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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은 나는 서울 내에서라면 어디로 거처를 옮겨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단지 내가 주로 가는 곳, 만나야할 사람들이 사는 곳, 혹은 일하는 공간에서 가깝거나 멀다는 차이가 있을 뿐, 서울은 어디를 가도 서울일 뿐이다.
얼마 전 홍대에서 호주로 건너가 기술자가 되었다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내 신학교 동기였으며, 지방에서는 꽤나 큰 규모를 자랑하는 교회 담임 목사의 아들이었다. 요즘 담임 목사는 보통 교회에 고용된 사람들이 많지만 그의 집안은 말하자면 오너다. 그의 할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에서, 그의 아버지가 목사로 일하고 있고, 그도 교회가 속한 교단의 신학교를 다녔으니, 신학교 시절 내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이 어땠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는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이가 나쁠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별로 가까워질만 한 꺼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학교를 그만두기 직전의 한 학기동안 나는 대부분의 강의에 출석하지 않았고, 당연히 동기들을 만날 일도 없었다.
그런 그를 다시 만난 건, 내가 교회와 학교를 모두 그만두고 서울로 상경한지 두 달 정도 되었던 여름이었다. 그때 그는 해병대에서 복무하고 있었고, 마침 휴가를 나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터미널의 작은 가게에 들렀다.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꽤 반가워했지만 나는 그의 이름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고, 대충 얼버무려 나중을 기약하는 인사를 나누었다.
그 다음에 만났을 때 그는 거제도에 있는 조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휴가를 나온 군인이었고, 그는 나에게 술과 고기를 사주었다. 나는 그날 여전히 목사의 아들인 그의 앞에서 담배 연기를 연신 내뱉으며 엉망으로 취했다. 아침에 그의 숙소에서 눈을 떴을 때, 누군가가 우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거라고 말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누구였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수 년만에, 그를 홍대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교포들이 많이 입을 것으로 추정되는 회갈색 점퍼를 걸치고 있었고, 본인 말로는 호주에서 고기를 많이 먹어 덩치가 커졌다고 했다. 여전히 술을 마시지 않으며, 내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떨떠름하게 지켜보는 그의 앞에서 나는 예전처럼 취하고 싶었지만, 그는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
그가 호주에서 하고 있는 일은 간단히 말해 기술직 노동자였다. 그런 그에게 샌님 같은 직함이 박힌 내 명함을 건네주며 부끄러웠지만, 그는 나의 새로운 직업을 꽤 마음에 들어했다. 우리는 모두 고향을 떠나서야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서로를 만나 우리가 꽤 좋은 선택을 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가끔 서울살이의 팍팍함을 토로하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대개 그들은 태생이 서울인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나는 안락한 도피처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나는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서울을 떠난다면, 떠나고 싶어진다면, 나는 당연히 고향이 아닌 더 큰 도시로 갈 것이다. 이건 내가 고향을 싫어하기 때문이 전혀 아니다. 단지 할 수 있는 일, 만날 수 있는 사람, 일 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은 곳을 원하기 때문이다.
