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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갑(甲) 양반, 권력과 재력을 독점하고 특혜를 세습한 양반

조선시대 경제적/사회적/정치적 특권을 장악했던 양반은 초기엔 약 7퍼센트였지만 후기엔 70퍼센트까지 증가합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는 동안 무너진 국가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전쟁중 공을 세우거나 곡식을 바친 평민과 천민에게 관직과 품계를 주어 양반으로 행세할 수 있게 하자 신분의 굴레에 얽매였던 중인과 서얼들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혼란 속에서도 일부 양반들은 여전히 권력과 재력을 독식하고 부역과 세금을 면제받으며 재산을 축적해 갑니다. 제한된 소수가 권력과 재력을 독점하여 특혜를 세습하는 양반의 모습은 조선시대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이른바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합니다. 역사채널e에서는 [조선의 갑(甲) 양반]을 통해 그 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링크(http://bonlivre.tistory.com/483)를 통해 봉리브르 블로그를 방문하시면 좀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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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Vivian Maier, 1926~2009) 2007년, 존 말루프라는 사람이 우연히 동네 경매장에서 엄청난 양의 네거티브필름이 담긴 박스를 구입한다 시카고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려던 그는 원하는 사진은 찾을 수 없었지만, 그 필름 속 사진들이 범상치 않음을 발견하고 SNS에 올리자, 폭발적 반응을 얻는다 박스에는 엄청난 양의 사진을 비롯한 옷, 악세서리, 모자, 신발, 편지, 티켓, 메모 영수증 등의 물품들이 담겨 있었는데, 그 주인이 대단한 수집광이었다는 점을 나타낸다 아주 사소한 종이 쪼가리까지 종류별로 모아져 있었고, 존 말루프는 종이들에 적힌 주소를 통해 물건들의 주인 ‘비비안 마이어’ 에 대해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놀랍도록 감각적인 그의 사진들은 1950년대 이후 길거리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연출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장면이면서도 예술 작품처럼 절묘한 구도의 사진들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녹아 있었고 생생한 사람들의 표정과 감정이 가감없이 담겨 있다 존 말루프가 구매한 박스에 든 사진은 자그마치 '15만 장' (주로 유리창이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비비안 마이어) 부유한 가정들에서 보모로 일했던 비비안 마이어 이런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찍고서 전혀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넷 어디에도 검색되지 않는 ‘비비안 마이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많은 궁금증이 생긴 존 말루프는 비비안의 고향을 찾고 그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 생전의 이야기를 들으며 베일에 싸였던 그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사진 출처: 비비안 마이어 홈페이지 존 말루프가 직접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2015) 에 그 과정이 담겨 있음 재미요소가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사진을 좋아한다면 흥미롭게 볼만함 (왓챠에 있어) 출처ㅣ쭉빵
시대에 비해 너무나도 강력했던 무기
