가끔 학교 출입을 하는 일, 뜨개질, 옷 만들기
―소위 살림이라 불리는
이런 일들을 나는 잘했고,
또 좋아했지만,
아무리 죽자꾸나 이런 일을 해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허한 구석을
나는 내 내부에 갖고 있다는 걸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족들이 기대했던 여성으로의 삶만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갈 수 없었던
그 갈급함으로 박완서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과거를 지내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여성의 삶에 대해 박완서는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습니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딸에게 보내는 책’입니다.
딸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지는 책
<박완서 산문집> 7권입니다.
읽어보기 > http://me2.do/Gwwuob9Z
당신에게 "꼭 맞는 책"
책속의 한줄 > http://goo.gl/8R0X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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