호주로 돌아간 친구는 백인 미녀와 곧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시드니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가 한 번 가겠다고, 마치 오래 전 터미널에서 처럼 나중을 기약해두었다. 다시 만날 때 우리가 어디에 있다고 해도 서로에게 놀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날의 우리가, 각자의 제자리에 서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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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극에서 의외로 지켜지지 않는 고증.jpg
바로 조선의 왕실 호칭 흔히 잘 알고 있는 폐하-전하-저하-합하-각하-...는 중국식 황실 예법에서 나온 것. 조선에서는 이 중국식 체계와 조선에서만 쓰는 예법이 혼용되었음. 여기서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조선에서만 쓰던 왕실 호칭 1. 마마 : 왕, 왕비, 상왕, 대비, 세자를 부르던 호칭 오직 이런 분들에게만 마마라는 호칭이 허용됨 원 간섭기에 들어와 한반도에 자리잡은 말임 따라서 원 간섭기 이전 시대 왕실에서 마마라는 호칭을 사용하거나 세자가 아닌 왕자, 왕녀, 후궁에게 마마라고 부르면 안 됨. 2. 마노라 : 처음에는 마마와 같은 의미로 쓰이다 조선 후기에는 세자빈을 일컫는 말이 됨. 1600년 계축일기에 처음 등장 조선 중기에는 "대비 마노라" "대전 마노라"처럼 마마와 동급으로 쓰이다 조선 후기에는 세자빈 전용 호칭이 되고, 20세기에 이르러 아내나 중년 여성에 대한 속칭으로 격하됨(마누라) 마노라의 어원은 불분명해서 몽골발설, 마루 밑을 뜻하는 말루하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경우 섬돌 밑을 뜻하는 폐하, 궐 밑을 뜻하는 전하 등과 맥락을 같이 함), 고유어설 등 다양한 설이 병립함. 3. 자가 : 왕녀나 정 1품 이상의 빈을 이르는 호칭 왕녀(공주, 옹주) 그리고 정 1품 이상의 빈들은 뒤에 자가가 붙음. 세자가 낳은 군주•현주도 포함 정1품까지 승격한 후궁, 간택되어 처음부터 무품빈이었던 후궁 등이 해당함. ※세자빈이었다가 세자가 죽어서 봉호를 받은 빈들도 존재하는데 이들에 대한 호칭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음 4. 마마님 : 정1품 미만 후궁 및 상궁을 이르는 호칭. 한 글자 차이지만 많이 다름. 5. 대감 : 왕의 적자인 대군(무품), 왕의 서자나 손자, 방계왕족인 군을 이르는 호칭 조선이 망해갈 무렵 이런 호칭체계가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을 다루는 사극을 볼 때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기는 함. 끊임없이 대군마마를 찾는 신채경 인터넷 기사에서도 마찬가지 이런 조선의 궁중 호칭을 잘 살린 드라마로는 해품달이 있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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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소한 시 한 편의 초고를 완성해야 했다. 바로 다음 주가 마감이니까. 시를 집중해서 쓸 수 있는 마지막 주말이 내일부터지만 예정대로 여행이 잡혀 있어서. 이전에 쓰다 만 시를 퇴고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냥 정면 승부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다시 쓰기로. 운동을 하러 뒷산을 오르며 시를 써야 한다 시를 써야 한다 내내 다짐하는데, 비눗방울을 날리는 아이들이 보였다. 날이 얼마나 좋은지 비눗방울이 터지지도 않고 멀리멀리 날아가는 것을 보며, 떠오르는 문장들이 생겼다. 걸으면서 메모했다. 그러다가 문장들이 줄줄이 딸려 나오는 바람에, 잠시 벤치에 앉아 시라기보다는 떠오르는 단상들을 바로바로 적어두었다. 운동을 마치고 와서는 그것들을 토대로, 이전에 메모해둔 여러 단어와 문장들을 동원해 시의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이 초고를 토대로 다시 며칠간 고심하며 퇴고를 해보려 한다. 그와 동시에 첫 시집과는 결이 다른 일종의 스타일을 나름대로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시 메모의 힘이란. 시는 쓰지는 못해도 늘 메모는 이래저래 해두는데, 역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예전부터 내가 메모장을 뒤져 시를 쓰다 보면 꼭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은 종영했지만, 몇 년 전까지 유행했던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예능 프로그램. 셰프들이 연예인의 냉장고를 뒤져 그 안의 재료들을 활용해 요리를 선보이는 것처럼, 시인들이 사람들의 메모장을 뒤져 그 안에 담긴 단어나 문장들을 가지고 시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여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냉장고와 메모장은 성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냉장고야 생필품이지만, 메모장은 모두가 쓰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까. 사실 이 비슷한 기획은 어딘가에서 진행됐던 걸로 안다. 독자들의 간략한 사연을 받아, 시인들이 시를 써주는 것. 그러나 그것은 형식이 달라질 뿐 같은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그보다는 사람마다 특별히 자주 쓰는 어휘나, 그가 인상적으로 기억해 메모해둔 구절이나 단상 같은 것을 가지고, 완전히 색다르게 조립해보고 싶다. 그러니까, 당신이 가진 어휘로 내가 시를 써보는 것이다. 메모장을 부탁해.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는 이유는 최근의 내 시 작업이 다소 그런 면모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의 드라마를 좋아한다. 그리고 일정한 말버릇이 있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아주 보석 같은 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단한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종종, 혹은 흔히 쓰지만 너무나 흔해서 주목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거기에 주목한다. 