맥심 건 19세기 말 1883년에 개발된 최초의 자동발사 기관총 물론 그전에 개틀링 기관총이 있긴 했지만 수동으로 총열을 돌려야 발포되는 불편함이 있었고 자동으로 돌리려면 타 장비가 필수적이었음 이를 극복하고 완전히 자동으로 발사되는 기관총의 시조가 이 맥심 건 250발의 탄띠와 500rpm , .303 british(7.7mmx56mm) 의 힘으로 2발이상 맞는순간 전투불능까지 이어지는 흉악한 무기였음 대신 27kg이나 하기 때문에 보통은 다가오는 적들을 그야말로 갈아버리는데 쓰였음 그당시 동일시기에 쓰여진 총들이 헨리 라이플같은 래버액션이나 마티니-헨리 소총같은 단발형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론상 1분에 500발씩 때려박는 미친 총 앞에서는 나설 수가 없었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게 바로 마타벨레족과 영국군의 전쟁임 영국의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 그중 마테벨레족은 8만명의 창병과 2만명의 마티니-헨리 소총으로 무장한 전사들로 맥심건으로 수비하던 영국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음 이때 영국군은 고작 400명이 사망했지만 마테벨레족은 무려 5만명이 사망하면서 완전히 괴멸돼버림 물론 마테벨레족이 헨리-마티니 소총을 잘 활용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가늠쇠의 기능을 아예 모르고 있었음) 1:125의 비율이라는 처참한 비율로 완전히 갈려나가버렸음 또한 영국의 식민시였던 수단에서 일어난 마흐디 전쟁에서도 마흐디군이 약 5만명의 병사들로 공격을 감행했지만 맥심건 및 근대화된 무기로 단련된 연합군에게 상대도 안됐음 영국군은 47명이 사망하고 마흐디군은 1만명이 사망하며 1:200이라는 미친비율로 완전히 영국이 압도해버림 이를 본 서구열강과 일본도 맥심 건을 따라 기관총을 개발하고 독일의 MG08 , 러시아의 PM M1910 , 맥심-토카레프 , 빅커스 기관총, 일본의 호치키스 M1897등 파생형들이 늘어나게 됨 맥심건의 의의는 기존의 식민지-서구열강의 전쟁에서 점차 보급된 근대화 무기로 서구열강에 대해 저항하던 식민지 세력을 완전히 묻어버리게 만든 무기라고 볼 수 있음 기본적으로 이게 있는 한 전진할 수가 없었으니... 식민지 저항 세력들은 이후 완전히 전멸했지만 이제 진짜 문제는 이 총이 유럽인들끼리 싸우게 되면서 발생함 바로 세계1차대전임 세계 1차대전이 터지고 보병들의 전투의 중심은 바로 '병사 개개인의 강력한 화력'이었음 강력한 맥심건과 점점 발달한 무기등으로 인해 서로가 화력이 너무 강해진탓에 병사들이 앞으로 전진 할 수가 없었음 왜냐? 돌격하는 순간 갈려나가니까 그 때문에 결국 지옥과도 같은 참호전이 시작됨 참호전이 뭐냐? 서로 참호를 파고, 사전포격이 끝나면, 일제 돌격하는 전술임 이 구멍들이 다 사전포격의 흔적들임 사전포격이 며칠동안 이뤄지고(이 당시는 정밀한 포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사실상 아군참호 앞을 싹 갈아버리는 방식을 사용함) 그 후 참호에 숨어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돌격하는 방식이 쓰였지만 막는 쪽에서도 며칠동안 참호 속에서 폭격을 버티면서 상대 병사들이 돌격해오면 빠르게 중기관총을 배치해서 이를 막아내야 했음 그리고 이걸 막아내는데 성공하면 그대로 다시 막던 쪽에서 일제히 돌격하는거지 이 지랄같은 전쟁을 무려 4년을 해야했음 며칠동안 머리위로 포격이 떨어지고 돌격하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갈려나가는걸 보고 전우가 총맞아 참호속으로 굴러떨어지는걸 4년을 봐야했다는 말임 심지어 땅을 파서 만든 참호기에 당연히 위생상태가 좋을리 없어서 쥐 벼룩 등이 창궐하고 포격으로 개박살난 땅에 비라도 오면 물난리가 나는데다 포격때문에 물자배송도 어려워서 굶는등 그냥 생지옥이었음 결국 참호전을 돌파하기 위해 곡사포와 박격포, 공군, 독가스 ,전차등이 개발되고 병사 개개인의 화력보다 전술적 타격이 중요해짐에 따라 그제서야 참호전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됨 참호전의 중심이 수비에 있었다는걸 생각하면 기관총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무기였는지 짐작이 갈거임 개발자인 하이럴 맥심은 맥심 건을 개발하면서 '전쟁을 하지 못하게 할 무기'를 위함이라고 말했음 이는 상호확증파괴에 대한 예언이라고 볼 수 있음 이런 상호확증파괴 이론은 결국 핵무기 까지 가서야 효과를 발휘했지만 세계1차대전까지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맥심건을 생각하면 다이너마이트의 개발자 노벨을 떠올리게 하는 참 씁슬해지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물론 하이럴 맥심은 영국인임 일단 19세기에 무슨일이던 사고나면 영국놈들이다 이 싯팔 (출처) 1. 군인이 많이 죽는다.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2. 군인 1명이 총알을 단시간에 많이 쏠 수 있으면 군인을 적게 투입해도 된다 3. 군인이 적게 죽는다 이 논리로 만든거지만 물론 군대는 더 커지고 화력만 더 세져서 결과적으론 정 반대 됐음 저런