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남들이 안 읽어본 책은 읽어봤으면서 정작 보아야 할 명작은 하나도 읽지 않은 양념나무입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따로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는 유명한 작품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도대체 오늘날까지 이 책을 왜 안 읽어봤지 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망할 초딩친구가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몇 학년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지 않지만, 당시 친구 한 명이 <어린왕자>를 읽어봤는데 굉장히 뜻 깊었다(물론 그 당시에 이보다 저렴한 단어를 사용했으리라 추정됩니다), 하지만 제법 난이도가 있었다는 뉘앙스로 말을 했기에 곧이곧대로 믿은 전 그걸 오늘날까지 미뤄왔습니다.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말이죠……. 이래서 친구 잘 사귀어야 되는 것 같습니다.
대뜸 겁부터 먹어버린 아이는 어느 덧 대학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고, 어릴 때 그렇게 싫어했던 책을 지금은 옆에 끼고 살고 있으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보니 잡설이 길어졌네요. 아무튼 <어린왕자>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2.
<어린왕자>는 저자 생텍쥐페리가 직접 참여하여 어린왕자를 관찰자이자 청자의 입장에서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화자는 저자이자 '어른'이며, 어린왕자와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아쉬움은 중폭 되더군요. 어릴 때 대뜸 겁부터 먹지만 않았더라면 어린왕자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그려보고, 오늘날 어른이 되어 다시 한 번 남은 반쪽을 그려봤을 텐데 말이죠. 물론 그 초딩 친구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한들 제가 읽었을지에 대해선 다소 의심이 듭니다만……. 그 친구 탓으로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3.
생텍쥐페리는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가며 배어버린 사회성에 대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정신과 감성보다는 물질과 이성이 중심에 선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레 이러한 사회성을 체득하게 되고, 그렇게 물질을 신봉하고 보이는 형이하학적 관점만을 취하는 세속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겠죠.
얼마 전 네이버 기사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인문과학계열은 타 대학과 마찬가지로 취업이 굉장히 어렵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문득 지난 학기 강의에서 교수님이 대학교는 돈벌이가 되는 상경대 인원은 늘리는 반면 같은 이유에서 문과대는 축소하기 급급하다며 털어놓은 하소연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다는 걸 논할 생각은 없지만, 분명 순수성을 대변하는 어린왕자는 이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 런지요. 또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베르테르 역시 비슷한 감상을 들려주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4.
일반적으로 '어른'을 판별하는 기준은 법적으로 '만19세'이상이냐의 여부입니다. 물론 법적으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부담 할 책임능력 기준은 그렇겠지만, 오늘날 우리 주변을 둘러봤을 때 진정으로 순수성을 대변하는 어린이는 몇 살까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양과잉으로 요즘 애들이 폭풍 성장한다는 사실정도는 주지하고 있었지만, 오늘날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 역시 외적으로는 인터넷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과거 세대에 비해 성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내면은 별개 문제입니다). 물론 순수성이 사라졌다느니 뭐니 하면서 나무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모두가 어른이자 어린아이고, 주변을 모방하여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인 채로 살기에 이 세상은 너무 잔혹한 것이겠죠.
5.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았던 어른들과 달리 조화를 택했던 어린왕자. 인상적이었습니다.
6.
위선, 허영심, 주정(酒酊), 소유의 탐욕, 수동적인 사람 등 어린왕자는 우리(어른)가 지니고 있을 다양한 욕구를 상징하고 대변하는 어른들을 만나게 되는데, 분명 제각기 둘러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린왕자 눈에 있어선 모순으로 가득한 이기적이고 궤변을 늘어놓는 인물들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기적인 어른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던 지리학자로부터 지구에 가보라는 조언을 듣게 된 어린왕자.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거대한 세상 속 미개한 존재라는 사실에 외로움을 느끼고, 5천송이의 장미를 보며 '보편'을 체득하여 '특별함'을 상실하고, 더 큰 외로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행히 여우와의 만남 속에서 관계의 특수성을 배우게 되는데, 이처럼 어린왕자의 여행은 세상을 배워가는 과거 우리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7.
우리에게도 분명 어린 시절은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이를 잊고 지내시는 건 아니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