그것들을 콜라주 하듯이, 혹은 테트리스 하듯이, 배치를 바꿔 아귀를 맞추는 작업을 좋아한다. 오늘 쓴 시의 초고도 그런 작업 형태로 이어졌다. 나는 언제나 기시감에 주목한다. 익숙한 것이 낯설게 보이게 하는 것. 시에서 기시감을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익숙한 단어와 말들을 전혀 새롭게 배치해보는 것이다. 뭐 이러한 시작 방법이 시 장르에 이제껏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방식에서 결을 조금 달리해서 활용해보고 싶다. 어쩌면 이것은, DJ가 기존의 여러 음악을 가지고 샘플링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다음 시집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러한 작업을 한번 밀어붙일 수 있는 곳까지 밀어 붙여보고 싶다. 실패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성취의 척도 또한 내가 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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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이 매섭다. 여름인가 싶더니 아직인가 보다. 지난 금요일 썼던 시의 매듭을 좀처럼 짓지 못하고 있다. 제목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집에 가고 싶다. 포털사이트에 다채로운 인터넷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다. 시사 란을 제외하고는 댓글 창 자제가 사라진 것에 대해 단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더 좋은 대안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왜냐면 댓글의 순기능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순기능이라 함은 기사에 대한 여러 반응을 통해 기사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고, 기사의 배후에 깔린 생략된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인터넷 기사에 직접 댓글을 달아본 적은 아예 없다시피 하지만, 댓글을 보는 재미를 솔직히 무시할 수는 없었는데. 악플의 잔인한 위력을 당장 막을 방법으로는 어쨌든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급선무였겠지만, 법적 제재를 가할 악플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서 나쁜 것은 처벌하고, 좋은 기능은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나중에라도 세웠으면 좋겠다. 뭐 어떻게 해도 편법은 생겨나고, 우회하여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그렇다면 법 또한 그에 맞춰 부지런히 진화해가는 방향을 모색하면 어떨까. 절차의 복잡함을 너무도 모르고 떠드는 소리일까. 어쨌든 이미 경험해버린 세계를, 그것이 절대적으로 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분명 양가적인 가치를 지닌 세계를, 원천봉쇄하고 그것이 없던 때로 무작정 돌리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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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음 달에 실릴 원고를 청탁하기 위해 필진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중 한 명의 시인은 요즘 가장 핫한 시인 중 한 명인데, 전과 다르게 의사소통에 다소 애를 먹었다. 한 넉 달 전에도 원고 관련으로 통화를 하다가 안부를 물었는데 그가 문득,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었다. 물론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는 일이 흉도 아닐뿐더러, 그것이 그냥 지나칠 일이라는 건 아니지만 요즘은 주위에도 생각보다 흔하게 있는 일이어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하물며 시인의 우울이란 놀라울 일도 아니어서, 또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에 불과한 내가 특별히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오늘 통화를 해보니 정서가 많이 불안해 보였다. 그 증거를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조심스러워졌다. 현재 밀려있는 원고들이 많아서 조금 미룰 수 있는지, 그리고 곧 시집이 나오는데 시집이 나온 뒤 시집에 실린 시를 발표할 수는 없어서 기간이 겹치지는 않을지, 또 시의 형식이 다소 실험적인데, 편집상 무리는 없는지, 뭐 이런 것들을 조율했는데, 설명이 부족한 것 같으면 재차 설명해주었고, 내가 당장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은 우선은 다시 검토해보자고도 얘기했다. 아주 힘겨운 통화를 마치고, 문득 걱정이 되었다. 꽤 오래전이지만 몇 번인가 모임에서 직접 본 적도 있고, 그때의 모습들은 지금처럼 불안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보여준 모습들은 거의 무관한 나로서도 우려가 되었다. 나 역시 그것을 우울증이라고 해도 좋을지, 단순한 우울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것들을 오래 겪어본 바로서, 또 당장 지난여름부터 겨울까지만 해도 그런 기분이 극심해져 운동도 하게 된 측면이 있는데, 그때 내가 자주 하던 말과 톤이,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보여지는 느낌들이 그에게서 자꾸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 같으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무시해버릴 만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에게서 자꾸만 지난날의 내가 보여서. 거듭 말하지만 함께 시를 쓰는 동료라는 것 말고는 그의 삶에서 거의 무관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함부로 보탤 말도 없다. 함부로 보태서도 안 된다. 무관하고 사무적인 관계로서 그저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원고를 실을 수 있도록 최대한 조율해보는 수밖에.
[여러분, 토박이말날 잔치 구경 오세요]
#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토박이말날 #잔치 #터박이말 #참우리말 #숫우리말 #순우리말 #고유어 [네 돌 토박이말날 잔치 알림] 오는 무지개달 열사흘(4월 13일)은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으뜸빛 강병환)에서 만든 ‘토박이말날’이 네 돌을 맞는 날입니다. ‘토박이말날’은 우리 겨레의 삶과 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토박이말이 갈수록 설자리를 잃어가는 것을 안타까워서 토박이말을 살려 일으키는 일에 힘과 슬기를 모으자는 뜻으로 만들었습니다. 4월 13일을 토박이말날로 삼은 것은 주시경 스승님의 ‘말의 소리’라는 책을 펴낸 날과 이어집니다. ‘말의 소리’는 우리말의 소리를 짜임새 있게 밝힌 책이면서 덧붙임(부록)을 빼고는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글로 되어 있어서 ‘토박이말을 한글로 적기’를 바람직한 말글살이라고 여기는 토박이말바라기의 뜻과 같기 때문입니다. 네 해 앞 토박이말날을 만들어 널리 알렸을 때는 대통령 뽑기(선거)를 앞두고 있었는데 나라의 일꾼인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 무엇보다 먼저 우리 겨레의 삶과 얼이 깃든 토박이말을 챙기겠다는 다짐(공약)을 해 달라는 밝힘글(성명서)도 함께 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을 해 준 분은 한 사람도 없었고 그때 새롭게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님이 일하실 날이 한 해 남짓 남았습니다. 다음 대통령이 되고자 하시는 분들은 토박이말에도 마음을 써 주는 분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에서 그 동안 나름대로 여러 가지 수로 토박이말날을 알려 왔지만 아직 토박이말날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참일(사실)입니다. 올해 네 돌 토박이말날을 맞아 몇 가지 잔치를 마련했으니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잔치 1> 토박이말 알림장 나눔 아이들이 날마다 쓰는 알림장에 여러 가지 토박이말과 토박이말 달자취(달력)을 넣어 만든 알림장 이름이 ‘토박이말 알림장’입니다. 이 알림장을 경상남도 교육청에서 뽑은 토박이말 이끎학교와 토박이말 교육에 앞장서고 있는 학교의 1-2학년 학생들에 나누어 줍니다. 토박이말날인 4월 13일에 나누어 준다는 데 뜻을 두며 토박이말 알림장을 쓰면서 아이들과 토박이말이 좀 더 가까워지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잔치 2> 토박이말 노래 잔치 지난해 다섯 돌 토박이말 어울림 한마당 잔치 때 뽑힌 ‘토박이말 노랫말’에 가락을 붙인 노래를 아이들이 불러 들려 주는 잔치입니다. 아이들이 지은 노랫말을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에서 토박이말을 살려서 바꾸고 거기에 사단법인 아름나라(이사장 고승하)에서 가락을 붙였습니다. 노래는 4월 30일부터 토박이말바라기 누리집에 가면 누구나 들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숨김없는 나날살이와 토박이말이 잘 어우러진 신나는 노래를 많은 분들이 듣고 즐기기 바랍니다. <잔치 3>토박이말 풀꾀 모음 잔치(앱아이디어 공모전) 토박이말 사랑을 담은 토박이말 풀꾀 모음 잔치(앱 아이디어 공모전)도 열립니. 토박이말을 살려 일으켜 북돋우고 토박이말을 우리 삶 속으로 가져와 부려 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우면서도 남다른 풀꾀(앱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내 주는 사람 가운데 여섯 사람을 뽑아 보람과 보람돈(상장과 상금)을 드립니다. 오는 4월 28일까지 토박이말바라기 누리집 올리는 곳에 올리시;면 되고 많은 분들이 함께해서 토박이말 사랑 풀꾀(앱 아이디어)가 멋진 풀그림(프로그램)이 되어 나오기를 바랍니다. <잔치 4> 토박이말날 풀거리(문제) 풀기 잔치 토박이말날과 아랑곳한 풀거리(문제)를 맞히는 잔치가 있습니다. 아래 걸어둔 곳으로 가면 토박이말날과 아랑곳한 풀거리(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풀면 됩니다. 4월 29일까지 해서 모두 맞힌 사람 가운데 사는 곳과 기별 곳(주소와 연락처)을 남겨 주신 100사람을 4월 30일에 뽑아 알려드립니다. 뽑힌 사람들에게는 토박이말 달자취(달력)와 여러 가지 토박이말이 들어 있는 예쁜 꼼꼼적바림종이(수첩·메모장)을 보내드립니다. 토박이말날 풀거리(문제) 풀러 바로 가기 https://url.kr/cruqox 토박이말과 토박이말날을 널리 알리는 데 뜻이 있는 잔치니까 이 기별을 본 사람들은 둘레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4354해 무지개달 열이틀 한날(2021년 4월 12일) 바람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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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록의 태풍
크리스마스 선물이 가득 담긴 산타 할아버지의 썰매를 끌며 멋진 뿔을 자랑하는 순록은 주로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의 북극지방에 서식합니다. ​ 그런데 이 녀석들은 간혹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행동을 합니다. ​ 외부에 위험을 감지하면 바로 수백 마리의 순록 떼가 한데 모여 원을 그리며 뱅뱅 도는 것인데 그 모습이 태풍과 비슷하여 ‘순록의 태풍’으로도 불립니다. ​ 순록이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천적으로부터 자기 몸과 무리를 방어하기 위한 행동인데 이때 순록의 최고 속도는 시속 80km에 달하기 때문에 아무리 강한 포식자라도 쉽게 뛰어들 수 없는 것입니다. ​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태풍의 눈이 되는 중심에는 생후 1년 미만의 새끼들이나 암컷이 있고 이들을 중심으로 나머지 수컷들이 바깥쪽을 회전하며 암컷과 새끼들을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 자신의 무리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순록들의 생존 본능을 넘어 부성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과 어미를 지키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모습을 본 순록은 어른이 된 후 다른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도 달리기 시작합니다. ​ 이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부모들도 때론 두렵고 힘들 때가 있지만 자녀들이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며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 그렇게 된다면 그 올바름을 보고 자란 아이들도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참된 어른이 될 것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사랑이란 자기희생이다. 이것은 우연에 의존하지 않는 유일한 행복이다. – 톨스토이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 ​ #자기희생 #희생 #사랑 #가족 #인생
여든살 노인에게 몰래카메라를 시전한 BBC
1988년 영국. 윈턴 여사는 집 다락방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수백명에 달하는 어린아이들의 사진과 이름, 명부 등이 수록된 스크랩북이었다. 남편인 니콜라스 윈턴이 구한 669명의 유대인 명부가 세상에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유대계 영국인인 니콜라스 윈턴은 29세이던 1938년, 휴양차 갔던 체코에서 유대인 수용소의 실상을 알게 된다.  당시 영국에선 독일에서 핍박받던 유대인의 아이들을 입양하는 방식으로 데려오곤 했는데 도움의 손길이 체코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나치 장교에게 뇌물을 주는 등 사비를 털어 669명에 달하는 아이들을 영국으로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2차대전 발발로 탈출시키던 나머지 250명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니콜라스 윈턴은 실의에 빠져 영국으로 돌아왔고 50년간 이 일을 묻어둔채 지냈다. 심지어는 아내가 찾아낸 명부를 파기하고자 했다. 결국 윈턴 여사는 남편을 설득, 이 명부를 방송국에 제보한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채 담담한 표정의 니콜라스 윈턴. 스크랩북을 펼쳐보인 진행자 윈턴 씨가 자신이 구한 아이와 찍은 사진도 있다 "뒷면을 살펴보면 (구조된) 모든 아이들의 명단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사회자가 지목한 한 이름 베라 디아맨트 베라의 어릴적 사진이 지나가고 "그리고 베라씨가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 말씀을 꼭 드려야겠네요. 베라씨는 지금 윈턴씨 옆에 앉아있습니다." 띠용? 니콜라스 윈턴은 50년전 자신이 구해준 꼬마가 이제 중년이 다 되서 자신의 바로 옆 자리에 앉아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반가움과 고마움을 담아 포옹하는 베라, 그리고 박수로 응원해주는 청중들 아직 몰카는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윈턴의 왼편에 앉은 여인이 자신도 윈턴의 도움으로 구조됐다면서 문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2번째 띠용 오늘 놀랄 일이 많구먼 ㅎㅎ 몰카는 아직 안 끝났습니다. "혹시 이 중에 윈턴씨 덕에 목숨을 구한 분이 계시면 일어나 주세요." 그러자 윈턴씨 주변에 앉아 박수를 쳤던 청중들 수십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리둥절 니콜라스 윈턴이 구한 669명의 어린이는 나중에 각자 성장하고 가정을 이루어 그 수가 6천여명에 달하게 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마저 구하지 못한 250명에 대한 죄책감과 체코에 그대로 남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이 일을 50년 동안이나 숨기고 살아왔다. 이 공로로 니콜라스 윈턴은 2003년 기사에 봉해졌으며 2015년 106세를 일기로 타개한다. 출처 감동이란 이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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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까지 마감인 시 원고를 하나 넘겼다. 사실 계속 욕심이 생겨서 고치고 또 고치면서 오래 붙들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는 아예 다른 시가 떠올라 내친김에 한 편을 더 써냈다. 사실 나는 잡지에 발표하는 시에는 크게 미련이 없다. 문학상은 대개 잡지에 발표된 시나 출간된 시집, 혹은 투고 원고 중 하나를 선정해 수여하는 방식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나는 아마도 잡지에 발표된 시에 상을 주는 방식의 문학상은 절대 탈 수 없을 거다. 적어도 당분간은. 어차피 잡지는 내 개인 작품집이 아니라서, 일단 발표하고 계속 퇴고를 거듭해 시집에 실으면 된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일부러 대충 써낸다는 것은 아니고, 가능하면 나도 좋은 시를 발표하고 싶지만 내 시작 방법이 워낙 고치고 고치는 게 익숙하다 보니, 마감에 쫓기게 돼서 그렇다. 잡지를 구독하는 독자들을 우롱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시를 새로 쓰다 보니, 이제는 최대한 발표 시에도 공을 들여볼까 생각한다. 왜냐면 이전까지는 조금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전보다는 조금 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다못해 소설도 시절을 바투 따라가는 판에, 시를 쓰는 사람이 자꾸 시대와 작품의 시차를 너무 벌리는 것은 게으름 탓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의성을 생각하고 시를 쓰지는 않지만, 또 그것을 크게 지향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그 안에 알게 모르게 당시의 시절이 스며든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조금 용기를 내고, 또 생각을 바꿔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